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썰입니다./멤고 단편 - 그 외

태양계 순환열차에 탑승한 고객님을 위한 안내서(1)

김만성피로 2023. 3. 15. 23:58

1. 융텔 보면서 매번 이런거 쓰고 싶다 생각했는데 결국 저질렀읍니다.

2. 뭐 내면의 씹덕 이건 이제 지겨우실 거 다 압니다.

3. 뒤에 (1) 붙은거 보시고 짐작하셨겠지만 (2)도 쓸 겁니다. 언제 쓸건지는 몰루...


 이번 정차 역은 경유지인 테티스, 테티스 역입니다. 지구 시간 기준으로 1주일의 정차를 통해 정비 기간을 가질 예정이오니, 탑승하신 승객께서는 잠시 하차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짐을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태양부터 오르트 구름지대까지를 한 바퀴 순회하는 열차 내부에서 차장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올 쯤, 과연 역 주위로 진득하게 늘어진 환락의 거리가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더 이상 한 눈에 담을 수도 없는 거대한 목성이 배경처럼 드리워진 상태.

 수성부터 이 곳까지는 한 번의 정차도 없이 쉴 새없이 달렸지만,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가장 가까운 토성만 하더라도 이제 지구 기준으로 평균 27일은 달려야 도착하는, 본격적인 장거리 여행이 시작될 예정이다. 배달부 프리터는 목적지인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까지 가는 표를 끊었기 때문에 훌쩍 플랫폼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긴장감을 숨길 수 없어 두리번거렸는데, 비록 차장이 짐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하였지만 그가 맡은 것은 한 거대 기업의 기밀과도 같은 것이어서 주의를 기울이고 또 기울인다 한들 모자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화성에 본사를 두고 숱한 염문을 뿌린 회장이 남긴 유언장의 개봉 소식. 다른 후계자들에게도 이 소식을 위해 안내 차원에서 연락이 갔다지만, 회장이 가장 아끼던 반항아가 하필 트리톤으로 훌쩍 떠나버렸고 아예 통신마저도 두절된 탓에 이런 방면으로 명성이 제법 있던 프리터가 전달책을 맡은 것이다. 뜬 소문이라지만 기업 내부에서는 이 반항아가 돌아오는 것을 원치않아 하는 자들도 있다고 하기에 더더욱 입단속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속히 떠났으면 하는 열차는 1주일(지구기준)이라는 잉여로운 시간을 남겼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거 아주 그냥! 큰 일이 나버렸습니다―. 이거…."

 

 과연, 외행성의 입구 답다고 해야할 지, 자신이 탔던 열차 외에도 각종 교통수단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향해버리고 남은 승객들을 맞이하는 거리는 그야말로 사치와 향락을 문자 그대로 구현한 듯 하였다. 마음 먹기에 따라 프리터도 그 1주일을 즐겁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맡은 일도 일이었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플랫폼에 비치된 안내 디스플레이 속 눈부시도록 화려한 숙소들을 애써 외면하며 가장 저렴한 곳을 확인 한 후 떠나려던 작은 체구의 배달원은 몸을 돌리자마자 뭔가 부드럽고 새까만 것에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다.

 

 "아, 아―하니 이럴수가! 괜찮으십니까?" 엉덩방아를 찧은 채 그가 반사적으로 이야기를 하자 머리 위로 답이 돌아온다.

 "제가 드릴 말씀을 어째서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303호를 이용하시는 프리터 님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프리터가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자, 가슴까지 뒤덮는 짧은 망토가 달린 롱코트의 재질과 거의 똑같으면서 길쭉한 원통형의 모자가 인상적인 남성이 무기질적인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서류가방을 들지 않은 쪽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거의 12일을 열차 안에서 지냈으니 저 목소리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 눈 앞의 차장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과 거두지 않은 손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마땅히 머물 곳이 없으십니까?"


 

 "표값에 이런 혜택이 포함! 되어있을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훗훗훗!"

 "알려드리기는 하되, 적극적이지는 않을 뿐입니다. 그럼 휴식, 잘 취하시길 바랍니다."

 

 휘황찬란한 호텔도, 끔찍하리만치 허름한 캡슐도 아니다. 나름대로 보안도 제법 잘 지키고 있고, 무엇보다도 비싼 값을 치르고 낸 열차회사가 제휴한 이 곳을 굳이 말하자면 비즈니스 호텔 정도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차장,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큰 키만큼이나 어울리게 성큼성큼 걸어 리셉션으로 향해 사전에 이야기를 해두었는지 순식간에 체크인 절차를 밟았고, 그 모습을 눈에 담은 프리터 또한 조금은 더듬거렸지만 그래도 제법 자연스럽게 따라해서 객실을 안내받았다.

 

 "심지어 식사! 1주일 치 식사도 포함되어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혜택입니까아― 음―훗훗훗훗!"

 

 1인용이라 다소 폭이 좁다고 해도 침대는 푹신하고 온수도 원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공되는 어메니티도 제법 훌륭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건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테이블 위로 보란듯이 올려놓은 각종 주전부리들. 예전에도 한 번 방심한 채 건드렸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원치않은 추가 지출을 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라, 프리터는 애써 고개를 저은 채 저녁 식사가 가능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긴장이 풀려 침대 위로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기차가 아닌 장소에서 처음으로 맛본 끼니는 호텔의 첫 인상과도 닮았다. 호화롭지는 않다. 그렇다고 빈약하지도 않다. 원하는 요리를 양껏 담은 프리터는 기세좋게 식기를 놀려 접시를 몇 차례고 비워냈다. 맛이 좋냐고 하냐면 객관적으로 감탄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일단 공짜이지 않은가. 마침 4인용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다시피 하며 후식까지도 먹는 그의 맞은편에 누군가가 앉았다. 여전히 검은색 롱코트 차림의 차장이다. 인상깊은 모자는 역시 실내에 어울리지 않는지 벗어둔 채라 옅은 갈빛에 가까운 금발의 그도 마찬가지로 케이크 따위가 조금 담긴 접시와 커피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손님, 여행은 만족하고 계십니까?"

 "아주, 아―주 대―만족 중입니다―." 프리터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

 

 긴장이 풀린 그는 저도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평소에는 잘해봐야 화성까지만 이용한 열차를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보기는 처음이며 그마저도 3등석이 전부였었다는 것부터, 오늘을 위해 기계 수리부터 정원 손질과 케이터링까지 종류를 가리지않고 온갖 일을 한 끝에 겨우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까지.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프리터는 한참을 신이 나서 떠들었고, 차장은 그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들어주었다.

 

 "다행입니다." 그리 말하는 차장이 향이 진한 커피를 조금 들이켜고는 다시 말했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포크를 입 안에 밀어넣던 프리터가 그 끝에 혀를 찔려, 순간 움찔한 그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여전히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차장을 마주보았다. 그의 새파란 눈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 순식간에 기가 죽은 프리터는 더듬거리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겨우 되물을 수 있었다. 고개 하나 기울이지도 않은 채 융터르가 반문했다.

 

 "여기 테티스 역을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첫 인상이 어떠셨습니까?"

 "그, 글―쎄요…. 일단, 화려! 하다는 생각이…."

 

 확실히 그랬다. 무려 외행성계의 여행이니까. 바로 다음 토성까지는 가장 가까운 위성을 기준으로 해도 지구 시간 기준으로 한 달은 거의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차 표 값이 화성까지는 나름 저렴해도 그 이후로부터는 눈이 휘둥그레할 정도로 비싼 것이니까. 차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그 감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목성은 외행성계로 떠나는 첫 발판이지요. 어지간한 열차로도 보급 없이는 진행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만…."

 "무릇 사람들이 모이면 물자가 모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돈이 모입니다. 돈이 쌓이는 이 곳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차장의 목소리가 중간에 끊겼다. 귓전을 울리는 익숙한 굉음에 프리터 그 자신은 물론, 그의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테이블 밑으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디서 입수했을지 모를 총을 여기저기 발포해대는, 확고하게 깡패로 보이는 자들이 호텔 내부로 진입하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겁에 질린 프리터는 아직 저 무뢰배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주 약간은 안도하면서도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것은 차장의 다리 밖에 없었으니까. 조금도 고개를 밑으로 숙이지 않은 채, 융터르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그나저나 회사에 건의해야겠군요. 경비 측면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태연하게 할 말을 다 한 차장이 커피라도 비웠는지 달각거리는 소리를 내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안면을 튼 덕분에 용기가 생긴 프리터가 머리를 아주 살짝 빼서 그런 그에게 어딜 가느냐고 작게 외쳤지만, 차장은 오히려 프리터를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반문하였다.

 

 "남은 시간을 그렇게 휴식할 생각… 이십니까?" 취향이라면 존중하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태연한 그 모습에 당황한 프리터가 눈을 끔뻑거렸지만, 차장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제 건의가 지금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만 방으로 돌아가 쉬시지요."

 "지금?"

 

 그 생뚱맞은 소리에 프리터가 반사적으로 테이블 아래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와 동시에 호텔 입구로 거칠게 사륜구동의 자동차 여럿이 그 앞에서 멈추고는 무장 경비들이 추가로 투입되어 습격한 놈들에게 응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풍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장은 분명 윗선에 직통으로 연락을 취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얼떨떨해하는 프리터를 필두로 여전히 몸을 아래로 숙인 채 눈 먼 탄환에서 몸을 지키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남은 시간 동안, 프리터는 차장의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호텔 내부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문자 그대로 숙박에 충실한 곳이었기에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보호수단도 없이 거리의 유흥시설을 즐길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방에서 영화 따위나 보거나, 때때로 호텔에 마련된 온천 목욕탕에서 푹 쉬는 것이 다시 출발하기 전까지의 모든 일정이 될 뿐. 지루하다고 나갔다가는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적어도 가방에서 심심풀이로 할 만한 것은 들고 나왔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만 있었을 뿐.

 그렇게 거의 요양과도 같은 대기 기간이 끝난 뒤, 열차 내에서 데면데면하게 봐온 얼굴들과 같이 플랫폼에서 어색한 시간을 잠시 보내고 있으려니 육중한 소리와 함께 익숙한 열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다음 경유지는 아무래도 토성이 될 것 같은데―, 그 때는 또 어찌….'

 

 지난번 차장과의 대화에서 슬쩍 암시 된 그 내용을 떠올리고 프리터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단순히 사람 하나 불러오는 것이라 생각했던 안일함을 탓하는 그는, 다시는 이런 초장거리를 오고가는 심부름을 할 생각은 전혀 들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후로의 경유지에서는 테티스에서의 그 악몽같은 경험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조용하게 지나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행인 점이라면, 공전주기가 태양을 기준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있을 때 열차가 도착할 예정이라 코델리아의 경유지에서 그가 내리기로 한 트리톤까지는 거의 72일이나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긴 여정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차 내부에는 차장 개인의 취향임이 분명한, 올드한 느낌의 알 수 없는 곡이 잔잔하게 흐르는가 하면 때때로 광파 라디오로 해당 지역의 뉴스를 보내주기도 하며 차창을 바라보면 거리감을 상실 할 것 같은 우주의 풍경이 지나가기 일쑤였다. 좋게 말하자면 그랬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지루한. 

 목적지까지 아직은 3주 정도 남은 시점, 중력장 궤도를 통해 레일도 없이 안정적으로 달리는 열차를 객실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프리터는 거의 졸다시피 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노크소리 때문에 몸이 크게 한 번 휘청거렸다. 이미 거의 다섯 달 가까이 오며가며 마주친 군상들은 서로 친해지기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지만, 프리터에게 술이나 밥을 같이 하자고 하기는 커녕 놀이상대를 하기 위해 다가온 승객들은 없었다. 기껏해야 로봇 정도만 청소하러 들어오는 정도인데.

 다시 노크소리가 들린다. 방금 전과 같이 규칙적인 정박으로, 정확히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어쩐지 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구…. 이거, 나갑니다!"

 

 좋든 나쁘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그 한 사람이 미닫이 문을 열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차장 카르나르 융터르다. 지금 운전을 하느라 정신없어야 하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런 생각으로 프리터가 당황해 눈을 깜박거리자, 그 생각을 읽은 것인지 차장이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도 운전 중입니다."

 "…그, 그―렇군요! 훗훗훗….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사전에 설정된 궤도로 자동주행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 무사하신 것으로 확인 되었으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그럼에도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차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 프리터는 갸우뚱해진 얼굴로 다시 문을 닫으려 하였다. 차체가 순식간에 좌우로 요동치는 바람에 아주 살짝 덜 닫혀 자동잠금이 되지 않았고, 방 주인인 프리터는 급작스러운 충돌에 몸이 크게 휘청거려 방 반대쪽으로 데굴데굴 굴러버리기 까지 하였다. 뒤통수에 큰 충격을 받아 머리를 감싸던 그의 귀로 차장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온 객실을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중력장 궤도에 큰 충격을 받아 차체에 진동이 있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을 위해 본래 객실로 서둘러 돌아가시어, 문을 절대로 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내용을 이해한 프리터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아주 뭉뚱그려 설명해버렸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경고방송을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도적떼들이 열차를 습격했다. 튀어오르듯이 문에 달려든 그가 문을 도로 밀었지만 익숙하게 걸쇠가 안에서 잠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충격을 받아 고장난 것이 분명해, 얼굴이 더더욱 하얗게 질린 프리터의 얼굴을 알아차린 융터르가 재빠르게 질문했다.

 

 "무슨 문제라도?"

 "무, 문이! 문이 잠기지가 않습니다!"

 "침대 밑으로. 서두르십시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3등석이 있는 후미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궤도를 침입했을 적에는 분명 측면이었겠지만, 열차가 맹렬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탓에 곧바로 하이재킹을 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침대 밑에서 프리터는 그저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곧 문 열라며 윽박지르고 총 따위를 위협적으로 쏴재끼는 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곧 차장이 그들을 상대하는 것인지 그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있었다.

 

 "불법적인 탑승은 현재 행성을 가리지 않고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하차, 바랍니다."

 "할거야, 하차 할 거라고. 딱 한 놈만 찾고 금방 내려가줄게."

 "한 놈?" 그 말이 믿기지 않는지, 차장의 목소리가 아주 약간 올라갔다.

 "당신 열차에 있지? 푸르딩딩한 난쟁이 새끼."

 

 모습을 볼 수 없는 이 도적떼들의 두목이 말하는 바가 누구인지, 프리터는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테티스에서도 있었던 습격사건이 저절로 떠오르는 그는 놀란 마음에 자동으로 기겁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팔뚝으로 틀어막을 수 밖에 없었다. 유언장 개봉 소식을 알리기 위한 자신의 임무가 기밀이라고 안심하라 했건만!

 

 '크―읏소!! 이게 뭐―가 기밀이란 말입니깟! 아주 그냥!'

 "…현재 탑승객 데이터베이스 조회 결과, 요청하신 인적사항으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개 조까튼 소리하네! 야, 그럼 이 열차에 없으면…. 뭐 이 우주를 그냥 맨 몸으로 헤엄이라도 치냐? 그 히어로처럼?"

 

 이 상황에서도 한없이 침착한 차장의 목소리에 두목은 열이 잔뜩 올라 잠겨있는 다른 객실 문을 발로 뻥 걷어차고, 다른 도적놈들이 그 농담을 듣고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프리터는 자신을 찾는거냐며 몸을 일으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하는 양심에 의한 충동을 격렬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까와 달리 더욱 귓전을 울리도록, 구식 화약총기가 불을 뿜고 곧 탄피가 떨어지는 소리에 이은 협박이 그렇게 부추기고 있었다.

 

 "여기 객실부터 문, 열어. 안 그럼 다음 번에는 그 아가리부터 구멍 뚫어줄 거니까."

 "거절합니다. 차장은 정당히 탑승하신 모든 승객 분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문― 열라고―!!"

 

 인내심이 없는 것이 분명한 두목이 총을 발사하는 소리가 복도는 물론, 문이 덜 닫힌 프리터의 귀를 다시 맹렬하게 울려댔다. 구식이라지만 무지막지한 사이즈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이명까지도 울려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아야 했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침대 아래에서 빠져나왔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놀라 복도로 나올 수 없었다.

 융터르의 오른쪽 어깨 부근의 망토에 구멍이 뚫리며 뭔가의 액체로 번들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는 어디서든 보이던 그 서류케이스를 순식간에 두목에게 휘둘러 그 옆머리를 맞춰버렸다. 마치 둔탁한 쇠몽둥이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들리며, 몸에 힘이 쭉 풀린 두목의 몸을 받아든 차장이 방금 전 총에 맞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나지 않을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 좁은 복도에서 총을 쏘시겠다면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맞추실 수 있다면."

 "두목님―!!"

 

 두목의 덩치도 차장과 견줄만큼 제법 컸는데도 그 축 늘어진 몸을 한 손으로 든 융터르가 두목이 쏴대던 총을 재빠르게 바닥에서 주워 어쩔 줄 몰라하는 졸개들에게 거침없이 발사했다. 뼈 따위가 으스러지기라도 했는지 소름끼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는가 싶더니 졸개들이 신음을 애써 참으면서도 복도 바닥에 널부러지는 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되었다. 그제서야 고개를 빠끔히 내민 프리터에게 차장이 그 새파란 눈동자가 불규칙적으로 깜빡이면서(절대 눈꺼풀이 깜빡인 것이 아니었다!) 말을 건넸다.

 

 "혹시 노끈 같은 것, 지금 있습니까?"


 도적 떼거지들은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렸다. 손발을 프리터가 어찌나 단단히 묶어놨던지, 어지간한 날붙이로는 끊어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겨우 기절했다가 정신 차린 두목의 경우에는 그 책임을 물어, 아예 노끈으로 온 몸을 빙빙 감싸 마치 번데기를 연상케 하였다. 그 솜씨에 감탄한 기색을 띈 차장이 넌지시 이런 매듭은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어볼 정도였기에 그는 어쩐지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이것도 일일알바로 배웠다고 답해주었다.

 

 "그러고보니, 프리터 님께서는 일일알바 중 기계 수리도 경험이 있으시다 하였다고 기억합니다만."

 "그렇습니다! 그것 또한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습니다아― 음훗훗후!"

 "잘 되었군요,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오른팔의 움직임이 약간 이상한 것을 제외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큼 걷는 차장의 뒤를 정신없이 졸졸 쫓아가다보니, 그는 어느 덧 운전실 겸 차장실까지 와있었다. 당황한 그에게 융터르는 생김새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프리터를 안으로 밀고 들어갔고 거기서 보이는 것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기본적인 가구조차 없는 살풍경한 운전실이었다.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의 차장이 말을 건네며 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다.

 

 "이 수리 장비로는 총탄을 적출할 수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코트 안쪽의 목폴라티는 훨씬 선명하게 총탄 자국을 남겼고, 그 사이로 복잡한 전선과 강철 따위로 만들어진 뼈대 구조물 같은 것이 보였다.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차장의 정체, 그리고 조금 전까지 봐왔던 그의 행적이 순식간에 이해가 된 프리터는 잠시 얼이 빠진 표정이었지만 곧 그의 부탁대로 아주 조심스럽게 핀셋을 놀려 잔뜩 찌그러진 총탄을 빼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차장실의 천장 어딘가에서 기계팔이 내려와 그 흉측한 자리를 수리하여, 누가 총에 맞기라도 했느냐는 듯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차장이 안드로이드라니. 이 황당한 경험은 또 처음인지라 프리터가 얼떨떨한 마음으로 눈을 끔뻑거리고 그 사이에 수선이 완료된 코트를 도로 입은 카르나르 융터르가 잠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다시 입을 열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프리터 님께서 최근 모 기업의 유언장 발표와 관련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아이고… 이런 세―상에나…." 그제서야 차장이 어째서 자신의 안전을 신경써줬는지 안 프리터가 한탄하였다.

 "혹시 그 일을 마무리 지으면 이후에 새로운 일을 할 예정이 있으십니까?"

 

 융터르의 질문에 프리터는 잠시 생각했다가 울적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 정보지를 뒤적일 생각을 하니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답에 차장이 마침 잘 되었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 시설 점검용 로봇 운용이 고객님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등의 컴플레인이 누적 되어있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차장의 권한으로 이 열차의 승무원으로 일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아, 아아니! 그게 지금 무슨…."

 "조금 전 제 수리를 완료 해주시는 것에서 판단을 내렸습니다. 아까와 같이 비상사태에 제 긴급 수리 업무도 겸해주시면 됩니다."

 

 여전히 망설이는 만년 일일 아르바이터에게 태연한 얼굴로 지금껏 프리터의 모든 수입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액이 융터르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을 때는, 이미 고용계약까지도 체결이 된 상태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에 하던 일을 마무리 짓는 조건이 전제로 붙은 상황이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었기에.

 그리하여 도착한 트리톤. 우연의 일치인지 열차의 경유지로 지정된 역이 존재했었던 상황이었다. 차장은 체포한 도적들을 현지 경찰들에게 넘기고 보급과 정비를 위해 정차한 1주일 동안 프리터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게 기업의 후계자 중 한 사람에게 유언장 낭독 예정을 전해주는데 결국 성공하였다. 역에 도착한지 고작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계자가 자신의 개인 우주선에 몸을 싣고 곧장 출발하는 모습을 바라본 심부름꾼은 그 일이 아니면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전용 단말기에 그 사실을 전달하고 나자, 처음 이 일을 맡기로 했던 꽤 큼직한 보수가 들어왔지만 프리터는 어쩐지 그리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벌써 후계자가 도착이라도 한 모양인지 그 뒤로 대략 5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기업 쪽에서 이후로도 심부름꾼으로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건네왔지만 그는 거절하고 다시 역으로 달려갔다. 내렸을 적에는 승객이지만 탑승할 때는 직원으로서. 카르나르 융터르가 몸담고 있는 열차 회사에서 보내온 사원증 겸 패스를 목에 걸고서.

 그러나 기세좋게 돌입한 첫 업무부터 이렇게 난감할 데가 다 있나, 라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었다.

 

 "이런, 들켰군요?"

 "이런?! 들켰습니다?"

 

 거적데기를 입은 사이로 쨍할 정도로 파란 머리카락이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에 정 반대로 새까만 복면을 쓴 목적과 달리 요상한 하트 모양 선글라스를 낀 성인 남성이 뻔뻔하게 무임승차를 시도하다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