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 들이 닥친 두 거대한 체구를 보고 그는 굳이 숨기기도 귀찮다는 듯, 대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두 사람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귀한 시간을 썼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어디까지나 마음만 받고 싶었을 따름이다. 저 화려한 색깔과 지극히 실용적인 디자인의 옷차림, 등 뒤로는 묵직한 배낭이라니. 애석한 것은 자신도 저 두 사람과 별 차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무얼 길게 더 하소연하랴.
그는 이제부터 등산을 가야 할 예정이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이, 융터르! 자네 두고 간다?”
“빨리, 오십시오.”
카르나르 융터르는 저 난입하듯 들어와놓고는 벌써 저만치 앞서서 자신에게 재촉하는 두 아저씨,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를 보고 부리나케 뒤쫓아 움직여야 했다. 등에 닿는 가방의 무게가 벌써부터 그는 몸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불길함에 사로잡혔지만 그 표정을 내색할 수 없었다.
도축장에 갈 예정임을 아는 축산물의 심정이 이러한 것일까? 평소 본업인 심리상담가보다는 사기꾼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는, 지금만큼은 이 사기의 피해자가 자신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싶었다. 누가 그 말을 믿겠냐마는, 때때로 그런 일도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그 1주 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1주일 전에도 그 두 사람은 지금처럼 바로 들이닥쳤다. 날이 제법 선선하고 햇빛이 따스한데다, 귀를 기울이면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감미롭게 들리는 그런 완벽한 날씨였기에 때마침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지 않고 그대로 의식이 수면 아래로 잠기기 직전의 순간에. 상담실 문에 어떤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늘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귀청이 찢어져라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하, 뭡니까?”
“이거 봐, 호두. 내 이럴 줄 알았잖나! 이 좋은 날씨에 한다는게 낮잠이라니!”
“오.”
상담실 주인이 질책이 섞인 질문을 해도 그는 늘 그렇듯 뻔뻔하게 넘어가곤 했다. 이번에는 그 동행인에게 대화를 거는 방식이다. 위로 길쭉한 총잡이와 달리 어깨가 떡 벌어져 옆으로 널찍한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가 이미 무슨 소리라도 들었던 것인지 짧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서 말했다.
“융터르 님, 우리, 등산, 같이 갑시다.”
“예, 예?”
“그래! 등산. 혹시 체력이 안 좋다고 귀까지 안 좋은 건 아니겠지? 아하?”
뒤이어 말을 덧붙이는 총잡이의 말에 상담사가 고개를 떨구며 인상을 썼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 혹은 심연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게 목적이었습니까?” 라고 중얼거렸지만 워낙 저음인 덕에 두 사람은 알아듣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이런 일은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평소처럼 갖은 수를 써서라도 회피를 하려 했으나 이번만큼은 절대로 내빼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두 아저씨들에게 붙들려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미 등산복, 가방, 지팡이까지 전부 구입한 참이었다.
“그렇게 아웃도어 스포츠를 하고 싶으시면 두 분이서 해도 될 일 아니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소비에 기분이 언짢아진 그가 자신의 감정은 이해도 하지 않은 채 이 정도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며 자화자찬하던 두 덩치에게 제법 되알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한다 한들,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도 마이페이스가 뚜렷한 두 사람에게는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호드가 얄팍한 잡지의 어느 부분을 쫙 펼쳐 상담사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의 인터뷰가 실린 것이다.
“인터뷰, 봤습니다.”
“의사가 허리 건강 조심하라고 그랬다며? 그럼 나이도 나이인데 운동을 해야지!”
“아, 아니. 그건 제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두 분 도움은―”
“필요하겠지?”
‘필요없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 타이밍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캘리칼리가 잘랐다. 두 사람은 철저히 그가 내뺄 구석을 이리저리 차단해놓고 강권하는 것이다. 장비도 갖췄고 이제는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니, 등산을 가자고. 상담사는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갑갑함에 마른 세수를 하고 겨우 순응해버렸다. 어쩌면 순응 당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지만.
예상대로다. 융터르는 이게 어딜 봐서 등산로라고 불러야 합니까? 라는 말을 벌써 다섯번 쯤은 참으며 낙엽 따위로 뒤덮힌 바위 사이로 난 틈바구니에 지팡이를 찔러 힘을 주었다. 그나마 옆에 손잡이라고 설치된 조악한 조형물이 슬프게도 그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되어주고 있었다.
한편으로 야속하다면, 자신같은 초보자에게 장비 이것저것을 맞춰줄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 산은 도저히 초보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할 만한 것은 절대로 못되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해발 1,000m를 초보자용 코스라고 부르는 시점에서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는 두 사람의 판단은, 정상인의 범주와는 궤도가 틀어져도 한참 틀어진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홀로 내려가버리는 것도 예의는 아닌데다가, 이미 자신 또한 거의 울며 겨자먹기로 중반부까지는 충분히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는 것이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상담사는 불현듯 들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하소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저기, 여러분들. 조금만…, 하아…, 쉬었다 가면, 하… 안됩니까?”
“뭐야? 벌써 지쳤나?”
“오우, 융터르 님, 체력, 진짜, 낮습니다.”
낯빛이 하얗게 질리고 다리가 파들파들 떠는 상담사와 정반대로 두 사람은 그저 페이스를 조금 높여 얼굴이 살짝 상기된 정도였다. 벌써 수도 없이 그 저질스러운 체력을 놀려댔던 둘이 적당히 쉴 곳까지 성큼 올라가 기다리고, 그 장소까지 아득바득 올라간 융터르는 평소와 다르게 낙엽이 제법 깔린 그 바닥에 서슴없이 주저 앉아, 열기를 토해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어이, 융터르. 자네 진짜… 체력이 저질이구만?”
“애당초, 이 코스…,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으음. 역시 조금 더 쉬운 걸로 잡았어야 했나?”
“근데, 그러면, 운동이, 됩니까?”
“역시 안 되겠지?”
그 말인지 놀림인지 구분안되는 대화를 등지고, 융터르는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겨우 목만 축였다. 전형적인 산행 초보자의, 불만투성이인 얼굴을 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피식 웃으면서 저길 보라며 멀찍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상담사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살짝 흘렸다.
책 따위에서 심심하면 보이던 능선이 굽이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관이다. 주로 붉은빛을 띄지만 색색깔로 단풍 따위가 물들어서, 땀에 젖어있는 몸을 시릴 정도로 식혀주는 바람에 맞춰 쏴아아 하고 들려오는 소리가 산 위로 어떤 파도가 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는 듯 하였다.
전형적인 초보자의 감탄사에 호드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저희를, 아득바득 쫓아 오시는데, 그건 좋은게, 아닙니다.”
“그러지 않으면 놓칠텐데요?”
“어차피, 이 등산로, 외길이라, 저희가,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즐기십시오.”
“그래! 자네한테 굳이 무리해서라도 여길 추천한 건 그저 좀 이 경치 보면서 즐기라고 하고 싶었던 거라고!”
“하하…. 말은 잘하십니다들.”
히어로의 지적에 목에 매단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던 융터르는 순순히 인정해야 했다. 우선 자신의 마음가짐, 그리고 산행을 하는 진짜 재미는 따로 있음을. 슬슬 몸이 안정된 것을 느낀 그가 슬쩍 일어났다. 지금도 저 경치가 참 볼만하지만, 정상에서 본다면 얼마나 더 멋질지 기대가 되었기 떄문이다.
“아니, 준비운동도, 안하고, 등산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진짜…. 자네 평소에도 운동을 좀 해야겠어.”
다음날, 평소와 달리 상담실에 마련된 소파 위에 누워있는 상담사의 모습을 본 두 손님은 어처구니가 없어 저마다 쓴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주위로 은은하게 톡 쏘는 냄새는 아무리 생각해도 파스였고, 그 추측을 입증이라도 하듯 테이블 위로 거칠게 뜯은 파스 봉투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한번의 산행으로 상담사는 굉장한 근육통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상반신은 사정이라도 나았던건지, 허벅지 따위를 주무르며 인상을 쓰는 융터르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역시 그 높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와 같은 초보자를 대상으로 할 코스가 아닌거지요.”
“그거, 순, 변명입니다.”
“아―, 이거 참. 그 정상에서 신나서는 ‘야호’ 하고 소리칠 적엔 괜찮은 줄 알았더니.”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머쓱해서 뒷머리를 벅벅 긁고, 노스페라투 호드는 극심한 운동부족이 불러온 상식의 결여에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비밀리에 계획한, 카르나르 융터르의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 체험하기 계획은 장기간에 걸친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