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썰입니다./교류행동 단편선

그림 재해석)놀라지 마세요, 양상군자입니다.

김만성피로 2023. 2. 22. 23:41

*그림을 날조하는 시간, 그 두 번째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양상군자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라고 한들 안 놀랄 사람이 있을까? 좋게 말해 검소한 것이지 솔직하게 말하면 가난한 나는, 명백히 '나 도둑이오'라는 것을 숨기지도 않은 이 남자에게 놀랄지언정 오히려 당당할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훔치기에 마땅한 것 하나 없는 이런 집에 왜 온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는 마침 어딘가를 털고 나온 것인지 그 묵직해보이는 포대자루를 제차 어깨에 둘러메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밤에 아주 잘 어울리는, 눈을 거의 가릴 것 같은 새까만 삿갓과 그에 걸맞게 마찬가지로 시꺼먼 복면을 포함한 옷차림을 보고도 차라리 도둑이 아니었다고 하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여긴 훔칠 것이 없소이만."

 "어― 그래보이는군요?"

 

 그래보이는군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설마 훔칠 생각이 있었나?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이럴 때 아주 유용한 대화수단을 찾아 내 눈이 두리번거렸다. 마침 다 낡아빠진 싸리나무 빗자루가 보여 잽싸게 쥐자 자칭 양상군자, 타칭 도둑이 황급히 뭔가를 포대자루에서 내밀었다. 달빛도 하나 없는 이 한밤중이여도 존재감이 엄청난 그것은 황금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소다. 무려 어른 팔뚝만하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거요?"

 "이걸로 선생님이 성공하시고나면, 언젠가 다시 찾아올 때 도둑질 한번만 허락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내 턱도 빠지고 손아귀의 힘도 빠진다. 비루한 마당에 싸리나무 빗자루가 떨그렁하고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그러는 와중에 저 멀리서 횃불들이 일렁거리는 모습이 보이자, 이 도둑께서는 그 어른 팔뚝만한 금송아지를 내 품에 떠밀듯이 안기고는 바로 멀리 도망치려 하였다.

 

 "아니 잠깐만, 댁 이름은 알아야 내가 나중에 뭐 도둑질을 허락하든 말든 할 거 아니오!"

 "아, 그렇군요? 어디보자― 저는 씨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소? 뭐 이런 소 도둑놈이 다 있나. 졸지에 금송아지를 부둥부둥 안고 있는 모습인 상태인 내게 그 소 도둑(성씨가 소씨라니까 소 도둑놈 맞지 않는가)께서는 엄지 손가락을 바싹 치켜올리고는, 내 마당에 왔을 적처럼 그렇게 훌쩍 다시 담장을 뛰어넘었다. 저 멀리서 도둑놈 잡으라며 고래고래 외치는 포졸들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얼떨결에 툇마루 아래로 황급히 그 번쩍거리는 송아지를 감춤으로써, 이 소 도둑의 공범이 되었지만 뭐 어떠한가.

 그 다음 날,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강제적으로 검소할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 저마다 그 소 도둑놈에게서 눈이 번쩍거릴만큼의 온갖 패물들을 하나씩 건네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떨떠름한 웃음이 저절로 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렇게 나온 이상 번듯하게 살아보이고 언젠가 그 양상군자가 오시면 밥도 한 끼 잘 지어서 대접도 해드려야지. 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