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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괴담합작)심야 위클래스

김만성피로 2023. 9. 1. 17:31

*일단 공포물 더럽게 못 쓰는데 나대서 죄송합니다.

*참고로 모티프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블랙미러'의 시즌2 에피소드 3 [화이트 베어]에서 참고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진작에 집에 가고도 남았을 시간, 창 바깥으로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그럴 때에 좋게 말해줄 수 없는 상태의 학생이 상담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잠깐 사이로 보인 새까만 복도에서 갑작스럽게 밝은 공간으로 들어온 탓인지, 혹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어다닌 탓인지는 몰라도 산발인 머리카락부터 마구 찢어진 옷차림의 학생은 달칵 소리가 나도록 문을 잠근 뒤 다리에 힘이 풀린 티가 역력하게도 냅다 주저 앉아버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런 학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검은색 투성이 옷차림인 교사의 얼굴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온 몸이 땀범벅인 채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학생을 그리 좋은 얼굴로 바라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반면에, 그런 학생 또한,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이 교사의 목소리에 속으로 놀라고야 말았다.

 차라리 심해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어떤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사람의 그것인가? 그런 생각과 함께 얼떨결에 학생의 눈은 교사가 앉아있는 책상을 향했다. 상담교사 : 카르나르 융터르.

 

 "…앉으시지요."

 "에?"

 "상담, 하러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이 시간…에요?"

 "이거야 원. 심야 위클래스라고 모르시는 겁니까?"

 

 자신이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도 몰랐던 눈치인 학생. 그런 상대의 벙찐 얼굴을 여전히 한심함과 동정 등등이 복잡하게 섞인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담사는, 제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며 상대가 무어라 말할 기색이던간 아무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저 좋을대로 웅얼거리며 학생들이 앉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냥 엉겁결에 들어오신 것이라면, 나가셔도 되—"

 "저기, 그, 아니 그것보다도! 저, 칼 들고 쫓아오는 미친, 미친 새끼가 있는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학교 안을, 다른 건 다 몰라도 칼을 들고 쫓아온다는 말에 당황한 교사가 몸을 움직였다. 그 문을 열려고 하는 시도가 보이자마자 학생은 안된다며 비명을 빽 질렀지만, 보이는 것은 상담실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그 주변부만 조금 밝아졌을 뿐인,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복도였다. 

 학생이 워낙 겁에 질린 얼굴이었기에 덩달아 진지한 태도가 되었던 교사는 맥이 빠진 티를 숨기지 않으며 힘없이 말했다.

 

 "아무도 없는데요."

 "어?" 학생은 연거푸 그럴리가 없다고 중얼거렸지만, 교사가 아주 간단하게 일축시켰다.

 "…아무래도 학업스트레스 같은 것을 받으셔서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런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지요?"


 학생은 자신이 이 꼴이 된 것이 단지 학업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그런 취급을 받자 기분이 굉장히 상했는지 목소리를 빽 내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무례함이 상담교사가 세운 일정한 선을 넘긴 것인지, 그가 언짢은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나"까지 발음할 무렵.

 산발인 머리카락 사이로 창백한 얼굴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제발요!"

 "…하, 알겠습니다." 상담사가 그리 말하며 정수기에서 냉수 한 잔을 따라 건네주자, 학생은 단숨에 비우고 먹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학생은 학업은 아니지만 여러가지로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차였다. 잠에 들고 싶어도 편히 이룰 수 없거나 악몽을 꾸는 것이 대다수였던 탓에 요 근래 학교에 오면 대부분이 정신을 잃다시피 할 정도로 꾸벅 졸기에 바빴으며, 그런 자신을 그 어떤 선생이나 다른 학생들은 깨워준다던가 혹은 걱정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문제가 터졌다.

 

 "아무리 제가 따돌림을 당한다고 해도 말이죠,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다 끝나고 한참 지나도록 선생님들마저 절 안 깨워주는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 그 쪽이 문제입니까?" 상담사가 종이 위를 만년필로 슥슥 뭔가 긋고 잉크로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왕따

 "아뇨, 실은 더 나빴어요. 진짜… 진짜로…" 질리도록 봐온 탓에, 거꾸로 봐도 단숨에 알아본 학생은 그걸 부정하며 말했다.

 

 어떤 바람도 불지 않았건만, 갑작스럽게 이는 한기에 학생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한밤중인데다 복도를 비롯해, 창 밖도 새까맣게 변해 뭐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지금이라도 얼른 나가야겠다고 당연히 생각했기에 자기 짐을 챙기려 도로 교실로 돌아왔을 때부터가 문제였다는 것.

 자신의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었는 것도 모자라 그 주위로 새까만 그림자들이 모여있었다는 것이다.

 

 "학교에 괴한들이 있다고요?" 처음 듣는 경험에, 상담교사의 한없이 낮은 목소리가 올라갔다. 사실 별 차이는 없었지만.

 "그냥 있다는 것으로 그치면 좋았겠죠. 떼거리로 몰려다니는데!"

 

 겁에 잔뜩 질린 기색이 사라진 학생의 목소리는, 본래부터가 그런 것일지 몰라도 꽤나 신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괴물을 도로 끄집어내는데에는 상당한 고통이 함께 했는지, 학생은 다시금 물을 한 잔 벌컥 들이켜고 나서야 겨우 이어 말할 수 있었다. 물을 마시는 동안, 지금까지의 내용을 적어내리던 교사가 다시 말해도 된다는 듯 시선을 보내와, 학생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는 길에 겪은 것을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괴물 혹은 귀신들은 어두운 와중에도 절대로 멀쩡하다고는 보이지 않을 그 몸을 바르작거리며 일으키는데 어째서인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다고 생각할 쯤, 갑작스럽게 그것이 달려들고 곧 머리카락 한 움큼이 그 귀신에 의해 뽑혔을 때의 충격이란! 살가죽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가를 뭔가 뜨거운 것이 적셔서 보니 분명한 피가 흘렀다고 했다.

 

 "여기, 여기 보세요! 머리에 땜빵 났다고요! 여기도!" 새하얀 두피를 보란듯 들이미는 학생과 달리 교사는 무심하게 반응했다.

 "…그렇군요. 근데 머리카락이나 쥐어 뜯을 정도였다면 이렇게 숨이 차도록 뛰어오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당연하죠!"

 

 그 이후로도 머리채가 몇 번이고 더 뽑혔고, 이후에는 층계부터가 이미 엉망진창인 학교를 돌아다니는 내내 발목에 정확히 뭔가를 걸어 자빠트리는 등 자신을 명백히 괴롭히는 귀신은 그 강도가 더 심해졌다며 학생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목에 핏대가 과할 정도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여, 상담사는 다시금 물을 한 잔 떠와 학생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렇게 화내면서 말하면 뭔 소린지 못 알아듣습니다."

 "…어휴, 알겠어요. 진정할게요. 아, 하면 되잖아요!"

 

 제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지른 후로도 씩씩거리던 학생은 이제 자신이 왜 엉망진창인 꼴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여기저기 도망쳐도 자신의 등 뒤를 거듭 잡는 귀신은 이제 거듭된 뜀박질에 지치고 숨이차서 조용한 구석에 숨어있는 학생을 발견하면 괴기한 목소리로 웃어재끼고는 찬물부터 구정물, 더 나아가서는 음식물쓰레기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온갖 오물을 뒤집어 씌웠다는 것.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학생의 몸에서 땀냄새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심한, 뭔가가 썩어들어가는 것이 강한 악취가 풍겨옴을 새삼스럽게 상담사가 깨달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상담받는 학생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옷 군데군데가 올이 풀린 탓인지 뜯겨나간 것도 있지만 그보다 예리한 것으로 베인 흔적.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물건의 이름을 떠올리기에 아주 충분했다. 

 다시금 뭔가를 종이 위로 슥슥 적어 내리던 상담교사가 눈만 위로 슥 들어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커터칼입니까?"

 "맞아요. 아예 숨을 죽이고 돌아다니니깐 이제는 자기도 똑같이… 뭐 귀신 그런거니까 숨 안 쉬는건가는 몰라도. 아무튼 방심할 기회도 없이 옷이 마구 찢겨나가고 그러다가 이제는 살점까지 베여나가고… 이거 보세요! 여기, 여기 피났잖아!"

 

 보란듯 자기 팔뚝을 이리저리 뒤틀다가 곧 발표라도 할 기세처럼 높이 치켜들어 내보인 상처는 확실히, 단순하게 피가 났다고 표현하기에는 제법 과다하게 흘린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깊은 상처는 몸 여기저기를 가리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보라며 온 몸을 뒤튼 끝에 보이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에서 공격당했군요."

 "비겁하게 말이에요. 귀신이나 되어서 왜 날…!"

 

 자신이 당한 부조리함에 엉망이 되어있는 얼굴 사이로 눈물을 흘리며 이를 득득 가는 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담교사는 표정을 알 수 없는 오묘한 얼굴로 자신이 지금까지 적은 내용을 힐끗 내려다보고 다시 정면을 똑바로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을 괴롭혔을까요?"


 갑작스러울 정도로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상담교사는 자신이 정리한 내용, 왕따라는 글자를 제목처럼 적어둔 아래로 마련된 목록을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머리채를 쥐어뜯고, 돌아다니는 사람의 발을 거는 것이며 숨어있는 자리에 오물 따위를 뒤집어 씌운 끝에 칼로 몸을 긋는 행위…. 이건 주체가 굳이 유령이든 괴물이든 주체가 무슨 정체인지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서 들은 이 일련의 모든 행위는 솔직히 저로서는 아주 익숙하리만치 들어온 것이라서. 혹시 생각나시는 건 없으십니까?"

 "제가,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학생은 다시금 소리를 빽 질렀지만, 자신에게 닥쳐왔던 지극히 비일상적인 상황에 시달렸던 탓인지 평온함을 잃어버린 사이로는 분명 사람들이 찔렸다고 부르는 그런 기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상담실의 담당교사는 그 미세한 반응을 눈치챘고, 조금 전까지 제법 심드렁한 반응보다는 훨씬 날카롭게 되물었다.

 

 "다시 말씀드리지요. 제가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상담을 진행했을 것 같습니까? 어설프게 감추시다가 나중에 들키느니 차라리 여기서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는 것이 더 나을텐데요. 정말로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으십니까?"

 "몰라요! 난 모른다고! 그깟 거 내가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 학생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뚝뚝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깟 거? 그게 뭡니까?" 

 

 교사가 말꼬리를 붙잡자 자신도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제 입술을 콱 깨무는 것으로 상담교사의 심증은 더욱 깊어만 갈 뿐이었다. 그리고 상담교사의 시선은, 일부러 바라보지 않았던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똑바로 향했고 곧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행동에는 분명 작지만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모멸감에 섞여 있을 정도였기에, 학생은 자신보다도 어른인 교사에게 발끈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른이면 다야? 기분 나쁘다고 픽픽 한숨이나 쉬어대고? 내가 엄마한테 말하면 꼬투리 하나하나 잡아서 다 털어낼 수 있거든요? 아니 그리고 뭔 경찰도 아니고 "

 "아직도 모르시는 것 같군요."

 "뭐, 뭘요."

  

  이제는 두려움마저 숨기지 못하는 학생의 반응에, 교사는 한숨을 다시금 작게 쉬고 드륵 소리가 나도록 책상서랍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척 보기에도 질겨보여야 할 봉투 속, 내용물을 더 집어 넣는다면 찢어질 것처럼 위태한 두께의 서류가 쑥 빠져나오자 늘어진 살처럼 봉투는 헐렁한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줄 정도의.

 목소리에 따분함 따위는 눈 녹듯 사라지고 경멸감과 같은 그것이 느껴질 정도였던 상담사는 자신이 꺼낸 서류 그 첫 페이지부터 바로 살펴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추합니까, 이게. …아니면 인정하기 싫은 것일지도?"

 

 학생이 이제는 개소리하지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으나, 상담사는 귀를 막을 막지도 않은 채 이어서 자기 할 말만 계속 하기에 이르었다.

 

 "문 바깥에 괴물이 있는지 없는지 제가 알 필요는 없지만, 설령 있다면 그 다음이 무엇일지… 학생이라면 잘 알고 계실텐데요."

 "…."

 

 학생은 침묵을 지켰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씨근덕거리는 숨소리 사이마다 엄마라던가 학부모회와 같은 단어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실낱같이 새어나오는 참이었다. 물론,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둔 조용한 상담실 안에서 그 정도의 혼잣말은 충분히 상대방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데시벨을 가지고 있었다.

 상담교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서 신랄하게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해서 묵묵히 들어줬는데, 지금 이야기 한 내용들을 제가 어떻게 심리학적으로 분석을… 지금까지 한 말은 그저 귀신들인지 뭔지가 당신을 괴롭혔다, 이게 전부지 않습니까? 여기서 제가 어떻게 심리상담을 더 진행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하여 당신이 겪은, 보다 실체적인 현상에 대해서 제 나름의 기시감을 가지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말씀드—"

 "난 아무 잘못도—" 학생이 무례하게 말을 끊은 것을 다분히 의식하기라도 하듯, 상담교사는 언성을 조금 높여 다시 가로챘다.

 "—리자면 결코 지금과 같은 부상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도움을 드리려 했는데 말이지요. 제가 강제로 뭘 도울 처지는 못되는지라. 그러니 상담종료입니다. 아, 다음 차례도 있는데 이 무슨 시간낭비인지 원."

 "나,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교사로 인해 끊겼던, 완전한 문장을 비명과 같이 내지른 학생은 이제 몸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지경이다. 손전등을 주섬주섬 챙기던 상담교사는 그 모습을 조금 전과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힐끗 보고는, 그 얼굴과 마찬가지로 억양이 이상하리만치 없는 목소리와 함께 상담실 문을 열었다.

 곧 학생이 처음 상담실에 들어왔을 무렵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복도에 약간이나마 불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라고 하시는군요."

 

 학생은 그 어두컴컴한 교내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의 귀신 혹은 괴물이 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머리카락부터 그 발끝까지 어디 하나도 온전하지 않은 형태가 학생을 노려보는 모습. 그것을 보며 학생은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몰라! 난 모른다고! 그건 그저 재미로 했을 뿐이란 말이야—!"

 "아, 그렇습니까?"

 

 상담교사의 목소리는 비교적 극적으로 비아냥거리는 투가 되어있었고, 그리 넓지 않은 상담실을 다시금 횡단하느라 구두가 뚜벅거리는 소리마저도 학생을 향한 조롱조가 묻어나오는 듯 하였다. 그 몸이 도로 책상 앞에 왔을 때, 다시 앉지는 않았지만 상담사의 손에는 예의 그 두꺼운 서류뭉치가 들려있는 채로 다시 문 앞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알지 못하시는군요."

 "…?"

 "글쎄요, 이게 몇 번째일까요. 아니면 몇 십번째일까요. 제가 당신에게서 그 놈의 몰라 소리를 듣는 것이."

 

 영문을 알지 못해하는 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산발 너머로도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제는 그 표정마저도 지겹다는 듯 상담사가 이어서 말했다.

 

 "뭐,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눈치를 채신 것 같으니, 저 또한 그 보답으로 조금 말씀드리지요. …당신이 이 분에게 했던 모든 것들을 체험해보시는 소감은 어떻습니까?"


 그 어떤 때보다도 학생의 얼굴은 얼이 빠져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헤벌어진 입 사이로는 여전히 몰라라는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그것이 퍽 바보처럼 보였는지 상담사는 바람이 섞인 웃음소리를 내고야 말았고, 머리카락 한 올마저도 완벽하게 넘겼던 그 헤어스타일은 조금 좌우로 흐트러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곧 제 손바닥을 휘휘 저으며 다시 상담사는 말을 이었다.

 

 "아, 아니지. 아직 전부 체험하신 것은 아니지요. 아직은."

 

 아직 더 남았다는 말에, 이미 사색인 얼굴은 더 물러날 곳도 없을 만큼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으로 보던 상담사가 흥얼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처음에 당신이 부정했던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요. 예. 하지만 왜 그랬을까요? 모든 이들이 왜 당신을 따돌렸던 것일까요?"

 "…나, 난."

 "무릇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지요. 물론 시작은 무슨 이유였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알지 못했습니다만 그 이후의 흐름이라면 마땅히." 알쏭달쏭한 말을 갑작스럽게 하던 상담교사가 상대방을 향해 제 얼굴을 쑥 내밀며 이어 말했다. "예를 들자면… 역지사지 체험의 시간, 이라던가."

 

그제서야 지금껏 선문답같았던 상담사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 학생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거리는 소리만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학생의 반응이 꽤 즐거웠지만 안타깝다는 듯, 상담교사의 눈은 놀랍게도 동정심을 품는 것 같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전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시냐고. 당신이 먼저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동급생을 향해 했던, 그 모든 일의 일부가 기억나지 않으시냐고. 하지만—"

 "난 잘못 하지 않았어요! 걔네들이 먼저—"

 "눈에 거슬릴 짓을 했으니까?"

 

 학생이 아주 자연스럽게 올리려고 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읽혔다는 듯 말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헙 소리를 내며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제서야 학생은 한 가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 상담교사는 도대체 누구인가?

 

 "사실, 이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이름의 상담교사부터 이상하게 여겼어야 정상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이 학교의 위클래스 담당교사 이름이 누구였을지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다지만, 적어도 가장 연관이 깊은 당신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그래요, 가책이라도 느껴 찾아왔다면 알 수 있었을텐데."

 

  융터르의 짙은 푸른색 눈동자는 이제 동정에서 약간 조롱기를 띄고 있다. "그랬다면 전혀 생뚱맞은 상담사가 상담이랍시고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것도 이상하게 여겼을텐데. 아. 유감스럽지만… 우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볼까요?" 

 

 그 말이 끝난 직후, 학생은 지금까지 병풍처럼 서 있던 귀신들이 제 몸을 옭아매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주 명확하고 확고한 그 움직임에 발버둥을 아무리 치고 벗어나려고 해도, 정신적인 충격으로 무방비하게 서있다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학생으로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완벽하게 포작당한 직후, 학생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처음 잠에서 깼다고 생각했던 그 교실로 되돌아가려 함을 알아차렸다. 

 

 "으음, 그렇지. 그래도 이번에는 약간이나마 진척이 있었으니 한 가지 더 보너스를 드림이 옳겠군요."

 

 이제는 목구멍까지도 완전히 막혀 무어라 소리를 낼 수 없던 학생이 겨우 눈을 돌려, 융터르가 말하는 보너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거울이다. 도대체 왜 이까짓게 보상이냐며 항의하고 싶었던 학생은, 그것이 어째서 보너스라는 것인지 곧바로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산발인 머리와, 두피를 비롯한 피부마저 군데군데 썩어버려 그 안에 있는 새하얀 뼈가 보이는 시체가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으므로. 이 공간이 자신만을 위한 지옥이라는 사실에 절규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죽은 이의 귓가로 무척이나 낮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 다시 수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