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쯤, 댄스 로봇 댄스 단답 연성이 늘어남에 따라 제 그쪽 방면 덕심이 마구 움찔대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까짓거 안드로이드 융 썼는데 안드로이드 단답? 아 이거 참으면 동원참치다, 그런 생각으로 저질렀습니다.
*근데 너무 과하게 저지른 거 같네요.
어제 늦은 밤부터 이어지는 비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폭우로 변한 날.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층. 그 중에서도 복도 끝의 외진 방 문에 귀를 기울이면, 등골이 서늘할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찰싹하는 그것은 분명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상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 불길한 상상과 아주 정확한 광경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만약 누가 그 문을 열고 들이 닥친다면 떠올릴 단어. 아동 폭력의 현장이었다.
덩치 큰 남성이 명백히 작은 체구의 상대방에게 가차없이 뺨을 때리고 있다. 빈약한 몸 위로 붙은 머리가 찰싹 소리 한 번에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왔다갔다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가차없는 폭력에 대해서는 마땅히 해야할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있었다. 휘청거리던 피해자를 자세히 볼 수 있다면 그 설명되지 않는 행동이 곧바로 설명되었다. 살점이 찢어져, 파란색의 피하순환제가 흐르던 양 볼은 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입 주위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실선이 있는 그 모습은 분명 사람이 아님을 누구라도 깨달을 수 있었다.
"…죄송."
"죄송? 죄송하면 다야? 죄송하면?! 어—!!"
벌겋게 오른 코하며 입 주위로 아직도 덜 마른 호박색의 액체의 흔적으로 보아 이번에도 분명 제정신으로 구타하는 것이 아니다만,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려 온전히 제 얼굴을 보이는 안드로이드는 그럴 수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 이토록이나 분노하는 이유는 지금도 흘러나오는 TV 속 앵커의 목소리였다. "최근 가상화폐를 노린 해킹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오늘 공식 발표했습니다…"
자신이 했다며 정확히 꼬집는 내용은 아니지만, 본래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날이 드물었던 이 남자에게 그 뉴스의 내용은 마치 자신이 저지른 내용을 까발리는 것처럼 들렸고 구타의 이유도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남자에게 연거푸 얻어맞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그것을 지적할 수 없었다. 그의 메모리 속에 남아있는, 단 한 번 뿐이지만 그 사실을 지적한 어느 날 거의 반파가 될 뻔 했던 결과가 남아있으므로. 그러니 이 기계는 그저 출력할 수 있는 말이 죄송하다는 것, 단 하나라도 된다는 듯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심하다. 그저 손바닥으로 양 볼을 좌우로 후려치던 평소보다, 자신은 분석할 수 없는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제는 손에 쥔 그 모든 것들이 전부 자신에게 폭력이라는 형태로 접촉하고 있었다. 주인의 핏발 선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며 분석조차 불가능한 말을 씨근덕거리는 숨 사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 쓰레기장에서… 너… 조립… 은혜…"
방금까지 흉기로 쓰던 나무 재질의 의자가 콰직 소리를 내며 더는 쥐고 휘두를 수도 없을 만큼 산산히 부서졌다. 그것 외에도 지금 벌써 여러가지가 박살이 나고 망가진 상태에서 이제 이 구타가 끝날 것이라, 안드로이드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분석은 오늘따라 유독 빗나가는 일이 잦았다. 대뜸 주방칼 거치대로 향하는 모습에 이어, 그저 주방의 장식으로 존재했던 그 물건이 드디어 공기를 받아 녹슬고 이가 빠진 몸을 자랑한다. 그러나 자신을 평소에도 이리저리 박살낸 그 힘을 떠올리면.
"죽어 이 개새끼야—!!"
자신은 죽지 않는다. 애당초 살아있지 않으니. 그러나 저 칼에 찔린다면 확실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바라지 않았다. 다시 쓰레기장에서 정신을 차리고, 호환되는 부품을 찾아 여기저기 헤멘 경험을 다시 할 수는 없다. HUD가 온통 붉게 물들어버리면서 어떤 행동을 제안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그 몸이 먼저 나가버렸다. CPU를 통한 계산을 거치지 않은 채 양 팔이 주인의 몸을 향해 세차게 뻗어졌다. 흔히들 밀친다고 표현하는 그 행동의 결과는, 전혀 방비하지 못한 주인이 그 힘에 못 이겨 뒤로 몇 걸음이나 걷다 결국 무게중심을 잃고 뒤로 크게 쓰러진 것이었다.
"아." 일을 저질러버린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손, 그리고 저 멀리 널부러진 주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으윽…! 씨발 개 좆같은 새끼…!"
그런 한편, 떠밀린 주인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그 몸이 큰 충격을 받고 허우적거리면서도 쉴 새 없이 입으로는 욕설을 내뱉었고, 그 순간 안드로이드는 자신을 옥죄고 있던 어떤 제약이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주인이 몸을 일으켜세운다면 틀림없이 죽는다는 생각에 따른, 그 행동. 고통을 호소하는 그 몸 위로 어느 새 자그마한 안드로이드가 올라탔다.
"이 개새끼… 뭐하는, 뭐하는 짓이야!!"
분명 주인의 목소리는 방금과 같이 화를 내는 듯 들렸지만, 그 사이에는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안드로이드는 그 변화에 대한 이유가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해결할 이유가 없었다. 보다 확고한 목적에 따라 그 손이 조금 전과 같이 다시 앞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올라탄 그 몸이 거친 풍랑을 만난 배처럼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독한 알코올 냄새를 거친 숨결과 같이 토해내는 것이 후각 센서에 감지가 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손아귀에 힘을 주기를 거듭하자,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아직 손에 힘을 잔뜩 쥔 채로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리던 조금 전과 달리.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음성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해방감이라는 감정에 젖어 떨리고 있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제 저 자의 생명 징후는 없다. 더는 그 위액과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자신에게 갖은 방법으로 구타하는 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결론에 이르자 안드로이드는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행동을 하기 위해 손아귀에서 힘을 풀고 한 손을 높이 치켜들어올렸다가.
"저기, 그… 유, 융터르야! 저 망종 놈의 새끼들 땡땡이 치는지 거, 같이 확인 좀 해줘봐라!"
"알겠습니다."
낮부터 날이 이상할 정도 어둡다 못하다 싶더니 저녁이 되자 아예 비바람이 부는 날,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왔다. 자기 윗층의 소음공해 때문에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어지간한 비바람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폭우가 여간 거친 수준이 아니라 범죄도 도리어 없는 수준이여서, 몸이 찌뿌둥하던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가 본래라면 순경이 나서야 할 일을 본인들이 하겠다고 자원하자 팀장이 아니꼽다는 듯 그렇게 외친 것이 방금 전의 고함이다. 그렇게 경찰서 소유의 안드로이드이자 두 사람의 파트너인 카르나르 융터르까지 총 셋을 태운 SUV가 비바람을 뚫고 경찰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늘 그렇듯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향해, 뒷좌석의 카르나르 융터르가 질문을 했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두 분 지금 매우 심심해하는 것이 확인됩니다."
"아… 심심한 거 맞네. 아니, 자넨 아무 사건도 없이 시간만 축 내는 이 상황이 지루하지도 않나?"
"저는 두 분께서 지루하다고 할 만한 그런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만."
"오, 그럼 오히려, 잠시 쉬는 타이밍, 잘 잡은 것 아닙니까?"
운전대를 잡은 호드의 말에 안드로이드가 떨떠름해하는 티를 아주 살짝 드러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는 다른 경찰서 동료들의 엉망진창인 문서작업을 도와주고 있던 참이라, CPU가 거의 녹을 지경까지 혹사당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확실히 내부 온도가 조금 위험한 수준까지 올라있던 그로서는 잠시 쉴 여유가 필요했고, 어떤 의미에선 호드의 말처럼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기에 평소라면 반박할 말을 순식간에 출력할 수 있던 그로서도 이번 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차창을 쉴 새 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불규칙한 리듬감을 만들어 내는 사이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뭐, 우리 팀장님께서는 땡땡이 치지 말라고 했지만 말이야, 30분 정도는 이런 바깥 활동을 해도 뭐라 안 하실 걸세."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만."
카르나르 융터르는 어째서 두 사람이 나서자 팀장이 땡땡이 치는지 감시해달라는 말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 틀림없는 상습범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도 이미 신고가 들어온 그 문제의 아파트까지 경찰서 기준으로 15분 이내라는 최단 경로가 확인됨에도 일부러 이리저리 빙빙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근방 지리를 모를 리 없는 노스페라투 호드의 공간지각력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조금 더 늦게 복귀하려는 꿍꿍이가 분명한 상황이라 안드로이드는 이것을 보고해야 하는 것인지 잠시 연산을 했지만.
"이봐 생각해보라고, 자네 성능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굴려먹고 집에 와서는 그 스테이션에 거의 뻗어있다시피 하는 날도 종종 있어왔잖나? 파트너로서 이런 상황을 좌시하면 쓰겠나?"
"분명 제 첫 출근날, 캘리칼리 데이비슨 님께서는 저를 파트너로 절대 인정하지 않으시겠다 하셨습니다만."
경위가 발뺌하려고 해도 옆에 있던 호드도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하기에 운전석에서 풉하고 웃음을 참아내다 결국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경위는 뭔가 잘못된 것을 먹은 양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렇게 본래보다 대략 10분 가량 드라이빙을 즐기면서 허름한 아파트에 도착할 쯤에는 우산이 있어도 빗줄기가 워낙 거세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근처에 주차하고 입구까지 걸어오는 그 짤막한 시간 사이로도 벌써 정강이까지 흠뻑 젖어버린 두 형사가 축축한 옷에서 오는 불쾌함을 겨우 참으며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여긴 엘리베이터… 뭐 그런 것도 없나?"
"조회 결과, 건축된 지 60년 이상이 된 아파트라고 확인됩니다."
"젠장, 걸으면 걸을수록 양말에서 물기가 쭉 짜지는 거 같은데. 내가 오늘 이 옷 입고 수영이라도 했다고 해도 믿겠구만."
계단을 밟고 올라 4층의 복도 끝 외진 방까지 투덜거리면서 걸은 형사들은 초인종도 없는 문을 두드렸고, 형사들이 오기만을 바랐던 것인지 상당히 퀭한 얼굴의 여성이 눈가를 꾹꾹 누르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궁시렁거리던 얼굴은 어디가고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능청스럽게 염려하는 표정을 지으며 공무원증을 보여줬다.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비가 많이 내려서 길이…. 어쨌든 신고하셨죠?"
"아, 아우… 윗층이… 근데, 그…." 신고자의 불온한 침묵이 사이로 다시 말이 이어졌다. "지금은 조용해요."
"실례합니다. 조용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두운 복도 사이로 안드로이드의 파란 눈이 깜빡거리는 것에 신고자가 잠시 질겁하는 소리를 냈으나, 그녀는 자신이 처한 이 상황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없었는지 그 질문에도 순순히 답을 해주었다. 형사들이 도착하기 대략 15분 전 쯤, 마지막으로 아주 크게 쿠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린 이후로는 그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문제라도, 되는겁니까?" 호드는 속으로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었으니 된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 아파트, 방음이 진짜 더럽게 안 되거든요. 지금 여기만 봐도 아시겠지만 기본 소양이 두꺼운 매트를 까는 것일 정도라구요. 근데 발걸음 소리마저도 하나 안 들린다는게 말이 되나요?"
순식간에 문제의 윗층에 도착한 세 경찰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긴장한 얼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곧 그 큼직한 손을 들어 거칠게 문을 몇 차례나 두드렸지만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 형사에게는 지난 시간들에서 오는 경험으로 이 기묘한 정적이 주는 불안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복도 끝의 잔뜩 얼룩진 창 너머로 비내리는 소리만이 가득한 정적 가운데, 카르나르 융터르가 두 형사의 허락을 받고 문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세게 주었다.
안에서 걸쇠 따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기름칠이 안된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천천히 열리고 상당히 지저분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아 제기랄. 진짜 땡땡이 치려고 나왔는데."
"추가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융터르가 그 말을 하고 잠시 뒤로 물러난 사이, 두 형사는 혹여나 생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늘 휴대하는 일회용 라텍스 장갑을 손에 끼웠다. 널부러진 검은색 비닐봉투 따위로 발목을 단단히 감싸고 들어온 두 형사의 눈은 이제 중대한 사건에 맞닥트린 자의 그것이 되어있었고,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방 한복판에 널부러진 시체였다.
"호두야, 여기 사진 찍어라."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얼굴을 찌푸리며 피해자의 명백한 사인을 가리켰다. 목을 둘러싼 명백한 손자국이 새파랗다 못해 울긋불긋한 멍을 남긴 모습은 명확한 점 한 가지와, 불명확한 점 한 가지를 남겼다. 전자는 확실히 목이 졸려 죽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누가 손으로 저렇게 졸라 죽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외에 사체에는 별다른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어 시선을 돌린 그들은, 사체의 끔찍한 모습 말고도 현장이 이상할 정도로 지저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뭐, 아주 그냥 사방팔방이 전쟁터구만?"
"싸운 것, 같습니다."
호드의 지적처럼, 그리 넓지도 않은 방 곳곳이 움푹 패이고, 가구들 따위는 처참한 꼴이 될 정도로 부서진 상태였다. 문제는 이것이 피해자가 휘두른 것인지, 혹은 휘둘렀다면 어떤 의도에서 휘둘렀는지가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는 것. 그러나 두 형사에게는 마침 운이 좋게도 지원 요청을 마친 카르나르 융터르가, 똑같이 손에 장갑을 끼고 신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비닐봉투를 두른 채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피해자는 일단 보다시피 이 남성일세. 명백히 목이 졸려 죽었는데, 여러가지로 설명하기에 앞 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확인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르나르 융터르의 몸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움직이던 방금 전과 달리 지금은 명백히 기계임을 숨기지 않은 채 아파트 이곳 저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을 계속 좇고 있던 형사들에게도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공유하기 위해, 안드로이드는 그 내용을 곧 말해주기 시작했다.
"뒤통수에 미약한 출혈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의 사인 : 액살. 흉기는 손으로 추정.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해자의 사후, 그 볼을 세차게 친 흔적 발견. 마찬가지로 손으로 쳤습니다. 사이즈가 전부 동일. 동일범으로 추정."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계산을 하기 위해 시선을 뗀 그가 순식간에 줄줄이 말하는 것을 이제는 나름대로 적응 된 다른 수사관들이 노트 따위에 메모하기에 바빴다.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을 확인한 융터르가 다시 주문과도 같은 말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사이즈를 통해 역산하였을 경우, 신장이 150cm 전후를 넘기지 않을 것으로 추정.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청소년, 키가 작은 성인 남성, 성인 여성. 오류, 평균적으로 해당 범주에 속하는 후보군의 악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대안 : 안드로이드일 경우. 예외적으로 청소년형 안드로이드는 국가의 관리를 엄중히 받으므로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목에 난 흔적에 지문이 검출되지 않은 것도 가능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와르르 쏟아내는 말의 세례에 캘리칼리는 다시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럼, 범인은 일단 키가 어쨌든 작은 안드로이드—라는게 되는건가? 그 안드로이드가 밀쳐 쓰러트리고 목을 졸라 죽였다? 그리고 볼까지 야무지게 때리고?"
"긍정합니다. 그러나 현재 상용화 된 안드로이드의 평균 신장은 남성형 180cm, 여성형 160cm 이므로 기성 제품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안 : 조립형이 있으나 가능성은 상당히 낮음."
두 형사는 일전에 만났던 하쿠라는 작은 안드로이드를 떠올렸다. 나중에 도파민 박사 연구소를 들려 종종 이야기도 나눈 것을 떠올리던 노스페라투 호드는 어딘가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녀가 살인을 벌였을리가 없다. 호드의 그 행동과는 별개로, 이제 카르나르 융터르는 아파트 곳곳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각목이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짧은 나무 조각부터.
"산산조각 난 나무조각의 흔적은 의자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 다른 파편이 섞인 것은 목재 야구방망이로 확인됩니다. 피해자의 지문과 일치하는 파편들이 보이므로, 이는 피해자가 쥐고 휘둘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피해자가? 대체 왜?"
"한편 다른 파편들 사이로는 피하순환제가 묻어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서진 모든 흔적들은 전부 피해자가 가해 안드로이드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렀음이 합당합니다. 정황 순서로 보아, 안드로이드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일탈을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오래된 피하순환제가 미세하게 집 곳곳에 튀어있는 흔적은 폭력이 이번 한 번만 있지 않았음을 반증합니다."
일탈. 원인을 알 수 없는, 안드로이드라면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규칙을 완전히 깨부순 그 행동원리는 브랜드와 타입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것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단순히 쉬러 나왔던 두 형사는 자신들이 아주 거대한 지뢰를 밟아버렸다는 사실을 곧 인정해야 했다.
불과 30분도 안 되어 허름한 아파트 앞이 순식간에 경찰차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였다. 두 형사는 자신들과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안드로이드가 발견한 모든 사실을 추가로 지원 나온 경찰들에게 낱낱이 공유해주었고 듣는 모든 이들은 그 정보를 매우 심각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잦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은 안드로이드의 이상현상과 관련된 사건들은 항상 다양한 방면에서 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니들 뭐, 뭔… 사건 불러오는 재주라도 있냐?"
"있겠습니까? 잠깐 바람 쐬는 겸 해서 민원 처리 하러 갔다가 아주 크고 무지막지한 똥 밟은 건데."
"바람 쐬는 겸? …아이고 되었다 되었어. 니들 농땡이 부릴라고 나온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이 이봐요, 잠깐! 잠시만!"
우산 손잡이를 겨드랑이 사이로 끼운 채, 수첩을 들고 메모하던 팀장이 부득이하게 아파트를 빠져나오려던 작은 체구의 학생처럼 보이는 상대를 붙잡았다. 우산을 기울여 쓴 상태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경찰에게 붙들렸다는 것 때문인지 마스크 너머로도 상당히 긴장한 티가 역력한 학생이 그 요청에 순순히 멈춰주었다.
"무슨…?"
"혹시 이 아파트에 사니?" 나름대로 다정하게랍시고 묻는 질문이었지만 듣는 모든 입장에서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모름."
"이야—아. 요새 애들은 저렇게 말이 짧나? 뭐 기분 나쁘기야 하겠네."
팀장이 뻘쭘한 마음에 코를 실룩거리며 그 내용물을 훔치고 있는 동안 안에서 상황설명을 해주던 호드와 융터르가 뒤늦게 건물 밖으로 나왔고, 그런 팀장을 골리려는 마음을 품었던 캘리칼리가 곧바로 일러바치듯 방금 전까지 있었던 상황을 낄낄거리며 이야기해주었다.
"…어, 저기. 우리 팀장님께서 무려! 저기 보이는 쬐깐한 학생한테 무시를 다 당했지 뭔가? 우리 팀장님 체면 다 구긴 꼴을 자네들도 라이브로 봐야 했는데 말이지."
"오우, 우리 팀장님, 체면 어디로 가셨습니까?" 호드가 마찬가지로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지만.
"저기 보이는 것이 학생입니까?"
카르나르 융터르의 얼굴은 정반대였다. 그 파란 안구 부품이 빛을 불규칙하게 내는가 싶더니 지금까지 수개월을 같이 생활한 두 형사들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자기 앞을 막는 것이 그 누가 되었든 거칠게 밀쳐내며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학생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행동의 변화에 당황한 캘리칼리와 호드가 우산도 내던지고 그 뒤를 쫓아 달리며 외쳤다.
"어이! 대체 왜 그러는건가!"
"학생, 아닙니다. 안드로이드입니다."
"오 이런. 팀장님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호드는 여전히 얼떨떨해 할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몸을 급히 되돌렸고, 캘리칼리는 여전히 심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뒤를 쫓았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본 인상착의를 파트너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자신이 뛸 수 있는 체력 범위 안에서 그의 뒤를 따라잡은 캘리칼리가 넘어가는 숨을 억지로 참아가며 입을 열었다.
"으어— 젠장, 따라잡기 참 더럽게 힘들구만. 혹시나 모르니까 참조 좀 하게. 진회색 외투에 속은 붉은색 체크무늬 와이셔츠, 그거였어."
"정보 감사합니다. 하지만 곧 소용이 없을 듯하여 다른 정보를 요청하겠습니다."
"…뭔가?" 유순하던 안드로이드 파트너의 목소리에서 이상하게도 냉기가 느껴진 것 같아 캘리칼리가 긴장해서 되물었다.
지금도 쏟아지는 비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눈을 이리저리 휙휙 돌리며 그 흔적을 뒤쫓는 그가, 캘리칼리에게 더 없이 섬뜩하리만치 굳은 얼굴로 질문을 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옷 가게가 있습니까?"
정기 휴무일이라 하루종일 문을 닫은 대형 마트에 창문이 열렸지만, 이 무단침입에 대해 당연히 울려야 할 보안 시스템의 알람은 묵묵부답이다. 마트의 보안 시스템을 사전에 미리 해킹한 안드로이드, 이제 스스로를 단답벌레라는 이름으로 결정한 그가 작은 체구를 이용해, 기껏해야 반 밖에 열리지 않는 창문 사이로 그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비에 잔뜩 젖어 물기가 사방에 가득했지만 어차피 곧 버릴 옷이라 생각한 그의 목적지는 의류코너였다.
자신의 사이즈는 안다. 재조립을 해주었을 때 수치를 일일이 말하던 전주인의 목소리가 불쾌하지만 유용한 자료로서 메모리에 남아있기에. 그래서 그는 성큼성큼 2층 매장으로 향했고, 의미는 없지만 물에 빠진 생쥐 꼴인 자신의 몸도 판매용으로 비치된 수건으로 열심히 문질러 닦아 내고 더는 의미가 없는 옛 옷가지는 쓰레기통에. 그렇게 매장 곳곳에 설치된 CCTV까지 무효화하며 몸에 맞는 옷과 우비까지 확실히 챙긴 단답벌레가 이제 빠져나오려고 할 때였다.
'언제?'
방범 시스템을 무효화한 탓에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도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아 방심했다. 귓가에 선명히 울리는 뚜벅거리는 구둣발소리가 곧 2층 곳곳을 메아리 치고 있었다. 단답벌레의 안구 부품 그 한가운데로 붉은색의 점등 같은 것이 작게 피어올라 주변을 부리나케 스캔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소리를 역추적하려 해도 메아리가 치는 사이로 어디가 소리의 근원인지 확인할 수 없음을 판단한 그는 몸을 급히 낮춰 발소리를 죽인 채 들어왔던 그 창문으로 도로 빠져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위험.'
자신은 사람을 죽였다. 아직도 손에는 그 감촉이 되풀이되고 있을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에러가 그의 HUD를 장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안드로이드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폐기처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겨우 그 끔찍한 구타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했는데 이런 식으로 잡힐 수는 없다. 단답벌레는 그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정보, 조금씩 멀어지는 메아리같은 발소리로 거리를 계산해가며 매대와 짙은 그림자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몸을 숨겼다.
'아직?'
온 길을 되짚어 가는데 있어 가장 난항은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였다. 숨을 곳이 없는 유일한 통로. 그렇다고 2층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은 자칫 잘못하면 들킬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기에, 단답벌레는 원치 않아도 결심을 해야했다. 내려간다. 절반 정도까지 내려가면 그 아래로 공백이 생기기에 반층 정도 높이가 되는 그 부분에서 몸을 던져 1층으로 내려가면 될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렸고 몸은 충실히 실행했다. 그러나.
"?!"
"잡았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들리며 뒷목을 잡혔다고 생각한 순간, 순식간에 미끄러운 마트 바닥을 몇 미터고 뒹굴었다. 그 반동을 이용해 일으켰지만 자신을 내다 던진 상대방에게 반격하기 위해 야간경처럼 시각을 변화했음에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대신 그의 안면에 지금까지 당해왔던 그 어떤 폭력보다도 더 강도높은 주먹이 순식간에 날아온 다음에야 겨우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할 정도로 새파란 안구부품이 노려보는 그것.
단답벌레는 자신의 안면 인공피부가 복구를 가까스로 할 정도만큼 심각하게 파손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무표정한 상대 안드로이드가 그제서야 귀에 익숙한 구둣발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은, 차라리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대는 해킹을 목적으로 하는 자신과는 확실히 다르다. 시스템을 쉽게 침투할 수 있도록 허락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전면적으로 상대한다 한들 이길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시 과하게 낮은 목소리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경찰입니다. XX아파트 507호 살인사건에 관해 동행을 요구합니다."
"나, 아님." 누가 들어도 코웃음칠 말이었지만 단답벌레는 할 수 밖에 없었다.
"확인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섬뜩하리만치 어조에 높낮이가 없어 무감정하게 느껴지는 말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그 거구에 의해 바닥에 쓰러지고 그 위로 상당히 묵직한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강한 충격을 받아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멈추고, 단답벌레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배운 습관대로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지르지 않았다. 그러니 경찰 소속의 상대는 깔아뭉개는 것으로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순식간에 팔을 뒤로 꺾은 상대가 곧바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곧 단답벌레의 HUD에서는 팔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오류메시지로 가득해졌다. 마스크 사이로 목소리가 작게 스며나오기 시작한다.
"안돼."
"지금이라도 협조하시면 그만 두겠습니다." 어깨까지 아예 뜯어낼 기세의 경찰 안드로이드는 힘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고,
"…협조, 할게." 그 말이 나오고서야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체포를 우선시하는 이 경찰 소속 안드로이드가 자신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단답벌레가 가진 유리한 점이었고, 그래서 상대는 협조한다는 말에 어쩌면 방심했을지도 모른다. 단답벌레가 아직 잡혀있는 팔이 뒤틀려지도록 몸을 세차게 꺾어 경찰 안드로이드에게 세게 발차기를 하였다. 둔중한 것이 미끄러운 바닥을 세차게 긁어대는 소리가 이 저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 사이에 단답벌레가 빠져버린 어깨를 다시 끼우자, 복구용 나노로봇이 찢어진 그 사이를 빈틈없이 메꾸기 시작했다.
"오류… 확인."
체구도 확실히 작은 자신이 밀쳤다고 한들 치명적이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파란색의 안구부품이 차라리 도깨비불이라도 된 것처럼 더없이 강렬하게 빛나며, 뻣뻣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그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볼 단답벌레는 아니다. 더는 승산이 없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다시 도망치는 것이었고, 묵직하게 쿵쿵소리가 나도록 쫓아오는 상대방에게 붙잡히기 전 무사히 그 창문 사이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저 등 뒤로 마트의 출입문이 열리며 자신을 뒤쫓아 뛰어오는 소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답벌레는 수풀이 많은 공원을 발견하고 급히 그 쪽으로 몸을 던져 우연히 손에 잡혔던 어두운 색의 우비를 몸에 둘렀다. 이것으로 완벽한 대비는 할 수 없지만, 잠시나마 도망치는데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단답벌레는 어떤 의문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지만 마땅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지?"
그러나 뛰어야 한다. 잡히는 순간 그런 고민을 할 수도 없다. 멀리서 경찰들이 운용하는 드론무리가 공원을 배회하는 것을 보고, 단답벌레는 버릇처럼 곧바로 제어권을 확보하기를 거듭하며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내부 통신망 같은 것으로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보고한 것이 분명하다. 서둘러, 그러나 알 수 없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정면과 좌우로는 경찰들, 뒤로는 자신을 확인했을 경찰 소속의 안드로이드가. 그러다 단답벌레의 시야에 어떤 것이 들어왔다. 출입구가 여기저기 열려있는 5층 높이의 상가들.
시뮬레이팅을 한 결과 자신의 스펙으로도 옥상을 건너뛸 수 있는 것이 확인되자 그 몸은 지체없이 한 출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서 마주친 것은.
"어이, 아까는 우리 팀장님이 좀 많이 서운해하시던데? 그러니 인터뷰는 좀 성의있게 하지 그랬나."
"어떻게?" 당황한 단답벌레의 목소리에 노이즈가 발생하였다.
"요령이지 무얼. 자, 자수해서 광명 찾으시게. 그러니 꼼짝 마시지."
경찰용의, 챙이 달린 우비를 뒤집어 쓴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덩치가 거대한 형사가 자신을 무슨 친구처럼 반겨주었다. 자신이 올라올 줄 알고 여기서 계속 기다렸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차라리 요령에 가까운 우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문제는 아니다. 덩치가 크고 콧수염이 인상적인 이 형사가 품에서 무전기와 비슷한 것을 꺼내 말하기 시작했다.
"어이 융터르, 여기 XX상가 옥상일세. 뒤따라오고 있지?"
'융터르'라고 함은 방금 전 그 무시무시한 안드로이드를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단답벌레는 빠르게 판단했고 그 결과를 행동으로 곧장 옮겼다. 저 아래서부터 그 쿵쿵거리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더는 여유를 둘 수 없었으므로. 단답벌레의 몸이 빠르게 덩치 큰 형사 쪽으로 향했다.
"어이, 이봐. 오는 건 좋은데 이건… 좀—!!"
저 너머로 넘어갈 수 없다면, 형사와 같이 떨어진다. 5층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한들 머리만 다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고 계산되었다. 전 주인을 죽일 때와 마찬가지로 단단한 손아귀가 형사의 우비를 잡은 채 난간 아래로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덩치에서 나오는 힘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형사가 순순히 떨어져주려 하지 않으려 해 단답벌레가 건물 외벽에 닿은 발을 세차게 굴러 그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이런 제기랄…!!"
당황한 형사의 몸을 놓고 공중에서 다시 그 몸을 밀어낸 힘으로 건너편 상가 외벽에 들러붙는데 성공한 단답벌레는 황급히 그 옥상으로 올라가, 몸을 숨겼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육중한 몸이 순식간에 지상으로 떨어지려는 모습에 카르나르 융터르는 범죄를 저지른 안드로이드가 마치 물귀신처럼 형사의 몸을 잡은 것을 확인했고, 곧 두 가지 판단 중 하나만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건강을 일부 희생하고 단답벌레를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온전히 그의 생명을 구하고 단답벌레를 놓칠 것인가? 융터르는 자신이 내려야 하는 이 선택에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몸을 내던져 저 아래로 추락하려는 캘리칼리를 붙잡았다.
상가 사이의 좁은 사잇길 위로 곧 보도블럭이 산산히 깨지는 소리와 폭우 사이로 흙먼지가 잠시 자욱하게 끼었다가 가라앉고 보이는 것은, 추락의 여파로 머리를 감싸면서도 제법 멀쩡하게 일어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충격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고자 그의 밑에 있던 카르나르 융터르다.
"으어… 제기랄. 자고 일어나면 몸이 알록달록하니 보기 좋겠구만!"
"괜찮으십니까?"
충격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제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자기 밑에서 들려오는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화들짝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다보니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전신에 타박상의 기운이 올라오던 그는 욱신거리는 몸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의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답해주었다.
"어…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본인 판단대로 자고 일어나시면 알록달록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융터르는 조금 더 보기 흉측하게 바뀌어있었다. 그렇찮아도 내골격 때문에 무게가 제법 나가는데다, 캘리칼리의 무게까지 같이 감당한 채로 떨어지니 5층 높이라고 해도 몸 곳곳에 조금씩 티타늄의 서늘한 금속이 드러난 것이다. 그의 안구 부품과 관자놀이에 가깝게 난 LED부품이 제법 요란하게 깜빡거리는가 싶더니 저 멀리서 익숙한 외형의 SUV가 다가왔다. 안드로이드 파트너가 급하게 연락을 취해 달려온 호드가 운전석에서 황급히 뛰어내려, 융터르가 부축하고 있던 경위의 반대편을 들어올리며 놀란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안전할 것이라고 하더니, 이게 뭡니까."
"하! 그러게나 말이야. 그 쬐깐한 친구가 내 몸을 붙잡더니 저 옥상 아래로 내다 던지려고 하던데."
그렇게 말하는 캘리칼리의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는 세차게 전신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는 통증을 애써 가리려고 하였고, 잠시 추적을 중단한 채 차 안에서 호드가 그동안 조사해 온 결과를 두 친구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먼저 피해자는 정식으로 안드로이드를 구매한 이력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폐기된 안드로이드들이 버려진 곳에서 수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거 빼면, 사실 별거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구해줬다는, 이유로 안드로이드에게, 해킹을 시켰던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해킹? …설마 요새 그 가상화폐 그거? 악 따거!" 차 안에 구비된 구급상자 속 소독약을 바르던 경위가 소리질렀다.
"문제는, 피해자가 바보라서, 가상화폐를 현금으로, 환전도 못하고 방치해뒀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그 문제의 해킹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환산 추정금액이 너무 아득한 단위라 차라리 황당하던 것이 떠오른 캘리칼리가 쓰려하는 와중에도 쯧 하고 혀차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 그에게 계속 소독약과 연고 따위를 발라주던 카르나르 융터르도 호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추적 중에 확인을 해보니 겁에 질려있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혹시 관련 정보는 없습니까?"
"어이 이봐, 안드로이드가… 겁에 질려있었다고?"
캘리칼리가 융터르의 말에 당황했다. 일탈 안드로이드 문제는 예전부터 중요 사건으로 다뤘지만,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년간의 경험은 거의 사실에 가까웠는데, 주로 이러한 일탈 안드로이드들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이 훼까닥 돌아 마구잡이로 습격하는 그런 종류였을 뿐이다. 게다가 감정이라고 하면 역시 도파민 박사 연구소의 두 안드로이드, 하쿠와 왁파고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둘 외에 유일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경찰 소속의 프로파일링 목적의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마트에서 도망치려는 것을 붙잡기도 전에, 제 움직임에 과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경찰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랬다?" 호드가 그 가설에 살을 조금 덧붙였고, 융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독한 냄새가 잔뜩 풍기는 연고가 말라 옷을 도로 입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여전히 욱신거리는 몸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대화에 참여했다.
"이건 내 감인데 피해자의 사인도 아주 관계가 없진 않을 것 같거든. 우리 쪼끄만한 친구께서 목졸라 죽이고 난 다음에 뺨을 때렸다는 부분. 이 행위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럼?"
"아주 단순히 생각하자면, 이젠 나도 너를 때릴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주로 자신이 이제 우위에 있음을 알리거나, 혹은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달라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해 안드로이드가 얼마나 자주 피해를 입었는지, 현장에 남은 흔적으로는 명확한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혹시 관련 정보를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융터르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이목이 호드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품에서 지금까지 현장 근처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아둔 수첩을 펼쳐 그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층간소음 말입니다만, 피해자가 가해 안드로이드를 구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그 소음이 대략 3개월 전부터 심해졌다고, 합니다. 더불어 아파트 앞 쓰레기처리장에서, 유독 산산조각 난 수준으로, 박살난 소형 가구들의 비중이 늘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현장의 분석된 내용을 메모리에서 불러낸 융터르가 그 말과 대조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육안이라면 정밀검사를 통해야만 보일 그 미세한 피하순환제가 튄 흔적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있었으니 구타는 하루 이틀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 탓인지 뭔지 모를,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찌푸려진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아팠겠는걸."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두 경찰이 캘리칼리를 빤히 바라보자 멋쩍은 듯 그가 이어서 말했다. "아니, 아무리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자기보다 덩치가 큰 놈이 손에 쥔 온갖 것으로 매일같이 패면 아프지 않겠냔 말이다.
"죄송합니다만, 안드로이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어딘가 떨떠름한 얼굴로 융터르가 말했다.
"뭐?"
사람이었다면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 순식간에 격파당한 이유를 말하자면 세상에 미친 놈들이 많았던 탓이다. 본격적인 상용화가 된 이후 비교적 초창기 모델에게는 사람과의 유사성을 내세우며 정밀한 감각을 어필했지만 가해심리가 과했던 일부 소수의 아주 끔찍하게 저질렀던 행위가 공론화가 된 지도 오래다.
"…어쩌면, 가능성이 아주 없는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호드는 캘리칼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가해 안드로이드는 아무래도, 폐부품 처리장에서, 조립 된 것, 같습니다. 피해자는, 안드로이드 구매이력, 없습니다."
융터르도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폐부품 처리장이라면 분명 구형 안드로이드들의 부품들이 널려있을 것이고, 초창기 모델의 그 통각 센서가 붙어있는 것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만약 수리만 잘 되었다면. 그러한 가능성을 전부 포함시킨 뒤 계산을 한 결과는, 캘리칼리의 주장에 상당한 신빙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트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반응이 이해가 됩니다."
"뭐가 말인가?"
"제 공격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피해자에게서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던 융터르가 놀랍게도 할 말을 중간에 멈췄고,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혹감이었다. 호드가 답변을 독촉하는 눈짓을 보내자 겨우 그 입이 다시 열렸다. "제가 내던지고, 주먹질을 한 다음, 몸으로 누르고 팔도 꺾었습니다."
캘리칼리는 다시 그 작은 체구를 떠올리며 곁에서 이제 당황해하는 융터르의 체구와 비교해보았고, 거의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운 수준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였고 농담조로 내뱉었다. "자네가 잘못했구만. 겁에 잔뜩 질렸을 텐데." 그러나 그 이후 다소 가볍게 굴던 캘리칼리 데이비슨 조차도 얼굴이 굳어버릴 무전이 차 안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지원을 요청한다! 현재 도망중인 일탈 안드로이드가 드론의 제어권을 획득해 경관들을 공격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지원을 요청한다!
저녁이 다 되어 폭우에도 불구하고 번잡해지는 도로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황망한 정신의 노스페라투 호드가 급히 엑셀러레이터를 빗길 위로 밟아대기 시작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 위를 기분 나쁘게 공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튀어나가듯 SUV가 도로 위를 달려 목적지로 향하였다. 진즉에 폐업해버려 그야말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XX 재활용 센터' 라는 이름의, 쉽게 말하면 고물상이다.
과연 지금의 망해버린 고물상답게 사방팔방으로 분류도 안 된채 널부러진 쓰레기들과 잡초, 심지어 나무까지 듬성듬성 자라 정신없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당황해 하는 경찰들이 고철더미 사이로 저마다 몸을 숨기는데 여념이 없고, 쉴 새 없이 작은 뭔가가 사방팔방으로 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조심해서 바라본 그 너머로는, 눈동자 사이로 작고 붉은 빛이 인상적인 작은 체구의 안드로이드가 자기 몸을 숨긴 채 경찰용 드론을 무려 4대나 동시에 조종해서 마구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SUV도 그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어 문에 뭔가가 세차게 박히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황급하게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창문 아래로 숙인 카르나르 융터르가 말했다.
"꼭 자기한테 오지 말아달라고… 마치 떼쓰는 것 같군요."
"그래 보이나?" 몸이 욱신거리는 것이 보통 통증이 아닌 것 같아, 캘리칼리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완벽하게 몰살을 원했다면 저 드론의 성능을 확실히 살려, 직접 경관들을 향해 발포했을 겁니다."
"차로 접근, 시도 해봅니까?" 운전석에서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인 호드가 긴장한 얼굴로 질문했다.
부상의 위험과 관련해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도 연관성이 없는 융터르가 답하기 위해 슬쩍 창문 너머로 내다보았다. 드론에 내장된 총탄이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스캔 결과가 나왔으니, 이대로 정면돌파하는 것은 아예 차를 터트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해주었고 호드가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런 사이로 카르나르 융터르가 돌연 문을 벌컥 열고는 차에서 내리며, 뒷좌석에서 몸을 수그리고 있던 캘리칼리에게 말했다.
"권총,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잠깐, 어이 융터르! 이봐!"
언제 캘리칼리의 권총파우치에서 슬쩍 빼낸 것인지 융터르는 손에 쥔 그의 권총을 확인 한 후 곧바로 드론에게 연거푸 발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꺼운 장갑 탓에 정통으로 맞아도 금방 작동을 정지하지 않은 드론들이, 이제 융터르에게 집중하였고 아무리 현장에 엄폐할 곳을 찾아 숨어서 응사한다고 한들 그의 인공근육까지 완전히 찢어져 내골격이 훤히 드러나는 등의 부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뒤쫓아오던 캘리칼리와 호드는 더 가까이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나마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여분의 탄창을 눈치껏 던져주는 것에 불과했다.
"고맙습니다."
두 형사에게서 탄창 2개를 받아든 융터르가 순식간에 하나를 교체해 엄폐물로 삼던 나무 너머로 팔을 뻗어 서너발을 쏘자, 적어도 한 대는 드디어 쓰러졌는지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순간을 노려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동료의 뒤를 두 사람도 곧장 쫓으려 하였지만, 운 나쁘게도 나머지 드론들이 다시 무기를 발사하는 소리가 들려와 더는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오지마."
이제는 끔찍하기까지한,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누가 온 것인지 알아차린 단답벌레가 경고했다. 허튼 소리가 절대 아니라는 듯, 드론들 사이로 불온한 기계음이 점차 강해졌지만, 폐기된 안드로이드의 온전하거나 일부 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 사이에서 티타늄제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손이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인공 피부는 없지만 그 모양은 분명 항복한다는 국제적인 수신호다.
그리고, 그 손과 마찬가지로 온 몸이 총탄 세례로 너덜너덜해진 채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두운 마트 속에서 만났던 그 안드로이드. 그러나 기세는 그때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중후한 목소리가 그 꼴이 되면서까지 온 이유를 부드러운 어조로 밝혔다. 하지만 이상하다, 어째선지 자신의 메모리 속에서는 그 어조가 마트에서 만났을 적과 동일한 파형을 이루고 있었다.
"협상하러 왔습니다. 제 이름은 카르나르 융터르. 원하신다면 융터르로 부르셔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XX서 소속 안드로이드이자 프로파일링과 파트너 분들의 원활한 업무 수행을 지원하는 목적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확인하겠습니다."
"…단답벌레." 자신이 스스로 지은 이름을 말하자 그는 말하면서도 어쩐지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지었습니까? 저는 제 파트너 분이 지어주셨습니다." 그리 말하는 상대, 카르나르 융터르는 손을 내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당신이 공격한 그 사람 말입니다."
"아."
단답벌레는 덩치와 콧수염이 매우 인상깊었던, 옥상에서 만난 형사를 떠올렸다. 거리낌없이 공격할 수 있게 되었으면서도 그의 CPU에서는 그래선 안된다는 오류가 연거푸 흘러나오던 히스토리가 다시 HUD 상으로 떠오르는 듯 하였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그는 본래라면 묻지 않을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 사람, 괜찮…?"
"제가 밑으로 들어가 그 피해를 최대한 경감하여, 경미한 수준의 전신 타박상으로 끝났습니다. 다행으로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다행."
융터르의 말에 단답벌레가 저도 모르게 사람처럼 한숨을 쉬었다. 5층 높이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죽지는 않지만 적어도 뼈가 여러 개는 넘도록 부러지는 중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당시에는 어쩔수 없다는 이유로 감행했지만 가급적이면 다신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런 자신을 융터르가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를 걱정하십니까?"
"아냐."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한 단답벌레가 고개를 외려 그를 향해 치켜들고 도전적인 어투로 말했다.
"거짓말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지러 온 자리가 아닙니다.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문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시간 기준 대략 4시간 21분을 소모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당신이 죽였음을 압니다."
"…정당방위." 도망친 끝에 붙잡히면,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앗줄을 입에 올렸다.
단답벌레의 그 말에 지금까지 아주 천천히 다가오던 카르나르 융터르의 몸이 굳어버리듯 멈췄다. 자신의 헤드파츠에는 없는, 그의 관자놀이에 붙은 LED가 맹렬하게 깜빡거리는 것이 분명 그 말에 대해 반박하기 위한 모든 내용을 검색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니나다를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부정합니다. 현행 법상, 정당방위로 인정될 여지가 없습니다. 당신의 행위는 과잉방위으로 분류가 될 것입니다. 안드로이드의 과잉방위는, 최대 파쇄도 가능함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그 외에도 당신은 경찰이 운용하는 드론을 탈취하여 경찰에게 공격했다는 점도 양지바랍니다."
차라리 엄숙하다고 느껴지는 그 말. 단답벌레는 다시 그 허름한 아파트에 있었을 때처럼 점차 HUD가 붉게 번쩍거리기 시작하고 보다 무감정해진 어조로 물었다. 그 답에 따라 다시 계산에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드론으로 완전히 박살낼 각오도 충분히 한 참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엉뚱했다.
"무슨 생각?"
"그것과 별개로, 3시간 02분 전, XX마트에서 단답벌레 님, 당신을 제압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했던 점은 죄송합니다. 여력이 없어, 당신의 구성요소에 초창기 상용화 모델의 부품이 포함되어있음을 확인하지 못해 과도한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분명 통증이라 불리는 이상 감각이 당신에게 누적되어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
"아."
마트에서의 그 일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말하는 내용을 분석하니, 그 전 주인이라는 사람이 엉뚱한 것을 결합해 신체를 구성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얻어맞으면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참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거친 감정은 곧바로 연결되어있던, 아직 작동 가능한 나머지 세 대의 드론에 영향을 끼쳤다. 순식간에 초당 10발은 가뿐히 발사되는 그 무기가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제법 깊게 패였지만, 정작 벌집이 되어 마땅한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근처에 있던 폐 안드로이드들로 이루어진 탑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자가 수리기능이 없습니다. 당신처럼 위장, 잠입을 목적으로 하여 치유용 나노로봇이 없으므로. 그러니 방금 한 공격을 전부 맞아버리면, 제 수리비가 월급보다 더 많이 나오게 됩니다."
갑자기 현실적인 이야기에 단답벌레는 판단을 곧바로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확 튀어나온 거대한 덩치의 안드로이드를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마트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몸이 다시 육중한 융터르의 내골격에 짓눌리다시피 했다.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는 단답벌레의, 지금도 그 입가의 실선을 가리려 쓴 마스크를 남는 손으로 벗겨낸 융터르의 안구부품이 새파란 빛을 불규칙하게 깜빡거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 곳의 폐기된 안드로이드의 부품들을 이용해 재조립하여, 당신의 메모리를 블랙박스로 이식할 것을 권합니다. 가짜를 만드는 것으로 매우 간단히 사건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뭐?" 시뮬레이션으로 절대 나올 수 없는 답이 프로파일러 안드로이드의 입에서 나오자, 단답벌레에게는 더 남은 할 말이 없었다.
"당신에게 가해진 피해를 추산하였을 때, 그 나노로봇이 아니었다면 진작 저 폐기된 덩어리 사이로 던져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강 수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당신이 받은 피해, 그리고 지은 죄 양자가 전부 중대하여 어떤 것이 우위에 있는지에 대한 판단 불가능. 그러니 저는 협상하러 왔습니다. 제안에 승낙하십니까?"
거의 짓누르다시피 하던 융터르가 몸을 치우자, 단답벌레의 과열된 신체 위로 여전히 내리는 비가 몸을 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원활히,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 계산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리소스를 상당수 잡아먹었던 경찰 드론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먼저 돌입한 카르나르 융터르를 지금이라도 뒤쫓아야 하는 것일까 걱정으로 가득했던 두 형사는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의 엉망진창이 된 실루엣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안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손을 이루는 내골격이 섬뜩한 빛을 뿌리는 그 사이로 뭔가가 질질 끌려서 뒤늦게 길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 보여,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던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가 득달같이 달려갔다.
"아니, 자네… 그 몸 험하게 다루기가 취미인가?"
"그리고, 이거 대체, 뭡니까?"
"범인… 일탈 안드로이드 입니다. 저항이 심해 결국 활동 정지처리를 하였습니다. 확인 결과, 블랙박스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목까지 닿는 단발머리와 어딘가 나른해보이는 안구 조형은 분명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서, 지금 경찰들 중에서는 팀장과 마찬가지로 유이하게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제대로 본 그는 맞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신체도 제법 작지 않은가. 뒤늦게 마무리 지은 최종 현장에 달려온 팀장도 융터르가 내민 그 작은 안드로이드의 몸뚱이를 거의 뜯어낼 기세로 바라보고는 맞다고 이야기 해줌으로서 사건이 종결되었다.
그리고 세간은 그 종결된 사건 이야기를 다시 부활시키고, 또 부활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도 뉴스 참 시끄럽구만. 그 놈의 일탈, 일탈."
"아니 애당초, 왜 패는겁니까? 이해 못 하겠습니다."
운이 좋게도 사건이 끝난 다음 날이 휴식일이다. 요 며칠 사이 가장 격렬한 하루를 보냈던 두 사람은,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저마다 소파 위에 널부러진 채로 방금 들어온 속보를 탐탁찮은 눈으로 노려보며 제멋대로 떠들었다. 같이 돌아온 한 안드로이드는 그야말로 처참한 꼴을 면치 못해 곧바로 수리를 위해 스테이션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카르나르 융터르는 감정 프로그램이 설치가 된 이후 울적한 얼굴을 자주 보여줬는데, 그 이유는 연구소 측에서 날아온 고지서 때문이다.
그 동안 두 플랫메이트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그 수리비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본인이 계산해 놓은 연료비를 포함한 생활비를 최대한 줄여본다고 해도 부담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안드로이드가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이 지극히 불쾌한 현실감에 몸서리를 쳤다. 굳이 융터르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좀 더 범주를 넓게 보자면 자신들의 일상이지 않은가.
"응? …억!?" 핸드폰이 울릴 이유가 없는 시간에 울리기에 그 화면을 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놀라서 괴성을 작게 질렀다.
"오, 캘리칼리 님, 대체… Oh, my god."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알람이 온 호드도 똑같이 화면을 보고 턱이 빠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음. 두 분께도 입금이 된 모양이군요."
수리가 끝나 더는 내골격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융터르가 자기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는 뭔가를 아는 눈치가 분명해, 두 형사가 그 촉을 발휘해 캐묻듯 따지고 들었다. 두 사람의 계좌로 설명할 도리도 없이 황당한 액수의 금액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융터르가 '도' 라는 접속사를 사용했으니 그 또한. 숨길 이유가 없었는지 순순히 그는 집 문을 열고… 옆 집의 문을 두드렸다.
"접니다. 단답벌레 님."
"나감."
캘리칼리는 어쩐지 기억 속에 남은 익숙한 목소리에 의구심을 품다가, 현관문을 열어준 작달막한 몸집의 남성과 눈이 마주치자 "으어어" 소리를 어떤 단어가 나오기 위한 일종의 시동음처럼 연거푸 흘려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상황을 모르는 호드까지 그 등을 제법 세게 밀어 옆 집으로 세 남성이 들어가자마자,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반 쯤 벌어진 입에서 고함과도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임마—!! 날 떠민 놈 아니냐!?"
"맞습니다. 본래라면 사건의 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융터르. 당신, 미쳤습니까?"
옆에서 거주하게 된 집주인, 단답벌레는 멀뚱한 얼굴로 있다가 여전히 황당함과 분노가 황금의 비율로 섞인 얼굴을 한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뭔가를 쑥 내밀었다. 피자다. 그 모습을 호드의 어깨너머로 본 융터르가 목소리에 작은 웃음기를 띄우며 물었다.
"단답벌레 님은 이제 연료를 피자로 삼기로 하신겁니까?"
"응. 맛있음."
양 가장자리로 난 실선이 헛된 장식이 아니라는 듯, 그 모양대로 입이 벌어지고 닫히면서 피자조각의 부피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에 할 말이 더는 없어진 노스페라투 호드. 그리고 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죽을 뻔한 체험을 했던 캘리칼리는 그 피자조각을 받아들었지만서도 살면서 극히 드물게 융터르를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전부 무슨 일인지 설명이 필요할 걸세, 융터르."
"당신, 지금 진범을…. Damn."
"그래서 드렸잖습니까. 그 거금을."
융터르는 돈 이야기에 두 형사가 일제히 어깨를 움찔거린 찰나를 포착하고 이어서 말해주었다. 단답벌레라고 스스로 이름지은 이 안드로이드가 지은 죄나 피해자가 지은 죄나 사실 비슷한 수준임이 확인 되었고, 물론 정당한 법적 처분으로 처벌 받는 것은 그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한데서 시작했다. 그리하여 단답벌레를 대신해 그 처벌을 대신할, 작동도 안 되는 더미를 만들어 넘겨주고 단답벌레에게서는 대신 거액의 생활비를 받은 것이라는 대목까지 와서는 두 인간이 할 말을 이미 잃어버리고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어, 어, 어떻게… 그 돈이, 이게 가능한건가?"
"피해자는 바보같이 거액으로 환전 가능한 가상화폐를 환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답벌레 님께서 그 가상화폐 중 극히 일부만을 빼돌려 이 집을 구입하고, 저희에게도 협조를 부탁한다는 뜻에서 생활비를 드린 겁니다."
"아니, 아니 이거, 그러니까 이거, 그겁니까? 입막음?"
"보다 공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맞다고 하겠습니다."
선뜻 긍정하는 융터르의 모습. 안드로이드라 도덕심이 결여된 것인가, 혹은 수치심이라는 개념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지금 이 순간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화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두 형사는 자신들이 손 쓸 틈도 없이 공범으로 엮이게 된 마당이라 너나할 것 없이 절규를 하기 바빴고, 단답벌레는 그런 두 사람이 어쩐지 이해가 갈 듯 말 듯 한 상황이라 그저 얌전히 피자를 다시 한 쪽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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