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로댄 단답 연성이 계속 이어지는 덕분에 그렇고 그런 쪽으로 행복합니다.
*연성교류를 이 주제로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더 뇌절 하고 싶은 본 개구리는 뇌절의 맛 TV, 뇌절 매스터입니다.
날씨가 제법 무더워지기 시작한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검은색 SUV 내부로는 시시각각으로 재생되는 음악이 바뀌었다. 신나거나, 차분해지거나, 최신 음악이거나, 언제 출시되었는지도 모를 것이라거나. 음악 취향이 저마다 다른 탓에 한 곡의 재생이 완전히 끝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신남을 표현하고 있느라 애청곡을 무시당했다는 그런 불쾌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지금 휴가를 나왔으니까.
"비록 3박 4일 정도지만, 그게 어디냐? 안 그러냐?"
"오우, 깡패한테 칼로, 공격 안 당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 합니다."
늘 그렇듯 조수석을 차지한 캘리칼리 데이비슨 경위와, 운전석은 양보 못 한다는 노스페라투 호드 경사가 뒷좌석의 두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어떤 작업도 하지 않는지, 드물게 그 안구 부품의 파란빛이 꺼져 갈색 눈으로 보이는 카르나르 융터르와 이들 중 덩치가 압도적으로 작은 단답벌레가 저마다 답했다.
"처음으로 어떠한 업무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이후 처음입니다. …신기합니다."
"예."
어찌하여 XX서의 에이스 팀과 비공식적 조력자가 드라이빙을 즐기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안드로이드도 과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찰서 사람들이 알게 된 덕분이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날만 해도, 카르나르 융터르가 팀원들의 서류와 관련해서 많은 첨삭을 도와준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결국 책상에 그 머리를 박고 만 것이다. 외형에 비해 무게가 제법 나가는 그가 내는 소리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불과 몇 초 정도의 소란이었지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엔 아주 충분했다.
한편 단답벌레의 경우에는 그 동안 누가 들어도 객관적으로 충분히 불행한 과거사 때문에 애당초 여행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떠나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시각센서에 닿는 모든 풍경들은 단답벌레에게 설치된 감정프로그램이 제법 과하게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때때로 신나는 음악이 흐르면 그에 맞춰 팔이 자동으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조용하고 진중하기 짝이 없을 것만 같은 그의 행동이 웃겼던 다른 사람들이 웃는 것은 덤이다.
경찰서에서 제법 먼 거리에 떨어진, 바닷가와 인접한 펜션을 잡은 것은 오롯이 받은 휴가기간만큼은 본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놀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하지만 두 형사는 저축과 거리가 제법 먼 삶을 살았고, 융터르는 원체 유지비가 좀 과하게 많이 드는 경우라 돈을 모으기가 힘들다. 애당초 불법 안드로이드 출신에서 겨우 두 형사가 신분 세탁을 시도 중(?)인 단답벌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즉 그 말은….
제법 장거리를 달리는 탓에 휴게소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던 두 형사가 미리 경고하듯 말했다.
"장소는 잘 잡았어! 근데 말이지—"
"숙소가, 좁습니다. 꽤."
어지간해서는 뻔뻔하게 나오는 두 사람이 저렇게 솔직하게 고백할 정도로 방이 열악한 것이 틀림없었다. 두 안드로이드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형사를 보았다. 얼마나 좁기에 그런 것일까. 알감자를 깨작깨작 갉아먹는 경위에게 융터르가 질문을 하였다.
"꽤 좁다라는 말은 상당히 부정확하여 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요구하겠습니다. 방의 사이즈 대신, 그 숙소와 호실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아, 그게…."
멋쩍게 얼버무리며 말하는 그의 입에서, 직접적인 사이즈 대신 숙소명과 호실이 나왔다. 두 안드로이드가 저마다 살펴보는 것인지 잠시 침묵을 유지한 후, 단답벌레가 먼저 말할 것이 있는지 갑자기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보이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꺾인 손목에서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런 기능(?)이 있는지 몰랐던 형사들에게, 융터르가 설명을 하는 겸하여 확인차 질문을 하였다.
"도파민 박사 연구소에 최근 업그레이드를 요청하셨다고 했다고만 들었는데, 그것이군요. 말하자면 일종의 미니 컴퓨터입니까?"
"예."
단답벌레의 CPU가 명령을 내린 것인지 홀로그램의 화면이 저혼자 홱홱 움직이는 끝에 경위가 말한 문제의 숙소가 보였다. 이 제법 그럴싸한 팬션이 가진 유일한 문제점은 2인실이였다. 어쩌면 더 좁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의 덩치는 이미 충분히 혼자서도 0.5인분의 덩치를 하지 않던가. 두 형사만 방에서 잔다고 하더라도 과하게 좁을 것이 틀림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는 차량에서 수면모드로 진입해도 무방합니다만. 예비 배터리를 챙겨왔습니다."
"어… 아, 아니야! 괜찮겠지. 다 잘 될거야. …아마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좀."
갑작스러운 기적이 일어날 리 없는 것을 잘 아는 호드가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느라, 차 안에서 고개만 창문으로 빼고 핀잔을 주었다. 캘리칼리도 그것을 잘 아는터라, 그가 불리할 때면 곧잘 나오고는 하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조수석에 다시 몸을 밀어넣었고 뒷좌석에도 일행이 올라타는 소리가 들렸다. 차 안은 조금 전과 달리, 이 떨떠름한 고백으로 인해 어색하리만치 조용해졌다는 것을 빼면 순탄한 드라이빙이었다.
"4인실 예약하셨죠? 성인 둘, 안드로이드 둘."
"…어, 예?"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도착한 오후 3시 무렵, 펜션의 사무실에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본인의 이름을 대고 그 좁은 방에서 어찌 지내야 하는가 고민을 했지만, 돌아온 답변에 잠깐 눈을 멍하게 깜빡이다가 옆구리를 푹 찌르는 어떤 손가락에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예"라고 대답해버렸다.
그 뒤로 얼떨결에 낸 방 보증금과 함께 키를 받고나서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여전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지만 이미 몸은 짐을 확실히 안내 받은 그 4인실에 전부 나른 참이다. 고개를 돌려 마찬가지로 자기 짐을 집어든 호드의 얼굴을 보니, 그도 비슷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좋은 방이군요."
"예."
안드로이드들만이 태연하게 이 예기치 못한 기적을 아주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형사는 현장에서 오래 구른 촉을 여기서도 여지없이 발휘했고, 정말 몇 안 되는 짐을 거실 한 구석에 놓고 있던 단답벌레에게 동시에 시선이 닿았다. 불안한 마음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경위가 입을 열었다.
"어이 단답아…. 너 설마… 했냐?"
"예."
아니나 다를까! 단답벌레가 캘리칼리에게서 들은 정보를 듣고는 이동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예약 정보를 해킹해서 바꿔버린 것이다. 그나마 양심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무턱대고 가장 고급 사양의 방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그럴만 하다'고 생각할 정도로의 방으로 무단 업그레이드를 하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비좁을 것이 안 봐도 확실한 2인실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4인실이 된 것은, 두 형사에게도 나쁜 것 하나 없었기에 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과연 제 말씀대로 행동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응.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처음에 가장 큰 방으로 변경하시려 했습니까?
-제일, 좋음. 문제?
-그 방은 거의 10명 이상의 단체 손님용으로 지정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향후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너무 눈에 띄는 변경은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으니 향후에는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캘리칼리와 호드가 전혀 모를, 두 안드로이드 간의 인트라넷 통신은 그렇게 숨겨진 공범의 존재를 묻어버린 채 종료되었고 그들은 형사들이 짐을 풀어놓으면서 어쨌든 좋다며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저 두 형사는 도대체 무슨 짐이 저리도 많냐는 것이었다.
"자, 잔 들어! 건배!"
두 형사가 아득바득 싸 온 짐 중 절반도 넘는 것이 거의 먹을 것이라면 믿겠는가. 물론 덩치도 덩치니 들어가는 것이 많겠다만, 그렇다고 구이용 삼겹살을 비롯한 온갖 캠핑용 먹거리들과 술이 저리 많을 필요는 있는 것인지 융터르는 분석을 했다. 결과는 굳이 저렇게까지 과식과 과음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는 초기 모델에 내장된 음식섭취 기능이 없어 고기를 굽는 역할을 자청하였고, 알코올 분해기능이 없는 대신 콜라를 들며 단답벌레는 좋아하는 피자를 이 자리에서 챙겨오지 못했다는 점에 약간 분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였다. 두 형사는 이미 벌써 500ml 짜리, 일명 '롱캔' 맥주를 단숨에 절반을 비우며 저마다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펜션 쪽에 요청을 해서 설치 된 바비큐 테이블에서는 고기기름이 용광로마냥 타오르는 불길 위로 떨어지며 그을음이 섞인 연기가 제법 매캐했지만, 그것마저도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듯 수다는 오래 이어졌다.
"먼저, 들어감."
단답벌레는 이미 충전할 수 있는 최대의 용량만큼의 고기를 먹었는데도, 그보다 덩치가 월등히 큰 두 형사가 연거푸 권하는 바람에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억지로 먹기를 거듭했지만 그마저도 한계였다. 차라리 저 두 사람은 푸드파이터라고 불리는 쪽으로도 소질이 있을 것이라는게 단답벌레의 분석이었다. 비록 먹는 부분이라고 한들 기계인 자신이 지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그는 그래서 먼저 일어났지만, 은근슬쩍 테이블 주위를 돌아다니는 모기들을 발견하고 모기향을 피워준 채로 들어간다는 말을 했다.
놀랍게도 이미 궤짝에 준하는 수준의 술을 단 둘이서 해치운 두 형사는 정신이 말짱했다.
"어, 어? 단답아, 너 벌써 일어나냐?"
"오우, 피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호드 님의 의견이 아주 적확하다 말씀 드릴 수 있겠군요."
고기를 굽던 융터르도 내심 질려하는 티를 감추며 말했다. 그의 메모리 속에는 일전에 한 번, 팀장이 두 형사가 출장을 가면 회식을 가야 한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것이 다시 재생되었다. 그때 팀장은 분명 "저 두 놈이 지금까지 회식하면서 먹어치운 돼지만 해도 이미 양돈 농가 행세는 충분히 한다." 며 투덜거렸고 과장된 비유라고 생각했던 융터르는, 팀장이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평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융터르의 안구 센서가 다시 파랗게 깜빡거리며 그 낮은 목소리가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의 현재 돼지고기를 비롯한 바비큐용 야채 및 소시지, 탄수화물 등의 섭취량이 일반적인 성인의 식사량을 월등히 뛰어넘었음은 알고 계십니까?"
"어—. 그건 자네가 구워주는 고기가 맛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나?"
"맞습니다. 융터르 님, 진짜로 맛있습니다."
과연 이 두 사람이 진심으로 하는 말일지, 그저 고기를 직접 굽는데서 오는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상을 물리는데에는 다행스럽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이제 포만감을 넘어서 더부룩하기까지 하였겠지만, 장장 2시간에 걸친 바비큐를 융터르가 감당하려니 그도 슬슬 충전의 필요성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저전력모드가 있음을 처음으로 인지한 그는, 의외로 에너지를 잡아먹는 감정 프로그램이 종료됨을 느끼면서 딱딱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안내 : 잔여 전력 현재 15% 이하. 조속한 충전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자네 충전 안 했나?" 이제서야 취기가 오르는지 슬슬 벌개지는 얼굴로 캘리칼리가 당황해 물었다.
"긍정합니다. 펜션 내 안드로이드용 충전스테이션을 확인. 충전을 승인 부탁드립니다."
"자도 되는거냐고, 하는거면, 자도, 됩니다. 치우는거, 저희가, 하겠습니다."
놀랍도록 거의 비워진 테이블 위를 가리키며 호드가 민망하다는 듯 말하자, 감사하다고 말하는 융터르의 몸이 뻣뻣하게 움직이며 산장 안으로 쑥 들어가버렸고 그것이 일종의 신호탄이 되어 두 사람도 슬슬 자는 것이 좋겠다는 합의에 이르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단답벌레가 피워준 모기향도 슬슬 끝나갈 기미가 보이고 있기도 하였고.
충전 스테이션 두 개 중 하나 안에 있는 단답벌레는 오늘도 악몽을 꾼다. 정확히 말하면 악몽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메모리가, 기억회로에서 역주행 현상을 일으켜 강제적으로 재생해버리는 것이지만. 아직 자신의 잘못을 전부 받아들이기에는 감정 프로그램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던 그에게는 방어기제로서 꿈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피를 하더라도.
오른 손목을 꺾으면 예리한 티타늄제 칼날이 불쑥 튀어나오고, 어떤 주저함도 없이 창조주가 지정한 대상의 목숨을 끊어버린다. 그 피가 신발에 닿아 자신의 흔적으로 남아버리면 안되므로, 이미 쓰러진 그 차가운 몸을 발로 걷어차면서 자신의 몸에 단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은 채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것이 마땅하므로.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었다. 아직은 명령에 저항할 수 없어 몸부림 치던 그가 스테이션 위로 몸을 제법 소란스럽게 일으켰다.
"아."
"어우씨…! 깜짝이야. 자네, 자네 뭐하나?"
스테이션에서 몸을 일으킨 단답벌레의 HUD는 급히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동공 속 붉은 눈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보고 반사적으로 놀란 티를 숨기지 못했다. 잔뜩 일어난 뒷머리를 보아하니 덩달아 깬 티가 역력한 그가 곧 그 붉은 LED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놀라는 반응을 이해하는 단답벌레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그 단발이 가볍게 양 볼을 스친다.
"아님."
"엉? 뭐가 아냐?"
"아무것도. …괜찮."
정말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직은 염려하는 얼굴을 한 채로 바라보는 형사에게 보란듯이 도로 누워버리고 나서야 캘리칼리도 정말 괜찮을 것이라 믿으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고 곧 그 잠자리 위로 작지만 코고는 소리가 평소 피곤한 형사들 사이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그러나 단답벌레는 다시 수면모드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는 감정을 알게 된 후 섣불리 그럴 수 없었다. 아직은 새벽 4시임에도 불구하고.
술기운을 빌려 두 형사가 부스스한 머리를 들어올리며 잠에서 완전히 깼을 때는, 이미 차라리 점심이라고 부르는 시간대였다. 두 사람이 먹고 잔 탓에 제법 팅팅 부은 눈으로 마른 세수를 할 때는, 이미 짐더미에서 해장국으로 쓸만한 재료를 확인했다며 융터르가 그 두 사람 앞에 국그릇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컨디션을 되찾은 한 낮이 될 무렵.
"뭐야 융터르, 자네 수영 못하나?"
"그렇습니다만. 아실 줄 알았는데, 제 내골격의 무게는 100Kg에 육박합니다. 또한 바닷물에 포함되어있는 성분들을 과도하게 접촉하면…"
"그러니까 맥주병이라는, 말씀입니까?"
두 형사가 짖궂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는 순식간에 한 쪽은 손을, 반대쪽은 다리를 붙잡고는 낑낑거리면서도 냅다 바닷물에 던졌다. 일반적인 100Kg의 사람이 물에 빠진 것과 비교해도 굉장한 물보라가 일어나 잠시나마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평소 이런 장난을 융터르에게 쳐보고 싶었던 두 사람의 마수가 이제 단답벌레에게 향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질을 하며 더듬거렸다.
"뒤, 뒤."
"어허, 단답아. 다같이 물에 빠지는데 우리 단답이도 한 번 물에 빠져보는게 어떻겠냐?"
"맞습니다. 그래야, 공평 합니다."
"아니, 뒤. 뒤. 뒤 좀."
단답벌레치고 당황한 티가 역력하고 말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기에, 그제서야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자신보다 분명 덩치가 작은데도 위압감은 두 덩치를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안구부품이 마치 도깨비불인 마냥 시퍼렇게 빛을 밝히고 있는 카르나르 융터르의 목소리가 가뜩이나 낮은데도, 더욱 더 낮게 들리면서 차라리 음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평온한 얼굴의 경찰 소속 안드로이드가 두 친구에게 못 이었던 말을 마무리 지었다.
"…내골격에 중대한 문제 발생 가능성을 말씀드리려 하였으므로, 두 분께도 협조 부탁드립니다."
"협조? 어이? 이게 협조냐?!"
"아니! 이거 협조, 아닙니다! 협조 아니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악스럽게 두 사람의 몸을 붙잡아 어깨 위로 올린 그가 성큼 다시 바닷가로 가더니, 동시에 둘을 던져버리는 것으로 복수가 끝났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저마다 물에 담그고 던져지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어느 새 저녁이었다.
전 날밤의 과격한 폭식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어지간한 사람들이면 혀를 내두를 식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제의 저녁이 육류였으면, 이번에는 어류로 한 상을 거하게 먹었다. 메인 뿐만 아니라 사이드로 나오는 갖가지 밑반찬들도 바닥을 긁어가면서.
"실례가 아니라면, 이렇게나 과식을 하시는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만."
"응."
안드로이드이기에 생기는 의문에 형사들은 멋쩍게 변명아닌 변명을 했다. 쉬는 날도 불규칙하고, 근무를 서다가도 출동을 나서야 할 일도 있다. 제대로 챙겨먹기란 하늘에서 별을 차라리 따는게 더 쉬울지도 모르다보니 작정하고 먹게되더라는 그런 말을.
과연 그 말을 떠올린 융터르는 납득을 했다. 평상시에는 식사량이 적다 못해 거의 없는 수준까지도 있던 나날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그랬다. 그리고 이런 드문 간격으로 발생하는 폭식 행위는 적어도 가게 매상에는 아주 훌륭할 정도로 도움이 되는 모양임이 분명하였다. 오죽하면 횟집 사장님이 나와서 두 사람에게 서비스라며, 비싼 어종은 아니지만 확실히 갓 잡은 것이 분명한 신선한 생선으로 만든 초밥을 선물해줄까. 덕분에 야무지다고 표현하는 것이 부족할 정도로 오늘도 두 사람은 잘 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전부 지켜본 단답벌레와 카르나르 융터르의 표정은 여러가지로 설명하기 어렵게 망가져버렸다.
어느 덧 펜션에서 머물 수 있는 마지막 날 오후 4시 무렵, 번화가를 구경하던 단답벌레가 결국 피자를 먹고 싶다는 자신의 주장을 내비쳤다. 다른 음식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를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 탓이 제법 컸다. 결국 그 요구에 다른 사람들이 응했고, 해커 안드로이드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한 시점에서 갑작스럽고도 단답벌레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사고가, 객관적인 시선에서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매치기야!!"
정확히 오후 6시 30분에 피자를 찾아 돌아갈 계획에 큰 차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배기음에 과도한 개조가 들어간 것이 분명한 오토바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핸드백을 손아귀에 쥔 채 차로 꽉 막힌 도로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을 경찰들이 매서운 눈으로 확인하기 무섭게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그리고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 오토바이를 쫓아 뛰던, 명백한 피해자인 아주머니가 결국 그 안에 들어있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졌다며 주저앉아 오열하는 소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어이, 융터르랑 단답아. 부탁 좀 하자."
"뒷수습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 두 형사는 곧바로 피해자 쪽으로 달려가고 두 안드로이드는 도로 방향으로 몸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곧 단답벌레의 동공에 다시 붉은색 LED가 떠오른 채로, 실시간 도로 교통 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의 CCTV를 바라보았다. 곁에 있는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 지금도 도심을 맹렬히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추적 중일 것이다.
곧 마스크로 가린 입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목적지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에 따라, 단답벌레 님을 이렇게 들고 가는 점 양해 바랍니다."
"괜찮. 전방, 150m"
"추적하겠습니다."
옆구리에 계속해서 방향을 말하는 해커 안드로이드를 매단 채로 카르나르 융터르가 안구 센서에 푸른빛이 서늘하게 빛나기 시작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전에 경찰서에서 잠시나마 과로로 인한 셧다운을 겪은 이후 연구소에서 이것저것 업그레이드를 시행한 덕분에 그의 달리기 속도는 경륜선수가 전속력으로 밟는 자전거와 거의 동일하여 추격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곧 그의 HUD 상으로도 아까 전의 소매치기범이 탑승했던, 그 시끄러운 배기음 소리의 오토바이가 포착되었다. 쓰러지듯 정지된 채로 깨진지 오래된 보도블럭 위에 널부러진 모습.
방금까지 옆구리에 작은 안드로이드를 매달고있던 융터르가 그를 내려놓으며 황급히 다가가 그 차체에 손을 올렸다.
"측정 결과 : 섭씨 기준 45.2도 측정되었습니다. 엔진이 종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근처?"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예를 들면…."
그가 말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않고 오토바이가 쓰러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두 바퀴가 나란히 평행선을 이루는 대칭에는, 낡은 건물이 을씨년한 분위기를 감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두 안드로이드는 본질적으로 공포심은 이해를 할 수 있어도 그것에 영향을 쉽게 받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저거, 작동 중."
단답벌레가 손가락질한 그 끝에는 감시카메라가 은밀하게 설치되어 있어, 건물 입구를 면밀히 감시하는 것이 보였다. 융터르가 분석을 하기 위해 노려보듯 바라보는 그 에너지의 흐름은, 면밀하게 건물 곳곳을 흐르고 있어 명백히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 많음."
"감시카메라 해킹으로 알아내셨나보군요."
"응."
"건물의 메인 제어 시스템에도 접근 가능하십니까?"
융터르가 자신의 계획을, 아직은 영문 모를 해커 안드로이드에게 말해주었고 그 또한 납득하였다. 덩치가 극단적으로 다른 두 기계가 자신들의 침입을 굳이 숨기지도 않으며 그 1층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이 을씨년스러운 장소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곧 드러났다. 대기 중에 미약하게 떠도는 성분을 확인한 경찰 소속 안드로이드가 곧바로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연락을 취했다.
-날세, 뭔가?
"속히 제가 있는 곳으로 지원 병력과 동행하실 것을 요청합니다. 특히, 마약단속과 관련한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젠장, 자네들 둘 다 안 다치게 조심하게. 그래서, 장소는?
"지금 메시지로 발송을 완료하였습니다. 걱정 감사합니다. 파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공기 중에는 두꺼운 비닐로도 가려지지 않는 마약성분이 감지가 되었다. 이곳 어딘가에 오토바이의 주인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의도는 이 장소와 결부 지어 생각한다면 아주 쉽게 드러날 것이다. 누군가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짓밟덜다도 가장 질나쁜 방식으로 짓밟으려는 행위이자 명백한 범법행위. 자신들의 공간에 당당히 침입해 이질적인 두 그림자가 저마다 안구 부품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고도 적대하지 않을, 놈들은 없었다.
저마다 쇠파이프부터 칼까지 꼬나쥐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융터르가 단답벌레에게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부터는 경찰의 일입니다. 단답벌레 님 께서 원치 않으시면 빠지시는 것을 권하겠습니다."
"괜찮."
그러면서도 곧바로 전투모드로 전환한 그가 날래게 몸을 띄워 저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고, 융터르는 일일 파트너의 행동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놈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의 묵직한 내골격에서부터 오는 주먹질이 정확하게 가까이 달겨드는 놈들의 순서대로 꽂히기 시작했다.
한편 단답벌레는 기본적으로 몸이 가볍다. 그리고 본래 스파이 모델로 제작이 되었던 만큼, 몸의 가동범위가 여타 안드로이드보다도 훨씬 유연하여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방향에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몸을 갑작스럽게 낮췄다가 재빠르게 튀어 오르면서 그를 향해 무기를 내리치려는 사람들의 안면에 멋지게 발차기를 꽂는 것이나, 벽을 거듭 박차 뒤쫓는 것 만으로도 어렵게 만들게 하고는 방심한 졸개의 몸에 내려앉아 목을 조르는 등이 그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곧 뼈가 부러지거나, 혹은 입에 게거품을 물거나 등으로 졸개들이 바닥에 저마다 널부러진 채 쓰러진 사이, 일부러 공격을 거의 가하지 않은 단 한 놈만이 남은 상태에서 인공피부가 하나도 찢어지지 않은 융터르가 물었다.
"오늘 거래를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의 위치를 말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침입자가 안드로이드라고 한들 고작 단 둘에 의해 지금까지 100명에 달하는 조직원들이 꺾였다는 소식을, 3층 꼭대기의 가장 좋은 방에서 듣는 간부진들의 표정이 좋을리 없다. 그리고 이들의 꼬리가 잡힌 이유가 아주 재수가 나쁘게도 갑자기 들이닥치듯 찾아온 이 손님 하나 때문이라니. 가운데에 있는 두목 좌우로 저들끼리 졸지에 무릎을 꿇은 채 자기들의 손님이자 지금은 만악의 근원을 죽이네 살리네 왁왁 떠들 때였다.
이상할 정도로 규칙적인 구둣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무섭게 조명이 전부 꺼지고, 굳게 잠근 문이 거센 발길질 소리와 함께 억지로 열리는 굉음이 들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방천지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휘두거나 아주 미세하게만 느껴지는 기척에 주위가 점차 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두목이라고 할지라도 허장성세로 소리나 지르게 만들 뿐이었다.
"그, 그 새끼! 그 새끼 여기에 있어!! 우, 우, 우—리가 잘 잡아 놨다고!!"
"상관없습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58조 제3항에 의거한 경찰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순순히 협조 바랍니다."
너무나 낮은 목소리가 코 앞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그 몸이 살짝 들렸다가 곧 땅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두목을 마지막으로 제압한 것인지 그제서야 불이 켜져, 그는 갑작스러운 빛으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가 겨우 연거푸 깜빡거리며 적응을 할 때 쯤에서야 이 방안이 어떻게 되어버렸는지를 알 수 있었다.
흰 자켓과 꽁지머리가 인상적인 덩치 큰 놈은 어디서 주워온 청테이프를 이용해 손발을 꼼꼼하게 묶고 있고, 반대로 단발머리의 작은 놈은 요령 좋게 목이라도 졸린 것인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손님이 가져온 핸드백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지 그 덩치 큰 놈에게 건네주며 아주 짧게 말할 뿐이었다.
"여기."
"실제 금액과 맞는지의 여부는 피해자 분에게 직접 확인을 해야겠군요."
"지금, 옴."
제어권을 확보한 감시카메라를 통해 단답벌레는 동공 속의 붉은 빛이 꺼지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찰들이 차를 타고 몰려오는 것을 확인하였다. 곧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손목과 발목에 청테이프를 전부 감는데 성공한 융터르가 그의 태도를 보고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금방이라도 건물 바깥을 빠져나가려는 그 태도.
"조금 급하신 것 같습니다만."
"피자. 예약."
단답벌레가 손목의 홀로그램을 펼쳐 그에게 보여주었다. 예약을 걸어둔, 그의 입맛에 맞춘 스페셜 치즈피자가 불과 30분 뒤면 완료 될 예정이다. 뚝뚝 끊기는 치즈를 원치 않는 그의 몸이 조급함을 숨기지 않은 채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곧 있으면 도착할 두 형사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융터르의 사고회로가 과열될 정도로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그 부담으로, 융터르는 최근 생긴 혼잣말 하는 버릇이 발생했다.
"정말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 지 모르겠군."
그러나 긍정적인 결과가 하나 도출되었다. 메모리의 역류현상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단답벌레는 본인의 의지로 훌륭하게 제압만 하는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이 부분을 나중에 캘리칼리와 호드에게 전해주면 그들에게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피자를 받으러 자리를 서둘러 이탈해버린 그의 몫을 대신해 경찰들에게 설명을 하자는 것으로, 그는 결론을 내리고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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