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만난 것은 어디 특출 난 것 하나 없이 흔한 클럽이라고만 해두겠다. 정말이다. 눈이 휘둥그레하게 바뀔 만큼 사람들의 외모가 훌륭했던 것도 아니고, 내놓는 술이야 비싼 것들이 섞여있다지만 주로 중저가의 것들이 많으며 무대나 틀어놓는 음악도 어디선가 한 번씩은 보고 들을 것 같은 익숙함의 정점이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난 것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고나 해야 할까.
시원한 칵테일이 내뿜는 달콤한 향이 코 끝에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내 앞에 있던 클럽의 조명을 거의 가리는 거대한 체구의 남성이 잔을 내밀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함께. 내가 여자 거나 혹은 그쪽에 관심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별로 탐탁지 않아도 일단 그 친절에는 친절로 답해주는 것이 사회적 행동이니 일단은 받긴 했다.
"댁이 술값을 내는 걸로."
"그러지."
아직도 내 퉁명스러웠던 대꾸에 호쾌한 웃음과 함께 답을 돌려주던 그 자,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만났을 적의 기억이 선명하다. 흔한 표현이라 듣는 당신은 신물이 나겠지만, 정말로 그 만남이 내 삶을 바꿨다고 해도 좋을 정도니.
덩치가 웬만한 농구선수보다도 더 커다란 그,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자기소개와 같이 건넨 칵테일에 퉁명스러운 어조로 답을 하면서도 받아 든 남자가 맘에 든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스스로를 형사라 소개한 자는 그 웃음에 짐짓 인상을 찡그리면서 어떻게 저 시끄러운 음악소리보다 더 시끄럽게 웃을 수 있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상대방은 그것도 자기 매력이 아니겠냐며 웃어넘겼다.
형사가 코웃음 치며 중얼거렸다.
"매력이란 말이지…."
"그럼! 이런 곳에서도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중요한 것 아니겠나?"
형사가 그런 캘리칼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키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겉을 두른 코트부터 그 구두까지 하나같이 비싼 양복차림, 살짝 삐져나온 앞머리는 마치 쉼표처럼 살짝 꺾인 채 말끔하게 넘긴 머리, 콧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은 그 모습은 이런 클럽 같은 곳보다는.
"차라리 비싼 곳으로 가버려라―,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 아닌가?"
"방금 전의 술값이라 생각하고 솔직히 말해주겠어. 그래 맞아. 너무 눈에 띄잖아! 당신."
작게 화를 내는 형사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이제는 자리를 뜨길 바라는지 그가 건네준 칵테일을 한 번에 목구멍 속으로 쏟아붓고는 그 빈 잔을 지나가던 웨이터 손에 들린 쟁반에 얹었다. 플로어가 내려다보이는 2층에서 형사는, 플로어 위에서 외설적인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끈적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노려보았다. 누군가를 명백히 찾는 시선.
그 시선을 즐겁다는 듯 같이 쫓아보던 그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천하의 형사님이 이런 자리에 와서 같이 춤추실 상대를 찾는 건 아닐 테고. 그 혼잣말에 형사가 두통이 이는 것인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면서 그만 신경을 쓰라며 욱하듯 대꾸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옷차림부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이 저렴한 클럽과 위화감이 드는 사내가 오묘한 말투로 그에게 대뜸 질문을 했다. 속삭인다고 하기에는 또렷하고, 또렷하다고 하기에는 간질거리는 느낌의.
"뭘 원하는지, 솔직히 말해보게."
캘리칼리의 목소리는 클럽 안의 그 시끄럽고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음악소리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았지만, 정작 상대방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렸던지 형사의 두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커다랗게 변했던 눈이 곧 잠시 흐릿해지면서 형사의 목소리도 그와 제법 비슷하게 바뀌었다.
"이 클럽…, 이 안에 있을, 마약상을… 잡고 싶어."
"아―하! 마약상이 이 클럽 안에 있나?"
"…그래."
형사의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흡족한 얼굴을 한 상태로 신이 난다는 듯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곧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알아차린 형사가 당황해 욕설을 섞어가며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다. 건네준 술에 약을 탄 것은 아닌지, 그 마약상이 당신은 아닌지 등등.
캘리칼리는 양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황급히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그 얼굴에는 웃음기가 한가득이었다.
"난 그저 궁금해서 질문을 했고, 자네는 그 질문에 답을 해준 것뿐일세. 한치의 거짓도 없이."
"웃기지 마! 여기에 그 개새끼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밀이었는데, 그걸 내 입으로 털어놓게 했잖아!"
"오호라, 이제는 자기 입으로 그게 기밀이었다고 떠벌떠벌 말할 참인가?"
"젠장!"
시끄러운 음악 덕분에 겨우 그들의 대화가 묻히고 있는 것을, 형사가 다행으로 여기라며 윽박지르고는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여전히 플로어가 잘 보이는 난간에 몸을 여유롭게 기대고 있던 상대방이 유들유들한 몸짓으로 그에게 다가와 대뜸 어깨를 걸쳤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 압도적인 키 때문에, 형사의 어깨에 자신의 팔뚝을 얹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 맞지 않게 친밀감을 과시하는 행위도, 형사에게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저리 치우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럼 내가 자네의 오해를 풀어주지. 그 나쁜 놈을 잡는데 도와주겠다―. 이걸세."
"뭐?"
"한치의 거짓도 없이, 이 자리서, 그 누구에게라도! 하물며 공증을 서 달라해도 좋아. 내 나름대로 성의표시나, 뭐… 그런 거라 생각해 주면 좋겠군."
두 안륜근 중 하나가 순간적으로 상하운동을 하는 행위, 세간에서는 이를 간단히 윙크라 부르는 그것을 2m가 넘는 거한이 하는 모습에 형사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호의를 사고자 시도한 행위라면 애석하게도 전혀 안 어울렸다. 방금 전까지 기밀을 나불나불 털어놓게 만든 사람이 이제 와서 갑자기 자신을 도와준다는 말만큼 세상에서 가장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도 저 당당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형사는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어대다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좋아. 도대체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캘리칼리는 이제야 모든 것이 잘 풀린다는 듯 너털웃음을 실컷 터트려대며 웃었다. 귓전이 울려대는 그 민폐에 형사는 자신의 선택을 순식간에 후회했지만 그 무르기를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듯, 거한이 형사의 어깨에 걸친 자신의 팔뚝으로 요령 좋게 이리저리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가 도와준다고 했지만 정작 하는 질문이라고는 단 하나였다. 자신에게도 건넸었던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그 질문. 물론 그 추상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들은 제각각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등등.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도 가지각색이었다. 한껏 신나게 춤추고 진이 빠진 채 테이블에 앉아 낄낄거리는 사람들, 술에 잔뜩 취해 널브러진 사람들, 구석진 곳에서 음침하게 서있는 사람들. 그러나 점차 형사는 거한의 행동이 점차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알았다. 행복해지고 싶다. 한참을 저 자의 페이스에 휘말려 잠시 깜빡했지만, 문제의 마약을 일컫는 별칭이 'Be Happy '라는 사실도 함께.
"당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딘가 눈이 풀린 채 몽롱한데 입가에는 실실거리는 웃음이라. 누가 보더라도 팔뚝에 바늘 좀 찔러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얼굴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 난 그 흔적만 좇았을 뿐이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걸 순순히 말해주는 건 이상하잖아."
형사가 제기한 그 합리적인 의심에 캘리칼리는 작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 말도 맞기는 하군! 그러면서도 형사를 내려다보는 그 눈은 묘하게 붉은빛이 감돌아, 클럽의 한적한 구석진 곳에서 형사가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인 위기감에 몇 발자국은 뒤로 물러났다. 애써 떨리려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형사가 조심스럽게 이 의미불명의 협력자에게 질문했다.
"…당신 누구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소개를 했는데, 이거 서운하구만.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 했을 텐데."
"아니, 이름을 묻는 게 아니야. 당신의 정체가 뭔지를 묻는 거지."
"흠.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
그저 한 발자국 성큼 움직인 것이지만, 덩치가 덩치인 탓에 캘리칼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형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쑥 내밀며 다시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을 받는 상대방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치아가 살짝 보였다 말기를 반복한다. 형사는 이제 위압적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그 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붉은 기가 소용돌이를 치는 것 같다는 착각을 받고 있었다.
두렵다. 한없이 두렵다!
형사는 문득 자신이 이를 잘게 떨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저 덩치가 인상적일 뿐인 사람이건만 어째서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그런 의심이 쏜살같이 날아와, 형사는 본능적으로 답해야 할 것을 순식간에 도출해 내었다. "아니."라고. 저 자의 정체를 정말로 알게 된다면 그건 틀림없이 한 사람으로서의 이성이 붕괴될 것이라는 직감이, 맹렬한 고함을 지르는 그것이 곧 형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대답하기까지 그저 몇 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짤막한 시간이었지만, 형사는 그 사이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으며 심지어 싸구려 EDM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 자의 질문이 그 모든 현상을 만들어냈고, 만약 방금의 그 질문에 순순히 '보고 싶다'라고 답했다면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세운 형사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유유히 지켜보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송곳니까지 드러내는 웃음을 빙긋 지어 올리며 말했다.
"좋은 선택이군! 그럼, 자네가 알고 싶은 건 역시 그…, 만나고 싶은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로 계속 생각하면 되겠나?"
"그래, 제기랄. 역시 당신이 준 술, 거기에 뭐라도 탄 것 같은데."
"오오―, 그럼 공범인 내가 진범을 잡게 도와준다 이건가? 이건 이거 나름대로 재밌는 이야기구만!"
형사가 진저리를 치며 말해도, 그저 그는 유쾌한 농담을 들었다는 것 마냥 계속 껄껄 웃고는 다시 어깨에 자신의 팔 하나를 얹은 채 계속 가자며 몸을 반은 강제로 이끌고 클럽 곳곳을 다시 누비기 시작했다.
"당신들, 누구야?!"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은, 문제의 약이 지니는 독특한 웃음기가 사라지기 일보 직전인 사람에게 질문을 건넸을 적의 순간이었다. 형사와 캘리칼리가 등 뒤를 바라보았을 때, 누가 보더라도 자신들을 불러 세운 것이 분명한 그 자의 외모는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해주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퀭한 눈과 정돈 안된 수염이 무성하게 자란 채 홀쭉하게 패인 볼, 자세히 보면 순간 움찔거리는 팔 따위까지. 더욱이 나름대로 수질관리 한다며 여전히 1층의 떡대들이 고래고래 지르는 그 현장을 생각하면, 이 클럽 안에서 저 사람이 들어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럼에도 들어왔다면 그것은. 형사가 주머니 속에 있는 수갑의 감촉을 느끼며 먼저 말했다.
"그 쪽부터 자기소개부터 좀 해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대뜸 화부터 내는 사람한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
언제 저 사람의 뻔뻔한 말투가 입에 배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형사는 제법 유들유들한 태도를 유지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천성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두 사람은 전혀 당황도 하지 않았고, 캘리칼리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아, 그래. 우리도 그 행복해지고 싶어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거든."
"뭐, 뭐야. 당신들도 고객님이셨나? 젠장, 전달 받은 건 없는데? …어쨌든 들어오쇼. 여긴 눈이 너무 많으니까."
애석하게도 말하는 투로 봐서는 직접적인 공급책이라기보단, 일종의 안내인 정도의 위치인 듯 하였다. 형사는 그 결과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자주 투약하시는 일종의 우량고객이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흔히 보이는 이야기였으니. 곁눈질로 슬쩍 본 캘리칼리는 그저 이 상황 자체가 재밌다는 듯 입가에는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은 채 그 뒤를 휘적거리며 따라갈 뿐이다.
지나가면서 보기에는 그저 어두운 벽에 기댄 채 서있는 덩치지만, 안내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 등 뒤에 선 사람들도 새로운 고객이라 생각한 것인지 살짝 물러나며 한 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저 그림자라 생각했던 부분을 자세히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제법 치밀한 이 광경에 형사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기야 경찰들이 요새 눈에 불을 켜고 잡아들이려는 상황인데 1층 플로어에서 대놓고 파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슬슬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봐, 이것까진 필요없는데."
"음? 뭔 소린가?" 형사의 그 작게 소근거리는 목소리에 캘리칼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오늘 여기 온건 말하자면 사전답사 정도라고. 정보를 얻었으니 얼른 보고라도 하든지 해서 지원을 끌고 와야 해."
저 아래에 얼마나 많은 일당이 있을지는 딱 하나만 확신 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징그럽게 많겠지. 아무리 덩치가 좋은 동행인이라고 한들 예로부터 머리 싸움에 장사 없다고 했다. 역시 이럴 때의 정석은 이 쪽도 사람들을 더 불러와 떼거리로 상대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가 간과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딜 보아도 절대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답시고 곁에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형사의 말에 가벼운 코웃음을 칠 뿐 전혀 되돌아 가거나 연락을 하게끔 협조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성큼성큼 앞으로 걷는 걸음걸이에 유쾌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라고는 고작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에 머리를 자꾸 부딪치는 바람에 제법 성가시고 아프다는 것 정도였다. 그 투덜거림이 지겨웠던 것인지, 뒤따라 오라던 안내인은 이미 저멀리 앞서가자 거한이 그제서야 허리를 숙여 형사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자네가 원했잖나? 마약상들을 잡고 싶다고. 소원을 말해달라 했으니 듣기만 해선 쓰나."
"빌어먹을…."
형사가 낮게 읊조렸다. 어쩌다 자신의 당장 원하는 바를 토해버렸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뭔가 숨겨둔 비장의 한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거한이 그에 걸맞는 큼직한 손으로 자신의 등을 팡 소리 나도록 때렸다.
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뻔한 마음을 겨우 참았다. 클럽 안을 눈 비비고 찾아봐도 그럴싸한 장면을 못 봤던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그 클럽 자체가 마약상의 근거지였던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꺼운 비닐을 마치 커튼처럼 매달아 놓은 구역 너머로는 마스크 따위를 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고, 그 바깥에는 총을 어깨에 두르거나 손에 쥔 채 자신들을 노려보는 조직원들이 감시하는 광경에서는 긴장감에 침을 살짝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호신용 권총 한 자루에 총알은 얼마 되지도 않으며, 보조무장으로 삼단봉 하나만 겨우 들고 있다. 방탄조끼도 없는 처지에 저들을 전면에서 제압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가? 게다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애당초 이 클럽의 손님에 불과한 처지이니 자신보다 상황이 나쁘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 덩치만 큰 놈의 얼굴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바로 껄껄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유쾌함을 여전히.
"흠, 오래 기다리셨소."
거한에게 신경쓰다보니 적진 한복판에 도착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형사는 곧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방에
도착해있었다. 그 중심에는 놈들의 두목이 보란듯이 책상에 돈과 약을 쌓아둔 채로 신규 고객님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꽤나 중독되었다는 듯, 동공이 지나치게 커져있는 그 모습은 제법 멀리 떨어진 형사에게도 잘 보일 정도다. 이 빼도박도 못할 공간에 지원으로 더 많은 경찰들이 같이 있었더라면, 형사는 내심 안타까운 마음을 곱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캘리칼리는 유들유들한 말투로 그 두목에게 소문 듣고 찾아왔으며 자신들도 이 사업에 관심이 크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럼 그 쪽은?" 두목이 형사를 향해 턱짓으로 가리키자, 캘리칼리도 형사를 흘깃 내려다보는 듯 하더니 바로 답했다.
"소문 듣고 온 내 친구일세. 이 쪽도 잘 봐달라고."
"친구, 친구라…."
두목이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렸는지 보기 싫도록 쩍쩍 갈라진 손을 파리처럼 샤샥 소리 나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 시커먼 속내가 짐작가기 시작한 형사는 속으로 역겨워서 혀를 내둘렀다. 분명 캘리칼리의 고급진 옷차림을 보고 자기네 '사업'을 상류층에도 확장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두목이 생각을 정리했는지 킬킬 웃으면서 등 뒤로 자신들을 지켜보던 부하에게 손짓을 하며 이제부터 사업 이야기를 할 터이니 나가라고 말했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두목이 권한 자리를 성큼 앉은 부자는 능글맞은 미소를 입에 띄우며 대뜸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말해보게."
"나, 난…."
순간 두목의 얼굴이 멍하게 바뀌면서 입을 열었고 그 내용은 지극히 단순했다. 마약을 더 많이 풀어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들도 내 약이 없으면 못 살게끔 만들고 싶다, 라는 것. 지극히 저열하고 지저분한 본심에 형사가 작게 쌍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대화의 주도권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있다. 자신이 함부로 끼어드는 순간 모든 것이 망한다.
그러나 저 저열한 욕망을 털어놓게 만든 당사자의 얼굴은 지금까지 봐온 형사에게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웃기나 하는 얼굴일 줄 알았건만, 저렇게 냉정하게 나올 수 있나? 앉았던 의자가 뒤로 거칠게 밀려나며 그가 내뱉듯 말했다.
"대화 끝일세. 정말이지 못 들어주겠구만. 이 죄 많은 이들을 구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뭐야, 이대로 가겠다고? 하! 가겠단 말이지! 이봐!!"
그 말을 끊고 두목이 으르렁거리면서 고함을 치자 다시 그 문이 왈칵 열림과 동시에 부하들이 총을 겨눈 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캘리칼리가 송곳니를 드러낼 정도로 씩 웃으면서 자신이 할 말을 마저 끝냈다.
"아멘."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그 모든 일을 이야기 하라고 한들 내 경험은 이게 전부였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졸개들의 무장이 해제된 채 꼴불견스럽게 바닥에 자빠진 상태였고, 두목도 심각한 멍 투성이인 상태로 비슷한 꼬락서니가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내 손이 이 모든 업적을 만들어냈는가? 그건 아니다. 심지어 총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러니 이 모든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저기, 내가 황급히 부른 경찰들에게 이 일당들이 끌려가는 것을 유들유들한 얼굴로 바라보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다.
한편 그런 그는 그의 키와 굉장히 대비되는, 아주 작달막한 사람에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인 느낌이었지만, 혼나고 있는건가? 저 막무가내가? 게다가 더욱더 신기한 점은, 놀라서 잠시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에 그 작달막한 사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이!"
그런 그가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쾌활한 목소리로 한 손을 들어가며 나를 불렀다. 마침 잘 되었다. 나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니까. 여전히 현장을 부산하게 만드는 경관들을 이리저리 피해, 골목길 입구에서 능글맞게 웃은 채로 나를 기다리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진짜로 도와줄 줄은 생각도 못했는걸."
"말했잖나. 도와준대도. 어떤가?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었나?"
"그래, 근데…, 왜 날 도와준건가?"
"아―하하하하!! 이거 궁금증이 많은 친구구만, 그래 이제는 그걸 원하는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호쾌하게 웃고서는, 어쩐지 입을 달싹거리게 만드는 그 질문에 나는 어찌 답할까 생각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래, 이제와서 그런 것 하나하나 궁금해하는 것 자체도 피곤하다. 그저 저 사람 입장에서는 충동적인 행동이겠지. 그런 내 반응이 싱거웠던 것인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코웃음을 가볍게 치고는 불쑥 그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덩달아 마주 잡고 악수를 하고 나자 내 손에 잡힌 건 그의 명함.
"뭐야, 이건…?"
"다음에 또 다시 만나자고! 그 때가 언제일진 모르겠지만 그게 조만간일 것 같아서 말이지. 자화자찬이지만 내가 감이 좋거든."
그리 말하는 그 덩치 큰 친구는 유유히 골목길 안쪽으로 사라져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말을 부정했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일에 관한 것이니 더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클럽에서의 사건으로 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는 참 괴상하고 괴팍한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결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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