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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상한 놈 이야기 - Catch me if you can(4)

김만성피로 2022. 12. 22. 20:03

*무턱대고 썼다가 지금 뒷수습이 힘듭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체호프의 총'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깨부다 깨부! 내 대가리가 깨지고 내 대가리가 부서지고 있어요!


 평소 들릴 일이 거의 없는 경찰청에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XX서의 피투성이 경장이 어쩐일로 방문했나 싶어 주위 경찰들이 쑤군덕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미리 전화로 약속한 상대방을 직접 만나러 행차했다. 무려 유명 프렌차이즈 레스토랑 상품권 10만원 어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거랑... 그리고 이거 글씨체가 동일인물인지 확인해달라고요?"

 "그렇-지, 그리고 그런김에 그 종이에 남아있는 지문들이랑 이 펜의 지문도 한번 비교도 해주면 더 좋겠는데."

 "지문까지 비교해주면 되는 겁니까?"

 "그리고! 이제 그 지문을 땄으면 DB를 걸리는 놈이 있는지 까지 확인해주면 되네."

 

 감식관은 날로 먹는 줄 알았는데 점차 주문이 늘어나자 "이거 먹은 걸 토할 수도 없고"라며 투덜거리면서도 건네받은 증거물들을 꼼꼼히 보았다. 두 개의 증거봉투. 하나는 쪽지 한 장만 들어있고, 나머지는 쪽지와 펜이 하나씩 들어있다. 무슨 의도에서 그러는 것인지 그동안 해온 짬밥의 감으로, 감식관은 요새 캘리칼리가 히어로 호드의 사건을 맡고 있다는 사실과 두 증거품과의 관계가 무의미 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본래 XX서가 초동수사만 하면 될 줄 알았으나, 그 수사방침이 점차 호드가 살인을 했다기에는 무리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대로 수사를 진행하게 된 덕분이라면 덕분일지 모른다고 캘리칼리는 팀장의 투덜거리는 말에 오히려 고마워했다. 만약 광역수사대 같은 놈들이 이번에도 이 건을 받았으면 그때는 무슨 핑계로 합류해서 수사 정보를 알아낸단 말인가? 운이 좋게도 자신이 수사를 하겠다고 나선 덕분에 오늘 아침에서야 본격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된 참이기도 했고. 

 감식 담당관이 투덜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두 증거봉투를 재차 확인하며 말했다.

 

 "나 참. 아무튼 되는대로 연락 줄게요."

 "그래. 마지막으로--"

 "아 또 뭐요! 아예 이 새끼 집 주소도 따다 바쳐달라고 할 참이시네?" 참다못한 상대방이 짜증을 바락 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근데 빨리해주면 똑같은 거 한 장 더 준다고 할 참이었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감식관이 먼저 일을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가고, 그 뒷모습을 보던 형사도 다시 서로 복귀하기 위해 경찰청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슬슬 '그거' 올 때가 되었는데."


 "야, 국과수에서 선물 왔다." 라며 팀장이 그의 자리에 봉투 하나를 툭 던져줬다.

 "와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네."

 "니가 죽기는 하냐? 아무튼 전부터 그 호드가 안 죽인 것 같다고 노래란 노래를 부르더니, 좀 마음은 편하냐?"

 

 팀장이 그의 속도 모를 소리를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캘리칼리는 조금 조급한 마음으로 봉투 속 내용물을 열어보았다. 아직까지 수사의 보람이 하나도 없었던 두번째 사건, 아파트 단지 내 추락사의 부검 결과가 이제서야 도착한 것이다. 걱정과 기대가 반반 섞인 얼굴로 그는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특유의 전문지식에 난해해하면서도 가까스로 내린 결론.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로 아파트 단지에서 추락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집에 있는 쿠션으로 얼굴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먼저 죽인 다음, 누군가가 들처메고 잠시 이동했다가 던져서 죽였다는 그 결과. 캘리칼리가 메모를 해볼까 해서 물고 있던 펜이 입술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휘청거리다가 이면지 위에 닿았고, 곧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들쳐매고 간 것은 힘쎈 놈(사실)

 -당시 엘리베이터 CCTV를 돌려보았을 때 피해자가 안 보였으니까 계단으로 간 것(사실)

 -현장에 그 가면변태 놈이 있었다(사실)

 -가면변태가 사람들을 선동했다(사실)

 -피해자를 직접 쿠션으로 눌러 죽인 건 누구?(아니 중요한건데 하필 이게 안 드러나? 이런 젠장)

 

 "젠장, 피해자 신원 조회... 뭐 건질 만한 게 있어야 할텐데."

 

 만약 가면 변태 놈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면, 나머지는 모르더라도 최소한 이것 하나는 살인죄로 감방에 넣을 건덕지를 잡을 수 있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나온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몰아가면, 그 가면변태가 따까리로 쓰는 그 힘쎈 놈이 다 해버렸다며 떠넘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이대로 앉아서 고민만 해봐야 더는 나올 것도 없다는 생각에 다시 두번째 사건의 현장으로 가보기로 그는 결심했다.


  형사라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믿기지 않을 그의 외모 덕분에 더 이상 집값 떨어트리지 말고 사건 종료해달라는 파렴치한 양반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던 캘리칼리는, 여전히 피해자의 집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순경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섰다. 예전에도 한번은 왔었지만 고급 아파트 특유의 기운과 사건현장은 미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미 두번째 사건의 경우에는 시간이 제법 지났기 때문에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관점을... 달리 해보실까."

 

 그때는 호드가 범인이 아니라는 쪽으로만 찾아보았지만, 이제는 그 가면변태놈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을 때다. 어지간한 건 이미 증거보관실에 있겠지만, 그거야 추후에 찾아보면 될 일이고 지금은 여기서 놓친 것을 찾자는 생각으로 형사는 주변을 슥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단 문제의 쿠션. 검시보고서에서는 사체의 기도로 '흰색 실밥'이 들어있었다고 했었으니 흰색 커버가 보이면 배게고 소파 위의 쿠션이고 전부 우악스럽게 증거물 봉투에 쑤셔담았다. 여기에 놈의 손자국이라도 남아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면서 주위를 살펴보다 실수로 침대 옆에 있던 작은 서랍장을 쓰러트렸다.

 

 "이런 젠장, 뭐야?"

 

 장판에 눌려진 자국을 보면 제법 한 곳에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움직인 것인지 그보다 살짝 툭 튀어나와있어 운 나쁘게 캘리칼리가 지나갈 때 스친다는 것이 자빠진 모양이다. 그는 단서 찾기도 번거로운데 이런 사고를 쳐서 시간을 잡아먹는게 기분 나빠 투덜거렸다. 현장정리를 해야했기에 주섬주섬 다시 서랍장을 들어올어올리자 뭔가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비밀서랍이었다. 특정 각도로 기울여야 빠지는, 겉보기에는 서랍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 별도의 손잡이도 보이지 않는 그 안에는 또 다른 핸드폰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형사는 깨달았다.

 이 핸드폰이 진짜배기다.

 아마도 충전을 제때 해놓지 않았는지 배터리가 다 나가있던 상태라 급히 방 안을 굴러다니는 충전기에 잽싸게 꼽아 작동되기만을 기다렸다. 고작 5%정도만 충전되더라도 자동으로 전원이 켜질 그것이 너무 오래걸리는 기분이라, 그는 근처의 침대에 걸터 앉으면서 긴장감에 못 이겨 다리를 떨었다.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이 추락사로 위장한 살해현장의 피해자를 조사해보라고 시켜놨던 부하의 번호였다.

 

 "그래, 전화 받았네."

 -선배님, 그 피해자 말인데요? 어떻게 파헤칠 생각 하셨습니까?

 "감이라고 해두지 뭐. 근데 난 지금 본론을 얼른 듣고 싶거든."

 -아이고 이런, 일단 중요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제약회사의 고위 간부라고 하고요. 피해자가 어딘가로 지속적인 돈을 보낸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차명계좌에서요. 거의 다달이 특정 주기마다 보냅니다. 그... 어디로 정확하게 입금이 되었는가는 지금 파고 있습니다.

"돈을 보내? 혹시 금액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나?"

 -어어, 이거 좀 큽니다. 거의 억 단위인데요?

 

 제약회사 간부가 돈을 억 단위로 매달 보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냄새가 난다. 캘리칼리는 부하에게 그 쪽으로 더 파보라고 지시를 내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충전기에 연결되어있던 숨겨진 전화기가 드디어 작동되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화면을 켜보았다.

 

 "잠금화면이 걸려있었으면 확 부셔버릴뻔 했는데, 다행이군."

 

 그는 피해자의 안일함에 감사를 표하면서 화면을 이리저리 건드려보았다. 메시지 없음, 전화 내역도 없음, 인터넷 사용기록 없음. 설마하는 함정 비슷한 것이었나? 실망을 숨길 수 없었던 형사는 그래도 이런 번거로운 은닉처에 숨길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핸드폰의 이것저것을 열심히 건드려보았다. 그러다가 '어플리케이션 숨기기'라는 기능이 있는 것을 본 그가 무심코 눌렀다.

 

 "하하! 그럼 그렇지. 찔리는 게 있으니 숨긴건데!"

 

 숨김처리가 되어있는 단 하나의 어플리케이션. 극강의 익명성을 세일즈포인트로 내세운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캘리칼리는 간만에 오는 직감에 송곳니까지 보일 정도로 씩 웃었다. 우리 피해자님께서도 영 꿍꿍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셨구만. 뭣때문에 이런 가면을 쓴 상변태에게 목숨을 잃으셨는지 한번 보실까?

 그러나 그 내용을 본 형사는 얼굴이 자동으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47. 좋은 놈 이야기 - Man in the mirror(5)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