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막사 바깥의 사람들
1. 의도했다랄까, 여러분들께서 보시는 이 시리즈가 어쩐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본 망상은 좀비물 중에서 그래도 가장 재밌게 봤던 '워킹데드 시리즈'의 느낌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단 시즌 초반부 한정입니다. 미드는 왜 항상 뒤로 갈수록 개판이 되는 느낌일까요.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아쉽습니다. 워킹데드.
2. 그러한 점을 연유로 하여, 천편일률적으로 과학팸 혹은 새로이 합류한 고멤이 다단계마냥 합류하는건 그리 재밌지가 않더라구요.
3. 무슨 소리냐면 이걸 요 며칠동안 계속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겁니다. 아예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관점을 새로이 돌려보겠읍니다. 모티프는 생각보다 잘 안 알려졌지만 정말 명작인 GP605 입니다. 더불어 3편의 모티프는 지금우리학교는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쪽이 좀 더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4. 아저씨 히어로즈도 끝난 마당이니까 앞으로 이 쪽은 가능하면 월요일에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 어떤 적보다도 내부의 적이 위험하다. 그리고 병사의 입장에서 주된 적은 다름아닌 간부다. 그러므로, 내부의 간부는 위험한 적이다. 병장이 되어 말년을 편하게 보내려던 곽춘식은 상황만 가능하다면 누구든 붙잡고 이런 논리를 설파할 자신이 있었다. 그 증거가 자기 자신이니까. 아니, 그 말고도 최근 입대한 이병도 틀림없이 자기 편에서 증언해줄 것이다.
그런 이등병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 표정을 애써 참으며 지근거리에 있던 좀비를 걷어 차 쓰러트리고, 놈이 괴성을 내지르기 전에 바로 총검으로 뒤통수를 찔렀다. 그나마 다 썩어가는 놈들이라 뼈도 그리 단단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한낮에는 속도도 걷는 것 정도 밖에 못하는 놈들이기에, 며칠에 걸쳐 그들은 부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자들을 챙겨 지금까지 생활해오던 캠프에 전부 쑤셔박아놓듯 모아두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우리 계획 잘 기억하고 있지?"
"이병 부정형,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좀비들 때문에 후임이 긴장된 어조로 복명복창을 속삭이듯이 했다.
3층에 위치한 그들의 생활관 창문에 완강기용 도르래가 강제로 설치 되어있다. 그래도 손재주가 제법 좋은 부정형 인간이 애써 설치한 것이다. 저걸로 물자를 수송할 예정이다.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두 사람은 저 완강기 아래로 미리 확보한 군용트럭에 그 안으로 지금까지 모아둔 물자를 한번에 밀어넣고 막사를 뜬다는 계획이다.
결전의 날이라는 생각으로 긴장한 곽춘식은 창문 아래로 미처 정리하지 못한 놈들이 어슬렁 거리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하여간 간부 놈들은 도대체가 도움이 안된다고.
"그놈의 무사고, 무사고. 대충 내버려두면 나을 줄 알고 내버려뒀다가 좀비가 되었다는게 말이 되냐?"
"맞습니다. 그런 담에 그, 그... 내뺐잖습니까. 저흰 여기 내버려두고."
"맞어 맞어. 지휘할 놈들이 겁에 질려서 도망치고 여긴 아수라장이 되고. 씨..."
처음에는 그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제법 많은 군인들이 잔존해있었지만 가지각색의 이유로 지금은 이 야밤에 배회하는 멍청이들이 되어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며칠 간의 경험으로 밤에만 돌아다니는 놈들이 훨씬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곽춘식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초반에만 대처를 잘 했어도 좋았을텐데, 간부들이 내뺐다는 소식이 귀신같이 퍼진 탓에 부대가 개판이 된 것이 아니냐고. 부정형 인간이 걱정되어서 그 특유의 음울한 어조로 말을 했다.
"곽춘식 병장님, 저희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 나 진짜. 너 진짜 이름값할래?"
"이병 부정형,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내일 꼭 여길 뜬다. 탈영도 뭣도 아니잖냐. 이젠."
병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모포를 머리끝까지 올려 몸을 말고 눈을 붙였다. 그는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단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저 비명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병장님, 곽춘식 병장님.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응, 으응. 하... 씨..."
역시나 잠을 설쳤다. 좀비들의 비명소리도 그렇고, 막상 탈출을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일단은 너무 외롭기도 했고, 세상이 망했다고 정말 이 칙칙한 후임과 살아남자니 기운이 너무 빠지지 않는가. 저 멀리서 동이 터는 것이 보이자, 밤에는 그렇게 살벌하게 울어대고 사람들을 공격하던 놈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늘진 곳으로 숨어들어가려는 것이 보였다.
물자를 모으기 위해서는 이 때가 가장 무서웠지만 이제는 아니다. 부정형 인간의 얼빠지고 허약한 기습에도 당할 만큼 무력한 놈들이 아닌가. 이제 모을 만큼 모았으니 이 개같은 곳을 뜰 일만 남았다. 긴장된 표정으로 완전히 무장한 부정형인간이 먼저 필요한 물자를 완강기 근처로 빼둔 것이 보였다.
"그...어, 이게... 가장 필요하다고...그 생각되어서 했지 말입니다."
민망한 듯 변명하던, 이제는 유일한 후임에게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두 사람은 완강기에 차근차근 물자를 실어 내렸다. 시동을 걸면 제 아무리 힘빠져서 비척거리는 놈들도 제법 위협적이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혹시나 혼자 내려갔다가는 끔찍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부정형 인간이 한사코 말린 탓도 있었다.
차량용 기름부터, 무전기, 각종 공구, 식량과 모포까지 내려보내는 것도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아무리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는 해도 내려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도 했고, 기존에 설치되어있던 걸 억지로 붙여 새로 단 것이라 조금만 무거워도 금방 떨어질 것처럼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일단 다 내렸나?"
"이병 부정형,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내린거 무전기만 빼고 대충 안에 던져놓으면... 여길 바로 탈출하는거야."
곽춘식의 말에 부정형 인간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두 군인은 각자 자신의 소총을 꽉 움켜 쥐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1층 현관을 나서 내려놓은 짐들로 향했다.
"병장님...! 병장님! 놈들이 조금 모였지 말입니다."
긴장감 때문에 총구가 살짝 떠는 부정형 인간이 멀리서 좀비들을 보고 당황했다. 아무래도 짐더미가 땅에 닿으면서 나는 소리가 연거푸 들린 탓에 모인 건가 싶다. 곽춘식은 섣부르게 발포하지 않게, 그런 부정형 인간을 진정시켰다. 지금까지 봐온 놈들의 행동을 믿자. 그러면 곧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으니 관심을 끌 것이다. 그 말에 아랫입술이 달달 떨리면서도 후임은 그가 시키는대로 얌전히 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이 저만치로 흩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두 사람이 재빠르게 다가가 소위 '레토나'라 불리는 차의 문을 열고 물자를 죄다 쑤셔넣었다. 그러나.
"병장님... 시동이 안 걸립니다...?!"
"뭐?!" 당황해서 연거푸 시동을 걸었지만 소음만 시끄러울 뿐이었다. 분명 며칠 전에 각오하고 확인 했을 때는 멀쩡했는데!
긴장한 얼굴의 곽춘식은 울먹거리는 부정형에게 계속 시동 걸어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방법 하나에 전부 걸었다. 여기서의 선택지는 단 둘 밖에 없었다. 시동이 걸려 탈출에 성공하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아 꼼짝없이 좀비밥이 되거나. 부정형 인간도 그걸 알기 때문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연거푸 열쇠를 돌려 시동이 걸리라고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였다.
어디선가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낮은 한사코 피하려는 놈들이 있지만, 이런 소음에는 여지없이 쫓아오는 무지막지한 덩치를 지닌 놈들이 달려오던 것이 곧바로 떠올라, 부정형 인간은 "제발 좀 되라고오오!!!" 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때 엔진이 덜덜거리면서 차체에 '부르릉'하는 그 특유의 소리가 들렸다.
"뭐해! 밟아!!"
곽춘식이 비명을 빽 질렀고 차는 튀어오르듯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성공했다. 위를 완전히 덮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예의 덩치 큰 놈이 지붕위로 타고 올라갔다가 태양빛에 제정신도 못 차리고 발악하는 소리가 들려, 두 사람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병장님?"
"걍 이름으로 불러. 이젠 군인도 뭣도 아닌데."
"아, 알겠습니다. 춘식님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
"글쎄... 그러게."
탈출의 안도도 잠시, 이제 목적지도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뒷좌석에 앉은 곽춘식은 무전기를 이리저리 만져보기 시작했다. 어디든 무전이 연결되어있다면 좋으련만. 매정하게도 무전기는 찌직거리며 귀에 거슬리는 소음만 낼 뿐, 어떤 신호도 잡지 못했다.
한편 운전을 하는 부정형 인간도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좀비들을 치고 지나가는 기분이 야밤에 고라니를 치고 지나가는 것 이상으로 더러웠기 때문이다. 튼튼한 군용트럭이기에 그나마 덜할 뿐, 치고 짓누르며 지나가는 그 충격은 곽춘식에게도 찝찝하기가 매한가지였다.
"어?"
"으아악!!"
부정형 인간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곽춘식은 앞좌석까지 상반신이 거의 쏠렸다. 이 운전미숙 때문에 그가 부정형 인간에게 화를 내려고 했지만 차량을 정중하게 노크하는 소리가 곧이어 들렸다. 사람이다. 몸을 다시 추스린 춘식이 자기가 이야기 하겠다고 말해 창문만 아주 살짝 내리고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십니까?"
"아,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그, 저는 일단, 사람입니다."
묘하게 말 끝에 훗훗훗 거리는 독특한 웃음소리가 신경쓰이는 상대방은 비옷차림이었다. 그것도 좀비의 피 따위를 듬뿍 적셔서 냄새가 좀처럼 빠지지 않는. 그 웃음만큼이나 이상한 취향이란 생각에 춘식이 여전히 긴장을 놓지 못했으나 비옷차림의 땅딸막한 상대방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
"저희, 저희도 제발 태워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