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뜨너 님과의 연성교류로 대천사 융터르를 쓰게되었읍니다.
2. 마침 생각해보니 루시퍼 캘로 쓴 적이 있어서 이걸 좀 끌어다 쓰게 되었읍니다.
3. 대충 어떤 느낌인가 하면 이쪽을 참조 부탁드립니다.
4. 날먹인 것 같은 무의식적인 생각이 들지만 별 수 없었읍니다.
창문을 통해 따스한 햇빛이 붉은색 융단 위로 스며들어, 굳이 슬리퍼를 신지 않아도 포근한 느낌이 만족스러워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 자칭하는 남자는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렸지만 곧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뻔뻔한 그라고 해도 방 주인의 언짢은 시선을 모른 척 넘어가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상 위로 심리상담가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명패가, 그리고 그 뒤로 앉은 남자가 피곤하다는 듯 한 손으로 눈가를 몇 차례 꾹꾹 누르고 있었다.
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긴 그 상담실 주인은 콧노래만 부르지 않았다 뿐이지, 여전히 딴청을 피우는 상대방의 무성의한 태도에 언짢은 기분을 전혀 감추지 않은 채 힐난하는 말을 건넸다.
"일전에는 잘도 일을 저질러주셨더군요. 마약상 소굴에 저를 부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단답벌레 님께 혼나시기까지."
"…." 상담사가 들고 있던 만년필을 종이 위로 툭툭 두드리는 소리는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는 불만족의 표현과도 같았다.
"침묵이라. 실례합니다만 방금까지 콧노래를 부르던 대악마께서는 어디 가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심리상담사를 겸해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감시하는 역할인 대천사의 파란색 눈이 서늘한 기운을 뿌리며 자칫 잘못하다 대형사고를 칠 뻔한 상대방에게 질문했다. 누가보더라도 질문의 탈을 쓴 비난이었지만 캘리칼리는 뻔뻔하게 그런 융터르의 심문을 어물쩡 넘어가버릴 뿐이다. 이런 그의 태도가 슬프게도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악우가 피곤하다는 듯 작게 숨을 고르고는, 아예 소파 하나를 침대처럼 누워 독차지한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날렸다. 둥실거리던 그것이 여유만만이던 캘리칼리의 얼굴에 툭 떨어지고, 그 내용을 대충 훑어보던 그가 벌떡 일어나 드물게 당황한 눈으로 연거푸 "이게 사실이야?!" 라며 거듭 물었다.
그 내용은 향후 24시간 동안 지상에서 머무를 수 없다는, 현재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상당히 중죄에 해당하는 명령이 담겨있었다. 억울하다며 검지를 들어 자신을 가리키고는 거듭 내가!?를 외치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다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신을 대신하여 선처를 구했다는 점 양지 바랍니다. 사람을 도와 선행을 했다는 부분을 그 분께 얼마나 어필했는지 알고 계실런지는 모르겠지만."
선언하듯 내린 그 말과 언급된 '그 분'이라는 단어. 위계를 아래보다 위에서 세는 것이 더 빠른 그 융터르가 존칭을 쓸 사용할 상대는 얼마 없고, 그 쯤되면 제 아무리 막무가내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고 해도 반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 멋들어지게 다듬은 콧수염의 좌우 균형이 찌그러진 그 입에서 일부러 앓는 소리가 크게 나왔지만 저항할 기색은 더 없었다.
"좋아…. 자네 성격대로라면 분명 저 문 바깥에 나를 구금하러 온 친구들이 대기하고 있겠군."
"잘 아시는군요. 당신이 나서는 순간부터, 구금은 물론 24시간을 밀착 감시할 겁니다. 여기서 저와 대화하는 것도 제 나름의 배려라 생각해주시길."
"그럼 까짓거 배려 하나만 더 해줬으면 좋겠군. 본래대로라면 오늘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거든. 자네도 한 번 봤을테지만."
낮은 목소리의 천사가 안색이 그 여섯 장의 날개와 견줄 정도로 창백해졌다. "설마" 라는 단어를 반복하던 그가 넌지시 형사를 입에 올렸고,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지금 상황에서 단 한번이라지만 친구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으로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형사는 이상한 문자를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서 받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만남의 장소를 심리상담소로 잡을 이유는 하등 없음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그럴싸한 장소야말로 그 자에게는 더없이 어울리지 않았으니 이상한 문자라고 밖에는. 차를 몰아 자신과 같은 일반적인 서민들이 살 법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도 의구심이 머리 한 구석에서 떠나가지 않던 그는 어찌할 도리도 없이 이 새로운 약속장소, 심리상담소로 향했고 마주한 결과는.
"당신이군요. …캘리칼리 데이비슨 씨가 협조한다던 형사."
"그— 좀 이상한 말인데, 우리 전에 한 번 본 적… 없지요?"
"몇 초 전도 이전이라고 하면 사전적인 의미로는 틀리지 않습니다만."
사실상 당신과 나는 초면이다 라는 말을 이렇게 말하는 것도 재주다. 게다가 지금까지 상대해온 모든 자들과 견주어도 이보다 더 중후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없을 것이다. 창문이 난 곳을 제외하면 책장 속에는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 것 같은 어려운 책들이 잔뜩 꽂혀있고, 바닥에는 폭신한 카펫이 방금까지 햇빛을 머금었는지 제법 따뜻한 온기를 발바닥 아래에서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 방에서 가장 인상깊은 가구, 제법 육중한 느낌의 책상 앞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아올려진 종이를 한 장씩 집어들어 정신없이 뭔가를 서명하느라 바쁜 그 심리상담사, 명패에 카르나르 융터르라 적혀있는 자는 곧 오늘의 분량을 끝마쳤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한 올의 잔머리도 용납하지 않고 말끔하게 뒤로 넘긴 것이 여간 깐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 상담사를, 어째서 문자 그대로 방탕함과 부유함의 구현과도 같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알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속마음을 터놓게 만드는 그 독특한 능력을 가진 남자와 이 상담사는 무슨 관계인 것인가? 형사는 갑작스러운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궁금하십니까?"
"예?"
언제부터였는지, 상담사의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두 눈은 자신을 향해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형사가 당황해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반문했다. 심리상담사가 아무리 그렇고 그런 쪽으로도 아는 것이 있다지만 초능력 마냥 독심술사는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저 생뚱맞은 질문이 정말로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것이 아니리라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분명 캘리칼리 데이비슨 씨의 소개로 저를 처음 아셨을 터인데, 당신의 그 표정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채 이곳 여기저기를 둘러보더군요. 객관적으로도 비싼 물건이나 취급할 것 같은 그 캘리칼리 씨가 이 지극히 서민적인 공간에 방문할 이유가 있는가, 그 부분이 궁금하시다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만."
"어— 그러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예전부터 지인이어서 그랬다, 라는 겁니다."
이 심리상담사는 말을 자르는 버릇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형사는 한 가지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고 이미 마음 속의 수첩에 아주 굵고 선명한 기록을 남겼다. 이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심리상담사도 정말 이상한 놈이라고.
일부러 큼큼 소리를 내며 주도권을 도로 되찾으려 한 경찰은 그 참에 아예 자신이 찾아온 용건을 이 이상한 상담사에게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심리상담사라고 하시니 뭐, 잘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제가 맡은 사건이 전문가의 손길이라는게 필요하던 상황이라."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동료들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그 방면으로도 걱정이 일었던 형사는 차라리 안도하며, 방금까지의 상황에 휘말린 통에 본의는 아니었지만 반쯤 방치해버렸던 서류봉투를 엉거주춤하게 일어난 모습으로 상담사에게 건넸다. 보기보다 신중한 성격인지 그 봉투를 곧장 열지 않고 매만지며 그 두께를 확인하던 상담사는 파란빛이 도는 눈으로 형사를 바라보았다. 마치 열면 안되는 폭탄물을 취급하는 것 같은 대우인 그 모습에 형사는 어쩐지 불쾌감을 느끼며 다시 큼큼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단 범인은 잡혔습니다."
"그런데도 전문가의 손길 운운하시는건 역시."
"짐작하시는 대로 라는겁니다. 이 망할 놈이 입을 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목소리보다도 더 낮은 한숨소리가 잠시 상담사의 입에서 빠져나오면서, 그제서야 상담사가 봉투 속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기존 경찰 내외를 막론하고 온갖 프로파일러들이 달라붙어 심문을 한 결과물이 정리가 되어있었지만 그 결과를 아는 형사도, 이제 막 읽어내려간 상담사도 둘 다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걸… 전부 한 사람한테 한 심문결과라고 말씀하시는건 아니겠지요?"
"맞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런."
심문 내용은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심문자를 기준으로 놓고 보아도 제각각이고, 그렇다고 같은 사람이 다른 시일에 한 결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 친애하는 범죄자 님의 정신머리가 천갈래 만갈래로 쩍쩍 갈라져 그만큼 인격이 분열되었다는 결과로 끝이 난다고 해도 그럴만 했다고 납득이 될 만큼. 하지만 그런 의료적인 부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한다면 범죄자 님의 범행은 오롯이 본인의 행동으로 귀결이 되는 문제였고, 불행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그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싸구려 책상을 가운데 두고 두 남성이 서로를 마주본다. 그리고 그 장면을, 일방적으로 특수한 처리가 된 유리창 너머로 형사들이 긴장으로 가득한 얼굴이 되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은연 중에 심문을 할 사람과, 심문을 당할 사람이 서로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사들에게 이제는 거의 최후의 희망이자 마지막 동앗줄 처지가 된 것을 모르는 눈치의 상담사 카르나르 융터르는 책상 위에 쌓아 둔 자료 중 가장 맨 위의 것을 범죄자에게 들이밀었다. 끔찍한 몰골의 사진과 통장 사본, 그리고 비밀엄금이 장점이라 잘 알려진 메신저 속 대화가 담긴 스크린샷.
"…이제 저에게는 어떤 변명을 할 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며칠을 구치소에서 갇혀지내느라 꾀죄죄한 범죄자와 달리, 말끔하게 검은색 목폴라티와 자켓을 갖춰 입은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질문으로 운을 띄우며 상대를 바라보고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데이비드 리 씨?"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인상과 닮았으되 좀 더 안색이 나쁘고 퀭해보이는 인상의 남성이 손목 사이로 잘그럭대는 수갑에 짜증을 부리며 심문실 바닥에 침을 뱉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XX전자의 부장 자리에 올랐으나 폭언과 폭행은 물론, 더 나아가 사내에 불법적인 비밀 카지노 시설을 구축하여 직원들 상대로도 사기를 친 남자는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한 죄질을 가장 최악으로 만들어버렸다. 살인이다. 다른 죄에 대해서는 순순히 인정을 하고 심문의 결과도 일치했지만 이 살인만큼은 어떨 때는 인정을 하고, 또 어느 때는 부정을 하는가 하면 동기를 천차만별로 말하는 등의 수사 방해를 지독하게도 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한 때 그의 부하직원이자, 불법 카지노에서 호구의 역할을 떠맡겨졌던 남자다. 차라리 이 죽은 피해자가 상사이자 사기꾼을 죽였다고 하면 이야기가 원활했을 터였는데. 경찰 조사로 명백해진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관계, 흉기, 당사자를 제외한 주위의 증언은 전부 일치했지만, 정작 당사자의 증언이 고의적인 수사방해라 생각될 정도로 일관성이 없었다. 죄질만 따지면 당장이라도 감옥에서 반평생을 살아도 충분하건만 그놈의 절차.
형사들은 이제 이 지긋지긋한 단계를 넘기고 그만 저 망할 놈이 법적인 심판을 제대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제는 아예 관련 자격증은 없지만 어쨌든 상담사라는 이유로 지금 놈과 독대하고 있는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자를 특수 거울 너머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이것마저도 연극이 아닐까 생각되는, 데이비드 리의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그들에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난 몰라! 그냥… 그 개같은 놈이…
-흠. 모르신다는 분이 하셨다기에는 꽤 잔인하게 손을 쓰셨더군요. 사람의 심장에 무려 47번이나 흉기를 내리 찍었다라.
-닥쳐! 그건, 그러니까….
두통이라도 이는 것인지 머리를 싸매어 쥐어뜯는 데이비드 리의 모습을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눈동자만큼이나 차갑고 냉정하게 노려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그의 혼란에 교묘한 연기인지 진심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다. 거의 세 주에 걸친 심문 탓인지 퀭한 얼굴과, 그만큼 움푹 파인 볼 그리고 푹 꺼진 눈이 이 남자를 더더욱 살기등등해 보이게 만들었다.
융터르는 고요히 죽인것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까지 할 의도는 아니었다며 거듭 중얼거리는 범죄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아예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상담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괴로움에 가득 차서 고함을 마구 질러대기 시작하였다. 한편 유리창 건너편으로는 연거푸 모르겠다 울부짖는 그 모습을 형사들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바로 건너가 놈을 제압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옆방의 이런 움직임을 모를 카르나르 융터르가 아니었다.
"진정하시지요. 그러면 다시 한 번만 묻겠습니다. 정말 왜 그렇게 까지 했는지를 모르겠다는 겁니까?"
"몰라, 모른다고! 제기랄…! 내가 왜, 내가…."
책상을 주먹으로 꽝 찧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옆방까지 울리는 것이 선연히 느껴질 정도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지금은 본래보다 상대적으로 앙상해졌다지만 그 기본적인 덩치에서 타고난 힘은 어지간한 사람 이상이었고, 곧 격분한 것이 분명한 데이비드 리가 발작적으로 주먹질을 하리라는 것을 형사들은 본능적인 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
상담사가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그 낮은 목소리로 선포하듯 중얼거린 그 말에 옆 방에서 바로 뛰어들던 형사들의 움직임도, 심문실 한구석에 소품처럼 걸려있던 싸구려 시계의 초침도 전부 일제히 멈췄다. 갑작스럽게 이 주변 모든 것들이 일제히 멈추자, 데이비드 리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해 일어났고 곧 윽박지르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있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싸늘하게 말했다.
"뭐야…!?"
"그만 속일 생각을 하시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혼란스러움을 실컷 맛봤다면 이제 충분하지 않나?"
"이런 들켰네."
곧 그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동자의 색이 본래 흰색이여야 할 것이 검은색으로, 또 검은색이여야 했던 것은 짙은 붉은색으로 바뀌어있었다. 지금까지 형사들의 수사를 방해한 그 근본적인 원인은 정말 아쉽다는 듯 데이비드 리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참 좋았는데 말이야."
"당신이라는 존재를 저기 형사들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고,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먼저라."
"하! 도통 궁금해하지도 않는 건— 컥!!"
"그만."
조금 전과 똑같은 말을 하며 어느 샌가 빼든 대천사의 검이 데이비드 리의 몸을 꿰뚫었지만 날붙이가 살갗을 뚫고 지나가면 응당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피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멈춰진 탓으로 인해 새로운 가해자가 탄생하는 순간은 오직 두 사람만 인지할 따름이었고, 칼에 찔린 남자가 쓰러짐과 동시에 곧 꺽꺽거리며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기에 이르었다. 이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던 융터르가 마뜩찮아하는 얼굴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과연, 질릴 정도로 힘을 얻었군."
"제기랄—!!"
"이미 뭘 원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 그만하지. 사람들이 혼란해 하는걸로 힘을 얻으려는 노골적인 수작을 굳이 알 필요는 없었지만." 그리 말하는 대천사가 그 쓰러진 몸 위로 다시 칼날을 무자비하게 꽂았다가 도로 빼며 말했다. "그러니, 썩 나오시지. 그만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곧 데이비드 리의 목소리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괴물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것과 함께 새까만 연기가 그 입에서 튀어나왔다.
당황한 형사들이 상담사가 그 흉악한 범죄자와 독대하는 심문실 문을 벌컥 열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가 된 이후였다. 데이비드 리는 여전히 그 엉망진창이 된 머리를 책상에 박은 채 울부짖고 있었고,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있던 상담사는 이 기습적인 방문에 얼떨떨해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그저 괜찮다고 그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거… 당초에 뭐가 어떻게 된거야?"
"아, 일단 어디서부터 설명드려야 하나…."
상담사는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거리고는 조용히 설명해주었다. 수사를 지속적으로 방해하면서 시간을 끌면 혼란이 올 것이고, 그를 통해 시간을 끌며 법적으로 유리한 부분을 차지하려고 했었다는 의도였다는 말에 형사들은 저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이를 박박 갈아댔다.
"근데 그 전략을 왜 이제 와서 포기한 겁니까?"
"음…. 설득했습니다."
상담사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어물쩡 넘어가는 느낌이 없잖아 있어 형사들은 당장은 고마워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담사가 이만 물러가겠다고 말하자마자 CCTV를 돌려보려고 저마다 머리를 모았지만 당혹스러움은 영 가시지 못했다. 데이비드 리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 이후로 화면에 노이즈가 잔뜩 끼는가 싶더니 아예 녹음이고 녹화고 하나도 되지 않은 것이다.
"허, 이게 뭔 일이야?"
"내, 내가 이래서 여기 CCTV 싸구려니까 좀 바꾸자고 했잖아."
"아니 근데 뭐 CCTV 돌려볼 게 있긴 했냐? 우리 저 장면 보자마자 바로 넘어왔는데?"
잘 해줘봐야 10여 초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짤막한 시간 동안 상담사가 어떤 설득을 했는지 경찰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했지만 모든 이들이 납득할만한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물론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상담사를 데려온 그 형사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 일이 있은지 며칠 뒤 다시 만난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은근슬쩍 이야기를 털어놓아보았지만 그는 그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만 말했다.
"그 친구는 뭐든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것 뿐이네. 미리 그 속내를 다 알아 차리고 말하는데 누군들 설득당하지 않겠나?"
"…다 안다는게 도대체 뭔 소리야?"
"있네, 그런거."
간만에 자유라며 락 글라스 안의 독한 위스키를 홀짝이는 그는 형사로서는 도통 영문 모를 의구심을 남긴채 다시 킬킬 웃었다.
'공개 썰입니다. > 교류행동 단편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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