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트친분의 어썸한 연성을 보고 나서 크르르 못참겠다 하는 마음으로 싸지릅니다.
*기존 천악 AU와는 관련이 1도 없읍니다. 단순한 왓이프 정도로 봐주심 감사하겠읍니다.
안개가 조금은 끼어있어 맑다고는 못할 오후의 거리를 유유히 걷는 이 남자를 설명하라면 다른 모든 것은 일반적으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런 자였다. 빛을 받아야 겨우 남색이 도는 것을 알 수 있는 양복차림, 목이 쌀쌀한 것인지 가볍게 두른 스카프, 끝에 고무처리라도 되어있는지 땅을 짚어도 크게 소리나지 않는 화려한 지팡이가 그랬다. 그러나 오고 가는 사람들이 그를 한 번씩 힐끗 바라보고 가는 이유가 있다면, 그 눈동자가 어쩐지 붉다는 생각이 드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 하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이 남자는 여유로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치 이 거리는 처음 와본다는 관광객마냥 흥미로워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보이는 어느 장소를 향해 바라보며, 싱글거리는 어조를 감추지 않았다.
"으흠, 도착했군요."
그의 경쾌한 발걸음은 곧 어느 지점에서 멈췄고, 지금에 와서는 보다 격식이 있고 덜 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고아원이라 부르는 그런 시설. 어느 교회의 부설이라는 그 곳 마당을 뛰노는 아이들의 얼굴은 어딘가 어색하고, 낯선 사람인 자신의 눈치를 지나칠 정도로 보고 있었다. 저 시선의 의미를, 붉은 기운이 은근히 눈동자에 감도는 이 남자는 알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당을 지나 건물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발걸음을 따라 이상하게 선명하리만치 들리는 지팡이 짚는 소리에는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기운과 마찬가지로 불길함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남긴 채.
"아, 오셨습니까? 카르나르 융터르 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원장님. 그리고, 융터르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헌데… 스카우터라고 하심은?"
"뭐, 말 그대로입니다. 자질이 충분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그것…이지요."
과연 교회와 연관이 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인지, 원장실 한 쪽 벽면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성경구절이 새겨진 액자와 십자가가 걸려있고, 원장도 목사들이 주로 입는 검은색의 로만칼라 상의를 입은 채로 맞이해주었다. 안내받은 소파에 앉아 내어준 인스턴트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던 손님,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말 뜻을 얼추 이해한 것인지, 원장은 살짝 굴욕적이기까지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삭삭 비볐고, 복장과 그 행동을 짐작해 잠시만 기다려달라면서 자리를 비웠다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왔을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오, 보십시오. 이런, 커피가 아직 다 식지도 않았군요?"
그 넉살에 원장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비굴해지면서, 곁가지로 세워둔 덩치가 제법 되면서도 앳된 티는 아직 가시지 않은 청소년이 원장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끌려나왔다. 인상이 제법 험한 것이 원장이 왜 이 청소년을 데리고 왔는지를,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그 의도는 제법 노골적이었다.
"어떻습니까? 융터르 씨?"
"으흠."
융터르는 고급스러운 지팡이의 손잡이를 보란듯이 다시 쥐고 일어나 긴장한 티를 숨기지 못하는 청소년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키만 놓고 보자면 어지간한 성인과도 견줄 덩치의 그는 이제 18세가 되어 조만간 퇴소를 해야 하는터라, 빠르게 입양이 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게 정말로 입양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이 스카우터의 눈에 비치는 청소년의 모습은 그에게 어딘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나지막하게 연거푸 '흠' 하는 소리만을 내기만 할 뿐, 누가 보더라도 탐탁치 않아하는 티가 역력하였다. 그것이 이 청소년에게는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고, 입양 예정자의 눈길은 그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중임을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나이가 18인데… 또래에 비하면 생각보다 말랐고, 이건—"
"악!"
조금 앙상하게 보이는 그 팔뚝을 가볍게 쥔 것만으로도 청소년이 눈물을 글썽거리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자, 당황하는 티도 내지 않고 원장이 주절주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놈이 좀 쌈박질을 어지간히 하는 친구라서—. 하지만, 오히려 좋으시지요?"
"그런 것 치고는 영 먹은 것도 시원찮은가 보군요. 살짝 잡았을 때 오는 감각이—"
"이 놈이! 내가 다이어트를 좀 어지간히 하라고 그랬지!"
원장의 오버스러운 행동과 함께 그 등을 연거푸 후려패자, 청소년의 몸이 힘없는 연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리기 시작했지만 곧 그 움직임이 외부인의 손짓에 의해 멈춰지게 되었다. 어깨에 닿은 원장의 손을 은근슬쩍 치운 카르나르 융터르가 청소년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어딘가 즐거운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불길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이 시설에 있으면서,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아, 구구절절하게는 필요없으니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해주세요. 이 시설에서 지내오면서 어떤 삶을 살아왔습니까?"
지금까지 그저 느낌으로 붉은 기운이 어른거린다고 생각했던 융터르의 눈은 이제 확실히 요사스러운 붉은 보석과도 같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요동치듯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내용을 일부러 속삭이듯 말한 것도 아니기에, 그 자리에서 똑똑히 들은 고아원장의 얼굴이 슬슬 그 뻔뻔스러운 가면을 벗어 던지고 말했다.
"아, 하하! 아하하하! 이보십쇼, 어차피 당신네 패거리에 영입을 할 거면 좋게좋게 말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당신한테는 말하지 않았는데…."
원장은 바라도 보지 않고 이제는 나른한 기분까지 들게 만드는 융터르의 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노여움이 섞여있는 것 같았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청소년의 얼굴은 두려움이라고 할 만한 것과는 거리가 전혀 멀었다. 그보다는 뭔가 홀렸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인 것처럼.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원장이 좋게 말하라는 둥, 그 등 뒤로 윽박지름과 애걸이 애매하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막상 입양 대상으로 지정된 그는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정말, 거지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애들한테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말을 해도 얻어맞고 밥도 조금 밖에 주지 않았어요!"
"아니! 아니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니? 응?"
"아하…."
겨우 아이에게서 눈을 뗀 방문자가, 얼핏 듣기로는 응석이나 떼쓰기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 말을 듣고서도 만족스럽다는 듯 감탄사를 흘렸다. 그 말이 어떤 불안요소라도 되는 듯, 청소년이 엉덩방아를 세차게 찧을 정도로 원장이 둘 사이를 애써 가로 질러 끼어듦으로서 이건 전부 오해라며 이리저리 주절거리기 시작했으나 방문객은 손에 쥔 지팡이로 연신 싸구려 카펫 위로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아, 저희도 이게 살기가 좀 여간 힘들어서 말이죠…. 아니! 이렇게라도 안하면 저희도 운영하기가"
그러나 그 말이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을, 상대방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임으로써 명백히 보인 카르나르 융터르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러기만을 바랬다는 듯이. 청소년은 그 답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침울한 얼굴을 지우지 못했고, 원장은 겨우 마음에 놓였다는 듯 다시 비굴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데려가도록 하지요."
그 말을 선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며 지팡이를 바닥에 제법 큰 소리나도록 찍은 융터르가 지금까지 지은 그 어떤 표정보다도 더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원장을.
"당신이라면 저희 업계에서도 아주 환영할 겁니다."
"뭐, 뭐요?"
원장이 당황해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땀을 질질 흘렸지만, 카르나르 융터르는 고개를 좌우로 한번씩 젓고서는 똑똑히 원장을 데려가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청소년도 당황했지만 순식간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원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도 못 비빌 수준이었다.
"이, 이, 이건 뭐 개같은 소리도 아니고! 지금, 지금 한다는 소리가 뭐? 날 입양한다고?"
"아니지요. 물론, 결단코 아닙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 같으니 이 자리를 빌어 분명하고 똑똑히 말씀드리자면… 이 자리에서 입양을 한다느니 하는 소리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만. 게다가 저는 스카우터라고 말씀 드렸을 터였는데요."
이 쪽 바닥에서는 그게 그 소리 아니냐고 항의하려던 원장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조금 늦게 챘을지도 모른다. 뒤로 몇 발자국은 물러난 청소년의 얼굴이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일그러진 모습을 먼저 보고, 그 다음 자신의 키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작다고 느낀 것을. 그리고 그는 아래를 보았다. 정확히 자신의 몸 만을 빨아들이는 이상한 검붉은빛의 뭔가가, 이미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차오른다고 해도 좋고 가라앉고 있다고 해도 좋은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 분의 상징을 버젓이 벽에 걸어두고서는 하는 짓거리 하고는…. 제가 이래서 당신 같은 부류들을 정말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남자의 말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 개소리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지르던 원장의 몸이 더욱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은 양 팔을 열심히 휘저어가며 조금이라도 더 아래롤 내려가고 싶지 않아했지만, 그럴수록 당기는 힘은 더욱 거대해졌고 원장은 이제 애걸복걸하면서 살려달라는 구걸을 하고 있었지만 지면을 붙들고 있는 그 양 손을 카르나르 융터르의 구둣발이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 아니야 제발! 제발!!"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 쪽에서 처리 해드릴까요?"
비명을 지르며 자비를 바라는 원장을 내려다 보며 갑작스럽게 결정권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청소년은 당황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빠르고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 화려한 손잡이가 인상적인 지팡이를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찍었다. 그러자 바닥을 물들이듯 그 검붉은빛의 기세가 크게 일렁이더니 아주 선명한 뭔가를 만들어냈다.
"이거… 문?"
"뭐, 그런 셈입니다. 지극히 일방통행인 문이지만. 아, 역시나 이번 스카우팅 대상도 참 손을 번거롭게 하신다니깐."
발 끝에 힘을 더 주며 그 손을 놓으라는 듯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그의 말을, 청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알아먹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분명하고 확실했다. 더는 이 원장이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로도 충분했고, 손가락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울부짖던 원장의 허우적거리는 손을 마지막으로 그 문은 사실 정교한 환상이라도 되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가득한 빛이 원장실을 가득 채워, 청소년이 겨우 주위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사람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가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는, 그저 테이블 위에 아직도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인스턴트 커피가 잔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뿐이었다.
"어이."
"아하."
옷차림은 당당히 대로를 거닐어도 될 듯 하였지만, 기꺼이 쓰레기 투성이인 뒷골목으로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던 카르나르 융터르의 몸이 익숙한 상대의 목소리에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제자리에서 멈칫했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머리 두 개분은 훨씬 넘도록 키가 큰 사내. 정확히는… 천사가.
카르나르 융터르보다 파란색이 보다 더 도드라지는 핀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사내가 그 키에 걸맞게 성큼 걸어 거리를 보다 더 가깝게 하며 다가왔고, 옛 친구의 등장에 융터르는 눈동자에 다시 소름끼치도록 붉은빛을 흘리며 여유롭게 몸을 빙글 돌리고는 그 어느 북풍한설보다도 차가운 밝게 빛나는 푸른빛의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자네가 한 짓거리, 잘 보았네."
"이런, 이게 어떤 평가 대상에 오를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자네는 매번 수단이 과격하던데."
그 평가에 쿡쿡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이름을 쓰는 대악마가 비웃었다. 정작 저렇게 말하는 천사 나으리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전면에 나서 찬란하게 날개를 펼치며 빛 그 자체와 다를 바 없는 검을 휘두르는 것을 망각하셨단 말인가? 제 행적을 떠올리는 것을 알아차린 대천사,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마뜩찮다는 듯 뭔가 질질 끄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무턱대고 그 원장을 끌고 내려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라고?"
"그래서 당신이 제 뒷처리를 일일이 해주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손 더럽히지 않고 이 얼마나 좋은 협력관계란 말입니까."
"제기랄. 그래 당분간은 내 밑에 있는 놈 중 하나가 거기 원장으로 좀 있을걸세. 그러다 괜찮은 놈 있으면 은근슬쩍 그 자리에 올려두면 될 일이지."
"거 보십시오. 평소 하는 짓은 털털하다 못해 엉성하기 짝이 없으면서 이럴 때는 정말 꼼꼼하시다니깐."
역으로 평가하는 카르나르 융터르의 목소리에 캘리칼리가 다시 목을 끄는 것 같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두 존재 사이를 오가던 중, 캘리칼리가 툭 내뱉듯 말했다.
"그래도 돌아오게."
"…."
"반성이든 처벌이든 그 잘난 입은 단 한 번도 놀리지 않고 묵묵히 수행해온 것을, 천상에서는 가장 미천한 자리에 있는 자들도 다 알아. 복귀 할 수 있어. 내가 보증하겠네."
"…."
연이은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가장 눈치없는 사람이라도 알 것이다. 제 뜻을 내비친 카르나르 융터르가 지팡이를 들어 빙글빙글 돌리고는 씁쓸하게 웃고는 다시 더러운 골목길로 사라졌고, 드높은 천상에서의 한 때를 잠시나마 떠올렸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그 뒤를 쫓지 않았다.
'공개 썰입니다. > 멤고 단편 -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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