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장르불법콜라보)Sirian, Who?
*미쳤다고 합법 AU 합작에 눈 뒤집혀서 평소부터 하겠다고 마음먹은 혜리안X닥터후입니다.
*근데 이게 닥터후 분위기가 안 나네 큰일났다.
아무래도 태풍이 북상한다고 했던 것 같다. 독고혜지는 교실 책상에 엎드려 매미가 에어팟을 뚫고 내는 울음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사실 시끄러웠으니 창문을 닫고 싶었지만, 창문마저 닫아버리면 실낱같이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들어오지 못하니 교실 내부는 찜통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귀찮았다. 멍하니 흘겨보는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파랬고, 그 아래로 나있는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받느라 왁왁대거나 꺅꺅대는 소리가 매미소리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는 배경음악 같았다.
느그초중고등학교의 유명한 일진, 독고혜지는 그래서 이런 의미없는 날이었기에 오늘을 더더욱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였기에, 단 하나의 비일상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면.
"어?!"
학교 뒷편으로 난 야트막한 동산 쪽으로 뭔가가 떨어진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소름이 끼치는 그것은, 작지만 얇고 날카로운 소리여서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유튜브 따위에서나 들어봤던 것 같은데…. 피유—웅하는 그 독특한 소리는 곧 어떤 그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비행기 따위가 추락한다던가.
"헐, 헐!!"
한달음에 복도를 내달리는 그 몸은, 학생은 중앙계단을 쓰면 안 된다는 교칙도 깡그리 무시한 채였다. 마음이 어찌나 조급한지, 그 흔한 삼선 슬리퍼를 신은 채로 계단 열 몇 개는 순식간에 뛰어내리길 반복한 그녀가 소리난 곳을 향해 뛰면서도 조금도 숨이 찬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 자리.
그 자리에는 그 연기 사이로 콜록거리는 기침과 함께 휘청거리는 걸음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SPS라 적힌 파란 점퍼, 그리고 허리를 넘어 엉덩이까지 차고 넘치도록 닿는 삐쭉빼쭉한 은빛 장발. 분홍빛 눈동자의 그녀는 멍한 얼굴로 혜지를 바라보았고,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얼굴에 나뭇잎이 묻든 말든, 그 몸이 풀썩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할 사이도 없이 중요 엔진 하나가 완전히 파손된 우주선은 지체없이 추락을 향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조종간을 힘껏 몸 쪽으로 끌어당겨도, 추진력을 잃어버린 이상 그리 큰 효과는 없었다. 그저 아주 천천히, 그 곡선이 완만해질 뿐. 그 조종사, 시리안은 제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분노를 토했다.
"이 범죄자 자식들이!"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확인할 사이도 없이, 그대로 지면에 곤두박질을 치고 만다. 온 몸을 뒤흔드는 충격 속에서, 시리안은 이제 비상사태를 알리는 날카로운 알람과 번쩍거리는 붉은 경고등으로 가득한 우주선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못했다. 순식간에 내부가 새까만 연기로 가득차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공간을, 필사적으로 더듬어가며 그 출입구를 찾아 빠져나올 때는 이미 매캐한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탓에 눈 앞이 어지럽고 휘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맞닥트린, 말하자면 '현지인'. 시리안은 분명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예를 들자면, 이 곳은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라던가. 그러나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그 모든 경고의 말 대신 아주 얼빠진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아."
무엇 때문일까. 자신을 도와줄지 말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대를 봤다는 이유가 이렇게나 반가운 것인가? 어쩌면 지독한 가스 때문에 이지가 흐려져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다던가.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지구의 중력에 저항을 도통 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쓰러져버렸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자신을 발견한 것이 분명한 현지인의 카랑카랑하고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제 말 들려요? 이봐요, 정신차려요!"
그러나 무어라고 답을 해주기도 전, 시리안은 그저 눈 앞이 새까맣게 변한 것을 느낄 따름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코끝에 약품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한 냄새와 등 뒤가 제법 불편한 딱딱한 매트리스가 먼저 느껴졌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위협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쨍한 하얀빛의 조명이 비치는 새하얀 공간이었다.
"아."
"으아! 다행이다아—!"
하얀 공간에 이질적인 것이 추가되었다. 일단 지구인인건 알겠는데, 앞이마에 분홍색의 뭔가가 머리카락에 돌돌말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머리카락의 영락없는 어린애가 겨우 안도했다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왔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오만가지 약품 냄새의 강렬한 영향으로 시리안은 얼빠진 소리를 해버렸다.
"실험?"
"아니 무슨 실험이야, 짜증나게!"
"어… 아닙니까?"
감정에 매우 솔직한 그녀가 짜증을 내면서도 몸을 일으키는 그 손길은 정말로 조심스러웠고, 주변을 그제서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천 따위로 다른 자리를 가린 일종의 수면실 비슷한 공간인 듯 했다. 순식간에 멋쩍어진 시리안은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황당한 기분이 들어 그저 입을 다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 쪽에서 금방 답을 주었다.
"여기 양호실이라구요. 아까 막 연기 화—악 나는 자리서 불쑥 뛰쳐나와갖구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아, 그거. …감사합니다."
"혜지에요. 독고혜지. 느그초중고등학교 3학년!"
맥락없이 불쑥 튀어나온 한 손. 분명 악수를 청하는 것이리라 생각되어 시리안도 맞잡으며 자신의 이름과 개략적인 소속을 밝혔다.
"시리안입니다. 우주 경찰 소속입니다."
"헐, 대박."
이제 할 말이 싹 사라진 것은 아무래도 독고혜지인 듯 하다.
양호실에서 혜지는 자신이 우주경찰 소속이라는, 시리안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멍한 얼굴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납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일단 정확하게 생긴 것은 몰라도 우주선 비슷한 것에서 뛰쳐나왔으며 은근슬쩍 보이는 물건들은 아무리 그 도파민 박사 연구소에서 나온 물건이라고 뻥을 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던 탓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전히 양호실 침대에서 멀뚱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그녀는 외계인이라는 것.
"근데, 어쩌다 추락했어요?"
"모릅니다. 워낙 정황이 없었고, 경보장치도 사전에 경고를 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날아온 공격에 엔진이 박살났습니다."
"미쳤다!! 우주경찰을 노려??"
"그러게나 말입니다. 범우주적으로 지명수배된 범죄자가 며칠 전에 지구로 숨어있다는 제보를 받아서 정찰하는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시리안은 정말 그것이 분한 모양이다. 자신과 대화할 적에도 침착하고 정중한 어조였던 그녀가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그 말을 들은 혜지는 제 눈이 갑작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우주경찰을 향해 제 얼굴을 쑥 내밀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찾음 안 되나?"
"예?"
혜지는 꽤나 뻔뻔한 얼굴로 나서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금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이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것까지만 도와주는 것 정도면 학교에서도 인정해줄 것이라고. 그 말을 들은 시리안의 얼굴은 제법 오묘하게 변했다가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경찰학교에서도 익히 봐온 익숙함. 그 기억을 시리안은 입에 올렸다.
"혹시… 학교, 땡땡이 치시는 겁니까?"
"어, 아닌데. 아닌데."
아무래도 독고혜지는 거짓말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모양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또랑또랑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 진의를 파악하려는 우주경찰의 시선을 외면했으니까. 어쨌든, 시리안의 입장에서 보자면 독고혜지의 제안은 미더울지언정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 놈들이 숨어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우주선을 향해 발포한 놈들이라면 이 동네에 숨어있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그 동네에 대해 해박한 그녀의 지원을 받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든 생각이었다. 아닌말로, 지구의 학교를 땡땡이 쳐서 벌을 받는다고 한들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휴, 좋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간단히 수색만 할 생각이며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을 것이니, 이점 명심해주십시오."
"아우 혜지 못 믿어? 알잘딱하게 도망칠 때는 확 친다고!"
"알잘딱…?"
"있거든 그런거? 혹시 근데 떨어지면서 기억나는 거 있어?"
황급히 말을 돌린 혜지가 질문을 던지자, 시리안은 떨어질 적의 기억을 다시 되새겨보기 시작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추락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내다 본 바깥 풍경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도시의 정경이 지나칠 정도로 가까워졌던 순간을 입에 올리자, 혜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으음~' 하는 소리를 냈지만 그것이 성격을 억지로 죽이느라 내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깊이 고심하는 그것.
"어쨌든! 돌아다니다보면 대충 떠오르겠지!"
"…그, 아까부터 여쭙고 싶었는데."
"응? 뭐가?"
"아까부터 왜 저한테 반말 하십니까?"
시리안이 의외의 부분에서 딴죽을 걸었지만, 양호실 문을 드륵소리가 나도록 연 혜지의 얼굴이 그녀를 향해 돌아섰을 때는 악동같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딘가 짖궂은 듯, 그러나 악의는 없는 그 표정으로 혜지가 아주 명랑하게 말했고, 지극히 그녀답다는 생각으로 시리안은 아주 미약하게 웃으며 뒤를 쫓았다.
"내 맘!"
그 뒤로는 시리안의 희미한 기억을 뒤쫓으며 도시 곳곳을 쏘다니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고혜지의 일방적인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우주선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잡한 리모컨이 인상적인 노래방부터, 그보다 누를 버튼이 훨씬 많은 피시방까지 한껏 열을 내고 나면 카페에서 조용히 휴식! 마무리로 떡볶이, 튀김, 순대라는 정석적인 분식과 무인사진점에서 온갖 장난감들을 뒤집어 쓴 채 실컷 사진찍기까지 알차게 즐기고 나온 것이다. 한낮부터 석양이 드리울 시간까지, 아주 알차게.
그리고 시리안은…
"이게… 진짜 맞습니까?"
"응? 뭐가?"
"솔직히 말해, 우리 지금 놀고 있잖습니까."
아주 쉽게 말하자면 현타가 왔다. 막상 즐길 수 있는 부분을 즐겨놓고나니, 느릿느릿하지만 자가복구가 되는 중인 우주선도 새삼스레 걱정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문제는 자신이 입 밖으로 꺼낸 말 그대로 놀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는 점이다. 이대로 해도 되는걸까. 그나마 수색이라는 활동과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면, 종종 사람들에게 "최근에 우주선 같은, 그런 뭔가 이상한 것을 봤느냐"고 물을 따름이었다. 돌아오는 답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딱히 없다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친절했다. 이 엉뚱함의 극치인 질문에도 종종 자신이 어디서 시리안의 우주선을 봤다는 증언을 해왔으니까. 그러면 독고혜지는 그 근처에서 놀았다. 아주 신나게. 경찰의 입장에서, 시리안은 이러한 수사방식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생기는 위화감은 이루 말할 것이 못되었고, 석양이 지면에 닿을 때 쯤이 되어서는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던 탓도 있었다. 제 교복 위로 입은 파카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학생이 한쪽으로 늘어트린 머리카락 가닥가닥을 검지로 살짝 꼬면서 웅얼거렸다.
"에이, 그치만 이미 어떻게 된 건지 알거 같단 말야."
"다 알면서 그랬다는 겁니까?"
"그치만! 그 쪽도 재밌게 놀았던거 같은데."
긴장한 우주경찰의 어깨가 뜨끔하듯 순식간에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확실히, 지금 닥쳐온 상황만 아니었다면 독고혜지와 노는 모든 행동들은 의외로 건전했꼬, 그런데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단 이러한 즐기는 모든 일들은 무릇 사건이 끝나고 해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항변하는 시리안의 목소리는 그 톤이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혜지 님은 제 사건을 도와주시는 것을 전제로 땡땡이를 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아! 맞다!" 독고혜지가 가볍게 박수를 치며 뭔가를 꺠달았다는 듯 말했다.
"맞…다? 설마 까먹으신 겁니까?"
눈초리에 의심이 가득 담긴 시리안은 이제 목소리에 점차, 그저 땡땡이를 치고 싶은 고등학생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으로 그 어조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커져가고 있었다. 그때.
"이 빌어먹을 우주경찰!"
"으악!! 저게 뭐야!"
"설명은 나중에 하십쇼, 이 간악한 범죄자 놈들!"
"'들'은 아니지 않나?"
갑작스러운 외계인의 난입. 그 모습을 졸지에 라이브로 마주하게 된 독고혜지는 좀 예전에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서 고전 영화 중 맨인블랙을 추천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사람을 겉가죽을 찢고 외계인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쪽이었던 것 같았던 기억. 그것이 이제는 현실이라니.
얼어붙은 고등학생을 억지로라도 자신의 뒤로 물린 시리안은 급히 숨겨두었던 로봇팔을 꺼내 외계인이 제 총으로 발사한 광선을 막아냈다. 매캐한 탄연이 쇠 위로 아로새겨진 그 흔적은, 엄폐물이라고 할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받아내야 해서 탄창 하나가 겨우 갈아치워질 무렵에는 이미 로봇팔이 너덜너덜하게 변한지 오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독고혜지에게 휘둘렸을지언정, 우주경찰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로봇팔의 뒤에서 시리안은 침착하게 제 총의 잔탄을 헤아리고는 더 이상 광선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무렵 지체없이 자신의 것을 발사하였다.
"주, 죽은거야?"
"아뇨. 아직 안 죽었습니다. 이제 연행해서 재판에 넘겨야죠. 그래도 감사합니다. 얼떨결이지만 이 놈, 제가 원래 지구에서 찾던 범죄자여서."
혜지는 그런 시니컬하기까지 한 시리안의 말에 어쩐지 과하게 오동통한 문어가 연상되는 외계인을 빼꼼 내다보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 감사를 물렸다.
"아니, 그게 말이지. 범인은 따로 있는 거 같거든."
"예?"
"아이고, 이거 정말로! 죄송합니다아!"
눈 앞에서 자신에게 90도의 각도를 칼같이 유지한 채 사과를 하는 보랏빛 피부의, 땅딸막한 남성을 보고 시리안은 생각했다. '혹시 어느 행성에서 이주하신 겁니까?' 라고. 그런 당사자, 프리터는 시리안의 등 너머로 바라보던 혜지마저 알아차릴 정도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프리터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으이, 진짜로 수리비, 수리비 필요 읎습니까?"
"아오, 다행이다."
프리터의 뒤로는 정수리부터 귀 언저리까지 훤하게 민둥산이 된 도파민 박사와 붉고 노란 배색의 회전모자가 인상적인 새우튀김이 마찬가지로 진땀을 잔뜩 뺐다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상황이었다. 무엇을 더 숨기랴, 시리안이 당했던 공격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도파민 박사 연구소에서 저지른 실수였던 것을.
논문작성에 동원된 일일알바 프리터가 이리저리 기자재를 들고 나르던 와중, 도파민 박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예전에 만들었다던 우주 방어용 파괴광선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광선 버튼을 작동시켰고, 그것이 우연히 상공을 날아다니던 시리안의 우주선에 직격했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 그러나 아직도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 수리비를 걱정하는 연구소 일동들에게 시리안은 단호하게 위로하였다. 어차피 자가복구가 가능한 기체니 문제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왁파고를 팔 떄가 왔다느니 하는 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게 되었고, 시리안은 독고혜지의 뒤를 조용히 따라 연구소 바깥으로 나왔다.
"근데."
"응?"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러니까, 그게 사고였다는 걸."
"아, 그거?"
언제 연구소에서 막대사탕을 가지고 나왔는지, 입안에 굴리던 것을 손으로 옮긴 그녀가 씩 웃고는 말해주었다.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먼저 의심을 했던 것은 진짜로 시리안을 노린 나쁜 외계인들의 습격이라는 가능성.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제법 거대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것.
"맨 첨에, 그 나쁜 놈이 며칠 전 지구로 숨어들었다구 했는데, 그 시간 안에 우주선을 순식간에 추락시킬만큼 어마어마한 무기가 나오지 않을 거 같더라구. 사람들에게 최근들어 이상한 걸 봤느냐고 했는데 하나같이 없었다구 했잖아."
"그것만으로 추리가… 되는 겁니까?"
"게다가 하늘로 뭔가를 발사했다면 여기 사람들 다 봤을 걸?"
"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상공을 떠다니는 우주선을 노릴 수 있는 거대하고도 파괴력 높은 무기, 라는 것 자체 부터가 불과 며칠 전에 이미 지구로 도망쳐 숨어든 단독 범죄자가 할 만한 스케일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순순히 긍정하기에는 경찰로서의 의심을 거둘 수 없던 시리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아까 그… 대머리, 아니 탈모가 심하게 오신 박사님의 연구소에서 발사되었을 것이라고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찍었지." 처음으로 독고혜지가 멋쩍게 더듬는 목소리로 웃고는 말했다.
"예?!"
"그치만! 그치만 거기 빼면 사실 우주선이 추락할 구석은 아무리 봐도 없는 걸!?"
짐짓 자신은 당당하다는 듯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 그녀의 태도에 시리안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짝 웃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도 지구를 사랑하는, 이상한 파란색의 전화박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닥터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어설프게나마 있었던 탓이었다. 물론 그녀가 진짜 닥터의 새로운 모습일리는 없겠지만, 시리안은 이제 사건도 해결이 되었으니 굳이 말꼬리를 더 잡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예를 들자면, 자신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쳤던 땡땡이라던가.
"어? 웃었다!"
"아닙니다."
"에이 웃었잖아! 아씨! 사진 찍었어야 했는데!"
"아니, 저 안 웃었… 푸흡."
결국 독고혜지는 부득불 우긴 끝에 시리안의 실풋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담는데에 성공하였다. 우주로 떠나버리면 언제 다시 그 얼굴을 보겠냐는, 너무나 설득력이 높은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독고혜지는 아주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느그초중고등학교의 옥상에서 농땡이를 부리던 혜지의 눈 앞에 어쩐지 눈에 익은 우주선이 근처에 착륙을 하고 그 안에서 살짝 삐쭉빼쭉한 은빛의 장발의 얼굴이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에게 말을 건네리라고는.
"사건이 있는데, 같이 해결하는데 도움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