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썰입니다./멤고 단편 - SF

Night CIty : Reminiscence

김만성피로 2023. 1. 6. 02:32

1. 이미 보신 분들은 전부 보셨겠지만, 아니 꼭 보셔야합니다. 범고래 님의 Night City!!

2. 왜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실까요, 너무 좋아서 오히려 어찌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3. 그래서 오만가지 이성을 다잡고 3차 창작 허락을 겨우 구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던 최대였습니다.

4.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얼른 보십쇼! 예? 이미 봤다고요? 그럼 또 보시면 됩니다!

5. 좌우당간에, 제 무례한 요청을 기꺼이 허락해주신 범고래 님께 이 자리도 빌어 그랜절 올립니다. 젤다 조공합니다.

6. 개인적으로 저는 왜 융터르가 경찰을 관뒀는지 그 부분이 너무 망상하고 싶어서 그랬읍니다.


 중장갑을 달아 한층 육중한 느낌의 SUV 사양의 경찰차도 그 크기가 한창 모자라다는 듯, 남들보다 머리 둘은 넘게 거대한 경찰이 겨우 조수석에 앉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더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건만, 이들에게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사건들이 가혹할 정도로 많아, 차라리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그래도 약간의 호기심을 충족할 만큼은 있기에 차량을 몰던 부하가 넌지시 물었다.

 

 "데이비슨 경위님? 아까 그 현장 말인데요... 왜 상황종료라고 하신겁니까?"

 "그-을쎄... 궁금하나?" 

 "궁금이고 자시고가 아니라 아무리 경위님이라고 해도 이건..."

 

 말 끝이 흐려졌지만 그 뒷 내용은 무척이나 선명하다. 대기업마저 노리는 픽서, 테키라기보다는 괴도가 어울릴 두 남녀, 재기넘치는 넷러너 등이 활개치는 그 위험한 곳에 뭘 믿고. 구태여 사이버웨어가 없더라도 그 속마음 다 들린다며 부하에게 핀잔을 놓은 경위는 즐거운 옛 기억이 새삼 떠올라 빙글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옛 친구 믿고 이러는거지. 위엣 놈들도 그 친구가 있다고 하면 믿어줄 걸세."

 "아까 경위님과 대화를 나누던... 그 리퍼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실은 그 친구... 이름이 카르나르 융터르라고 하는데 말이야, 자네 선배야."

 "에, 예에?!"

 

 부하가 놀란 감정을 추스리느라 차가 한 번 크게 휘청였다. 경위가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었냐고 면박을 주면서도 뒤이어, 그럴만 하다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그 샌님같은 외모로 소돔과 고모라의 현신과도 같은, 이 나이트 시티의 경찰을 하겠느냐고 자조하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진짜는 진짜다. 자신이 그와 파트너였으니까.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부하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나이트 시티에서 가장 성질 더러운 갱단인 멜스트롬이 그 애니멀과 시비가 붙은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관습에 따라 갱단의 조무래기들끼리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끝에 총탄과 육탄이 오가는, 참으로 정겨운 광경이 이어졌다.

 

 "크롬에 미친 놈들이랑, 근육에 미친 놈들끼리. 근데 카르나르 그 친구가 딱 한 마디 하더라고. 조용히 하시죠 라고."

 

 캘리칼리는 리퍼닥 특유의 저음을 애써 흉내내며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지금은 어떻게 그 두 미친 놈들을 단숨에 휘어잡았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어떤 무장도 하지 않고 들어가서는 오로지 말 하나로 술집이 조용하게 만들어버린 것 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했다. 입을 뻐끔거리며 부하가 그게 가능은 한 거냐 되물었다. 당연하겠지만, 지금의 모든 경찰들을 다 털어서 투입한다 한들 그와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위는 자기 배지를 걸어도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하는 떡 벌어졌던 입을 도로 다물기 전에 마지막으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했다.

 

 "그런 분이 어째서 지금은 그 누추한 곳에 리퍼닥으로 있는겁니까?"

 "나 때문일세. 내가 감당 안 될 정도로 큰 실수를 저질렀거든."

 

 그렇게 말하는 경위의 얼굴에는 쓴 웃음만이 올라와있었고, 그 실수가 뭔지 아는 부하가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다음 사건 현장까지 차를 묵묵히 몰았다. 엔진이 울리는 부드러운 소리 사이로 차창 너머를 힐끗 내다본 캘리칼리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참 좋았던 한 때인데 말이지."

 

 좋았던 한 때다. 상부가 일부러 붙여놓기라도 한 것마냥 성향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을 파트너로 엮을 줄은 생각도 못한 과거에는 전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성향부터가 달랐다. 전면에서 돌파하려는 자신과, 다방면으로 우회하려는 카르나르. 의견 충돌이 없을 수가 없다. 어느 때는 자신이 옳고 또 어느 때에는 그가 옳았다. 서로의 인정에는 그리 많지 않은 시간과, 그에 반비례하는 술이면 충분했다. 도시의 사건들은 그만큼 지독하고 악랄했으니까.

 때때로 자신이 건들기 귀찮겠다 싶은 사건들은 그에게 떠넘겼는데도 세상 떠나가라 한숨을 쉬고는 이번만이라며 넘어가주었다만, 그 이번만이 도대체 몇 번째였던 것인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이제 세는 것도 제법 힘들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진짜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대신 그가 제법 힘들어하던 소위 힘쓰는 일들은 자신이 맡아서 해주었으니 그걸로 퉁친 것이라 여기며.

 계획을 카르나르가 짜면 실행은 자신이 한다. 두 파트너가 시간과 경험으로 빚어낸 최고의 효율이다. 그래서 경찰들 사이에서도 실적이 가장 빛날 정도였다. 출세를 위한 순풍이 언제까지고 불어줄 것처럼 등을 떠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이 그치자마자 내딛은 발은 절벽이었다.


 오히려 해가 뜨는 날이 더 신기한 도시인만큼, 그 날도 비가 쏟아지듯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흔한 날인만큼 사람이 죽는 것도 그리 신기할 리가 없지만 예외가 하나 있었다. 잔인함의 정도가 일반적인 갱단 싸움이나 용병들의 살인과 차원을 달리 할 정도였다. 날고 긴다는 형사들이라 한들, 본래 신체의 안에 있어야 할 장기들을 바깥으로 꺼내 전시하는 그 행위예술을 견딜리가 만무할 정도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아직도 그 현장이 생각난다. 내장들이 흩뿌리는 갖가지 담즙의 냄새가, 카펫을 질퍽하게 물들인 피와 뇌수가, 그 끔찍한 정광이. 처음에는 사이버사이코가 벌인 것인 줄 알았다. 몇 주에 걸친 수사 끝에 그 범인이 사이버사이코가 맞지만 흔한 갱단 출신이 아니라, 소위 높으신 분 자제 였다는 점이 추가되었어야 했지만.

 

 "지금 장난합니까? 여기서 갑자기 수사 종료라고요?"

 

 서장실 문을 박차고 캘리칼리가 난입해 날뛰려는 것을 카르나르가 간신히 말렸지만, 그의 살기 넘치는 눈빛은 여전히 방 안에 있는 인원들에게 화살처럼 쏘아졌다. 특히, 그 높으신 분의 입김이 강하게 닿은 것 같은 사람들에게. 변호사를 위시한 그들은 너무나 태연하게 도련님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이 사건에 관계했다 증명할 수 없다며 발을 빼려 하였다.

 다른 경찰들과 힘을 합쳐 캘리칼리를 서장실에서 끌어낸 카르나르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 하자고 그를 이끌고는 대번에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낮게 말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장난? 장난이라니! 지금 장난은 저 개자식들이 하는 것, 자네는 모르나?"

 "압니다! 하지만 방금 전 저들 태도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 태도. 경위도 그런 뻔뻔한 자들을 익히 봐왔다. 걸릴 것 없다는 듯 구는 태도. 특히 돈 많은 놈들에게서 보아왔었다. 수순이 명확하지 않느냐며 카르나르가 이어서 열변을 토했다.

 

 "저들의 계획은 안 봐도 뻔합니다. 어디 뭣 모르는 사람 한 명 잡아다 사이버사이코로 만들어 그 잘나신 도련님 뒷처리를 하겠지요, 아니! 할겁니다. 저들에게는 돈도 있고 시간도 많으니까! 수사에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 뒷처리할 시간을 만들 동안 그 애새끼가 또 사람을 죽여!"

 

 뒷처리할 시간, 증거 조작할 시간. 분노로 씨근덕거리던 캘리칼리가 하는 말을 카르나르도 못 알아 들을 리 없었기에, 파트너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부리는 억지를 받아줄 적마다 하던 그 버릇.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하던 파트너가 고개를 들었다. 

 

 "그 잘나신 도련님이 저지르기 직전에 잡아야 합니다."

 

 그 어떤 잠복수사도 이보다 더 애가 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핏발 선 눈으로 방황하며 그 망할 놈이 또 살인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그런 현장을 잡아야 한다니. 조건도, 상황도 가혹하지만 어떤 울분에서 그랬는지 몰라도 캘리칼리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해가며 버텼다. 그렇게 한 달은 충분히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사건은 일말의 방심이라도 하는 순간 바로 발생해버렸다. 한적한 골목길에 울리는 비명소리. 두 사람이 급히 현장을 급습할 때, 그 부잣집의 개인 사병들이 그들을 뒤쫓았다. 한시가 급박한 상황에서 이런 노골적인 방해에 캘리칼리가 나서려는 순간, 파트너는 먼저 그 놈을 잡으라며 앞으로 떠밀었다.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과 함께. 

 저 골목길 끝에서는 계속 살려달라는 비명이 들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이 다리를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고 저 멀리서도 예리한 칼끝이 골목길마다 비추는 조명에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미 피를 흘리고 있는 피해자가. 

 

 "멈춰."

 "아이... 씨...."

 

 말이 좋아 도련님이지만 얼굴이며 몸이며 크롬으로 떡칠을 해놔 이걸 사람이라 불러줘야할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무릇 저렇게 임플란트로 도배를 하면 사람으로서의 정신도 곧 망가진다. 그런 범인에게 경위가 총을 겨누며 재차 요구했다. 칼 내리고 바닥에 엎드려.  그 사이에도 빗방울이 얼굴 위를 연거푸 때리지만 눈도 깜빡할 수 없었다. 캘리칼리는 총구를 여전히 현행범에게 겨누며 아주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 말 안 들리나! 칼 내리고 엎드리라고!"

 

 그 순간. 놈이 씩 하고 웃는 순간. 단단히 쥔 일본도는 절대로 곱게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놈은 형사의 지시를 따르긴 했다. 순전히 자신만의 뒤틀린 해석으로, 바닥이 아닌 피해자의 몸에, 칼날부터, 있는 힘껏. 그리고 그 순간에 총구에 불이 뿜어졌다.

 여전히 하늘은 비가 내리고, 제 아무리 온 몸에 강화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하였다 한들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탄환을 제대로 맞고 버틸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래서, 빗물과 함께 피가 골목길 바닥을 따라 하수구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진 자는 아무말도 없었지만, 적어도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은 채로.

 총을 내리고 고개를 푹 숙인 파트너의 모습을, 평소와 다르게 주먹으로 중재하고 뒤늦게 쫓아온 카르나르가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캘리칼리는 그런 친구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피한 채로 그저 '어쩔 수 없었다'며 되뇌이듯 말했을 뿐이었다.


 카르나르는 오늘도 은근슬쩍 도망치듯 나간 뢴트게늄의 발소리에 눈을 떴다.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진짜로 깜빡 잠에 들었었는데 때마침 내리는 빗소리가 한때의 기억을 불러일으킨 탓도 있었다. 최근에 그 소피아라는 테키를 체포하려다 돌아갔었으니 복직에는 성공했던 모양이다. 명백히 거절의사를 표현했으니 그 짧지만 반가운 재회도 그 날로 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때 경찰이었어도 지금은 리퍼닥이지 않는가 하며.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예상은 빗겨나가기 마련이다. 오늘도 몰래 입금한 치료대금과 동시에 부리나케 내뺐던 뢴트게늄이 당황에 찬 고함이 멀리서부터 들렸다. 

 

 "아니, 이거 이 사람! 여기 들어와도 되는거에요?"

 "들어가도 된다니깐 그러네! 어-이 나 왔는데, 혹시 점검 좀 해줄 수 있나?"

 

 옛 친구의 거대한 덩치 탓에, 어디서 키로는 꿇리지도 않는 뢴트게늄이 연거푸 뒷걸음질을 치는 그 기회를 틈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사복인 차림으로 쑥 밀고 들어왔다. 예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참으로 뻔뻔한 건 여전하지 않은가. 넉살좋게 씩 웃으면서 나 여기서 점검만 하고 간다니깐 그러네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옛 친구에게, 한때의 경찰은 바닥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들어올린 고개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들어오시죠."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