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양 쪽 사이드가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믄 감사드리겠읍니다.
*동시 진행되는 부분은 글씨체를 각각 따로 적용하려 했는데 모바일에서는 그냥 이걸 무시하더라고요. 너무해라.
카르나르 융터르는 명백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공장 문을 활짝 열고 당당하게 말하는, 가죽자켓이 잘 어울리는 저 덩치 큰 남자가 자신을 찾았다는 그런 기분을. 왜 자신을 찾는지 명확한 이유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그는 잠시 미간 사이를 좁히며 어떤 연관성이라도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속으로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 어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의 눈에, 서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장 곳곳에 음성을 퍼트릴 수 있는 방송장비가 있는 것이 보였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명백히 2층에 서 있는 검은 옷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분명 저 자도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볼테면 보라지. 적어도 주먹 휘두르는 것 하나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으니까. 멍청하게 우두커니 서 있는 조직원들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안중에 없었다. 저 위에는 더 재미 있는 놈이 저기에 있는데? 어차피 잡을 자신이 있는 찌꺼기들에게 먼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지. 그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근처에 있는 것을 보고 슬슬 그 쪽으로 접근했다.
융터르는 자켓을 입은 거한이 2층 계단 쪽을 유심히 보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날 노리고 있어. 어쩌면 저 당당한 태도로 봐서는 딱히 꿇릴 것이 없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경찰 같은. 심증이 굳어지자 설명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처럼 자경단을 자칭하며 활동하는 자들이 있다던데, 경찰의 입지를 위협하는 그런 행태를 두 눈 뜨고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 자가 자신의 움직임 자체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 안도를 하며, 그는 공장 전체를 아우르는 채널에 전원을 넣고 마이크에 입을 댔다.
캘리칼리는 먹잇감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방향은 도망치기 보다는, 도리어 더 안쪽으로라고?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포지셔닝을 이해할 수 없던 그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을 믿고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다! 그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양 쪽 귓구멍에 손가락을 쑤셔넣어 단단히 틀어막았다. 입구에서 멍청하게 봤던 놈들을 생각해 낸 그는 저 자는 무슨 원리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통해 듣는 이들을 저렇게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그 가설이 맞아 떨어질 것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옷의 남자가 마이크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대고 있었으니까.
"서로 싸우십시오."
"젠장! 그럼 그렇지!"
캘리칼리는 남자의 말에 그 어떤 때보다도 위압감을 느끼며, 어쩐지 따라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귀를 먼저 틀어막은 덕분인지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 전체로 울려퍼지는 그 소리에 이미 세뇌당한 조직원들은 서로를 노려보는가 싶더니 이내 곧 쥐고 있던 무기를 가차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대대적인 난투극. 승자없는 배틀로얄이 있다면 여기인가 싶은 상황. 그 아수라장에 휘말리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 형사는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이 움직이는 조종자의 움직임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융터르도 경찰일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자신의 말에 저항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말하기도 전에 먼저 귀를 단단히 막은 것이 분명했다. 이건 좀 곤란한데.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건물 안은 퍽 어두웠고, 자신이 입은 옷은 새카맣기가 짝이 없었다. 그림자가 널찍하게 드리워진 이 곳 안에서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눈여겨 봐두었던 출구 쪽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틀렸다.
"어이, 거치적거리잖나!!"
조직원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남자가 자신을 뒤쫓아 온다라기 보다는 앞질러오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 말인 즉슨, 어떤 사정도 보지 않고 그저 자신을 앞지를 수 있는 가장 최단거리를 힘으로, 달리 말하면 그 진로를 가로 막고 있는 조직원들을 앞뒤 사정도 보지 않고 호쾌하게 패대기치면서 나아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이다. 융터르는 누가 보더라도 형사처럼 보이는 이 남자도 공격을 하라고 해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건 내 방식이 아닌데.
동시에, 캘리칼리는 특유의 재생능력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난투극 사이에 끼어들면서 생기는 상처들이 제법 쓰리고 아프지만 견딜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이런 방식이라면 벌써 다른 출구 쪽으로 향하는 저 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 거치적거리는 조직원들은 더 이상 눈에 차지도 않는다. 그는 방해가 되는 놈들을 하나씩 메치고 던지고, 때때로는 주먹을 날리면서 길을 억지로 뚫었다. 그 사이에 입었던 상처도 다 낫기도 했다. 그런데 상대가 이상하게 구는 것 같이 보였다. 무슨 생각하길래 망설이는거야?
"어이." 하고 캘리칼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대의 대답에 따라 바로 귀를 막을 채비를 하면서.
"부르셨습니까?" 융터르가 대화에 응했다. 저 자가 다시 귀를 막으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다. 형사고. 이 공장 안에 있던 놈들을 다 체포하라고 명을 받으신 몸이지."
"형사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인사는 되었네. 헌데, 자기 소개라는 걸 배운 적 없나?"
융터르는 은근슬쩍 신원을 밝히라는 형사의 말에 침묵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능력의 발동조건을 인지하고 있는데다가 조직원들을 뚫고 지나오면서 입은 상처들을 순식간에 치유한 괴물같은 회복능력의 소유자다. 더욱이 형사라면 기본적으로 전투력도 갖췄을 터, 함부로 나서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따랐다. 캘리칼리는 그런 그의 침묵에 불만족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쯧. 묵비권 행사인가? 법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뭐 이런 거? 반대로 말하면 유리한 증언도 할 수 없다는 의미인 건 알고 계신가?"
"글쎄요. 노련하신 형사님께 잘못 걸리는 것 보다는 입을 다무는게 더 효과적이다, 그리 판단했을 따름입니다."
"입에 발린 말은 되었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난 더 이상 그 쪽에게 다가가지 않아. 그러니 자네도 최소한 그 정도의 성의는 지켜주는게 도리이지 않겠나?"
캘리칼리는 그리 말하면서 양손을 관자놀이에 닿을 정도로 치켜 올렸다.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미의 국제적 바디랭귀지. 융터르는 그의 태도에서 그 이상으로 봐줄 생각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더 내빼지 말라는 저 무언의 협박이라니. 보기보다 교활한 남자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도 자신의 신원을 조금 밝히기로 했다.
"심리상담사입니다. 그리고 최근 범죄조직들의 자발적인 자수를 유도했고요."
"아하, 그럼 그쪽은 성씨가 '심' 씨인가? 이름 한번 참 요상하구만!"
"글쎄요?"
"이봐, 나는 내 신원을 전부 까발렸다고! 여차하면 자네가 나를 콕 찝어서 조종할 수도 있다 생각했지만 아무튼 했단 말이지."
"하지만 저를 체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은근슬쩍 말을 돌리시지 마시지요."
"아하하하!! 이런, 그건 노림수였는데! 이거 들켰군. 좋아. 그것도 약속하지."
캘리칼리의 이상할 정도로 호쾌한 모습에 융터르는 이것도 함정인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이제 더는 어쩔 수 없다. 그의 의도를 이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찰의 일을 훼방놓는 자경단인 자신을 체포하는 것도 하지 않겠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곤해진 심리상담사는 저 경찰처럼 자신을 밝히기로 했다.
"카르나르 융터르. 심리상담사입니다."
"좋아, 융터르,라... 거 발음이 좀 입에 껄끄럽긴 하지만, 뭐 좋네."
"이제 용건이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라며 찝찝한 감정을 숨길 수 없던 융터르가 먼저 몸을 돌리려하였다.
"어이, 잠깐. 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하아... 뭡니까?"
캘리칼리는 씩 웃더니 답했다. "다음에 또 만나요~♬" 그러면서 융터르를 향해 뭔가를 던졌다. 그의 발치로 정확히 떨어진 그것은 명함이었다. 어느 서에서 근무하고, 또 계급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연락처까지. 무슨 의도인지 명백한 그 행동에 당황한 상담사가 경찰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쪽은 명함도 없나? 아니, 그보다도 핸드폰이나 뭐, 그런 것도 없어? 요즘 이 시대에?"
"후... 아뇨 있습니다."
어느 새 캘리칼리의 페이스에 제대로 휘말렸다는 자괴감에 빠진 융터르가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예 형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명함을 건네주었다. 마찬가지로 어디서 상담을 하며, 어느 연락처로 연락해도 되는지 그런 것이 상세히 적힌.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룬 형사는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씩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통성명도 했고, 연락처도 주고 받았고. 이제야 완벽하군."
"설마, 그게 목적이었습니까? 단순한 친교?"
"그렇-지. 뭐 저 놈들을 잡는게 원래 목적이었긴 한데, 자네가 확실히 도와주었잖나?"
"아, 이런." 그 넉살맞은 태도에 융터르는 무의식적으로 양 눈가를 마사지 하듯이 매만졌다. 피곤한 상대한테 잘못 코가 꿰인 기분이 든 것이다. 그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낄낄 웃은 캘리칼리가 문득 아직도 서로 싸워대는 조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어이, 근데 저 놈들 언제까지 저러는거냐?"
"지금 10분이 지났군요. 곧 정신 차릴겁니다." 손목시계를 내려본 융터르가 말했다.
"유효기간 10분짜리 능력이라. 은근 귀찮겠는걸?"
정신을 차린 조직원들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떤 개같은 내부의 판단 때문에 난투를 했다고 스스로 합리화하였다. 의외로 살벌하게 싸운 현장 한가운데에 죽은 놈이 없다는 사실에, 과잉진압 같은 걸로 엄한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 안심한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경찰서에 연락해서 '전부 무력화 했으니 싣고 가라'고 말하고는 팀장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끊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연락처를 열어 새로 등록한 번호와 그 주인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름 : 나쁜 놈
자신의 상담실로 돌아온 카르나르 융터르도 자기 보는 앞에서 번호 등록하라며 윽박지르듯 말한 그 형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핸드폰에 적힌 그 연락처를 보며 앞으로 다가올 피곤함에 어찌 대응을 해야 할까 하는 막막한 감정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러다 아직 비어있던 이름 칸에 느린 속도로 확실히 채웠다. 이름 : 이상한 놈
-4. 좋은 놈 이야기 - 히어로(1)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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