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모종의 불상사로 자격을 빼앗겼다는 설정(이라는 이름의 선동과 날조)입니다. Words : 8k 익숙함이 주는 배신은 그 어떤 것보다도 뼈저리게 아픈 법이었다. 그것도 눈 감고 걸을 수 있다고 자부한 산책길에 당했을 때 느끼는 하찮은 만큼, 어처구니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상현상을 알아차린 것은 공교롭게도 안개로 가득한 산책로 한복판에 발을 막 디뎠을 무렵이었다. 희뿌연한 것이 사방으로 잔뜩 낀 것이 차라리 까마득한 산 정상 한복판에 있다고 믿고 싶을 정도가 된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카르나르 융터르는 자신이 이 최초의 영예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한사코 부정했다. "하, 여긴 도대체 어디지?" 심란한 일이 최근에 생겼기에..
Words : 8k 정신을 차린 직후에는 우스꽝스럽게도 무슨 외계인 따위가 운전하는 우주선이 제 머리 위로 착륙을 시도하는 줄 알았다. 유감스럽게도 조금 더 눈에 초점이 돌아오자 그것이 수술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조명이었다는 점을 다소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왜 제 팔다리를 비롯한 몸통에 단단한 결박이 되어있는 것일까? 정신 차린 소피아는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 몸 아래로 시선을 흘끗 돌리면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봄직한 수술용 침대가 있고, 그 주위로는 우주선 같은 조명에 섬뜩할 정도로 날이 잘 세워진 온갖 수술기구들이 어떤 또렷한 목적 의식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머리로도 그 정도의 답안은 쉽게 제출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
Words : 5k 자그마한 마을답게, 식료품점부터 대장간까지의 기능을 얇고도 넓게 아우르는 유일한 잡화점의 주인인 이덕수 할아바이는 요새 영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 험상궂음에 사람들은 누굴 또 담궜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의견들은 항상 오답이었다. "할아바이! 왜 그래?" "으응, 저기 또 왔잖냐." "에? 아—!" 할아바이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끝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애써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으로 만들고서는 가게 유리창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세 꼬맹이들이 있었다. 앞니가 인상적일 정도로 툭 튀어나온 신문배달부 권민, 시원할 정도로 옆머리를 민 주근깨 얼굴의 곽춘식, 늘 무표정으로 있으면서도 어떻게 표현할 것은 다 하는 단답벌레. 그렇게 셋은 오늘도 누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