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멤들 간의 친목도모라는 미명 아래로 단체 MT를 올 여름에도 하게 되었다. 메타'버스'에서 속속들이 내려, 자기 짐을 펜션 안으로 들여놓는 이들의 얼굴은 지극히 편안했다. 어차피 고멤 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도 종종 보고, 합방에서도 보는 사이이니 그저 익숙기에.
여기 이들을 제외하면.
"캘리칼리 님, 작년 MT 때처럼 실수하시면 안됩니다."
"알았다니깐! 알았다고, 조심하면 되잖나. 응?"
BBQ를 담당하기로 한 카르나르 융터르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유독 굳은 얼굴을 한 채로, 그 재료들이 가득 담긴 아이스박스를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옮겼다. 작년의 일을 모르는 노스페라투 호드는 영문을 모르는 채로 눈을 끔뻑 감았다 뜨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했고, BBQ 재료를 어떤 취급주의가 필요한 물질을 다루는 것마냥 두 중년이 옮기는 것을 곁에서 멍하니 보던 뢴트게늄이 투덜거리며 지나갔다.
"아— 또 이러다가 작년처럼 사고 일어나는거 아닌가 몰라?"
"아니, 사고, 말입니까?"
호드는 저도 모르게 식은 땀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실수가 아니라 아예 사고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덩치가 2m에 달하는 그가 뢴트게늄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는 바다를 향해 끼얏호! 라는 조금 요상한 소리를 내며 뛰어들고 있어 차마 잡지도 못했다.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한 그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비밀소녀다.
"실은 말이에요—, 캘리칼리 님께서 무턱대고 덜 익은 고기를 먹고 나선 크게 배탈이 나셨거든요—."
나이도 먹을대로 먹어서는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밑손질에 정신이 없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여전히 멀뚱히 서있던 호드를 불렀다. 종종 인스타그램으로 팬들과 소통을 할 적에 은근슬쩍 요리를 잘한다는 어필을 하더니, 흔히 생각할 수 있는 BBQ 재료 외에도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것들이 제법 늘어져있는 자리 한가운데의 그가 부른 이유를 조근조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이 길기로 유명한 그 치고는 무척이나 짧고 간단한 요구.
"아이스박스에서 고기 좀 꺼내주시겠습니까? 캘리칼리 님이 영 못 미더워서…."
"오, 알겠습니다."
"아니 내가 못 미더워?"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무어라고 한 소리했지만, 호드는 얼떨결에 손을 씻고 급히 아이스박스에서 고기로 추정되는 붉은 덩어리를 꺼냈다. 그런데 비닐팩으로 포장되어있는 그 물컹한 것을 건드린 호드의 표정이 이상했다. 고기 냄새가 이렇게나 이상했던가? 아무리 요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고 한들, 과연 이걸 식사로 대접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얼굴로 반영된 호드가 말없이 내밀었고….
"아니 이거, 상했는데요?"
"뭐!?"
"Oh my god…."
당황한 융터르의 목소리에 소파에 늘어지듯 누워있던 캘리칼리마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른 재료들은 문제가 없었으니 오롯이 고기가 문제라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 과할 정도로 빠른 부패에 무슨 원인이 있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판매하는 쪽에서 포장을 할 적에 래핑을 잘못 해서, 밀봉이 안 되어있었다. 슬슬 코가 괴로울 정도로 썩은 내를 풍기는 그것을 호드가 재빠르게 번개로 지져대서 완전히 불태워버렸지만…. 떨떠름한 어조로 캘리칼리가 물어왔다.
"그러면… 오늘 저녁의 BBQ는 채식이 테마인가?"
"되겠습니까?"
융터르가 신랄하게 비꼬듯 말하면서, 다른 재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론 채소들도 구워먹으면 맛있다. 하지만 입맛이 채식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고기를 더욱 선호하는게 사람들의 심리이지 않던가. 자신있게 오늘 저녁을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중년들은 졸지에 이번 MT에서 고멤 사상 역대 최악의 고로시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더욱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 마트까지, 편도로, 1시간 넘게, 걸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3시간 정도가 남았고. 근데 호두야, 너 날아다니지 않니?"
"Oh."
물론 이 펜션촌 내에서 지정된 마트가 있다만, 독점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가격이 황당할 정도로 비쌌다. 그러니 나름대로 질과 양을 골고루 챙기기 위해선 마트로 가는 것이 시급한 사항이다. 자동차로 가면 못해도 1시간 20분은 충분히 걸리는 마트라지만 작년과 달리 올해는, 과학팸과 기존 두 마법팸 멤버들을 제외하더라도 노스페라투 호드라는 무려 마음대로 비행을 할 수 있는 고정멤버가 추가되었다. 캘리칼리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한 것인지 알아차린 그가 재빠르게 하늘을 날아 올랐다.
아직 펜션에 남아있는 두 사람은 이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도 BBQ 준비를 해야 한다.
"좋아, 그러면… 우린 뭘 하면 되나?"
"일단은 재료 손질부터 하지요. 마트에 도착하면 호드 님께서 영상통화라도 해주실 겁니다."
"이 몸이 심혈을 기울여서 산 좋은 고기였는데, 뭔가 속이 쓰리구만."
아쉽다는듯 입맛 다시는 소리를 제법 크게 낸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말에 융터르도 조용히 동의해주었다. 그리하여 두 중년은 이제 광속으로 날아가고 있을 호드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제발 일찍 돌아와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Oh…. 저, 무지 바쁩니다. Busy."
그러나 노스페라투 호드 또한 어쩔 수 없이 바빴다. 휴양지로 향하는 길목은 어쩌면 이다지도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간단하게는(?) 소매치기부터, 크게는 교통사고까지. 마치 마트로 향하는 그의 발목을 붙잡기라도 하는 듯, 그의 히어로적 양심을 심각하게 건드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야 말았다.
"망했습니다. 고기, 빨리, 사야 합니다. Late."
사람들을 도와주고 구하는 것이 천직이라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좋지만, 지금 당장 구해야 할 것은 고기다. 어쩌다보니 재료 공수의 역할을 맡아버렸지만, 자신은 구해주기만 하면 될 노릇이 아니던가? 차를 타고 마트에 도착하는 것과 비교하자면 아주 약간이나마 나을 정도로, 그는 어쨌든 정육 코너에 히어로 코스튬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들이닥쳤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아주 충분했고, 펜션의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흥미로운 뉴스거리의 제보가 빗발쳤다.
저 멀리, 저녁놀이 지는 바닷가에서 다른 고멤들이 왁왁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반대로 고요한 펜션 안은 얼굴에 그늘이 잔뜩 진 두 중년이 노스페라투 호드가 그 문을 열고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황당할 정도로 늦어, 영상통화로 정신없이 그에게 어떤 고기를 사야 할 지 일러주던 것이 떠오른 카르나르 융터르가 정말로 송골송골하게 올라온 식은땀을 그제서야 닦아내며 말했다.
"정말 아슬아슬하셨습니다. 원래대로라고 하면 고기를 재워서 불판에 올리려 했지만…."
"이리저리 말 돌리느라 죽는 줄 알았네. 빨리 하자고."
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그 재료 준비를 도우느라 녹초가 되어버린 펜션 내 주방으로 말하자면, 고기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준비가 된 상황이다. 찍어 먹을 소스, 본래라면 재우는 용도지만 어쩔 수 없이 바르게 될 것들, 쌈채소를 비롯해 구이용까지 잘 손질 된 야채들과 버섯들은 물론 심지어 옥수수까지 빈틈이 없다. 호드의 손에서 거의 낚아채듯 고기가 가득한 봉투를 받아든 융터르가 서둘러 마지막 손질을 시작할 무렵, 이제 놀기도 어지간히 논 다른 고멤들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 이런. 아직 손질이 덜 끝났는데!"
"좋아, 그러면 이 몸이 먼저 야채부터 구워주지. 대신 서두르라고. 호드 자네도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오게."
과연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굽기 솜씨를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기에 양념을 거듭 바르는 융터르의 손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고 호드가 옷을 갈아입고 나올 무렵에는 굉장히 육중한 쟁반을 낑낑거리며 들고 나오는 오늘의 저녁담당이 보인다.
그리고 마당에는 원치 않는 불쇼가 벌어졌던 흔적이 보였다.
"아—니 이거! 우리 다 쫄쫄 굶으라는 겁니깟!"
"어—아하하하! 아 이거 불 세게 하면 될 줄 알았지!"
기세좋게 야채를 구워주겠다던 캘리칼리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멋쩍게 웃어 넘기고, 대신 프리터가 그릴 앞에 서서 그제서야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아스파라거스나 가지와 감자, 그리고 옥수수를 저마다 접시 위로 올려주는 모습이다. 그리고 한쪽 바닥에 널부러진 쓰레기 봉투에는 차라리 저걸 숯으로 다시 재활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탄 야채들의 흔적이 보였다. 안 봐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불보듯 뻔한 것이라 호드와 융터르는 감히 중년즈 사이에서 확고한 선배의 자리를 차지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둘 다 오묘한 얼굴로 바라보고, 또 서로를 바라보았다.
호드가 간만에 목소리를 높여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늦은 만큼 얼른 하겠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왁파고나 하쿠를 제외하면 이번 저녁을 기대한 다른 고멤들은 저마다 한소리씩 하려고 했으나, 무릇 잘 달궈진 철망 위로 올라 익기 시작하는 그 특유의 소리와 향은 불만보다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했다. 물론 고기 외에도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 호드 님 오늘 뭐 출동 나갔어요?"
"어유?!"
적당히 배가 불러질 쯤, 슬슬 핸드폰을 꺼내 SNS를 보던 독고혜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호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늘 이 지역에 갑자기 등장한 노스페라투 호드의 연속적으로 일어난 그 영웅적인 행보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기사화 되어있었다.
그녀의 이목을 끄는 그 독특한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뼈에서 갈빗살을 뜯고 있던 호드에게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아직은 이런 이목을 끄는 것에 영 적응하지 못한 그가 나지막하게 "오" 소리를 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늦은 사정에 대해 전말을 이미 아는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카르나르 융터르가 서로를 잠시 힐끗 보고는, 곧 캘리칼리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제법 과장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고기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썰 좀 풀어줄까?"
모두의 기대에 찬 눈이, 모든 고멤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거대한 이 남성에게로 자연스럽게 향했고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의 몸짓과 걸맞게 연극적인 목소리가 테이블 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감탄사가 섞인 목소리 사이로는 아직도 구울 고기가 한참 남아있으니 이야기는 해가 지도록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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