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공개

the Fox among US

김만성피로 2023. 2. 8. 11:20

*한국설화를 바탕으로 해보았읍니다. 구미호라고 해야할까, 매구라고 해야할까, 노호정이라고 해야할까...

*좌우당간 여우요괴 융입니다.

*레퍼런스로 '한국 요괴 도감'(고성배 저/위즈덤하우스/2019)을 참조했습니다.

Words : 20k


 'XX년 원조 순대집'이라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바람결에 팔락거렸다. 그 소리 사이에는 갓 나온 뜨끈한 순대 냄새도 은근히 배어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었다.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면 혹은 야채나 선지 따위로 속을 꽉꽉 채운 순대를 주인은 그 뜨거운 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슥슥 썰어 보기 좋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손님은 조금 흥미롭다는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간이나 허파라든가… 귀도 좀 넣어드릴까?"

 "음. 으로 부탁합니다."

 

 손님의 인상과 어울리는 깊은 목소리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작게 혼자만 들을 정도로 중얼대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생긴건 암만 봐도 외국인인데라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목구비가 짙은 인상의, 외국인처럼 보이는 그가 능숙하게 지갑에서 만원권을 하나 꺼내고, 봉투를 받았다. 셀프로 챙겨가라는 소금과 나무젓가락까지 야물딱지게 챙겨서.

 주인 아주머니는, 굳이 신경쓰인다고 하면 지극히 외국인 같은 그의 생김새에서 시선을 떼기가 참 힘들었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손님 중 한 명이건만.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리를 메우는 인파에 그 모습도 점차 가려졌고 그 덕분에 아주머니도 다시 자신의 본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독특한 인상의 남성은 손에 쥔 비닐봉지가 파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산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인적이 드물다 못해 아예 정돈조차 안된, 길이라고도 할 수 없어 이리저리 튀어나온 나뭇가지 따위를 요령좋게 피해서 도착한 그 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모양의 뭔가가 있다. 등산복 차림의 희끄무레한 그 연기 비슷한 것은 등골이 오싹한 귀곡성을 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 순대입니다. 혹시 몰라 막걸리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지요."

 

 등산객의 형태를 띄고 있는 유령은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그 비닐 속 냄새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정말 고대했다는 듯 자신을 위한 조촐한 상이 마련되기 무섭게 제일 큰 한 점을 냉큼 집어 입 안에 밀어넣고, 종이컵에 담긴 달큰한 막걸리도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숨에 꼴꼴소리가 날 것처럼 순식간에 비운다. 그 내용물이 실제로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유령은 계속 행복하다는 얼굴로 한참을 먹고 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혹시 간은… 저도 먹어도 됩니까?"

 "…."

 

 유령은 순대를 가지고 와준 남자를 바라보았다. 간을 바라보는 그 얼굴, 정확히 말하면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그 정중한 말투와는 하나도 어울리지도 않는 모습에 유령이 소리도 없이 낄낄거리며 웃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남자가 밝은 표정이 되어 나무젓가락을 집어들고는 다 식어버린 간을 냉큼 집어 들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뒤, 낙엽하나 밟는 소리 없이 누군가가 그 둘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 손목을 검지로 가리키는 창백한 사람이.

 

 "그럼, 잘 부탁합니다."

 

 저승의 현대화라면서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검은 양복의 사내가, 드디어 지박령이었던 등산객의 유령을 데리고 가는 모습을 카르나르 융터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승사자는 그런, 수백년은 묵은 여우요괴가 유령을 향해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모습이 흐릿해지다 사라져버렸다. 꿈결인가 생각도 하지만 분명 다 식어빠진 순대와 미적지근해진 막걸리가 있는 이 자리는 분명 현실이다. 

 융터르는 유령이 배불리 먹고 남은 순대를 정리하려다 뭔가의 시선을 느끼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덩치가 산만한 곰이다. 그렇찮아도 최근 반달 가슴곰 방사 관련으로 뉴스가 떠들썩거렸는데, 그 두툼한 목 주위로 실낱같이 목걸이가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그 결과물이 분명해보였다. 그 곰이 외양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게 딱정벌레처럼 검게 빛나는 눈으로 요괴의 손에 들린 순대를 바라보았다.

 

 "먹고 싶은거니?"

 

 곰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떨어지는 모습에, 여우요괴는 바람소리가 섞인 웃음을 터트리며 주섬주섬 도로 정리했던 것을 끌렀다. 조심해서 먹으라는 말과 함께 건네주자 그 얄팍한 스티로폼 접시에 고개를 처박으며 곰이 허겁지겁 먹는 사이, 융터르는 내심 간 만큼은 사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봉투 안에 남은 쓰레기들만 정리하고 산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올라갈 때처럼 어떤 불편함도 없이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별도의 직원도 하나 없어 혼자서 모든 것을 꾸려나가야 하는 작은 상담실은 오늘도 사람이 붐볐다. 치안이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만큼, 방문하는 사람들도 비싼 옷을 입고 점잖은 채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창 멀었다. 코가 시뻘겋고 삐뚜름해질 정도로 마셔대서 술냄새가 숨 쉴적마다 흘러나오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자신을 몰고가는 세상에 악이 받쳐 나이와 걸맞지 않게 독기가 눈에 가득 찬 학생들이, 믿어온 사랑에 한없이 배신 당해 절규하는 부모님들이.

 

 "그래서, 선생 밥은 좀 자시고 하는가?"

 "아, 제가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서. 괜찮습니다."

 

 머쓱하게 웃으면서 설탕이 조금 들어간 원두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에, 마음 속의 묵은 상처를 매우 늦게 꺼낸 후유증으로 한껏 오열했던 한 할아버지가 겨우 진정한 끝에 말했다. 얼떨결에 시계를 바라봤던 노인은 이미 점심을 먹자고 하기에도 진작에 늦은 그 시간에 민망해하면서 괜찮다고 하는 상담실 주인,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입을 열었다.

 

 "늙으면 죽어야 혀는디…. 선생 밥도 못 먹게 하고 이거 미안하구먼."

 "어르신.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은 부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부드럽게 들어주고 어떤 노여움도 없이 웃어줄 뿐이었던 상담사가, 돌연 그 말을 하자 안색을 싹 굳히면서 딱딱하게 하는 말에 할아버지는 잠시 당황하다가 곧 늙은이가 괜히 주책을 떨었다며 벽에 똥칠하기 전까지는 오래오래 살겠다고 말을 상담사에게 하였고, 그 말을 듣고나서야 검은빛 머리 한 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뒤로 넘긴 상담사의 얼굴에 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감겼다.

 그 이후로도 상담사의 상담은 계속 이어졌고, 들어올 때와 나올 때의 차이가 극명하게 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저마다 마음 속에 있는 짐을 조금은 덜어 가벼워진 얼굴로 상담실을 나가고는 하였다. 타이밍 나쁘게 마지막 차례의 순서를 받은 그녀, 내담자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숱한 심리상담을 받아도 소용이 없었던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약간의 기대심리도 더해지면서.

 

 "앉으시죠."

 

 상담사가 정중하게 권하는 그 짙고 낮은 목소리에 내담자는 내심 움찔했지만 순순히 그 손짓에 따라 책상 맞은편의 제법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다른 상담실과 다르게, 책상 위에 유리구슬이 올라와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담자의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카르나르 융터르는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어디서 이걸 구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손에 올려두면 따뜻하다고 해서 어쩌다보니 두고 있습니다. 한 번 만져 보시겠습니까?"

 "어―, 예? 예, 예에…."

 

 상담사가 자신의 손바닥 위로 올려준 그 구슬은 과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반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게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어디선가 받아본 적이 있는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그 정체까지는 떠오르지 못한 채로 내담자는 대기 중에 작성했던 자신의 상태 따위를 적은 종이를 천천히 읽는데 몰두한 상담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급적 솔직하게 답변해달라기에 어지간한 항목은 꼼꼼하게 적었지만, 자신이 봐도 중구난방인 그 내용을 과연 이 사람은 이해해줄까. 지금까지 드나들었던 모든 심리 상담 센터에서는 순간순간만 좋아지고 그 이후에는 도로 제자리 걸음을 했는데. 내담자는 여전히 손에서 영 떨어트리고 싶지 않은 온기에 몸을 맡기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였다. 

 

 "아…. 일단 제가 보았을 때는 워낙 큰 충격을 받은 상실감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만."

 "그건 다른데서도 한 번은 꼭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그 상실감의 원인이 도대체 모르겠어요."

 "흠―." 상담사는 제 목소리를 낮게 깔아, 그러니까 주의를 기울여야 겨우 들릴 그 신음성을 내며 고민하고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혹시 모르니, 최면치료 쪽으로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내담자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렇찮아도 다른 곳에서도 시도했던 최면요법이지만, 선천적이라 해야할 지 도통 최면이 걸리지 않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게다가 우울증 외에도 지독한 불면증 때문에 최면이 애당초 걸리지 않음을 생각하면. 분명 자신처럼 각종 상담센터를 전전한 사람이라면 관련 정보가 이리저리 퍼져있을 것이고, 거기에는 최면에 걸리지 않음 따위의 각주 비슷한 뭔가가 새겨져있을 텐데도 이 상담사가 그걸 선뜻 언급한 것이다.

 내담자는 이번에도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누워주시길 바랍니다. …구슬은 뭐,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신다면 그대로 껴안고 계셔도 무방합니다."

 

 상담사가 손짓으로 안내한 카우치 소파 위로 눕자, 자연스럽게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이 배와 갈비뼈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 구슬이 주는 온기는 손 뿐만이 아니라 흔히 명치라고 불리는 그 부분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그 포근함에 문득 내담자는 어디서 구했는지만 알 수 있다면, 하나는 구비해두고 싶다는 마음도 들 무렵에 상담사가 체인을 단 작은 회중시계를 그의 눈 앞에 '촤르륵' 소리가 나도록 떨어트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주의사항 겸 최면 요법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을, 상담사는 언제 틀었는지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춰 짙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어가면서 아주 천천히 그 회중시계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 규칙적인 똑딱거리는 소리, 상담사의 부드럽고 깊이 가라앉는 목소리, 눈을 뗄 수 없는 회중시계의 느긋한 흔들거림과 명치에 아무리 닿아도 뜨겁지 않을 정도로만 따스한 그 온기. 내담자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후."

 

 상담사는 흐르는 땀을 그제서야 닦아내며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목소리에 은은히 잠이 오도록 을 싣는 것도 생각보다 주의가 필요하다. 분명 이 내담자에 대해 전달받기로는 최면이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그 경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우요괴의 어둡고 푸른 눈동자에 귀화가 깃들었다. 그 눈동자가 밝게 일렁이며,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를 하였다.

 

 "무슨 이유에서 그러시는지 제게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텐데요."

 

 내담자의 머리를 품에 꽉 껴안은 중년의 여성 형상의 귀신은 눈 대신 뻥 뚫린 구멍에 피가 주르륵 흐르는 채로 원망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요괴가 작성된 용지의 내용을 하나 떠올렸다. 교통사고. 이 젊은 여성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원귀가 되어 끊임없이 제 귓가에 통곡하고 있음을 모를 것이다.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고. 

 원귀는 딸의 머리를 부여잡고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요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머님, 따님이 어머님을 기억하지 못함을 원망하시는 겁니까?"

 

 중년 여성이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였다. 그녀가 들어올 적부터 계속 머리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봐달라고 통곡하던 여인의 눈에 피눈물이 더 거세지고 있었다. 여성의 손짓발짓을 동원한 끝에, 이 내담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포함해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낸 융터르가 여성의 품에 놓인 구슬을 집어 원귀에게 내밀었다.

 

 "이 구슬에는 지금 따님의 무분별한 꿈이 들어있습니다. 따님이 어머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제가 설명드리지요. 대신, 더는 이 분을 괴롭히지 마시지요. 가슴 아프지 않습니까."

 

 귀신이 되어버린 어머니가 고개를 다시 연거푸 끄덕이며 여우요괴가 내민 구슬에 손을 갖다대었고, 곧 따스하고 밝은 빛이 상담실을 가득 채웠다고 생각할 때는 전혀 엉뚱한 곳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며 젊은 여성이 울부짖고 괴로워하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치는 곳.

 

 "여, 여긴?" 악귀가 되어가던 원념에서 약간은 신경질적인 외모의 중년여성의 외모로 돌아온 어머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따님의 마음 속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의식 속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그런데, 왜 이렇게…." 

 "따님이 겨우 잠들때면 겪는 꿈 속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늘 악몽을 꾸시더군요. 어머님 덕분에."

 

 제 머리털만큼이나 짙은 검은색의 여우 꼬리들이 좌우로 흔들리는 요괴는 탐탁지 않아하는 얼굴로, 자신의 탓임을 미처 몰랐는지 당황하던 그녀의 얼굴에 제법 차갑게 쏘아붙였다. 어머니의 유령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하려 하자 요괴가 그녀를 도망치지 못하게, 강하게 붙잡으며 명령하듯 말했다.

 

 "주의깊게 들어보시지요. 따님에게 무턱대고 자신을 기억해달라며 억지를 부리던 당신이 만든 겁니다."

 "이, 이거는…."

 

 메아리의 방향이 점차 그녀의 귀로 선명하게 와닿기 시작했다. 그걸 듣는 원념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었다. 교통사고 당시의 그때를 잊지 못하고, 꿈에서 몇 번이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었다. 그 메아리들. 

 

 안돼―!! 여기 사람 살려요―! 우리 엄마 좀 누가 도와주세요!! 안돼― 엄마 지금은 안돼요,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줘요!!

 

 결국 안된다며 몇 번이고 반복되는 절규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다리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여전히 냉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요괴가 한숨을 쉬며 그녀를 부축하면서 동시에 말을 했다.

 

 "보시다시피, 따님께서는 지금도 괴로워하십니다. 자신도 크게 상처입은데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너무 큰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뇌가 그 기억의 문을 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머님께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따님의 그 문이 열릴 때까지만 기다려주심이 옳을 성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 따님이 어머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여유, 즉 일정한 정도의 휴식을 주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 내가…."

 "차사들에게는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먼저 저 너머에서 기다리시면서 따님이 어머님을 떠올릴 때까지만 인내해주시면 됩니다."

 

 한없이 어두운 이 공간 속에서 원념이었던 어머니는, 딸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며 꺼이꺼이 울어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공간에서 상담실로. 상담사가 다시 내담자의 품에 구슬을 얹었고, 곧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면서 흐린 목소리로 "엄마…."라며 작게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들으셨지요? 따님은 본인도 원치 않은 상황에서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조만간, 어쩌면 곧…."

 

 심상세계에서 빠져나온 원념은 이제 뻥 뚫린 눈도, 피눈물도 없는 평온한 얼굴이 되어 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한번 쓸어주고는 인사를 꾸벅했다. 상담사의 등 뒤로 실낱같이 한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저승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포승줄을 꺼내면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은 자가 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저승의 법도에서도 엄격하게 다루는 사항이었기에.

 

 "이 분에 대한 처분은 지은 죄가 있겠으나 그 이유가 지극히 이해할 만합니다. 엄벌은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것은 추후에 서면으로 전달할 터이니."

 

 차사가 요괴의 말에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도로 포승줄을 집어넣었다. 순순히 따라가는 그녀는 다시 딸을 한 번 바라보고, 또 여우 요괴를 바라보면서 허리를 크게 숙여 인사하고 차사의 뒤를 쫓았다. 약간 서늘해졌던 상담실은 잠시 시간이 지나자 훈훈한 온기가 도로 돌아왔고, 카우치 소파에 누워있던 그녀도 눈을 천천히 떴다. 다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상담사가 질문을 건넸다.

 

 "이제 좀 어떠십니까?"

 "음…. 일단은 푹 잔 것 같아요. 제가 혹시나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겠죠?"

 "걱정 마세요. 하지 않았습니다."상담사가 단호하리만치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제가 꿈을 꿨는데요, 무지 슬픈 표정을 짓던 사람이 저를 막 품에 껴안고는 미안하다며 마구 우시더라고요."

 "아하. 그 꿈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어―. 뭐라고 했더라? 저도 미안하다고 막 울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러고나니까 뭔가 속이 후련해져서."

 

 실제로도 눈물이 맺혀있는 그녀가 손등으로 가볍게 꾹꾹 눌러 그 물기를 닦아냈다. 상담사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언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아마 기억하시지 못하시겠지만, 지금까지의 불면증과 우울증의 원인을 선생님의 무의식 속에서 이제 막 찾아냈습니다. 그게 이제는 서서히 꿈의 형태로 발현이 될겁니다. 그때는 그 꿈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있는 사실만을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아니, 최면요법에 그런 것도 있었나요?"

 "어디까지나 이번에 잘 되어서 그런거니까요."

 

 그 한없이 낮은 목소리에 내담자는 어쩐지 신뢰감을 느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딘가 불안해 하는 그녀에게 상담사가 한번에 끝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겠다고 하면 도와주겠다며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마지막 내담자는 후련해진 얼굴과 함께 상담실을 나섰다. 물론 그 구슬은 제자리에 돌려놓은 채로.


 활짝 연 창문의 석양빛을 받으며 상담사 카르나르 융터르가 상담을 마치고 피곤한 몸에 기지개를 켰다. 효과음을 굳이 넣자면 '뿅'이라고 해도 어울릴 여우귀와 풍성한 여우꼬리 다발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오늘은 마침 힘을 끌어다 쓴 탓에, 둔갑도술이 까딱하면 금방이라도 풀릴 판이어서 마지막에는 그도 속으로 식은 땀을 좀 흘리고 있었다. 

 

 "힘듬?"

 "아, 단답벌레 님. 문으로 오셔도 된다고 벌써 수 차례는 말씀 드렸는데요."

 "내 맘."

 

 똑같이 검은색 여우귀에 풍성한 여우꼬리. 이 근방에서 신령이 되기 위해 똑같이 수행하고 있는 작달막한 여우 요괴가 창문을 순식간에 타고 넘어와 카우치 소파에 몸을 던지고는 재빠르게 몸을 말았다. 도시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카르나르 융터르와 달리, 야생 혹은 농가를 도우며 수행하는 단답벌레는 카우치 소파의 안락함을 한껏 느끼다 "아"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고는 그에게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소 간. 싱싱한 거."

 

 이상할 정도로 차가워서 자세히 보니, 외부에 또 오염되지 말라는 듯 투명한 비닐봉투에 담긴 소 간의 주위에 차가운 보냉팩이 꼼꼼하게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는 웬만해서 먹지 않고 버리는 부위지만 여우요괴인 자신과 단답벌레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먹을 것이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순대를 사면서 돼지 간을 실컷 먹었건만. 군침이 저절로 흐르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 자신을 위해 이 귀한 걸 가져다 준 단답벌레에게도 반절을 잘라 내주었다.

 자기 몫의 접시를 내려보는 융터르는 그 들뜬 목소리에 걸맞게 꼬리들이 살랑살랑 가볍게 움직였다.

 

 "이 귀한 건 또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어쩌다?"

 

 단답벌레 답게 짤막한 이야기다. 대신 그는 그 자신의 여우구슬을 허공에 띄워 자신의 기억을 보여주었다. 눈이 붉게 번들거리는 멧돼지 떼가 산 아래의 한우농가를 덮치는 일이 발생해 소들이 미쳐 날뛰는 멧돼지들에게 죽을 뻔한 일을 단답벌레가 도술로 막아준 내용을. 결국 한 마리는 예상치 못하게 도축을 해버리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 주인이 감사하다며 "구미호이신 것 같은데 간 좋아하시지 않으십니까?"라는 말과 함께 꼼꼼히 포장해 넘겨준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얻은 별미. 하지만 영상을 본 융터르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기에. 멧돼지가 어째서 작물을 키우는 밭도 아니고, 소떼를 덮칠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일제히 농가로 쳐들어갈 때 보여준 그 붉은 눈빛은.

 

 "조종, 당했음."

 

 차갑고 사각거리는 간의 식감을 즐기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단답벌레는 그때를 생각하면 역시 조종자가 있다는 쪽에 의견이 기울었다. 마찬가지로 간만에 즐기는 별식을 포기는 할 수 없었던 카르나르 융터르도 당장은 먹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단답벌레가 접한 이 현상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막상 좋아하는 것을 앞에 둔 것치고 두 요괴는 그리 표정이 밝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소화가 되는 것도 아니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더부룩한 느낌을 도통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도 별다른 답이 나오지는 않았고, 단답벌레는 자신이 지키기로 한 구역에서 더는 벗어나면 안된다며 그다운 인사("나, 감.")를 하고는 왔을 때처럼 도로 창문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융터르는 문득 탁상 위의 스케쥴을 확인해보았다. 이때 휴식을 가지기로 월 초에 결정한 자신이 문득 대견스러워졌다. 내일부터 거의 1주일이 휴식이라 적혀있는 것을 본 그는 다시 여우 귀와 꼬리들을 숨기고 검은 코트를 두른 채 복잡한 생각을 달래고자 바깥으로 나왔다.

 

 "이거, 썩 그립지는 않은 분위기인데 말이지요."

 

 낮은 목소리로 아주 작게 혼잣말을 한 그대로의 상황이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상담실이 있는 곳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버린 융터르는 예민한 감각이 주는 신호에 자신의 긴장을 감추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요괴다 싶으면 냅다 사냥부터 하던 사냥꾼들의 시선과 닮은 바가 아주 컸다. 과할 정도의 탐욕이 어른거리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제 아예 서로를 견제하면서 그를 독차지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못했다.

 

 "음, 다행히도 조종당하신건 아니군요. 그럼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요."

 

 카르나르 융터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을 쫓아오는지 감각적으로 확인하고는 그들이 지나친 긴장감에 몸이 굳었을 때 재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 박자는 늦어도 심하게 늦은 추격꾼들이 오만가지 악을 써대면서 저 놈 잡아라라는 소리를 제각기 낼 때는 이미 요술을 쓸 것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인파 사이로 몸을 숨긴 다음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 했던가. 수백년을 살아와도 저 질긴 근성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인내심이라 해야할지, 치졸한 끈기에 융터르가 혀를 내둘렀다. 추격이 시작된 지 이제 4시간이 넘어가는 지금 이 시점은, 이미 버스도 진작에 막차를 보내고 드문드문 보이던 택시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심야시간인데도 추격자들이 때때로는 한데 뭉치기도 하고, 또는 흩어지면서 그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쪽엔 있어?"

 "아니, 안 보이는데."

 "젠장, 마지막으로 여기서 보였다고 하니까 더 찾아보자고."

 

 몸을 요술로 감춘 채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 가로등 위에서 내려다보니, 추격자들의 덩치가 제법 건장하다. 그들의 한 쪽 귀에 저마다 이어폰이 매달려있고, 처음에는 개개인이 잡으러 오는 줄 알았건만 체계가 확립되어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종종 '회장님'이니 '사장님'이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거의 백 여년만에 다시 사냥감 신세가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하. 옛적부터 높으신 분들은 내 구슬에 관심이 좀 가지신다더니만, 현대가 되어도 달라지진 않는군요?'

 

 만약 단답벌레도 도시에서 거주하기를 선택했다면, 자신과 같은 귀찮은 일을 겪었을 것이고 의외로 강경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그의 성격상 힘을 잘못 쓰다간 수백년치 적공이 허무하게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 차라리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런데 역시 몸을 쓰는 것이 영 둔했던 그는 이번에도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가로등 위로 올라간 것은 좋은데, 착지가 늘 어설펐던 그가 잘못 발을 헛디뎌 자빠지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다 큰 소리를 내고 만 것이다.

 당연히 현대사회의 검은 옷을 입은 머슴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이런. 그럼 이만… 실례!"

 "잡아―!!"


 예전 발을 헛디뎌 운 나쁘게도 지박령이 된 등산객을 찾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낙엽을 거칠게 밟는 융터르는 슬슬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 단답벌레가 자신의 이런 처지를 들었다면 그 매정하게 딱딱 떨어지는 단답으로 체력 부족이라고 말했겠지. 아예 인적 드문 산 속으로 들어가버리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요술을 무력화하는 뭔가를 던져대고, 다른 것으로 변신을 하든 투명하게 변하든 잠깐만 두리번거릴 뿐, 족족 찾아내버리는 이 가혹한 상황.

 그렇다고 저들을 공격하는 것도 도저히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도망을 치고 또 치는 것이다. 숨이 가쁘도록. 도저히 여기가 어딘가 위치도 모르고, 하도 뛰어대서 현기증까지 느끼던 그는 불현듯 어떤 냄새를 맡았다. 생활의 냄새다. 따뜻한 물을 끓이는 냄새. 좁아진 시야가 그 냄새를 맡고는 곧바로 허름한 폐가를 포착했다. 정확히는 그 폐가 안에 들어온 불.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빨리 뛸 수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지구력이 아닌 속도. 만약 단답벌레가 자신의 선택을 본다면 역시 체력 단련을 하라는 핀잔을 놓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체면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카르나르 융터르의 제법 덩치가 큰 몸은 검은색 일색인 옷차림과 그 머리색처럼 새까만 여우 한 마리가 되어 폐가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어이, 호두야. 라면 물 다 끓는다."

 "저, 바쁩니다. 선생님이, 넣으십시오. 라면."

 

 XX 대학교의 민속학 전공 교수인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는 대학에서도 알아주는 괴짜다. 갑작스럽게 그들은 전통요괴를 주제로 하는 연구에 꽂혀 강의가 없는 날이면 꼭 폐가 따위에 들이 닥쳐 연구라는 이름의 캠핑을 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이 날도 두 사람은 이 근방에서 보인다는 정체모를 요괴를 찾을 목적으로 폐가를 베이스 캠프 삼아 숙박을 하고는 했다. 그렇게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냄비 속 끓는 물에 라면을 넣어주지도 않는 노스페라투 호드의 야박함에 투덜거릴 때.

 폐가의 문이 덜컥 열렸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하…. 저, 좀 잠시만…, 숨겨주시면―"

 

 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기고 코트부터 신발까지 그 머리와 똑같은 검은색 일색의 중년이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도움을 청했다. 여우 귀와 9개의 꼬리다발이 들러붙어있는 중년이. 두 교수는 서로를 마주보다가 불에 데인 것처럼 중년 남성의 얼굴을 한 구미호를 방 한 구석에 잔뜩 쌓아둔 짐더미 사이에 거의 쑤셔박듯 집어 넣고는 다시 폐가 문을 황급히 닫았다.

 이 황당한 상황에 캘리칼리와 호드가 서로를 마주보며 눈이 동그랗게 커져 저마다 입을 벙긋거리다가 자연스러운 척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동시에 내리고 슬슬 졸아들기 시작한 라면을 부리나케 먹기 시작했다. 속담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을 철썩같이 신봉하고 있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세상이 오늘 박살났다. 자신들보다는 덩치가 작긴 해도 어지간한 사람들을 너끈히 견딜 어깨들이, 아예 폐가 문이 뜯어져라 와락 열었다. 캘리칼리가 언짢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런, 식사 중인데." 

 "혹시 사람 하나 못 봤나?" 그 인사도 무시한 채 어깨가 질문하자, 그는 아예 젓가락으로 들었던 면을 한껏 빨아들였다.

 "지금 먹는 중이라서 못 봤는데."

 "그렇습니다. 여긴, 우리, 단 둘." 호드는 처음부터 라면에만 시선을 꽂은 채 캘리칼리의 말을 뒷받침 해주었다.

 

 여봐란 듯 냄새를 풍기며 휴대용 가스렌지 위 냄비 속 라면을 향해 연신 젓가락질을 하는 두 교수를, 어깨들은 결단코 우호적인 얼굴로 바라보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의심으로 가득 찬. 그렇찮아도 두 사람만으로도 꽉 찬, 이 좁은 방안을 그들은 반드시 조사해보겠다는 듯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잘 익은 김치도 야무지게 얹어 야식을 만끽하고 있다가 점차 입구를 포위하듯 몰려든 그들에게 눈길만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어이, 호두야. 다 먹었냐?"

 "음. 조금 더, 끓일 걸, 그랬습니다."

 "그럼―. 우리 소화나 되게 몸이나 한번 풀고 2차전이나 해보실까?"

 "오, 좋습니다."

 

 지금까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서로를 마주보는 채로 쪼그려 앉아있었던 탓에, 양복쟁이들은 그들이 몸을 슬슬 일으키는 것을 보고 표정관리를 도통 할 수 없었다. 팔자 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위로 크고, 덥수룩한 머리의 노스페라투 호드는 옆으로 넓다. 그렇다고 반대로 표현하는 것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두 교수는 자신들의 체격에 당황한 채 입을 떡 벌린 채 멍청히 서 있는 그들에게… 저마다 드롭킥부터 일단 날리고 보았다.

 한편, 숨 죽인 채로 두 중년의 짐더미에 몸을 감춘 카르나르 융터르도 여느 인간보다 훨씬 날아다니는 이 인간들이 도대체 사람이 맞나 싶어 눈을 계속 깜박였다. 몸을 날려 방 입구에 가장 가까운 떡대들을 쓰러트리고 잽싸게 일어난 두 사람은 본업이 싸움꾼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날아다녔다. 지금까지 저들에게서 도망친 자신은 도대체 뭔가, 그런 자괴감이 어린 눈으로 둘의 싸움을 바라본 끝에.

 

 "어이, 그러니까 없다고 하잖아. ?"

 "덕분에, 소화, 다 되었습니다. 어쩔겁니까?"

 "좋아. 그럼 당신들은 왜 그 사람을 쫓는건지나 한 번 물어보자고."

 

 두 중년이 그나마 가장 덜 팬, 어깨들을 이끄는 임시 대장 격의 남자에게 까딱하면 다시 줘패겠다는 기세로 험악한 인상을 들이 밀며 물었다. 갈비뼈부터 해서 골절과 탈구, 경미한 뇌진탕의 증세를 가진 그 자가 가장 덜 맞았다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어쨌든 그는 초점이 맞지 않은 눈으로 다급하게 설명했다.

 

 "시, 실은 그 남자는 사람, 사람이 아니고 구미호인가― 대충 그런 겁니다. 그, 저, 저―희 어르신께서, 그 구미호가 구,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어찌, 어찌저찌 하면 영생을 어, 어,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뭐?!"

 "구미호의 구슬, 그런 효과, 없습니다. 거짓말."

 "예?!"

 

 두 중년이 자신들의 전공에 대놓고 태클을 거는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본의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지식을 이 얼빠진 자에게 피력하였다.

 

 "구미호의 구슬은 말일세, 요즘 말로 하자면 단순한 에너지 덩어리라고. 사람이 되려고 거기에 꼬박꼬박 자기 힘을 저축하는 저금통. 알겠나?"

 "그 구슬, 사람이 쓴다고 해서, 수명 연장, 안 됩니다. 꼬우면, 문의하십시오, XX대. 우리, 민속학 교수, 입니다."

 "…말도 안돼, 분명 이 산에 산다는 법사가… 그랬는데."

 

 성대한 규모의 삽질을 했다는 사실에 허망해진 그는 아예 몸에서 진이 다 빠지며, 무슨 교수들이 인간 흉기냐는 중얼거림과 함께 쓰러졌다. 머쓱해진 두 사람은 아직도 짐더미 속에서 덜덜 떠는 여우 요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짙은 푸른빛의 눈이 인상적인 여우 요괴가 이제 다 끝났다는 캘리칼리의 말에 슬그머니 나왔다. 여전히 귀와 꼬리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아, 그,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그나저나 살다살다 내가 구미호는 또 처음 보는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놀란 심장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는지, 그는 계속 가슴께에 손을 얹으며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다. 그러다 캘리칼리가 말한 단어에 정신이 화들짝 든 여우요괴는 그제서야 머리에는 여우귀가, 등 뒤로는 여우꼬리들을 아직도 감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 이런."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고. 라면이나 다시 끓여야겠어."

 "오. 캘리칼리 님, 라면, 못 끓이십니다. 요리치."

 "그러면 자네가 끓이던가."

 

 두 터무니없이 덩치 큰 교수들 사이에서 자기 체격이 작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여우요괴는, 자신을 어깨동무하면서도 발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체념을 하였다. 나쁜 사람들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지금은 신령이 되려고 수행 중입니다."

 "어…, 음…. 그러니까… 내 간은 맛이 없네. 알겠지? 먹으려거든 이 친구 것을 먹게."

 "아니. 저도 간, 맛 없습니다. 노맛."

 

 단순한 여우요괴가 아니라 구미호라는 사실에 두 교수가 라면을 먹다 말고 서로를 팔아치우는 이 정겨운 광경. 졸지에 식인하는 괴물 취급 당한 카르나르 융터르가 머쓱해지기도 하고 당황해서, 여전히 기겁하고 있는 두 인간에게 단호한 어조로 안심시켰다. 

 

 "신령이 되려면 사람 간을 안 먹고도 수 백년은 수행을 해야하는데, 제가 미쳤다고 그러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근데, 왜, 쫓겼습니까? 공격, 못 합니까?"

 

 노스페라투 호드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캘리칼리는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적어도 수 백년을 산 요괴가 공격을 하나도 못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 말이 안 되는 것을 하며 지내온 것이 카르나르 융터르였다. 민망함에 벌개진 볼을 살짝 긁으며 구미호는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제가 사람들하고 싸우는 걸 좀 많이 싫어해서…."

 "…오." 호드는 아예 넋을 잃고 젓가락을 뚝 떨어트렸다.

 "수행은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가?"

 "요즘은 심리상담과, 차사님들을 도와서 가신 분들이 가야 할 곳으로 안내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융터르는 자신의 옛 이야기를 간단하게 털어놓았다. 오래 전에는 민가를 마구 들쑤시고 다니는 호랑이들과 산을 타면 종종 사람들을 덮치려던 굶주린 곰들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낸다던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각종 요괴들을 멀리 내쫓는다던가, 마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효자가 부모님을 치료할 약을 구하는데 힘을 보태준다던가 그런 이야기들을.

 어느새 짐더미에서 자료들을 꺼내 팔락거리던 두 교수가 융터르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구미호 설화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다만 전혀 싸우기 싫어한다던 융터르의 말과 달리, 설화 속의 구미호는 종종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싸웠다더라는 내용도 있었다.

 

 "진짜, 싸울 줄, 모릅니까?"

 "아, 그건 제 친구가 한 일입니다. 그 친구는 저랑 성향이 정반대거든요."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니. 혹시 나중에 그 친구도 소개 좀 부탁하네." 

 

 융터르는 다시 뺨 위로 손톱을 세워 살짝 긁고는 가능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던 도중, 어째서 두 사람이 여기에 있는지 궁금해 하자, 두 교수는 그저 이 지방에 전해져 오는 요괴를 확인해보려고 왔다며 말을 하였다. 

 어쩐지 불길한 감이 든 구미호는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 갑작스러운 연구 방해 행위에 당연히 언짢아했던 두 교수가 상당히 험악한 얼굴로 그 이유를 물어보자, 마찬가지로 심각할 정도의 진심이었던 카르나르 융터르는 이때다 싶어 자신이 생각한 이유를 말했다.

 

 "제가 저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둔갑도 부리고, 몸을 숨기기도 했는데 이 산에 들어와서는 그런 요술들이 하나도 먹히지가 않았습니다. 금방 찾아내기를 반복하더군요."

 "그거야 자네 요력이 다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닌가?"

 "아뇨 그건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고는 나침반처럼 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제 위치를 알아냈으니까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캘리칼리가 곧바로 방을 빠져나와 남자들의 품 안을 뒤져보았다. 연거푸 허탕을 치다 결국 한 사람의 품에서 나온 것은 하얀색의 제법 길고 낭창낭창하게 잘 휘어지는 그런 종류의 질긴 갈대 같은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것이 도대체 뭔가하며 방을 빠져나온 호드와 같이 캘리칼리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직 자신을 쫓아온 추격자들에게 살짝 기겁을 하던 융터르가 곧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이건…. 일촌법사의 수염이군요."

 "그―, 만년 묵은 쥐?"

 "그렇습니다. 아―, 이제서야 이 사단이 왜 일어났는지 알겠군요. 골치 아픕니다."

 

 그리 말하는 카르나르 융터르는 지금과 같은 옷을 입을까 말까한 그런 애매한 시기를 떠올렸다. 그때도 사람들 사이로 숨어서 사는 요괴들이 아직까지도 있는 와중에, 일촌법사는 도리어 사람들 눈에 띄었다. 김소년에 의해 그 주인인 대도둑이 쓰러지고, 같이 죽을 뻔 했었던 일촌법사는 이제 자신이 주인이 되겠다면서 그 동안 쌓아온 갖가지 요술들로 순식간에 재물을 갈퀴로 쓸어담듯 모았었다. 물론 누군가가 금은보화를 독점하다시피 하면 반드시 재화가 부족해지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가난할수록 그 간극이 더 크게 와닿고는 했다. 단 한 끼를 먹기 위해 며칠을 굶어야 하는 역설적인 시대. 일촌법사가 거느리는 무수한 부하들이 그 곳간을 밤낮으로 지키던 것을 친구인 단답벌레가 혼자서 전부 무찌르고 사람들에게 곡식과 재물들을 나눠주었었다.

 

 "그 친구가 이후에 말해주기로는, 자신이 수행하는 산에 자꾸 사람들이 몰려오는게 집중이 되질 않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음, 그게 자네 친구가 한 일이었다니."

 "그 친구 분, 인터뷰 좀, 부탁, 드립니다."

 

 한번 이야기는 해보겠다며 슬쩍 넘어간 융터르는 어째서 그 일촌법사가 자신의 구슬을 탐내는지 핵심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요력을 더 얻기 위함이었다. 구미호에게 있어 생명줄과도 같은 구슬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남자들에게 했던 설명했던 대로 단순한 에너지체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주술을 부리는 매개체 정도의 역할을 하겠지만 다른 요괴들에게는 크게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마도 단답벌레가 사는 산의 경우에는 멧돼지들을 꾀어내 그를 위기에 빠트리게 할 목적이었겠지만, 단답벌레가 그렇다고 자기 수행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기에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요력은 그보다 적지만 어쨌든 수행기간은 똑같이 긴 자신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던 캘리칼리가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질문을 했다.

 

 "근데 그 놈은 어떻게 퇴치해야 하나?"

 "그 부분이라면 제게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저 혼자서도 괜찮을 법하지만, 같이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쫓겨 헐레벌떡 여기까지 뛰어들어온 여우요괴가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두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잠시 그 수염 좀 주시겠습니까?"

 "이걸로 뭘 하려고?"

 "이걸 할 겁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미심쩍은 얼굴로 수염을 넘겨주었다. 구미호의 짙은 푸른빛 눈동자에 갑자기 도깨비불이 깃든 것처럼 파란 불꽃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손에 쥔 일촌법사의 수염이 그 불꽃에 저항하기라도 하는 듯 파르르 떨면서 이리저리 뒤트는가 싶더니 이내 곧 얌전해지면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딘가를 가리키기라도 하듯 한 방향을 향해서.

 

 "이제 이 수염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면 됩니다."

 "당신을, 찾을 때와, 반대, 아닙니까?"

 

  호드가 그 원리를 알아차리자, 아직 눈가에 귀화가 일렁거리는 구미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얼마 채 가지도 못하고 일행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붉은 안광을 흘리며 지나칠 정도로 정돈된 멧돼지 무리. 이전에 단답벌레가 상대했던 것보다 그 수도 심지어 많았다.  

 

 "아 이런, 멧돼지랑 싸우는 건 또 처음인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러다 우리, 병가, 신청해야, 합니다."

 

 두 교수는 그리 말하면서도 물러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면서도 당황해하는 구미호를 뒤로 은근슬쩍 밀어내며 몸을 푸는 그 모습에, 융터르가 아직은 힘을 빼선 안 된다며 두 사람을 만류하였다. 어떻게 저 무리를 상대할 것인지 걱정과 호기심이 반반이었던 두 사람은, 곧 구미호가 멧돼지들에게 무방비한 태도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 대장격으로 보이는, 가장 덩치 큰 놈에게 다가가 귓가에 입김을 한번 훅 불었다.

 

 "어?"

 "멧돼지들이…?"

 

 우두머리에게 걸린 주술이 다른 무리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종류였던지, 놈을 중심으로 요사스럽게 흐르던 붉은 안광이 사라지며 땅을 앞발로 득득 긁으며 달려들 것 같던 그 흉포한 기세들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곧 가장 덩치 큰 놈이 멧돼지 특유의 뀌이익 하는 울음소리를 내자, 그 무리가 일제히 어딘가로 우르르 달려가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부드러운 얼굴로 그 모습을 끝까지 보던 융터르가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번에도 제 친구를 이렇게 꾀어냈다지만, 도저히 참기가 힘들군요. 저 친구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어―, 그러니까 방금 멧돼지랑 대화라도 했다… 이건가?"

 "본질적으로 보면, 구미호도 짐승이니까요. 대충 말은 통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거."

 "그러게…."

 

 엉뚱한 곳에서 피를 흘릴 뻔했던 두 사람은 차라리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기로 결정한 채였다. 이후로도 상황은 계속 비슷했다. 조종당하는 온갖 짐승들은 걸린 주술을 그저 입김 한 번 훅 부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지금은.

 

 "이건 또 뭔가…? 뱀? 아니 구렁이가 왠 한복을…?"

 "아니 이거. 구렁이 선비님 아니십니까."

 

 사람처럼 팔은 달렸지만 어마어마한 길이의 몸통을 바닥에 끌고다니는, 한복을 입은 구렁이가 눈에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가 읍소하듯 구미호에게 달려(?)갔다.

 

 "아이고, 구미호 나리―!! 부탁드립니다. 나리의 구슬을 주세요!"

 "알만도 하군요. 허물을 인질로 잡혔습니까?"

 "일촌법사 그 쥐새끼가 쥐를 떼거지로 불러내서 허물을 들고 도망쳤지 뭡니까? 예? 안 들고 오면 태워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고요!"

 

 구렁이 선비가 뱀 특유의 쉿쉿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통곡하는 기괴한 상황. 위치를 알려면야 두 사람의 손 위에 있는 수염이 위치를 안내해주겠지만 이 구렁이 선비는 자신이 구슬을 가지고 돌아가면 허물을 돌려받기로 약속을 맺었으니 좀 더 빠르게 이동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구미호가 아직도 목놓아 우는 구렁이에게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당신이 우릴 잡았다고 하는거지요. 어차피 그 만년은 먹고 성장한 것 하나 없는 쥐한테 볼 일이 있는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이, 이러다가 허물, 그 놈이 제 허물을 태워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당신이 그 긴 몸으로 우리를 제압해서 끌고왔다 이러면 되지요."

 "어…, 그 말은. 그러니까―" 눈물을 쏟아내던 구렁이가 이어지는 구미호의 말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라하는 상태가 되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는 오늘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에 현실이 이리저리 태클을 화려하게 거는 모습을 잠자코 있었다. 분명 귀한 상황이지만 이걸 학회에 보고하면 다방면의 의미로 파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두 학자는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견 합치에 도달했다. 가느다란 노끈 따위로 손을 약하게 묶인 구미호와 같이, 구렁이 선비의 바닥을 이동하느라 구불구불하게 이동하는 그 몸뚱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경험이라니.

 그런 두 인간과 한 요괴의 이동수단이 되어버린 구렁이는, 특히나 두 인간에게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

 

 "저기, 구미호 님. 두 인간 분이랑 잘 아십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아니오―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절 구해주신 분입니다."

 

 구미호는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를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옛날처럼 자신의 구슬을 노리던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쫓기다가 대뜸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순순히 들어준 고마운,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좀 많이 무서운 사람들. 구미호의 뒤에 그 좀 많이 무서운 사람들이 들러붙듯 앉아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캘리칼리와 호드는 뒷담화 하는거냐며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목소리에 담긴 박력에 구미호는 물론 구렁이도 한번씩 움찔하게 만들었으나, 수백년은 묵은 여우 요괴는 금방 진정하고 양심이 있으면 거울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며 다시 어깃장을 놓았다.

 

 "그래도 제 곁에 두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신다고 하면, 저라도 두 분을 믿을 것 같구만요."

 "응? 자네도 싸우는 건 영 별로인가?"

 "생긴건 이래도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맛들린 놈들과는 다릅니다요. 저는 그냥 색시만 맞이하고 싶을 뿐이라고요. …우씨, 그래서 멋있는 남자로 보이게 둔갑도 배웠는데…."

 

 어쩐지 지극히 세속적인 요괴의 푸념을 듣고 있으려니, 길을 터내지 않은 채로 별장 하나가 우뚝 선 모습이 보였다. 꽤 넓은 규모의 연못까지 둔 현대식 별장에는 사람들이 조금씩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깊은 산속에서 저 별장만 덩그러니 있었어도 상당히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다만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는, 그 건물로서의 완성도와 별개로 외양이 심각하게 천박하였다.

 

 "…쥐가… 돈을 밝히던가?" 캘리칼리가 벙찐 얼굴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쥐 요괴, 돈보다도, 먹을 것, 밝힙니다. 정설."

 "저건 일촌법사가 한때 대도둑의 밑에서 부하노릇을 하느라 그런겁니다. 듣기로는 수십년을 그 밑에서 지냈다는데, 그 정도면 보물 밝히기를 그 도둑과 닮아가지 않겠습니까."

 "저건 그나마 양반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금으로 도배를 했어요, 아주." 구렁이가 한 번 들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멀리서도 경호하는 사람들 외에도 어지간한 요괴들이 꼭꼭 감춰놨던 재물들을 들고 별장 입구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인지 연못에서 짭짜름한 냄새가 나는 것에 의문을 가진 캘리칼리가 슬쩍 그 요괴무리에서 연못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그 안을 자세히 보니 잘 해봐야 손가락 두 마디도 채 안되는 작은 물고기들이 빠른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 망원경에 잡힌 어떤 것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망원경을 떼도 보이는 그 광경.

 

 "잠깐만, 진짜야?"

 "뭔데, 그러십니까?"

 

 호드도, 구미호도, 구렁이마저도 캘리칼리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쭉 옮겨졌다. 그리고 그 끝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똑같이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의 팔로 잡아 연못으로 끌고가더니 냅다 던지는 장면이었다. 그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 요괴들이 한없이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봤던 캘리칼리가 섬뜩한 비명이 이어지는 연못에서 시선을 돌리며 겨우 설명을 해주었다.

 

 "금혈어일세. 피라냐와 비슷한 놈이지. 더 작다는 차이는 있지만."

 "어째서, 짠 냄새가 나나 했더니, 이런." 호드도 당혹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저 별장의 주인일 일촌법사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 분명하다. 융터르는 그래도 한 때는 쥐신선이 되겠다며 수행하던 시절의 놈을 떠올리다 곧 고개를 연거푸 저었다. 이제는 그저 돈이나 밝히고 편법으로 힘이나 키우려는 놈을 선계가 잘도 받아들여주겠는가?

 마침 잡아왔다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딱 좋게 구미호의 울적한 얼굴은 경비를 서고 있던 양복쟁이들이 그 장원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그으―, 일촌법사 님 안에 계십니까? 저 신선비입니다." 구렁이가 안면이 있는 경비에게 말을 걸었다.

 "조심해. 안이 아주 개판이야."

 

 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지키는 그들도 방금 전 그 상황을 목격한 탓에, 하얗게 질린 낯빛은 선글라스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구렁이의 긴 몸이 유연하게 그 문 안으로 들어가고, 일행들은 경비가 말한 '개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진짜 금을 얇게 펴 빈틈없이 곳곳에 도배해 놓은 방들은 그야말로 천박함의 극치였고, 덩치가 고양이만한 쥐떼가 온갖 음식들을 게걸스럽고 지저분하게 먹어대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안쪽으로도 요괴들이 저마다 보석 따위가 든 광주리 따위를 머리에 이고 그에게서 요술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그 끝을 따라 보니, 키가 작달막하고 어쩐지 얼굴이 쥐와 똑닮은 남자가 한껏 탐욕스러운 얼굴로 킬킬대며 보석들을 연신 손으로 쓸어담고 놓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에에, 다음!"

 "아이고 법사님, 제가 사는 산골짜기에 그 가뭄이 들었는데, 한번만…." 한 요괴가 애써 모아온 보물들을 내밀며 읍소하였지만, 일촌법사가 힐끗 보더니 찍찍거리는 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다음!"

 

 기껏 가져온 보석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 목놓아 우는 요괴를 경비들이 끌어내는 사이, 아무래도 마음이 조급해진 구렁이가 그 줄에 새치기를 하며 길게 읍소하고는 제 길다란 몸뚱이를 보여주었다.

 

 "아시지요?"

 "구, 구미호!"

 "이제 빼앗은 제 허물을 돌려주세요. 제발."

 

 법사가 야비한 눈으로 구미호를 보았다. 자신이 직접 구슬을 끄집어내지 못해도 금혈어가 잔뜩 든 연못에 던지면, 고기만 먹는 그 아귀같은 놈들이 자동으로 구슬만을 남기지 않겠는가. 제 엉덩이 밑으로 깔고 앉은 허물을 아무렇게나 던져준 일촌법사는 그 허물을 품에 안고 재빨리 기어가는 구렁이 신선비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작은 눈을 번들거리면서 융터르를 보았다. 검은빛의 여우 요괴가 진퇴양난이라는 표정으로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그 구슬…, 줄테니까 잠시 이것 좀 풀어주겠습니까?"

 "그럼! 그거 정도야 얼마든지 해주지."

 

 법사가 킬킬대며 들고 있던 지팡이로 노끈을 건드리자 스르륵 풀려, 융터르는 품에서 따스한 온기를 은은히 뿜는 유백색의 유리구슬을 꺼내 손바닥에 얹었다. 만년을 묵었어도 도저히 바뀐 것 하나 없는 쥐 요괴가 이제 대놓고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채 그 구슬에 손을 뻗자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영문을 모르는 두 인간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로는, 쥐 요괴가 여우구슬을 건드리자 갑자기 사라진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빙글빙글 웃는 카르나르 융터르는 손바닥의 구슬을 서늘하게 보며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제 구슬을 탐냈으니 아예 그 안에서 살라고 가뒀습니다―. 오 역시나."

 

 구미호는 제법 반색하면서도 투덜거리는 어조로 매우 허름한 호리병 하나를 꺼내 그 마개를 풀었다. 흰 수염이 배꼽까지 닿는, 누가 봐도 틀림없는 신선이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일촌법사가 쓰던 지팡이를 들어올리고는 "에잉, 잡것이 써서 아주 때가 탔네, 탔어." 투덜거리는 말을 들었다.

 

 "아니, 어쩌다 당신 같은 신이 저 호리병에 갖히신 겁니까?"

 "낸들 알겠는가? 저 돈독 오른 쥐놈의 시끼가 어디서 구한 거겠지 무얼."

 "흠. 그 쥐새끼가 지금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거기에 있나?"

 

 신선이 이 광경에 여전히 어리벙벙한 두 사람에게 거기 있으면 휘말린다며 손짓하고는 호리병의 마개를 꼽았다가 다시 뽑고, 융터르는 그에 맞춰 유리구슬에 가뒀던 일촌법사를 도로 풀었다. 공기마저 빨아들이는 그 호리병에 일개 쥐 요괴가 저항할 수 없었기에 추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더는 볼 수 없었다.

 

 "으응. 이제 다 끝났구먼, 난중에 선계에 들리믄 저 호리병 간수 잘하라고 혀야겄어. 에잉 쯧쯧."

 "노고 많으십니다."

 "헌데 저기 저 얼타는 두 청년(신선에게는 다들 어렸으니 청년이 맞았다.)은 누구인가?"

 

 오늘 지식을 좀 과할 정도로 많이 쌓은 두 교수가 머뭇거리며 자기 소개를 하였고, 산신은 간만에 보기 드문 순수한 사람들이라며 껄껄 웃고 좋아라 하였다.

 

 "혹시, 이것도 인연인데―, 소원은 없나?" 그 말에 캘리칼리가 불에 데인듯 화들짝 놀라면서도 잽싸게 답했다.

 "구미호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까?"

 "으―응. 구미호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피이짜를 좋아하네. 응응."

 "아니, 생 간, 아니고, 피자, 입니까?" 이 지나칠 정도로 현대적인 메뉴에 호드가 당황해 반문했지만.

 

 산신이 껄껄 웃으며 한번 믿어보라고 말하고는 어마어마한 돌풍과 함께 사라졌다.

 

 


 "―어, 그러니까… 이거 한 번 먹어보겠나? 맛있는데."

 "예?"

 

 모든 일이 끝나고, 카르나르 융터르의 심리상담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여우 귀와 꼬리 아홉을 지닌 단답벌레에게 납작한 상자를 들이밀었다. 그 곁에서 노스페라투 호드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과연 신선이 말해준대로 일 것인가.

 카르나르 융터르야 저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도시에서 활동 하기를 좀처럼 거부하는 단답벌레는 카우치 소파에서 한껏 늘어져라 누워있다가 저것이 뭔지 모르는 채로 그 종이 상자를 열었다. 동그랗고 납작한 밀가루떡 위에 새콤한 듯 짭짤한 붉은색이 그 위를 덮은 노리끼리한 뭔가가. 영문을 도통 모르겠는 단답벌레는 그나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친구를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뭐임?"

 "피자라고 합니다. 단답벌레 님." 카르나르 융터르는 자신도 즐겨먹곤 하는 저게 친구에게도 좋은 반응일지 기대하며 빙글빙글 웃으면서 소개해주었다.

 "피자."

 

 떼어내기 좋게 난 흠집을 따라 끝을 잡고 들어올리니, 떨어진 조각과 조각 사이로 뜨거운 김이 낯설지만 뱃속을 동하게 만드는 냄새와 함께 훅 끼치는데 그 노리끼리한 것이 길게 늘어져 도통 끊어질 생각을 않는다. 결국 그 노리끼리한 것이 길게 늘어진 실을 만들며 완전히 떨어지고 난 뒤, 단답벌레는 설마 친구가 자기에게 독을 먹이겠나 싶어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그리고.

 

 "저기, 이거, 많이 남았습니다. 천천히, 드십시오."

 "아니 이거 틀렸는데? 벌써 세 조각 째 먹고 있잖아? 이거 엑스라지 사이즈라고?!" 

 

 저 작은 체구로 제 얼굴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피자가 순식간에 4분의 1은 사라진 그 광경. 두 교수가 어떻게 이게 가능한 지 그나마 잘 알고 있을 융터르를 바라보았지만 틀렸다. 그도 두 사람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카르나르 융터르도 평소 적게 먹으며 수 백년을 살아온 그가 저렇게 음식에 열광을 할 줄 생각도 못했기에 그 굵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허, 진작에 피자로 좀 꾀어볼 걸."

 "피자, 맛있네."

 

 본능적으로 그 따끈함이 사라지기 전에 먹는 것이 맛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작은 여우요괴는 슬슬 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져도 맛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서워 계속 먹으려 들었다. 그의 마음을, 처음 도시에서 활동하기로 결정했을 때의 경험에 빗대 이해한 카르나르 융터르가 이제 다섯번째 조각을 집어들려던 그의 손을 말리며 말했다.

 

 "이건 다시 뎁혀서 먹을 수 있습니다만. 무리해서 드시면 소화 안 될 겁니다."

 "아."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단답벌레가 감탄한 얼굴로 피자와 친구를 번갈아 보는 사이, 실제로 가져와 준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는 드디어 고대하던 단답벌레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에게 낯설기 짝이 없는 녹음기를 들이밀어 한껏 부푼 꼬리들은 분명 짜증난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맛있는 피자를 먹여줬으니 어쨌든 뭔가는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예." 소리를 내며 인터뷰를 수락했다.

 잘 해봐야 다섯마디를 넘어가지 않는 짧은 답변에도 두 인간은 무엇이 맘에 드는지 연거푸 질문을 하기에 바빴고, 단답벌레도 그런 태도에 의외로 기분이 상하지 않아서 가능하다면 여러가지로 말해주었다. 그 곁에서, 병풍처럼 서있던 상담실 주인은 단답벌레가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세월이 흐르기는 흐르는가 넌지시 생각할 때 쯤.

 

 "언제 또 옴?"

 "저희, 1주일에, 1번 옵니다. 여기."

 "그때도 피자."

 

 도도하기 짝이 없던 그가 피자에 함락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렇게 참 놀랄 일도 다 있다며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여구 참아 넘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또 누가 생각했을까. 여느 때처럼 요괴 둘과 인간 둘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상담시간이 종료된 오후 6시를 넘긴 시점에 문이 왈칵 열리며 분홍빛이 감도는 머리와 노란빛이 감도는 머리가 인상적인 두 여성이 저마다 명랑한 목소리로 입을 모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요괴 선배님들 계시다고 해서 왔는데요―!"

 

 두 여성의 머리에도 여우 귀가, 등 뒤로는 꼬리 서너개가 살랑살랑 헤엄치듯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