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쁜 놈 이야기 - I'm still standing(3)
*추리물을 좋아하면서도 직접 써보는데 젬병이었던 저는 결국, 요근래 추리장르 소설들을 미친듯이 읽었습니다.
*결론은 추리물은 댕같이 어려운 장르다라는 것만 알았습니다. 못 쓰겠어요...
*넵. 추리물 징징은 이제 그만.
XX서 강력 1팀 형사들이 문제의 화학공장에서 초동수사를 벌였던 그 날 저녁 6시, 카르나르 융터르는 긴장된 표정으로 형사에게서 걸려왔었던 전화를 다시 떠올렸다. 자신과 통화하고 돌아온 그 짤막한 시간 사이에 현장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을 부추겨서 난입하려고 했었던 시도라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놈의 마수에 걸린 경찰 측 인원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작정하고 경찰 쪽에서 호드가 범인이다라며 수사방향을 갑작스럽게 틀었다면? 융터르는 굳이 그런 최악의 가정을 하지 않으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제 종잡을 수 없는 놈의 행동에는 더 이상 어떤 의미도 파악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의 행동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적으로 놈에 대해 순서없이 적어놓았었던 a4용지의 최하단에는 사이코패스라는 글자가 조금 더 크게 적혀있었다. 그것마저도 바로 종이파쇄기 행이었지만.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유독 노스페라투 호드를 시달리게 하는 이유가 팬이기 때문이라는 그 황당한 답변은 잊기가 힘들었다.
"꼭 초등학생들이 자기 짝궁을 좋아하니까 괴롭힌다라고 하는 말과 똑같이 들리는데..."
실질적인 첫 사건. 새벽의 XX공원에서의 습격은 거의 죽을 만큼, 그 다음은 실제로 피해자가 사망, 그리고 이번 방화사건에서는 부상자만 50명이고 사망자가 3명씩이나 나온 것. 점차 수준을 생각할 수록 그 정도와 규모가 늘어났기에, 다음에도 또 사건이 놈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두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하는 짓은 초딩 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자신을 봐달라며 괴롭히는 정도가 더 강해진다는 수준이. 그 괴롭힘에 엮이는 사람이 한 두명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이 역겨울 따름이다.
"이런 경우의 클리셰라면, 역시 최후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어서 호드 님이 구해주길 바란다는 그런 쪽인데."
그것까지는 좀 과한 생각이겠다는 생각에 상담사는 곧바로 부정했다. 아직도 단서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이번만큼 뼈아프게 와닿은 적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거리를 나선 이후로 상담사는 그렇게 거듭 되뇌었다. 히어로 호드가 날아다니지 않는 이 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즘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악의로 범벅되어 적대적인 뉴스와 함께 천박하리만치 뒹구는 댓글들 투성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듣는다는 부분을 원활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터라, 연말에 가까워진 지금의 거리는 융터르의 귓전을 아주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막으라고 한 것처럼 그도 귀를 막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속마음은 귀가 아니라 뇌에 곧바로 꽂히듯 들린다는 점이겠지. 뽀얀 김과 함께, 그는 크게 들이마신 숨을 내뱉었다. 이걸로 자신의 마음이 후련해질 수만 있다면.
그러면서도 상담사의 발걸음은 확고한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 사이비 종교 사건 당시 미친 부모로 인해 두 눈을 잃었던 아이가 퇴원 후 보육원에 입소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형사와 영웅이 일전에 그 잔당들을 모조리 소탕하기까지 마음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겠지. 그러므로 그에게 이번 방문은 마지막 배웅이었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아이와 보육원에서 나왔다는 직원이 종합병원 1층의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상담사가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 오래간만이구나?"
"아저씨 안녕하세요!" 더 이상 위협받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가 이제는 해맑게 웃었다.
"반갑습니다. XX보육원에서 나왔습니다." 곁에 있던 직원이 악수를 청해, 상담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살짝 잡았다 도로 놨다.
"거기 가서도 잘 지내렴. ...뭐 필요하면 연락을 해도 좋단다."
"아저씨, 저 짱 쎄거든요? 다 이길거에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듯, 아이가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더 이상 어른에게 도움 받는 것이 싫답니다. 라며 배경음처럼 말한 직원이 얼마 안 되는 짐을 대신 들어, 아이를 태우고 곧바로 떠났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자신 때문에 아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고. 그렇게 한 인연을 정리하고 다시 상담실로 돌아가려던 그에게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가 여기에 입원했다고 했는데.
호드의 누명을 쓰게 만든 불명예스러운 그 첫 번째 사건. 감전에 의한 화상으로 여전히 의식불명인 피해자는 중환자실에 있어, 그 면회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융터르는 그에 따른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고 환자 곁으로 다가갔다. 마침 회진 중이던 의사가 피해자도 담당하던 참이었는지, "면회오셨나봐요?" 라며 순순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뭐, 환자분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정신이 깨어서 돌아오신다 한들 지옥도일거에요. 신경이 거의 다 타서 살릴 수가 없고, 그 전에 피부란 피부도 뭐... 일단은. 아프지는 않으실 겁니다."
"상태가... 굉장히 심각했군요. 최근 바빠서 이 친구 소식을 듣지 못 했었거든요. 그나마 같이 있었다던 분이 발견해서 망정이지."
지인인 척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던 융터르가 하던 말에 의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치 '지금 뭔 소리 하는거냐?'고 얼굴로 묻는 것 같은 그녀가 날카롭게 물었다.
"동행자 말씀하시는거에요?"
"뉴스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하던데요?"
"아, 아니. 진짜 그거 오보라니깐 자꾸 그러는건가?" 의사가 이미 비슷한 질문에 넌더리라도 났는지 짜증어린 목소리였다.
"왜 그러시죠?"
"이 환자 분 동행자 같은거 없이 이송되었으니까 그렇죠. 신고는 누가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예?" 처음 듣는 말에 상담사는 놀란 티를 애써 감추고 얼굴을 찌푸린 의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툭 말했다.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난다니까요? 이 환자 분을 처음 받은 게 저란 말이에요. 그 뒤에 처치 다 하고 나서 다른 환자 분도 확인 하려고 다른 데에 갔다가 오니까 무슨 동행자 동행자... 그거 땜에 경찰이고 기자고 간에 얼마나 시달렸다고요."
그 뒤로 의사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 그에게 하소연을 했다. 자신이 회진을 올 적에는 없는 그 놈의 동행인이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의사들에게는 얼굴을 드러냈다는 둥, 다른 간호사들에게도 사근사근거린다는 둥, 가끔은 그 호드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니 아직도 안 믿겨요라는 말을 했다는 둥. 그 하소연은 결국 이 병원 사람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거 아니면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것이 아니냐는 푸념으로 끝맺었다.
"이거, 저도 잘못 듣고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만들었군요. 미안합니다."
"아뇨 뭐 됐어요. 근데 만약에라도 이 환자분 가지고 추후에 호드가 또 그랬다며 보도한다면 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이건."
"왜 그러시죠?"
"이 환자 분 전기 화상이 아니니까요."
"요컨대, 그 '가짜 호드'라는 자는 전기를 쓰지 못합니다.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 분은 일반적인, 그러니까 불에 의한 화상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동행인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젠장, 그런 중요한 증언을 왜 이제야 말해주나?
"저라고 알았겠습니까? 우연한 일로 병원에 방문했다 알게 된 정보라서 저도 매우 놀랐습니다."
병원에서 상담실까지 돌아오는 길 내내, 융터르는 자신의 감정이 지나치게 억제되어있거나 혹은 그 반대로 보이지 않도록, 요컨대 그저 지나가는 사람 1의 배역이 할 법한 그러한 평범함을 가장하고 오는 것에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며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 쪽에서도 문제의 동행인의 존재가 그런 예상치 못한 쪽이었는지 혼잣말로 욕설을 쏟아붓는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융터르는 분명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사건을 수사할 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기초적인 단계를 쉽게 누락할 성정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 반응에 더 놀랐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모르셨다고요?"
-그 때... 난 호두에게 통화를 한다고 먼저 나와있었네. 동료 놈이 그 새끼와 면담 중이었지.
"용케도 호드 님을 의심하지 않으셨군요."
-낸들 아나?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개자식은 우리에게 대놓고 힌트를 준 셈이 되겠구만. 그 가짜 놈이 뛰어서 도망쳤다고 했거든.
"아하." 지극히 이 충동적인 놈은 그저 자신이 잡히지 않고 호드에게 의심이 갈 만큼만을 생각하며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융터르는 기운 없는 감탄사를 흘렸다.
마치 도마뱀이 위기를 느끼면 제 꼬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흔적을 잡았다 싶으면 잽싸게 끊어내고 또 잡아내도 끊어내기를 반복하는 이 현상에 카르나르 융터르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자 가볍다 못해 장난기가 섞인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손목 시계를 살펴보니 내담 약속을 잡은 사람이 오기로 한 시각이었다.
"들어오시죠."
"실례합니다아." 그 목소리와 함께 휘플거린다고 밖에 표현 못 할 내담자가 팔락거리며 들어왔다.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일지 모르겠다. 책상 아래에서 아직 꺼내놓고 있지 않았던 카르나르 융터르의 나머지 한 손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아서. 이상할 정도로 나긋나긋하며 달큰한 기분을 주는 목소리, 얼굴에 쓴 가면까지. 무슨 목적이지? 사짜 심리상담가의 목 뒤로 긴장감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42. The good meets The weird(1)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