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 순수하게, 지독하게
1. 사실 이거 진짜로 관 보냈던 것 맞습니다.
2. 근데 성직자 융터르에, 악마 프리터? 이걸 누가 참을 수 있겠습니까?
3. 그래서 정말 못 참았습니다.
4. 내친김에 등장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해루석 님도 추가하는걸로.
천상은 생각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었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악마들에게 어느 정도의 유예를 허가해준 것만 보아도 그랬으니까. 그나마도 천사들이 나서서 한 것이 아니라, 최초로 지상에 올라올 것을 허가받은 악마 하나가 지속적으로 탄원을 한 끝에 이루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악마, 해루석은 술집 오너 Devil's Den을 오늘도 오픈하였다. 한쪽 팔은 등 뒤로, 다른 쪽은 가슴에 살짝 손을 얹은 채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손님들, 어서오십시오."
지옥에서 한껏 대기중이던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술을 마시고 온갖 놀이를 즐긴다. 술집이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잡다한 놀잇감이 많은 것도, 지상의 문물을 즐기라는 오너 나름의 배려다. 개중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엇을 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해하는 손님들도 있는 법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신참이다. 술집으로 올라와도 된다는 허가를 막 받은 악마들은, 악행을 일삼아야 하는 그 본능을 참은 댓가로 이 별세계에 눈이 휘둥그레 한 채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어리둥절해 했다.
"손님, 여기서는 그저 즐기시면 됩니다. 그 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공간이므로 주무시던, 만화책을 보시던, 물론 술을 드시던 그것은 손님의 자유입니다."
오너의 그 말이 어떤 주문이라도 되는 듯, 그제서야 술집에 새로 들어온 신참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흩어지기 일쑤였지만 낯빛이 보라색이며 유독 땅딸막한 한 악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술집의 유일한 출입문을 열었다. 그 행동을 우연찮게 본 입구 근처의 손님들은 저마다 비웃었다. 자신들도 처음 신참이었을 적 해보곤 했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늘, 그 누구라도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듣기로는 비교적 최근에, 이 술집의 단골이었던 뢴트게늄이 인간 하나와 계약을 맺고 술집 바깥으로 나갔다고 하지만 누가 자신들과 계약을 해주겠는가. 그러나
"손님? 어? 손님?!"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오래된 악마, 해루석 마저도 그 행동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점차 돌아가는 고개를 막을 수 없었다. 더는 당황할 일도 없었다 믿었건만, 그 매끄럽고 검은 장발이 급히 헤엄치기 시작하고 출입문으로 황급히 다가갔을 적에는 이미 늦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 순진무구한 악마가 출입문 너머, 즉 바깥에서 몸을 돌려 당황한 얼굴로 대답해버렸다. 말투가 심히 개성적이지만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로.
"예? 그으―, 무―슨일! 이십니까?"
"이런…!!"
햇빛을 받고 있는 그 모습. 보랏빛 피부가 그 아래에서 도드라지는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현상을 부정하고 싶어도 이미 몸으로 증명해 낸 사실이지 않은가. 해루석의 머리는 이제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그의 입에서 "어, 아니"만 연거푸 나와버리는 상황. 순식간에 술집의 유일한 출구로 수많은 악마들이 몰려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출입구를 일제히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어떠할지도 이미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얼떨결에 바깥에 나온 자의 표정이 증명해주지 않는가.
주위에서 들끓는 기운을 느낀 해루석이 황급히 자신도 출구로 나와, 과한 긴장감으로 굳어진 그에게 명함을 한 장 재빠르게 건네주며 일렀다.
"지금부터 다른 곳은 절대 가지 마시고, 무조건 이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가서, 제 이름을 대면 됩니다."
"아, 아―니! 여, 여기는 성!당이 아닙니까?"
"더는 물을 시간도 없습니다! 서두르세요!"
해루석의 그 단호한 얼굴에 영문을 모르는 채로 보랏빛의 작은 체구가 훌쩍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술집 안쪽이 온갖 가구 따위가 박살날 것 같은, 그런 요란하고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떠난 자리가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버렸다. 복구하는데 얼마나 돈이 들지 순간 아득한 정신이 되었던 그는 더 따질 겨를도 없이 그만하라며 그 난장판에 몸을 던져야 했다.
한편 이 작달막한 악마, 프리터도 문제의 성당까지 가겠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결코 쉽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출입문이 있으니 한번 열어본 것이고, 그 태양빛에 홀려 발을 내딛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순간의 실수가 그에게 있어, 지상도 지옥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변해버렸다. 그러나 이걸 자신의 탓이라고 하면 탓이겠지만 그 대가가 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너 임마! 거기 서!!"
"서란다고! 누―가! 서겠습니깟! 칙쇼!"
예를 들자면 지금 그 등 뒤로 쫓아오는, 도로 지옥으로 끌려가더라도 딱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저급한 놈들. 어쩌다 들은 것이지만 이 놈들은 자신이 모시는 높으신 분들에게 끌고 갈 것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는 자기들끼리도 어떤 합의가 없었는지 저들끼리도 다투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건 차라리 다행이다. 자신보다도 급이 낮아 어찌저찌 저리 썩 꺼지라며 쫓아낼만한 놈들이면 어떤 민폐를 더 끼치기 전에 어떻게든 무력을 써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점차 자신보다 더 강해보이는 놈들이 슬슬 쫓아오자 자신의 솜방망이 같은 공격은 기껏해야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할 정도에 불과했다. 더욱이, 문제의 성당이 어딘지 헤멘 탓에 힘이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크―읏소! 이거, 야―단이, 아주 그냥! 나버렸습니다…!"
악마같지 않은 악마. 어떻게 지옥에 있는 것인지 의문인 악마. 차라리 그렇다면 천사여서 이런 상황 자체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원망마저 들 무렵이었다. 이제는 거의 엉망진창에 가까운 그가 차라리 허우적거리는 것에 가깝게 사로잡으려는 공격을 애써 피하고 있을 무렵, 지옥에서도 몇 번 본 적있는 저 네모 납작한 상자. 피자 박스를 손에 쥔 채 어디론가 둥실둥실 날고 있는 천사가 보였다. 어째서 천사가 피자를? 그런 의문이 든 것도 잠시, 프리터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아이고―! 저기, 천사님!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에?"
나름대로 오래 살아왔다 자부하는 천사, 단답벌레는 이 괴상한 상황에 직면한 후 잠시 동안은 멍한 얼굴로 생각을 했다. 악마가 다른 악마에게 쫓기고 있으며 더욱이 자신더러 살려달라고 하는 광경. 소중한 피자가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곧장 불길이 이는 칼을 빼내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악마를 거절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열기에 움찔해서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 위로 뜨거운 것이 순식간에 훅 지나가더니 곧 뒤를 쫓아오던 놈들의 괴성이 들렸다.
"아이고, 맙―소사! 이런 세―상에…."
"…뭔 일?"
"호, 혹시! XX성당! 거기, 거기는 어디로 갑니까?"
"…예?"
이젠 하다하다 악마가 성당을 다 찾는다. 자신이 꼬치꼬치 캐물어봐야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그는 여전히 덜덜 떠는 이 작은 보라색 피부의 악마와 같이 성당으로 향했다. 물론 피자를 챙겨서.
성당에 있는 진짜 신부 둘, 가짜 성직자 하나, 그리고 악마 둘과 천사 하나라는 제법 이상한 구성원들은 단답벌레가 갑자기 데려온 작은 체구의 보랏빛 피부가 두드러지는 악마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프리터라 소개한 악마가 아직은 어리둥절한 이들에게 자신을 설명하였다. 오늘 하루 순식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처음에는 아직도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이 술집 밖으로 나왔다는 말에, 뢴트게늄의 눈이 어찌나 커졌는지 늘 쓰는 선글라스 너머로도 그 연록빛 눈동자가 다 보일 정도였다.
"진짜? 그냥 나왔다고? 그냥?!"
"그, 그―렇습니다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되는지요…."
"있지! 무진장 있지!!"
"뢴트야…. 그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는 말로 말을 해주는게 좋지 않겠냐…? 응?"
키가 압도적으로 크고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이 인상적인, 캘리칼리 데이비슨 아가토 보좌신부가 간만에 손가락을 뚜둑소리 내며 분홍색 머리카락의 대악마에게 위협적으로 말했다. 질리도록 저 신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대악마는 자기 체면을 진짜 못 살린다며 혼잣말을 하곤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놀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원래 그 술집 말이에요, 거긴 말하자면… 음. 모범수들에게 주어지는 혜택 같은 겁니다. 왜 사고 안 치는 놈들한테 사탕 물려주는거라고요. 지상에 올라와서 그 문물을 맛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한테는 어마어마한 선물 같은거죠. 대신 그것 까지에요. 그 술집 바깥으로는 절대로 나갈 수 없도록 해놨거든요."
"근데 넌 지금 나와있잖냐."
"그건 저와 계약을 맺어서 그런 겁니다." 라고 끼어든 것은 어떻게 하면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의아한 카르나르 융터르.
"저야 이 인간한테 코가 꿰여져서 나온거고 원래는 그게 정석이란 말이에요. 아님 기껏해야 소피아 님처럼 아예 한데 엉켜버려서 인간인지 악마인지도 모를 상태가 된다던가. 근데 지금 이 분, 프리터 님? 이 분은 그냥 어떤 계약도 없이 나왔다고요!"
그 순간 융터르의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사이비 성직자의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해루석이라는 이름의 오너이자 대악마. 한없이 무채색에 가까운 복장과 그에 걸맞는 검은 긴 생머리의 얼굴을 떠올린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실례합니다, 혹시 그 쪽에 작은 체구에 보랏빛 피부를 가진 악마 하나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조금 전에 당신이 보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계약도 없이 곧바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아이고… 이거 그나마 다행이군요. 아니, 다행이 아닌건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직은 뜬구름잡듯 전화를 건 용건을 이해할 수 없던 융터르가 해루석의 그 정중하고 신사적인 목소리에 의구심을 품을 때쯤, 그에게서 아무리 뻔뻔한 카르나르 융터르라고 해도 절대 표정 관리를 할 수 없는 답이 전화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들은 그 말이,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차라리 있길 바라며 그가 되묻자 돌아온 답은 한결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프리터 님의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악마들이 들고 일어섰다― 라는겁니까?"
"아, 아아니…. 도대, 도대체 왜!"
술집 안이 어떤 꼴이 되어가는지는 몰라도 결코 좋은 방향은 아닌 것이 분명한, 부서지고 떨어지는 등의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는 통에 전화가 끊어졌다. 하지만 정보 습득의 목적이라면 이미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전화였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말한 통에 프리터 또한 왜 오너가 이곳으로 자신을 보냈는지 단숨에 납득하고 말았다. 덩달아 그 내용을 듣게 된 뢴트게늄이 아직은 어리둥절한 사람들 사이로 외쳤다.
"아, 그런 방법도 있었지― 악?!" 그런 그의 정수리로 효자손이 떨어졌다.
"이 노므 샤끼가…. 뜸 다 들였으믄 후딱 말혀!" 이덕수 요한 주임신부가 짜증어린 눈으로 효자손을 쥔 채 답을 재촉하였다.
작은 혹이라도 났는지 정수리에 손을 대면 움찔거리는 대악마가 물기에 살짝 젖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악마 간에도 계약을 맺을 수 있으며, 그 밑으로 들어가는 종속 형식은 아예 자신이 일종의 노예가 되는 방식이므로 주인의 권한을 일부 받을 수 있다는 내용.
"그러니까, 저 놈들은 누가 보더라도 연약하고 힘없는 프리터 님에게서 자유롭게 지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을 얻으려고 자발적으로 밑에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아니! 근데 그래봐야 프리터 님이 니들 다 지옥으로 돌아가! 라고 하면 꼼짝도 못하고 들어가야 하는거 아닙니까?"
"원래는 그렇죠! 그런데…. 프리터 님이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붉은색 넥타이가 바람도 불지 않는 별채 안에서도 너울거리는 소피아의 질문에 뢴트게늄이 반문을 했다. 하트모양 파티용 선글라스 너머로 소피아의 파란색 눈이 유심히 프리터를 바라보았고 그 답은 꽤 금방 나왔다.
"어―. 못 하겠군요?"
"그런겁니다요. 이론상으로는 자기보다 약한 악마 밑에 들어갈 이유는 없지만, 이 경우는 다르잖아요? 지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다시 지옥으로 밀어넣지도 못하는 악마라니. 계약만 성공해봐요! 그럼 아주 살판 나는걸껄요?"
"아."
지금까지 얌전히 피자를 먹고 있던 천사, 단답벌레가 그 예상되는 미래에 인상을 썼다. 악마들이 깽판을 친다는 것은 곧 지상이 그만큼 난장판이 된다는 것이고, 그걸 뒷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그만큼 피자를 즐길 시간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잠깐 침묵이 있던 사이로, 뢴트게늄이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느냐는 계약자의 질문에 그가 입술이 댓발은 튀어나와서 말했다.
"저 잠시 지옥에 좀 갔다가 오려구요. 술집이 지금 엉망이 되었다잖아요? 그렇게 만든 놈들을 찾아서 당분간 못 올라오게 막아두면 조금이나마 사정이 낫겠죠, 뭐."
그제서야 사람들은 저래보여도 뢴트게늄이 지옥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남은 사람들이 어떤 얼굴인지도 모르는 채, 그의 껄렁거리는 걸음이 별채 바깥으로 사라지고 큰 키의 보좌신부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채 달달 떠는 프리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이 불쌍한 친구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비상대책 회의라도 해야 하나?"
"난 반대여. 요 놈꺼정 들이며는 인자 성당을 왔다갔다허는 악마샤끼들만 벌써 셋이여 셋. 그러믄 여기가 성당이냐?"
캘리칼리의 말에 이덕수 요한은 즉각적으로 반대를 표시했다. 뢴트게늄은 얼떨결에 저 사이비 놈에게 코가 꿰인 덕분에 여기서 살게 되었고, 소피아는 어차피 지옥으로 가도 지상에 올라올 수 있으니 차라리 옆에 두고 단단히 감시하는게 차라리 낫다. 하지만 프리터는? 굳이 이 곳에 같이 살 이유가 없고, 또 그런 여유도 이제 없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실제로 별채가 비좁기도 하였고.
융터르가 끼어들었다.
"도와주자는 것이 신부님의 객식구로 있게 하자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요는 프리터 님이 다른 악마들에게서 안전하게 지낼 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으응…. 헌디 악마라는 족속들이 본래는 나쁜 짓을 저질러 줘야 힘을 키우는 거 아니냐."
"맞긴 해! 그렇다고 우리가 이 친구더라 이런저런 짓을 해라! 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잖나."
"아니면 프리터 님에게 계약하자고 들러붙은 놈들을 쫓아내는 건 어떻습니까? 여차하면 도망쳐도 되는 거 아닙니까?"
캘리칼리의 반문까지 묵묵히 듣던 소피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늘 하는 말과 그 행동이 미덥지 못한 그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가짜와 진짜를 막론하고 세 성직자와 한 천사가 저마다 놀란 얼굴이 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가장 귀찮기는 하더라도 그만큼 뒤탈이 없는 깔끔한 방법이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 덧붙였다. 심지어 그 말에 단답벌레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허믄, 인자 으떻게 할거여?"
라는 말로 이덕수 요한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의 말대로 프리터에게 달려올 악마들을 상대한다고 치자, 그러나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가 다음 쟁점이 되었다. 막상 제안한 소피아도 그에 대해서 답을 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늘일 뿐이다. 캘리칼리는 아예 답답한 나머지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투덜거렸다.
"나 참, 놈들이 알아서 떡하고 대령하듯이 오는 것도 아닐테고."
"그거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만."
"엉?" 순간 캘리칼리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예전, 단답벌레가 사랑해마지 않는 피자집에 구멍이 났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던 융터르가 그 말에 착안을 얻어 이야기를 했다. 놈들을 잡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에 프리터가 있다고 말해,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이리저리 번지는 것도 막고 몰려오는 놈들도 잡자는 것. 달리 말하면 성당 마당에 악마들이 몰려온다는 소리이기도 해 주임신부의 표정이 한껏 구겨졌지만 그런 그마저도 별 다른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투덜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릴 뿐.
"으응. 츤지사방으루다가 깽판치는 거 꽁무니를 일일이 쫓아댕기는 거보다는 나은디…. 그걸 꼭 여서 혀야긋냐?"
"차라리 주님께서 계시는 이 곳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많은 수를 감당한다고 생각해보시지요."
"…염병헐."
이덕수 요한도 한때 이름을 날리던 구마사제였고, 그런만큼 다수의 악마들을 상대했던 적도 당연히 있었다. 그럴적마다 체력이 아슬아슬한 선에서 겨우 마무리를 지었던 경험을 떠올린 것이다. 무릇 이런 것은 기세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고, 그래서 유리한 장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노릇이다. 그러니 성당이야말로 이번 일에 있어 가장 유리하지 않겠는가. 결국 주임신부도 비록 떨떠름해하기는 했지만 그 작전에 동의를 하였다. 순식간에 일처리가 진행되는 모습에 캘리칼리가 정리를 해보았다.
"그럼― 일단 단답이와 나는 앞에서, 자네랑 신부님은 뒤에서 커버를 해주는게 좋겠구만. 소피아 자네는 여차하면 프리터를 들고 그… 망할 그림자 구덩이 같은거로 멀리 피신을 시켜주게. 가능한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좋습니다. 그럼 이제 연락을 할테니 미리 준비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는 융터르가 다시 손에 쥔 스마트폰을 들어 뢴트게늄에게 전화를 하였다. 마침 지상에 있었던 것인지 연결된 통화 너머로는 뭔가를 때리고는 나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제법 시끄러웠다. 아직도 뒷정리에 여념이 없는 모양이었다. 잔뜩 화가 났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는 듯 씩씩 거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저 지금 바쁜데요!
"쫓아다니시는 것보다 차라리 나은 방법이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만."
뢴트게늄이 뜨악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이래도 되는거냐는 말에 사이비 성직자는 이미 다 허가받았며 그 의문을 일축시켰고, 곧. 전화기 너머로 잔뜩 지쳤다는 듯 뢴트게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청스럽게도 XX성당에 그 프리터가 있으니 이제는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라는 말과 함께 뭔가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뢴트게늄의 뻔뻔하리만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놈들이 그 쪽으로 몰려갈건데요, 진짜 괜찮아요?
"괜찮겠습니까. 일일이 쫓아가서 잡느니 그냥 이 쪽으로 오라고 하는 건데."
어쩐지 투덜거리는 그 말에 뢴트게늄은 유쾌한 기분이 들어 깔깔 웃고 말았다. 자신이 장담한대로 희끄무레한 영체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저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장관이라는 생각도 들 무렵 전화 너머로 자신을 엉터리로 계약해버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안 오냐는 그 말.
-아, 아니이―! 저 방금 전까지도 개같이 굴렀거든요?
"… 좋습니다. 그럼 계약 파기를 하는 걸로―"
-아, 에헤이! 이 사람이―이! 지금도 개같이 구를 수 있다― 이 말 하려고 했다고요!
"가급적이면 빠르게 오시는 편이 좋겠군요. 지금―"
말을 이으려던 사이비 성직자의 눈이 찌푸려졌다. 원치 않은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연결이 끊어진 탓이었다. 최근에서야 겨우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주임신부가 긴장한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으응― 왔구먼." 이라는 중얼거림을 듣고서야 이 현상을 깨달았다. 워낙 놈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아예 전파조차도 닿지 않는 것이다. 그를 증명하듯 저 멀리서 희끄무레한 안개 따위가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언짢다는 듯 그 광경에 중얼거렸다.
"나참. 필사적이구만 이것들도."
"혜택."
그 곁에 서 있는 바람에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게 보이는 단답벌레가 그 답게 이 모든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하였다. 만약 프리터를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게 바칠 수만 있다면. 종자되는 악마들도 덩달아 지상으로 별도의 제약없이 나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도 필사적으로 몰려오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예전 그 폐가를 떠올린 캘리칼리가 질렸다는 얼굴로 성수를 품에서 꺼내는 융터르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놈들을 잡는다 치자고. 그럼 어떻게 할 참인가?"
"일단 지금은 몰려오는 잡졸부터 얼른 잡고… 생각해봅시다."
"하기야 일단 급한 불 부터 끄는게 우선이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본능적으로 악마에 대해 질겁해하는 단답벌레가 햇빛에 닿고나서야 보이는 몇 장의 날개로 훌쩍 날아오르며 불길이 이는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상황이 그야말로 혼잡함의 극치다. 무슨 이유에서 그러는지 명백한 단답벌레의 칼놀림이야 그렇다 치자. 어디서 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캘리칼리의 손에는 언제부터인가 십자가 모양의 양각이 눈에 띄는 황동빛 너클이 끼워진 채였다. 그런 덩치 큰 사제가 익숙한 권투선수의 자세로 입과 달리 손은 노련하게 그 희끄무레한 무리 중 흐트러진 놈들만을 노려 요령좋게 주먹질을 날리는 것이다.
한편 그 근처에서는 융터르와 같이 후미를 담당하기로 했던 이덕수 요한이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아무리 휘둘러도 부서지지 않는 효자손이 마치 제법 짧은 검과 비슷한 것이라도 된다는 양 휘두르고 있었다. 융터르 본인도 사용해봄으로써 잘 알고는 있지만, 한낱 효자손에 닿은 안개가 그 모양이 찌그러지는 모습은 어찌 설명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아찔한 느낌을 주었다.
"으아?! 이게 왠 난장판이래요?!"
"어―이! 뢴트야, 너도! 왔으면! 손을! 좀! 거들어라!"
주먹질 한 번에 단어 하나. 캘리칼리가 그렇게 순식간에 손끝의 타격감을 7번이나 느끼며 그 검붉은색 날개를 겨우 휘적이며 온 뢴트게늄에게 말했다. 성당까지 상당히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단숨에 날아와 지친 대악마의 입장에서 바라본 환경은 곧 빠르게 이해가 되었다. 본래라면 완전히 구마가 되어 진즉 사라졌어야 했을 놈들이지만 지금은 몸을 다시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데미지를 크게 입은 채 바닥을 뒹구는 모습이 자신과 단답벌레, 소피아, 그리고 어쩌면 프리터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나 참, 저 양반이. 말을 좀 해주시지!"
"시간 없으니까, 좀 서둘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쓰러진 안개더미 위로 성수도 뿌리고 성당에 비치되어있는 예식용 종을 청아하게 울리는데 집중하는 사이비 성직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소리에 악마로서 불쾌감을 어찌 할 수는 없었던 뢴트게늄은 부리나케 본래 자신이 맡았던 본분, 지옥의 문지기 역할을 다른 이들에게도 똑똑히 보여주었다.
"자, 자!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예?"
말은 그 답다고 해야할까 무려 수문장이라는 직책과 거리가 멀게 위엄은 없었지만, 곧 그 특유의 검붉은색 기운이 실린 발을 앞으로 내딛듯 쿵 찍자 모든 이들이 반사적으로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발구르기 하나로 제법 넓은 원이 생기더니 그 한가운데가 순식간에 갈라지고는 그 사이로 검붉은색 그림자가 마치 손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전 피자집에서 비슷한 것을 보았던 단답벌레는 아는 눈치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눈길을 보내자 뢴트게늄이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아잇! 이거, 일방통행이에요 일방통행! 예? 그거 뭐야?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고요!"
"으응…. 어찌 허는 말이 영 거시기헌디…."
듣기에 따라 묘하게 들리는 그 말에 주임신부가 떨떠름하게 말했지만, 대악마는 그런 것과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자에 붙들려 발버둥치는 놈들에게 지옥에서 다시 또 보자는 말을 과할 정도로 명랑하게 하고 있었고, 그의 합류로 확실히 수가 명백히 줄어들기 시작한 덕분에 의미없이 소모전을 치루느라 지쳐가고 있던 사람들은 한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까딱하면 곧바로 프리터를 데리고 어디론가 도망칠 준비를 하려던 소피아는, 낼름거리는 뱀의 혀와 같은 붉은색 넥타이가 허공에 휘적거리는 채로 상황을 보다가 김이 쭉 빠져서 긴장을 풀었다. 얼핏 그 자세는 방심한 자세이지만, 그 하트 모양 파티용 선글라스 사이로 보이는 눈은 연거푸 좌우를 둘러보며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도망칠 기세였다. 그 곁에 있던 프리터는 지금 이 상황이 뭔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자신보다는 키가 확실히 큰 소피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 겁니깟?"
"어? 아직도 모르십니까? 지금 당신 도우려고 하는거 아닙니까? 프리터 님!"
"아…아―니, 저는, 아이고 그만 저 좀 내려 주십시오―!!"
자신을 도운다는 핑계로 어느 순간엔가 소피아가 자신의 그림자로 일종의 튜브를 만들고는, 그 안에 프리터를 집어넣고 마구 흔들었다. 그를 지켜준다는 모양보다는 확실히 심심하니까 장난치는 것이 분명하다. 한참을 멀미에 시달리던 프리터는 자신이 악마인데도 어째서 신부들과 천사가 도와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마무리 질 수 없었다. 그 말을 할 무렵에는 이미 지옥으로 향하는 그 일방통행 같은 문이 서서히 닫히더니 곧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맨 땅바닥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에.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아―이고 이거, 감사합니다!"
융터르에게서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그 음료를 받아든 프리터가 시원하게 쭉 몇 모금 들이켰다. 자신이 우연히 쫓기던 그 악몽같은 날 이후, 프리터는 자신보다 덩치가 제법 크고, 그 현장에 있던 자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악마에 가까워보이는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상담을 하였다. 크나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소동이 정리 된 후, 다시 술집을 통해 지옥으로 들어가려던 프리터는 술집이 자신을 거부한다는 중대한 문제와 맞닥뜨려야만 했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말을 듣고 술집의 오너, 해루석의 얼굴을 잠시 떠올렸다. 아마도 프리터가 다시 돌아오면 술집이 지난번처럼 난장판이 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술집에 애착이 강한 그라면 충분히 있을법한 조치라며 설명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프리터의 보랏빛 피부가 더없이 창백해지며 더는 지옥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냐는 말을 더듬거리기에 사이비 성직자가 말해주었다.
"그럼, 악행을 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 하, 하긴! 그렇군요, 훗훗훗! 이거어― 조언, 감사! 드립니다― 음후후후!"
그 조언의 내용을 머리 속 깊이 새겨둔 프리터는 신이 나서 파닥파닥 소리가 나도록 순식간에 하늘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깔끔하게 내용물을 다 비운 그 일회용 컵은 어느 샌가 분리수거가 착실히 되어있는 모습. 조금 멀리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캘리칼리 데이비슨 보좌신부가 얼굴이 괴상하게 굳어진 채로 카르나르 융터르의 곁에 다가왔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물론이지요. 더없이 훌륭한 조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웃긴데 말이야…. 자네가 한 이야기들은 전부…, 그 뭐랄까― 착한 일들 아닌가?"
문제는 그것이었다. 이 사이비 성직자가 악마의 귓가로 속삭여준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명백한 선행투성이었다. 악마가 착한 일을 한다고 해봐야 몸이 쇠약해진다던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걸 권해준 사람이며, 또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악마라니. 자기 몫으로 카페에서 주문한, 태연하게 달콤한 음료를 한 모금 삼킨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니 훌륭한 조언 아니겠습니까. 프리터 님은 공연히 저희한테서 구마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이고, 사회는 그만큼 조금이나마 더 나아질 터이고."
"…자네랑 프리터 그 친구, 차라리… 그, 서로 바꾸는 건 어떤가?"
"글쎄요?"
그러고는 다시 음료수를 뻔뻔하게 마시는 모습에, 신학대에서 이상할 정도로 엮여온 바가 많았던 캘리칼리 데이비슨 보좌신부가 그 뻔뻔함에 한탄 섞인 소리를 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