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즈로 히어로물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군상극같은 너낌쓰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질렀습니다...
*'나쁜 놈' 카르나르 융터르 님이 주인공입니다.
*굳이 D&D 식 성향판정으로 한다면 '질서 중립'이겠네요. 다크히어로입니다.
*사실 다른 아저씨 두 분이 너무 확고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느낌입니다. 솔직히 '이상한 놈' 융터르는 좀 그르차나...
*능력을 얻는 부분은 옛날 국내 방영된 미드 중 '히어로즈'의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이는 다른 아저씨 히어로즈에게도 공통.
*개인 능력 부분은 정말 재밌게 봤던 드라마 '제시카 존스 시즌1'의 메인 빌런인 킬그레이브에서 따왔습니다. 차이는 있지만.
*행동양식적인 부분은 마찬가지로 드라마 '퍼니셔'의 주인공인 퍼니셔에서 따왔습니다.
그건 역시 일식 때문이었다고 카르나르 융터르는 생각한다. 꼭 금반지 같은 모양의 일식이라며 뉴스고 SNS고 어딜 보아도 시끄럽게 떠들던 그것을 우연히 바라본 이후부터 그의 세계가 달라졌으니까. 실제로 지금 자신이 상담하고 있는 상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여러분들은 이제 저를 만난 것도, 제게 돈을 준 사실도 전부 잊습니다. 그리고 경찰에 전부 자수하시는 겁니다."
"네-."
거부할 수 없이 위압감 넘치는 낮은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 고급진 양복을 입은 남성들이 얌전히 앉아있다. 그들이 하나같이 눈빛이 하나같이 멍하고 입가에는 침이 한 두방울 정도 흐르고 있는지라 누가 본다면 말을 정말 잘 듣는 좀비인 줄로 착각할 법했다. 융터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저 고개만 연거푸 끄덕거리는 그 꼴은 마치 부모님 말을 기막히게도 잘 듣는 어린이 같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을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분명 경악했으리라. 최근 여론에 개의치 않고 온갖 만악무도한 패악질을 부리는 조폭집단의 수장과 그 최측근들이 순한 양처럼 군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다. 적어도 융터르에게는 그랬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다면 그 눈에서 기묘한 안광이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겠지만 동시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당신도 저 흉악범들과 같은 얼굴이 되겠지.
"나가십시오."
문을 가리키는 융터르의 위압감 어린 목소리가 다시 들리자 폭력배들이 축 늘어진 꼭두각시들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천천히 출구로 향하고는 그대로 나갔다. 조용한 복도에 구둣발로 바닥을 직직 긋는 소리가 불규칙한 박자처럼 울려퍼졌다. 한 낮인 만큼, 저 괴기한 광경을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보더라도 그냥 어딘가 멘탈이 산산조각 났겠거니 싶을지도 모른다. 더군더나 10분이 지나면 당사자들 마저도 자신들이 여기서 상담을 받았다는 내용 자체도 잊을 것이다.
상담사는 암막커튼을 열고 창문 바깥을 내려다본다. 눈이 내리고 있어 새하얀 거리에 이질적으로 보이는, 놈들에게 전혀 분수도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고급 리무진이 자신의 상담소가 위치한 건물 바로 아래에 주차되어있었다. 그 중 가장 말단인 것으로 보이는 놈이 운전석에, 조수석에는 고기방패 역할이라도 하는 것인지 가장 덩치가 큰 놈이. 뒷자석에 보스가 타고 그 양 옆으로 부하들이 순차적으로 탑승하자마자 리무진이 바로 튀어나가듯 큰 도로가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암막커튼을 도로 닫은 그가 의미를 모를 한숨을 내쉬고 손님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푹신한 카우치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역시 이건 일식 때문이야.'
일식을 본 다음 날, 영문 모를 고열로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렸던 카르나르 융터르. 그저 운이 나빠서 열감기라도 앓았겠거니 하고 전혀 신경쓰지도 않았다. 어찌저찌 상담사로서(실은 학위도 없는 야매지만) 생활을 하던 그 답다고 해야 할지, 이변을 알아차린 것 또한 상담을 진행하면서였다. 자살방지센터에서 온 의뢰로 인해 그와 상담하기로 한 내담자는 인간으로서 영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가상화폐에 전 재산과 부모님의 재산을 한번에 밀어넣었다가 나락으로 간 이후, 자살시도도 수 차례 했다고 했다고도 했으니. 심지어 조금이라도 수중에 여유가 있다면 다시 그 판에 투신하는 한탕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하물며 상담사인 자신에게도 자신이 매수한 화폐를 사라며 광기가 서린 퀭한 눈으로 저 혼자 마구잡이로 떠들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에 질려버린 융터르가 본래 상담사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내담자에 대한 감정적인 평가'를 내려버리고 말았다.
"당신 참 역겹군요."
"뭐, 뭐라고?"
"스스로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그 돈을 헛되이 사용하는 것이 역겹습니다. 당신은 토악질이 나오는군요."
욱하는 마음이 들끓어 버린 탓에 험악한 말을 해버린 상담사가 당황해서 급히 말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말로 내담자가 허리를 푹 숙이더니 속에 든 것들을 전부 게워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급히 닦아낼 것과 물을 찾으려 했지만 상담사에게 더 끔찍한 광경이 어떤 예고도 없이 곧바로 이어졌다. 쏟아져내리는 소리가 잠깐 멈추는가 싶어 안심할 찰나에 내담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구멍을 거침없이 쑤셨다.
"아니, 잠깐. 잠깐만요. 멈추십시오! ...멈춰!!"
그가 당황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이 여전히 입 안에 있었지만 내담자는 정말로 멈췄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 멈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지독한 농담인가. 혹시나의 사고를 대비하고자 내담자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 그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너무 놀라, 무슨 말이라도 또 다시 잘못 뱉을까봐 입을 힘껏 손으로 가렸다. 영혼이라고는 전혀 없는 넋을 잃은 얼굴이었다. 눈빛은 흡사 중증의 마약중독자처럼 흐리멍텅했고, 입가에는 침과 토사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아까까지 자신에게 그토록 열변을 토하던 청년과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손가락을 입에서 겨우 빼낸 그가(물론 토사물의 역겨운 냄새를 감당할 수 없어 먼저 치운 뒤), 이 사단이 일어난 원인을 깨달았다. 그는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자신의 발언과 그 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면서 다시 명령을 내렸다.
"일어나십시오." 그러자 내담자가 흐느적거리면서 일어났다.
"저 소파에 앉으십시오." 그러자 내담자가 카우치 소파 팔걸이 쪽으로 얌전히 가서 앉았다.
어린이처럼 순순히 따르는 그 모습에 융터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쩐지 두통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군, 격한 감정을 느낀 상태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저렇게 된다 이건가? 무슨 히어로 코믹스 같은 이야기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영락없이 전형적인 마인드컨트롤이라는 놈 아닌가! 그것도 악당들이 많이 쓰는.
창문을 열고 위액 특유의 거북한 냄새를 빼기 위해 환기를 시키면서 그는 문득 여전히 카우치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자신만 바라보는 이 청년을 어떻게 해야 멀쩡하게 되돌릴지 걱정을 해야 했다. 방금에서야 이 능력을 깨달았는데 해제하는 방법을 알 턱이 없던 그는 상대방을 이리저리 흔들어보기도 하고, 눈 앞에서 손가락을 탁탁 튕겨보기도 했다. 나중 가서는 아예 등짝을 세게 두드리기까지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설마 최면아 풀려라 얍 이런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청년을 소파 위에 앉히고 전전긍긍한 지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있던 내담자가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는 "나 왜 여기에 앉아있냐?" 며 짜증을 부렸다. 덩달아 얼타게 생기자, 이성을 붙들려고 노력하던 융터르가 대꾸했다.
"혹시 기억 나지 않으십니까?"
"뭐가?"
"...토하셨는데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상담사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것만 제외한다면 그 뒤로 상담은 이상할 정도로 순탄하게 끝냈다. 내담자의 갱생보다도 자신에게 일어난 괴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사는 그 10여 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고, 그때마다 내담자는 순순히 답변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명령해서 따랐다라기 보다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동했었다는 것 처럼. 잠시 본분을 잊었던 상담사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한 번 더 사용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불확실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성실한 생활로 삶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다시 청년의 눈이 흐리멍텅해진 채 답했다.
"상담 종료입니다. 문을 열고 나가신 뒤 전화로 가족들에게 당신이 한 잘못을 전부 사과하십시오."
내담자가 흐느적거리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뒤로 융터르는 그의 소식을 굳이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의뢰해왔던 기관 쪽에서 '어떻게 상담을 했기에 사람이 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것 마냥 변했냐'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는 것까지는.
그 일이 있은 이후로 그는 이러한 힘이 있다면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와중에 스스로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고민도 있었으나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누가 보더라도 나쁜 놈들만 건드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로 폭력조직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오기 시작했다. 교도소 등지에서 수감 중인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하고,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상층부에 접근해서 다시 '상담'한다. 사전준비가 번거로운 것만 빼면 퍽 간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와해될 폭력 조직이 곧 4곳으로 늘어나리라.
그들이 떠난지 정확히 1시간 후인 7시 정각이 되자, 그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반짝거렸다. 구독해놓았던 방송사들의 X튜브 계정이 일제히 속보를 알리느라고 분주한 모양이었다. 융터르는 상담실 벽에 붙어있는 텔레비전을 켜서 아무 뉴스채널이나 틀었다. 다급한 표정으로 현장에 나와있는 기자들이 저마다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었고, 그 보다 좀 더 바깥에서는 마찬가지로 무거운 촬영용 카메라들이 화면 중심에 나와있는 인물들을 찍기 위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급히 띄운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자막이 화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국내 폭력조직 XX파 보스 이하 상층부 자진 출두, "자수하겠다.", 벌써 네 번째
아까 전에 상담했던 그들은 저마다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벌여온 모든 악행에 대해 전국민적으로 사죄를 할 것이며, 그에 필요한 모든 처리를 자체적으로 부담하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혼란에 빠진 기자들이 저마다 추가적인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조폭들은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나와있던 경찰들의 엄호아닌 엄호 속에서 경찰서 내부로 쑥 들어가버렸고, 남은 기자들은 저마다 확보한 정보들로 추측성 보도들을 일삼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무의미하겠다는 생각에, 텔레비전을 끄고 일어선 그는 평소에 입는 옷이 아니라 훨씬 어두운 빛을 띄어 거리를 잘못 돌아다니면 교통사고라도 당하기 좋을 법한 것들로 갈아입었다. 검은색의 롱코트와 그 안에 받쳐입은 검은색의 목 폴라티, 그리고 검은색 바지까지. 목에는 다시 검은색 목도리를 둘러 입까지 확실히 가린 그 모습은 누가 봐도 퍽 수상쩍어 보일 터였다.
융터르는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밝히고 화면을 여러 번 톡톡 건든 다음 유심히 바라보았다. 수뇌부의 미친 행동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을 조직폭력배들의 잔당이 모여있는 곳을, 상담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이런 놈들은 머리만 잡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뿌리의 뿌리까지 전부 털어버려야 하는 법이니까.
놈들의 소굴까지 소리없이 움직인 자칭 상담가는 잔뜩 긴장해서 경계하는 조무래기들의 등 뒤에서 작게 속삭임으로서 천천히 그 세력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그림자처럼 스며드는 그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분. 그의 목표는 그나마 이 잡범들을 이끌고 있을 중간 관리층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놈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장까지 자신을 보더라도 무시하라는 명령을 내린 그가 어두컴컴한 공장의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계단을 막 오른 때였다.
"어-어이, 여기가 찌끄레기들이 모인 곳인가?"
라고 외치는, 누군가의 호쾌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와 동시에 공장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2. 이상한 놈 이야기 - 해결사(1)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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