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저는 영혼을 실은 구라라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실은 구타라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상담실 안에 냉기가 쌀쌀하게 감돌았다. 추위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에서 뿜어지는 따뜻한 바람이 그 공간을 메우고 있었으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담실 주인인 카르나르 융터르를 매섭게 째려보는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의 시선이 그 어떤 온기보다도 매섭고 차가웠다. 평소 그 두 사람 앞에서 뻔뻔하게 행동하던 상담사의 볼에 식은땀이 눈에 띄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 근래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있던 기자가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겨우 참는다는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은, 있으십니까?"
"말만 하라고, 묘비명으로 써줄 수도 있으니까." 형사의 목소리는 예의 그 능글맞은 어조였으나 동시에 손을 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라고 써주시겠습니까. 기왕이면?"
상담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입을 또 놀리자 두 사람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너나 할 것 없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였다. 그 허공에 마침 융터르의 정수리가 있었을 뿐이지만.
그렇게 상담사가 자신의 책상에 얼굴을 박다시피 하며 정수리에 살짝 올라온 혹에 눈물까지 살짝 흘리는 그 모습까지 보고서야 두 사람은 겨우 화가 풀려, 상담실에 오면 앉고는 하는 자신의 고정석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캘리칼리는 카우치 소파에 몸을 기대듯 눕고, 호드는 등받이가 없는 소파에. 겨우 고개를 들고 한 방울 눈가에 뭔가가 맺힌 것을 닦아낸 상담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 놈이 왔다 갔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제가 독단적으로 처리를 했겠지만, 이번에는 호드님께 결정권을 드리자고 생각하니."
"그래서, 그 놈에게, 정신 팔린 척, 한 겁니까?" 화는 풀렸지만 어처구니가 없던 호드가 쏘아붙였다.
"그러게 말이야, 그 놈의 '두 귀를 막고' 그 소리 없었으면 우린 자네가 놈에게 홀려버린 줄 알았었네만."
"알아차리셨던 거였습니까? 그럼 힘에 조절을 해주시지."
그리 말하는 융터르가 다시 열기가 오르는 정수리에 살짝 불쾌감을 느끼면서 지퍼백에 담긴 물건을 책상 위로 꺼냈다. 펜과 메모지였다. 그걸 본 형사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놀라서는 말했다.
"그건 설마 증거품인건가?"
"영혼을 담은 혼신의 연기로 얻어냈습니다. 이 놈의 지문이라던가... 뭐 이런 저런 것들을 확보할 수 있겠지요?"
"물론이지. 아는 감식놈에게 이야기 해두겠네. 더불어 이 전화번호도 추적할 수 있겠군."
형사는 안주머니에서 메모지가 담긴 증거물 봉투를 꺼내 두 종이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비교해보았다. 번호 하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그가 만족스러워 송곳니까지 드러나도록 씩 웃었다. 드디어 문제의 가면 쓴 놈팽이를 잡을 수 있다는 만족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형사는 확보한 새 증거물들을 조심스레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한편으로 호드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에 싸인 채였다. 아무리 두 사람이 자신을 위로해줬다고 해도 그의 정신력으로 놈의 암시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떠나지 않았으니까. 가장 최악을 가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놈이 한번 더 충동질을 시킨다면 그때는 두 사람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 속에서 이미 뿌리내린지 오래였다.
그 속마음이 여실히 들려온 융터르는 다시 기자를 바라보며 그 걱정이 탐탁치 않아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 걱정이라면 나름대로 파훼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파훼법, 있습니까?" 호드가 속마음을 들켜 어깨를 움찔한 채 상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하면, 제가 놈보다 먼저 당신에게 명령....이랄까요, 어쨌든 세뇌시켜서 당신의 정신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군요."
"이봐, 그건 좀 징그러운 소리인걸."
탐탁치 않아하는 티를 숨기지 않고 형사가 끼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역시 선을 좀 넘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캘리칼리에게 융터르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건 제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상담사가 이어서 말했다.
"조금 힘이 드는 경우지만, 차라리 이쪽을 더 추천드리고 싶군요. 계속 의심하십시오."
"의심?"
"형사님의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인데, 사실 놈이 원하는 건 '세상이 억지로 까내려도 그걸 이겨내는 호드 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사들에게도 자신의 암시를 걸려고 했었더군요."
"허, 그게 그 망할 동행자의 여부였나? 근데 수사 방침은 호두가 범죄자니 뭐니 그런 쪽으로는 흐르지 않았는데?"
"맞습니다. 거기서 드는 착안점, 이라는 것이지요. 형사님들은 수사하면서 발생된 모순에 따라 호두님의 범행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까?"
캘리칼리가 갑작스레 떠넘겨 받은 질문에 잠시 곰곰히 생각했다. 자신이야 호두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상담사의 말대로 현장에서 나온 증거물과 호두와 연관짓기에는 너무 오류가 컸기 때문에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노스페라투 호드가 범인이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것이 진범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어도, 경찰의 수사가 호두를 겨냥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정말 피곤한 일이 될 수 도 있었다.
그러니 상담사의 말대로, 생각보다 그 상변태 놈(캘리칼리는 그가 누구이든 간에 그냥 변태라고 지칭했다.)을 상대하는데에는 큰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은 셈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모든 것이 명백해질 때까지.
"그렇구만. 자네가 하는 짓거리 때문에 은연 중에, 놈도 정신에 한번 간섭하면 쉽게 못 떼어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짓거리라뇨. 나름대로 저도 악용하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하는데."
형사가 고개를 작게 연달아 끄덕이며 납득하는 것과 반대로, 호드는 당했던 경험 탓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상담사가 넌지시 말해주었다.
"호드 님의 경우에는 그 놈의 속삭임에 무의식적으로 동감하셨기에 그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오, 이런." 그 때의 일을 떠올려보니 위안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 그가 잊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다소 뜬 구름을 잡는 소리가 되겠지만, 호드 님께서 본인의 정신으로 놈과 맞서 싸우기를 원하신다면 철저하게 놈이 하는 말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거부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리 묻는 영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결여되어있어도 한참 결여되어있었다.
형사와 상담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호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겁에 질렸다 해야 할지, 혹은 불길한 상상을 해서 절망한 것인지는 몰라도 움츠러든 그 덩치가 처음으로 왜소해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형사가 상담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꾹 찔렀다. 간만에 본업에 집중해보라는 듯.
상담사가 눈가를 꾹꾹 문지르고는 소파 위에 앉아 작게 바들바들 떠는 기자에게 다가가, 그 특유의 낮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 없으십니까?"
상사의 버릇이 옮은 것인지, 형사는 제 이마가 새빨개지도록 쳐버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는 담담한 듯 미약하게 떠는 목소리로 답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요새, 악몽을, 꿉니다." 호드가 아까부터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융터르와 마주쳤다. 그 말대로인지 작게 충혈된 눈.
아무리 상담사가 자신을 위로하고, 형사가 용기를 북돋아줘도 늘 꾸는 꿈은 항상 똑같았다. 그 두 사람이 죽어있다. 자신은 당황을 하던가, 절망을 하던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사이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은 그 역겨운 목소리가 자신을 조롱하며 한껏 비웃는 목소리였다. 그 때 이후로 늘. 상담사가 그 고백을 듣고는 싸늘하고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번 조종당해보시겠습니까?"
"어이! 그건 좀 심하잖아!" 형사가 그 말에 당황해서 끼어들었지만, 상담사는 완고하게 주장했다.
"그 놈이 하는 암시와 제 세뇌, 비교하면 제 쪽이 훨씬 셉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말을 거부할 수 있다면."
"뭐, 예방접종이라도 하자 이건가? 근데 이걸 예방접종이라고 부를 수는 있나?"
캘리칼리는 격하게 반대하고, 융터르는 전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는 가운데 호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결국 형사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탄식을 흘려버렸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형사님은 귀를 막아주시길 바랍니다."
-45. 좋은 놈 이야기 - Man in the mirror(4)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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