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 Run, Devil Run
1. 흡혈융을 마무리 짓고나니 문득 퇴마융도 리퀘스트가 엄청났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2. 처음에는 떡밥이 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곰곤곤 님의 그림에 망상안이 떠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3. 옆에 사진 보세요. 무려 몇 주가 되고 나서야 원작자분께 허락을 구하는 저는 치킨쉐끼였습니다.
4. 근데 이거 언제까지 할까나는 모르겠어요. 예, 조만간 관뚜껑을 좀 닫을 생각입니다. 사유라면 제 역량부족임미다.
5.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곰곤곤 님의 소재 사용을 허락해 주심에 깊이 감사합니다.
사제서품을 관둬버린 카르나르 융터르는 본래 언변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데 특출난 재능이 있지만, 그 날 만큼은 달랐다. 성당까지 내달리는 그의 뜀박질은 종종 어깨빵과 같은 무례한 행동에 대한 사과도 잊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는 것도 잠시, 뭔가 떠들석한 소리가 들리는 별채로 그가 당황이 듬뿍 묻어나는 외침과 함께 뛰어들었다.
"신부님!!"
"으응, 왔구먼. 저 사이비놈두."
별채 안은 시끌벅적했다. 다만 일반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는데, 주로 한 사람의 데시벨이 압도적으로 크며 그 빈도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볼륨에 걸맞게 덩치도 매우 큰 신부가, 먼저 융터르의 도착에 반응했던 이덕수 요한 주임신부보다는 조금 늦게, 여-어! 라며 쾌남 그 자체의 인사법으로 사이비 구마사제를 반겼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아니 아가토 신부님. 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왜 여기에 있긴! 나 여기 보좌신부로 임명 받았으니까 그렇지!"
수도원에 있던 그가 새삼스럽게 속세로 나온다는 소식부터 심상치 않았건만, 하필이면 여기에 발령받을 줄 생각도 못하던 융터르가 두통이 올라오는 것 같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잔뜩 밀려, 다소 좁은 식탁을 차지한 다른 이들이 그제서야 보였다. 굉장히 껄끄러워해 하는 천사 단답벌레와,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면 안되냐며 하소연하는 악마 뢴트게늄이야 익숙한 얼굴이다. 은근슬쩍 천사가 사랑해마지 않아하는 치즈피자를, 복면 아래로 용케 구겨서 먹는 악마 소피아도 그렇다 치자. 그런데.
"아니이... 저 그만 돌아가면 안되요?"
"돌아가긴! 내가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란 걸 모르는건가?"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말에, 묘하게 피곤에 절은 얼굴과 그에 걸맞게 말투가 축축 처지는, 수단을 입은 신학생이 차라리 죽여줘와 같은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앉아있던 이덕수 요한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르긴 혀어." 라며 마뜩찮아하면서도 새로 온 보좌신부의 말에는 동의는 했다. 그런 융터르가 그 머리에 진짜로 두통이 올라와 관자놀이를 구기듯 누르면서 도대체 이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를 누구라도 좋으니 설명해달라 하였다.
대악마 체면 다 구기는 것도 감수하고, 뢴트게늄이 손을 번쩍 들다 못해 아예 별채 입구에서 여전히 서 있던 융터르의 근처로 호다닥 달려나왔다.
"그러니까, 일단... 뭐 부터 설명해야 하나 이걸. 지금 저기 주임신부님이 혼자서 성당 운영하기 힘들다고 주교님한테 요청을 했대요. 근데 온 사람이...."
"그래, 나야! 여기 계신 어르신도 한때 구마사제로 이름이 높으셔서 그런가... 나더러 2년 정도 도와달라고 하셨거든!"
"아, 아하... 근데 저기 저 학생은 대체 왜." 융터르는 천사가 억지로 손에 쥐어준 치즈피자를 깨작거리던 신학생을 바라보았다.
"아...안녕하세요. 올해로 7학년 되는, 부정형 인간이라고 합니다..." 시선을 받은 그가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아직 신학생이 왜 여기에 있는건데라는 의문을 해소해준 것은 다름 아닌 소피아였다. 용케도 복면을 쭉 늘려 치즈피자를 먹는데 성공한 그가 예의 방정맞은 손이 신학생을 가리키는 둥 허우적거리면서 외치는데, 그 머리가 어쩐지 혹이 생긴 것 마냥 한 쪽이 볼록 튀어나와있었다.
"아니, 이 인간이 진짜 무섭습니다! 전 그냥 인사만 했는데, 다짜고짜 기도문을 외우는게! 저 진짜로 성불 할 뻔 했습니다!"
"부딪침."
그 말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라도 였는지, 단답벌레가 텔레비전을 올려둔 서랍장 모서리가 구겨진 것을 가리켰다. 제 아무리 소피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전직 대악마라고는 하지만, 신학생의 기도에 몸을 못 가눌 정도였다라니. 대학의 의도가 무엇인지 너무 뚜렷해서 오히려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새로운 구마사제를 육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건.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보좌신부가 여전히 잔뜩 기 죽어있던 부정형 인간의 등을 팡! 소리 나게 때리고는 말했다.
"그럼, 이제 자네도 저기 선배님과 같이 수련 겸 구마의식을 하면 되네!"
"예?!" 척추라도 제대로 맞았는지, 신학생의 글썽거리는 눈이 커지면서 당황했다.
영문도 모른 채 대뜸 구마의식을 하라고 하면 무얼 하냐며 주임신부가 보좌신부에게 타박을 놓았다. 그 말대로 그 말을 들은 뢴트게늄과 소피아가 서로를 껴안다시피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선량하게 지냈는데 이러기냐는 등 야단법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귀가 울릴정도로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어 낸 캘리칼리 데이비슨마저 이 소란을 잠재울 수 없게되자, 주임신부는 아주 간단히 이 사태를 해결했다. 두 악마 머리 위로 효자손이 한번씩 떨어졌다.
"...좋아, 내가 설명이 부족했군."
"부족해도 너무 많이 부족한 건 아닙니까?"
보좌신부가 한숨을 푹 쉬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돌렸다. 감시카메라 같은 것으로 촬영한 것인지 한쪽 구석에서 찍힌 그것은 방 한 가운데에 놓인 침대에 초점을 잡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침대 머리맡 방향의 벽에 걸린 십자가, 침대 주위로는 점점이 새카맣게 물든 소금 종지 여러 개, 침대 네 다리부터 단단히 엮인 밧줄은 그 위에 누워있는 사람의 사지에 하나씩.
누가보더라도 부마된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들썩거리면서 귀가 찢어지도록 괴성을 질러댔다. 그 소리의 영향인지 영상도 노이즈가 점차 심해지며 꺼지는 것까지 보고 난 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건 무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일세. 이 놈을 묶어두고 영상을 찍기 위해서 지금까지 구마 사제 여럿이 반은 죽다 살아났어. 근데도 보게, 가능한 최대로 멀찍이 떨어져 찍은 드론의 카메라도 저 기세에 박살났다는게 믿겨는 지나?"
영상은 사람들만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뢴트게늄과 소피아도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이야아... 이거! 아주 나쁜 놈이군요!"
"그러게 말이에요? 완전히 전통적으로 나쁜데?"
"두 분은 이 영상 속 악마가 누군지... 정체를 아십니까?" 융터르가 물어보았다.
"으음... 벨리알이구먼."
두 악마가 말하기도 전 주임신부가 입을 열었다. 그 시선을 받은 이덕수 요한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아 짧게 말했다. 나도 저노므 쉐끼를 한 때는 구마해보것다고 나섰었어 욘석들아.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 한 때라는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을지 짐작하는 것도 피곤한 다른 사람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런 와중에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아까와는 다르게 진중한 눈으로 융터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자네하고 이 친구가 필요하게 되었네. 실력만큼은 믿을만 하니까."
"실력만큼이라니요." 융터르가 투덜대고,
"그, 근데 왜 저어는.... 전 아직 사제 서품도 못 받았는데요?" 부정형 인간은 당황했다.
"하, 아까 전 저기 있는 악마를 떠듬떠듬거리며 외운 주기도문으로 구마에 성공할 뻔 한건 기억도 없다 이건가?"
한때의 동기가 핀잔을 주며 하는 말에 사이비 성직자가 놀라서 신학생을 바라보았다. 더듬거리면서 외운 기도문으로도 구마에 성공할 뻔했다니,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이건 거의 재능이다. 융터르와 같은 생각이라도 한 것인지, 주임신부도 작게 "저건 숫제 인재구먼." 하고 중얼거렸다.
그날 밤. 쌀쌀한 밤공기에도 불구하고 별채 바깥을 서성이는 주임신부의 곁으로 융터르가 살짝 다가갔다. 사색을 방해 받은 모양인지 주임신부가 살짝 짜증을 내면서도 내치지는 않아, 둘은 성당 안마당을 몇바퀴고 하염없이 걸었다. 그 침묵을 깬 건 전직 사제 지망생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무얼?"
"벨리알 이야기 하실 적에, 가슴께를 살짝 매만지시는게 보였습니다만. 그거 혹시 저주 아닙니까?"
"...눈치는 하여간 빨러서야 원. 저주가 맞다고 허믄 어쩔기여?"
이덕수 요한은 아직도 마지막 구마의식 도중 악마가 뱉은 숨결에 당해 폐 한 쪽이 없는 듯 살고 있다. 그나마 계속 기도를 하며 신앙생활을 유지하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나머지 한 쪽도 똑같은 꼴이 되어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런 이덕수 요한이 자신을 걱정하는 망나니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하듯 이어서 말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는 그 지랄을 혀야 혀는디 니는 여즉도 안 자냐."
"...저를 원망하십니까?"
"허믄 무얼 할거여, 욘석아. 잠이나 푹 자고 일찍 일어나기나 혀어. 언능 들어가."
이덕수 요한은 늘 휴대하는 효자손으로 가볍게 정수리를 때렸고, 융터르는 살짝 웃고 말았다. 말은 저렇게 정없이 해도 세상 진지하고 간절하게 구마를 하던 노신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정말로 운이 좋아 구마에 성공한다면, 주임신부를 20년은 넘게 옭아매던 저주도 끝이 날텐데. 한 때 사제를 바랐던 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먼저 들어간다며 별채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주임신부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 것도 모른 채.
교구에서 승합차가 한 대 왔다. 악마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까지 태워줄 것이라고 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단답벌레가 주임신부의 곁을 지키기만 하고 나머지는 전부 차에 올라탔다. 다만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제법 큰 차량에도 불구하고 워낙 키가 커 몸을 구겨넣듯 앉아, 이동하는 내내 나 같은 사람들은 어디 움직이지도 말라는 건가?라는 등 불편을 호소했다.
승합차를 모는 사람은 그 소란에 어쩔 줄 몰라했지만, 그 덕분에 맨 뒷좌석에서 2명이 불쑥 솟아올라 앉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한 채로 차가 출발하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주임신부가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도 않던 걱정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저 나지막하게 한 마디 중얼거렸다. "잘 혀야 할틴디..."
그나마 널찍한 자리에 앉아 다리를 애써 핀 보좌신부는 뒤에 탄 다른 인원들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일단, 알아둬야 할 점이 있네."
"뭡니까?"
"어제 요한 신부님 경험을 듣고 짐작했겠지만, 부마되신 분은 지금 근 20년간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네."
차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악마가 지상에서 움직일 몸을 붙들기 위해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는 셈이니까. 구마의식에 성공한다 한들 피해자가 살아있어 줄 가능성이 얼마나 높겠는가. 그래도 입술이 달달 떠는 부정형 인간이 가까운 성모병원에 연락은 했다고 말했다.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소피아는 그 행동에 소용없을 것이라며 의욕이 떨어지는 말을 했지만, 뢴트게늄은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반론을 펼쳤다. 그 의견에 곧 융터르도 동의하면서 외톨이가 되어버린 소피아는 작게 투덜거렸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동에 시간이 제법 걸리는 탓에 하나 둘 씩 점차 졸음에 빠졌고, 여전히 긴장한 상태의 신학생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를 반복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는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부정형 인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저기요."
"예?"
"그... 어쩌다... 아니, 아니에요."
호기심에 못 이겨 질문을 했지만 차마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신학생은 곧 말을 흐렸다. 그러나 융터르는 선뜻 답해주었다. 이제서야 마음을 털어놀 곳이라도 생겼다는 듯이.
"도망쳤었습니다. 정확히 당신과 같은 학년일 때."
"...네?"
"그 때도, 지금처럼... 그래서 관뒀고, 이덕수 요한 신부님께 늘 죄송합니다.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부정형 인간은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표정이나 말투는 그저 태연하기 짝이 없는것이 더 괴로워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짜 성직자가 신학생에게 체력싸움이 될 테니까 조금이라도 자두라는 말을 했다. 부정형 인간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숨을 점차 느릿느릿하게 쉬며 잠에 빠졌다.
3시간을 이동으로만 소모할 정도로 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포장도로를 한창 내달리던 참이었다. 그 덜컹거리는 자동차의 움직임 때문에 부정형 인간은 고작 30분 정도만 눈을 붙인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은 아예 멀미마저 호소할 지경이 되었다. 아예 속을 게워낼 기세가 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창백해진 얼굴로 운전사에게 언제까지 차를 타고 가느냐고 말했지만 그 불만은 곧 그쳤다.
"여기까지가 제가 운전할 수 있는 한도입니다."
"아, 아아. 고맙네. 실은 더 갔었으면 토할 뻔했거든."
그 지저분한 이야기는 차마 듣고 싶지 않았는지, 운전사는 얼른 문을 열고 인원들을 내보내기가 무섭게 바로 차를 돌려 멀리 내빼버렸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승차한 인원보다 하차한 수가 2명 더 많다는 건 눈치채지도 못한 채. 차가 더는 보이지도 않게되자, 예의 붉은색 넥타이가 허공에 너울거리며 소피아가 과할 정도로 명랑하게 물었다.
"그럼 저 산길 올라가기 싫으신 분 계십니까?"
"아, 멀미로 고생했는데 산행이라니, 그건 진짜로 싫구만."
"예, 저도요..."
이미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던 뢴트게늄과 융터르는 뒤로 살짝 물러났지만 그 둘의 반응을 모르는 나머지 두 사람은 환영했다. 그러자 소피아가 자신의 그림자를 원으로 만들고는 거부의사를 몸으로 표시한 다른 둘에게도 손짓하면서 재촉했다.
"여러분! 3:2입니다! 민주주의! 다수결! 모르십니까?"
"아니, 나, 난 그거 싫은데...?"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악마가 그런 개념을 입에 올리는 겁니까?"
그러나 시간이 없다며 독촉하는 소피아가 결국 강제로 두 사람마저 그림자 위로 올려 세워, 뢴트게늄과 융터르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꽉 참았다. 그러자마자 소피아가 예의 명랑한 목소리로 갑니다! 라며 그림자 속으로 모든 일행들을 빨아들이고 고작 10초 정도가 지나자마자 벨리알이 있는 그 오래된 양옥집 앞에 온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독한 멀미와 함께.
근처 풀밭으로 달려간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헛구역질을 하고, 부정형 인간은 멀미로 창백해진 얼굴을 애써 심호흡하며 가라앉혔다. 이미 그 어마어마한 현기증과 멀미를 한 번 겪어보았던 나머지 둘도 각자 입을 가리면서 겨우 몸을 진정시키고나자, 소피아가 문을 잡고 준비 되었냐며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준비되었습니다." 대표로 융터르가 입을 열었다.
"저랑, 소피아 님은 저 놈이 불러 모은 잡졸 좀 상대하고 있을게요. 안쪽은 뭐, 조금 부담스러워서." 뢴트게늄도 말하자,
"그거 고맙군. 그럼 나는 이 친구들 길도 좀 뚫어주겠네." 캘리칼리가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씩 웃었다.
선두에 선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길을 뚫겠다'는 것은 여러모로 어울리는 말이었다. 특히 물리적인 방향에서. 부정형 인간이 움찔거리는데는 아주 확고한 이유가 있었는데, 곁눈질로 보면 희끄무레한 회색빛이 도는 뭔가를 주먹으로 패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뒤에서 달리는 융터르는 손에 은색이 도는 묵주를 들고 중얼중얼 기도를 하는데, 등 뒤의 따스함은 감사하다지만 묘하게 목소리가 무서워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정도였다. 그 내용이랄 것이 어떤 기도문도 아니고, 여길 지나가는 사이에 공격하는 놈들은 양심도 없고 반성도 없으며 회개도 하지 않는 머저리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었으니까.
더 멀리까지 귀를 기울이면 복면을 쓴 소피아라는 악마와, 분홍색 머리카락이 인상깊은 뢴트게늄이라는 악마가 다른 희끄무레한 영체들과 싸우는 소리가 들려, 신학생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속이 뒤집히려 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입을 막을 바에야, 차라리 귀를 막으시지요. 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안됩니다."
"아, 아으... 알았어요."
"거의 다 도착 했네. 조금만 버텨."
그렇게 말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몇 번은 더 주먹질을 통해 성부의 곁으로 고이(?) 보내준 뒤 복도 끝에 난, 가장 안쪽의 문을 열었다. 십자고상이 걸려있는 방은 차라리 영체들로 득시글했던 다른 곳보다는 훨씬 숨쉬기가 편할 정도여서, 부정형 인간은 숨을 몰아쉬었다.
보좌신부가 뒤따라온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좋아, 그럼 준비 되었나?"
"부정형 인간 님은 아마 외우시기에 힘드셨을 터이니, 제가 먼저 기도문을 외우면 적힌대로 따라해주시길 바랍니다."
"...예."
신학생이 미리 준비한 자료들을 꺼내는 사이, 융터르는 침대 위에서 발악을 하며 꿈틀대는 악마의 머리 맡에 서서 성수를 들이붓고 전통적인 순서에 따라 의식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교체한 것이 분명한 밧줄을 끊으려하며 발버둥치는 그것이 갑자기 낄낄대며 웃는 목소리가 온 방안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너구나! 20년도 전에 나한테 겁먹어서 내뺐었지?>
"..."
<말도 못하는구나, 겁먹었니? 나를 거의 없앨 뻔 했었는데, 그 때처럼 겁먹어서 또 도망치려는거니?>
"..."
<이젠 누굴 희생해 그 목숨을 유지할테야? 저기 늙은 놈? 아님 젊은 놈?>
"...그... 좀 시끄러운데요. 잔소리가 왜 이렇게 많습니까?"
대악마가 예상치 못한 답에 "뭐?" 라고 짧게 물었다. 그 말대로, 사이비 성직자는 의식을 진행하느라 땀을 제법 흘리고는 있었지만 그 얼굴은 상당히 귀찮아하고 있었다. 악마에게는 더더욱 성가시게도 조금 멀찍이 떨어진 젊은 놈이 중얼거리는 기도문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영향력인데 듣는 순간 어쩐지 기분이 울적해지고 칙칙하기 짝이 없었다.
융터르와 캘리칼리가 그렇게 잠시 한 눈을 팔아버린 대악마의 머리 위로 안수를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미간에 은으로 된 묵주가 살짝 닿을 적마다 악마가 괴로움에 몸부림을 더 강하게 쳤지만, 신학생이 외우는 기도문에 힘이 점차 빠지고 있어 밧줄을 끊어낼 수 없었다. 그 위로 두 저음이 라틴어로 된 기도문을 더해, 괴로움이 더해지자 악마가 최후의 수단을 예상보다 너무 일찍 써버렸다. 피해자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짙은 회색빛 연기가 훅 뛰쳐나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융터르의 안색이 나빠졌다. 저 연기. 저것에 겁을 먹고 도망쳤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후회할 실수를 저질렀다. 그 때처럼, 연기는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기도문을 외우던 부정형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어딜 기어나와?!"
캘리칼리가 주먹을 세게 휘둘러 영체상태로 변한 대악마를 제대로 맞췄다. 어쩐지 그 모습은 당황해 하는 나머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살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그렇게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영체가 휘청거리는 모습 위로 물벼락이 떨어졌다. 융터르가 던진 성수가 제대로 그 위에 쏟아진 것이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악마가 약해진 것인지 매캐한 연기를 태우며, 그 움직임은 방금 전 보다 확실히 느려졌다는게 눈에 띄었다. 부정형 인간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그 괴기한 광경에 "히익" 소리를 냈지만서도, 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곧 영체가 바닥에 다시 떨어지자, 그 위로 융터르는 성수를 몇 병이고 쏟아붓고 또 쏟아부으면서 말했다.
"겁먹었었냐고요? 네, 겁 먹었었죠. 당신 그때 입냄새가 얼마나 고약했는 줄 아십니까?"
<근데, 왜 다시... 돌아왔어!>
"근데라니요. 당신 악마잖습니까. 그것도 20년을 넘게 한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든."
<그 때 늙은 놈이 대신 희생해줘서, 지금까지 겨우 산 주제에!!>
"그 겨우 산 놈에게 다시 지옥으로 끌려갈 생각하시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차, 그리고 이건 당신 때문에 못 온 신부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민 손에는 계속 매달려있던 은제 묵주의 십자가가 매달려 있었다. 20년을 넘도록 십자고상 아래에 있으면서 계속된 기도문과 성수 등으로 약해진 대악마에게, 묵주에서 뿜어지는 따스함은 그 옛날 가까스로 탈출했던 유황불보다도 더 잔혹했는지 그 연기가 마구 날뛰다가 이내 곧 잠잠해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두 중년이 모든 것이 끝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묘하게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직 안 끝났...끝났어요! 이 분, 아직 살아계세요!!"
자신에게 다가왔던 영체에게서 몸을 뒤로 뺐던 부정형 인간이, 지금까지 누워있던 피해자가 아직 숨을 쉬는 모습에 이걸 보라며 급하게 매듭을 풀고 지나치게 가벼워진 그 몸을 업었다.
"잠시만요, 지금 병원 쪽에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어이! 지금 그 몸으로 어떻게 병원까지 내려가겠다고 그래!?"
두 사람이 그 돌발행동에 가까운 움직임에도 이미 지쳐 반응할 수 없는 사이, 이미 병원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어설픈 신학생이 마구 내달렸다. 문 너머로 뢴트게늄이 당황해서 "어어?? 어디가요!? 야 어디가냐고!!" 라고 소리쳤지만 복도를 세차게 발구르는 소리가 그를 무시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소, 소피아 님. 저, 지금, 병원에... 병원 가야 해요."
"아니, 어디 아프십니까?"
"아뇨, 아니에요. 지금 제 등, 등에. 살아계세요. 빨리 병원에 모셔다, 모셔드려야해요."
다행히 산 아래의 길이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기에, 부정형 인간이 소피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계속 발을 놀렸지만, 곧 그 새까만 복면과 하트 선글라스가 인상깊은 악마가 넌지시 말을 했다.
"제게 부탁하시면 단숨에 보내드릴 수 있는데요."
"..."
부정형 인간의 눈이 떨렸다. 누가 보더라도 악마가 계약하자는 꼴 아닌가. 하지만 가뜩이나 약한 피해자의 숨이 더 얕아지는 것이 느껴져, 신학생이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부탁드려요. 가까운 성모병원에 전화했으니까." 소피아는 그 대답에 흡족했는지 다시 그림자를 원으로 만들고 곧바로 부정형인간의 몸을 감쌌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카르나르 융터르는 심심하면 놀러나 오라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전화를 받고 성당을 찾았다. 미사가 끝난 늦은 밤인데도 별채가 이상하게 시끄럽기에 그 안을 힐끗 보았을 때는 어딘가 익숙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썅노므 샤끼가! 뭣도 모르는! 애한테! 계약을! 할라고! 들어!?"
한 마디에 한번씩, 효자손이 양팔을 귀에 바싹 붙여 들어올린 소피아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그 뒤로 단답벌레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치즈피자를 한 조각 씩 건네면서도 제 몫은 야무지게 먹고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뢴트게늄은 별채를 청소하면서 꼴 좋다고 깔깔 웃고 있었다. 과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융터르는 아무말 못하고 소피아가 항변했다.
"아니! 그! 요청했다구요! 도와달라고! 그래서 딱 한 번만 도와준겁니다! 계약도 뭣도 아니에요!"
그러나 그 항변에는 다시 한 마디에 한 번씩 매섭게 효자손이 휙휙 소리를 내며 정수리에 연거푸 내리 꽂혔다. 애한테 뭐 잘못되면 니가 책임 질거냐는 일갈에, 소피아도 입을 결국 다물었지만 여전히 꿍얼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반성의 기미는 요원해보였다. 피자를 연신 맛있다고 혼잣말 하고는 꿀꺽 삼킨 동기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 주었다.
"저 악마가 우리 불쌍한 부정이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걸려고 했단다."
"성모병원까지 피해자분을 모셔드리는 조건으로요?"
"그렇-지, 그래서 우리 불쌍한 부정이가 병원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주임신부님께 전화해서... 뭐... 그 다음이 이거라는거지."
"아하...." 융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심약해보이던 그 성격으로 봐선, 병원 내 성당에 죽자사자 있었을 것이다.
"자업, 자득."
천사도 제법 냉정하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병원까지 덕수와 함께 도착했을 때, 소피아가 빨리 계약을 맺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던 그 모습에 길길이 날뛰는 노신부를 대신해 자신이 칼을 빼들고 취소하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여전히 화나서 씩씩대던 주임신부가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이 썅노므 샤끼... 니는 인자부터 여기서 묵고 사는겨. 알아들었어?!"
"예?! 아니, 저 진짜 억울합니다!!"
소피아가 마지막으로 항변을 시도했지만, 뢴트게늄이 청소를 다 마치고서는 어깨를 두드리며 유쾌한 감정을 숨기지도 않고 말했다. "포기해 임마."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