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너 님과 연성 교환용입니다.
*사이버펑크 2077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막상 쓰다보니 아저씨즈 히어로즈에 고타토닉스가 쓰까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시리즈는.... 잘 모르겠네요 안 할 거 가틈.
한 남자가 마지막으로 풀썩 쓰러졌다. 얼굴에 난 모든 구멍 그 곳곳에서 새카맣게 타오른 연기를 피어오르는 그 모습은 굳이 생명 반응을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없어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피부를 만져보면 과할 정도로 뜨거운 것이 느껴지는, 내부 발화의 피해자. 놀랍게도 그 참상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자신을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는 목격자가 있음에도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일반인들의 1.5배는 될법한 신장의 목격자는 메가빌딩이 만들어 낸 골목 위 그림자에서도 그리 얼굴이 밝지 않은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경찰인 자신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직업적인 면에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잡았어야 했는데와 같은 방향성이지, 수단의 과격성과 그 잔혹함에 대해서는 애당초 논외로 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인간성을 찾는 행위는 신종 자살 행위에 준하였으니. 더욱이 이 꼴이 되어버린 놈에 대해서는 어떠한 동정심도 일어날 수 없었다. 흉악한 범죄자가 죽었다고 한들 누가 그 죽음에 슬퍼해주겠는가? 심지어 이 놈, 죽지도 않았다.
"흥,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임플란트 과열이라."
형사,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문득 자신의 양 팔에도 부착되어있는 고릴라 암즈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저 희대의 넷러너가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자신의 팔뚝도 저런 끔찍한 꼬라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의 형사는 순간 눈을 깜빡이는 법도 모르는 것 같은 그 파란색 안구부품과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넷러너가 검지손가락의 절반정도 되는 길이의 물체를 자신의 귀 뒤 밑에서 꺼내 건넸다. 방금까지의 정보를 녹화 겸 녹음하여 정리한 데이터 샤드다. 중년의 얼굴을 한 넷러너가 목에도 별도의 임플란트를 심은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낮은 목소리를 냈다.
"원하시는 정보는, 이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 고맙네. 자네도 뭐 필요한 건 건졌나?"
"유감스럽게도." 그 내용과 달리 말은 지독할 정도로 평온했다.
지금까지 저 놈의 정신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그 끝에 임플란트를 과열시켜 속을 완전히 지져버린, 장본인의 그 말끔하게 뒤로 넘겨 단정히 묶은 머리가 순간 휙 돌아간다 싶더니 형사를 등지고 골목길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걸 과연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은 걸까. 형사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 냉정한 태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다지도 잔혹한 처리를 태연한 얼굴로 저지르는 것이 과연 사람의 보통 정신으로서 가능한 것일까?
넷러너가 지독할 정도로 규칙적인 걸음으로 사라지던 그 흔적을 눈으로 쫓던 남자는 아직도 미약하게 새카만 연기가 귓구멍 사이로 빠져나오는 갱단원을 짊어진 채로 바라보았다. 이대로 내버려둔다 한들 이 도시는 이 조무래기 하나가 설령 죽더라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 자를 이렇게 만든 그 남자로 말하자면 이런 방식의 실력행사가 오히려 살아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캘리칼리의 길쭉한 몸도 넷러너가 사라진 골목길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땅딸막한 남자가 요령좋게 손에 쥔 기구를 이리저리 바꿔 쥐어가며 베드 위에 눕듯 앉아있는 환자의 몸에 필요한 것을 필요한 자리에 찌르고, 빼고, 때때로는 자르고, 더러는 이어붙이는 등의 처치를 하였다. 이 남자, 리퍼닥인 프리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상적인 점검에 불과했기 때문에. 특히 그는 모니터를 유의깊게 바라보며 뇌파 따위의 변화를 유심히 바라보기를 몇 분동안 침묵과 함께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은― 다행히도! 악화가, 되지 않았군요!"
프리터의 독특한 말투를 듣는 사람들은 그 누구든 일단 한 번은 웃고야 말았지만, 환자는 그저 상반신을 뻣뻣하게 일으키며 임플란트의 점검이 끝난 몸을 그 파란색 안구 부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프리터는 남자의 이 야박한 태도에도 딱히 불쾌해 하는 기색을 하나 내비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을 말하라고 하면 동정심이나 안쓰러움과 같은 방향성을 띄고 있을 뿐.
베드에서 내려온 넷러너, 카르나르 융터르는 다음 주 이 시간에도 다시 오라는 쾌활한 성격의 몇 안 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금을 치루고는 묵묵히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거의 대부분의 리퍼닥들과 마찬가지로 폐건물 하나를 무단으로 점거하여 이웃사촌이라 할 만한 것도 없는 병원 바깥의 복도에 지나칠 정도로 규칙적인 구둣발소리가 점차 아득한 메아리를 퍼트리며 사라지는 것을, 프리터는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전화가 왔다. 가진 실력에 비해 다소 심약한 성격으로 곤란해하는 그에게 도움을 매번 주고는 하는 픽서 단답벌레의 전화였다. 잘해봐야 다섯글자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그 독특한 말버릇은 방금 전 병원을 빠져나온 환자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리퍼닥은 그 걱정을 달래주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아주 아슬아슬! 합니다. 오히려 지금, 상태가 최선! 이라고 할 수 밖에 없군요―. 훗훗훗."
-그게, 최선?
몸 여기저기 박혀있는 흉측한 사양의 임플란트를 천천히 교체하기 위해 점검을 받고 있는 넷러너의 정신을 염려하는 픽서의 걱정을 이해하지만, 리퍼닥은 달래듯이 말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감정과잉이 되는 것이 정신적인 면에서 위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아주 천천히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그 말에 전화 저편의 단답벌레가 작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지금처럼 인간미가 없는 상황이 베스트라는 그 아이러니함에 공감하는 프리터도 저도 모르게 뒤따라 한숨을 쉬고는 통화를 끊었다.
이번에도 카르나르 융터르에게서 단순히 진단을 한 것에 비해 과할 정도로 거액의 치료비를 받았다. 이 낙후된 시설에서 조속히 나가라는 조언을 이전에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안전한 공간을 구할 만큼의 돈을 구하지 못해 그러기 어렵다며 완곡히 거절을 했는데, 이후로는 말을 하지도 않고 돈을 무턱대고 넘길 뿐이다. 만약 그가 감정을 완전히 상실해버려 신체의 일부분이 피와 살점 등으로 구성된 사람 비슷한 뭔가에 불과했다면, 과연 이런 배려를 했을까.
질 나쁜 갱단에게 잡혀 거의 강제노동에 가까운 계약으로 전속 리퍼닥 계약을 체결할 뻔 했을 적, 자신을 구해준 그 넷러너가 다시 생각났다. 이후로도 더 좋은 실력의 리퍼닥을 찾아갈 만큼의 충분한 벌이가 되는 그가 계속 찾아오는 것도 표현을 하지 못할 뿐이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배려임을 알고 있다.
"후후후, 그러고보니― 그런 적이 한 번, 있었지요―."
환자를 받았던 자리를 정리하며 그는 과거를 떠올렸다. 가진 재산을 털어 이 곳에 병원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명이라기보다는 상대하기에 귀찮은 느낌으로 질 나쁜 타이거클로 사람들이 몰려온 적이 있었다. 재팬타운 근처의 폐건물을 점유한 태도에 대해서 묵비해줄 터이니 상납 잘 하라는 압박. 심혈을 기울여 질 좋은 중고 제품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재산을 전부 탕진한 그가 그 보호세를 당장에라도 납부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때의 그가 말했다.
"아이고! 그, 지금은 제가! 돈이! 없습니다만―. 하, 한 두 달만은…."
"이 새끼가 우리 구역에서 장사를 하는데!"
나름대로 도시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세력의 갱단이라기보다는, 무뢰한 시정 잡배에 가까운 태도다. 기껏 모은 장사수단을 압류라는 핑계로 빼앗길 위기에 처할 무렵 이제는 거의 매주 들려오는 그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가 멀리서 작게 들리는가 싶더니, 다섯에 달하는 왈패들이 한 놈을 시작으로 점차 코피부터 시작해 입가에서 피를 질질 토해내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아, 아이고오…. 이, 이게 무슨! 무슨 일이랍니까. 칙쇼…."
카르나르 융터르의 안구부품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것이, 이 상황과 바로 연관지어질 수 밖에 없다. 넷러너가 졸지에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프리터의 몸을 끌어올리면서도 시선은 땅바닥을 기는 왈패들에게 향한 채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부드럽고도 낮을 따름이었지만, 어쩐지 프리터의 귓가에는 서늘한 위협이 섞여 있는 듯 하였다.
"여기는 제가 단골로 드나드는 곳입니다. 어떤 해코지라도 있을 경우…."
"이런 썅…. 알았어! 알았다고! 손 대지 않을테니까!"
"설령 당신들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엄중히 타이거 클로 측에게 묻겠습니다."
어떻게 묻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시야에 들어온 것 만으로도 순식간에 다섯의 갱단원이 가진 임플란트를 오작동 시켜 독소물질을 체내에 스며들도록 한 실력을 우습게 볼 수 없었기에, 여전히 두려움에 덜덜 떨며 리퍼닥이 내민 치료제를 급히 받아든 이들이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쳤었다. 그리고 이후로 갱단의 위협을 접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터는 그런 융터르의 건강, 보다 정확히는 사이버 사이코시스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너무나 불쌍하지 않은가. 그저 평범하게 살아오던 한 남자가 멜스트롬에게 납치되고 나서 풀려났더니 본인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계들이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떼어낼 수도 없게 되었고, 그것들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그가 도시를 돌아다니도록 하는 몇 안 되는 원동력이 놈들에 대한 복수심이라는 것은, 그를 아는 몇 안되는 사람들끼리 입을 모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 사실을 아는 극히 일부의 지인들 중 하나인 단답벌레는 방금 막 점검을 마무리 짓고 온 넷러너를 독특한 마스크와 함께 올려다 보았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사를 도와주는 의뢰를 마무리 짓고 그에 따른 대금도 납부가 완료되었으니 이 방문은 분명 다시 맡을 만한 다른 건수가 있는지를 확인하러 온 것이리라.
"…있습니까?"
"멜스트롬?"
픽서는 단말기를 조작해 관련 의뢰가 있는지를 확인해보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잊어버렸기에 지독히도 평온한 그 얼굴은 연료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복수심 하나만으로 살아오고 있었고, 지금의 경우에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미간에 살짝 구겨진 그 주름이 조급해진 그 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삶의 목적이 이제 그것 외에는 더 남지 않았기에. 속마음으로 늘어논 감상과는 별도로 관련 의뢰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던 단답벌레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있음."
"주시지요." 제법 길었던 탐색시간을 배신하듯 즉답이 돌아왔다.
"단독, 아님. 괜찮?"
멜스트롬이 불법으로 차지한 공장 하나를 정규 루트로 입수한 한 회사가 소유권을 행사하기 위해 제시한 의뢰. 평소 실력이 있는 용병을 파견했건만 반나절이 되도록 어떤 연락도 하나 없었다. 분홍빛 머리를 애써 흰 염색약으로 가린 그 용병의 실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그가 연락이 없는 것에는 분명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의미이다. 픽서는 자신과 신뢰관계를 형성한 그의 구출을 겸해, 그가 본래 하고 있던 의뢰를 일종의 팀 개념으로 시행한다는 편법을 사용해 넷러너에게 넘겨주었다.
보상과 관계없이 철저히 멜스트롬의 파멸만이 원동력인 그가 기꺼이 받았다. 복수를 한다 한들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리 없다. 그럼에도 지금 막 의뢰를 받아들이고 떠난 남자에게는 그것 밖에 남지 않았다. 그 결과로 돈이 들어오고 명성이 들어오더라도,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그 허무함을 설파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몫이 절반으로 줄어들 의뢰라 한들 그 결과가 멜스트롬이 무너지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그는 기꺼이 받았고 그 누구보다도 잔혹할 수 있었다.
용병 뢴트게늄은 지금 이래저래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었다. 역시 무기에는 돈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나하는 후회로 가득한 채, 놈들이 공장 지하에 불법적으로 세워둔 일종의 투기장에서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신세였다. 방금도 팔뚝을 넘어 아예 어깨죽지까지 군용사양의 물건으로 개조한 놈이 명치께를 후려치는 충격은, 어지간한 피하장갑으로도 완화할 수 없었다. 요컨대 더럽게 아팠다.
크롬을 한 사발은 빨고 만든 것인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락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엉망진창인 얼굴로 고개를 슬쩍 들어올렸다. 이런 꼴로 묶여있어 저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한 방을 먹인 것이 그들에게는 무엇이 즐거웠는지 모르겠지만, 이 원형의 좁은 투기장을 에워싼 관중석은 똑같이 멜스트롬 갱단원들이 하나같이 괴악한 외형을 한 채로 똑같이 환호성을 지른다.
'아하, 절대로 곱게 죽이지는 않겠다 이거잖아?'
역시 뼈아프더라도 비밀소녀에게서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좋았다는 후회. 조금은 더 욕심을 부린 탓에 평소 거래하던 그녀와 달리 다른 무기상에게서 최근에 들여온 무기들이 이렇게나 금방 망가질 줄 몰랐던 것이다. 팔에 내장된 임시 무기로 저항을 시도했지만 물량 앞에 장사가 없는 것도 패착 요인 중에 하나였다.
목젖까지 비릿한 뭔가가 잔뜩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가 붉은색의 덩어리를 토해냈다. 투기장 바닥에 찰박하는 소리는 지금까지 그가 죽여온 단원들에 대한 복수라도 된다는 듯 환호성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때 그의 HUD에 단답벌레가 보내온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파견했다는 내용.
그 내용에 알겠다는 답을 보내기 무섭게, 음악이며 조명이며 일제히 꺼졌다. 뢴트게늄은 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잠시동안의 어둠과 침묵사이로 절대 멜스트롬 놈들이 하지 않을 파란색의 뭔가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안구에 기본적으로 들어있는 나이트 비전 기능을 실행시키고는 곧 전력을 복구하라느니, 이게 무슨 소동이냐느니 아우성을 넘어 자신들의 이 말초적인 쾌락을 방해하는 행동에 대해 금방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분위기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으어어―아아아아악―!!"
"감전?!"
"넷러너다! 여기 넷러너 새끼가 기어들어왔다― 아아아악!!"
전기에 감전된 사람을 맨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한다. 만진 사람도 똑같이 감전되기에. 그러나 만지지도 않은 사람이 덩달아 감전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어두운 곳이기에 임플란트가 과한 전기를 일으키도록 하여 전신 이곳 저곳에 심각한 감전이 일어나는 장면이 똑똑히 보였다. 일순간이나마 그 주변이 번쩍거리는가 싶더니 연달아 풀썩 쓰러지는 모습.
때때로 저 란초 코로나도를 점거한 부두 보이즈 소속 넷러너들이 이런 종류의 퀵핵을 사용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그 쪽 업계에도 발을 넓혔던 뢴트게늄이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한없이 이기적인 부두 보이즈 놈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 이유는 없으니, 이 일대에 합선을 마구잡이로 일으키는 자는 절대로 그런 놈들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다시 HUD로 단답벌레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왔음?]
[지금 사방팔방이 다 시꺼매진 채로 놈들이 갑자기 막 번쩍거리는데, 넷러너가 온 거에요?]
[응.]
그런 생각의 뢴트게늄에게 다시 묵직한 주먹이 배에 꽂혔다. 굳이 자신도 나이트비전을 실행해 누가 그랬는지 알 필요는 없다. 자신을 상대한답시고 이 투기장에 있는 놈이 달리 누가 있겠는가. 이 싸움꾼이 이제는 뢴트게늄의 귓가에 무어라 하는지도 모를 괴성을 지르며 순순히 불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날뛰고 있었다.
"내가 알겠냐? 나도 몰라 임마!"
뢴트게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자신을 구하러 온 저 자를 자신도 모르는 것은 맞는 말이기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으니. 그러나 이 저항에 무릇 다시 후속타가 들어오는가 싶었으나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그 대신, 뭔가 기어가 과하게 회전하는 소리와 함께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던 용병이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이트비전을 활성화 하였을 때는 아무리 손에 피를 잔뜩 묻혔던 그라 할지라도 도통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이 무슨 상황인가. 스스로 목을 조르는 상황이라고?
그러나 당황한 눈과 졸리는 목 사이로 쥐어짜낸 목소리("이게, 뭐야.")로 생각하건데 절대로 자의로 저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누군가가 저 놈의 임플란트에 대대적으로 간섭을 한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러니까, 이 일대의 갱단원들을 전기로 지지고, 심지어는 죽게 만드는 난입자이자 넷러너가 그렇게 저지른 것이다.
아직까지는 상황을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던 용병은 나이트비전으로 어둠 속을 밝게 보던 그 눈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조명에 빛이 돌아와 그의 눈이 감당하기 힘든 굉장한 광량이 들어왔기에. 급히 시야를 정상적으로 돌리고 난 뒤에 보이는 주변은 그야말로 역겨움의 극치였다. 아슬아슬하게 죽지는 않았다는 느낌의 갱단원들이 바닥에 저마다 쓰러져 몸을 파르르 떨고, 투기장 한 쪽 구석에서는 자기 목을 졸라 죽은 자가 혀를 길게 뺀 상태로 죽어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자신과 더불어 유일하게 두 발로 서있는 남자는.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뢴트게늄 님, 본인 맞으십니까?"
"어…. 그런데요. 혹시 단답벌레 님이?"
저벅저벅거리는 걸음이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을 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착각이 아니라는 듯, 새파란 안구 부품에서 빛을 뿌리고 머리 한 쪽에 그 만큼 파란색의 브릿지가 인상적인 넷러너가 투기장의 문을 열고 훌쩍 그 안으로 들어와 아직은 얼떨떨한 뢴트게늄의 결박을 풀었다. 얼얼한 손목을 어루만지던 그가 어느 샌가 저만치로 멀리 가려는 넷러너를 보고 급히 목청을 높혀서 위화감이 들 수 밖에 없는 그 규칙적인 걸음걸이를 세웠다.
"저기요! 구해줘서 고맙다고요! 근데 우리 통성명만 하면 안됩니까?"
그 말에 뒤통수 아래로 단정히 묶은 꽁지머리가 갑자기 모로 돌아가더니 깜빡이는 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한 얼굴이 다시 용병을 바라보았다. 다시 귀를 씻어도 사람의 목소리라고 믿기에는 과하게 낮은 그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불쑥 손 하나가 나왔다. 임플란트 따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것 같은 흔적이 가득한 손이다. 뢴트게늄이 마주 잡았다.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어, 어어…. 잘 부탁드립니다. 뢴트게늄입니다. 그, 의뢰 보수는―"
"필요없습니다."
파격적인 그 말에 정말이냐 되물으려던 용병은 다시 성큼성큼 저 멀리 걸어나가고 있었다. 이 도시에 그 어떤 사람이 부를 포기한단 말인가? 얼떨떨한 얼굴의 뢴트게늄이 황급히 챙길 것은 챙겨 단답벌레에게 자료 전송을 마치고 그 뒤를 따랐다. 아무 말도 없이 졸졸 쫓아가는 그 모습은 인간미라고는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넷러너에게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마침 적당히 횡단보도가 빨간불을 진즉에 띄워 갈 길을 막은 타이밍에 융터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왜 자꾸 따라오십니까?"
"아, 아니이…. 제가 보수 다 날로 먹긴 그래서 그런데요―. ㅍ, 8대 2 어떠십니까?"
"…." 그 침묵에 뢴트게늄이 쭈삣거리다가 조금 더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제안했다.
"으…. 역시 7대 3?"
"…."
"…6대 4?" 그 목소리는 이게 한계라는 듯 들렸다.
그런 한편으로 융터르는 그런 용병의 제안을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느냐면, 딱히 아무 생각도 없었다. 돈이라면 점검을 받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수준이면 충분했고, 당장 이 의뢰에 난입하듯 받아들인 것도 오직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놈들을 상대하기 위함이었을 뿐이기에. 그러나 자신의 이런 사정을 설명할 마땅한 이유도 없는 그였으므로 계속 협상을 해오는 뢴트게늄의 발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횡단보도에서 어딘가 요상하게 흐르는 협상은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뢴트게늄이 5대5를 부른 이후로, 카르나르 융터르의 지독하게 좁은 인간관계에서 친구라고 지칭할 만한 사람이 아주 오래간만에 새로 등장하였다. 허리춤에 반은 이미 진작에 두동강 난 카타나가 덜렁거리는 채로, 뢴트게늄이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기를 두 사람이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었다.
경찰서 주변의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어딘가 어색한 걸음걸이로 융터르가 들어왔다. 단답벌레에게서 다시 의뢰 알선이 들어온 것이다. 멜스트롬 건은 아니지만 의뢰인이 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아직까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준 계기가 그로부터 시작되었기에. 곧 한쪽 테이블에서 어이라며 그 키만큼이나 큰 손이 휘적거렸다. 식욕이 도통 일어나지 않는 음식 냄새에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로 그가 앉았다.
"요새는 좀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전해드린 정보는 어떻습니까?"
"…수사가 끝났네."
테이블 맞은 편에서 합성고기로 이루어진 햄버거를 먹는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사는 자신을 순식간에 노려보는 그 눈과 마주쳤다. 시퍼런 불꽃이 순간 일렁거리는 착각을 받은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곧장 왜냐 물어볼 기세의 그 넷러너에게 말해주었다. 이 사건으로 잡아들일 수 있는 놈들을 잡아들였다는 그 말. 그제서야 형사로서도 그나마 적응이 될 법한, 그 익숙한 무표정으로 돌아온 카르나르 융터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요새 새로 친구 하나 사귀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답이 다소 짧다. 하지만 지난번 그 골목길에서 멜스트롬 조무래기에게 윽박지르고 추궁하면서, 뇌를 주물럭대고 태워대던 그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대화는 맥없이 툭툭 끊겼지만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병원에서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넷러너를 만났을 적에는 단답으로 말하기로 유명한 픽서, 단답벌레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예, 아니오" 정도만 말할 따름이었으니. 앞으로도 크게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아도 좋으니 좀 더 상처를 회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넷러너의 고개가 다소 뻣뻣하게 돌아갔다. 테이블 안 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덩달아 따라간 그 시야에 백발로 염색한 머리가 눈에 띄는, 일본도를 옆구리에 매단 채 어딘가 껄렁한 걸음걸이가 인상적인 청년이 보였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예의 주시해야 하는 용병. 그 중 최근 인지도가 부쩍 오른―
"뢴트게늄이라고 하는데요…. 아니 왜 날 여기에 부르신거야? 아… 의뢰인이 경찰인건 또 뭔데요?"
"어이, 뢴트야. 나하고도 일 하나 같이 해봐야지."
"잘 되셨군요. 전 몰랐습니다만. 캘리칼리 님께서도 아시는 분일 줄은."
그 말이 무엇이 그리도 웃긴 것인지 경사가 식당 안의 모든 이들이 순간 돌아볼 정도로 껄껄 웃어 제꼈지만 그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곧 헛기침을 제법 큼직하게 낸 그가 테이블에 가려진 의자 좌석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며 말했다.
"요새 좀 골치 아픈 일이 있거든. 자네 둘이면 믿을 만하겠다 싶어, 의뢰 하겠네. 하겠나?"
돈이 다소 필요했던 뢴트게늄과, 경사와의 나홀로 약속을 지키는 융터르는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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