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이 거칠게 이리저리 움직인다 한들, 이건 본질적으로 프리터는 본인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책임자를 따지고 싶지도 않았고 오롯이 운이 나빠도 정말 더럽게 나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계기는 구형 네비게이션이 슬슬 맛이 갈 기미가 보이는가 싶은 모습을 방치한 것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결과가 어째서 경찰의 감시가 드문 무법지대로 순식간에 흘러들어는 것이란 말인가.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 우주선은 고철로 만들어 버림이 마땅하다는 듯 사방팔방에서 강도들이 저마다 저 놈은 내꺼다라는 시그널을 쉬지 않고 주는 모습은, 차라리 맨정신으로 블랙홀에 빠지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자신의 우주선 조종간이 생명줄이 된 그로서는 필사적으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끝에 생명은 부지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생명만. 우주선 내부로 당장이라도 수리가 필요하다며 번쩍거리는 새빨간 조명과 듣기만 해도 귀에 거슬리게 온갖 오류를 안내하는 소리는 프리터에게 아예 노이로제를 선사하는 듯 하였다.
"아—이고 이거, 아주 그냥! 폐차를 시키던가 해야겠습니다아— 이 고물딱지!"
자신이 아는 최대의 험한 욕을 내뱉긴 했지만 문제가 있다면 네비게이션은 진작 고장나버려 여기가 도통 어디인지 모르겠는 상황. 졸지에 우주 미아가 되어버리게 생긴 프리터는 선내 통신기가 먹통인 것은 알지만, 아주 우연에 가까운 확률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자신의 구조신호를 받아주길 바라며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전파가 닿지 않는 것인지, 혹은 아예 통신기가 고장인 것인지 통신기 너머에서는 기분 나쁘게 찌직거리는 소리만 계속 흘러나올 뿐이었다.
"크—!! 역시 네비게이션은! 싸구려를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와서 후회하면 무얼 하는가. 프리터는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 다음에 상대적으로 신형인 우주선을 사는 것이 좋겠다며 네비게이션을 사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욕을 하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당장 닥친 큰 문제점은 그나마 있던 연료들도 거의 바닥이 드러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 무한정 우주를 부유하는 미래가 조금 더 확실해지자, 프리터의 얼굴은 곧 절망감으로 잔뜩 물들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아주 태연하기 짝이 없고 무덤덤한 목소리가, 계기판 등으로 복잡한 선내에 잔뜩 신경쓰던 프리터의 뒤로 들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보시면 모르시겠습니까! 우리 아주 그냥 우—주 미아 되겠습니다! …우리?"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프리터가 등 뒤를 돌아보았다가 숱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온 날카로운 눈이 동그랗도록 크게 떠졌다. 분명 혼자 있어야 할 우주선 안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여유롭게 서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새하얀 바탕 위로 파란색이 실선마냥 한 줄기 나 있는 그 장발을 말끔하게 전부 뒤로 넘겨 묶은 장발. 그리고 시리도록 파란 눈동자와 마주친 프리터는 전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등장에 입을 벙긋거렸다.
"미아는 아닙니다. 지금 이 방향으로 남은 연료를 전부 소진하며 직진할 경우 지구로 향하게 됨을 안내드리고자 잠시 실례했습니다."
"지, 지구라니…."
프리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원래 향하려던 목적지보다도 황당할 정도로 먼 곳이 아닌가. 심지어 우주선과 관련된 정비 일체를 전혀 받을 수 없어, 그야말로 졸음쉼터와도 같은 인식임을 프리터의 뇌리에 스쳤다. 상대방은 그 질린 얼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저 할말만을 계속 떠들기 시작했다.
"지구에 정착하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수리를 받기에도 파손이 상당히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차라리 정착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꽤 괜찮습니다."
"그… 저는…."
프리터는 말을 더 꺼내야 할 지 잠시 망설였다. 이 이상한 사람의 말대로 어차피 곧 우주선을 폐기처분해야 할 기분이 물씬 드는 상황에서 어떤 수리나 신차를 구비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차라리 아예 지구에서 정착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거듭하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프리터는 선뜻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서도 의구심을 놓을 수는 없어 결국 질문하였다.
"저… 근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저는 지구를 관리하는 행성관리자입니다. 혹여나 정착 이후로도 생활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일정 부분에 관해서는 도와드리겠습니다."
행성관리자가 안내하는대로 곧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의 우주선을 몰자, 과연 파란색과 초록빛이 강렬한 행성이 저 멀리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라는 이유로 두 분께서도 잠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심리상담사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위장신분의 행성관리자가 대뜸 두 형사를 자신의 심리상담실에 불러 소개시켜준 것은 프리터라는 이름의 명백한 외계인이다. 일단 푸르다못해 아예 보랏빛을 띄는 피부와 신발도 없이 세 갈래로 갈라진 발가락, 그리고 꼬리까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잠시 얼굴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얼굴을 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 황당한 협조요청에 지극히 상식적인 이의제기를 하였다.
"그… 이 친구,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외계인… 아닌가?"
"문제 없습니다. 프리터 님은 현재 정당한 지구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외견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다소 이상하게 여길 가능성은 있으나, 그저 좀 문명이 덜 발전된 곳에서 와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도록 조정이 들어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덩치가 작은데, 어떻게, 생활 가능합니까?"
아무리 팔뚝이 다부지다지만, 작달막한 체구로는 이래저래 한계가 있는 법이다. 노스페라투 호드는 아예 외계인이라는 부분은 생략해버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지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 자그마한 외계인이 잘 적응할 수 있느냐는 점. 그러자 프리터가 그 다부진 팔뚝을, 소위 알통을 만드는 그 자세로 만들어 더욱 크게 부풀리고는 말했다.
"저, 프리터! 이래보여도… 무려 스—바라근 53만! 무슨 일이든 아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우훗훗—후!"
"스바라근…? 그건, 대체 뭡니까?"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드에게 카르나르 융터르가 살짝 쓴웃음과 함께 설명해주었다. "우주선을 타고 돌아다닐 적에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높은 숙련도로 해내곤 했다는 소리입니다."
이 애매한 표현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혹시나 뭐가 잘못 될까봐 걱정에 가득찬 눈길을 교환했지만, 이제는 별 수 없었다. 여차하면 또 인류 말소를 쉽게 내뱉을 카르나르 융터르의 앞에서, 아직은 감히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어지간한 담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래서 그럴만한 깡 만큼은 아직 없는 두 사람이 울며 겨자먹기로 강요에 가까운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여유가 된다면 다시 상담실로 오라는 융터르의 통보에 두 형사가 도착했을 때는.
"아—이고 이거, 어서오십시오…."
"어…, 자네 여기서 일하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떨떠름한 얼굴로 먼지떨이와 앞치마 차림의 프리터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아주 그냥! 무슨 일인지 저를 고용해주시지를 않아서 이거 야단이 나버렸지 뭡—니까—"
과연 일전에 그 스바라근 53만이 허황된 소리가 아닌 듯, 이전에 카르나르 융터르의 심리상담소는 어딘가 허술한 느낌이 있었으나 이제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고,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앞에 놓여진 커피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파는 것과 비교하자면 월등히 우월한 수준인 것이다. 조금 전까지 대기할 적만 하더라도 그의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대기하던 손님들에게 적절한 대응을 해주는 것은, 차라리 프로의 접객이라고 해두는 편이 간단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상하게도— 어쩐지 저를! 고용해주시는 분이 어찌 그리 단 한—명도! 없을 수 있단 말입니까아, 칙쇼…."
프리터는 커피잔을 들고 나르는데 쓴 쟁반으로 자기 입을 가리며 작게 울분을 토했지만 어쩐지 두 사람은 생각보다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똑같이 이 희대의 인재를 하물며 아르바이트로 고용하지 않는 상황에 의구심을 표하는 심리상담가에게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부탁했다. 그 어떤 것이란.
"프리터 저 친구 말투를 다른 사람들이 듣기엔 그냥 보통 말투라고 생각하게 해주면 안되겠나?"
"…아?"
"오, 설마, 눈치… 못 챘습니까?"
아무리 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의 카르나르 융터르를 보았을 때 두 사람은 어떤 확인이 들었다. 순전히 자신의 기준으로, 프리터의 외모만 손을 본다면 곧바로 지구생활에 적응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 사람은 처음 저 행성관리자를 만났을 때의 지나가는 듯 말하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자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말. 정말로 그것이 맞는 듯 하여, 상담실에 도착하기까지 헐레벌떡 뛰어왔었던 두 형사는 실로 복잡한 이유에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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