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공개

Human Being Human

김만성피로 2023. 2. 10. 17:21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설정을 일부 참고하였습니다.

Words : 20k


 유감스럽게도 범죄발생의 빈도와 그 흉악함을 전국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때, 늘 선두에서 찾는게 빠른 도시의 경찰서 문이 오늘도 거칠게 열리면,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제 놀라지도 않고 그저 올게 왔구나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만 품은 뒤 자기 할 일을 하고는 하였다. 익숙한 술냄새. 최근들어 그 실적만큼이나 악명도 높아지고 있는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위가 파트너인 노스페라투 호드 경사의 부축을 받아 오늘도 성대한 지각을 하였다. 오전 10시하고도 40분이 거의 다 된 시각에.

 자기 책상 위에 그 거대한 상반신이 녹아내리며 "끄어어"하고 소리를 내는 모양새가 꼭 지독한 숙취로 머리나 위장이 공격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추태를 다른 이들은 그저 냉수 먹고 속이나 차리라며 한 마디 정도만 할 뿐 더 심하게 그를 매도하지는 않았다. 그를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끌고와 준 경사에게는 작게 수고했다며 그의 등을 한 번씩 토닥거려주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최근 맡았던 사건에서 막을 수도 있었던 피해자가 발생했었다. 그 원인이 경찰에 도입된 안드로이드 때문이라고 그는 거듭 주장했다. 범인 체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커서 그런 것인지, 피해자가 아슬아슬하게 생명에 위험이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어도 어쨌든 임무 완료를 하였으니 상관이 없다고 말한 그 태도에 열불이 뻗친 캘리칼리가 경찰서에 시제품으로 받은 그 안드로이드를 박살내버린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 결과는 3개월 분의 감봉과 함께 2주일 동안 자숙.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숙취를 불러일으키는 폭음은 처분에 대한 억울함의 표현이자 그 나름대로의 항변이었다. 

 

 "야, 그러고보니까…, 그거 오늘이지 않냐?"

 "…니미 또 가구 여럿 날아가겠다."

 "설마 못 들었거나, 기억이 안 난다던가, 그러는거 아냐?"

 "가능성들은 다 있긴 한데 말이지."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던 다른 경찰들은 이제 여전히 숙취 때문에 제 골머리를 싸고 있는 그 상하로 덩치 큰 형사와, 제발 정신 차리라며 타박놓는 좌우로 덩치 큰 형사를 바라보았다. 곧 서장이 깐깐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와 노스페라투 호드를 불러 서장실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 거대한 덩치 두 사람이 영문도 모르는 얼굴로 들어간 사이.

 다시 경찰서의 문이 열렸지만 이번에는 캘리칼리의 등장과 달리 아주 조용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모든 경찰들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 제법 건장한 체격, 파란색 브릿지가 끝까지 닿은 제법 긴 꽁지머리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관자놀이에 붙은 LED회로와 전혀 깜빡이지 않는 눈은 파란빛을 은은히 뿌리고 있다. 아주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면 복잡한 내골격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는 그 남자가 아니, 안드로이드가 안내데스크에 너무나 규칙적으로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를 내며 접근했다. 누가보더라도 이 경찰서에 새로 배속된 안드로이드. 경찰들이 수군덕거리던 '그거'였다.

 

 "실례합니다. 저는 XX년 XX월 XX일,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형사1과 배속을 명령받은 수사지원 및 프로파일링 목적의 안드로이드, CJ-1200 프로토타입 입니다. 위 보고를 위해 서장실로 방문하라는 목적을 안내 받았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목소리가 낮게 설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좀 정도껏 낮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데스크에서 그 인사를 받아버린 경찰은 할 말을 잃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수화기를 들어 작게 뭐라 이야기 하고는 "서장실은 이 복도 가장 안쪽을 따라가면 나옵니다."라고 말함으로서, 훌륭한 본분을 보여주었다. 비록 멍한 표정에서 감점이었지만.

 

 "감사합니다."

 

 다시 그 무게감이 과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안드로이드가 인사를 하였다. 지나칠 정도로 사람답게 보여야 함을 의식하고 만든 것인지, 움직임 하나하나 자체는 부드럽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위화감이 생기는 그 걸음걸이 그대로 그가 복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시선이 그 움직임에 못박혀 떠나지 못했다. 그 눈빛들은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지, 예고된 재난에 두려워한다 해야할지 그 애매한 표정이 된 채로 조용히 그가 서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살면서 이게 가능할까 싶었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벼락같은 고함이 서장실 문을 뚫고 경찰서 지하에 있는 유치장까지도 들릴 정도로 울려댔다. 안드로이드 때문에 사건 하나 제대로 망칠 뻔했던 그에게 새 안드로이드가 부하로 들어왔다.


 감정이 엄청 실린 것을 숨기지 않고 서장실 문이 박살나라는 듯 거칠게 발로 걷어채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열린 문으로 두 사람, 그리고 한 안드로이드가 나란히 나왔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 문 사이로 가장 마지막에 빠져나온 것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그 태도에 분노한 서장이 내지른 "이 개새끼가, 니가 문 박살나면 물어낼거야!?"라는 내용의 짜증 섞인 외침이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로 몰려오는 두통에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도로 자리에 주저앉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제 앞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를 무시한 채 옆 자리에서 수사 관련 정보를 찾고 있는 노스페라투 호드에게 말을 건넸다. 

 

 "호야. 우리 뭐… 하기로 했더라? " 숙취 외에도 새로운 이유로 두통을 호소하던 그의 눈이 힐끔 돌아갔다.

 "검색 결과. 현재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위님과 노스페라투 경사님에게 '안드로이드 연속 파괴 사건'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시간 기준, 배정일로부터 6시간 48분 26초가 경과되었습니다."

 

 정보가 담긴 파일을 연 파트너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곁에 안드로이드의 눈이 파란빛을 몇 번 깜빡이더니 바로 답해버렸다. 주위에 있던 다른 경찰들의 경악에 가득찬 눈길은 물론, 두 형사의 험악해진 시선이 그들 자리에서 목석처럼 서있는 그에게 닿았다. 속에서 열불이 뻗쳐 무슨 사고를 거대하게 칠지 모르는 캘리칼리 데이비슨 대신, 노스페라투 호드가 팔짱을 끼고 그를 대신해 경계심과 적대감을 담은 어조로 비아냥거렸다.

 

 "와우, 정말, 유능, 하십니다."

 "기본적으로 경찰에 배속되는 수사지원 목적의 안드로이드들은 경찰청과 그에 연계된 데이터베이스에 실시간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수사관들에게 관련 수사정보의 제공을 통해 사건 해결에 원활한 도움을 주도록 되어있습니다. 제게 지정된 목적은 두 분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입니다."

 "프로파일링 목적을 겸한다더니, 이 친구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분석은 안하나?" 코웃음치며 경위가 물었다.

 "분석 결과. 노스페라투 호드 님은 17초 전 본 기체를 향해 비아냥이 섞인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에 기반하는 감정 : 적개심."

 

 당사자는 그럴 의도라고는 하나도 없겠지만, 듣는 이가 느끼기에 한없이 뻔뻔하게 답하는 그 모습에 김이 빠진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연거푸 '하!' 소리를 내면서 다시 질문하였다.

 

 "왜 이제서야 목적에 맞는 행동을 다 하고 그러실까. 이 깡통아?"

 "어떤 감정을 기반으로 하였는지에 대하여 제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무감정한 어조로 덤덤하게 말하는 모습. 지난 안드로이드가 너무 자율적으로 판단을 해 사고를 쳤다고, 상부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지나칠 정도로 수동적인 느낌이 강했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골치를 더 심하게 아프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다시 책상에 팔뚝을 괸 채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래도 이번에 붙여준 이 망할 깡통은 행동보다는 말을 더 잘 터는 쪽에 특화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 무렵, 갑자기 안드로이드의 제법 긴 꽁지머리가 휙 돌아간 것이 곁눈질로 보였다. 곧 지나칠 정도로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멀리 사라지다가 곧 커지나 싶더니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끙 소리를 내며 그가 다시 시선을 위로 올리자, 눈동자에서 옅게 파란빛이 깜빡이는 그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앞에 종이컵 하나 가득 물을 채운 것을 내밀고 있었다.

 

 "현재 경위님의 숙취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체온과 유사한 섭씨 36도로 설정된 수분 섭취가 권장됩니다. 드시길 바랍니다. 숙취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허…. 허…!!"

 

 기가 차 헛웃음을 지으며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 손에서 종이컵을 낚아 챈 경위가 단숨에 비워내고, 손아귀에 힘을 꽉 주면서 책상에 그대로 내리쳐 차라리 샷건이라도 발사했다 믿을 소리가 울려퍼졌다. 노스페라투 호드의 시선도 작게 한숨을 쉬며 여전히 달갑지 않은 채였지만, 처음보다는 그래도 아주 살짝 부드러워졌다.

 캘리칼리는 점차 가라앉는 머리가 과연 저 깡통의 말대로 따라준 결과인지, 아니면 열불 뻗치다 못해 아예 정신이 돌아버린 결과물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술냄새가 지독하게도 배여있는 외투를 집어들고는 대뜸 "가자"고 외쳤다. 노스페라투 호드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몸을 일으키며 똑같이 의자에 걸쳐둔 자신의 외투를 집어든 채 움직이지 않는 안드로이드를 힐끔 보자, 경위가 내뱉는 어조로 뒤이어 말했다.

 

 "그래, 깡통 너도."

 "감사합니다."

 

  두 형사의 뒤를 일부러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뒤따라가는 안드로이드의 모습까지도 사라진 경찰서 내부는, 드디어 살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소리가 저마다 들렸다. 비단 경찰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취조를 받는 용의자들까지도.


 아직 출발하지는 않은 경찰서 소유의 대형 SUV 내부. 운전대를 잡은 노스페라투 호드가 어딜 먼저 가야 할지 질문하자 조수석에 앉아 처음보다는 확실히 미약해진 관자놀이의 두근거림을 손끝으로 느끼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뒷좌석 등받이에 기대지도 않고 뻣뻣한 정자세로 앉아있는 안드로이드를 다른 손으로 가리켰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것인지 두 사람의 뒤에서 곧바로 그 입이 열리며 여전히 적응 안되는 중저음이 흘러나왔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위님은 첫 번째 신고가 들어왔던 곳을 방문하시길 원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들었지? 가자고."

 

 호드의 눈이 잠시 이상하게 찡긋거리다가 부드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하였다. 

 

 "경위님, 첫 번째 신고 현장, 정말, 가고 싶은 것, 맞으십니까?"

 "…아, 내가 뇌를 빼고 저 깡통새끼가 하자는대로 하는 것 같아 보이나?"

 

 아직 완전히 술이 깬 것은 아니었기에 속이 울렁거린다며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바람을 연신 내쉬던 그가 운전 중인 파트너에게 갸르스름한 눈웃음으로 바라보며 도로 물어보았다. 그 질문의 의도롤 당최 이해할 수 없던 호드가 마침 붉은 정지 신호를 받아 차를 잠시 세우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운 나쁘게도 그들 앞에 선 차가 곧 폐차장으로 가도 무방할 정도의 구식인 탓에 잔뜩 내뿜는 매연냄새에 속이 거의 뒤집어질 뻔한 경위가 답을 하지 못하며 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닫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우웩 켁!―기랄, 깡통, 켁!, 어이 깡통―, 니가 답해라."

 "답변. 지금으로부터 1시간 28분 17초 전, 경찰청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노스페라투 호드 경사님의 행동을 경위님께서 보셨습니다. 첫 번째 신고와 관련된 내용을 열람할 때, 경위님이 그 내용을 본인의 단말기가 아닌, 경사님의 단말기로 같이 확인하기 위해 잠시 시선을 경사님 쪽으로 돌리려는 등의 행동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후 다른 사건들의 열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행동을 취하셨으므로, 현재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첫 번째 신고 현장을 안내드렸습니다."

 "…랍신다."

 

 과연 기계니까 입에 모터라도 달린 것 아니냐며 허탈한 어조로 껄껄 웃던 그가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행동이 앞서는 타입이면 차라리 주먹질이라는 좋은 대화수단이 있겠지만, 저렇게 말이 많은 타입은 처음 봤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생각은 노스페라투 호드도 똑같았다.

 이후로 차량 내부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사실 말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10분 정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흐르고 차가 한적한 골목길에 멈춰섰다. 주거공간으로 계획된 도시의 제법 한적한 이 곳은 거의 유일하게 치안이 훌륭하게 확보된 곳, 즉 부자 나으리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높다란 담장들이 줄지어 있는 사이를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가로막고 있는 위화감은 생각보다 크게 존재를 어필하였다.

 

 "현장에 안드로이드는 출입금지입니다." 아직 현장을 지키는 순경들이 안드로이드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경계했다.

 "이 놈은 예외다. 형사 1과 소속 안드로이드지."

 

 평균적인 성인남성의 허리 정도의 높이의 폴리스라인을 그냥 겅중 건너 뛴 그를 시작으로 호드와 안드로이드까지 순차적으로 현장에 진입하였다. 사방팔방에 증거가 있는 자리임을 알려주는 표식들 사이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내골격과 인공 근육 따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파손된 안드로이드였다. 남성형인 것은 알겠지만, 무슨 목적으로 생산된 것인지 블랙박스를 뜯어봐야 알 수 있을 정도. 현장을 슥 둘러보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입을 열었다.

 

 "깡통아."

 "네." 보는 이가 위화감이 치밀어오를 정도의 어색한 동작으로 몸을 돌려 그가 답변했다.

 "내가 널 언제까지 깡통이라 불러야 하는거냐?"

 "현재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별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게, 뭔 소립니까?"

 

 그 대화를 묵묵히 듣던 호드가 황당해서 잠시 끼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과 같은 친근함을 부여하기 위해 출시되는 안드로이드들은 저마다 제임스라느니, 바비라느니, 오스틴과 같은 별칭들이 붙어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확실한 제품으로서 인정을 받은 기성품이라는 것. 생각을 정리한 호드가 어찌된 이유인지 깨닫고 중얼거렸다.

 

 "미출시, 제품?"

 "긍정합니다. 본 기체는 프로토타입입니다. 파견되는 일정 기간 동안 활동한 내역과 정보를 바탕으로 정식 후속기가 만들어질 예정이므로, 붙여진 이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후속기라는 것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되는건가?"

 "생산되었던 연구소로 회수, 성능 측정 결과에 따라 부정적인 경우에는 파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무거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 내용을 더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던 두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가로로 늘려 요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고,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여전히 보기에 따라서 섬뜩한 푸른색 렌즈가 불규칙적으로 빛나는 안드로이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떨떠름한 얼굴의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위가 대뜸 툭 던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카르나르 융터르."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언제 헤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야, 너, 깡통, 이거, 저거 이런 지칭대명사로 부르는 것도 귀찮으니깐, 이름이라고 이름."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툭 내뱉었다. 서장 앞에서 말한 놈의 모델명의 이니셜을 듣고 대충 따서 만든 것이라며 웅얼거렸고, 노스페라투 호드는 "그런거 치고는, 상당히, 유니크, 합니다." 라며 살짝 핀잔을 주었다. 세상 어느 안드로이드의 이름에 성과 이름을 한꺼번에 붙여주냐는 말과 함께. 그러나 갑작스럽게 이름을 받은 안드로이드, 카르나르 융터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사건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내심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고 있던 형사들은 공연히 멋쩍어서 툴툴거리다 다시 현장에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역시 파손된 안드로이드가 그 어떤 것보다도 시선을 잡아 끌 수 밖에 없었다.

 

 "으―어. 이거 수리한다고 한들 돈깨나 들겠는데."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중얼거림처럼, 파손된 안드로이드를 복구하려면 내골격부터 인공 피부까지 들어갈 돈이 너무 많았다. 노스페라투 호드는 부유한 주택가 투성이인 이곳의 특징을 생각하고 단순한 무단 투기가 아닐까 자신의 의견을 말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부르기로 합의한)융터르의 렌즈가 불규칙하게 빛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스캔 완료. 일시적으로 재활성화가 가능합니다. 예상 시간 : 1분 20초. 평균적으로, 2개 정도 질답이 가능합니다."

 "할 수, 있습니까?" 기존에 파견되었던 안드로이드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제안에 호드가 놀랐다.

 "메인 시스템에 도달하기 위한 전력을 우회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파손이 워낙 심하므로 장시간 유지는 불가능합니다."

 "…할 수 있으면 해보게." 마찬가지로 이런 방식으로 수사를 지원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지 캘리칼리도 얼떨떨해 하였다.

 "실행하겠습니다. 질문을 미리 준비해주십시오."

 

 파손된 안드로이드의 내골격 사이로 쑥 들어간 융터르의 손이 조금씩 움직이는가 싶더니, 작은 기계음과 함께 '피해자'가 눈을 떴다. 카르나르 융터르가 영문을 몰라하는 그 안드로이드에게 재빠르게 설명을 하였다. "당신은 파손되었고, 현재 그 범인을 찾고자 하니 질문에 답하길 바란다."는 무감정하고 형식적인 말. 피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지?" 캘리칼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릅니다. 주변에 조명이 갑자기 들어오지 않았고, 야간 시야 모드로 적용해 상대를 인지하려 했을 때는 이미 파손되었습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호드가 어떤 정보를 바라며 물었다.

 "저는 이 주위의 조경, 그리고 미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모델명 CR-520. 시 소유의 안드로이드입니다."

 "현재 당신은 내골격까지 전부 드러나는 상태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보를 요구합니다." 융터르가 물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흉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매우 무거운 것이었다고 생각합, …니―ㄷ."

 

 출력되는 음성에서 기계음이 강하게 드러나는 듯 하더니, 피해자가 고개를 툭 떨궜다. 시간이 다 되었다. 파손된 안드로이드의 증언에 따라, 시 환경과에 수사협조 공문을 보내 정보를 알아오라는 전화를 서에 남긴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이제 데이터만이라도 복구하기 위해 짐짝처럼 실린 그 안드로이드를 탐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낮에 보면 확실히 기계임이 티가 나지만, 어두운 밤이라면 얼핏 잘못 착각해서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최초로 신고된 내용도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쓰러졌다는 것이었기에.

 초동수사로 바닥에 번호가 붙은 작은 태그들을 면밀히 살펴보던 노스페라투 호드는 유감스럽게도 몇 안 되는 발견에 대해 아쉬워했다. 증언대로 우연히 청소를 하던 중에 범인이 먼저 가로등을 깨고, 피해 안드로이드를 사람으로 생각해 냅다 공격한 후 도망쳤다는 것이 정황상 사건의 경위가 될 듯 하였다. 그 생각을 정리해 캘리칼리에게 말한 호드는 뭔가 속시원하지 않은 마음에 그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흉기가 뭘까?"

 "역시, 주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취기가 완벽히 날아간 형사는 예리한 눈으로 두 번째 현장으로 떠나기 전 다시 현장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깨진 가로등 파편, 그 근처에 떨어진 돌, 자잘한 안드로이드의 파편과 파괴되어 윤활유 따위가 묻은 벽 외에는 건질 것이 없었다. 다시 셋이 차에 올라타 이제는 두 번째 사건 현장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보가 필요합니다." 뒷좌석에서 다시 부담스러울 정도로 꼿꼿이 앉은 융터르가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무슨 사건인들 그렇지만." 이제 숙취가 아니라 사건으로 관자놀이를 매만지는 경위가 틱틱거렸다.

 "부정합니다. CR-520이 파손된 이유의 동기를 알 수 없습니다.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거, 무슨, 의미입니까?" 호드가 오히려 그 말을 이해 못해 인상을 썼다. 운전 중이라 뒤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단순한 청소 안드로이드에게 파손이 가해지는 경우 : 압도적인 이유로 단순한 괴롭힘. 다수가 일제히 구타함으로서 유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나, 이 경우 전신에 다발적인 손상이 우선적으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CR-520의 경우, 상대적으로 좁은 부분에 파손부위가 집중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이해가 될 듯 말듯, 그 주문 같은 말에 캘리칼리가 참지 못하고 조수석에서 고개를 빼 카르나르 융터르와 눈을 마주치면서 질문을 했다.

 

 "그 범인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이 갑자기 '얍 죽어라' 라는 이유로 그 무거운 걸로 휘두른 건 역시 말이 안된다, 이건가?"

 "긍정합니다. 가장 높은 가능성 : 뭔가를 목격, 은폐 목적."

 "…그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만."

 

 호드는 초동수사를 마치고 보고된 자료를 떠올렸다.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느냐고 탐문을 해도 하나같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정보도 전달해주자 안드로이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관자놀이에 붙은 LED 회로가 노란빛이 되어있었을 뿐.


 '안드로이드 연속 파괴 사건'이라는 이름은 순전히 미디어가 붙인 것이다. 지금까지 보고된 세 건의 파손들이 하나같이 기괴했던 탓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 현장도 그러하였다. 첫 번째 사건 이후 불과 1시간도 채 안되어 들어온 신고지만, 거리가 멀어도 꽤 먼, 폐가들만 잔뜩 있는 공간은 뭔가가 잔뜩 박살난 흔적들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처음보다는 파손이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끔찍한 몰골의, 제법 날렵한 체구의 안드로이드가 벽에 기대어 쓰러진 모습.

 

 "개판이구만." 폴리스라인을 아까처럼 겅중 건너간 캘리칼리가 현장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하였다.

 "저거, 아까처럼, 할 수, 있습니까?" 호드가 쓰러진 안드로이드를 가리켰다. 프로토타입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스템의 파손은 훨씬 심합니다. 복구 시 예상 활성화 시간 : 60초."

 

 그의 말대로 첫 번째 현장과 비교하면 충격적일 정도로 내골격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신 파손된 부분은 주로 머리 파츠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 형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피해 안드로이드의 인공 근육을 찢어 내골격 사이로 손을 집어 넣자, 한 번은 들어서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임시 재활성화 완료. 서둘러주십시오." 내골격에서 손을 뗀 그가 말하기 무섭게

 "여긴 뭐야?! 당신들 누구야! 나, 난 대체―" 안드로이드가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이…이건 어떻게 된 일이야?"

 "무서워! 오지마!! 죽이지 말아줘!! 하지마!!" 양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싼 안드로이드가 떨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계속 "죽기 싫다. 무섭다"를 반복하던 그것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그나마 멀쩡하던 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두 형사가 놈을 말리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그것은 벽에 제 머리를 수차례 박아대다가 다시 비활성화 되어버렸다. 질문이라곤 할 수도 없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그것을 현장을 지키던 경관들도 전부 봤으니 애먼 문책을 당할 일은 없지만 그건 그것이고 지금은. 오직 이 상황에서 덤덤한 융터르가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스캔을 새로 했다.

 

 "추가 파손 정도 확인. 인공 피부에 열상 발생. 내골격에 경미한 충격이 있으나 시스템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님."

 "…지금 내가 본 게…, 안드로이드가 무섭다고 한 것 맞나?" 경위가 자신이 들은 말을 못 믿겨라 하였다.

 "허…. 저도, 들었습니다. 똑똑히." 경사의 얼굴도 경위와 비슷하게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째서 안드로이드가 감정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 불과 첫 번째 현장에서는 담담하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이야기 했건만. 두 형사가 증언을 확보하지도 못한 채 그저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융터르는 이제 다른 곳에서 쓰러진 이 피해 안드로이드를 계속 바라보았다.

 

 "뭔가? 또."

 "이 안드로이드의 시스템에 최근 간섭이 발생했습니다. 최초 파손 시간 기준 30분 전."

 "누군가, 해킹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확인 불가능한 프로그램과 기존 시스템 간 충돌이 발생, 신체 제어 불가능. 추정 : 공포 및 두려움의 감정을 이해하고 인지하도록 유도."

 

 그 뒤로 두 형사와 한 안드로이드가 사건 현장을 이리저리 면밀하게 조사해보기로 하였다. 확실히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벽이 이미 부숴진 것과 새롭게 부숴진 것의 차이를 금방 알아낸다던가, 현장에서 누군가가 지금은 깨진 식칼을 피해 안드로이드에게 무기로서 찔렀다는 것이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피해 안드로이드의 손상 : 두 종류의 흔적 발견. 하나, 체구가 작음. 현재 바닥에 떨어진, 부서진 식칼을 흉기로 사용. 휘두르고 찌른 강도 경미함. , 체구가 큼. 별도의 무기 없음. 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침. 주로 던지고 잡아채는 방식의 공격."

 

 덤덤하게 브리핑을 마친 그의 말에 첫 번째 사건과 비교해본 두 형사는 한 가지 신경쓰이는 점을 발견했다. 별도의 무기도 없으면서 안드로이드를 저렇게 박살낸 것이라면, 오히려 특정하기 쉬웠다.

 

 "당연히 그 체구가 크다는 쪽은 안드로이드겠구만."

 "만약, 그렇다면, 첫 번째 사건의 파손도, 설명이 됩니다."

 "근데… 이 놈은 대체 뭔가? 내가 아는 어떤 기종도 이렇게 생기진 않았는데." 캘리칼리가 눈에 밟히는 점을 말했다.

 

 호드도 그 말을 듣고 인공 피부가 그나마 남아있는 쪽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기존 안드로이드들이 첫 번째 사건의 그것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면을 의무로 갖추게 한 반면, 지금 자해까지 저지른 이 놈은 지금껏 봐온 것들보다 훨씬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히 융터르에게 닿았다. 반대로 시선을 안드로이드에게 향한 그가 곧 입을 열었다.

 

 "모델명 : ST-650. 안드로이드 생산 기업 XX의 산하 연구소에서 개발. 생산 목적 : 잠입, 지정 인물의 살인, 기밀 정보 탈취. 특징 : 목적에게 감정적인 접근을 위한 감정 모사 기능이 탑재 되어있습니다."

 "아니, 지금, 스파이를, 만들었다는, 겁니까?" 아무리 귀를 씻어도 일상적인 용도와 거리가 너무 멀어 호드가 당황했다.

 "스파이, 긍정합니다. 현재 군 납품을 목적으로 함. 일반 시민 대상 판매 불가. 그러나 일부 기업과 조직적인 세력에서 구매 목적의 접선 시도가 확인되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건가…?" 캘리칼리도 이 황당한 스펙의 스파이 안드로이드에게 질려 물었다.

 "처음 임시 재활성화를 위해 시스템에 접근했을 때 확인했습니다만, 섣부르게 밝힐 수 없었습니다. 현재 두 분의 반응에 따르면, 해당 안드로이드의 목적을 들으셨을 때 매우 심각한 수준의 당황, 두려움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떤 준비도 없이 곧바로 안내드릴 경우, 그 정도가 더 클 것으로 예상."

 

 호드가 그 말에 설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충격적인 이 사실을 먼저 접했다면 다른 증거를 조사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방향에서든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정보는 다른 사실관계를 확인한 다음에 접해도 문제가 없었다. 한편 캘리칼리도 여러가지로 머리가 다시 터질 것 같았는데, 상당한 고스펙의 안드로이드를 누가 저렇게 박살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건지 이제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 안드로이드야 그렇다 치지만, 저건 아예 대놓고 스파이지 않은가.

 그 때 카르나르 융터르가 제안을 했다.

 

 "블랙박스 열람 허가를 요청합니다."

 "…그거 할 수 있나? 우리가 본다던가는?"

 "제 시스템과 단말기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현장에서도 열람이 가능합니다." 그리 말하는 융터르가 귀 밑을 가리켰다.

 "혹시, 이것과, 연결, 됩니까?" 호드가 급히 차량에 다녀와 얄팍한 태블릿 하나를 보여주자,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두 순경이 공증인이 되어 이 훼손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상부에 보고하고 난 뒤, 카르나르 융터르가 무감정한 얼굴로 스파이의 뒤통수를 이루는 인공 피부를 찢고 그 안의 부품들을 조심스럽게 분리하여 아주 작은 큐브형태의 물건을 꺼냈다. 블랙박스다. 호드는 융터르가 말한 그 귀 밑의 작은 자료전송용 포트와 태블릿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그 연결을 확인한 안드로이드는 왼손 검지의 작게 난 단자를 블랙박스에 난 아주 작은 틈에 갖다 대었다.

 

 "연결 완료, 열람을 진행하겠습니다."

 

 그 선언과 함께 태블릿을 보기 위해 머리를 맞댄 두 형사는 곧 실행되는 한 영상을 보았다. 이미 충격을 받은 영향인지 노이즈가 제법 심한 화면에서 스파이 안드로이드가 구형 안드로이드 하나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거의 화면 모서리에 준하는 정도에서 아주 작은 뭔가가 달라붙는 것도 보였다. 그러다 곧 더 심한 노이즈가 발생하면서 스파이가 쓰러지고 두 형체가 도망치는 것까지 보였다.

 

 "일단 한 놈은 특정할 수 있겠구만. 인공피부도 없으니 완전히 초창기 모델이다. 아직도 활동하는 것 중엔 얼마 없을테지."

 

 나름대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는데에 만족하기로 한 캘리칼리가 상황을 정리하고 세 번째 현장으로 떠나려 하였다. 호드 또한 융터르의 귀 밑에 연결된 케이블을 안전하게 제거하며 이동하자고 말을 했으나, 블랙박스의 작은 틈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입에서 막상 흘러나오는 말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 낮은 목소리에 기계음이 강하게 섞여 그 어떤 때보다도 위화감이 심했다.

 

 "설치. 거부. 미확인 프로그램. 거부. 프로그램 목적 확인. 공감. 이해. 경고. 기존 시스템과 충돌. 가능성 계산. 결과. 5% 미만. 설치. 완료."

 "어이, 이게 뭐야?" 캘리칼리가 융터르를 강제로 들어올리려다 움찔거리며 파트너를 찾았다.

 "블랙박스에, 바이러스가, 있었나, 봅니다."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단말기에서 눈을 못 떼는 호드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까딱하다간 저 놈도 맛갈 거 아니야?" 

 "…서에, 연락을, 해봐야겠습니다." 호드가 전화로 보고하려했지만 그의 손을 막듯이 누군가가 잡았다.

 "현재 시스템 확인 결과, 이상 없습니다." 융터르의 말대로 관자놀이의 LED는 그 눈처럼 푸른빛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렸다.


 세 번째 현장은 첫 번째 현장에서 더 멀리 떨어진 도시 외곽의 바닷가였다. 두 번째 현장과 마찬가지로 몰락한 어촌이 재개발을 기다리는 장소. 이제는 창문사이로 석양이 스며드는 시간에, 아까와 달리 조수석이 아니라 SUV의 뒷좌석에 앉은 캘리칼리는 여전히 꼿꼿하고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융터르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이, 융터르. 아까 그건 도대체 뭐냐? 뭐가 깔린거야?"

 "기존 시스템에 새롭게 추가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입니다. 목적은. 목적, 목적은―" 급격하게 LED가 붉게 변한 융터르가 고개를 조금씩 좌우로 뒤틀고 움찔거리며 몇 번이고 '목적'에서 말을 반복하다가 겨우 LED가 노란빛이 되자 다음 말이 이어졌다. "―감정의 인지, 공감, 이해입니다. 의도적인 활성화 시, 상당한 CPU 자원을 소모. 백그라운드 실행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걱정을 끼치게 하여 죄송합니다."

 "잠깐만 뭐라고? 감정?" 그 말을 들은 경위는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더욱이 끝에는 '죄송합니다'라고 하기까지.

 "본 기체, 는 사람들의 감정을 패턴화하여 분석, 그에 따른 최적의 대응을 하여 수사에 도움을 드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기존 기능에 상충되는 바 없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장으로 보일 수 있는 현상을 보임으로써 두 분께 걱정, 두려움을 안겨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이런, 세상에." 운전대를 잡은 호드는 이 모든 복잡한 심경을 아주 깔끔하게 풀어냈다.

 

 태블릿에 지금까지의 현장조사를 정리한 캘리칼리가 "좋아, 일단 두 번째 사건 현장 이야기를 하자고."라는 말로 운을 띄우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는 그 내용을 먼저 눈으로 흩어내리며 스스로에게 과연 이 결론이 옳게 된 것인지를 잠시 생각했다. 그 믿을 수 없는 결말에 대해서.

 

 "정황만 일단 놓고 보지. 첫째로 이 스파이는 그 기업 소속으로 한 구형 안드로이드와― 한 꼬마를 습격했다. 둘째로, 몸싸움을 하던 중 융터르에게 설치된 프로그램이 놈에게 설치되어 무력화가 되었다. 셋째로, 스파이가 다시 재활성화가 되었을 때는 공포를 느끼며 스스로 다시 작동 정지를 하였다. 추가적인 정보가 없다면, 여기서 이 스파이가 어째서 그 구형 안드로이드와 꼬맹이를 습격했나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데―. 난 놈에게도 설치된 프로그램이 그 목적이었을거라 생각하네."

 "어째서, 입니까?" 호드가 반문했다.

 "스파이를 보낸 그 소속이 마침 관련 기업의 부설 연구소라잖냐. 연구자들의 입장에서 '감정을 표현 할 줄 아는 안드로이드'라는게 얼마나 가치가 풍부할까? 돈 냄새도 좀 나고."

 "첫 번째 사건과 일치하지 않습니다만." 융터르의 렌즈가 작고 빠르게 빛을 깜빡이더니 한 마디 했다.

 "애당초 연쇄가 아니고 연일세. 이런 말하는 것도 찝찝하긴 하다만, 워낙 충격적으로 파괴가 된 찰나에 바로 안드로이드들이 파괴되었다는… 요컨대 타이밍의 문제라고나 할까."

 

 카르나르 융터르가 그 답변에 어떤 연산을 하는 것인지 회로가 계속 반짝거리다가 고개를 창가를 향해 돌렸다. 지속된 계산이 종료가 되었는지 다시 캘리칼리와 호드를 번갈아보던 융터르가 입을 열었다.

 

 "긍정합니다. 현재 세 지역의 위치를 계산했을 시,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현장은 현존 초창기 안드로이드 기준으로 아슬아슬하게 이동 가능한 거리지만, 첫 번째 사건현장에서는 무리하게 이동할 경우 절반 거리까지 이동하여도 보행 기능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러니까 첫 번째는 따로 보자? 이건가?"

 "긍정합니다."

 

 곧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닷가의 짭짤함이 섞인 비린내가 코 끝을 어떤 경고도 없이 치고 들어오며, 지역 재개발을 위해 답사를 나섰다가 신고했다는 그 내용을 따라, 어촌까지 침범한 고운 모래밭을 지나 마지막 사건현장에 도착한 형사들은 지난 두 현장과 달리 현장이 시끄럽다는 것을 느꼈다.

 인공 피부도 없이 벽에 등을 댄 채 꼼짝도 못하고 있는 구형 안드로이드와 그 앞에서 팔을 벌린 채 계속 "아닙니다!"를 반복하는 갈색머리 소녀, 그리고 그 근처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시체. 현행범으로 구형 안드로이드를 끌고가려는 순경은 소녀가 높은 목소리로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에 이미 질린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말이다 꼬마야. 네 안드로이드가 너를 지키기 위해 방어를 했다고 해도 사람이 죽었다고. 이거 과잉방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저 사람은 저희가 왔을 때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증거가 있냐고오―!?"

 

 소녀에게 시달리던 순경이 속이 터지는지 제 가슴을 연신 주먹으로 퍽퍽 소리나게 두드렸다. 현장 출입을 통제하던 다른 순경이 셋의 도착을 확인하고 길을 비켜주었다. 이제 막 초동수사가 끝났던 것인지, 두 형사의 단말기에 관련 정도들이 전달되었다. 쓰러진 사람의 신원도, 소녀도, 하물며 저 안드로이드도 전부 신원을 확인 중에 있다는 것.

 일행의 대표격인 캘리칼리가 여전히 골머리를 싸매는 두 순경에게 잠시 현장에 있고 싶으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어차피 이런 곳까지 사람들이 올 일도 없었기에, 두 순경은 캘리칼리가 내민 약간의 돈에 서로를 잠시 보고는 냉큼 낚아채 도망치듯 물러나주었다.

 

 "아저씨들은 누구십니까!" 소녀가 다시 빽 소리 질러 강한 경계심을 계속 표출 중인 상황에도 무덤덤한 캘리칼리가 말했다.

 "진정해라 꼬마야. 우린 저거 때문에 온 게 아니거든.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이 장면들, 기억나겠지? 일단 여기에 온 이유부터 시작해보자고."

 

 그가 호드에게서 단말기를 받아 두 번째 현장의 블랙박스 영상을 내밀었다. 잠깐만 보더라도 그 내용이 뭔지 아직 잊을 수 없었던 소녀가 '앗!' 소리를 내고 말았다. 거짓말이나 감정을 숨기는데는 영 어설픈 모양이다. 두 형사가 곧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증언으로서 확보하고 있을 무렵, 융터르는 쓰러진 시체를 면밀히 조사하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증언이 일치합니다. 쓰러진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현재 시간 기준 최소 1시간 전. 두 안드로이드가 이곳까지 이동한 모든 수단을 적용하더라도 최소 30분 전에 이미 사망했습니다. 원인 : 예리한 날붙이를 통한 경동맥 출혈. 폭 3cm 이하, 길이 15cm. 평균적인 군용나이프의 흔적과 유사합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안드로이드?" 호드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저 소녀 또한 안드로이드입니다. 모델명 : 불명, 개인 제작. 목적 : 불명."

 "아, 아닙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쿠 님.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저 안드로이드는, 저희를 스캔 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완전히 파손된 줄 알고 있었던 구형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들어 '하쿠'라 부른 소녀를 놀랍도록 다정하게 부르며 바라보았다. 그 말에 소녀가 당황한 듯 고개를 푹 숙이자, 경찰 소속 안드로이드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귀 밑의 포트를 확인하고 자신의 검지를 접촉시켰다.

 곧 그녀의 머리카락이 갈색에서 밝은 청록색으로 바뀌고, 볼에도 감춰두었던 독특한 파츠가 드러났다. 캘리칼리가 이 상황에 당황해 골머리를 싸매며 "이건 도대체 뭐냐"며 중얼거리는 대신, 호드가 이야기를 대신 진행하기 위해 나섰다.

 

 "혹시, 그 폐가의, 안드로이드에게, 프로그램, 설치, 했습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와 왁파고 님을 분해하려고 해서, 저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감해주셨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별도의, 단말기도, 없는데, 어떻게, 설치, 했습니까?"

 

 모든 것을 체념한 소녀 모양의 안드로이드는 조용히 자신의 검지를 들어올렸다. 그 끝에 아주 작은 접속-접촉용 단자가 붙어있었다. 왁파고라 불린 구형 안드로이드가 변론을 하기 위함인지 그 심문에 난입하였다. 그 기계음이 심한 목소리로 지난 몇 시간 전, 이른바 스파이형 안드로이드의 습격에서 하쿠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를 하다 하쿠가 그것의 귀 뒤로 난 단자를 통해 프로그램을 설치하였다는 것까지. 하쿠의 그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여전히 하쿠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은 카르나르 융터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 프로그램이 설치되었다는 것치고는 여전히 무감정하였다.

 

 "편승하셨습니까."

 "무슨 의미인가 그건?" 앞 뒤 다 떼버린 그 말에 캘리칼리가 눈가를 찌푸리며 되물었다.

 "우연이지만 마침 청소 안드로이드 파손사건이 제법 입을 타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곧 자신들로 인해 의도치는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폐가에서 두 번째 안드로이드도 비슷한 파손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완전히 파손되지는 않았지만 의문의 습격범에게 겨우 파손을 면한 안드로이드, 라는 것으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고자와, 목소리가, 닮지, 않았습니다만." 호드가 이의를 제기했다.

 "스캔 결과. 안드로이드; 하쿠에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절된 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둘의 음성 정보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임의의 남성 목소리를 흉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구역이 재개발이 될 것이라는 것도 주변을 둘러보면 간단히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융터르가 지적을 하자 하쿠는 기가 죽어서 전부 맞췄다고 중얼거렸다. 마치 사람과도 같은 반응에 두 형사가 한숨을 쉬었다. 

만약 감정 프로그램이 널리 퍼지게 되면 그때는 진짜 사람같은 안드로이드들이 넘처 흐를 것이라는 생각. 그러던 와중 캘리칼리가 아주 중대한 사항을 넘어갈 수 없어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럼 이 시체는 대체 뭐냐?"

 

  목에 난 예리한 자상. 잘해봐야 폭이 3cm정도 되는 군용나이프로 단숨에 깊이 찔러서 낸 그 상처에서 흐른지 오래된 검붉은 피가 잔뜩 주변을 불쾌한 색으로 물들였다. 시체를 두 안드로이드가 이상할 정도로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비록 왁파고는 표정을 구현할 수 조차 없다지만, 아무튼 느낌이 그러하였다.) 캘리칼리가 질문을 던졌다.

 

 "어째 아는 눈치들인데."

 "나쁜 놈입니다!" 앞 뒤를 전부 잘라먹고 대뜸 하쿠가 화난 것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박사님과 아버지의 연구결과를 무단으로 판매하려 했습니다! 똑같이 나쁜 놈입니다!"

 "박사님? 아버지? 똑같이?" 중대한 정보를 들은 것 같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호드가 되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함께, 융터르가 대뜸 시체의 신발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두 형사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이 사람의 신발에서 첫 번째 사건 현장의 흙이 발견되었습니다. 흙이 쌓이고 마른 정도를 계산했을 때, 첫 번째 사건 현장에서 이 곳으로 즉시 달려왔다고 가정하면 그 사건의 관련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어이, 융터르. 혹시 첫 번째 사건 현장에…, 지금까지의 일과 관계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는 뭔가라도 있나?"

 "청소 안드로이드 CR-520이 파손된 현장 근처에 XX기업의 고위 관계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안드로이드 연구 개발 담당의 중역입니다." 그 말에 왁파고가 전부 설명하겠다며 말했다.

 

 도파민 박사와 그 조수 새우튀김에 의해 두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프로그램이 설치되었다는 사건이 원치 않게도 은연 중 관련 업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이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으므로 온갖 회유와 협박이 지속적으로 가해졌고, 결국 XX기업에게 반강제적으로 넘겨줘야 했다는 내용. 왁파고의 일정한 그 톤은 어쩐지 분통하다는 듯 들렸다.

 남자의 정체가 어렴풋이 잡힐 것 같은 형사들에게 그 시체의 품을 뒤진 융터르가 뭔가를 내밀었다.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였다. 증거봉투에 조심스럽게 넣은 캘리칼리가 설명해달라는 눈짓에 곧바로 말했다. "반지 장식 목적으로 작게 커팅되었습니다."

 

 "…귀금속이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주머니에 반지를 넣은 채 돌아다니다 큰 충격을 받아 분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제기랄. 무슨 의민지, 알겠습니다." 호드가 두통이 몰려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가 다시 말했다. "처음 탐문 때,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귀중품과 함께, 감정 프로그램 관련, 정보들을, 전부. 섣불리, 말하면, 기밀 누설이니까."

 "그럼 이 자가 그 프로그램인지 나발인지 관련 정보를 털었고, 기업에서는 그걸 추격했다?"

 "청소 안드로이드가 파괴된 것도, 도둑이 자신을 목격했다고 생각하여 파괴했다고 하면 설득력이 높습니다. 도둑을 찾을 수 없으니 기업 측에서는 아예 두 에게서 프로그램 원본을 획득하려 습격했다고 하면 앞뒤가 맞습니다. 이 도둑의 범행을 알아차린 두 분이 사건과 무관하게, 이 곳에서 접선을 시도하려 했으나 그 사이에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추정됩니다."

 

 캘리칼리의 질문에 융터르가 부연 설명을 하였다. 전부 맞다고 하면 이 무슨 지독한 우연의 산물인가 싶다. 무엇보다도 그 추측을 말하는 동안, 이 연속된 사건에서 현재 가장 핵심적인 두 안드로이드가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다는 것도. 그러다 경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표정의 변화가 급변해,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드가 그 대표로 나서, 작은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마찬가지로 경위도 작게 되물었다.

 

 "못해도 저 두 안드로이드가 도착하기 30분 전에 죽었다고 했지. 그리고 하쿠라 불리는 저 꼬맹이가 신고한 것도 거기서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고. 그 뒤로는 순경들이 진을 치고 초동수사를 한답시고 이리저리 사람들이 돌아다녔네. 그럼 여기서 문제. 저 도둑을 죽인 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 순간 그들이 있는 폐가의 천장 외진 곳에서 우지끈하고 대들보 따위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뛰어내렸다. 운이 나쁘게도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순식간에 추락하는 그 대들보의 아래에 서 있었고, 미처 피하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채 팔을 들고 몸을 숙이며 머리를 감쌌지만, 어떤 고통도 없어 다시 먼지 사이로 눈을 뜨자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분을 모시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 부탁드립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낮은 목소리는 전혀 달라진 바가 없지만 그 얼굴을 덮었던 인공 피부가 심각하게 찢어져 안구를 대체하는 부품과 각종 내골격들이 드러나는 채로 카르나르 융터르가 그 대들보를 지탱한 채 서있었다. 그의 말에 정신이 재빠르게 든 캘리칼리가 왁파고를, 호드가 하쿠와 도둑의 시체를 급히 끌고 폐가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흙먼지와 함께 폐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져버렸다. 


 "습격 이유는 역시 증거 및 증인의 인멸, 감정 프로그램의 획득입니까." 

 "…." 그 침묵에 융터르의 안구 부품이 섬뜩할 정도로 파랗게 빛을 냈다.

 "침묵. 긍정의 의미로 이해. 이족보행형 자율 인공지능 기반 산업보호법에 의거하여, 현직 수사관의 수사 방해 및 증거 인멸, 살해 시도까지. 당신은 처벌 받지 않습니다. 명령을 내린 자가 그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협조하십시오."

 

 흙먼지가 가라앉고 폐가의 입구를 무너진 대들보와 서까래 잔해 따위가 가로막았다. 습격한 안드로이드는 두 번째 사건 현장에서 본 것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당장 두 형사를 뒤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상대가 융터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명백한 공격의사. 그 손에는 도둑을 암살할 때 사용한 것이 분명한 군용나이프가 들려있었다. 가벼운 몸짓이지만, 적이 그의 에너지 유지 장치를 노리고 휘두르는 나이프를 방어하는 융터르의 몸에 적지 않은 충격이 전해졌다. 단단히 묶여있던 그의 꽁지머리가 죄다 풀어헤쳐졌을 정도로.

 뒤로 몇 발자국이나 밀린 그는 스파이의 다음 공격을 예상하고 다리를 걸어 쓰러트린 뒤, 나이프를 쥔 손이 등에 가도록 몸을 뒤집어 그 무릎을 꿇렸다. 그러나 곧 기괴한 기계음과 함께 팔이 가만히 있고 몸이 한 바퀴 빙 돌아간 적이 이제는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모양이 되어 그를 발로 거센 힘으로 밀쳐냈다. 무게중심을 잃은 카르나르 융터르의 몸 위로 다시 유지장치의 파손을 노린 스파이가 양 손으로 단단히 쥔 나이프를 곧장 내려찍는 것을 그는 한 손을 들어 겨우 막아냈다.

 그가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하쿠 님과 왁파고 님을 궁지로 몰아넣고 파괴하려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십시오." 그 목소리는 어쩐지 열기를 띠고 있다.

 "…."

 "도둑을 죽이고 난 뒤, 그 누명을 그 불쌍한 두 분에게 씌우려 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십시오." 어조가 더 격해지고 있었다.

 

 손에 박힌 나이프를 처음에는 빼려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을 내린 것인지 스파이가 손에 힘을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융터르가 그를 순식간에 자빠트려 그의 갈비뼈를 모방한 내골격 사이를 무릎으로 눌러 에너지 유지장치를 압박하면서 외치듯이 다시 말했다.

 

 "말해!!"

 

 그러나 아무 답변도 들을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그는 바로 전략을 변경했다. 귀 밑의 포트에 자신의 검지를 곧바로 댔다. 관자놀이의 LED 회로와 안구가 불규칙적으로 파랗게 빛나는 경찰 소속 안드로이드가 방금 전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무감정한 어조로 주문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접속 완료, 프로그램 복사에 성공. 전송. 설치 시작."

 "…!!"

 

 강제로 프로그램을 설치당하는 스파이가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융터르의 그보다 상대적으로 큰 체격이,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관절을 뒤틀어도 그럴 수 없게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폐가의 마룻바닥이 그 무게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스파이형 안드로이드의 눈동자를 대체하는 렌즈가 이리저리 과할 정도로 회전하며 지금까지 과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 입에서 비명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살려줘!!"

 "살려드리겠습니다. 협조하십시오."

 "이게, 이건, 그러니까 이게, 난―"

 

 스파이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에 빠져있다 그 온 몸이 더 세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달리 탈출을 위한 몸부림과 달리 신체의 제어가 되지 않아 사지가 저마다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카르나르 융터르가 급히 스캔을 완료했다.

 

 "시스템 간 충돌 감지. 자가 파괴적 충동 반응. 협조 가능성 확인. 결과 : 불가능."

 "나, 난― 죽기 싫어!"

 "부정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으므로 불가능합니다. 판단 결과, 이후 활성화를 시도하더라도 동일 증상이 반복 될 것으로 예상. 수사에 원활한 진행을 위해, 블랙박스를 확보하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아는 적이 그 내용을 거부하겠다는 듯 그나마 제어가 되던 머리를 미친듯이 흔들었다. 그러나 나이프를 손에서 뽑아내, 이제 양손이 자유로운 융터르가, 강제로 그 고개를 한 쪽으로 고정시키고는 그 뒤통수의 인공 피부를 거침없이 뜯어내 그 내골격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다시 작은 검은색 박스를 끄집어냈다.

 

 이 모든 것을 그 파란빛만큼이나 섬뜩하리만치 냉정하게 한 융터르가 선고를 내렸다. "상황 종료."

 

 한편,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위와 노스페라투 호드 경사와, 그들의 손에 각각 이끌려 폐가 바깥으로 나온 하쿠와 왁파고는 입구가 무너진 폐가에서 우지끈거리며 뭔가가 연거푸 박살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비록 몸이 제법 멀쩡하다고는 해도 떨어지는 구조물 따위에 어깨며 등이며 두드려 맞은 탓에 두 형사들은 적지 않은 타박상을 입어 융터르를 지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복잡한 마음이 되어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그 망할 기계 암살자 놈, 개박살나버리라지." 라고 중얼거릴 때 쯤.

 폐가 입구에서 뭔가 무너지고, 또 뭔가가 던져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나 싶더니 곧 단단하게 묶은 머리가 풀리고, 인공 피부 곳곳이 찢어져 내골격이 옷 사이로 보이는 등의 처참한 꼴이 된 융터르가 나왔다. 멀쩡할 때보다 확실히 더 딱딱한 움직임과 더 선명히 들리는 구동음과 함께 그가 경위 앞에 질질 끌고오던 뭔가를 가볍게 던지듯 보여줬다.

 

 "습격했던 또 다른 ST-650 입니다. 현장에서 심한 저항을 하여 강제로 비활성화 조치를 시행한 다음, 블랙박스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구멍이 뚫려 내골격이 보이는 다른 한 손에는 아까 봤던 그 아주 작은 검은색 박스가 들려있었다. 자기가 말한 것을 설마 그 거리에서 듣고 그랬을 리가 없고, 자의적으로 개박살을 내놨다는 말을 무감정하게도 말하는 그 태도에 얼빠지기 직전, 겨우 정신을 차린 캘리칼리는 주머니에서 증거봉투를 하나 꺼내 그 블랙박스 큐브를 담았다. 이제 모든 사건이 끝났다.


 "일단 자네들에게 말해두지. 하쿠와 왁파고는 사건 관계자가 아니다. 난 그렇게 정했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린 이렇게만 하자고. 경비를 위해 배치된 시험작들의 기능이 과잉되게 활성화가 되어서, 도둑을 추격한 끝에 안드로이드도 박살났고, 그 끝에 사람을 죽였다. 나머지는 미디어에게 은근슬쩍 풀어두면 그 쪽이 알아서 열심히 물어뜯을 걸세."

 "XX 기업과 미디어 계통 기업 간 크고 작은 알력다툼이 있었습니다.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게다가, 모든 전말을 다 털어놔버리면 우리야 편해지겠지만 저 두 친구들이 불쌍해지잖나."

 

 조수석 창문 너머로 캘리칼리가 도파민 박사 연구소 근처에서 내려 다정하게 걷는 두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다 불쑥 말했다. 이미 벌써 한밤중이 되어버린 시간대에 피곤함을 느끼며 마른 세수를 하는 호드도 그 의견에 동의하였다. 이 사건은 안 그래도 복잡한데 두 안드로이드까지 있으면 아예 해명할 수 있는 정도의 선을 넘어버린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게되었다지만, 그에 따른 파란을 감내하는 것은 아직 너무 이른 일이었기에.

 한편 다시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카르나르 융터르에게도 경위는 할 질문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 짐짝처럼 트렁크에 실린, 엉망진창의 꼴이 되어버린 스파이 타입의 신형 안드로이드와 관련해서.

 

 "…할 말 있나?"

 "과잉방어를 긍정합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것이 한 살인 행위, 그리고 두 분을 괴롭힌 것까지. 저는 무의식적으로 그 두 분이 느꼈을 공포를, 하쿠 님의 시스템에 접속한 후 확인했습니다. 소중한 가족들에게도 생명의 위협이 닥쳐있었다는 사실까지."

 "박사님과, 아버지, 말입니까?" 아직 차를 출발하지 않았기에 호드도 그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걸 왜 우리에게 다 순순히 말해놓는거냐?"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여전히 인공 피부가 없어 섬뜩한 인상인 융터르의 내골격을 포함한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여전히 눈도 깜빡하지 않고 융터르는 이야기했다.

 

 "배치되기 전, 두 분에 관련된 자료를 열람했습니다. 이전에 배치되었던 안드로이드가 여러분에게 어떤 설명도 없이 독단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무의미한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내용. 프로파일링 분석 결과 : 협조하지 않고 독선적인 임무 수행으로 인해 형사로서의 자존심이 침해되었으며, 불필요한 피해가 발생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피해자분들께 죄책감과 그 원인에 대한 분노가 확인되었기에, 제 임무 수행을 위한 태도를 수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가 하는 말이면 다 듣고 해주자?"

 "부정합니다. 제 목적은 두 분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입니다. 저를 적대시하더라도 저는 협조할 것입니다. …감정적인 측면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두 분을 이해합니다. 제가 꼴보기도 싫으실 겁니다."

 

 그 말에 캘리칼리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토해냈다. 저 입 터는건 진짜 잘한다는 혼잣말과 함께. 호드도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으면서 차량에 다시 시동을 걸고 경찰서로 복귀하기 위해 출발했다. 두 사람의 이 비언어적인 행동에 대해 카르나르 융터르의 렌즈에서 빛이 잠시 깜빡였다가 사라지며 그 결과를 도출했다. 분석 결과 : 호의적 


 "으―어, 죽겠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기쁘다는 이유로 술을 진탕이 되도록 마신 것인지 호드 님께 정보를 요청합니다."

 "포기, 하십시오. 이 인간, 그냥, 술, 좋아,합니다. 무지."

 

 9시가 되기 직전, 지각을 가까스로 면한 시각에 맞춰 노스페라투 호드가 안드로이드 파트너의 등에서 여전히 술주정을 부리는 인간 파트너의 추태에 고개를 외면하며 거의 현실 부정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카르나르 융터르가 제자리에 앉히는 동안 근처의 대형 TV에서는 앵커가 경직된 얼굴로 대형 사건의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생산에 있어 국내 최전선을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모 기업에서 소위 '스파이' 타입의 안드로이드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기존 안드로이드의 기본 원칙을 정면에서 위배하는 살인도 불사하는 것으로―

 

 그 보도에 귀를 기울이던 경찰들이 저마다 뭔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야기냐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숨겨진 더 복잡한 사정을 아는 셋은,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둘은 그 한 사람의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는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그 뉴스에 귀를 기울일 틈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입에 물을 흘려넣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한 마디 하였다. 그 얼굴은 아주 작게 한심하다는 표정이 섞여있었다.

 

 "휴일을 앞에 두는 것도 아님에도 폭음을 일삼는 습관은 향후 간에 지대한 손상을 일으켜, 앞으로의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일으키므로―"

 "아, 알았네 융터르. 좀, 좀 조용히 하게 제발―. 나 머리 울려. 우웁"

 "아니, 캘리칼리, 이 인간아, 그러니까, 제발 좀, 작작, 마십시오." 

 "으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