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나는 조금 빛바랜 것들이 좋았다
*후기 : 열심히 썼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결과가 더 좋을 것을 알기에 저는 이만…!
슬슬 초록색으로 주위가 물들기 시작할 6월 무렵, 고멤 엔터테인먼트로 메타'버스'가 도착하고 교복을 입었으되 어딘가 학교가 지정한 규칙과는 조금씩 어긋난 것이 분명한, 그리고 머리에 분홍색으로 된 '구르프'라 불리는 헤어롤을 착용한 학생이 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건물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내부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대신.
"아아 진짜아―!!! 캘리칼리 님 말대로 추천 했다가 틀딱 취급 받았잖아요, 이거어―!!"
"아니, 혜지야. 그건 좀 너무, 너무한 거 아니냐? 응?"
여고생에게 지적을 받은, 전 고멤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평소 뻔뻔하기로 유명한 그 답지 않게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다. 알게 뭐냐며 방 하나에 들어가기까지 그녀의 뒤를, 심지어 눈을 맞춰준답시고 그 허리를 숙여가며 뒤를 쫓아가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꽝 닫힌 문 때문에 머리를 찧을 뻔 했다. 그 소리가 사뭇 요란했던 탓에 다른 방문이 살짝 열리고는 다른 남성 하나가 고개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나르 융터르다. 그가 언짢음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캘리칼리 님, 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이거."
그가 특유의 '느어어―'라는 목소리를 끌며 망설이다가 결국 사정을 설명해주겠다면서 메인 홀로 나오라는 말을 했고, 그도 순순히 응했다. 그러나 막상 두 중년은 객관적으로 따져 보아도 꽤나 긴 침묵을 유지한 채, 메인 홀의 그 푹신한 소파에서도 서로 거리를 제법 둔 상태로 앉아있기만 하였다. 그러다 한가운데에 올려진 하쿠 모양 AI 스피커가 정각이 되었음을 알려줄 때쯤. 툭 내뱉는 목소리로 캘리칼리가 설명해주었다.
"내가… 그, 혜지한테 영화를 하나 추천해줬거든."
"영화요?"
"그래, 더 매그니피센트 세븐. 리메이크 말고 한 70년대가 좀 안되게 나온 거 말이야."
사짜 심리상담가가 명작을 추천해주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와 잘 어울리는 느낌의 영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독고혜지가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그 무언의 질문에 이제 마음을 내려놓은 캘리칼리가 선선하게 답해줬다.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고 애매하게 붕 뜨는 시간 동안 영화를 교실에서 보기로 했다는 것.
그제서야 아까의 소동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심리상담가가 나지막하게 외마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분명 명작이긴 한데 그야말로 신세대인 독고혜지가 과연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기 때문이었으니. 이제는 굳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영화기술로 촬영된 것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구려보이겠지.
떨떠름한 얼굴로 캘리칼리가 저 혼자 멋대로 중얼거렸다. 그거 명작인데.
"명작이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에서 영감을 얻었으되 훌륭하게 미국식으로 해석한 것이니까요."
"아― 자네도 영화 볼 줄 아는구만!"
그 중얼거림을 곧바로 받아 같은 세대라 그런 것인지, 융터르의 이런 긍정적인 반응에 기운을 차린 캘리칼리가 내심 서러웠던 것인지 속내를 조금씩 터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문득 목이 아파진 틈을 타, 그가 상대방의 약간 떨떠름한 얼굴을 알아차렸다.
"근데, 그… 융터르 자네도 좀 얼굴이 썩 좋아보이진 않는데."
"아…. 저도 실은 최근에 캘리칼리 님과 비슷한 일을 겪어서 말입니다."
"비슷한?"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티어게임 애니메이션 합방에는 그 이후로 약간 사소한 문제가 하나 발생하였다. 당시 가장 대립각을 세웠던 두 사람, 뢴트게늄과 히키킹과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견해차이가 이후에도 종종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들었던 충격적인 말.
"저더러 취향이 아재라고 하더군요."
"그건 맞는 말인 거 같은데."
"아니 캘리칼리 님까지."
낮은 목소리의 상담사가 서운한 티를 숨기지 않자, 캘리칼리가 크게 껄껄 한참 웃고는 몸을 훌쩍 일으켜 어디론가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에 맞춰 시선이 돌아간 융터르의 눈가가 가늘어지며 그 치고는 제법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멤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에서 가장 존재감이 확고한, 해루석의 미니 루숙바로 이 무법자가 거침없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아니, 거기 들어가도 됩니까?"
"무얼! 종종 다른 사람들도 여기서 멋대로 한 잔씩 하던데."
평소 술을 그리 마시지 않던 융터르는 그 말에 안심을 도통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면 분명 대충 술병 째로 마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러나 융터르는 곧 생각을 잘못 했음을 반성해야 했다. 처음에 술병을 카운터 위로 텅 소리 나도록 올려놓았을 때는 몰랐지만, 이후에는 그 안에 마련된 작은 냉장고 문을 열고 다른 재료들도 슥슥 꺼내 올려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루숙, 그 친구마냥 뭘 잘 만들지는 못해도… 이거 하나는 기깔나게 할 수 있거든."
"그게 뭡니까?"
"올―드 패션드."
의기양양하게 일부러 말꼬리를 늘려 말하면서도 손은 능숙하게 술과 소다수 따위를 계량해서 붓고, 각설탕을 으깨는 등의 행동을 하는 모습은 의외로 어울리는 모양새다. 화룡점정은 거친 외모와 달리 조심스럽게 체리와 오렌지 조각을 얹는 모습. 카르나르 융터르는 속으로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다른 고멤들도 봤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곧 맑은 오렌지빛 음료가 얼음을 채운 락 글라스에 담겨 그 앞에 내어졌다.
독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이 과연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티를 숨기지 않았지만, 한 번쯤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에 넣고 굴려보았다. 과연 독한 술이 주는 그 강렬한 알코올 향이 먼저 코를 찌르고, 쌉쌀한 맛과 오렌지 향기가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단맛.
자신의 몫도 재빠르게 완성한 일일 바텐더가 손님이 굳었던 얼굴을 풀기 시작한 변화에 킬킬 웃고는, 제 몫도 한 모금 꿀꺽 삼키고 40도에 달하는 그 도수에 저도 모르게 크으으 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소리를 냈다. 아예 멋대로 안주(그래봐야 짭짤한 크래커였지만)도 꺼내서 술을 기울이던 중년은 나름대로 왔던 자리도 깔끔하게 하고 도로 떠나왔던 소파로 돌아왔지만.
"으유, 잘 현다 잘 혀. 대낮부터 술이나 처묵구는…."
"어유! 캘리칼리 님이야 그렇다 치는데, 융터르 님도… 이잉, 은근 좀 그런게 있으요."
"그건 그렇다고 하고―. 이 두 사람, 여기서 자도 되는거여?"
할배즈 3인이 소파에 저마다 늘어져라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한 소리씩 하였다. 역시 독한 술이 주는 취기를 이길 수는 없었던 탓이다. 두 사람이 술김에 좋을대로 떠들던 내용이 생각난 풍신이 잠깐 낄낄거리다가 영문을 모르는 눈치인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고전 명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두서없는 한탄이 전부인 그 내용은 이덕수 할아바이와 도파민 박사의 얼굴을 괴상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결국 저마다 배부른 소리한다고 이미 들리지도 않을 두 중년에게 타박을 놓았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늦고,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그런 애매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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