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강철
소위 '과학팸'이라 불리는 네 사람 그 누구도 합방에 당첨되지 못한 어느 늦은 밤. 그 날도 연구에 매진하던 도파민 박사를 도와주던 왁파고의 배터리가 슬슬 바닥을 보일 기미가 되었다…라기보다도 어쩐지 그냥 사람마냥 정해진 시각이 되면 왁파고는 늘 절전모드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최근에는 아예 자연스럽게 하품을 쩍쩍하는 행동까지 흉내내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던 새우튀김의 입이 떡 벌어지기까지 했다.
"야, 깡통아. 너 기계 맞냐?"
"맞습니다. 모사 프로그램이 정확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으므로, 새우튀김 님의 반응을 스토리지에 저장하겠습니다."
"니… 이럴때만 기계인 척하는거 아니지?"
갈수록 가관도 아니라는 생각에 할말을 잃은 도파민 박사의 조수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먼저 자러 가겠다며 자리를 떴다. 차라리 이 끔찍한 현장에서 도망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다음 날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하쿠를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으이… 왁파고야, 너도 이만 자러 들어가보거라. 밤이 늦어두 너무 늦었어."
"박사님, 감사합니다. 이만 절전모드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공손하게 꾸벅 인사를 하는 왁파고가 몸을 돌려 충전용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침대에 몸을 밀어넣으려 하다 그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 알 수 없는 행동에 창조주마저도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왁파고가 어느 한 구석에 놓여져있던 상자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곧 목적을 달성했는지 그 물건을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품에 껴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스테이션, 아니 침대로 쑥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도파민 박사는 조심스럽게 그 움직임을 눈으로 쫓다가 왁파고가 완전히 절전모드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문제의 그 자리 주변을 살펴보며 꿍얼대기 시작했다.
"이잉… 왁파고 이 녀석, 대체 뭘 꽁꽁 숨겨둔게야? 로봇이니께 간식거리래봐야 건전ㅈ… 으이? 이게 무어여?"
과연 왁파고가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는 두꺼운 골판지 박스가 놓여있었다. 이런 구석진 자리에 도대체 뭘 꽁꽁 감춰놨나 미심쩍어하던 눈초리의 도파민 박사가 책상 아래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 상자를 끄집어내고는 곧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이 도파민이가 이런 행동은 넣질 않았는디, 스스로가 발전을 허고 있는겐지 이걸 뭐라고 혀야하는겐지."
박스 안에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터진 곳은 하나 없는, 귀여운 동물 인형들이 갖가지 들어있었다. 박스를 다시 제자리에 밀어넣고는 스테이션…이 아니라 침대 안의 왁파고가 덮은 이불을 슬쩍 들쳐올려보았다. 갓 13살이 된 로봇의 품에는 곰돌이 인형이 얌전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으이구, 말을 허믄 이 도파민이가 가성비 좋은걸루다가 사주는디 은제 이걸 수선을 혀서…."
마침 다음에 하쿠의 카놀라유 때문에라도 마트에 들릴 일이 있는데 은근슬쩍 왁파고와 함께 장난감 코너도 들려볼 생각을 한 도파민 박사가 그 즐거운 마음에 작게 킬킬거리며 웃었다. 절전모드일지 진짜로 자고 있는지 왁파고는 전혀 듣지 못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