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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키데모나스 단편 : 좋은 것을 위하여.

김만성피로 2023. 11. 4. 22:32

*이번 왁키데모나스 L편을 보고 너무 좋아서 결국 써야겠다 결심했읍니다.

*이해를 위해 왁키네모나스 L편 지금까지 나온거 정주행해주십쇼…!!

*같이 들어주셨으면 해서 올리는 틀딱 브금 : (81) 검은방3 OST 16 Sin - YouTube

POV : ■■■■ ■■■ 


 여기, 나의 죄가 도착하였다.

 오만으로 뼈를 세우고, 위선으로 쌓아올려 더 이상 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탑의 꼭대기. 오도가도 못할 공간 속에 있을 내게 내 죄가 도착하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으로 구해줬으되,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를 바라보는, 망가진 눈동자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한단 말인가.

 한때, 마법이라는 학문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너머를 감히 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미답의 경지를 어떠한 대비도 없이 넘보았던 그 오만의 댓가는 무엇이었던가? 세상은 곧 내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연한 사고가 만들어 낸 것에게 세상은 병균과도 같은 마법이라고.

 그리고 그 을 앓게 되어버린, 나의 죄가.


 처음에는 내가 빚어낸 참상에 눈을 돌렸다.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곧 귀를 아무리 막아도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죄의식의 수렁에 나를 잠식시켜버렸다. 처음에는 부정하였다. 이것이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힌 누군가라면 당연히 했었을 것이라고.

 그 다음은 분노하였다. 어째서 자신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법의 극의에 다다를 것이라 속삭였는가. 그래서 왜 나로 하여금 흑마법이라는 죄악을 탄생시키게 하였는가. 따라서, 흑마력을 지니게 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내 몸을 좀먹어가는 그것에게 협상을 하였고, 결국 머지않아 내 죄이자 과오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 뒤에 남은 것은? 어느덧 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것은 다시금 흑마법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그릇된 열망이었다. 이미 이 몸으로는 더 이상 마땅한 연구를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때, 은거하던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시간이 흘렀고,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질병처럼 번진 흑마법은 실로 훌륭한 연구대상이었으니까.

 그 모든 이유는 오로지 하나.

 좋은 것을 위하여.

 마력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경험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그 끝은 늘 그렇듯, 한 없이 좋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한 학파의 시조 격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태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저질러버린 터무니 없는 사건을 애써 수습하고 저 아래로 파묻어버리려고 발버둥 치는 범죄자의 모습이었다. 

 완전히 사로잡혀 자아를 잃어버린 그들에게서 갈취하듯, 나는 내가 퍼트린 병의 잔재를 조금씩 회수하고, 연구했다. 흑마법의 연구라는 좋은 것을 위해, 나는 그들의 피와 눈물을 삼키기를 거듭할 무렵.

 

 "언제—까지고, 그, 그,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가—악 하지, 마라…!!"

 

 실로 너무나 잘 아는 이유에서, 이제는 누가 했을지도 기억나지 않는 발악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다시 스스로 묻곤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극단적으로 말해, 이미 연을 끊은지도 10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아카데미에 불온한 마력이 꿈틀댄다고 한들 관심도 없었다. 그저 그 곳을 향해 다시 발길을 향한 이유는 오롯이 단 하나였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흑마력의 소유자보다도 가장 강렬한 이끌림. 지난 날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이 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선명하였다. 또 누군가가 흑마법에 잡아먹히려 한다는 것. 

 완전히 몸과 마음을 그것에게 빼앗겨버리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구해낼 수 있었지만 이미 상태는 좋게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억지로 연결을 끊어내 겨우 정신을 돌려놓는데 성공했지만, 아카데미의 학생이 자신의 흑마법이 폭주하는 수준에 사로잡혔는데도 대응하지 못하는 그 곳의 선생들이 그렇게나 무능했었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을 무렵. 이미 한 번 눈을 뜬 시점에서 도로 돌아가기 싫은 것이 분명한 그 질 나쁜 것이, 애써 차지할 숙주의 몸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듯 꿰뚫린 상처를 기워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언니…!!"

 

 정신을 차리자마자 외친다는 말이, 언니라니. 그것은 분명 처음 구출해 낸 지하수로에서도 희미하게 웅얼거리던 말이 아닌가. 멀리서도 느껴지는 피비린내와 비명소리, 그리고 그것들을 갈구하듯 내지르는 괴악한 소리들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검집에 새겨진 릴파 라는 이름.

 옷자락에 수놓아진 아카데미의 심볼. 

 그녀는 지금 이미 범람하는 괴물들로 인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아카데미에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언니를 두고 왔다. 

 이미 한 번 사로잡힐 뻔했던 탓일지, 혹은 100년의 세월이 흑마법에게 주는 무수한 모멸감 덕분일지 발언 하나하나에 날서게 반응하는 그녀의 태도는 분명 좋든 싫든 한 마법의 시조가 되어버린 내 입장에서 실로 무례하다 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어떤 희망이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흑마법에 쉽사리 잠식되지 않았던, 그런 단련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내 연구의 정수를 받아들인다면?


 마력과 칼날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동굴 곳곳을 명징하게 울려대기 시작했고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듯, 그녀의 검을 다루는 솜씨는 이미 아카데미가 품기에 과분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당하는가 싶었지만, 점차 대응해나가는 모습은. 그러나 살의가 부족했다. 그로 인해 피어올라 마땅할 흑마법은 너무나 부족했고, 곧 자신이 그렇게나 내게 호소했던 안 쓰는 것을 지적할 때면 그녀는 비명같이 내지르곤 하였다. 자신이 받아온 핍박과 혐오 따위를 내가 어떻게 알겠냐는 등 따위를.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내가 알 이유는 없었다. 더더욱이 자신이 말한대로 무너질 정도로 망가진 아카데미아에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그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검 솜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내 연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훈련이라는 미명 아래에.  "그래, 까짓거,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야. 훈련 받을 게. 언제 시작이야?"

 

 드디어 원하는 반응이 나왔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말이 있기에, 옛 성현의 진리를 외면할 생각이 없던 나는 내 마력을 이끌어 낸 채 말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지금부터죠." 라고. 당황한 그녀에게 가볍게 말해주었다. 내가 만들어 낸 공간, 그 곳에서 탈출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웬만한 마법사보다 강해질 것이라고.  당황한 마음이 역력해 미처 대꾸하지 못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설명보다는 목도하는 것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 안은 그녀가 가진 죄책감이 형상화 된 곳. 흑마법은 숙주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으며 덩치를 키우고, 곧 숙주마저도 잡아먹는다. 그러니 저 안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자신의 죄악감을 베어내고 쓰러트리며, 스스로의 심지를 더욱 강하게 굳힌다면.  스스로가 그토록이나 부정하고자 했던 흑마법을 어떤 두려움도 없이, 올곧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적마다 돌 벽에 나는 선을 하나 긋고, 또 그었다. 오직 그녀가 저 공간을, 그러니까 자신의 죄악감을 깨부수고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 나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벽에 새긴 빗금이 20개를 넘어갈 무렵, 내 왼눈과 심장을 차지한 그것이 은연 중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정말 믿는거야? 너보다 더 약한데도 믿는거야?" "믿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 웃기네. 그렇게 무수한 사람들을 네 믿음 아래에 죽여버린 주제에." "이거 참, 덕담 감사합니다."

 

 놈은 지금도 저 안에서 분투 중일 릴파 님, 정확히는 그녀의 흑마법을 삼키고 싶은 듯 은근히 말을 건넸지만 신경을 쓸 이유는 하등 없었다. 놈은 나의 죄의식을 먹고 자라는 것. 달리 말하면 내 이면과도 같은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내 일부니까. 연구라는 미명 아래에 놈의 꼬드김에 사로잡힐 적도 있었지만 이제와선 전부 허망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그녀에게 해줄만한 조언이라고는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것. 

 

 "얼마나 얕잡아 본거야? 말했지? 못 쓰는게 아니라, 안 쓰는 거라고."

 

 그래서였을까? 고작 두 달 만에 공간을 깨부수고 나온 그녀를 보며 방심했었다. 지금껏 제법 많고 다양한 흑마력들을 상대해보았다 생각했건만, 서둘러 아카데미에 돌아가고, 그 언니라는 사람을 구해내고 싶었던 열망이 집착처럼 작용한 문제였었을까. 미약하게나마 그녀가 완전히 지배하고 억누르지 못한 흑마력은 내 구속을 벗어난 자리를 인지하자마자 순식간에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멈추십시오! 지금 나가시면 안 됩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릴파 님의 몸을 잠식한 그 흑마력이 날 비웃는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느냐고 비웃는다. 마법에 잡아 먹히지 않겠다 천명하던 그녀를 비웃는다. 그 모든, 삶을 향한 의지를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웃었다. 그 몸을 차지했다는 기쁨이, 불온하게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으로 변한 채 지껄이는 태도가 가증스러웠으며, 한편으로는 그제서야 차가워진 머리가 은근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지금이 그 때다. 다른 이들의 마력을 찢어내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야 육체를 놈에게 빼앗긴 시점에서 아직 잠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혼에게 다가가는 수 밖에. 모든 것이 부서지고 사라지기 시작하는 그 정신세계에서, 완전히 절망해버린 그녀의 앞에서, 이제서야 내 오래된 숙원이 손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겠지. 아무렴. 당연하겠지만, 내 방법을 들은 그녀는 당황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죽는다는 말과 뭐가 달라?"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 지적에 움찔거리는 것은 분명, 이미 체념에 가까운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보일 수 없다. "…그럴 바엔 내가 죽는게 나아."

 

 참, 이게 무슨 의미일까. 난 당신을 훈련시키겠다며 두 달을 어둠 속에 처박아버렸는데도, 내가 당신의 모든 핍박과 오욕의 근원인데도 날 걱정해주는 말이라니. 그 다정함에 새삼스럽지만 그 언니라는 사람이 내심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내 과오를 인정하고 똑바로 마주보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릴파 님은 지금처럼 흑마법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괴로워 할 지언정, 보다 쉽게 극복했겠지. 어쩌면 나도 아카데미에서 한 자리 차지하며 흑마법이 무엇인가,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를 알려주었을 것이다. 보다 단련되고 성숙한, 당당한 한 마법사로서 그녀는 어떤 세상 속의 풍파에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것이다. 기왕이면 이렇게 된 김에 그 모습을 조금은 더 지켜보고 싶었는데. 그러나 목소리는 지난 모든 과거와 견주어도 한없이 확고히 거짓을 내뱉는다. 100년을 살았으니 무슨 미련이 있냐고.  "제 과오의 속죄라 생각해주십시오."

 

 이건 진실.

 

 내 몸이 무너지지 않게 억지로 지상에 붙들고 있던 마력이 점차 그녀의 몸으로 흘러가는 것이 느껴진다. 흑마법을 연구한 이래 다른 이들의 피와 눈물을 잡아먹어가며 점차 견고해지고 안정된 그것 대신, 지극히 날뛸 뿐인 사악함의 정수가 흘러들어오며 점차 몸이 부서져가는 것이, 정신세계 너머에서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비명을 지르며 관둬달라 애원하는 것이 점차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 몸에 발생한 이상을 당연히 알아차린 그녀도 나지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또 누군가를 지키는데 실패한거네…." "실패란 건 없습니다. 모든 게 다 경험이죠."

 

 지금껏 크고 작은 실패를 했으면서 그로부터 도망칠 생각만 하던 내가 하기엔 제법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적어도 나의 일에 부정하고 외면하던 스스로가 이 순간에서야 깨달은 말을 건내주었다. 아아, 실로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으련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언제부터인가 들리지 않던, 나로 인해 죽어간 모든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손이 원망하듯 내 몸을 붙잡고 한없이 끌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가리고, 목을 조르고, 팔 다리를 잡아 뜯는다. 귓가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물라는 듯 망령이 되어버린 이들의 넋두리가 들려왔다.  그래 모든 시작은 인정에서부터. 아아…. 이제야 죗값을 치릅니다. 부디 편히 기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