커미션/공개

늑대와 물총새

김만성피로 2023. 2. 5. 00:05

*해포 AU입니다!

*커미션 이전에 개인적으로 작성했던 해포AU의 짬통스 프리퀄이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캘칼님께서 해포 관련으로는 뭐가 없기에, 저는 그저 캘칼님은 패트로누스가 늑대 아닐까 멋대로 생각했읍니다.

 

Words : 9K


 바닥을 내려다보기 전까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바닥에 떨어진 그것이 자신의 흑단나무 지팡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당황한 마음도 잠시,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기 지팡이를 주우면서 이렇게 만든 상대방을 특유의 씩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목도리와 넥타이와 비슷하게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와 한 올마저도 깔끔하게 뒤로 넘겨버린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그. 상대방이 천천히 자기가 들어 올린 지팡이를 내렸다. 그도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렇게, 호그와트 3학년 어느 날. 결투클럽에서 서로를 알았다.


 믿기지 않게도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수색꾼인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그 남다른 덩치만큼이나 꽤 독특한 인물이었다. 만약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정의 내리라고 한다면 단연 독특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같은 수업도 이론만 알려주겠다 싶으면 꾸벅꾸벅 졸면서 기숙사 점수를 조금씩 갉아먹고는 하는 그가, 실습만 하면 황당할 정도로 날아다니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은근 실력에 자신감이 붙어있던 그에게 결투클럽은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고, 그런 만큼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던 그에게 있어 지금의 결과는 제법 충격적이었다. 방심했는가? 아니었다. 분명 손에 힘을 잔뜩 준 채 어떤 주문이 날아올지 계속 경계를 했다. 그렇다면 긴장을 과도하게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뻔뻔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하 감옥 어딘가에서 탈출한 트롤이 휘두르는 몽둥이가 머리 위로 날아왔어도 웃던 자신이다. 

 그래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자신의 맞은편에 서서 상대 역을 맡았던 래번클로 기숙사의 학생에게 말을 건넸다.

 

 "어이."

 "뭡니까?" 

 

 어지간해서는 놀라지도 않지만, 캘리칼리는 이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자리를 비워주려고 제 짐을 주섬주섬 싸면서도 여전히 얼떨떨해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사람 목소리가 맞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낮고, 또 굵었다. 그리고 그 황당한 이유로 자신이 멍하니 있는 동안, 그 래번클로 학생은 캘리칼리가 단순히 시비라도 거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듯 사라져 버렸다.

 단상 아래에서 언제까지 계속 서 있을 거냐는 다른 클럽원들의 아우성에, 층계를 무시하고 그대로 훌쩍 뛰어내린 그가 그 큰 체구를 이용했다. 인파 사이로 돋보이는 그 큰 키로 벌써 저 멀리 사라진 그 래번클로 기숙사생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걷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동급생들 뛰는 것 이상으로 움직이는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접근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이, 사람이 불렀는데 그냥 가면 쓰나?"

 "그래서 제가 뭡니까라고 말하며 용건을 말해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답이 없으셨지요. …저를 무시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과연 이 파란색 투성이 기숙사 소속답게 입 하나는 끔찍할 정도로 잘 턴다. 순식간에 냉정하리만치 쏘아붙이는 말을 떠안겨준 그는 다시 황당하기 직전이었던 캘리칼리에게 "또다시 답이 없으시니,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라며 그 말투만큼이나 쌀쌀하게 몸을 휙 돌리고 다시 제 갈길을 가려하였다. 그런 성급한 태도에 이골이 나려 해, 아예 앞질러가며 한사코 말린 그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다른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우리 친구 하자고 말하려 했던 걸세."

 "…예?"

 

 당황한 티를 숨기지 못하고 상대방이 방금 전보다는 그래도 높은(그러나 일반적인 학생들에 비하면 한없이 낮은) 목소리로 반문을 하고야 말았다. 이때가 기회임을 직감한 캘리칼리가 아예 그 덩치만큼이나 큼직한 손으로 여전히 얼떨떨해하는 상대방의 등을 쭉쭉 밀어내며 정원의 벤치까지 이끌었고,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 학생을 거의 강제로 앉히다시피 하였다.

 곧 자신도 그 옆에 바로 앉자 체구 차이가 더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에, 래번클로 기숙사생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겨우 한마디 하였다.

 

 "이, 이거 뭡니까?"

 "복도에서 서 있으면 눈에 띄잖나? 게다가 자네가 날 올려다보려면 좀 목이 아프겠다 싶어서."

 

 지금도 충분히 아픕니다만라고 중얼거리는 그 낮은 목소리를, 캘리칼리는 한사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그 다운 태도였다. 상대방이 아직도 어깨에 메고 있는, 솔기가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교과서 따위가 꽉꽉 들어 찬 가방에 이름이 적힌 것을 알아챈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가방 주인이 황급히 자기 이름을 가리기도 전에 잽싸게 말했다.

 

 "카르나르 융터르?"

 "이런."

 "이제야 자기소개가 원활하게 되는구만! 내 이름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네."

 

 래번클로의 3학년, 카르나르 융터르는 스스로도 들리지 않을 만큼 깊은 한숨을 쉬다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전혀 자기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반은 체념한 얼굴과 떨떠름한 어조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하…. 만나서…, 반갑다고 해야 하나."

 

 반은 억지로 물꼬를 트는 것에 성공해 친하게 지내자고 말은 했지만, 정작 사정은 캘리칼리에게 있어 사정이 그리 좋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의 카르나르 융터르가 그의 접근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탓도 있지만, 애당초 학교 분위기부터가 사교적인 분위기를 막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최근 예언자 일보가 시시각각으로 디멘터의 이상증식현상을 속보로 알려주는 탓도 있었다. 옛날 '그 사람'이 호그와트를 점령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그쪽에 대거 참여를 했다가 아즈카반이라는 희대의 양식장을 잃어버렸으니 날뛰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최근에는 호그와트 쪽으로도 넘어오는 수준까지 이르었기에 교사들은 물론, 학생들도 긴장하기 일쑤였다. 의무실에는 종종 마법 생명체 돌보기 수업이나 약초학 수업으로 야외에서 수업을 받던 학생들이 디멘터를 만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 패닉에 빠져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소동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투 클럽이 갑작스럽게 성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사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결국 편하게 말하는 정도까지 다가간 것도 결투클럽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캘리칼리가 융터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혹시나 모르니 제 몸을 지킬 수단은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법이야 많으면 좋지. 어이쿠!"

 

 호그스미드 방문이 중단되어 부엉이 택배를 통해 필요한 물건들을 연회장에서 받는 시간이 되었다. 뜬금없게도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허니듀크 특제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받아내고는 앉은 자리서 몇 입은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그 모습을, 카르나르 융터르는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의 주변에 두꺼운 책이 인상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곧 융터르의 부엉이도 다이애건 앨리의 서점에서 주문한 것이 분명한 책을 그의 무릎 위에 떨어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두 번째 조각 케이크의 포장을 막 풀어내던 캘리칼리는 차라리 흉기가 아닐까 싶은 그 어마어마한 두께에 질렸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그 책들…, 다 읽기는 하는 건가?"

 "그럼요. 가끔 교과서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 주는데 도움 됩니다."

 

 캘리칼리는 그 묵직한 책 무더기 중 적당한 것 하나를 집어 대충 읽어보다가 질색하며 도로 올려두었다. 어지간한 것들은 그의 말대로 일종의 참고서 정도였으나 마법약과 같은 것들은 N.E.W.T.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이미 몇 차례 경험했던지, 그는 살짝 웃으면서 변명하듯이 말했다.

 

 "이건 제 취미입니다."

 "진지하게 취미를 다른 걸로 해보는 걸 권하겠네. 예를 들자면― 퀴디치라던가?"

 "저 빗자루 탈 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어깨너머로 그리핀도르 특유의 붉은색이 도드라지는 유니폼 여럿이 보였다. 퀴디치 선수팀들이 그에게 겨우 교수님에게서 허락받았으니까 그만 일어나서 준비하라는 말. 어느샌가 세 번째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던 그는 남은 것을 한 번에 밀어 넣으면서, 여전히 복잡한 내용의 책에 몰두하는 그에게 공부 잘하라는 말과 함께 일어났다.

 융터르는 그가 떠나는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보다 다시 책에 시선을 두려고 노력했지만 그러기가 종전과 다르게 어려웠고, 그 이유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마치 그의 몫이라도 되는 듯 포장도 뜯어지지 않은 케이크 한 조각이 어느샌가 책무더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참 이상하신 분이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실풋 웃고는 캘리칼리의 호탕한 성격과 맞지 않게 살짝 올려둔 그 선물을 조심스럽게 뜯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는 한창 퀴디치 연습이 진행 중인지 운동장 방향에서 왁왁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곧 연회장에 아직 갖은 이유로 남아있던 학생들이 그 운동장 쪽을 향해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고, 케이크를 조금씩 먹으며 책을 읽던 융터르도 다시 집중이 되지 않아 조금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연습한다며 저마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비명에 가까운.

 대연회장의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에게 업혀 축 늘어진 몸이 보였다. 그 뒤로 눈에 안 띄려야 그럴 수 없는, 붉은색 유니폼이 줄지어 복도를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정신을 차리자 융터르도 그 무리를 쫓아 의무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가방이 미어터지지만 않기를 바라며 그 앞까지 겨우 뛰어갔지만, 의무실 안의 분위기가 무겁다. 융터르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던 점은, 침상 하나를 둘러싸고 걱정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유독 키가 툭 튀어나오듯 덩치가 큰 선수복도 있었다는 것이다. 차마 그리핀도르 학생들 사이를 뚫고 그 안에 들어갈 용기가 없던 융터르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차에,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자신을 먼저 발견하고 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준 것이 은근히 고마웠다.

 무슨 일인지 옷에 피가 범벅인 그가 침통함과 분노가 은연중에 묻어 나오는 어조로, 아주 간단명료하게 이 모든 일을 설명해 주었다.

 

 "디멘터가 나타났네."

 "…뭐라고요?"

 

 부지불식간의 일이었다며 그리핀도르의 덩치 큰 수색꾼은 화를 애써 참으며 설명해 주었다. 지금 누워있는 선수는 추격꾼이며 한창 훈련하던 중 디멘터가 운동장 바깥의 숲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그 선수를 덮치려고 덤벼드는 것을 애써 피하다 사고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건 아니고, 정신없이 도망치다 블러저에 머리를 제대로 맞아 추락한 것이니…. 나 참. 이걸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처구니 하나 없지만."

 "혹시 그 디멘터는 어떻게…?"

 "연습을 봐주시기로 했던 교수님이 지팡이를 휘두르니 뭔가 희뿌연한게 확 튀어나와서 몰아냈네. 후. 그나마 다행이지."

 "아하. 패트로누스 마법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창백한 얼굴이 된 채로, 당시를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자신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의 손 높이보다 자신의 키가 조금은 더 높아 그 모습을 본 융터르는 평소보다 더 엉망진창으로 쓸어 담아 불룩해진 가방 사이로 연거푸 뒤적뒤적거리다 그런 캘리칼리에게 판판하고 납작한 은박지 덩어리를 쑥 내밀었다.

 그 은박지 사이로 달콤 쌉쌀한 향이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 초콜릿이다. 영문을 몰라하는 그에게 융터르가 설명하듯 말해주었다.

 

 "드시죠. 손을 연신 떠는 걸 보아하니, 당신도 아마 디멘터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만…. 단 것을 먹어주면 조금은 도움 됩니다."

 "…이거 고맙군. 잘 먹겠네."

 

 그는 은박지를 우악스럽게 뜯어내 그의 손바닥만큼이나 꽤 큼지막한 초콜릿을 몇 입도 안 되어 금방 먹었다. 평소처럼 단 맛을 한껏 즐기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본인도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푸는 모양새였다. 곧 의무실 문에서 양호교사의 머리가 쑥 나오더니 캘리칼리에게도 초콜릿을 먹으라며 그 손에 쥐어주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방금 이 친구한테서 받아먹은 참이라."

 "어머, 그러니? 좋은 친구를 뒀구나? 그래도 비상약이다 생각하고 하나는 챙겨두렴."

 "감사합니다."

 

 캘리칼리는 다시 받은 초콜릿은 유니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여전히 불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본 넌지시 융터르가 물었다.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으십니다만."

 "난 올해 경기를 마지막으로 퀴디치 선수팀에서 나갈 예정이거든. 아쉽지만."

 

 종종 운동장에서 그 덩치가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고 날래게 스니치를 잡던 모습이 생각나, 융터르는 그 생뚱맞은 소리를 아쉬워하며 내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직 3학년인 그가 관둘 이유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선을 이해한 캘리칼리는 작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키 때문일세. 이 덩치가 안 그래도 조금씩 자라는 중인데 더 자랐다간 아예 전용 빗자루를 마련해야 할 판이거든."

 "아하."

 

 종종 오더메이드 빗자루를 타는 경우가 있다지만, 듣기로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갈레온을 쥐여줘야 만들어준다던 소문이 생각난 융터르가 그 말이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를 지망하지 않는 한, 멀쩡한 빗자루를 오직 몸에 맞지 않는 이유로 여러 번 갈아치우다 보면 순식간에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

 

 "그럼 이번 기숙사컵이 실질적인 은퇴 경기가 되겠군요."

 "그렇지.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나는 짜증이 나고, 답답도 하고 그런 것일세."

 "…."

 

 깊은 목소리가 내는 침음성과 함께, 카르나르 융터르는 현재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이래저래 도통 풀리지 않는 사정을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콜릿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조금 더 강해졌는지, 혈색이 천천히 돌아오는 수색꾼이 잠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대뜸 친구에게 말했다.

 

 "아까 패트로누스 마법…이라고?"

 "현재까지 사악한 마법생물들에게 가장 유효한 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설마."

 

 디멘터를 직접 마주하지도 않았건만, 이제는 융터르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처음 자신더러 친구 하자고 대뜸 들이밀 적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리핀도르의 상징인 용기가 저 덩치 큰 친구에게 적용되면 그건 곧 만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안된다고 거듭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캘리칼리가 어쩐지 살벌한 웃음을 지으면서, 융터르가 전혀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그 주문 좀 알려주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장담하지 못한다면서도 빈 강의실로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카르나르 융터르가 이끌었다. 

 

 "주문 자체는 간단합니다. 엑스펙토 페트로눔."

 "주문 자체…라고 하면 별도의 요건이라도 필요한가?"

 

 캘리칼리의 질문에 융터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행복함의 에너지로 구성된, 일종의 소환수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디멘터가 불러일으키는 숱한 부정적인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행복한 기억이나 상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의 행복한 기억 혹은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손꼽히는 고등마법이라는 말로 그 내용이 끝났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야지. 다른 놈들은 내년이라는 기회가 있겠지만, 난 올해가 끝이거든. 근데― 설명해 주는 자네는 이걸 습득했다, 이건가?"

 

 캘리칼리의 의문에 융터르는 자신의 오리나무 지팡이를 들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캘리칼리의 눈에도 익숙한 희뿌연한 안개가 둥그스름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몇 초는 보여준 그가 곧 지팡이를 거두며 식은땀을 흘린 채 중얼거리듯 말해주었다.

 

 "이건 실패작입니다."

 "…뭐? 주문 자체는 성공했잖나?"

 "아뇨, 제대로 된 패트로누스는 동물 모양을 띈 채로 디멘터를 아예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방어막 같은 형태가 아니고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경지까지는 도저히 할 수가 없더군요."

 

 로브 소맷자락으로 땀을 닦아낸 융터르가 당혹스러워하는 캘리칼리를 올려다보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기숙사컵을 차지하고 싶다면 완전한 패트로누스를 소환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승부욕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그에게 좋은 잘 마른 장작 위로 던져진 불씨가 되어 곧 기세등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싸우는 것도 아니건만, 그는 까짓 거 죽었다 생각하면 안 될 일 하나 없다면서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막상 기세 좋게 외친 주문의 결과물은 융터르가 선보인 둥그스름한 막보다도 더 못한 것. 기세등등했던 조금 전과 달리 캘리칼리의 목소리는 약간 얼빠진 것이 되었다.

 

 "이게 뭐야?"

 "그 생각일지, 상상일지…. 무의식적으로는 그리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 모양이군요."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 주문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기억을 가장 큰 자원으로 삼으니까요. 본인이 행복하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캘리칼리는 난처해하는 얼굴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상상이 소용없다며 투덜거렸다. 순식간에 낙담하는 그 모습에 카르나르 융터르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까 말씀 주셨다시피, 은퇴경기라고 하신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다시는 퀴디치를 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무려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도 더 강하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런가?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구만. 좋아, 그럼 다른 걸 한번 해보지."

 

 실전에 자신이 있다는 캘리칼리는 자신의 장담대로 수 차례 연습한 끝에, 카르나르 융터르가 보였던 희뿌연한 방어막 같은 형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단계까지 왔을 무렵에는 이미 캘리칼리 데이비슨도 꽤나 지친 모습이었다. 억지로 기억과 상상력을 마법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했기 때문이다.

 주저앉기 직전의 그에게 융터르는 수고 했으니 그만 휴식을 취하는게 좋겠다는 말을 하고, 캘리칼리도 그에 동의하였다.


 그로부터 잘해봐야 고작 3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카르나르 융터르는 이 순간이 너무 빨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일종의 원망 비슷한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호그와트의 모든 마법사와 마녀들, 물론 집요정들까지도 결코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던 일이 터져버렸다.

 디멘터의 수가 불어났다.

 교실에서 하기에는 더는 갑갑하다며 운동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패트로누스 마법을 연습하던 두 사람은 학교 안으로 서두르라는 방송을 들었지만 미처 대피하지 못했다. 

 

 "아―, 제기랄. 자네 진짜 빗자루를 못 타는 건가?!"

 "혹시 같이 탄다는 선택지는 안됩니까?"

 "이건 내가 타도 비좁아!"

 

 학교에서 제공하는 낡은 빗자루는 캘리칼리의 말대로 그의 몸 하나 띄우는 것도 굉장히 버거워하였고, 그렇다고 융터르의 말을 듣고 비행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그들은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디멘터들이 에워싸고 그들의 행복한 기억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려 하였다.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끔찍한 기억만이 연거푸 올라오면서, 동시에 몸이 과할 정도로 한기까지 올라오는 상황. 두 학생은 서로 등을 진 채 달달 떠는 입술로 겨우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교수님들…, 언제 오실까요?"

 "나야 모르지. 여기까지는 거리도 꽤 머니까."

 "하―. 조금은 가까운 곳에서 하자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캘리칼리가 그런 융터르의 듣기 드문 투덜거림에 껄껄 웃었다. 억지로 웃는 티가 역력한 것이 울적하고 떠올리는 것도 괴로운 기억들을 가라앉히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곧바로 미안하다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이는 그 말에, 이번에는 융터르가 오히려 바람섞인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마찬가지로 즐거운 기분을 억지로 끌어내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도 웃을 줄 아나?"

 "제가 무슨 무감정한 사람도 아니고, 이거 너무하십니다. 캘리칼리 님."

 "솔직히 조금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지―."

 "아무튼 이런 일도 겪으니 캘리칼리 님께서 제게 사과를 하는 날도 다 오고, 상황만 아니었다면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융터르가 패트로누스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정말로 그에게는 방금 상황이 유쾌하고 즐거웠던 것인지, 기존에 보여줬던 것보다는 확실히 뿌옇게 빛나는 반구 형태의 막이 선명한 모습을 보였다. 그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은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숨 쉬기가 편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덜 힘들어진 것을 크게 느꼈다. 고맙다며 중얼거리는 캘리칼리도 곧 주문을 외워 희뿌연한 빛줄기와 같은 그 형상을 디멘터 무리에게 갖다 대며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언제까지 우리 이러고 있어야 하나?"

 "교수님들이 오실 때까지만, 버텨봅시다."

 "좋―아. 내가 또 지구력 하나는 자신이 있거든!"

 

 빛무리가 사라지기 직전에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멀리서 보면 번쩍번쩍하는 것이 눈에 띌 법도 했지만 아직은 사람 대신 디멘터 대여섯이 융터르와 캘리칼리가 두른 패트로누스 방어막에 연신 어른거리다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안 좋은 소식이 올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듣자하니, 저 놈들한테 입맞춤을 당하면 살아있는 송장이 돼버린다던데?"

 "저도 들은 것 같습니다."

 "곧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제 몸뚱이를 가지고 성 뭉고병원에 계신 다른 분들의 장기 이식에 쓴다던가?"

 

 융터르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한 그 황당한 말에 캘리칼리는 이유를 모를 유쾌함이 몸에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는 예전과 같은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부분을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가 다시 주문을 외기 전 그 기분을, 하얗게 질려있는지 꽤 된 융터르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거 아나! 자네랑 친구 먹기로 한 거, 정말 좋은 선택인 거 같아!"

 "이거야 원.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참이었는데 말이지요. 이거 우연치고는 너무 극적인 것 아닙니까?"

 

 두 학생이 있는 힘을 전부 쥐어짜 내 지팡이를 휘두르며 지겹도록 외운 그 주문을 마지막으로 외쳤다. 엑스펙토 페트로눔―!!

 그리고.

 

 "이게 제대로 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감격한 마음을 애써 감추면서 완전히 하얗게 빛나는 동물의 형상을 보았다.

 "해냈군요. 우리." 손끝에 내려앉은 자신의 패트로누스가 주는 따스한 기운에 카르나르 융터르는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졌다.

 

 두 동물,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빚어낸 커다란 다이어 울프가 맹렬하게 달려 나가 디멘터들을 찢어발기고, 카르나르 융터르의 물총새는 두 사람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생긴 것답지 않게 접근하는 것들을 매섭게 쪼아댔다. 완전한 패트로누스가 디멘터를 없앤다는, 책에 적힌 내용 그대로. 

 불길한 마법생물의 영향이었는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짙은 회색빛의 하늘도, 그런 디멘터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밝은 낮이었음을 알려주듯 태양이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이쯤 되자, 두 학생은 이제는 일어날 기운도 하나 없어서 그대로 서있던 풀밭 위로 쓰러졌다. 각자가 불러낸 패트로누스가 맡은 바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난 뒤, 그렇게 자신들을 불러낸 학생들의 곁에 살며시 다가가 빛이 되어 사라지자,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시끄럽게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뒷북 한 번 요란하구만."

 "덕분에 이제 우린 제대로 된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게 되었으니…. 뭐, 고맙다고 칩시다."

 "아― 그럴까?"

 

 서로 킥킥대며 실없는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이제 농담할 기운도 채 남지 않아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렇게 호그와트를 뒤집어놨던 디멘터 이상 증식 현상을 확실히 끝낸 것이 고작 3학년인 두 학생이라는 소식은 순식간에, 그리고 다량의 의구심을 품은 채로 마법사 사회에 일파만파 퍼졌다. 논란을 잠재우기까지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카르나르 융터르는 수많은 '검증 요원' 앞에서 자신의 패트로누스를 선보여야 했고, 그 결과는 멀린 훈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이 내린 판단이었다.

 

 "그거 받고 나면 귀찮아질 거 아니야!"

 "맞습니다. 유명세는 무릇 성인이 되고 나서 얻어도 좋지만, 전 가늘고 길게 사는 걸 추구하는지라."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둘러싼 빨갛고 파란 기숙사 학생들이 저마다 아쉬워해도 이미 내린 결단을 도로 물릴 생각 조차 않는 캘리칼리와 융터르는 그 대신이라며 저마다 맘에 드는 간식을 꺼내 들었다. 마법 정부에서 훈장을 거부한 그들에게 그 대신이라며, 산더미같은 과자들을 준 것이다. 부러워하는 티를 감추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가져가라고 말한 끝에 겨우 병상이 조용해졌다.

 

 "캘리칼리 님, 그거 다 드실 수는 있습니까?"

 "내가 이 냄비 모양 케이크를 또 좋아하거든. 근데 자네는?" 융터르가 손에 쥔 작은 상자를 캘리칼리는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뭐 강낭콩 젤리도 이제는 귀지라던가 코딱지라던가…, 그런 괴악한 맛은 내놓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메랄드빛이 나는 젤리 하나를 입에 하나 톡 밀어 넣고 씹은 융터르는 표정이 잔뜩 구겨지더니 휴지 하나를 빼서 곧바로 뱉어내고 중얼거렸다. "이런…! 샐러리 맛은 왜 넣어둔거죠?"

 그 투덜거림에 캘리칼리가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