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상한 놈 이야기 - 런닝맨(3)
*괴인의 정체를 더 질질 끌기 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정체를 알았다? 그럼 이제 레이드 뛰러 가야죠.
*아, 근데 레이드 준비는 하긴 해야하니깐.
뻐근한 몸을 한껏 기지개 편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자신의 잠자리를 바라보았다. 얼어 죽는 줄 알았지만 별 수 없었던 놀이터의 터널 모양 미끄럼틀. 자신의 생환 소식을 알린 후 그 내용을 수신한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답장이라는 이름의 개성 넘치는 욕설을 받았다. 그 하루 동안, 낮에는 지하철 같은 곳에 설치되어있는 충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경우만 빼면 정처없이 돌아다녔고, 밤에도 수면이 필요한 경우만 아니면 마찬가지로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네 놈도 다른 사람들 앞에 모습 드러내는건 가급적이면 원하지 않겠지? 아하?
밤 사이에 용케도 추위로 인한 방전이 일어나지 않은 단말기가 여러 번 메신저에서 뭔가 수신되었다는 내용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노스페라투 호드, 그 다음에는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그들도 각각 범인에 관한 단서를 찾고 있었는지 그 내용이 제법 길었다.
"으음... 그, 둘이 만나서 의견 정리를 좀 하고 같이 보내줘도 되었을 텐데... 급하긴 어지간히 급했나보군."
그는 화면을 이리저리 전환하면서 불평 어린 소리를 했지만, 아마도 그 두 사람도 급했으니 그럴 여유도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꼼꼼하게 그 귀중한 정보들을 읽었다. 먼저 호드는 동료 형사들과 접선을 하면서 정보를 얻은 모양이었다. 원래 감식결과 같은 것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데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그 날 밤에 회피만 했었던 그 문제의 공격이 총 4명의 피해자들의 DNA가 뒤섞인 일종의 근육 다발로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반대로 융터르의 경우도 형사들을 구워삶(았는지 어쨌는지..?)아 그 4명의 피해자들의 정보를 얻어 이들이 습격당한 현장을 답사한 모양이었다. 그는 피해자들이 각각 신축, 신체의 분열, 괴력, 그리고 분신이라는 능력들을 강탈당했고, 하수도를 통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더없이 훌륭하고도 골치 아픈 내용. 조사의 내용이 전부 참이라면 너무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상대한테 걸린 셈이다. 만약 자신도 그 꼬라지에 합류했었다면? 상상 속의 결과에 캘리칼리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생각없이 수염이 까끌거릴정도로 자란 턱을 쓰다듬던 그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야-이--- 개---새끼야아아---!!" 경찰서로 돌아온 그에게 날아온 것은 동료형사들의 주먹 세례와 제법 걸쭉한 욕지거리였다. 그 동안 얼마나 맘 졸이고 살았냐는 것부터, 어디에 처박혀있다 이제야 기어나오느냐는 등의 걱정이 듬뿍 묻어나오면서도 그 주먹질들이 하나같이 제법 매서웠기에 캘리칼리는 그만하라고 짐짓 소리치며 겨우 빠져나왔다.
동료들도 그가 빠져나오자 더 할 생각은 없었는지, 혹은 지쳐서 그랬는지 어느 쪽이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나 그리웠냐?" 라고 그가 송곳니까지 보일 정도로 씩 웃기까지는 말이다.
"저 새끼 누가 아가리 좀 닥치게 해봐. 제발." 하고 골치아픈 듯이 머리를 감싸던 팀장이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잠깐의 폭력을 동반한 소란이 있은 후, 캘리칼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과 그 사이에 (친구들이) 모은 정보들을 전부 공유했다. 그 내용의 출처여부는 굳이 따지지 않은 동료들은, 그의 (의외로 제법) 진중한 설명에 저마다 낯빛이 흙색으로 시꺼멓게 물들었다. 자신마저도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러는 중, 유독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팀장이었다. 그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평소처럼 과장되게 감정을 표현하기는 커녕, 연거푸 '주옥'이 되었다며 긴장하는 것이 아닌가. 한솥밥을 먹은지 꽤 되었던 사람들조차 그의 이런 반응을 처음 보는지 "팀장님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이러며 그의 정신적 이상을 걱정하는 차에, 팀장이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우리 유치장에도 그 개새끼가 좋아할 만한 애들 많잖아. 그 새끼 여기로 오면 어떻게 하냐?"
"이런 썅..." 제법 짬밥 먹은 베테랑도 반사적으로 욕을 내뱉고,
"그러네...? 씨... 팀장님 우리 어떻게 해요?" 신참 형사 한 명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뭘 어떻게 하긴 해? 어차피 중범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검찰 쪽에서 영장 내려온 것도 없잖아. 빨리 풀어줘."
어쩌면 들이닥칠 습격에 짜증이 올라온 팀장이 유치장 쪽으로 고갯짓하자 부하 일부가 민첩하게 움직였고, 한 쪽에서는 이럴 경우 총기사용이 가능한지 거듭 법령을 확인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떠드는 내용을 캘리칼리가 멀찍이서 듣고 있자니 '규정 제10조 1항' 운운하며 쓰는게 문제 된다 한들 정당방위가 될거라는 둥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의 덥수룩한 수염에 질려 일회용 면도기를 쑥 내민 팀장이 "우리 이걸로 괜찮겠냐?" 며 묻자, 캘리칼리는 나지막하게 잘 모르겠다며 중얼거리다가 문득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렇게 고개를 홱홱 돌릴 적마다 늘 기행을 벌여옴을 아는 상관이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드냐'는 표정으로 마주보자 돌아온 부하가 툭 말했다.
"저, 지금 내보내는 놈들한테 이야기 한 마디만 해도 됩니까?"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유치장에서 막 나온, 꾀죄죄한 몰골의 사람들은 기껏 보내준다면서 갑자기 붙잡아 놓는 경찰서의 만행에 작은 목소리로 서로서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 불만도 XX서의 그 유명한 '피투성이 경장'이 전면에 나선 이후 싹 가라앉았지만. 경장이 으르렁거리는 어조로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선생님들? 지금 우리가 풀어주는건 그 선생님들이 뭐 곱게 보인다던가 그래서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 침묵 사이사이로 '그럼 뭔데'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지만 캘리칼리는 무시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선생님들이 저 유치장에서 편하게 먹고싸고 하시는 동안, 바깥에선 웬 미친 놈이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잡아먹었어요. 일단 알려진게 벌써 넷입니다. 넷."
피해자가 벌써 넷이라는 말에 경악으로 가득 찬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쓸데없는 잡음을 줄이자면, '그럼 우리를 여기에 차라리 수감시키는게 더 안전하지 않겠느냐' 정도로 필터링이 가능했다. 그것을 용케 들은 경장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놈이 여기에 오게끔 하기 위해 여러분들이 아직도 계속 수감 중이다는 식으로 있을 겁니다."
"예?" 어디선가 얼빠진 반문이 돌아오자 캘리칼리는 흡사 늑대가 그르렁거리는 것처럼 낮게 깔아 말했다.
"대신, 여러분들은 최소한 놈이 잡힐 때까지는 능력이고 나발이고 조용히 좀... 닥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놈이 잡아먹기 전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부터 "야잇, 저 또라이새끼가!!" 라며 극대노한 팀장이 월드클래스급 배구선수의 스파이크가 연상 될만큼 날듯이 뛰어올라 그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쳤다. 진심으로 온 힘을 다했는지 찰지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짝!!' 소리가 경쾌하게 주위로 흩어지고, 동시에 착지(?)한 팀장이 변명하듯이 캘리칼리의 협박아닌 협박에 말을 덧붙였다.
"후...후욱...후... 아이고 여러분들, 이거 실례했습니다. 이 새끼가 하는 말은 그, 뭐냐. 예...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러분의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일상생활을 영위하시길 바란다는 의미였습니다. ...협박이 아니고요."
"아니, 같은 말이잖습니까?" 진짜로 아팠는지 캘리칼리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달라! 새끼야 달라!!" 팀장은 목에 핏대가 시뻘겋게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예비 범죄자들을 향해 어서 가라며 손짓하였다.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졌다. 아마도 그들은 앞으로 절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23. 좋은 놈 이야기 - 추적자(3)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