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는 루틴이 되었기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생략하겠습니다.
2. 아니 그래도 말이죠? 의문의 판초맨님의 어썸한 그림이 제 망상안을 충동질했다 이겁니다. 전 무죄에요(?)
3. 그런 의미에서 판초맨님께 이 자리도 빌려 깊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도시 외곽에서도 더 멀리 떨어져, 누가 억지로 보려고 하지 않는 한은 알아차리기도 힘든 곳에 건물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악명높은 사건을 일으켜, 대외적으로 평이 좋지 않은 모 기업의 데이터 센터 중 한 곳임을 아는 사람들은, 그래서 많지도 않다. 그러니 달리 말하자면 일부러 이런 곳까지 왔다는 것은, 그 건물에 볼 일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기도 했다.
무인 항공기와 수많은 무장 경비 사이로 백발이 눈에 띄는 해커 뢴트게늄이 환기구 뚜껑을 살짝 열어 그 데이터 센터 내에 보관된 서버실 중 하나에 침입했다. 일반 건물로만 따지면 거의 14층 높이. 단답벌레가 만들어준 도구들의 덕을 봤지만서도, 올라오는데 죽을 맛이었던 그였기에 이번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나 들어왔어."
-빨리.
동료와의 통신 상태가 썩 좋지는 못했던 터라, 해커의 얼굴은 제법 찡그려질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서야 가까스로 이 기업의 오너 일가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보관해뒀음을 알았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문제의 서버에 단자를 연결하고 꺼내기로 한 자료들을 단말기에 전부 옮겨 담는 것 조차도 내부보안이 상당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걸리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서둘러 완료되기를 바라던 그에게, 안 좋은 일이 그래서 터졌다.
사이렌의 낮고 위협적인 소리가, 그가 있는 서버실은 물론 그 너머 복도까지도 죄다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센터 내 보안에서 자신의 해킹이 걸린 것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단말기를 바라보니 그래도 용케 자료 전송은 성공했다. 그러니 왔던 벤트를 다시 타고 돌아가면 되었건만, 그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이미 복도 너머로 경비 여럿이 뛰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해커가 당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다시 통신을 했다.
"저기, 저기요? 지금 나 걸렸거든?! 지원이 빨리 와야 할 거 같은데? 저기요?!"
-엎드리십시오.
귀 너머로 울리는 낮고 울리는 목소리에 따라, 해커가 재빠르게 엎드렸다. 숨기지도 않겠다는 듯 새로운 발소리가 육중하게 들리는 것을 경비들이 알아차리고 곧바로 응사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잠시. 제법 무게가 나가는 뭔가가 연거푸 풀썩 거리며 쓰러지자, 고개만 빼꼼히 든 뢴트게늄이 겨우 살았다는 얼굴로 지원을 온, 덩치가 제법 있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융터르 씨! 늦었잖아요!"
"0.34초 늦은 것은 늦었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깜빡이지도 않은 채, 그가 손을 내밀었다.
"까딱하다가 저 죽을 뻔 했는데요?! 예?! 아, 뭐 됐고 여기서 빨리 나가요."
"그러지요."
해커를 부축한 동료, 카르나르 융터르가 대뜸 움직인 곳은 복도 끝에 나 있는 창문이었다. 두꺼운 강화유리가 있는 그 끝을 융터르는 너무나 쉽게 발차기 한번으로 산산히 깨트렸다. 깨진 유리가 형광등에 반사 되어 반짝거리는 밤하늘 아래 쌀쌀한 공기가 곧바로 물밀듯이 스며드는 사이에, 그 의도를 알아차린 뢴트게늄은 사색이 되어서 말했다.
"아니, 아니이!! 설마 여기서 뛰어내리자고요?! 여기 14층 높이에요, 14층!!"
"압니다만, 뢴트게늄 님은 방금 전 빨리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산 상 이 방법이 가장 빠른 탈출로입니다."
점점 뒤로 내빼는 해커를 단호하고 우악스럽게 옆구리에 매달듯 들어올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아래를 바라보다 다시 동료를 내려다 보았다. 까마득한 높이에 입에서 따닥하며 치아가 잘게 부딪치는 그를 보고는 입 꽉 다물지 않으면 혀가 잘린다는, 어딘가 엇나간 조언을 한 뒤 훌쩍 뛰어내렸다. 입을 열었다면 굉장히 시끄러웠을 비명소리가 작게 메아리를 쳤다. 곧 이어 그들이 바닥으로 착지하는 제법 시끄러운 소리와 동시에 흙먼지가 가득했고, 경비와 드론 따위가 뒤늦게 쫓았을 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딘가는 그들을 찾아내려 시끄럽겠지만, 슬럼화조차도 되지 못해 폐건물들만 즐비한 곳 지하에 그들의 아지트가 있다. 한쪽에 마련된 수복실 겸 치료실에서 수리를 마치고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카르나르 융터르의 얼굴에는 여전히 섬뜩한 것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 인공 피부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마치 얼굴을 강철로 본뜬 것 같은 형상이 찢어진 사이 아래로 빛을 받는 모습과, 더불어 그 사이로 그의 눈동자만큼이나 새파란 뭔가가 불규칙적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뒤이어 따라나온 수리공 단답벌레가, 마스크 너머로 평소처럼 짤막하게 말했다. 그 손은 얼굴보다도 몸통을 가리켰다.
"주의. 부탁."
"알겠습니다. 보다 파손을 줄일 방법을 새로 계산하겠습니다."
평소처럼 옷을 단정하게 입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가 움직일 적마다 묘하게 기계음이 들렸다. 지난번 뢴트게늄을 구출할 때 총탄이 몸을 꿰뚫은 탓에 얼굴 말고도 가려진 곳곳에서 나는 소리다. 때마침 소파 위에서 파스 따위를 덕지덕지 붙인 채 늘어져라 누워있던 뢴트게늄이 틀어논 tv에서는 신형 안드로이드 소식에 관한 뉴스가 오전 내내 특종이랍시고 떠들어댔다. 그걸 영 아니꼽게 바라보던 해커는 삐딱한 얼굴로 한 마디 했다.
"저게 무슨 신형이라고."
"인정."
두 사람은 자기 자리에 앉아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도 종이책을 사락사락 넘기는 동료이자,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카르나르 융터르라고 자칭하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인형들은 물론이고 저 tv 속 보다도 최신인 그가 어째서 자신들의 동료가 되었는지, 두 사람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일이라곤 그저 폐창고에 멋대로 침입했다가 우연히 꺼내준 것이 전부인데.
딱히 감흥이랄 것도 없는 안드로이드 어쩌고저쩌고의 소식이 끝나고, 뢴트게늄이 가장 반색할 만한 속보가 긴장한 앵커의 입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최근 청부살인 논란을 비롯한, 수많은 구설수로 기자회견을 가졌던 XX기업의 후계자가 소름끼치는 행동을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문제의 후계자를 시작으로 그 형제자매들이 저지른 안면수심의 행적들이 적나라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인터넷 곳곳으로 퍼트리려, 목숨 걸고 정보를 구했던 뢴트게늄은, 간밤의 아픔도 잊은 채로 외쳤다. "나이쓰으으으---!!!" 그리고 뒤이어서 닥쳐온 근육통에 눈물을 글썽이긴 했지만.
재빠르게 근육 이완제 따위를 물 한 잔과 같이 건네주는 단답벌레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 보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약을 입에 털어넣은 해커가 작게 궁시렁거렸다.
"아니, 빨리 나가자니까 곧바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는 게 어딨냐고요..."
"7시간 25분 47초 전, 뢴트게늄 님은 제게 빨리 나가자는 요청을 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 할 경우, 시간이 더 소요되며, 동시에 무의미한 출혈을 포함한 부상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계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턴가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을 제외하면 꼼짝도 않고 있던 그가 멀리서 뢴트게늄의 투덜거리는 소리에도 기막히게 듣고는 곧바로 반박해, 어이가 없어진 해커는 내가 말을 말지, 말을 말아라며 진이 다 빠져버렸다. 한편 단답벌레는 그런 안드로이드가 읽는 책의 표지가 전과는 달라진 걸 알아차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심리학에 관련된 책이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융터르가 그 특유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설명했다.
"최근 제 행동패턴을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들로 인해, 그에 따른 대응전략을 수립 중입니다."
"융터르 씨... 아까도 그랬지만 방금은 진짜로 기계 그 자체였어요. 알아요?"
"예." 두 사람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조언 감사합니다."
그 말을 하고 도로 고개를 돌려 책을 보는 그가 진짜로 감사하다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뢴트게늄은 저 반응이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심정을 아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그와는 좀 어색하니까. 언젠가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팀에 합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밤의 피곤이 뒤늦게 몰려온 그가 졸면서 한 마지막 생각이다.
-끗-
'공개 썰입니다. > 멤고 단편 - SF'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Hard day (0) | 2023.03.09 |
---|---|
a Demolished man (0) | 2023.02.27 |
Night CIty : Reminiscence (0) | 2023.01.06 |
Unstoppable(2) (0) | 2022.11.17 |
Unstoppable(1) (0) | 202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