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좋은 놈 이야기 - Man in the mirror(4)
*아니 쓰다보니까 자꾸 캐릭터에게 휘둘려지는 거 같은데 이거 어떻게 하지...
*근데 이런 전개는 한번 써보고 싶었다는게 함정입니다.
*지금 호드님의 상태는, 지금까지 잘 해왔던 사람이 난생처음 실수했을 때의 그 멘붕이다 그리 생각해주심...
노스페라투 호드는 결심했다. 더는 악몽을 꾸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의 싸움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도 싫다.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것을 한번에 원하는 모순적인 태도임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카르나르 융터르의 위험한 제안에 응했다. 그 꼴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짜증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하, 그래서 뭘 어떻게 할건가?" 그 말에 상담사가 속편한 어조로 말했다.
"충격요법,이라고 해두지요. 이제 저는 절 죽이라는 말을 할 겁니다. 그러면 호드 님은 그것에 저항하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퍽이나 간단하군. 신종 자살 방법의 한 면모로 보면 쓸데없이 복잡하고."
형사는 이죽거렸다. 그러면서도 얼굴에서는 긴장이 떠나지 않고 손을 연거푸 푸는 것이,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하려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저 상담사가 진심이라는 것을 비단 자신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다. 캘리칼리의 말대로 이건 예방주사도 무엇도 아니다. 평소 보아왔던 융터르의 무모하고 과격한 행보들 가운데 가장 미친 짓이며, 가장 터무니 없는 행동. 그 무게가 다시금 다가옴에 따라, 호드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표정의 변화라고는 전혀 없는 융터르가 태연하게 '스스로를 믿고, 의심하며, 행동하라'라면서 준비되었는지를 물었다. 호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융터르가 캘리칼리에게 귀를 막아달라고 하였고, 형사가 귀를 꾹 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동안, 호드는 광신도가 된 기분을 느끼며 속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죽이지 않아.'
"저를 이제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으시지 않으십니까?"
평소 귀를 막기만 해도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기에, 융터르의 세뇌가 얼마나 강력한지 몰랐던 호드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 전까지 흐릿하게 들려왔던, 그 압도적인 목소리에 머리는 한없이 흐릿하게 변해 무거워지고,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오로지 떠오르는 생각이라곤 따르겠다. 오로지 그 뿐. 무슨 생각을 하든 몸은 움직여야 하고, 자신은 눈 앞에 있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간단한 방법, 저 목을 단숨에 꺾는 것.
명령을 받았기에 양 팔이 상대의 목에 닿을 정도로 들어 올려지고, 손아귀에 들어올 만큼 적당히 벌어진다. 이유 따위 알게 뭔가. 명령을 받았으니까 해야 한다. 좁아진 시야에 닿는 것은 오롯이 목표 뿐. 단지 거리가 닿지 않았기에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어설펐지만, 상관없다.
호드가 그렇게 천천히 융터르의 목을 죄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봐, 지금 호두한테 말한거 당장 취소해!" 천천히 다가오는 호드의 얼굴이 무표정한 것을 보며, 형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대체 왜?!" 결국 참지 못하고 형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 분명히 조언했습니다. 자신을 믿으라고." 융터르가 신랄한 어조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전 호드 님을 믿습니다."
명령이 들려왔는데도 몸이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이, 호드는 어쩐지 답답했다. 어째서 느리게 움직이는 느낌인지 알 수 없었던 찰나, 호드 님을 믿습니다. 그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명령도 아니건만 다리가 갑자기 우뚝 멈추기 시작했다. 뭘 믿는다는 것일까.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그 순간 호드는 자신이 왜 답답함을 느끼는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머리 속, 어쩌면 가슴 언저리에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곧 앞으로 더 뻗으려 하던 팔과 손끝도 점차 둔하게 느껴졌다. 명령이 있지만 메아리 치는 소리가 연거푸 몸 곳곳에서 외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순식간에 두통이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이 있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 다짐해오고 또 다짐하지 않았던가? 내면에서 지르는 비명이 그렇게 점차 온 몸을 타고 흐르며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형사가 말해주었지 않았던가? 내 신념을 내 손으로 배신하는 것 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고. 그리고 호드는 내밀었던 팔을 뒤로 뺐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몸에서 힘이 쫙 풀린 호드가 제자리에 주저 앉아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이거 진짜 기분 나쁩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이거 보시죠. 된다니까요."
"아, 돌겠군. 호두가 말한대로야. 두 번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말게. 내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어." 형사가 투덜거렸다.
점차 시야가 또렷해진 호드가 두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캘리칼리의 표정은 겨우 긴장이 풀려 안도한 것으로 보이고, 융터르는 아까와 같이 변함없었지만 그 또한 어딘가 다행이라는 듯 식은땀을 조금 흘리고 있었다. 형사가 내민 팔을 맞잡고 다시 일어난 노스페라투 호드는 숨을 몰아 쉬다가 상담사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상담사가 태연함을 가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저와 그 놈과 비교해보면?"
"당신이, 정말로, 더 지독합니다. 차라리, 그 놈이 더 낫겠습니다."
기자는 얼굴이 땀범벅인 것을 느끼고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 가면을 쓴 그 놈의 말은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융터르는 듣자마자 바로 저항하는데 굉장히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진짜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말이 맞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캘리칼리는 상담사가 호드에게 물을 건네주고, 그 물을 단숨에 비우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안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본 다음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준비는 다 끝난건가?"
"전 확실히, 끝났습니다." 호드가 다시 그 자신감이 배어있는 목소리로 답했고
"마음가짐이라면야 뭐... 전 진작에 끝났지요." 라며 융터르도 태연하게 답했다.
캘리칼리가 다시 씩 웃으면서 "그럼 이제 나만 준비 하면 되겠군. 그때까지는 서로들 몸 조심하면서 지내자고." 라며 답하고는 다시 일하러 가보겠다며 상담실을 떠났다. 야근이라도 감행하려는 모양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이런 때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정말로, 뻔뻔합니다."
카우치 소파에 앉은 호드는 솔직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안 죽을 걸 알고 저렇게 행동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라니, 까딱하다가 자신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나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정말이지 예방접종하겠다고 날 것의 병을 그대로 체험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고 호드는 문득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융터르는 어느새 내린 커피의 향을 맡으면서 도로 자기 자리에 앉고는 서늘한 얼굴로 기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아까 캘리칼리 님께서 준비가 되었냐고 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호드 님께서 말하셨던 염려스러운 그 부분 중에 하나. 그 놈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고기방패로 쓸 경우입니다."
"오, 이런...." 가장 최악의 악몽을 걷어내고 나니, 이제는 차악이 다시 최악이 되어버렸다.
상담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멍한 눈으로 책상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호드를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서야 제정신을 차리신 호드 님이 중요합니다. 제 말, 한번만 더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기랄, 이젠, 무슨 말이 나와도, 안 놀랍니다."
호드가 푸념하는 말과 다르게 씩 웃었다.
-46. 이상한 놈 이야기 - Catch me if you can(4)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