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The good meets The weird(1)
*네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데 대충 중간 정도 온 느낌입니다.
*뭐했간디 이제야 중간이냐고요? 그러게요...
노스페라투 호드는 약속한 카페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공연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공연히 얼굴 한 번 보자고 할 성격은 아닌 형사가 자신을 보자고 대뜸 전화를 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가 아파트 옥상에서 건네주었던 수사자료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래서 날 왜 괴롭히는건데' 정도 밖에 없을 정도로 설명할 정도였다. 누가 보더라도 자신이 범죄자인 것처럼 함정에 빠트리고 나서, 막상 자신을 만나자 하는 소리가 팬이라서 그렇다는 그 말을 누가 믿으라는 소리인가. 적지 않은 수의 범죄자들을 상대해왔지만, 이런 종류의 지능범이자 충동이라는 글자의 의인화 같은 경우는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막막한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형사가 안 오는 것이 이상해서 시계를 바라본 기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20분이 거의 다 되어간다. 자신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지각한 시간이 아닌가. 장난기가 참 많은 형사가 아닐 수 없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자신을 하염없이 기다릴 기자를 생각하며 킬킬거리며 웃었다. 호두 그 친구는 자신을 무려 20분 씩이나 기다리게 만든 과거를 반성해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장난을 치지 않으면 분명 책임감 하나는 그 어떤 형사보다도 뛰어난 저 기자가 제 압박에 못 이겨 숨막힐 것이다. 가뜩이나 세상이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눠대는 이 난리통 속이라면 특히. 그래도 20분을 이 거리에서 기다리는 건 꽤 못 할 짓이구만, 그는 일전에 무스탕에서 패딩 점퍼로 바꾸기로 했었던 것을 깜빡하고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볼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시계를 넌지시 보니 20분이 다 되어가는데, 그냥 아량이 넓은 자신이 여기서 지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호드는 카페 문에 매달린 종이 부드럽게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그 전부터 형사가 자신을 골탕 먹인다는 생각에 킬킬 웃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런 건 역시 당해주는 것이 또 재미라는 생각에 굳이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요새처럼 추운 날씨에 양 볼이 시뻘개져서 온 사람에게 굳이 그런 야박한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단 것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그 형사에게 핫초코를 내밀며 이 겨울에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만 하였다. 괜히 과할 정도로 춥다며 요란하게 몸을 쓸어내리던 캘리칼리의 모습에 잃어버렸던 안도감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형사는 전에 비해 초췌한 기자의 얼굴에 마음이 안쓰러운 느낌을 받았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유치한 장난을 치는 성격도 못 되었건만. 자신이 떠는 너스레도 어쩐지 호드의 눈 밑이 퀭하기에 저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겠거니 스스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 한편으로 노스페라투 호드가 늘 입는 검은 정장에 변화가 있는 것도 눈치를 챘다. 아예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졌던 흰색 와이셔츠 대신 흰색 목폴라티가 자리하고 있었다. 캘리칼리의 시선이 전형적인 형사의 그것이 되어있었던지, 기자는 "화상 때문에 그렇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요새는 좀 어떤가? 그, 그거 말일세."
"그래도, 제법, 빠르게 회복, 되었습니다." 반사적으로 다친 부분에 손을 대다 움찔거리며 호드가 답했다.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긴장한 노스페라투 호드의 눈을 마주보며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곧 내려놓으며 답했다. "그... 화재 현장에 그 놈이 왔다 갔었네."
불에 한 번 데인 사람은 며칠 간 그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노스페라투 호드는 그 말에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억지로 작게 내는 것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 했다. 지금은 그 놈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꺼름칙해서 아예 외면하고 싶은 마음 밖에 들지 않았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그런 기자의 반응을 상담사를 통해 먼저 들었기 때문에 왜 그런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된다.
"자네가 왜 그런지 이해하네." 기자는 형사의 난생 처음으로 진지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까딱하다간 더 나쁜 꼴을 볼 수도 있었어. 자기 손으로 다짐한 신념을 배신하는 것 만큼 가장 끔찍한 것도 없다고 봐."
"상담사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뭐, 어울리다 보면 자동으로 말주변이 틔는 것 아니겠나?"
호드는 다시금 끔찍할 뻔 했던 순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몫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순식간에 반절은 단숨에 마셨다. 그 얼얼한 차가움으로 정신을 여기에 붙들어매려는 듯. 형사는 그 모습을 묵묵히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초동수사의 내용을 이제부터 말할 것이라며.
"이건 대외비일세. 알려주는 이유는 자네가, 자네 손으로 그 망할 놈의 면상에 주먹질을 하길 바라서 하는 거야. 다른 이유는 없네."
"왜, 그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시는 겁니까?"
"말했잖나. 그 놈에게 죽빵이라는 아주 좋은 놈을 먹여주라니깐. 그럼 잠도 편히 잘 수 있을 것 아닌가."
그 말에 호드가 반 정도 남아있는 잔을 내려다 보았다. 확실히 형사의 말대로, 그 날 상담실에서 반강제적이지만 편안한 수면을 취한 이후로는 악몽에 시달려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런 그의 귓가로 경장이 "경찰로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건 자네의 일이지 않나?"라는 소리가 선명하게 메아리를 쳤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캘리칼리는 간만에 맘에 드는 대답을 듣고 송곳니가 다 드러나도록 웃었다.
"좋아. 그럼 자네의 띨빡한 광팬이 최근에 저지른 일부터 전달해주지."
그 문제의 화학공장에서 불길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겠지만 실행범이 따로 존재했다. 현재 경찰의 수사로는 실행범이 곧 진범이자, 단독범행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진범의 존재를 아는 캘리칼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 실행범도 노스페라투 호드를 골리기 위한 새로운 장난감이나 다름 없었다.
그 실행범이란, 오히려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를 광적으로 지지하는 자였다. CCTV를 몇 날 며칠이고 돌려본 결과 끝에 수사망에 잡힌 그는, 히어로 호드가 모함을 받는 것이 너무나 분해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을 매스컴에 보내고 싶었다는 누구라도 개소리 말라고 할 법한 이유를, 사건의 동기로 거듭 주장하고 있다.
"제가, 그 놈한테서, 들었던 이야기와, 거의 똑같습니다."
"나도 사짜 놈한테서 이야기 건너 들었네. 진짜 팬이라면 거의 악질 사생팬... 수준 아닌가? 아무튼."
형사가 다시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 했다. 문제의 실행범의 행적을 파헤치면서 발견한, 다른 팀원들은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넘어갔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익숙한 어떤 전화번호가. 형사는 품에서 증거봉투를 하나 꺼내 호드에게 보여줬다.
"이건 자네 상사라는 머저리가 진범에게 홀리게 된 원인 중 하나네. 놈이 직접 쓴 전화번호지."
"설마, 그 사진과 같이, 온 것입니까?" 진위여부를 확인 한 후 사진에 대해 신경도 안 썼던 호드가 놀라 되물었다.
"그래. 이 전화번호로 연락 달라면서 자네 부장에게 줬다더군. 문 밑의 틈으로 밀어 넣어서."
"저희 회사, 사원증 없으면, 함부로 깊이, 못 들어갑니다."
"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군. ...사실 나도 융터르 그 친구가 입을 털어줘서 같이 들어간거라."
그렇게 말하는 형사는 자신이 상담사라도 된 양 귀를 톡톡 치며 말했다. 기자에게는 그것이 놈도 비슷하게 해서 들어갔지 않았겠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계속 말하기 위해 형사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전화번호로 연락을 받은 우리의 불쌍한 실행범 님께서는, 세 번째 사건의 무대로 이 망할 변태가 자기 직장을 미리 점찍어뒀던 것도 모른 채,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이 상변태같은 놈에게 홀려서 공장에서 폐기처리가 될 예정이었던 쓰레기 따위에 도화선을 매달고 거기에 불을... 뭐 이렇게 된 것이네."
"그럼, 그 실행범은..."
"잡혔다고 내가 말 안 했었나? 그 얼빠진 놈은 취조 할 적마다 계속해서 자기가 진짜 범인이라고 극구 주장하고 있네."
형사의 그 말에 노스페라투 호드가 한숨을 작게 쉬었다. 형사의 말을 빌려 그 사생팬이 지금까지 몇 명의 인생을 망가트리고 있는지, 더 이상 적극적으로 파헤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형사가 "융터르가 자네한테 전달해달라던데." 라는 말로 다시 운을 띄웠다. 호드의 눈이 잘게 떨렸다. 도대체 또 뭔 말을 하려고.
"그... 공원에서의 피습 사건, 그 때 수사만 잘 했었어도 이런 등신같은 일로 자네나 나나 골머리 썩지도 않았을텐데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선 피해자는 전기가 아니라 불에 의한 화상을 입었고, 동행자는 없다고 했네."
"네?" 그 어떤 말보다도 이 정보만큼 기자에게 충격적인 것도 없었다.
"그래, 그 망할 놈이 우리 코 앞에서 제 궁둥이를 까고 신나게 트월킹이라도 춘 셈이지. 동행자 흉내를 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논 형사가 다시금 짜증이 이는 얼굴로 이제는 다 식은 핫(도 아닌)초코를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전화가 울려 그는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별 생각없이 받았다.
"날세, 뭔가?"
-형사님, 두 귀를 막고 더 이상 언제까지 부정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가 범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어딘가 몽롱한 어조의 카르나르 융터르의 목소리. 조용한 카페에 그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호드에게 들리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43. 나쁜 놈 이야기 - I'm still standing(4)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