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장마철이라고 하더니만, 흔하게 쓰는 표현 그대로 이른 아침부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은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강수 피해에 관련될 부분은 이미 예고가 오기 전에 전부 확실하게 마쳐두었으니까. 이를테면, 배수로 정비나 갑작스러운 정전 현상, 갑작스러운 물과 가스의 부족과 같이 여러가지로 사전에 해두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귀찮아지는 그런 모든 것들.
켜둔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기면 비장한 얼굴로 기상 캐스터가 어느 동네는 지금 호우주의보네, 어느 동네는 지금 침수피해가 수십명 분을 입고 있다네 하는 소리를 떠들어댔지만 어쩐지 그 위급하다는 기상 특보와 달리… 융터르는 여유롭게 커피를 끓여 그 뜨거운 김을 아주 살살 날린 채 홀짝거리고 있었다.
노란 레인코트와 노란 장화로 단단히 몸을 무장한 어린이들이 꺄르륵거리며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뛰어들기도 하고 헛발질을 하기도 했다. 아예 한 쪽에서는 종이배를 동동 띄우며 노는 모습까지. 물론 아이들끼리만 방치해둔다는 것은 실로 위험하기에, 자세히 보면 집집마다 부모들이 불안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는 것도 보였다. 융터르는 갑작스럽지만, 하수구에서 살며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던 풍선을 든 광대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았다.
"아."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뉴스가 끝나고 채널을 별 생각 없이 돌렸는데 그 광대가 나오는 영화가 상영하고 있다. 그의 귀로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TV의 전원을 끄기 무섭게 확실히 아스팔트 위로 무수히 투명한 물방울들이 덤벼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융터르는 아직도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든 채 바깥으로 나가자 비가 품고 있는 그 독특한 물비린내 사이로 풋풋한 향이 올라오되, 분명 식물에서 나는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그것이 코끝을 어루만지고 사라지다 도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근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는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아무리 물을 대주어도 끊임없이 흡수만 할 뿐 거칠게 메말라 있던 것이 어느 샌가 촉촉해져 있었다.
덕분에 수도세를 좀 아낄 수 있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황당한 생각을 스스로 해버린 탓에 웃고만 융터르가 문득 하늘을 보니, 슬슬 그 장대비의 기세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때가 과연 언제일까? 자신이 비록 사짜라고는 해도 심리 상담은 할 수 있겠지만 기상 예보에는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던 그는, 비에 휩쓸려 졸지에 테라스를 침범한 잡다한 나뭇가지 따위들을 도로 쓸어내린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다만 할 일을 전부 하고서도 시간이 남아돌아 결국 낮잠을 자기로 결심했던 것까지는 기억했다. 그런 융터르의 단 잠을 깨운 것은, 창가에 둔 안락의자 그 위로 정확히 부드럽게 안착한 햇빛이었다. 마치 슬며시 일어나라는 듯 와닿은 그 온기에 융터르가 눈을 뜨고 시각을 보니, 어느 덧 점심을 조금 넘긴 시간. 집 안에만 있어 답답한 공기를 몰아내고자 그는 창문을 열었다.
수분을 한껏 받아 싱그러운 흙냄새가 선선한 바람에 실려 코끝으로 물씬 다가오고, 제법 가까운 곳에 둥지라도 있는지 명백히 아기새들이 지지배배 우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다. 아직은 먹구름이 군데군데 끼어있어, 오히려 햇빛은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광경이 어떤 서사시적인 느낌마저 주는 도로 위는 다시 차가 오가는 생활의 기운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풍경에 원래라면 다른 일이라도 할까 했으나, 안락의자에 융터르는 제 몸을 맡겨버렸다.
아주 아쉽게도, 나무 한 켠에 걸린 무지개는 보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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