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상한 놈 이야기 - 런닝맨(2)
*저는 캘리칼리님을 못 죽입니다.
*캘리칼리님은 저를 죽일 수 있습니다.
*캘리칼리님은 절대로 안 죽습니다.
시간을 돌려, 그 폭발테러가 일어났을 때.
캘리칼리는 어째서 불에 타들어가는 고통이 1순위로 아픈 것인지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폭발로 인한 고열이 살갗을 태우고 그 안의 살점도, 신경마저도 전부 붉게 잠식해나가는 것은 그가 아무리 재생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감내하기란 어려웠으니까.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막아 눈까지 피해가 번지지는 않아 시야확보가 된 상황에서, 불길 사이로 어떤 그림자가 하나 보였다. 여러가지의 이유에서 그는 저 그림자가 이 사건의 원흉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등 뒤로 뭔가가 꾸물거리는 것들을 달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아. 이젠 치사하게 한번 불에 구워보는거냐? 아?"
"..."
"이번에는 침묵수행? 못 본 사이에 말이 더 없어졌구나 너. 차라리 그 입이라고 있는 것도 꿰메버리지 그러냐?"
여전히 그림자 쪽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건 좀 불리한데. 캘리칼리는 대화하는 척 시간을 끌면서 화상을 서둘러 치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의도를 간파한 것처럼 아무런 말이 없다면, 자신이 주절주절 떠들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티가 확 날테니까.
곧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기에는 산소가 불충분했던 것인지 시커먼 연기가 순식간에 공간을 메꾸기 시작했다. 예전 소방서와의 합동작전에서도 저런 연기 사이로 산소통없이 무턱대고 들어가면 뒤진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별로 쓸데없는 기억을 떠올렸던 그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으로 검은 연기 속으로 몸을 감췄다.
습격자가 그의 행동에 문제의 꾸물거리는 것을 매섭게 날렸지만 연기만 가로질러 그 흔적을 남길 뿐, 공격에 대한 소득은 전혀 없었고,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마자 재빠르게 모습을 감춰버렸다.
"후우... 진짜. 뒈질 뻔했네."
집이 폭발테러에 휘말린 지 이틀이 지나서야,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근처에 있는 공원 화장실에서 새 살이 돋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만을 기다리느라 거의 죽은 듯이 지낸 그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하고 싶었던 찬물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니, 그을음 사이를 뚫고 도망치느라 얼굴이며 몸이며 죄다 새까만 얼룩이 묻어있었다. 몇 번이고 찬물을 끼얹은 끝에 그을음이 떨어져나간 그는, 세면대 한쪽에 올려두었던 옷가지를 꺼내서 갈아입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을 감안하고도 일부러 더 안 쪽으로 들어간 이유는 별 것도 없었다. 애써 장만한 집이 폭발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때, 그의 옷가지도 타버렸으니까. 순전히 갈아입을 옷을 구하려는 의도였다.
어떻게든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으면서 그는 다시 혼잣말을 했다.
"벌거벗고 도망치면... 아, 생각도 하기 싫구만."
어차피 큰 키로도 이래저래 시선을 끄는데 거기서 그런 불상사(?)까지 발생해버린다면? 불난 집에 기름을 잘 바른 통닭이 저절로 뛰어드는 셈이 아닐까. 실없이 웃던 그는 갑자기 정색을 했다. 생포만 하면 장땡이다 이건데,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숨만 붙어있으면 그만이라서, 라는 것이었고 도저히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숨만 붙어있어도 된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자면 자신에게서 어떤 정보를 원한다라기보다는...
"그렇구만. 이걸 원한다라." 그는 아직도 화상의 흔적을 밀어내고 있는 새 피부를 보며 중얼거렸다.
탈출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목 뒤가 따끔거리는 것이, 그 괴상망측한 놈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캘리칼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빠져버렸다. 가장 처음으로 생각난 것은 융터르의 상담실. 그 안락한 소파에서 잘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 뿐만이 아니겠지. 같은 의미에서 어딜 돌아다니더라도 놈은 거리낌 없이 주위를 파괴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노스페라투 호드의 집으로 가는 것도 곤란하다. 무력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가장 훌륭하지만, 평범한(??) 기자를 연기하고 있는 그가 적의 습격에 본모습을 자칫 잘못 드러내면 그의 일상을 파괴하고 말테니.
그냥 거리낌없이 서로 복귀할까? 그렇다면 주위 동료들과 같이 싸울 수는 있겠지. 근데 그 사람들이 놈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는가? 생각나는 곳을 무작정 떠올려도 전부 스스로가 반박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문득 화장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초췌한 모습에, 그는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옛날에 주인공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났다던 영화 하나 생각나는구만. 그게 지금의 내 꼴이라니. 이거 멋지군."
그 주인공과 자신의 차이점이라면, 자신은 액션스타가 아니라는 점이려나. 이럴 때 기가 막히는 해결책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한탄하던 그는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치는 꼴은 그 때 그 병원 옥상의 일 이후로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데. 문득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액정이며 케이스며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아직 쓸 만했다. 마치 자신처럼.
그는 메신저를 실행해 겨우 문장 몇 개를 완성시키고 지정된 사람들에게 전송했다.
[나 아직 안 죽었다. 당분간은 숨어지낸다. 공격한 놈은 등짝에 꿈틀거리는 걸 여러 개 등에 매달아 놨다. 자세한 건 불길 때문에 못 봤다. 그 놈은 말을 못하는 것 같다. 말 하는 놈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다시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쑤셔넣고 화장실 문을 열자, 그를 맞이하는 새벽녘의 공기가 차갑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했다. 저 멀리 건물들 사이에서 동이 트는 것을 보며, 그는 씩 웃고는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까짓거 영화 한 편 찍어주지 뭐, 내가 이래뵈도 체력은 어디가서 안 꿇리거든."
-19. 좋은 놈 이야기 - 추적자(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