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썰입니다./멤고 단편 - 판타지

그의 입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 Angel on the Cheese

김만성피로 2022. 12. 31. 00:55

내가 또X6 미쳤지...

1. 전 억울합니다. 갑자기 이 당시 타임라인에 단답님으로 천사를 연성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길래 저도 그냥 살짝 끼얹었을 뿐이거든요. 가볍게 뻘망상으로.

 

2. 근데 이걸 써달라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3. 왜 자꾸 늘어나는건데!!

 

 


 천사는 무엇을 먹는가?

 이 질문에 답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 빼고는 아직까진 아무도 없다. 일단 천사가 실존하는지, 실존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런 기타 여하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 질문에 이덕수 요한과 카르나르 융터르는 분명히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천사는 피자를 먹는다. 기왕이면 치즈 피자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이덕수 요한 주임신부 아래, 성당은 종종 어떤 일이 있을 적마다 한 피자집에 주문하고는 했다. 그게 유치부든, 혹은 청년부든.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든, 아니면 피자파티를 하기 위해서든. 물론 다른 것도 시키긴 했지만 피자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가격 대비 맛이 좋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 피자집은 나름대로 동네 맛집 정도의 위치를 지니고 있었고, 성당이 최대 매출 고객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장사는 제법 잘 되었다.

 

 "자, 늘 주문하시는 치즈 피자요."

 "예."

 

 피자집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특이한 단골이, 오늘도 주문한 치즈피자의 값을 치르고 문을 나섰다. 언제부터인지, 훌쩍 와서는 홀린듯이 치즈피자를 주문하고 사라졌다. 돈은 늘 현금. 주문은 늘 직접 와서 단답("치즈")으로. 피자집 주인은 그런 작은 체구의 단발머리 손님을 퍽 이상하게 여겼지만 세상에 사람들이 몇 명인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아 하였다.

 한편, 그런 날이 시작함과 동시에 성당에서는 요즘 들어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날 집전한 주일미사가 끝나고 헌금봉투를 정리하던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뒷정리에 여념이 없던 신부를 불렀다.

 

 "신부님? 오늘도 헌금이 조금 이상한데요? 저번처럼 딱 그 만큼 돈이 비어요. 정확히 만 원 정도가."

 

 일종의 가계부를 작성해야 했기에 기존과 금액 비교를 하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연신 이상하다고 반복했지만, 이덕수 요한은 그런 작은 걸 가지고 일일이 따지면 세상 못 산다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딘가 멀리 바라보는 얼굴이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누가 어디 맛난 거라도 잡숫것다고 하시나보지 무얼..."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에?"

 

 그런 단답벌레는 요근래 문을 좀처럼 열지 않던 단골 피자집 앞에서, 자신의 모든 복잡한 심경을 아주 깔끔하게 요약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종종 만지곤 했던 유리문 앞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휴업합니다. - 주인 백- 이라는, 손글씨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몸이 아픈건가? 혹은 가게 사정이 좋지 않은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의 솜털까지 가게 내부에서 불현듯 위화감이, 마치 뱀처럼 스물거리며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태생적인 불쾌함이라니, 설마.

 단골집을 목전에 두었다고 하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처럼, 그는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조명이라고는 기껏해야 음료수 전용 냉장고의 그것 밖에 없는 가게 내부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흘러, 이게 휴업인지 폐업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그의 뒤에서 건들거린다 해야 할지, 조금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여기 오늘도 쉬나? ...이상한데..."

 "아?"

 

 분홍색 머리카락과 그보다는 자주빛에 가까운 양복, 선글라스 속에는 연녹빛 눈동자.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존재가 마찬가지로 손에 현금을 쥔 채 가게 내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약간 짜증이 감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법했다. 

 단답벌레가 긴장해서 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그 존재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상대방은 그런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도 못했는지 얼굴을 마구 찌푸리면서 계속 이상하다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건 자신도 동의하던 바였으나, 자신의 머리 위에 여전히 그늘을 만들던 그 사람과 동시에 혼잣말을 중얼거릴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튀어나온 그 단어.

 

 "악마?"

 

 두 사람이 고개를 움직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악마가 되어서는 계란프라이(물기라곤 없는 완숙이었다)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짜증을 내던 이덕수 요한은 어쩌다보니 얹혀 살게 된 객식구가 사오라는 피자는 안 사오고, 곁에 뭔가 작달막한 사람을 데려온 것을 봐서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심지어 자신 앞에서도 뻔뻔하게 완숙 프라이를 먹으라며 권하던 놈이 저렇게 당황해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뭔가 옴싹달싹 못하던 대악마가 동행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만 벙긋벙긋거리면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려했다. 그 입이 ''와 '' 라는 발음을 계속 반복하고, 머리에 고리가 있는 것마냥 둥글게 그리는가 하면, 양 손으로 잘게 파닥거리는 그 손짓은.

 주임신부가 그렇게 오두방정을 떠는 대악마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나두 알어 이눔아. 근디 천사가 왜 여있냐고 묻는거 아녀?"

 "아, 알았어요?"

 "안 그르믄? 좌우당간에, 사오라는 피자 대신 왜 천사가 있냐고, 욘석아!"

 

 이미 뢴트게늄의 뇌리에 공포스럽게 자리 잡은 그 놈의 벽조목으로 만든 효자손이 허공을 가르려 하기에 대악마가 다급하게 말했다.

 

 "으아아..!! 피자집! 피자집 앞에서 만났어요!"

 "...뭐시여?"

 "응."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천사, 단답벌레가 그 말에 동의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자 주임신부는 할말을 잃고는 두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여기서 보충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부랴부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것 치고는 그 자신도 금방 갔다가 돌아왔기에 설명할 것이 많지 않긴 했지만, 뭐라도 입을 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악마는 드물게 속임수 없이 말했다. 피자집 앞에서 만났어요 라고.

 한편 주임신부도 그 나름대로 악마가 지껄이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어라 했는데, 가장 근본적이고 중대한 점으로 도대체 천사가 피자집에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식적이며 논리적인 의문을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옆에서 툭 말했다.

 

 "맛있음."

 "그려, 그 피자집이 맛집이긴 혀어....어?

 

 단답벌레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뭔가를 좌르르 쏟아냈다. 자세히보니 피자집 쿠폰이 무려 30장은 되었다. 이 집 피자는 라지 사이즈를 하나 주문해야 쿠폰을 하나 주는데, 제일 저렴한 치즈피자가 한 판에 만원이니 못해도 30만원 어치는 저 자의 뱃속에 들어갔다는 사실까지 비로소 신부는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종종 헌금이 만 원씩 비는 것도. "설마"하고 신부가 효자손을 떨어트렸다.

 그 말에 더 설명이 필요없다는 듯, 새하얀 깃털 하나가 굳어버린 신부의 손바닥 위로 떨어지고 악마가 "으악! 눈부셔!!" 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환한 빛이 단답벌레의 머리 뒤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자신을 '단답벌레'라고 소개한 그는, 그러니까, 천사는 치즈 피자를 좋아했다.


 "도움."

 "...피자를 먹기 위해서 도와달라고요?"

 "예."

 

 천연덕스럽게 도와달라는 천사, 단답벌레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그저 눈만 연거푸 끔뻑거리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뒤에 있던 뢴트게늄과 이덕수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천사를 바라보았다. 작은 키에 목까지 내려오는 갈빛의 단발머리의 천사는 이 사짜 구마사제가 자신을 바라보길 원하기라도 했는지 바로 눈을 마주쳤다.

 당황한 그의 등 뒤로 뢴트게늄이 툭 내뱉는 말을 했다.

 

 "근데 나라도 도와달라고 할거에요, 융터르 씨."

 "왜죠?"

 "거기 지금 구멍 뚫렸거든. 다행히도 성당에서 사람들이 하도 왔다갔다하고, 여기 계신 천사님 덕분에 못 나오는 거 뿐이지."

 

 악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이지만,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셋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도 가뜩이나 악마들이 빈 틈이 있으면 기어들어오는 판에 대놓고 구멍이 생긴다? 이건 절대로 단순히 골치 아픈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상황이 되지 않았다. 귀찮다는 표현을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더럽고 추악하게 만들면 그리 되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던 주임신부의 표정이 제일 심하게 구겨지면서 융터르의 품에 뭔가 한 가득 떠밀었다. 성수 몇 병, 은으로 된 묵주, 그리고 효자손까지.

 

 "즈번 도동 놈 사건때 몰래 들구가서 이건 내키지가 않은디, 별 수 있냐."

 "이거 잘 쓰시던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어... 뽀사지믄 그 때가서 그 도사 놈헌티 새로 달라구 허믄 되니께 걱정은 하덜 말어."

 

 마지막으로 별채를 나온 융터르가 이미 멀리 앞서가는 두 존재의 뒤를 쫓아 얼마간 걷자 문제의 그 피자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천사와, 한 인간, 그리고 한 악마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벌써 구멍이 꽤 넓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예상했던 불상사까지는 일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면 예상이 곧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 초조함으로 가게의 문을 융터르가 바라보았다. 문이 설마 잠겨있으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뢴트게늄이 문 손잡이를 잡고 당기자 순순히 열렸다. 

 문을 살짝 연 상태로 그가 머쓱한 마음에 씁쓸한 웃음을 띄면서 변명하듯 말했다. "전 같은 악마라고 이 놈들이 편을 들어주나봅니다?" 긴장한 얼굴의 융터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저 안에는 구멍을 뚫기 위해 가게 주인이 악마에 씌여 있고, 가게 안에는 그렇찮아도 악마들이 가득할 겁니다."

 "예."

 "그러니 제가 주인 분에게 구마 의식을 진행하고..." 그러나 뢴트게늄이 시간이 없다는 듯 바로 잘랐다.

 "간만에 힘 좀 쓰라는 말 아니에요? 나 참, 융터르 씨. 그 말이 너무 많은 거 같아. 안 그래요? 천사 양반."

 "빨리."

 

 천사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전혀 다른 세 존재들이 곧바로 가게 안에 뛰어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속이 더부룩한 것을 넘어 불쾌한 포만감이 넘치는 공기가 느껴졌다.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곁눈질로 보면 새까맣다 싶다가도 흐릿한 연기 따위가 가게 곳곳을 맴도는 것이 이미 어지간히 나올 놈들은 다 나왔다며 무력시위라도 할 모양새였다. 천사는 당연히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고, 악마는 "니들 같은 놈들 때문에!! 어?! 나 같이 선량한 악마도 고생하는거야!! 알았어?!"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손목에 걸린 묵주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카르나르 융터르는 천사와 악마 때문에 시선이 풀린 틈을 타, 가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 곡괭이로 주방의 바닥을 연거푸 찍어내던 주인, 아니 악마가 손을 멈추고 잇몸까지 다 드러나도록 흉측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해주었다.

 

 "오, 이런."

 <이미 늦었어. 구멍은 더 크고 더 넓어졌으니까.>

 "아니, 아직 안 늦었습니다." 그가 악마를 향해, 기습적으로 주머니에서 성수를 꺼내 뿌렸다. 

 

 반응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맞은 악마가 귀를 울리는 비명을 지른다. 그는 경험으로 그것이 진짜 고통스러워서 내는 것이기도 하며, 그저 듣는 이를 현혹하려는 의도에서 내지르는 것이기도 함을 안다. 이번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후자의 측면이 강하였기 때문에, 그는 전통적인 예식의 순서에 따라 주 예수, 성부에 이어 모든 성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를 곧바로 행하였다. 그 말의 뒤에는 카르나르 융터르 그 자신의 권위가 아닌 모든 교회의 권위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성수로 인한 피해보다 더 한 것에 악마는 다른 원인도 있음을 알았다.

 아까의 거짓된 비명과 달리, 진정으로 악마가 고통스러워하며 괴성을 질렀다.

 

 <천사!! 천사가 네 놈을 축복해주는구나!! 이 가짜 신부가아-!!>

 "그러길래 천사께서 사랑해 마지 않는 이 피자집에 왜 기어들어옵니까? 당신, 바보아닙니까?"

 <이 날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이 지상 위로 자유를 누릴 것이다! 그걸 위해 우리는>

 

 억울함이 섞였는지, 악마가 빙의된 주인의 몸에서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혈관이 시커멓게 물들며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섬뜩하기 그지 없는 광경이었으나, 이미 그런 광경에는 이골이 난 융터르가 비아냥거리며 악마의 하소연을 칼같이 잘라냈다.

 

 "요새 당신 같은 놈들 때문에 얌전히 살면 지상에 있는 술집에도 갈 수 있는 것도 모르셨습니까? 아, 그것도 모르니까 바보같이 지상으로 애써 기어나오려고 엄한 짓을 했겠군요. 우린 이걸 뻘짓이라고 부르기로 합의를 봤는데."

 <노력을 무시하지마!!>

 "동의이음어로 이러한 행위를, 삽질이라고도 하지요. 네, 당신들이 쓸데없이 힘을 뺀 그 행위 말입니다."

 

 그의 독설이 악마에게 충격적이었는지, 어느 순간 부터인가 바닥을 내려찍던 곡괭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어버버하면서(정확히는 이 반푼이 주제에 같은 말만을 중얼거리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악마에게 그는 악에게서 승리한 그리스도를 칭송하는 내용의 시편을 두 편이나 낭독하고, 복음까지 선포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괴성을 지르며 악마가 손에 쥔 곡괭이를 전직 구마사제 지망생에게 휘두르려 하였다. 그 때, 융터르가 묵주로 칭칭 감았던 오른손을 뻗어 빙의된 사람의 머리 위에 얹고는, 라틴어로 되어있는 오래된 기도문을 하나 읊었다.

 

 "더러운 영이여, 그로부터 나와 성령께 자리를 내어 드려라. 하느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내게 명한다. 그 분께서는 성령의 업적으로 아무런 흠 없이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나셨고 당신의 성혈로 모든 것을 깨끗이 하셨다! 그러므로 사탄아, 물러가라!"

 

 수없이 구마의식을 행해왔던 융터르지만, 이번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묵주 끝의 은십자가가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마치 독기가 목끝까지 차오르던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반대로 구마의식을 집행하는 상대 악마에게는 지독히도 불타는 고통을 선사할 뿐이었다. 그 고통에 박차를 가하듯, 그는 괴로워하는 악마에게 몇 번이고 다그쳐 그 이름을 묻고 그 답을 듣자마자 성호를 그으면서 지옥으로 돌아가는 의식의 마지막 단계까지 간신히 치를 수 있었다.

 평소 보아왔던 것보다 훨씬 짙은 회색빛의 그림자가 가게 주인의 입에서 비틀거리며 빠져나오는 것까지 본 후, 다른 성수병을 하나 더 꺼내 의식을 잃은 주인의 몸과, 그 주변에 한 바퀴를 둘러 이미 체력이 바닥난 불쌍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여전히 시끄러운 바깥에 합류해야하나 싶었지만, 성수로 보호하는 주인의 몸을 차지하려는 다른 놈들을 효자손으로 후려패기에 급급했다. 그저 무사히 끝나야만 할 터인데. 전직 사제 지망생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인 융터르에게는 흐릿한 안개에 불과하겠지만, 단답벌레와 뢴트게늄에게는 실체가 분명히 보였다. 아직까진 육신을 얻지 못해 그저 시커멓게 사람 그림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수준인 것이 다행일 정도로. 천사랑 등을 맞대고 싸우는 것도 오래 살고 볼일이라며 뢴트게늄이 너스레를 떨었고, 단답벌레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짧게 '응' 소리만을 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악마에게 최대 천적인 천사는 그 빛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잡다한 기운을 사그라들게 할 수 있었고, 주임신부에게 계란프라이를 완숙으로만 한다며 혼나긴 해도 뢴트게늄은 버젓이 육신까지 얻은 대악마였다. 일반적인 잡다한 악령 단계의 것들이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어느 새 눈자위가 새카맣게 변해 강제로 바닥에 구멍을 내고, 검붉은 기운을 손에 그러모은 대악마가 자신이 낸 구멍으로 그 기운을 쑤셔박자 그 것이 폭발하듯 가느다란 줄기가 되어 재빠르게 도망치는 악마들의 몸을 꿰뚫었다. 뢴트게늄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기운덩어리가 다시 한데 모이더니 곧 구멍 아래로 깊게 빨려 내려가면서 악마들을 끌고 갔다. 그렇게 방심한 듯 보이는 대악마를 향해 잔존한 놈들 중 하나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었지만.

 

 "내가 말이에요, 응? 니들이 해본 짓 다 해봤는데 안되는 걸 다 아는 사람이거든!!"

 

 손을 거칠게 휘두르자 그 검붉은 것들이 날카로운 발톱이 된 마냥 덤벼들었던 것들이 산산히 찢겨나가버렸다. 물론 악마가 악마에게 하는 공격은 어떤 충격만을 줄 뿐이라 큰 효과는 없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삽시간에 뢴트게늄의 흰자위가 하얗게 돌아오며 자리를 피하자, 단답벌레가 깃털처럼 하늘하늘거리는 빛을 뿌렸다.

 일반적인 사람들까지라면 그저 따스하고 포근할 뿐이지만, 사악한 것들에게는 지옥의 유황불보다도 더 잔인하리만치 뜨겁고 고통스러운 빛일 뿐이다. 하물며 잘게 조각나버린 악마들에게라면 간단히 소멸시킬 수 있는 정도. 심지어 그의 머리 뒤에 있는 광배는 어떤 보호막의 역할도 하는 것인지 사이한 기운들마저도 어지간해서는 막아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손에 칼이 쥐어졌었는데, 한 번 휘두를 적마다 베인 적들이 그 부분을 쥐어짜내며 괴로워했다. 자세히 보면 그 상처가 단순히 베였다기보다는 어마어마한 열에 녹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힘듬."

 "아, 나도 힘들어요! 나도... 뭐, 지 혼자만 힘들어?"

 

 이미 구멍에서 튀어 나온 놈들이 많았던 탓에 개개별 씩 쓰러트리는 것은 빨랐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그 어마어마한 물량을 가짜 신부가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다행이라고 두 상반된 것들은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 구마의식처럼 일일이 한 놈씩 붙들어매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그래서 둘은 안쪽 주방에서 그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교회의 권위를 내세워 구마의식을 치루는 것을 긴장하며 들으며 전투에 임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피자집 주인의 몸에 깃들었던 악마가 괴성을 내지르며 도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타이밍에 마지막 적까지 쓰러트릴 수 있었다.

 

 "와, 와아... 진짜, 천사도 이리 다 망가져요? 편히 쉬시지? 이제 다 쓰러트렸구만."

 "남이사."

 

 씨근덕거리면서도 각자 체면이 있던지 주저앉지도 못하고 겨우 서서 한숨돌리는 모양새가 천사나 악마나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존재는 서로 상반되기에 경쟁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 그 미묘한 경쟁심 혹은 갈등이 저 안 쪽 주방에도 영향을 끼쳤던지, 가짜 신부가 "두 분 눈싸움이라도 하십니까?" 라며 물을 지경이었다.


 "맛있음."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슨 천사가 피자를, ...맛있네. 이거."

 

 모든 일이 끝나고, 이덕수 요한은 자신의 식탁에서 치즈피자를 열심히 먹는 두 식충이를 바라보았다. 한 놈은 오늘도 계란프라이를 완숙으로 해버렸고, 또 한 놈은 거의 주 마다 3번 이상은 피자를 먹느라 은근슬쩍 헌금에서 만원씩 슬쩍하고는 한다. 요리치 악마와 도둑 천사라니, 신학을 배워오면서 쌓아온 모든 상식들이 전면적으로 부정 당하는 느낌에 주임신부는 별채에서 나왔다.

 

 "신부님? 밖이 추운데 왜 얇은 차림으로 계십니까?"

 "니 놈이 츠음으로 든든허게 보이는게 첨이여..."

 "예?"

 

 이덕수 요한은 지독하게 시달린 얼굴을 한 채로 별채에서 나온지 1분도 안 되어 도로 들어갔고, 카르나르 융터르는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이 것들

 그런 표정이 다 티나는지도 모르는 채로, 융터르는 지난 '구멍'소동의 뒷 이야기를 확인하고 돌아온 참이었기에 그 내용을 곧바로 말했다. 피자집이 너무 잘되는 걸 시기하던 다른 요식업체 사장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저주술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했다고 한다.

 뢴트게늄이 그 말을 듣고는 벌써 세 조각째 피자를 꿀꺽 삼키고는 틱틱거리며 쏘아붙였다.

 

 "에? 거봐요, 이래서 사람이 인터넷에 떠도는 그거 너무 우습게 여김 안된다니깐? 진짜 재수 나쁘면 저렇게 직빵으로 고생한다고! 이게 사서 고생이지 뭘."

 "인정."

 "근디, 그 놈은 워뜨케 되었다냐?" 미심쩍어하는 눈초리로 신부가 물었다. 자신이 아는 저 망할 놈의 성정이면 그대로 지켜볼 위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랄까, 신부가 가벼운 어조로 툭 말했다.

 "현장에 남은 파편 하나만 가게 구석에 던지고 왔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좀 가게에 파리가 날리겠지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단답벌레가 손에서 쥔 피자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한 마디 하고 말았다. "미침?" 드물게도 당황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티가 역력하게 드러나는 목소리에 뢴트게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대폭소를 터트렸고, 이덕수 요한은 효자손을 들고 그런 엉터리 성직자의 정수리에 연거푸 내리치며 "니가 그르고도 성직자 행세를 혀?!" 하며 버럭 화내고야 말았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