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번 중간 정리차 기존에 나왔던 인원들을 떼거지로 등판시키겠습니다.
2. 아니 근데 잠깐만 벌써 몇 명이 나오는거야...?
3. 중간 정리를 너무 늦게 한거 같은데요 이거. 망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새우튀김은 대피소에 마련된 감시초소에서 군용차량 한 대가 하쿠의 손짓에 정차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과 무전한 그 상대방 일행이 맞는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다보니, 확실히 군복을 입은 사람이 둘이고 안 입은 사람은 넷이다. UV 램프 스틱으로 도배해 놓은 자리에 그렇게 총 여섯 명이 합심해서 차 안에 있는 물자들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던 새우튀김도 등강기를 써서 아래로 내려왔다.
네 명의 민간인 중에서도 유독 한 명은 냄새가 조금 독특해, 그는 머뭇거리다가 실례인 건 알면서도 코를 막고 질문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
"어, 어우…, 그 냄새가. 왜 그래요?"
"이, 이건! 좀비 냄새! 입니다."
"아니, 미쳤어요?"
키가 제법 작고 머리카락이 풍성한 남성이 독특한 말투로 설명하자,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무슨 악취미인가 싶어 조금 떨어지자, 군용차량을 타고 내린 일행 중 가장 키가 큰 남성이 그를 변호하듯 말했다. 무전기에서 듣던 굉장히 낮은 목소리의 주인이 주절거리며 설명했다.
"좀비들은 냄새로 인간과의 구별을 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프리터 님께서 직접 그 사실을 몸으로 입증해주시느라 냄새가 아직 덜 빠진 것 뿐이니 불쾌한 것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잇, 알았어요. 일단…,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요?"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냄새에 고개를 돌린 그가 본격적인 물자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전투식량과 같은 부분부터 총기나 기타 자재들이 한가득인 이 모습은 영락없이 군부대를 턴 모습이다. 저걸 저 두 군인이 했다는걸까? 프리터라 불린 작달막한 사내도 힘이 제법 센 지 무거운 것들을 성큼성큼 집어 등강기에 매단 상자에 곧잘 싣고 있었다.
"어, 어어― 이거 떨어지거나, 뭐 끊어지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죠?"
"하―아 진짜! 자꾸 이름값 할래?"
부정형 인간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등병은 그 이름에 맞게 어딘가 울적한 말투로 불길한 소리를 했다가 병장인 사람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새우튀김은 개인적으로 그 병장의 말에 적극 동의를 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고 짐을 대피소로 실어 올리는 6명에 합류해 도와 해가 완전히 지기 전, 가까스로 모든 물자를 옮기는데 성공하였다.
주위로 좀비들이 오는지 지켜보던 하쿠가 회전모자를 벗고 땀을 대충 문질러 닦던 새우튀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아부지! 수고하셨습니다! 아직까진 좀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엑? 아부디?!"
큰 앞니가 인상적인 안경 쓴 청년이 그 목소리에 새우튀김과 하쿠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새우튀김은 이미 먼저 온 두 그룹의 반응을 일종의 예방접종처럼 경험했기 때문에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하쿠는 자신이 만든 안드로이드라서 자길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청년은 그 모습에 어어 소리를 내면서도 일단은 납득을 하기로 했는지 서둘러 올라오라는 검은 긴 생머리의 청년의 말에 따라 부리나케 등강기를 잡고 올라가고, 슬슬 UV 램프의 빛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하쿠와 새우튀김과 같이 올라가기 무섭게 어두워진 사방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 치기 시작했다. 새우튀김은 조금만 더 밍기적거렸으면 큰일 났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건물로 따지면 3층 정도의 높이지만 대피소로 따지면 1층에 해당하는 가장 널찍한 입구. 그 주위로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기 시작했다. 불과 사흘 안에 이 정도의 대인원이 모일 것이라 생각도 못했던 새우튀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쿠를 데려와 준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단답벌레. 왁파고가 데려온 이덕수 할아바이와 독고혜지. 자신들의 무전을 어쩌다 듣고 온 곽춘식, 부정형 인간, 해루석, 프리터, 권민, 카르나르 융터르. 자신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벌써 12명과 2대의 기계로 제법 대인원이 되어있었다.
그러자 새우튀김은 당장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쿠와 왁파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당장이야 군인 일행들이 가져온 식량도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그것도 어느정도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 챈 도파민 박사가 그를 뒤로 따로 불러내어 말했다.
"이잉…, 식량 때문에 그러는거 티 다 난다 제자야."
"역시 무턱대고 받아들이면 안되는 거 아니었을까요?"
"으이…. 하늘이 무너져도 으뜨케든 살 길은 있다고 혔다. 받아들이기로 혔으니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다 생각혀야지 별 수 있냐. 여차하면 농사라도 지어야지."
박사는 자신이 하는 말을 일종의 농담처럼 생각했는지 작게 킬킬거렸지만, 새우튀김은 그것도 방법이 아닐까 잠시 고민하다 어수선한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여 이목을 끌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이들이 둥글게 서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한 몫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데 우리 제대로 자기소개 한번씩 하죠?"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그 제안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어차피 개성이 다들 강하게 생긴 면면이라 굳이 이름을 외운다던가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이 되먹잖은 시대에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일단 세입자의 신세는 전적으로 건물주에게 달린 법이며, 요즘과 같이 문자 그대로 세상은 생살을 뜯어먹는 위험한 곳이 되었기에 그는 일찍 맞는 매가 그나마 덜 아프다는 신조 아래에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보시다시피 힘 쓰는 것만큼은 제법 자신이 있으니 도울 수 있는 한 도와드리지. 잘 부탁하네."
그는 그리 말하며 동행인이었던 단답벌레의 작달막한 체구를 그 큰 손으로 툭 건드렸다. 그 힘이 상당했던지, 늘 무표정인 그가 여전히 무표정인 상태로 크게 휘청거리다 중심을 겨우 잡을 때는 눈을 갸름하게 뜨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무례함에 대한 불만족의 표시임이 확실했다. 그러나 단답벌레에게 있어 가장 부담스러운 시간을 덩치가 큰 친구가 빼앗아주었다.
"이 친구는 단답벌레라고 하네. 혹시나 여기 오면서 눈이 쨍한 보랏빛 조명을 본 사람이 있나? 그게 다 이 친구가 만든 걸세."
효과는 밤이나 어두운 곳에서 뛰어다니는 그 흉악한 놈들을 잠깐이나마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자 다들 생각이 비슷비슷하게 흘렀는지 도망칠 때 쓰거나 한 두마리 있을 때 쓰면 효과적이겠다는 말을 저마다 하였고, 그런 칭찬이 은근히 이 땅딸막한 동료에게는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 극단적인 체구의 두 남성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독고혜지는 자기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고 한 손을 번쩍 들며 명랑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간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우울했던 학교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느그고등학교 3학년, 독고혜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느그고 경비, 이덕수라고 협니다. 클 덕에 따를 수를 써서 덕수. 해병대 출신이니께 어디서든 잘 혀겄습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단답벌레의 대비처럼, 독고혜지와 이덕수의 대비 또한 굉장한 격차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여고생과 노인이라는 연령의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곳에서 탈출했다 하기에는 성격이 한쪽은 굉장히 발랄하고 반대쪽은 지나칠 정도로 침착해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군장을 제대로 풀지 못한 부정형인간은 어쩐지 모든 이들의 눈치가 자신을 향한다고 생각하고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긴장감 때문에 달싹거리는 입술이 열린 시점에 비해 제법 늦게 나와버렸다.
"추, 충성, 이병 부정형 인간입니다. 아니, 이제 군인도 뭣도 아니네요. 저희가 있던 부대는 이제 생존자가 더 없으니…."
"충성! 대대장 휘하 어항관리병 출신, 병장 곽춘식임다. 좀 슬프지만 이 놈 말 맞슴다. 그래서 가능한 들고 올 수 있는 물자는 다 끌고 왔슴다! 잘 부탁드림다!"
그에 비해 주근깨가 인상적인 곽춘식의 목소리는 군인 출신임이 역력히 묻어나는 어투였고, 그만큼 동작도 절도가 있었다. 그들과 같이 온 4명은 이미 소식을 들어 알았지만, 대피소의 다른 사람들은 군 부대가 무력하게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던지라 안색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그 옆에서 불안하게 훗훗훗 하고 웃던 프리터는 침울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 프리터입니다. 일일알바!로 다져진 실력이 있으니 좀비들과 싸우는 것만 빼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네. 프리터 님을 고용했었고 시외의 루석바 오너였던 해루석입니다. 칼 쓰는 일은 제법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검고 긴 생머리가 인상적인 해루석은 오늘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제법 지치고 힘들어 고개를 숙인 채 안경테 가운데 부분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렸다. 그런데 그가 하필 앉은 자리가 제법 어둡기도 했고, 안경알이 빛에 반사되어 순간 눈이 보이지 않은 탓에 순식간에 선량한 인상에서 의뭉스러운 얼굴이 되어 사람들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해진 것에 대해 해루석이 당황해 연거푸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라며 변명을 하자, 그 말을 지원사격이라도 하려는 듯 카르나르 융터르가 손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그 저음이 사람 목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리상담사였던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싸우는 일은 자신이 없지만 나머지 일은 최선을 다해 협력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해루석 님은 비록 순간적으로 이상하게 보셨을지 모르지만 의외로 괜찮으신 분이니 너무 염려치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 잖습니까?"
해루석이 당황해서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상담사에게 주절거렸으나 이미 먼저 본 것이 있던 사람들은 상담사의 중저음을 조금 더 신뢰하는 분위기였고, 바텐더는 당황해서 계속 아니 소리만 반복할 뿐이었기에 권민이 끼어들듯 소개를 했다.
"뎨가 마디막이네요. 권민이라구 합니다. 대학댕이구요, 뎌도 뎐투는 달 모타지만 다른 거는 태던을 다해 열띰히 하게뜹니다."
"아―학! 이빨! 발음이―!! 아하하하하!!"
"혜지야, 초면에 그르면 쓰냐고 내가 혔냐 안 혔냐?"
독고혜지는 권민이 내는 치성이라 불러 마땅한 발음에 결국 참지 못하고 깔깔 웃어댔고, 그 무례함에 덕수가 권민에게 미안하다며 어른이자 동행자의 입장에서 사과를 건넸고 그 어르신의 사과에 권민은 어쩔 줄 몰라서 계속 괜탄듭니다. 소리를 하는 바람에 혜지는 이제 아예 바닥에 땅을 치고 웃기 바빴다.
웃음이 거의 대다수의 이유가 되어 자기소개가 중단되었지만 타이밍 좋게도 그 때쯤이면 할 사람들은 다 끝났기에, 새우튀김이 대표로 목을 큼큼 소리 내며 가다듬고 인사를 겸해 입을 열었다.
"저는 새우튀김이고, 여기 계신 분은 도파민 박사님입니다. 원래는 저기 아래에 있던 도파민박사 연구소에서 생활했는데…. 뭐 다들 이유야 아시리라고 믿고 대충 넘어가겠습니다. 여기 딸내…아니, 여자아이는 제가 만든 안드로이드 하쿠고, 저기 저 깡통은 왁파고라고 박사님이 만든 로봇입니다."
"이잉! 제자야, 왁파고에게 깡통이라니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맞습니다. 좀 너무하십니다.]
"아부디! 왁파고 님한테 사과는 언제하실겁니까?"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단답벌레는 아무리봐도 듬직해보이는 왁파고에게, 반대로 독고혜지와 이덕수는 이 험난한 세상에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는 하쿠에게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무시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운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혹시 종종 도심지에서 레이저 따위가 발사하는 소릴 들었는데, 그건 어느 분이 하신겁니까?"
"제가 했습니다!"
융터르의 질문에 하쿠가 자랑스럽다는 듯 손을 번쩍 치켜 올려 답하자, 질문자의 표정은 아연해졌다. 누가보더라도 생김새는 왁파고가 할 것처럼 보였던 탓이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비슷하게 바뀌는 걸 보면서 새우튀김이 황급하게 변명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기 전만해도 자신과 박사님, 그리고 하쿠랑 왁파고 총 넷이서 버티다보니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그런 그의 말에 하쿠도 "제가 아부지를 돕기 위해 하겠다고 했습니다!" 라며 명랑하게 말했다.
정신을 겨우 차린 새우튀김이 다시 말했다.
"예전에야 그 하쿠가 고생을 좀 했지만서도…, 이젠 좀 아시죠? 서로 같이 협력해서, 예. 뭐. 힘내자구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누가 힘을 내요…."
"아이 씨…! 아까부터 참았는데 자꾸 그렇게 초치는 소리 할 거에요?"
군모를 벗자 머리에 까치집이 지어진 것 같은 부정형 인간이 투덜거리자, 새우튀김도 마찬가지로 그 우울함이 맘에 들지 않아 까칠하게 받아쳤다. 까딱하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로 동시에 떠올랐던지, 목청이 큰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대번에 끼어들었다.
"자 좋아, 그럼 합숙소 생활도 아니고 살아서 계속 볼 얼굴들인데―, 내일 봐도 되는 거 아닌가? 내일 할 일은 내일 계획하자고."
"이잉, 틀린 말이라고는 못 하겠구먼. 여러분들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혔을텐데, 고만 적당히 빈 방에 들어가서 씻고 주무셔요들."
도파민박사도 그 눈치를 알아차리고 새우튀김과 부정형 인간의 사이를 은근슬쩍 갈라놓으면서 해산하기를 종용했다. 독고혜지는 일부러 주의를 환기시킬 생각과 혼자 자기는 싫기도 한 복잡한 마음으로 하쿠를 바라보면서 요청했다.
"아! 그럼 저 하쿠랑 같이 자도 되요? 예? 예?"
"아부지! 저도 혜지님 옆에서 절전모드를 해보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제가 방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쇼.]
하쿠가 새우튀김에게 칭얼거리듯 요청하고, 왁파고는 부정형인간을 특히 떠밀면서 방으로 안내하며 둘 사이가 엉겁결에 멀어졌다. 그렇게 웅성거리던 연구소 1층이 드디어 한산해지자 도파민 박사가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겨우 닦으면서 살았다고 중얼거리고, 왁파고의 뒤를 따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덕수가 같은 노인의 등을 토닥이면서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드디어, 좀비로 인해 시끄러운 것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로 인해 시끄러운 하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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