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성피로 2025. 1. 13. 23:57

*브금 : https://youtu.be/P3Y8OWkiUts?si=gp1c-NMU-l9FYfxu

*최소 상현 더범새라는 사실이 너무 기뻐…했지만 여러가지 사유(주:귀찮음) 때문에 늦었습니다.

*사실 브금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첫 장면 때문에 갖다 붙인게 맞습니다.


 유리창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3층 높이에서 거대하게 덩어리 진 그림자가 유리 파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높이를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곧장 뛰어내렸을 때는 귓전을 울리는, 순수하게 분노로 가득 찬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이를테면, 저 새끼들 찹아!  라던가.

 깨진 창문 사이로 흩날리는 푸른빛 지폐들은 차라리 여름에 간혹 떨어지는 나뭇잎 같았고 멍하니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한 장이라도 줍고자 아우성이었다. 밀밭에 떨어진 낱알을 줍는 여인들을 그린 명화보다는 좀 더 노골적인 움직임 사이로 뒤늦게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인상 험악한 사람들을 조롱하듯 오픈카가 도로 위로 타이어 흔적을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이거나 먹어!"

 

 오픈카로 드러난 뒷좌석에서는 유독 덩치가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남성이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깡패들에게 가운데손가락을 의기양양하게 치켜들면서 외쳤다.


 차 안에서는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마피아의 비밀 금고를 터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탈출방법이라는게 3층 높이의 건물에서 무작정 뛰어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소피아로서는 죽었다 꺠도 그러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그를 옆구리에 짊어지고 뛰어내렸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 충격이 곧바로 소피아의 내장을 뒤흔드는 것만 아니었다면.

 

 "이야, 내가 저기에 끼어들었으면 큰일났겠는걸."

 

 운전석에서 유유히 핸들을 붙잡은 카르나르 융터르가 그런 소피아의 모습을 백미러로 힐끗 보고는 말했다. 다분히 놀림조가 강한 목소리였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팔뚝 모양 멍자국이 배에 남은 소피아는 그 말에 억울한 기색을 터트렸지만, 그것에 그친 채 끙끙 앓는 소리로 끝내야 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 자신의 역할을 그에게 맡기는 순간 즐겁지 않은 우리집, 큰 집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슬프게도 잘 알았으니까.

 한편 조수석에 앉은 비밀소녀는 자신들의 성과를 냉철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거한의 손에 들려있던 묵직한 마대자루가 마법처럼 그녀의 다리 사이에 도망치지 못하도록 갇혀버렸다. 그 안에는 귀금속 따위가 한가득이었다. 안 그래도 무게가 상당했기에 그녀는 장을 끊는 안타까움으로 가장 가치가 적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그것이 자신들을 추격하려고 했던 깍두기의 발을 묶어놨던 현금뭉치일 정도였으니까.

 

 "으응, 이번엔 소득이 좀 좋았네요—"

 "경찰에게 쥐어주면 그것도 얼마 없잖냐."

 

 뒷좌석에서 몸을 늘어져라 거의 눕다시피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짐짓 투덜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끼리도 믿을 수 없는, 그야말로 잘 마른 콩가루에 비견할 만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서로가 잘 아는 장물아비에게 맡기겠다고 했지만 서로가 얼마나 지독한 범죄자인지 잘 아는 마당에, 그 선택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격이 되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굶주린 고양이 말이다.

 추격이 더는 없는 듯 하자 여유롭게 운전하는 사기꾼, 카르나르 융터르가 모스 부호의 짧은 신호처럼 '하하' 웃으며 대꾸했다.

 

 "이 지역 경찰들이 적당히 썩어있으니 망정 아닙니까."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

 

 배에 난 멍을 슥슥 문지르는 소피아도 융터르의 말에 슬쩍 동의를 했다. 인력도, 열의도 어느 것 하나 특출나지 못하고 적당히 부패한 경찰들은 이 도시의 무수한 종양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이이제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그 대신이랄까, 이른바 약탈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았으니 이 짓거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닐까.

 

 "하지만, 요새는 경찰들도 좀 은근 배가 부른 모양이더라구요—"

 

 가장 꼼꼼한 성정의 비밀소녀가 조수석에서 다른 남성들을 향해 몸을 돌린 채 말했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말씨와 달리 드러나는 어감은 명백히 적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적은 실적대로 쌓이고 이 범죄자들에게서 돈을 넉넉하게 받아먹으니 만족할 줄 알았건만 그들은 시나브로 '더'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싶다는 것이 캐릭터가 너무나 다른 이 네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사실을 지적하는 캘리칼리는 심드렁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크고 두툼한 손은 검지만 툭 내밀어 비밀소녀 속에서 가치 평가를 당하는 중인 마대자루를 향했다.

 

 "그럼 어디가서 돈세탁 하냐?"

 

 그게 문제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돈세탁 루트를 각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역설적인 신뢰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모두가 동시에 인정할만한 경우는 극히 희박했다. 캘리칼리의 원론적인 지적에는 비밀소녀도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골머리를 앓을 뿐이었다.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썩은.

 그 애매한 영역에 걸친 채 오래오래 자신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줄 그런 형편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알렉산더 대왕이 복잡한 매듭을 풀기보다는 단칼에 베어낸 것처럼, 명확한 어조로 소피아가 차 등받이에 제 몸을 거의 눕히다시피하며 툭 내뱉었다.

 

 "못 버티겠다 싶음 그냥 그때는 나가죠, 이 도시."

 "으음, 그게 맞는 말이긴 해요."

 

 비밀소녀는 열린 창문 사이로 그녀의 팔을 괴어 멍한 얼굴로 차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바람결에 날리는 오렌짓빛 머리카락이 노을처럼 일렁거리며 그들의 아지트로 돌아오는 동안, 그 이후로 이어지는 말은 전혀 없었다. 맑고 깊은 강물이 일렁이는 다리 위로 불청객이 끼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곧바로 타이어가 찢어지는 소리가 다시 났다.

 

 "?!"

 "어이, 운전 똑바로 못해?!"

 

 운전대를 잡은 동료인지 아니면 그들의 앞차인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한 캘리칼리는 그렇게 일갈하면서 아주 숙련된 자세로 제 뒷목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필두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행세를 하며 나왔지만 이참에 야무지게 합의금 장사나 하려던 그들의 행동이 얼어붙었다. 

 하물며, 운전대를 잡은 카르나르 융터르 또한 뭔가가 끼어들었다는 생각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지 막상 그 정체를 알아차리지도 못했었으니. 능숙한 연기자들은 이 순간 카메라 앞에서 얼어붙은 신입 배우보다도 못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다리 위로 흩날리는 바람따라 펄럭거리는 은색 망토와 발끝부터 머리까지 다부진 근육질의 체형을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감싼 남자.

 

 "노스페라투 호드."

 

 카르나르 융터르가 평소 부러 높게내던 목소리보다 낮게 웅얼거리며 이 훼방꾼의 이름을 불렀다. 가슴팍에 매달린 금속제 H심볼이 햇빛을 받아 얄밉도록 눈부셨다.


 "아잇! 비좁아! 누구 샌드위치로 만들 일 있습니까?!"

 

 평소에도 다소 엄살을 떨 듯 요란한 소피아였지만,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그의 양 옆은 어마무시한 떡대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었으니까. 다만 그 왼쪽은 위아래로 조금 더 길고, 오른족은 좌우로 조금 더 넓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었다. 소피아는 이 순간만큼은 비밀소녀가 탄 조수석 자리를 절실히 원하는 눈치였다. 

 얼굴 위를 복면으로 뒤덮었는데도 불평과 불만이 한가득 드러나는 소피아는, 하늘 위로 날아다닐 수 있는데도 뻔뻔하게 제 자리를 탐내는 이 히어로의 팔뚝을 찰싹거리며 때리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일단 자신의 체격도 체격이고, 완력면에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현격히 부족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지 않은가. 하물며 자신의 애용하는 장도리를 휘두른다고 해서, 그것이 저 떡대에게 잘 먹힐지도 불확실한 소피아였다.

 

 "으응, 그나저나 호드 님이 우리 쪽에 접근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요오—"

 

 비밀소녀가 몸을 돌려 일행을 대표해 난입한 히어로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앞길을 매번 막아세우던 이 정의의 남자가 느닷없이 이야기를 하자며 대뜸 차에 올라타는데 누구라도 안 그럴까. 비단 그녀 외에도 옆에 앉은 소피아와 캘리칼리 또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온화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몸에 딱 달라 붙는 쫄쫄이 슈트를 입을 정도의 뻔뻔함이 여기서도 드러나는지, 그 시선세례에도 히어로는 그저 외국어 억양이 짙은 목소리로 운전대를 잡은 융터르에게 툭 말할 따름이었다.

 

 "아이, 좀 빨리 빨리, 갑시다."

 "여기서 더 밟으면 딱지 떼는데, 나 원."

 

 무슨 히어로가 말하는게 범죄자 뺨치는지 원, 융터르는 황당함에 젖어 헛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묘하게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짜 상담사, 내지는 사기꾼의 그 낮은 웃음소리는 이 차 안에 탄 범죄자들의 공통된 심경이었다. 대뜸 자신들의 차를 막아세우고는 동승을 요구하는 저 뻔뻔함이라니.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다리에 쥐라도 나서 못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늘을 날고 강력한 전기를 내뿜으며 괴력을 자랑하는 그가 고작 다리 하나 삔다고 그게 문제가 될까? 그의 행동은 명백히 자신들을 향한 노골적인 의도가 드러나고 있었다. 요컨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몸을 삐뚜름하게 앉은 채, 소피아 너머의 노스페라투 호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얼른 말하고 내리시지. 떡대 양반."

 "지는, 떡대, 아닙니까?"

 "…."

 

 짧고 굵은 반격에 캘리칼리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입에 담아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요컨대 사는 곳이 다른 부류가 한 곳에 있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히어로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기꾼마저도 빨간불 때문에 차를 세울 무렵이면 자신을 향해 노골적인 시선을 던지지 않던가. 

 하물며 자유롭게 고개를 돌릴 수 있는 나머지 셋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히어로는 무릇 뻔뻔해야 하는 법. 근육만큼이나 두꺼운 낯짝을 자랑하듯 호드는 태평할 정도로 여유롭게 말했다.

 

 "우리, 동업 합시다."

 

 타이어가 도로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 이번에 세번째였다. 순식간에 차에서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은 뒷목도 잡지 않고 거구의 히어로를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캘리칼리 데이비슨 같은 사람이 아니면 버거운 그 완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호드는 자신이 앉은 차의 시트를 인질로 삼았다. 그의 손아귀가 시트를 꽉 쥐고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가 뜯어질 것 같은 위험한 소리를 냈다.

 비밀소녀는 그가 앉은 자리에 소금이라도 뿌려야 한다고 했지만 슬프게도 도로 위에서는 소금을 구할 마땅한 곳이 없었다.

 

 "손 떼십쇼! 이 양반아! 당신이 수리비 낼 것도 아니잖아!"

 "낼 돈, 없습니다."

 "아니 사람이 뻔뻔해도 정도껏이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입니다."

 

 노스페라투 호드가 여전히 뻔뻔하지만 이전의 태도와 비교하면 상당히 단호함마저 드러내며 말하자,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들의 숙적에 가까운(사실 그마저도 언론이 멋대로 갖다 붙여준 것에 불과하지만) 그가 평소와 다른 기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비밀소녀는 히어로의 복장에 눈이 갔다. 정확히는, 잘 수선되어서 크게 티는 나지 않지만 곳곳마다 기워낸 흔적이 있는 그의 복장을.

 

 "오…?"

 "아, Shit."

 

 황급히 호드가 망토 따위로 가려보려고 했지만, 이미 이채를 띈 그녀의 푸른 눈은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가장 중요한 패를 손에 쥔 도박꾼처럼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자신의 자리, 조수석에 돌아간 앉은 뒤 말했다.

 

 "그럼 우리, 협상할까요?"

 

 분명 유리할 것 같았던 노스페라투 호드는, 그럴 만한 가치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마대자루 속에서 빠져나온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빛이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굴러가는 루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더러운 범죄자 새끼들의 아지트. 식사를 책임지는 사기꾼이 오늘의 음식을 내려놓자 소피아가 조용한 건 싫다며 TV의 스위치를 올렸다. 곧 어디선가 훔쳤던 것은 기억나지만, 막상 기억나지는 않는 50인치 브라운관에 빛이 들어오고 그 뒤를 소리가 따랐다. 소피아의 취향에 따라 텔레비전은 늘 같은 채널을 송출했다. 뉴스 채널이었다.

 

 "밥 먹는데 쓸데없는 소린…."

 

 저번에 있었던 일로 인해 원하든 원치않든 강제로 휴식을 가지게 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기왕 휴식한다면 조용하고 편하게 있고 싶었기에 이 세속의 소리를 의외로 달갑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그러나 막상 전원을 올린 소피아는 물론 사기꾼이 만들어준 쿠스쿠스에 집중하고 있던 비밀소녀마저도 TV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히어로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망토를 멋스럽게 휘날리게 만들어, 그의 당당한 풍채와 금속제 H심볼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었다. 그 아래로 부각되는 자막은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가 지금까지 사회에서 암약하던 범죄자들을 일망타진 했다는 내용이었다.

 

 -Oh, 범죄자들, 앞으로도 저를, 두려워 해야, 할겁니다.

 "에궁… 말은 잘해요오—"

 

 피식 웃는 비밀소녀와 껄껄 웃는 캘리칼리 데이비슨, 그리고 대놓고 비웃는 소피아를 뒤로 묘하게 흥겹고 기운을 돋구는 느낌의 일본어 가사가 벨소리로 울려퍼졌다. 그 주인인 카르나르 융터르는 익숙한 전화번호를 보고 입꼬리만 슬쩍 뒤튼 채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 예예. 방금 뉴스로 확인했습니다. 네. 그럼 다음엔… 예? 어허, 거긴 아직 털기에 조금 빡센데…. 뭐 도와주신다고 하니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요. 네네. 그럼 수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