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주제 : 늦잠
같이 들으면 좋은 BGM : Offenbach - Can Can Music - YouTube
앤디 위어의 그 유명한 소설, '마션'의 첫 문장은 일단 자신이 X 되었다는 것을 심사숙고한 끝에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오늘, 이 시간의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고 일어났더니 이상할 정도로 개운한 몸, 창 밖으로는 내가 전혀 이름도 모르는 새의 지저귐이,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주변이.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보는 순간, 그 누구라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X됐다."
하지만 이게 오롯이 내 탓인가? 내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일단 나와서 엉덩이부터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진짜로 때려줄 자신이 차고도 넘치니까! 하지만 그것은 일단 나중의 일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것이 아니다.
황급히 세수를 하고, 오늘따라 엉망진창인 머리카락을 정돈하면서 탈모도 아니건만 빗 사이로 우수수 떨어지는 모발의 질에 걱정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사이에 부랴부랴 토스터기에 꽂아 넣은 식빵 두 쪽이 따끈하게 덥혀지면서 툭 튀어나오면 그것을 우유도 없이 입에 쑤셔넣는다. 가뜩이나 마른 목과 입에 억지로 침을 적셔가며 애써 삼키면 소화도 될 틈 없이 냅다 양치질을 하고… 아 칫솔에 잇몸 부딪쳤다.
"으아아—!! 선배 이 개새끼가아아아아—!!"
잠깐 볼을 감싸쥐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퍼질러 자게끔 만들어버린 만악의 근원이다. 어제 기준으로는 내일, 그러니까 오늘의 성공적인 조별과제 발표를 위한답시고 회식을 왜 벌써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왜 긴장감이 풀려서 아주 그냥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일까?
방음도 안 되는 원룸 화장실에서 고래고래 원망의 고함을 치며 분노의 양치질을 하는 것으로, 어디 사는 이웃이 내게 소음공해의 죄를 신고할 지 모르겠지만 아랑곳 하지 않겠다! 까라고 해! 짐을 마구잡이로 쑤셔넣으면서도, 자취방과 학교 간 거리가 먼 탓에 혹시나 USB를 놓고 가는 것은 아닌지 재차 삼차 확인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화장을 할 여유? 있을리가 있나! 손에 잡히는대로 대충 입고 나서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필 코 앞에서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면 이때다 싶은 자동차들은 여기가 주택가인지 아니면 레이싱장인지 구별하지 못할 속도를 낸다. 그리고 저 건너편, 내가 원래는 타야 하는 버스가 저 앞에서 그렇게, 아아 님은 떠났습니다. 저 버스를 타지 못했으니 지각은 확정이고 팀원들의 눈칫밥은 고봉으로 올라올 것이다. 벌써부터 속이 더부룩함을 느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택시를 호출한다. 요새 안 그래도 택시비 비싼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금방 도착했다는 것이다.
"XX 대학교 가신다 했죠?"
"저 죄송한데, 늦어서 그렇거든요 빨리 가주심 안 될까요?"
내 얼굴이 가관도 아닌가보다.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먹먹한 것이, 내 목소리를 듣는 내가 다 떨리는 게 느껴졌으니 꼬라지는 또 얼마나 개판이겠는가. 백 마디 말 보다도 한 번의 설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노련한 드라이버의 공간지각능력으로, 속도 단속을 안 하는 곳만을 귀신같이 골라 움직이며 택시 바깥 차창의 풍경은 차라리 잘 그려졌지만 덜 마른 수채화를 누가 손가락 따위로 직직 그어 번지게 한 것 같다. 그리고 택시 미터기의 그 상징적인 말의 다리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은 연달아 톡 알림이 울려오느라고 손 안에서 진동을 어지간히도 해대는 통에 정신을 못 차리겠는 지금 상황에서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아마도 열에 아홉 내가 지금 어디쯤 오는지를 독촉하는 그런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니, 긴장감과 죄송스러운 마음에 속이 다 뒤틀릴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면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 이런 속도를 기대했으니 택시가 있는 것이지. 그래도 쓰린 속을 달래가며 허우적거리는 몸짓으로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단과대 건물을 향해 마구 뛰었다. 이 때쯤이면 이미 땀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주변 시선에 신경을 쓰기에는 이미 내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아주 대화재 급이라 여유가 없고, 그만큼이나 타는 속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엘레베이터 하나 없는 이 낡은 건물에다가도 화풀이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개고생의 끝, 염병할 목적지가 저 앞에 '408호 강의실'이라는 이름으로 저 멀리서 보이고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일만 남은 것이다.
"세—이프!!"
감히 교수님이 들어오실 앞문을 열 패기는 없어서 뒷문을 열고 해방감에 젖어 힘껏 외치는 나를, 그 아무도 비웃지도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상하게 조용했다. 정신없이 땀을 닦아내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그저 빈 강의실만이 나를 반기는 이 상황은 또 무슨 말일까? 어쩐지 예측되는 불길한 마음으로 칠판을 바라보자 아주 영롱하게 적힌 두 단어가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나를 반겨주었다.
[금일 휴강]
뒤늦게 본 메신저는 오늘 교수님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휴강이며, 조별과제 발표 또한 다음 시간으로 미룬다는 조교의 공지가 올라와있었다. 어쩐지 지금은 한 낮인데도 술이 너무나 땡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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