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상한 놈 이야기 - 해결사(1)
*아저씨즈에서 이상한 놈은 아무리 생각해도 캘리칼리 데이비슨 님이 가장 적합하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D&D식 성향판정은 '혼돈 선~중립'입니다. 정의관은 제법 뚜렷한데 '지키면 장땡 아닌가?' 라는 너낌쓰
*실은 캘불암만 아니었어도 확실히 나쁜 놈이었는데 캘불암이 이걸.
*능력 모티프는 이런 장르에서 흔히 나오고는 하는 '초재생능력' 입니다.
*행동 양식적인 부분을 '루크 케이지'에서 참고했습니다.
이름, 캘리칼리 데이비슨. 아마도 37세. 강력반 형사이자 계급은 경장인 그는 주위 동료들에게 이상한 놈으로 불린지 꽤 오래되었다. 순경시절부터 시작된, 그가 벌이는 오만가지 기행을 나열해달라고 하면 분명 하룻밤은 꼬박 새야 할 각오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 기행 목록에 최근 가장 이상한 것을 한 줄 더 추가해야 할 판이었다. 그는 절대로 죽지 않았다.
"이봐, 좀 살살 해달라고. 아프잖아?" 왼쪽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보던 캘리칼리가 능글맞게 웃을수록 상대는 비명을 질렀다.
"이익...!! 왜, 왜 안 죽는거야!! 제대로 맞췄는데!!"
"나야 모르지. 근데 널 잡는거랑 그게 관계가 있나?"
미간에 한 발, 명치에 두 발, 온 몸으로 치자며는 대충 다섯 발 넘게. 피를 철철 흘리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상처가 아문다. 심지어 그 상처를 아물기도 전에 후벼파서 스스로 총알을 빼내는 2미터 이상의 거한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전의를 잃을 것이다. 지금도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은행강도가 그랬다.
겁에 잔뜩 질린 탄창 하나 분을 온 몸으로 받아내도 죽지 않는 형사는 마치 지성이 있는 좀비가 아닐까 싶은 착각도 들 지경. 경찰의 묵직한 부츠 소리가 한 번 은행에 메아리 칠 적마다 강도의 정신력은 급속도로 마모 되었고, 결국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이미 선 채로 기절한 상태였다. 입에서 게거품을 꼬로록하고 물고 있는 강도의 양 손을 뒤로 한 채 수갑을 채운 그는 이 싱거운 반응에 한숨 쉬면서 말했다.
"자... 어디 봅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고... 변호인 선임 가능하고, 그 변호인이 질문을 대신 받을 수 있고.... 또.... 변호인을 못 구하면 국선 변호인이 선임될 거다 라는거 다 알지? 뭐 기절했으니 소용 없나. 이봐요, 혹시나 이 놈이 헛소리 하면 미란다 원칙은 잘 말해줬다고 말씀 좀 부탁하지."
미란다 원칙을 대충 읊은 그가 처음에는 강도 때문에, 그 이후에는 캘리칼리 때문에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은행 직원들에게 어깨 너머로 부탁 아닌 부탁을 한 뒤 기절한 강도를 질질 끌어 경찰차에 싣고 자리를 떠났다.
"으아아... 일하기 싫구만." 라며 자기 자리에서 요란한 하품을 쩍쩍 하던 캘리칼리는 졸린 눈을 애써 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본래는 체포한 형사가 심문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가 체포한 은행강도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저 사람만 아니면 뭐든 말씀드릴테니까 제발 떨어트려달라'며 오열하는 통에 심문은 다른 형사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서류작업 뿐이었고, 건성건성 타자를 치는 모습은 그 덩치와 걸맞지 않게 앙증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천성이 현장에서 굴러야 사는 캘리칼리는 결국, 그 지루함을 못 이기고 책상에 머리를 박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기가 찼던 상관이 결국 들고 있던 서류철 모서리로 뒤통수를 탁 소리나게 칠 때까지 말이다. 아프기는 아팠는지 그가 상반신을 벌떡 하고 일으켜세우는 모양새가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저, 저 놈봐라 저거..." 하며 가는 눈으로 혀를 쯧쯧 찬 상관인 팀장이 커피 사줄테니까 그만 쳐 자라고 한 소리했다. 여전히 졸리기는 한 모양인지 구부정한 허리를 한 캘리칼리가 하품을 쩍쩍하며 대꾸했다.
"흐음... 그럼 전 초코 프라푸치노로 사주시죠. 휘핑에 자바칩 듬뿍 얹어서."
"프라푸치노 같은 소리하네. 사이즈는?"
"자고로 단 거는 다다익선 아닙니까."
"당뇨로 확 뒈져버려라. 망할 놈."
진심이 어느 정도 섞인 것 같은 악담을 내뱉은 상관과 같이 카페에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에도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신장에 있었지만, 대부분은 옷에 덕지덕지 묻은 피 때문이었다. 미처 그 부분을 지적하지 못했던 팀장이 제 이마가 새빨개지도록 치면서 "이 망할 놈, 옷은 좀 갈아입고 왔어야지!" 하고 한탄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만에 당분 섭취를 하는 부하 놈은 그란데 같은 벤티 사이즈의 음료를 실컷 즐기고 있을 뿐이지만.
다시 경찰서로 돌아와서, 제자리로 가려던 캘리칼리를 상관이 붙잡았다.
"야."
"뭡니까?"
"뭡니까라니... 이 말하는 싸가지 봐라.... 에휴, 됐다. 됐고, 질문 하나만 좀 하자."
라더니만 자기 몫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삼킨 상관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툭 내뱉듯이 물었다.
"너 언제부터 그렇게 된거냐?"
상관의 질문에 경장은 뚱한 얼굴로 생각하다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라며 휙 돌아섰지만, 실은 거짓말이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있어 '그 날'은 무척이나 선명한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뺑소니범을 추격하던 날이었다. 덩치 때문에 경찰용 오토바이를 따로 타고 있던 그는, 뺑소니범을 앞질러 진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범인이 예상치 못한 정도의 또라이가 아니었다면. 10여 미터 앞서서 정지한 캘리칼리가 공포탄까지 발사하며 범인의 정차를 유도했지만 뺑소니범은 그런 거 없다는 듯이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고, 180km/h 이상의 속력으로 폭주하는 자동차를 피할 겨를도 없이 제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몇 미터를, 어쩌면 십여 미터를 구른 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밖에 느낄 수 없었다. 주위로 뭔가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보다도 주위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이 몽롱한 기분. 어쩌면 그는 하늘을 봤던 것일지도 모른다. 황금색의 어떤 동그라미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한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리자 이미 병원 침대 위였다는 것만 빼면. 흐리멍텅한 눈으로 "나 왜 여기에 있는거야?" 라고 묻는 그에게 곁을 지키던 동료들이 울먹이면서 타박을 놨다.
"이 미친 놈이 차에 몸통박치기 하더니 정신도 맛이 갔구나?"
"야 이 새끼야 이거 몇 개냐? 응?" (참고로 들어올린 손가락은 가운데손가락 단 하나였었다.)
"너 임마, 예수도 아니고 뭔 사흘동안 뒤지게 쳐 자다가 일어나 새끼야?"
3일을 누워있었다는 소리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의학적인 부분은 거의 모르지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3일을 기절해있었다고 하면 최소한 팔다리가 깔끔하게(?) 아작 났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던가? 그러나 그의 신체는 사지 곳곳이 전혀 문제 없었다. 그 흔한(???) 깁스 조차도 없이 그저 병원복 차림인 그가 스스로의 몸 상태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동료들도 그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듯 바로 말했다.
"그게, 처음에는 분명 의사도 그랬거든? 준비하라고."
"준비 하래서 씨, 아주 조졌구나 싶어서 절차 다 밟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뼈가 붙더래. 믿겨지냐?"
"야, 뼈 뿐이겠냐? 내장도 다 으깨졌댔어. 근데 그게 금방 회복이 됐단다. 배 열어보니까 말짱하다고 의사가 놀래."
동료들의 말에 캘리칼리는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잠이나 푹 잔 것 같았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관짝에서 영원히 잤을 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 날의 마무리로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들에게 구라치지 말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그의 목소리에 조금 늦게 상태를 확인하러 회진을 온 의사가 기절하는 해프닝까지, 그야말로 환장 할 지경이었다.
상관의 질문에 잠시 옛날 생각을 하던 캘리칼리는 갑작스럽게 '높으신 분들'에게 지목 당했다. 팀장인 상관이 먼저 어떤 언질을 받았던 것인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서는 정복차림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피는 제발 닦은 뒤에 가라며 하소연 언저리의 비슷한 뭔가를 했기에, 그 말대로 따라 서장실에 들어선 그는 속으로 팀장에게 감사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서장과 그 보다도 '진짜로 높으신 분'들이 도열해있는 상황에서 평소의 피칠갑을 하고 들어갔다면 뒤따라 올 일이 참 볼만해졌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보기 드물게 긴장한 채 경례한 캘리칼리에게 그 높으신 분들은 조용히 틀어둔 텔레비전의 볼륨을 제법 큰 소리가 날 때까지 올렸다. 광역수사대가 위치해있는, 이 곳보다 더 큰 경찰서를 배경으로 뉴스 속보가 한창 진행중인 화면은 국내 폭력조직 XX파 보스 이하 상층부 자진 출두, "자수하겠다.", 벌써 네 번째 라는 자막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은 영문을 모르는 경장이 '그래서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건데요' 라는 표정을 무례할 만큼 노골적으로 짓자, 개중에서 가장 급이 낮은 서장이 헛기침을 하면서 설명해주었다.
"저 뉴스가 나온 이후 내부 정보원에게서 연락이 왔네. 저기에 합류하지 않은 일부 간부 놈들을 위시한 잔당들이 무력으로 '항쟁'을 할 거라더군."
"그... 그러면 경찰특공대라던가 그 쪽이 훨씬 적합한 것으로 압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 쪽에서 인원을 빼올 수가 없네."
캘리칼리는 무언의 압박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어지간한 부상을 입어도 죽지 않으니 그냥 혼자서 쓸어버려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뱃속부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지금 농담하시는거죠?'라는 말을 겨우 목젖 부근에서 멈추는데 성공했지만 표정관리에는 실패해, 그 얼굴이 눈에 띄게 구겨져버렸다.
"망할. 그 때 왜 얼굴을 구겨가지고."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얼굴을 심하게 구긴 채, 한겨울의 온도차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헬멧을 벗었다. 이게 괘씸죄 아니냐며 투덜거리면서도 길 건너에 위치한 공장을 자세히 보니 들은 말마따나, 보초를 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심히 이상하게 보였다. 보초를 저렇게 멍청하게 서서 하나? 중간 관리직처럼 보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옷을 입은 누군가가 말을 걸고 나면 저렇게 얼어붙어서 가만히 있는 모습이라니.
"하! 얼마나 지독한 양반이면 말 한 번 들었다고 저리도 꽝꽝 얼어붙나? 뭐 날이 추워서 그런가?"
실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가 긴장한 걸음으로 보초들 근처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럴수록 그는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이건 얼어 붙은게 아닌데. 여차하면 그냥 바로 싸울 준비를 하고 가까이 다가간 그는 온 힘을 들여 놀란 기색을 감춰야 했다. 가만히 서있는 조무래기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초점을 잃어 멍한 눈에, 입가에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옷의 사람, 넋을 잃은 보초들. 둘의 연관성을 지어 내린 결론에 캘리칼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하. 이렇게 된 게 나 혼자만은 아니다, 이거지?"
적어도 적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빠르게 내린 그는 본격적으로 어깨를 풀었다. 누구신진 몰라도 이런 일에는 명색이 경찰이 하라고 존재하는데 감히 혼밥하는 자리에 숟가락을 얹는다? 까짓거 공무집행방해로 한번 저 놈들과 함께 사이좋게 콩밥이나 먹어보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은 경찰은 공장 정문을 지켜야 할 졸개들의 표정도 똑같은 것을 확인 한 후 활짝 열고는 기세좋게 외쳤다.
"어-어이, 여기가 찌끄레기들이 모인 곳인가?"
-3. The weird meets The bad(1)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