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리석 복도 위 사람들
1. 그 제가 좀비를 다잉라이트 시리즈로 잡았다고 했잖습니까?
2. 1편은 장비 파밍이 잘 안되서 매번 뒤지다 보니까 2편만 하고 있습니다.
3. 아니 뭐 같이 하실 분 계시....지는 않겠군요. 지금 나온 dlc가 아주 그냥 개가테서.
4. 게다가 묘사만 했을 뿐인데 곧바로 덕수 할아바이와 혜지님 아니냐고 눈치채신 분 무섭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느그중고등학교의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 문제아였던 독고혜지는 옥상 위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녀의 행실을 두고 문제아라고 지칭해 줄 다른 학생들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벌써 어두컴컴해지는 시간에 짜증이 난 그녀가 쌍욕을 내뱉으면서 빠르게 내려왔다. 아무리 골치 아픈 건 싫다지만 대놓고 놈들의 행동이 보이는 것을 무시 할 수는 없는 법. 어두울수록 놈들은 더 힘이 세지니까.
"할아버지, 우리 어떻게 해요?"
"으음... 운동장꺼정 해가 뜨믄 탈출을 혀자."
느그중고등학교의 경비로 근무하던 이덕수는 그녀와 같이 이 학교 내의 유이한 생존자다. 사실 그가 나서서 독고혜지를 구해주지 못했다면 그녀 또한 끔찍한 꼴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4층으로 올라오는 모든 계단에 온갖 책걸상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다리면 누군가가 구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사실에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혜지는 그런 덕수의 주장에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가 이내 곧 운동장으로 향하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한낮과 달리 활발히 움직이는 좀비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덩치가 배는 큰 것도 있는데, 괜히 밤에 나섰다가 저런 놈들에게 물려버린 멍청한 놈들이 싫어도 떠오르기 마련이라, 그녀는 성격을 못 참고 화내고 싶었다. 그런 그녀를 덕수가 조용히 타일렀다.
"혜지야, 그르믄 안 되야. 우리라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것냐."
"우리 도망쳐도 어디로 가요? 갈 만한 곳이 있을까요?"
"으음.... 일단 식량이 있을맨한 곳으로다가 가보는게 좋것네. 그르니께 내일 부던허게 움직일라믄 어여 자야."
혜지는 그런 할아버지의 침착한 어조가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해병대 출신이든 뭐든 이런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에 그녀는 감사한 마음까지도 들었던 것이다. 사태가 일어날 때 보았던, 학생과 구분이라고는 되지도 않던 갖잖은 선생들이 생각나, 한때 양아치의 이름값을 하듯 그녀는 코웃음도 살짝 쳤다.
한편 이덕수는 혜지의 몸이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자신도 조용히 복도로 나와 운동장 쪽을 바라보았다. 더 빠르게 달음박질하고, 더 높이 뛰어오르는 놈들이 어슬렁거린다. 그런 놈들에게서 몸을 지켜줄 차를 얻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하필 주차장 쪽은 건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위험하다. 그러니 맨 몸으로 저 바깥에 나가야 할 터였다. 혼자서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독고혜지까지 자신이 과연 무사히 탈출에 성공을 시킬 수 있을까? 그녀가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알기에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그 또한 이 모든 상황이 두렵고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우연찮게 바라보고나서야 자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릴만큼.
다시 조용히 교실로 돌아온 그는 탈출하기로 마음 먹은 뒤 준비한 모든 물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를테면 네일건이라던가. 그렇게 덕수도 조금이나마 눈일랑 붙이기로 했다. 설령 모든 것이 잘못되어도 혜지는 안전한 곳에 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썅..."
덕수의 입에서 욕이 터져버렸다. 결심한 날에 하필 먹구름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햇빛이 없다. 점찍어두었던 운동장은 이미 놈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늘 이상으로 여기에 더 있다가는 안전을 더는 도모할 수 없다는 경각심이 비상벨을 울려대는 듯 했다. 혜지도 그런 바깥을 옥상으로 내다보며 절망한 눈을 하고 있었다.
재수가 없으려면 이다지도 없을까. 저기 보이는 도시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온 사방이 비 투성이라니. 혜지가 망연자실해서 질문을 했다.
"우리 어떻게 나가요?"
"잠깐만 기다려봐야. 뭐 하나 할테니께 저 썩을 것덜이 오는지 망 좀 봐줘야."
"아, 알았어요."
덕수가 한다는 그 '하나'란 그나마 바깥에서 물자를 구해올 수 있었을 적에 습득한 플레어건이었다. 어떻게 구했는지 소재를 묻지 않은 혜지는, 잠자코 총구를 하늘에 겨누고는 그 특유의 '피융--'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을 퍼트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덕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 특유의 소리가 제법 큰 탓에, 운동장에 득시글한 좀비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놈들은 소리에도 민감했던 것이다. 혜지는 창백하게 긴장한 얼굴로 덕수가 쓰라며 건네준 네일건을 꼭 쥐었다. 저 새끼들 머리에. 저 새끼들 머리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한 끝에 겨우 알아낸 사실이다. 어차피 저 놈들도 대가리가 깨지면 못 움직인다는 사실.
만약 그게 사람이었다면 제발 아가리 닥치라고 하고 싶은, 그런 익숙하지만은 않은 귀찢어지는 괴성이 아래 어딘가에서 울려퍼졌다. 저런 놈이 한 번 꽤액하고 소리치면 그게 어떤 신호가 되는지 좀비들이 득달같이 덤벼든다. 일종의 개전 신호라도 되는 모양처럼. 덕수도 자신의 네일건을 조심스레 살펴보고는 손을 덜덜 떠는 혜지에게 말했다.
"긴장은 즉당히만 햐. 안 그럼 빗나가."
"알아, 알았어요. 긴장은, 조금만. 진짜 조금만...."
굳이 비 때문은 아니더라도 혜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둘은 옥상 입구만 바라보았다. 지금은 책걸상 따위로 닫은 문을 보강하듯 막아뒀지만 언제 저걸 뚫고 달려올지 모른다. 문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지 두 사람은 귀를 잔뜩 기울였다. 그러나 소리는 그곳에서 들리지 않았다. 운동장 쪽으로 좀비들이 계속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덕수마저도 침착한 태도를 잃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저게 무어여...?"
갑옷을 입었다고 하기에는 제법 얄상한 덩어리가 달려오는 좀비들을 힘껏 짓이기거나 내던지고, 때때로는 새파란 광선 따위를 발사하고 있는 모습을, 똑같이 "저게 뭐에요?"라고 묻는 혜지에게 설명할 재간이 도통 없었다.
하쿠가 떨어졌던 근방을 수색하던 왁파고는 돌아가면 자신에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발생한 오류(감정)가 더 이상 없는 것에 안도하였다. 그리고 더 안도 할 수 있던 것은, 그런 그녀의 잔해나 부품 조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먼저 공격하려 달려드는 놈들을 제외하면 인간이 아닌 자신과 하쿠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무사히 대피소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막상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문제의 골목 근처에 머리가 꿰뚫린 채 죽어있는 좀비가 하나 보였을 뿐. 게다가 통신은 전혀 연결되고 있지 못했다. 어쩌면 떨어지면서 그 쪽 부분에도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보였다. 어디로 향했을까? 어디에 있을까? 왁파고는 그 주위를 시작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헤맸지만 얻은 소득은 전혀 없었다.
더더욱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그렇게 하루에 걸쳐 수색하려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 특히 공격적인 좀비들이 나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왁파고가 전투 태세를 갖췄고, 곧 달려오는 좀비들을 문자 그대로 뚫어 길을 트기 시작했지만 단순한 먹구름이 본래 오후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아예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서라고는 전혀 없어 추측하기도 불가능해하던 기계의 시각 센서에 어떤 신호가 잡혔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느그중고등학교라는 곳. 거기서 플레어건으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내는 붉은 빛은, 도파민 박사가 늘 표현하는대로 이 칙칙한 하늘에서 오히려 눈에 잘 띄었다. 혹시나 저기에 하쿠가 있을까? 없더라도 어떤 정보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런 판단을 내린 왁파고가 곧바로 그 쪽으로 향했다.
[아이고. 이런. 좀비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 왁파고는 운동장을 어슬렁대는 좀비무리들을 보았다. 저 안에 생존자가 있다는건가? 아니 그보다도 하쿠라면 이런 곳까지는 스스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왁파고는 선뜻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망설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알기에 그새 자신을 보고 괴성을 지르는 좀비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까지 온거여?"
[맞습니다. 혹시나 해서 왔지만, 역시나였군요.]
좀비들의 피가 튀어 제법 살벌해진 왁파고에게, 비명을 지르려는 것을 애써 참던 여고생과 머리가 새하얗게 샌 경비원이 옥상까지 온 그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간단히 하쿠를 찾고 있음을 설명한 왁파고가 뒤를 돌아 도로 도심으로 향하려는데, 여고생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나랑 할아버지랑도 같이 데려가줘!"
"혜지야." 노인이 당황한 어조로 말했지만, 혜지라 불린 여고생이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다.
"저런 기계가 혼자서 돌아 다닐리 없잖아요! 적어도 누군가가 있는게 분명해! 그러니까 쉴 곳도 있을거란 소리 아니에요?"
왁파고의 사고회로가 과할 정도로 활발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생존자 합류라는 측면은 기계에게 있어 처음이지만 적어도 이런 경우에는 여럿이서 활동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혼자 독단적으로 처리 할 수는 없었다. 책임을 지기 위해 연구소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지만 이런 경우라면. 그래서 왁파고가 연구소에 연락을 해보겠다며 잠깐 거리를 두었다.
하쿠가 먼저 돌아왔다는 다행스러운 소식과 도파민 박사가 돌아오라고 내리는 명령에 마음이 놓였다. 왁파고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혼자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새우튀김이 당황했는지 무전을 빼앗아 들어올린 소리가 들려 간단히 상황설명을 했다. 노인과 학생의 구조요청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를.
무전기 너머로 새우튀김이 한숨을 푹 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답이 돌아왔다.
-위험하지 않겠다 싶으면 데리고 와. 혹시나 물렸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바로 버려. 알겠냐?
[감사합니다. 곧바로 복귀하겠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긴장된 표정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잠깐만 기다려봐야."
멀리서 보았을 적의 쇳덩어리인 줄 알았던 그것이, 스스로를 '왁파고'라고 하는 로봇이라길래 덕수는 정신이 얼떨떨한 상태로 있다가 곧바로 다시 붙잡았다. 로봇이 자기네 연구소로 데려다주겠다는 호의는 감사하지만, 여기서 챙겨가면 좋을 것이 하나는 있었다. 자동차였다.
"아이 진짜. 할아버지, 그거 꼭 챙겨야 돼?"
"혜지야, 사람이 어딜 갈 적에는 뭔가를 하나 준비혀는 것이 좋아. 차가 있으믄 여러모로 저짝도 좋아할 게 아니냐."
그리 말하며 그는 짐꾸러미에서 천주머니를 하나 꺼내 열어보여주었다. 차 키들을 모아둔 꾸러미였다. 그러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여서 멀쩡한 거 하나만 챙겨두구는 담에 또 필요허면 그 때 챙겨가믄 되야. 그르니께 일단 나가자고들."
옥상 위에서 보았던 대로,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왁파고라는 존재가 있어 나름 든든해진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는 혜지에게 그 차키 꾸러미를 맡기면서 아직은 차가 맛이 갈만큼 시간이 오래 흐르지는 않았으니 기름만 빵빵하게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혜지가 꾸러미는 받아들면서도 걱정스러워 되물었다.
"그럼 할아버지는요?"
"내는 요 놈이랑 주위 살펴볼테니께, 좀비 놈으 샤끼들 튀어나오는대로 말하기만 햐."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움직여야 합니다.]
덕수의 단호한 말에 나머지 둘도 서둘러서 움직였고, 곧 누가보더라도 고급스러운 차량 하나가 그의 마음에 쏙 들만큼 상태가 좋아 서둘러 학교를 탈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덕수와 혜지가 놀랐다기보다는 황당해 할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전형적인 로봇이라 감정이라고는 모르는 것처럼 보였던 왁파고가, 차를 타며 앞유리에 부딪치곤 하는 좀비들을 보고는 기겁해서 연신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는게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던 두 사람이 한 마디씩 했다.
"저거 싸구려 아녀...? 한 500원 짜리라든가."
"안에 사람있는거 아냐? 뭔 로봇이 저렇게 겁쟁이야?"
[아이고! 저는 그렇지 않습니--아아아이고야 세상에. 방금 조금만 더 세게 부딪쳤으면, 아이고!!]
덕수는 순식간에 못 미더워진 왁파고 때문에 연거푸 "500원짜리여" 라며 투덜거렸고, 그런 그가 왁파고가 안내하는대로 차를 몰다 곧 기존 건물 위에 강철 따위를 덧대서 보강한 태가 역력한 연구소까지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