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답님의 프로젝트 윈터 재해석입니다. 실제 영상과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원작 게임의 설정에서는 시간세한을 30분으로 두었는데, 이걸 조금 왜곡했읍니다.
*합방에 참여하였던 분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과몰입 ㄴ입니다.
Words : 5k
푹푹 꺼지는 발을 놀리는 것도 정도껏이다. 단답벌레는 마음같아서는 이 흰 눈 위로 그저 몸을 내던진 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둘러 다른 일행들과 만나야 한다. 이 곳은 그저 마음을 놓은 채 설원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절대로 아니었다. 아무리 몸을 감싸도 실낱같은 틈을 구태여 비집고 들어오는 한기. 턱없이 부족한 식량. 그리고 그마저도 빼앗아버리겠다는 듯… 지금처럼 덤비는 늑대들.
"꺼져."
단답벌레는 그 답게 손에 쥔 무기를,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덤비는 늑대들에게 휘둘렀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달려오는 저 성정대로라면 분명 자신이 겨우 구한 사슴고기 따위로 만족하지 않으리라. 요컨대, 이건 당장 눈 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였다. 실수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막 잡은 고기,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침착하게 몰이치는 공격들을 맞받아내었다.
육중한 무게의 포악한 짐승들이 전력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는 것을 겨우 피하고, 그 주둥이를 향해 무기를 들이미는 끝에, 남은 늑대 한 마리의 목에도 예리한 낫을 꽂아 그 시체가 움찔거리다 멈추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모든 것이 끝났다.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뿌옇게 흰 김으로 토해지며 그는 서둘러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 잔혹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인 산장이다.
그가 가져온 고기를 비롯해 드물게 자라던 나무열매 따위로 식사를 해결한 생존자들은 여전히 암울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누군가가 다행히 헬리콥터를 호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꺼냄으로서, 난로의 불빛에 비춰지는 면면이에 저마다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곳을 드디어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분위기.
그런 분위기에 살짝 들떠 있던 사람들 사이로 단답벌레는 어떤 기억들을 떠올렸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비교적 먼 곳까지 떠났다가 돌아오는 그 길에서 보이던 일종의 신호기 비슷한 것들. 그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다행히 헬리콥터를 호출할 수 있다는 신호기와는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중요한 점은 가는 길에 보았을 때는 멀쩡했었다는 것이다. 분명 이 장소를 지나친 누군가가 파괴하였다. 그리고 그 의미는 곧 이 사람들 사이에서 배신자가 존재한다는 셈이다.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그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던 생존자 한 명이 긴장한 얼굴로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듯 말하였다. 생존자들에게 있어 가장 당황스러울 그 이야기에 당연히 누군가가 손을 들고 그런 혼란을 야기할 말을 꺼낸 이유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다. 괄괄한 성격이 돋보이는 그 사람은, 발언자가 마땅한 근거도 없이 말을 했다고 판단이 된다면 가차없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장 밖으로 내쫓아버릴 기세였다.
"근거는 간단합니다. 이 눈밭에서 우리들은 하루에 한 번씩 이상한 환각증상에 시달리지 않습니까? 그 순간 누군가가 저를 공격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옷자락을 들쳐 올려 자신의 배를 보였다. 방금 감싼 것으로 보이는 붕대 위로 피가 묻어있다. 이미 응급처치를 했기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상처는 제법 깊어보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언자는 다시 옷매무새를 갖추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긴장감이 감도는 산장 바깥으로 눈보라가 치는 바람소리만이 새벽녘 동이 트기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식량을 담당하기로 어쩌다보니 합의가 되어버린 단답벌레는 언제 몰아닥칠지 모를 초대형 눈보라 전까지 고기를 모아달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배신자가 아닌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도 없고, 뒤늦게 사이퍼 스테이션이니 헬리패드니 그런 기계를 수리하는데 참여하는 자리에 함께해 어설픈 행동이라도 하게 되면 어떤 트집을 잡힐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신중하게 주위를 살펴보다 무리에서 동떨어진 순록 한 마리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접근을 하려 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여긴?"
한 번은 사냥을 하려고 무리해서 멀리 나왔었던 기억이 있는 장소다. 본래 순록을 잡으려 했던 곳과 비교해도 산장과 한참은 멀리 떨어진 곳까지, 기습적으로 백야 현상에 눈이 먼 사이에 이동된 것이다. 이 곳의 기이한 현상에 감탄할 사이도 없다. 심지어 무전기도 먹통이 되어 완전히 고립되어버린 지금, 그는 기억을 천천히 되짚었다. 당장 산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난데없는 이상현상과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날은 아직 밝다. 만약 저녁 쯤에 이런 일을 겪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나무에 그 만이 알아 볼 수 있는 표식을 따라 산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부던히 발을 놀린 덕분에 저 멀리서 산장이 보였다. 그러나.
"사람 살려―!"
어제 자신이 습격당했다고 주장했던 자의 목소리가 등골이 오싹하도록 메아리 쳤다. 단답벌레는 어떤 생각도 할 틈을 하지 못 한채, 소리가 보다 또렷하게 울리는 곳으로 주저하지 않고 달려갔다. 발목까지 쌓인 눈을 연달아 짓밟으며 달려가는 것이 쉬울리 없었건만, 만약 배신자가 정말로 사람을 죽여버린다면. 끔찍한 상상을 그는 눈을 잠시 눈을 꽉 감는 것으로 애써 지워버리려 하였다.
그리고.
너무 늦었다.
"뭐함?"
"…."
살인을 저지른 상대방이 단답벌레의 눈을 마주 보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이성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무기를 손에 꽉 쥔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살인자가 숨을 몰아쉬며, 이제는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제는 다음 타겟으로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먼저 습격당했던 사람은 이미 몸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그 사람의 주위로 시뻘건 피웅덩이가 모락모락 김을 뿜으면서 주위의 눈을 조금씩 녹였다.
"오지마."
"…."
가쁘게 숨을 쉬는 살인자의 입에서 김이 새하얗게 연거푸 뿜어져 나올 뿐, 어떤 말도 없이 그저 그는 느릿느릿하고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단답벌레에게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공허한 눈동자에 섬뜩한 기운이 번들거리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재차 경고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괴성을 지르며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 덤벼드는 살인자를 향해 그 또한 본래 사냥에 사용하던 낫을 단단히 쥐었다.
무리하게 산장까지 달려오느라 지친 몸에 미치광이의 칼부림까지. 단답벌레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은 역시. 살인자가 자신의 무기를 위아래로 마구 내리 찍으려 덤벼드는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던 단답벌레가 단 한 번. 몸이 크게 휘청거려 눈 위를 자빠진 그 틈에 몸 위를 올라타 들고 있던 낫으로 심장을 찍어버렸다.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생존자가 고통은 느낄 수 있었는지, 그 입으로 듣기 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마치 살인을 저질러 버린 단답벌레의 몫을 대신 하는 듯. 그가 올라탔던 몸에서 일어났지만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곧 비틀거리며 엉덩바아를 찧어버렸고, 살인자는 그렇게 원치 않았던 살인자를 다시 만들어 낸 채로 몸이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그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혹감, 분노 따위가 그 외에도 온갖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인 그런 목소리.
"단답벌레 님, 지금 뭐―, 뭘 하신 거에요?"
"아."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이런 끔찍한 농담은 제발 그만 해주시길.
그를 에워싼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절대로 호의적일 수 없었다. 정황을 놓고 보면 두 사람을 단답벌레가 죽였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으니. 그래서 그의 처분을 두고 남은 생존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목소리를 높였다. 죽여야 한다, 아니다 우리가 저 것과 똑같아질 수는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단답벌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항변 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죽여버린 살인마도 똑같이 낫을 들고 있으니 먼저 죽은 피해자의 상흔과 자신의 흔적을 비교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이 뭐가 되었든 단답벌레는 저들에게서 버림 받을 수 없었다.
"나, 아님."
"뭐가 아니야!"
"저 쪽이, 먼저."
제발 이해해주길 바라며, 그는 죽어버린 살인자를 먼저 가리키고 그 다음 피해자를 가리켰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와닿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 길길이 날뛰던 사람은 당장이라도 죽이지 않는다면 다음에 죽을 사람은 우리가 될 지도 모른다며 당장에라도 덤벼들 기세였기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말리느라 애먹을 지경이었다. 끝까지 단답으로만 말할 수 밖에 없는 그의 태도가, 가장 강경한 사람의 눈에는 일종의 조롱처럼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참을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는 와중에, 리더격인 사람이 고민을 하다가 결심을 했다. "단답벌레는 산장에 들어올 수 없다." 가장 안전한 공간을 출입거부 당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처분을 따라야 했다. 등 뒤로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그는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들고온 고기마저 거부하는 일행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사이퍼 스테이션에 들어가 모닥불을 피우며 그 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일행들과 마주치더라도 다행히 목숨에 위협 정도만 가해지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의 행운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켜두는 무전기에서는 자기들끼리 떠드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계부품을 어디서 찾았다던가, 하늘에서 비행기가 자신들을 구조해주지 않는다던가.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드디어 헬리콥터를 호출 할 수 있게끔 수리가 완료될 것 같다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늘 내로 초대형 눈보라가 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태와 짐, 그리고 무기를 한번씩 다시 정리했다. 이대로 낙오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설명할테니 다시 한 번 기회를. 그는 정처없이 무전기에서 떠드는 소리만을 나침반으로 삼아 헬리콥터가 도착할 예정이라는 문제의 헬리패드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석양이 이제 지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서 헬리패드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번에 다같이 이동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 간격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
돌연 단답벌레는 그 광경을 보다가 맨 끝에서 자길 버리지 말아달라며 소리치는 사람을 보았다. 그 비명에는 죽음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공포와 생존을 향한 갈망이 고스란히 녹아있었지만, 저 멀리서 앞서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행히도 닿지 않았다. 그 보다는 그 뒤로 광기에 가득 차 눈이 번들거리는, 한때의 일행이 도끼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 뿐.
"젠장!!" 새로운 피해자가 될 예정인 그가 조바심에 발을 헛디뎌 눈 위로 미끄러졌다. 하필 매고 있는 짐이 무거워 쉽게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기에, 그는 허우적거리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갖은 수를 썼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자신을 향해 내려찍으려는 그 도끼를 보며, 그는 다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어?"
"빨리, 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던 그는 막상 고통이 전혀 없다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고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한때 자신들이 추방했던, 익숙한 붉은색 체크무늬의 남자가 힘겹게 막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단답벌레의 말에 고맙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일어난 몸을 재빠르게 돌려, 다시 헬리패드를 향해 달려갔다. 그 귓가에 비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눈을 짓밟는 소리가.
"도와줘! 도와달라고!!"
"뒤에 단답벌레다!!"
"이 개자식이 결국에는―!!"
먼저 헬리패드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도와달라는 남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뛰어오느라 턱 아래까지 숨이 차버려, '단답벌레를 도와줘'라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던 것도 불운한 점이었다. 그랬기에, 다른 사람들은 단답벌레가 그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줄 알았다.
성격이 가장 괄괄한 자가 곧 하늘 위에서 헬리콥터의 엔진소리를 듣고는 다른 일행들 앞으로 나섰다.
"다들 먼저 타!!"
"…어?"
일행들을 죽이러 덤벼들었던 배신자들을 졸지에 둘이나 처리하고, 저 멀리서 도착한 헬기를 뒤따라 타기 위해 뛰던 단답벌레는 이미 충분히 지쳤다. 그래서 자신을 막으러 온 자가 휘두른 도끼를 그는 미처 피할 수 없었다.
"이봐! 뭐하는거야!!" 단답벌레가 살려준 남자가 뒤늦게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도와 달라고 했잖나!"
"그게 아니야!! 아니라고!! 단답벌레가 날 살렸단 말야!!"
"뭐?!"
체크무늬의 옷 위로 선혈이 묻어나오다 못해 곧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한 공격에 당황해 하며 두 눈을 끔뻑거린 남자가 단답벌레를 향해 원망스러워하는 어조로 말했다.
"정말, 정말로 네가 아니라고?"
"나, 아님."
"그걸…, 그걸 왜 말 하지 않은거야?!"
"했음…."
순식간에 피를 됫박은 토해내는 단답벌레를 남자가 급하게 구급상자를 꺼내 치료하려고 했다. 그러나.
"눈보라다!! 어서 타!!"
"하, 하지만 단답벌레가!!"
자신이 한 실수를 만회할 사이도 없이, 그는 다른 일행들에게 잡히듯 끌려가 반강제로 헬리콥터에 몸을 실었고, 그 모습이 이제는 하늘을 바라보며 쓰러진 단답벌레의 눈에도 보였다.
"같이…가."
그가 남은 힘을 짜내 말하는 순간, 주황빛 노을로 물들어있던 하늘은 순식간에 거대한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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