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를 배경으로 빌런 융터르 썰
1. 일단 감명을 쌉오지게 받아 글을 써보고 싶긴 했는데 선뜻, 흔쾌히 수락해주신 VILLUS 님께 이 자리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 그리고 왜 거기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지 무의식적으로 감명을 받아서 스스로 무덤을 판 저는 바보입니다. 중요하니까 볼드로 강조합니다. 전 바보입니다.
3. 일단 소재가 소재인 만큼, 잔인한 묘사 주의부탁드립니다.
4. 즉흥적으로 썼기에 딱히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1.
아. 바다, 그리고 대자연이란.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둥실둥실 떠있는 보트 위에서 밤바다가 주는 짙은 그림자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스며들 것 같은, 짙고도 푸른빛이 아름다웠다. 이윽고, 그 수면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대비가 되어 그의 등과 머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에 녹아난 것처럼 검은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그 위로 우산을 씌웠다.
빗줄기가 우산 위를 때리고 보트 위를 적시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그는 우산을 직접 손으로 쥐고 자신도 모르게 내밀었던 허리를 도로 폈다. 그래도 여전히 수면을 바라보는 그 얼굴에는 웃음기가 머물고 있었지만 그것이 유쾌하다던가, 즐겁다던가 하는 종류라기에는 어딘가 메마르고 뒤틀려있었다. 그는 그 이유를 안다.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 금속재질의 통을 온 힘을 다해 부딪치는 소리가, 점도가 높은 액체가 통에 차기 시작하는 특유의 꿀럭거리는 소리가, 그리고 분명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을 텐데도 똑똑히 들려오는
"보스!! 제발 부탁드립니다!! 살려주세요!! 저 죽기 싫어요!! 보스!! 제"
보스라 불린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드럼통 안에서 살려달라 울부짖는 남자의 머리를 잡아채고는 곧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에 곧바로 처박았다. 그 안에서 한 남자가 숨이 막혀가며 고통에 겨운 울부짖음이 십여 초 가량 흐르다 이내 곧 조용해졌다. 그가 사랑해마지 않아 하는 바다처럼.
다시 고요해진 보트 위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딱히 그 정확한 흐름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시멘트가 굳을 정도로만 지나면 더없이 충분하다. 보스의 뒤에서 한 남자가 "준비되었습니다" 라고 낮게 읊조렸다. 그제서야 바다에서 눈을 뗀 그가 선미 쪽으로 다가갔다. 정확히는 드럼통 앞에. 한없이 굵고 짙은 목소리가 질 나쁜 애도를 하는 것처럼 고요히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당신을... 정말로 신뢰했었는데, 저를 이렇게 배신하다니요. 저 카르나르 융터르는 가슴에 너무나도... 진실로 거대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스스로를 카르나르 융터르라 자칭한 보스는, 시멘트 위로 뚜껑을 덮어 드럼통 위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어떤 훌륭한 교향곡인 것처럼 잠시 감상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당신이 여태껏 보여주었던 신의와, 저희를 향했던 헌신을 높이 사 이런 방법을 택했으니 부디 기쁘게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조금은 유감스럽군요.... 제가 당신을 믿었던 것처럼, 당신도 저를 온전히 믿어줬다면 이런 결말이 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경찰의 끄나풀 행세를 하다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보스의 애도가 끝난 것인지 그의 등 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보트의 가장자리에서 한껏 긴장하고 있던 부하들이 드럼통을 모로 뉘였다. 그 다음 그들은 배의 흔들거림에 따라 앞 뒤로 기우뚱거리는 그것을 확실히 보내기 위해 선미에 위치한 문을 열고, 경사로를 수면 아래로 드리우게 하여 확실히 고정시켰다. 친구를 보내줄 준비가 끝났다.
카르나르 융터르의 윤이 나는 고급 정장구두 끝이 비 오는 하늘 사이로 흐릿한 달빛을 받아 빛나며 드럼통의 옆면에 닿는 듯하다 이내 곧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사소한 운동에도 너무나 쉽게 영향을 받았던 이 철제 원통형의 육중한 물체는 곧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를 내다 바다에 삼켜져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품에서 보스가 검은색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고급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자, 도열해있던 남자 중 하나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 끝에 불을 붙였다. 곧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입에서 떼어냈다. 그것이 제사에 쓰는 일종의 향이라도 되는 듯 손에 쥐었던 보스는 가벼운 코웃음을 치고 다시 가볍게 물었다. 그것이 어떤 신호가 되었었는지 보트가 그제서야 굼뜬 엔진을 깨워 표표히 왔던 그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마피아 조직의 보스를 설명하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다. 일상에서 그를 본다면 그저 나긋나긋한 성격의,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친절한 이웃 정도로 보이겠지만 그 본질은 앞을 알 수도 없이 새카맣게 점철되어 있는 음흉함으로 들어차있었다.
무력을 선보이지도 않는 그는, 타인의 심리를 기막히게 파고들어 결국 그에게 굴종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협박, 회유, 선동, 세뇌, 그리고 사기. 점잖아보이는 외양과는 다르게 그는 원한다면 한없이 잔혹하고 잔인하며, 탐욕스러웠다. 보트에서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아까의 사내처럼 입에 재갈을 물리고 무릎 꿇린 채 결박되어있는 아홉 명의 전 조직원들이자 현 배신자들.
여전히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그 자신처럼 검은색 우산으로 가로막은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들의 앞에 서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맞이해주었다.
"열 명의 인디안 소년이 이제 아홉 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첫 번째 소년은 목이 막혀 죽었답니다."
나름의 조크였던지 웃음기가 감돈 말이었지만, 곧이곧대로 웃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아홉명이 더욱 더. 누군가가 그가 앉을 의자를 마련하자 자연스럽게 앉은 그는 눈알을 특히나 데굴데굴 굴리던 한 배신자와 눈을 마주쳤다. 부하가 그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훽 제껴냈다. 동시에 배신자가 공포와 광기에 절여져 되는대로 말을 주워 섬기기 시작했다.
"자, 자, 자알,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가족을 팔아먹는 짓에 동참해버렸습니다!! 하, 하안번만 자비를, 제발 부탁드립니다!! 두 번 다시 병신같이 놀아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카르나르 융터르의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 배신자가 새하얘진 얼굴로 그의 앞까지 무릎으로 기어나와 구두를 혀로 싹싹 핥아대기 시작했다. 보스의 입가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 진해졌을 뿐, 곧이어 비명을 지르는 배신자가 뒤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구두를 손수건으로 빈틈없이 닦은 뒤 남은 여덟 명을 향해 말했다.
"더러웠습니다. 배신자가 뭐 그렇죠. 그 속 만큼이나 입은 물론 혀도 더럽다, 그런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당연히 그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덜덜 떨기만 했다. 추위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 원인이 너무나 분명했다. 빗소리 사이로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신자의 입으로 뭔가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냄새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흔히들 '락스'라 불리는 독한 세정제. 역류라는 신체의 거부반응을 한없이 무시당한 채, 두 번째 배신자는 목구멍부터 뱃속까지 견딜 수 없는 열을 느끼며 몸부림치려고 발악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곧 쓰러졌다.
먼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소년은 청소하다 몸이 녹아 죽었답니다."
3.
목매달려 죽은 마지막 배신자까지 차례차례 운구차처럼 생긴 이동식 화장터에 밀어넣은 뒤, 배신자들이 죽음의 공포로 남겨놓은 실례스러운 흔적들을 역겹다는 눈으로 쳐다본 카르나르 융터르는 눈짓만 부하에게 할 뿐 무심히 자신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발걸음 소리를 일체 허락하지 않는, 붉은색의 푹신한 카펫 위를 걷는 그의 표정은 더 없이 냉혹하고 무자비했다. 의자에 앉아 특별한 처리가 되어있는 핸드폰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둔 그는 잠시 그것을 노려보다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깊은 밤이지만 연락을 기다렸는지 상대방이 받았다.
"오, 기대했던 목소리가 아니라 많이 당황하셨나보지요? 학창시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백편지를 썼는데 이미 차인 것 같이 섭섭하신가봅니다. 하지만 그런 역겨운 러브레터를 받는 상대방 입장도 생각을 해주셨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배신자들을 무려 10명이나 만들어 낸 경찰 간부의 비밀 직통전화번호로 낮고 뱀처럼 쉭쉭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당황했는지 변명하는 소리가 들린 듯 했지만 보스는 애당초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통보하고 있었다.
"저희 쪽에 아주 멋진 선물을 주셔서, 이 카르나르 융터르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매우 감사하다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답례로 마음을 가득 담아 마찬가지로 선물을 드릴터이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길. 오, 어쩌면 아주 가까운 분이 대신 받을 수도 있겠군요."
경악으로 가득 찬 고함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울렸지만 그는 전화를 가차없이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그가 가장 많은 약점을 쥐고있는 부하를 불러 하얀색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 부하가 허락을 받고 그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흡 하는 숨참는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실행합니까?" 라고 묻는 부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 밑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해주고 계신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는 대가는 확실히 챙겨드리고 있고, 또 익숙하게 잘 해오신 만큼 이번에도 잘 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긴장감에 질식할 것 같은 부하가 인사를 하고 바로 문을 나섰다. 위험했다. 보스가 스스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일종의 버릇과도 같은 것인데 주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끔찍한 일을 위해 사용하고는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자신이 그 심기를 더 거슬렀다면 열 한번째 배신자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부하는 발걸음을 서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