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썰입니다./멤고 단편 - SF

그리하여 죽음에서 돌아올 적에

김만성피로 2022. 11. 14. 01:13

*@shotshatan 님의 어썸한 그림에 제 안의 씹뜨억 유전자가 울부짖어 쓰는 글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썸한 그림을 다시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그림만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글은 개가테요.. 제발

*더불어 이 괴악한 날조를 선뜻 허가해주심에,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음으로 그랜절 올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글은 작성자의 씹뜨억 유전자가 악화되어 종양이 되어버린 너낌이라는 점 주의바랍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설정과 배경을 가미하였음을 안내드립니다. 자세한 건 도와줘요! 나무위키!


 죽는 순간을 인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에 불행히도 미사일이 꽂힌다던가, 어느 나라에서인가 핵무기를 발사했는데 그게 하필 자신이 사는 동네에 떨어진다던가와 같은 아주 명확한 사유가 없는 한. 그러한 의미에서, 카르나르 융터르도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당연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죽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한 기분이 문득 들었다. 어째서 국화향이 이다지도 욱복한 것인가? 어째서 시린 빛을 느낄 수 있는가? 왜 목은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는 것인가? 그리고 목 주위가 흡사 뱀이 휘감은 것처럼 어찌도 이토록 차디찬 물에. 그래서 그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미 죽었구나, 라고. 그러나.

 

 "예?"

 

 얕은 물이 찰박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는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눈을 뜬 것인지 아닌지도 모를 감각이었지만 그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 결론까지 어떠한 모순도 없었을 터였다. 사후세계의 의식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을 뻔했던 그는 다시금 익숙한, 그리고 조금 더 톤이 올라간 "예?"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 보다는 시야가 훨씬 또렷해졌다.

 사후세계고 나발이고 그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제법 쌓아 올린 흙벽이요, 거기서 고개를 조금 더 올리면 목소리의 주인이 삽을 지팡이처럼 몸에 기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융터르를 지금까지 2번은 부른 목소리의 주인인 단답벌레가 이상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눈에서 새파란 빛을 은은히 뿌리며 이제는 세번째로 그를 불렀다.

 

 "정신? 몸? 괜찮?"

 

 단답벌레의 사상 가장 많은 질문이 융터르에게 쏟아져내리자, 그는 "아... 예...." 라며 답하고 나서 봄철 가뭄마냥 쩍쩍 갈라진 입술을 억지로 축이는 것과 동시에 지금 당장 밀려오는 의문을 쏟아냈다. 꼭 깊은 잠을 잔 것 같은데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하는.

 

 "이건... 무슨.... 여긴, 어딥니까? 이 수조같은 관이며.... 왜 여기에 제가 누워있던 겁니까?"

 

 고개를 내린 그는 파랗고 창백한 빛이 감도는 물이 채워진 관 안에 아직 하반신이 잠겨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 주위로 아직까지도 향을 잃지 않은 새하얀 국화꽃들이 물 위에 동동 떠다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더더욱 상황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그는, 구덩이 바깥에서 단답벌레가 내민 손을 마주 잡고 구덩이 바깥으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무릎을 비롯한 몸 곳곳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그는 적어도 바깥을 제대로 보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오히려 정 반대였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2022년을 마지막으로 생이 다했다고 안내하고 있었으며, 그 모습에 당황해서 멍하니 있던 그에게 단답벌레는 눈이 과할 정도로 부신 반대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이천, 삼백, 이십, 삼년."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 너머로 하늘 높이 치솟은 마천루들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 어떤 건물보다도 저 것들보다 더 거대하고 높은 것도 없었다. 밤을 무시하는 그 거리는 어찌나 시끄러운지 한창 떨어진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귀가 먹어가는 것 같은 느낌마저도 들었다.

 새삼 숨 쉬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은 그가 도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 과호흡 증상 확인 이라는 글자가 눈 주위를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왜 글자가 공중에? 언제부터?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자신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글자들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가슴께를 부여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건, , 무슨...!!"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충격에 그는 거의 비명 섞인 고함을 지르다시피 했다.

 "진정. 내 눈."

 

 단답벌레가 몸을 낮춰 그와 눈을 마주쳤다. 무덤에서 나왔을 때부터 그의 묘할 정도로 새파란 눈동자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동공과 홍채가 있어야 할 눈동자 대신 매우 정교한 렌즈가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멈추지 않고 이리저리 빙글거리면서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흰자위도 사람의 눈이 아닌 마치 플라스틱과도 같은 딱딱한 느낌이어서, 잘못 봤다면 로봇이 아니었을까 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단답벌레가 손을 들어 융터르를 가리켰다. 덩달아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킨 융터르가 중얼거렸다.

 

 "저도?"

 단답벌레는 작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었지만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답변에 그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짚었다. 어쩐지 현기증이 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을 부정한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다. 증명이라도 하듯이 점차 깨어나는 감각들이 온 몸으로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너 역시도 이미 피와 살로 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납득을 해버리고나니, 융터르는 오히려 후련해진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미 자신이 죽었던 시기에서 무려 300년이 지난 상황이다. 생전에도 기술 발전이 눈에 띄게 급속도로 증가했는데 300년이면 사람 몸도 기계로 바꿀 만한 시기가 아니겠는가 하고. 단답벌레가 넌지시 다시 물어왔다.

 

 "괜찮?"

 "네. 괜찮습니다. 진짜로, 이번에는."

 

 이번에는 어떤 부축도 받지 않은 채, 그는 스스로 일어나 도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300년이나 지난 후이니 만큼, 의식적으로 한 발자국씩 걷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한 느낌이라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문득 양 손을 바라보았다. 손바닥과 손목이 이어지는 부분에는 어딘가에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와이어가 내장되어있다. 더 자세히 보니 KENDACHI라는 글자가 작게 적혀있었다. 눈 뿐만 아니라 팔도, 어쩌면 머리 속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에,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속담이 융터르의 머리에 무의식적으로 스쳐지나갔다. "새 술은 새 부대,라." 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린 그는, 이미 먼저 앞서 나가 주차되어있던 차 앞에서 기다리는 단답벌레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걸음에 점차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서야 제대로 마주하게 된 300년 이후의 세상은 좋게 말하자면 화려해졌고, 나쁘게 말하자면 타락해버렸다는 것이 융터르의 짤막한 감상이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두기가 참 곤란할 정도의 과감한 의상은 물론이고, 온 몸이 도화지인 양 문신을 잔뜩해놓은 사람들이라던가, 도대체 어떻게 벌크업을 하면 저리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체형의 사람들도 있었다.

 게다가 대다수의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이라 하여도 독특한 '사이버웨어'라는 것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누가 더 괴악하게 보이는지 내기라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까지도 보였다. 그런 사람들은 (단답벌레가 '키로시'라고 말한) 자신의 인조 안구가 너무나 친절하게도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해주고는 '멜스트롬'이라는 갱 집단의 일원임을 알려주었다.

 그의 시선이 좀처럼 멜스트롬 단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눈치챈 단답벌레가 진하게 선팅된 창문을 올리면서 말했다.

 

 "위험."

 "그래보이는군요."

 "예."

 

 잠깐 붉은 정지신호에(그나마 변하지 않은 점이 신호등이라는 점에서 그는 위안을 얻어야 할지 의문이었지만) 차를 멈춘 단답벌레의 눈이 좀 전 보다 더 밝게 반짝거렸다. 그러자 어떤 장면들이 빠른 속도로 그의 머리 속에 스며들었다. 싹 밀어버린 머리카락을 금속의 뭔가로 대체한 것 같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사이버웨어를 몸에 붙이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을 납치해서 강제로 자신들과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리게 만든 영상부터, 자기네들의 어떤 의식을 치룬다며 저지르는 끔찍한 살인 같은 역겨운 것들.

 아닌 와중에 스너프 필름에 준하는 영상을 봐버린 융터르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저었다. 요새 사람들은 이런 걸 취미로 보는건가? 하는 생각에 그가 영상제공자를 살짝 노려보았다가 다시 생각을 고쳤다. 어차피 예전에도 말을 잘 안 하던 사람이 지금 어떤 세상인지 전혀 모르는 자신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리라 하고.

 그리고 정신을 차린 이후로 가장 먼저 들었지만 좀처럼 내뱉을 수 없었던 위화감. 열면 안 되는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이 스멀거렸지만, 지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융터르에게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단답벌레 님?"

 "예?"

 "저...야 그렇다치는데, 단답벌레 님은..." 하고 그는 잠시 숨을 크게 쉰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살아계신겁니까?"

 

 그 질문에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은 채 묵묵히 핸들을 이쪽 혹은 저쪽으로 돌리며 운전을 계속했다. 어쩌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대신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정차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내렸다. 조수석에서 내린 융터르는 종전의 화려한 거리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 다시 적응하기 어려웠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이 기억하는 그 때의 그런 거리와 비슷하다는 정도. '직원용 주차장'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을 봐서는, 단답벌레가 어느 회사에 속해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건가?

 그런 그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적혀있는 문을 열고 "이 쪽"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키로시 안구에 익숙해진 그가 의식을 문 안쪽으로 쓰자 나이트비전 고글처럼 시야가 변했다. 무어라 특정짓기 어려운, 전형적인 주방에 왜 자신을 안내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그저 안내자의 인도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출입문이 닫히기 무섭게 다시금 "이 쪽"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 누가보더라도 확실한 엘리베이터가 열려있었다. 그 앞에서 단답벌레가 또 그를 기다린 것이다. 새하얗고 밝은 형광등 불빛에 적응하지 못해 융터르가 눈을 찡그린 채 탑승하자,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완벽히 같지는 않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분위기의 장소였다. 거실이 있고 한쪽에는 저마다의 방이 있는, 안정감이 드는 베이지빛이 감도는 그런 곳. 다른 곳보다 한 층 살짝 낮은 거실에 소파가 감싸듯 배치되어있고, 그 위에 세 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전부 머리카락이 새하얗다는 점. 그런데 체형들이 어딘가 익숙하게 보였다. 그러면 단답벌레 님은 이 곳을 안내하려고 한 걸까? 하는 의문이 융터르의 머리 속에서 피어날 때 쯤, 그 단답벌레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도착"이라며 말을 걸었다.

 

 흰 머리카락의 세 사람이 일제히 그 쪽으로 몸을 돌렸고 익숙하면서도 역시나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한 얼굴들이 한 마디씩 했다. 그래도 안도감이 가장 먼저 크게 다가왔던 그는,

 "왔다아아-악!!" 하고 소리지르는 뢴트게늄에게

 "아이구! 세상에나!" 여전히 숨넘어가는 목소리의 프리터에게

 "어머, 오셨어요!" 언제나 그렇듯 나긋나긋한 비밀소녀에게

 "다, 아는 얼굴....들이군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땅이 갑자기 일어나는 느낌을 받으며 눈 앞이 깜깜해졌다.

 

 잠시 후, 어쩌면 거대한 컴퓨터라도 눈 앞에서 바로 재부팅한 것 같은 화면이 융터르의 눈 앞에서 깜빡이는가 하더니, 천장이 보였다. 침착하게 그의 입으로 물을 흘려 넣던 프리터가 그 반응을 알아차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올테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무의식적으로 꼭 치과에서 진료 대기 중인 상태같군요라고 농담하고 싶었던 융터르는 대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살짝 쓰게 웃고 말았다. 게다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몸도 전혀 꼼짝거릴 수 없는 상태이기도 하였고.

 곧이어 그가 어떤 방에 있었던 것인지, '달칵'하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뢴트게늄을 선두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미처 융터르는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그의 목 뒤에 연결된 케이블을 단답벌레가 뽑아 몸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말해달라는 전직 심리상담사의 말에, 얼떨결에 가장 앞으로 나서있던 뢴트게늄이 "이걸 어떻게 설명하냐아... 하....씨..." 라며 머리를 북북 긁기도 하고 연신 중얼거리기도 하다가 결심한 듯 목을 한껏 가다듬고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2022년, 사진촬영에 나섰던 융터르가 붉은사슴뿔버섯을 발견하고서는 그것이 매우 지독한 독버섯인지도 모른 채 별 생각없이 집어들어버린 탓에, 그 악명높은 독성으로 쓰러져버렸다. 당시 출동 상태였던 산악구조대에 의해 죽기 직전의 그를 병원에 이송할 수는 있었지만, 독성이 그의 몸을 잠식해가는 상황에서 문자 그대로 죽기 직전인 상태라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 때, 한창 일본에서 인공신체를 연구하던 아라사카라는 회사가 그의 신체를 통해 연구를 하는 것을 전제로, 반드시 그를 '되살리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남은 이들이, 흡사 악마와 거래를 한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그 약속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악마와의 거래는 늘 함정이 숨어있었고, 비밀소녀를 위시한 다른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회사를 찾아갔을 때는 '분명 그를 되살리기로 했지만 언제 되살리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뭐 그 사이에 세상이 말야, 인터넷은 왠 미친 놈이 바이러스인지 랜섬웨어인지를 쫘아악 깔아서 조금이라도 연관되어있다 싶으면 먹통이 되어버리게 만들고 말이에요. 나참. 그 때 아주 그냥 말세였어요, 말세. 사람들 막 줄줄이 죽지, 예? 융터르 씨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겠고."

 

 라며 말하는 뢴트게늄은 그 끔찍한 시절을 무덤덤하게 떠올렸다. 말 그대로 광기의 시절이었다. 창문을 바라보면 누군가가 추락하는 버드맨이 되어가고, 공원의 나무들은 사람 열매를 역겹고 탐스럽게 품는 시기. 물고기들이 풍부한 단백질을 뜯어먹는 광경이 더는 징그럽게 보이지도 않는. 

 그럼에도 단답벌레, 프리터, 뢴트게늄, 비밀소녀는 죽을 수 없었다. 융터르가 아직 죽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고 정말로 만에 하나라도 아라사카가 약속을 지킨다면, 그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 때가 언제일 지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에 '죽기보단 잠들자'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정부의 캠페인을 발견한 그들이 초장기간의 냉동수면을 감행해버린 것이다.

 

 "훟훟훟... 아주, 아주 길었지요. 춥기도 했고. 그래도, 버티고 또 버티는, 방법 밖엔 없었습니다." 하고 프리터가 쓰게 웃었다.

 

 무려 290년이 지난 후. 지금의 융터르만큼이나 당시의 그들에게도 격변한 사회는 지독하게 혼란스러웠다. 경찰이 존재하더라도 폭력이 삶의 규칙이자 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언제부터였는지 사람들이 신체개조를 무슨 갈아입을 옷처럼 고르는 광경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비밀소녀는 각오하고 자신이 처음 시술을 받았을 때를 생각했다.

 

 "심지어 아프지도 않더라니까요?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무슨 VR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고."

 "아아아! 맞어, 맞어요. 거기다가 비싼 돈 주고 시술 받으니까 왠 개자식들이 막 꼬여가지고는, 어휴."

 "아, 하이고. 전 아직도 그, 깡패들만 보면, 그, 소름이."

 "멜스트롬." (와중에도 단답벌레는 멜스톪 이라고 발음하였다)

 

 여기에 도착하기 전 단답벌레가 위험하다면서 쳐다도 못 보게 했던 그 집단들이, 일행들의 사이버웨어 시술을 보고서는 '그딴 허섭한 것 보다 더 쩔어주는 것들을 달아줄테니까 닥치고 오라'고 협박했었다는 것이다. 놈들이 총을 들고 마구잡이로 협박하는 그 모습에 나서주는 사람들은 커녕, 경찰마저도 움직이지 않자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민 뢴트게늄이 무작정 달려나가 드잡이질을 한 끝에 그 조무래기들을 죽여버리기까지도 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자 이야기의 주인공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처음에는 막 힘들고 괴롭고 그랬는데, 이젠 안 그렇네요." 라고 중얼거렸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뢴트게늄의 이름이 나름대로 알려지면서 '제법 쓸만한 용병'으로 이리저리 활약한다는 말로 끝났다. 그때까지 묵묵히 듣고 있던 융터르가 동정심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괜히 소름돋는다는 듯 몸을 웅크리고는 경박하게 팔뚝을 연거푸 쓸어내리는 뢴트게늄이었으나,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고맙네요." 라고 쑥쓰러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를 필두로 해서, 단답벌레는 뛰어난 해커가, 프리터는 다양한 일일알바 경험을 잔뜩 살려 기술자가, 비밀소녀는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어조와 강단있는 일처리로 중개인이 되었고 지금은 지상에 커피숍까지 운영한다는 근황까지 듣고난 뒤에, 융터르는 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납득했지만 단 하나의 것이 이해되지 않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제가 왜 무덤에서 정신을 차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아라사카가 약속을 지킨 것이다. 맺은지 무려 3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야. 2077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국의 수장이 된 신임 회장의 끝없는 삽질과 전설의 용병, V라는 사람이 궤멸시킨 탓에 아라사카의 권력은 바람 앞의 등불보다도 못한 존재였고 일행의 무력시위(?) 끝에 아라사카가 이미 10년도 전에 그를 관짝에 담아서 도시 외곽의 공동묘지에 방치했다는 사실을 불과 며칠 전에 안 것이다.

 

 "그... 무기를 들고 간다고 해서 그 기업이 순순히 정보를 주던가요...?"

 "어유, 당연히 아니죠. 저랑, 비소 님이랑, 프리터 님이 앞에서 깽판치는 사이에 단답 님이 해킹해서 알아낸거죠 뭘."

 "아." 하고 그는 뢴트게늄의 천연덕스러운 답변에 넋을 잃고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리고나서야 자신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굳이 기계적으로 말하자면 절전모드 같은 상태였던 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리고 단답벌레가 나서서 무덤을 파헤치고 그 관짝을 열어제낌으로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그 때를 생각하던 것인지 단답벌레가 자신을 주위로 큼지막한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국화꽃."

 "나닛?! 색이 혹시...?" 하고 프리터가 경악을 했고

 "하양."

 "야잇, 이런 썩을 놈의 새끼들을 봤나!?" 라며 뢴트게늄은 이를 갈았다. 

 "근데 어떻게 깨우신거에요?" 라고 말을 하며 분위기를 자연스레 전환시킨 것이 비밀소녀.

 "물" 이라며 말하는 단답벌레는 거대한 물통을 뿌리는 행동을 했다. 

 

 무슨 물이 그리 스포츠드링크 같은 색이냐고 물어볼까 했던 융터르였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이제 아무 상관도 없겠다고 느껴서 그런지 여전히 누워있듯 앉아있던 침대 위에서 나지막하게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쩐지 바람빠지는 소리가 강해 허무한 것처럼 들리는 터라, 일행은 공연히 긴장한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는 융터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들을 느낀 것인지 잠시 멍한 얼굴이었던 그가 전에 없이 부드러운 얼굴로 안심하라는 듯 입을 열었다.

 

 "저도 다시 직업을 얻어야겠군요?"

 "어, 어어어!! 맞어! 우리 다 일해야 겨우 먹고 살아요? 삶이 지금 막 빠듯하고 그러니까 어? 지금이래도 안 봐줘요? 예?"

 

 일부러 요란을 떨면서 맞장구쳐주는 뢴트게늄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하물며 단답벌레마저도), 키득거리는 소리를 저마다 내며 이걸 해라, 아니다 저걸 해야 한다 라면서 오만가지 직업을 추천했다. 그것이 점차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는 수준까지 다가가자, 그의 표정이 점차 멍해지는 것을 알아차린 단답벌레가 "본인이" 라며 융터르를 가리키고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다시피해서 방 바깥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본인도 바로 나가려던 참에 융터르의 굵은 목소리가 그의 발을 붙잡았다.

 

 "혹시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해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융터르의 계획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아라사카라는 기업이 자신의 몸으로 온갖 실험을 감행해왔다면 그 데이터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어쩌면 소위 '부품 교체'와 같은 이력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설명하던 그의 말에 단답벌레가 "왜?" 하고 다시 의문을 표시하자,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다시 열었다.

 

 "예전에는 심리상담사, 였었죠.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싶긴 했는데 당장 삶에 도움이 되진 않겠더라고요."

 "인정." (융터르는 사실 그 대답에 상처를 좀 받았다)

 "그럼 당장 제가 할 수 있을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했는데.... 제 무의식 어딘가에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모든 기록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를 해킹...이라던가 뭐, 그런 걸 통해서."

 "왜?" 납득이 가지 않았는지 단답벌레가 다시 물었다.

 "사이버웨어, 라는 것을 관리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러니 자신의 몸이 변해가는 과정을 배움으로서, 리퍼닥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는 작게 웃었지만 상대방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점차 마스크 너머로 그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단답벌레가 다시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단호했다.

 

 "위험." 

 "하실 수는 있다는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융터르는 고집을 전혀 굽힐 생각이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컴퓨터의 디스크 복구 같은 것과 비슷한 꼴이겠지만, 그가 요청한 것은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자신에게 행해진 모든 실험을 전부 보겠다는 소리였기 때문에. 어쩌면 그때의 감각이 도로 되살아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잔혹한 장면보다도 그에게 그 이상 가는 것도 없을텐데. 

 단답벌레가 그 답게 외마디 한숨을 살짝 내쉬고, 그의 목 뒤에 케이블을 다시 연결하였다. 융터르는 눈을 감고 다시 꿈쩍도 할 수 없는 갑갑함과 함께, 단답벌레가 머리 맡에서 "시작"이라는 말을 들은 뒤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1인칭 시점으로 다시보기가 실행되었다는 의미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인지, 그 특유의 조명을 등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두꺼운 고글을 쓰고 마스크를 둘렀기 때문에 다른 각도였다 한들 제대로 보였겠냐마는. 게다가 일본어로 무어라무어라 하는 통에 그는 알아 들을 수도 없기도 했다. 이따금 그 특유의 영어발음마저도 나오는 통에 감도 잡을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 냉랭한 태도를 보았을 때 자신을 실험체로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술도구의 끝에 수술실 조명이 닿아 그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 눈 마저도 움직일 수 없던 그는 그 끝이 자신의 정수리 방향으로 천천히 향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수술용 드릴이었고, 곧 뼈가 까가가각하고 갈리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바늘을 한 주먹에 잔뜩 쥐고 그의 뇌에 무자비하게 연거푸 내리꽂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어떤 예고도 없이 찾아오더라도, 융터르는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저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라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 잡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 묘사할 방법도 없이, 그저 '더럽게 아프다' 정도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실험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 날은 안구가, 또 그 다음 날에는 신경계를, 그리고 언젠가는 다리 힘줄을.

 마치 어떤 것보다도 상영시간이 압도적으로 긴 아이맥스 영화를 불규칙적으로 빨리 감아가며 보는 것 같은 회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가지 얄궂은 것은, 점차 시간이 흐를 수록 고통스러운 것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이었다. 신경계를 대체한답시고 이식한 부품 때문이었다. 그리고 머리 속에 꽂은 어떤 칩 때문인지, 저들이 하는 말이 근처에 떠도는 자막으로 자동 번역이 되어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더 나아지게 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위안거리였다.

 인내에 대한 보상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연구원들의 실험과 그에 관련된 개조부품들에 관련한 지식들도 착실히 쌓여기고 있었다.

 

 "아직도 저래?"

 "멍청하게 독버섯을 만졌으니까 그렇지, 뭐."

 "덕분에 300년은 다 되도록 이것 저것 다 달아보고 떼보고 했다잖아."

 "어차피 우리 덕분에 살아있는 건데 이제는 좀 독한 것들로 달아도 되지 않아? 실험값은 얻어야 하잖아."

 "그러네, 사이버사이코가 되기 전에만 떼면 되고? 너 천재냐?"

 

 시간이 흘렀는지 연구원들의 뒷담화가 배경음처럼 흐르는 연구실 중앙에 그는 누워있었다. 일종의 캡슐같은 이상한 모양의 실험대였다. 그 위로 자신의 모든 반응을 검사하기 위해 카메라들이 곳곳에 매달려있던 덕분에 부활(?)한 이후로 자신이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모르던 융터르는, 처음으로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머리카락에는 어째서인지 파란색 브릿지가 들어가있었다. 그 부분이 맨 처음의 실험을 위해 건드렸던 부분인 것이 생각났다. 전혀 깜빡이지도 않는 눈에는 새파란 빛을 뿜어내는 인조 안구가 자리잡아 무슨 로봇을 보는 것 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반팔 소매 아래로는 평범해보이는 것부터 흉악해보이는 것까지 온갖 기계팔을 연구원들이 달았다 떼어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신체 곳곳에는 살을 찢고 무엇을 했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온갖 수술자국들이 미처 아물지도 않은 상태였다. 누가 보더라도 이미 독버섯으로 인한 피해가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그저 실험을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한 것인가?

 이름도 모를 연구원이 말한 문제의 '독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전쟁에서나 쓰여야 할 것이 아닌가 싶은 종류들의 의수나 의족들이 수레 위로 잔뜩 도열해있었다. 누가 봐도 일상생활에서 쓸 수 없는 괴악한 외형의 의수 하나를 들어올린 연구원이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이거 봐라, 이번에 어디 전쟁이 났다고 했더라? 하여간 그 쪽에 납품할 건데 한 번 적합도 테스트나 해보자."

 "이게 뭔데 대체?"

 "기존의 고릴라 암즈를 훨씬 흉악하게 만든거지 뭐. 출력 빵빵하게 해서 웬만한 피하장갑 정도면 그냥...!"

 

 저걸 진짜 달려고 했던건가? 농담이 아니었는지, 연구원들이 그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을 분리하려고 했다. 개중에는 "켄다치 이 새끼들은 괜히 명품 의식이 있어서 꼭 분리하기 어렵게 만들어놨어"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잔뜩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연구실 문이 열리면서 누가 보더라도 높으신 분이라는 인상의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연구원들이 융터르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특히 눈에 담아둔 그 남성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면서 고함이 튀어나왔다. 욕설과 폭언이 없으면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고 필터링을 거치자면 "니들 다 해고야!!"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었던 것인지 어떤 연구원은 낯빛이 새하얗게 질려서 제발 잘못했다고 엎드려 울고, 또 어떤 연구원은 입술에 피가 나도록 씹으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양복남이 융터르를 가리키며 "그리고 저것도 치워"라고 말함과 동시에 그의 기억 재생이 끝났다.

 기절했을 때처럼 새카만 화면이 눈 앞을 가득 메우다 점차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거기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케이블을 벌써 뽑아버린 단답벌레였다. 그 또한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부 확인했으리라. 단답벌레가 걱정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괜찮?"

  "네, 괜찮습니다. 혹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4시간?"

 

 의자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내딛은 융터르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모르모트 삼아 자행된 온갖 실험의 견학 덕분에 객관적으로 보아도 상당히 쓸모있는 리퍼닥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결과는 얻었지만, 3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고작 4시간으로 축약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을 위해 같이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으로 가득 찬 융터르는 심리상담사의 시절 노하우를 떠올렸다. 이럴 때일수록 우는게 더 나쁜 것이다.

 문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가를 대충 손으로 훔친 융터르가 문을 벌컥 열자 먼저 나가있던 나머지 세 명이 문에 귀를 대고 있었던 것인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아무래도 키가 가장 작은 탓에 제일 밑에 깔려있던 프리터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 하도! 하도 나오시지 않으셔서!" 하고 몸에 맞지도 않는 넉살을 부렸다.


 "뢴트게늄 님, 또 다치면 무의식적으로 끔찍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벌써 다섯번째는 말했습니다만?"

 "아, 아아니이... 쟤들이 막 총을, 에? 막 겁나 쏘는데, 예? 어떻게 피해요? 가능? 어 가능하냐고요오!"

 

 Cafe : Secretto 지하에 마련된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이제는 융터르의 개인 방이 된 의무실에 뢴트게늄이 억울함과 통증이 뒤섞인 항변을 했다. 그 말처럼 그의 하얀색 와이셔츠를 자세히보면 오른쪽 옆구리에 피가 점점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재빠른 손길로 리퍼닥이 옷을 들추자 제법 굵은 납구슬탄 덩어리가 피부에 박혀있었다. 다행히 이전에 먼저 피하장갑을 이식한 덕분에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몸 곳곳이 총에 맞아 보기 흉한 흔적을 남겼다.

 그들 곁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비밀소녀가 "정말 괜찮은 것 맞나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하며 염려를 했으나, 능숙한 솜씨로 총탄을 일일이 빼내고는 소독솜으로 그 흔적을 거칠게 문대면서 "엄살입니다." 하고 딱 잘라 말할 뿐이었다. 그 특유의 고통에 뢴트게늄이 비명을 질렀고, 그의 팔에 이식된 맨티스 블레이드를 보던 프리터가 그 처참한 꼬락서니에 놀라서 대화에 참여했다.

 

 "아닛! 뢴트게늄 님! 그 블레이드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산산조각 직전까지 갑니깟?"

 "아, 그, 그러니까 그게에... 그... 싸우다보니?"

 "크-읏소!!! 그게 지금! 하실 말씀이십니까-앗!!"

 

 일부러 구할 수 있는 한 제일 단단한 재질로 골라줬는데도 바로 부숴먹기 직전까지 간 그의 전투에 질릴대로 질린 프리터가 여전히 처치 중이던 융터르에게, 장착되어있던 부품을 제거하자마자 지금 자신이 들고온 것으로 교체해달라며 먼저 자리를 떴다. 아마도 그의 개인 작업실에서 정신없이 수리를 하고 있겠지.

 단답벌레가 뢴트게늄의 밀리테크에서 생산된, 산데비스탄 운영체제 이상여부를 융터르와 함께 점검하고 난 뒤에 홀로 나가면서 조용히 "바보" 라며 뢴트게늄의 속을 박박 긁었고, 다쳐서 왔는데도 전혀 위안받지 못해 삐친 그가 툴툴거리며 문을 박차고 뒤따랐다. 그 모습에 "문 부서지면 수리비 낼 거냐"며 비밀소녀가 다급히 따라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방주인 밖에 없었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지저분해진 방을 천천히 정리하면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새 삶을 사는데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엇다. 하지만 그때, 그 무덤에서 나오며 읊조렸던 말을 다시금 입에 녹여 굴리기 시작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정말 참으로 틀린 것 하나 없군요."

 

 언젠간 이 모든 것이 익숙해질 것이다. 예전처럼.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