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성피로 2022. 11. 19. 13:29

*이제 아저씨즈 히어로들이 전부 등판했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겠군요!

*아무래도 빌런도 나와야 할 것 같은 기부니가 들어서 오리지널 빌런이 나올 예정입니다.

*그래도 그걸로 너무 우려먹진 않을 생각이구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폭력조직의 '항쟁' 사건(사실 그는 해프닝 쪽으로 불리기를 바랬지만)에서 톡톡히 공을 세운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조만간 있을 승진 심사에서 좋은 소식 기대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표정이 영 떨떠름할 뿐이었다. 팀장은 그 모습에 "이 놈이 드디어 배가 불러서 뒤졌구나?" 라고 타박을 놓았지만, 누군가의 위에서 지시를 할 자신이 없던 캘리칼리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어서 곧 적응하면 다 된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하-아... 그냥 이 자리에 있으면 안됩니까?"

 "되겠냐?"

 "그쵸?"

 

 자리에 앉아서 오늘도 재미없는 서류 업무에 매진하는 일상 속. 지나가던 동료가 "거기 오타 났다." 라며 지적해주기 전까지 그는 그 때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을 카르나르 융터르라고 소개(를 그가 강요)한 자칭 상담사. 요새 판치는 자경단 치고는 꽤 재밌는 친구인데. 문득 그의 전화번호를 받았으니 말상대라도 해달라고 할까 했지만, 괜히 그의 심기를 거슬렸다가 부지불식간에 조종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한 몸서리를 치며 말았다.

 그러나 그의 단말기 속 메신저로 '나쁜 놈'이라 지정된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오호라, 이렇게 나오신다 이건가? 그런 생각에 만면이 미소로 가득 찬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갈 채비를 순식간에 갖췄다. 상관이 그 모습에 당황해서 외쳤다.

 

 "너 어디가 임마!"

 "외근 나갑니다!"

 "너 오늘 출동 건수 없잖아! 야!!"

 

 '망종 놈의 새끼'니 뭐니하며 상관이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는 캘리칼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팀장은 그의 오토바이가 거친 배기음을 내며 달리는 소리에 체념이 반이고 원망이 반인 어투로 "저 새끼한테서 기필코 내가 스테이크라도 얻어먹고 만다." 고 말하며 내버려뒀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생각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그는 어쩐지 고풍스러운 느낌의 식당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카르나르 융터르를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만날 수 있었다. 커피라고 해봐야 시럽을 듬뿍 넣은 종류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았던 캘리칼리이기에 '한 잔 얻어 마실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겠구먼' 라고 생각하며 그 맞은편에 앉았다.

 

 "어이, 나 불렀나?"

 "일찍 오셨군요."

 "뭐, 내가 좀 그렇지. 친구 좋다는 게 뭔가?"

 "벌써 우리가 친구사이였습니까?"

 

 당황한 것인지 언짢았던 것인지 한 쪽 눈가를 살짝 찌푸리는 융터르에게 캘리칼리는 예의 그 능글맞은 태도로 대꾸했다.

 

 "얼굴 봤고, 연락처 나눴고, 만나자고 하고, 게다가 같이 밥도 먹을 텐데 그럼 친구지."

 "저는 먼저 먹고 왔으니 편하신대로 주문하시지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메뉴판을 집어 휘릭휘릭 소리가 나도록 넘기던 그는 곧바로 주문을 했다. 그의 식사메뉴가 다름 아닌 케이크라는 것을 들은 융터르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외양만 보면 숫제 블루 레어 수준의 스테이크도 드실 것 같았는데요." 라고 대꾸했지만 이미 그런 반응은 동료들과 상관한테서 충분히 겪어온 그였기에 귓등으로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대신 휘핑크림을 포크로 떠서 입에 밀에 넣은 캘리칼리는 우물우물 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날 부른 이유가 뭔가?"

 "이걸 한번 보시지요." 라며 융터르는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가로로 돌려 그에게 건네주었다. 어떤 영상이 재생되었다.

 정수리부터 두 눈까지 붕대를 칭칭 감은, 대략 13살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이가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몰라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융터르의 전에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그 쪽을 바라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는 영상이 촬영되는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안녕, 얘야."

 "네. 안녕하세요."

 "지금은 좀 어떠니?"

 "의사 선생님이 많이 나아졌다고 했어요. 근데 눈은 어렵대요."

 

 어린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그 입이 네모꼴로 벌어지려는 모습이 곧장 울 기세였던지, 융터르가 어린이의 볼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평소에도 학대를 자주 당했던 모양인지 처음에는 흠칫하다가 이내 곧 상담사의 부드러운 손길에 의지하면서 눈물을 억지로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는 좀 지독한 아동학대범에 의한 피해겠거니, 하고 생각하던 캘리칼리가 저도 모르게 이어지는 내용에 놀라 포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저씨, 저 집에 돌아가기 싫어요. 아빠가 뜨거운 걸로 제 눈을 지질거에요. 아저씨, 저 집에 가기 싫어요."

 "돌아가지 않아. 그 사람이 없는 좋은 곳에서 네가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해줄거야."

 "아빠 이상해요. 늘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다가 저한테 악마놈의 씨앗이래요. 엄마도 그래요. 제가 태어날 적부터 죄인이래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나쁜 짓을 더는 저지르지 말라는 표현이란다. 달리 말하면 넌 죄인이 아니야."

 "엄마 아빠... 미워요..."

 

 영상의 마무리로 고작 13살 짜리가 부모에게 '밉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라니, 캘리칼리의 인상이 자동으로 험악해졌다. 머리 쪽이 기가 막힐 정도로 충격적이여서 그렇지, 환자복 사이로 군데군데 보이는 살갗도 얼룩덜룩한 정도가 매우 심했다. 그가 스스로 부상을 입었을 적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자면, 저렇게 심한 변색이 일어나기까지 최소한 무자비할 정도의 구타가 자주 동반되어야 했다. 아이의 목덜미에도 칼에 베였다가 아무 치료도 없이 방치해서 특유의 울룩불룩한 흉터가 생긴 자국도 보였다.

 형사는 왜 자신에게 이 영상을 보여줬는지 대강 눈치를 챘다. 악마니 뭐니 하는 말로 봐서는 일단 사이비종교에 관련된 이야기겠지. 하지만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신고를 하지 않고 자신을 따로 불러냈다는 것은...

 

 "이거,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뭐 대충 그런건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는 뭔가를 더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캘리칼리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그렇군. 근데... 이 영상 속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건, 자네가 그걸 저질렀다는 의미로 간주해도 되겠나?"

 "불가피했던 상황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 안해도 다 알겠네. 다만, 이럴 거면 영상만 보내줘도 될 것을 굳이 날 불렀다는게 조금 기분이 좋지 않은데 말이야."

 

 등받이에 몸을 기댄 캘리칼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처럼 자네 혼자 그 소굴로 쑥 들어가서 어찌저찌 할 테니 눈 감아달라, 뭐 이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건가?"


 "기왕이면 수사에 협력하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해주시지요."

 "요새 '자칭 자경단' 놈들이 오만가지 사건을 벌이고 있어, 걸리면 나라도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뻔뻔한 듯 나오는 융터르의 모습에 캘리칼리는 새삼 저 상담사가 단신으로 조직 폭력배의 소굴을 세 곳은 스스로 폭파시켰고 한 곳도 거의 그럴 뻔 했던 전적이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이나 읽는 양반이, 의외로 성정이 꽤나 과격하구만- 이라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이런 쪽으로는 그리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형사는 반사적으로 어떤 단어를 툭 내뱉었다.

 

 "내부 정보원?"

 "네?"

 "뭐, 생각해본 말이야. 자네가 물어 온 정보를 바탕으로 형사들을 이끌고 소굴을 정식으로 소탕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형사의 중얼거림에 상담사가 끄덕이며 말했다.

 "잠깐, 뭐?"

 

 상담사라는 양반이 뭐 저리도 섣부르게 내뱉은 말을 냅다 주워서 쓰나? 당황한 그가 상반신을 융터르 쪽으로 쭉 내밀었다. 당황한 그와 달리, 융터르의 표정은 변한 것 없이 태연해서 오히려 캘리칼리가 더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 이런건가? 헛웃음을 삼키면서 형사는 자기가 말한 방법의 단점을 설명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말하는겐가? 경찰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갈 때까진 자네에게 어떤 신변의 안전도 약속할 수 없어. 까딱하다가 걸리면 죽는다고!"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는 반사적으로 높이려던 목소리를 애써 죽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험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캘리칼리가 한사코 잊고 다른 방법을 찾자며 오히려 말을 돌리려 하였다. 얼굴은 그 무엇보다도 협박에 가까우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애원 비슷한 뭔가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커피잔을 깔끔하게 비운 융터르는 태연한 얼굴로 "그건 각오하고 있습니다." 라며 대꾸할 따름이었다. 내적으로 한숨을 쉰 형사는 저 태도도 그의 나름대로의 배려임을 느끼고 있었다. 수틀리면 그냥 세뇌시키고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자신의 손을 거쳐 지나갈 합법적인 방법으로 유도하려는 것을 지금까지의 대화 흐름으로 모르면 그건 눈치가 없는 것이겠지. 눈을 감고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어떻게 해야 하나 깊게 고민하던 그는, 차라리 자신을 지금껏 살려왔던 직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좋아. 맘가는대로 하게. 요령껏 알아서 잘, 딱 눈치 있게 발을 뺄 때는 빼라고. 알았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연하게 일어나 식당을 나가는 자칭 상담사의 모습이, 마치 첫 날에 만났던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이었나 자신의 선택이 못 미덥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쏟아져버렸고,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결정을 빠르게 내린 형사는 그저 그의 속을 잔뜩 뒤집어 놓고 간 이 나쁜 놈이 잘 해내기를 무심코 빌었다.

 

-6. 나쁜 놈 이야기 - 자경단원(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