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썰입니다./완)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 나쁜 놈 이야기 - 은둔자(2)

김만성피로 2022. 11. 28. 20:00

*Tmi : 괴인 설정은 쓰다보니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Tmi2 : 그래서 업로드 이전에 모순이 발견되는 건 아닌가 댕같이 긴장중입니다.

*Tmi3 : 실은 간밤에 제가 설정짜둔 그 괴물 꿈꿔씀... 개물꿍꺼떠


 형사에 관한 걱정이 반, 세뇌시켰던 경찰을 통해 얻은 정보의 불길함이 반의 반,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나머지 반의 반. 지난 밤 동안, 카르나르 융터르를 잠 못 이루게 만든 구성요소를 나눠보자면 이러하였다. 내리 깔아 앉은 눈으로 어둠 속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어느 덧 시간이 6시 20분 전. 이 새벽에 누가? 그런 생각으로 화면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옅게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나 아직 안 죽었다. 당분간은 숨어지낸다. 공격한 놈은 등짝에 꿈틀거리는 걸 여러 개 등에 매달아 놨다. 자세한 건 불길 때문에 못 봤다. 그 놈은 말을 못하는 것 같다. 말 하는 놈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발신자는 이상한 놈. 더 설명이 필요치 않다. 부리나케 단말기를 다시 고쳐 쥔 그는 노스페라투 호드에게도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는지 확인했고, 그 또한 깨어있던 것인지 바로 답장이 왔다. 여러 사람 속을 썩이고는 자신더러 나쁜 놈이니 뭐니 한다니, 당신이 더 나쁜 사람인 것은 알고 있습니까? 융터르는 이 모든 사건이 끝나면 차라리 자신이 이상한 놈이 될테니 나쁜 놈하라고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든 일이 다 끝났을 때의 이야기고. 자신의 몫까지 대신해서 문제의 습격자를 대신 상대해주고 있는 호드에게 정보를 빠르게 넘겨줘야 했다. 자타공인 이 영웅이라면 더 유용하게 사용해주리라.

 그 뒤로도 친구의 생환, 그리고 적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융터르의 머리를 반쯤은 지배하다시피 했고 그 사이에 졸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착실히 정리했고, 그에 따른 결론은 확실했다. 두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 앞에서 나서서 싸울 수 없다면, 뒤에서 은밀하게 행동하면 된다. 그러니 두 사람을 위한 정보를 모으고 또 모으면 될 일이다.

 놈에게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칭 자경단들에 대한 인적사항을 정리해 놓은 종이를 곱게 접어 외투 안주머니에 찔러 넣은 그는 어두운 상담실을 나섰다. 필요하다면 무슨 수라도 쓸 것이다.


 택시에서 내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 대학교 근처의 원룸촌이라니. 카르나르 융터르는 피해자가 누군지 안 봐도 선명하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그를 알아보았는지 근처에 서 있던, 앳된 얼굴의 대학생이 힘없이 손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융터르는 "심리상담사,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대학생은 근처 카페로 가서 이야기 하자고 몸을 돌렸다.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점, 먼저 죄송합니다." 융터르가 학생이라면 좋아할 달콤한 음료를 내밀며 말했다.
 "아뇨... 저도 이걸... 어떻게든... 좀 떨쳐내야 하는데... 아 죄송해요. 생각만 하면 눈물부터 나와서."

 

 상담사가 테이블 위 티슈를 몇 장 빼서 건네자 대학생은 바로 받아 눈에 대었다. 억지로 우는 모양은 아닌지 티슈가 순식간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도 학생의 얼굴은 여전히 울상이었고, 그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공포스러웠는지 겁에 질린 표정도 살짝씩 내비치고 있었다. 건네준 찬물을 단숨에 들이킨 그는, 피해자였던 교수의 아래에서 공부 중이던 학생이라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교수님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건 맞아요. 근데 몸이 쭉쭉 늘어나는 그거. 왜 아시잖아요? 유명한 만화에서 나오는. 경찰이 뭐 자경단이네 어쩌네 했지만 대부분은 그리 대단치도 않았어요. 주로 강의시간에 졸던 저희를 깜짝 놀래켜준다던가, 기껏해야 소매치기를 붙잡거나... 정말 그 몸 늘어나는 것 빼면 전혀... 예. 그냥 평범하신 분이었다고요. 근데... 흐윽... 근데..." 

 "괜찮습니다. 무리하게 기억을 떠올리시지 않으셔도.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만 말씀해주세요."

 "아뇨. 그 경찰한테도 말했는데 무시 당해서...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꼭 들어줬으면 해요. 그 요새 날아다니는 히어로? 그 분한테 전달 할 것... 맞죠?"

 "그렇습니다." 융터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독기가 눈에 찬 학생이 다시 물을 순식간에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학생은 그 강의를 듣던 다른 사람들과 같이 교수님의 회식에 반은 강제로 끌려왔던 날을 좀처럼 잊을 수 없었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시기. 밤이 되니 제법 쌀쌀하다며 서로 웃고 떠들면서, 교수님께 과제 좀 쉽게 내달라고 부탁하던 농담 섞인 진심도. 그러다 일부는 집으로, 자신과 다른 학우 한 명은 원룸촌으로, 교수님은 연구할 것이 있다면서 도로 사무실로 돌아가기로 해  모두가 갈라지는 길목에서 서로 헤어지려던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역광이 진하게 드리워진 탓에 생김새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더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싶더니, 그 작은사람이 득달같이 교수님에게 달려들었었던 순간.

 분명 교수를 잡으라고 명령했었을 것 같은 남자가 자신들에게 본래 목소리를 전혀 알 수없는 수준으로 말했다. 간섭하면 너희도 죽인다고. 그 말에 교수님이 항복할테니 학생들은 건들지 말라고 했었던 기억. 학생은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찰을 불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교수가 근처 공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니.

 

 "이게, 이게 다에요. 미안해요,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아닙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 가지만 더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섰다. 그러고는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말없이 걷는가 하더니 한적한 골목 입구에서 멈췄다. 여기가 그 문제의 습격장소인가, 그리 생각한 융터르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괴한이 습격하기에 최적의 장소겠다 싶은, 딱히 아무것도 없는 장소. 학생은 파리해진 얼굴로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쪽에서 그, 그... 그게 나왔어요."

 "저기...라고 하면, 저 가로등 아래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바로 아래에 서있는데 역광이... 뭐가 하나도 안 보이고..."

 

 그렇군요. 라고 중얼거리는 융터르는 은근슬쩍 학생을 바라보았다. 존경하던 스승의 죽음을 다시 설명하고, 또 그 최악의 장소까지 안내해야 했던 심경은 얼마나 독한 마음을 품고서야 가능한 것일까. 상담사는 학생이 "놈을 만약에 잡으면 꼭 알려주세요. 왜 죽였냐고 묻고 싶어요." 라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말에 그러겠다고 말했다.

 

-21. 나쁜 놈 이야기 - 은둔자(3)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