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서글프고도 부드러운 곡조가 점차 아래로 흐르는 느낌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거장의 연주와 전혀 걸맞지 않은 살풍경한 방의 분위기가 여실히 방해를 했다. 사위가 어두운 방은 작업자가 집중을 하기 위해 핀포인트로 단 한 곳만 조명이 환해 시선이 그 누구든 그 쪽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그 작업자가 때때로 들려오는 곡조에 맞춰 지휘봉을 흔들듯 손을 까딱거리는 통에 그 손아귀에 잡혀있는 도구가 가끔 방 이곳 저곳에 깜짝 스포트라이트의 역할을 하듯 난반사를 하기 일쑤였다.
작업자의 얼굴은 자신의 일에 한없이 도취되어, 열기에 들뜬 얼굴이 되어있었다. 조심스럽게 재료를 끄집어내 가다듬고, 보기 좋게 전시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서투름이란 용납할 수 없는 법이며, 실수는 곧 지금까지의 일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버리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일에는 섬세함과 과단성이라는 양극단을 전부 포용할 줄 알아야만 했다. 그러나.
너무나 날카로운 칼이 재료에 흠집을 내고 그 틈으로 내용물들이 보기 싫게 주르륵 쏟아졌다. 역겨운 냄새가 그 중심에 서 있던 작업자를 시작으로 널리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만, 그만!!”
작업자가 지금까지 애지중지하게 다뤘던 예리한 나이프를, 자신이 망가트려버린 작품 위로 연거푸 내리 꽂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걸로도 참을 수 없던 남자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연노랑빛 액채로 뒤덮힌 앞치마를 벗어던진 뒤, 곧바로 스피커와 연결된 스마트폰을 거칠게 빼 바닥에 내던졌다. 그 순간적인 모든 행동을 핏발 서린 눈으로 저지른 그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계속 쓸어올렸다. 그래, 이건 빌어먹을 땀 때문이로군요. 이딴 것에 신경을 쓴 탓에 실수를 해버리다니.
환경을 중시해 다른 곳보다도 서늘한 이 작업장에 곧, 예술가가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뜨겁고 가쁜 숨이 하얗게 잔상을 맺고 사라지기를 반복한 끝에 그 이성을 겨우 냉철하게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심장이 천천히 그 페이스를 되찾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제대로 마주 볼 자신이 생긴 그는 다시 새하얀 조명으로 강조된 수술용 베드를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붉은색 물감이 뚝뚝 떨어지며 온기로 김을 내뿜는 그 현장.
남자는 자신이 벌려논 그 광경을 다시 눈에 담았다. 그 마지막만 실수하지 않았어도 제법 훌륭했을 터였다. 드디어 제대로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건만,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아쉬움이 남은 상태일지라도 보여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방금 전, 나이프를 거칠게 꽂아넣었다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손은 부드럽기보다 오히려 조심스럽고, 섬세하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보일 만큼 작업물을 전시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생각해 둔 장소가 있으니 그 쪽으로 보여주면 될 것이다. 예술가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다시금, 그의 말을 들을 수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거 홀로 이 자리에 계시게 되어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닐 예정이오니... 뭐, 부부가 일심동체라는데 두려울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밤이 되고 누군가가 이미 폐쇄된 항구를 이리저리 도망치더라도, 이 불쌍한 자를 구해줄 사람은 그 아무대도 없다. 녹슨 컨테이너들 사이로 울려퍼지는 것은, 도망자와 추격자의 발소리가 내는 불협화음 밖에 더 없었다. 지나치게 빠르고 또 지나치게 여유로운. 그러나 그 끔찍한 엇박이 더 흐르는 일은 없었다. 작고 빠르게 흘러야 할 소리가 곧 엉덩방아라는 괴상한 마무리를 지었으니. 자신을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웃는 남성을 향해, 도망자가 달달 떨면서 애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 아무것도 못 봤어요. 부탁드려요! 저 진짜로 아무것도 몰라요!!”
“선생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추격자가 그 표정만큼이나 부드럽게 말을 건넸어도, 절대 그 목소리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차라리 놓지 못했다는 것이 더 옳다. 누가 그 상황을 묻기 위해 다가와주기 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연락을 받고 왔을 뿐인데 왜 자신이 이딴 꼴을 겪어야 하는 건지, 그보다도 도와달라고 애원할 상대가 생길텐데. 상대방이 일어나지도 못한 채 연거푸 발길질을 하는 듯 뒤로 물러날 수록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일부러 더 천천히. 일부러 더 큰 발자국 소리를 내며.
추격자가 조금 전과 같이 부드럽고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카르나르 융터르라고 합니다.”
“씨, 씨발...!! 지금와서 반갑습니다, 뭐 이런 말을... 기대하는 건 아니잖아!!”
“그럼요. 당연합니다. 그저, 왜 죽는지 누가 죽이려는지 그런 것 하나도 모른 채 돌아가시면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배려라고 생각해 주시지요. 제 나름의.”
추격자, 카르나르 융터르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 손, 멋모르고 여기에 와버렸을 때,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찧는 것으로 시작하던 큼지막한 손. 도망자가 그 손을 피해 더 뒤로 가려 했지만 눈치 채는 것이 너무나도 늦었다. 등 뒤로 차가운 컨테이너가 닿아 있었다. 피해자의 역할을 떠넘겨지듯 받은 도망자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자 스스로를 소개한 남성이 조금 전보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하, 참 좋은 표정이 아닙니까, 이거. 기왕이면 그대로 있어주시길 바랍니다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제법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이해합니다. 그래도 가능한 유지를 해주시면 바람직할텐데요.”
“싫어... 제발, 제”
융터르의 양 손이 목을 감싸쥠으로서, 피해자의 애원 섞인 목소리가 서서히 끊겼다. 대신 아까와 비교할 수 없는 조잡한 타악기의 소리 비슷한 것이 빈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철제 벽을 때리고, 맨발로 아스팔트를 내리친다. 그러면서 온 몸을 뒤틀고 꼬아 연속된 리듬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연주가 아닐 수 없었지만, 그 소리에 융터르는 터무니 없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작 10여 초만에 얻고 동시에 사라질 쾌감. 그는 그 찰나를 정말로 사랑했다는 듯, 그 움직임 그대로 가만히 있은 채 눈을 잠시 감았다가 만족감이 느껴지는 한숨과 함께 다시 떴다.
그러자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황홀해하던 얼굴은 철저히 식고 그 자리에는 비평가가 평론을 하듯 싸늘한 몸뚱어리를 짓이기고 씹어대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멀리까지 도망치는군요, 너무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여기저기 상처가 심하지 않습니까 등등. 하지만 그럴 시간도 아깝다는 듯, 숙련된 솜씨로 바디백에 시신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즐겁다는 어조를 숨기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역시 재료는 신선도가 생명 아니겠습니까?”
융터르는 이유를 묻기 전에는 그 원인을 알 수도 없는, 고통에 찬 표정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 표정을 짓게 만들었습니까? 죽는다는 공포? 양 손에 목이 졸려 숨을 쉴 수 없는 고통? 누군가에게 배신 당했다는 분노? 그 답이 무엇이 되었든, 그는 아주 섬세하게 다시 작업을 할 뿐이다.
다시 집중력을 높일 목적이었는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과 수술실에서나 볼법한 침대는 그를 외과의가 아닐까 착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수술복이 아닌 옷차림이며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누구나라도 그 착각은 금방 벗어나겠지만.
살점을 가르고, 뼈와 혈관과 내장을 끄집어 내어 다시 재배치를 한다. 생명이 꺼진 사람의 몸은 그 어떤 것보다도 예민하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밤처럼의 실수를 또 저지르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얼굴에 흐르는 땀도 이제는 아예 트랜스 상태처럼 완전히 몰입한 것처럼 보이는 자칭 예술가에게는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아보였다.
그 집중력을 시험하겠다는 의도인지 뒤에서 목소리가 그에게 대화를 건넸다.
“즐거워보이시는군요.”
“그럼요.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융터르는 유쾌한 어조를 감추지 않고 들뜬 기분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마치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완성 직전의 순간부터 함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듯, 그의 등 뒤로는 누군가가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아있었다. 굳이 가장 적당한 말을 고르자면 의뢰주, 혹은 내담자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서늘한 한기와 시체들이 시나브로 부패하는 냄새가 가득한 방은 분명 손님을 모시기에 적당하지 않았지만, 내담자는 초대받은 이후 그 모든 과정을 열망과 희열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이 결말만을 바라고 달려온 독자처럼, 전시대에 올라가는 오브제의 모습이 점차 그럴싸해지고 완성도가 올라갈 수록 차가운 방에 맺히는 김은 점차 뜨거워져 흐릿한 잔상이 남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끝이 다가왔다.
“어떠십니까? 이제 전시를 할 예정이긴 합니다만.”
“그래요. 이거면, 이거면 충분해. 서둘러 주세요.”
“물론이지요. 혹시 모르니 그 길까지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의뢰주 혹은 내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바라던 바라는 듯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상담사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얼굴이 되어 선뜻 작업실을 나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당당한 뒷모습. 상담실에서 본 그 때의 그 모습과 한 치의 차이도 없는 걸음걸이란. 융터르는 그 첫 만남이 생각났다.
“당신의 정체가 뭔지 전 알아요.”
“예?”
상담사는 대뜸 오만하게 말하는 내담자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정도는 적당히 무슨 헛소리냐라고 말하기 적당한 비언어적 태도였기에 딱히 얼굴 근육을 더 부드럽게 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은 그런 표정이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여겨졌는지, 언짢아하는 그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채 이어서 말했다.
“밤마다 원하는대로 죽이고는 여기저기 전시해놓잖아요?”
“....”
융터르는 살짝 열린 입 사이로 작게 한숨을 쉬고는, 사려깊은 상담사 연기를 관뒀다. 이미 저쯤되면 다 알 건 알고 온 것이다. 그 반응을 기대했던 것인지, 내담자의 탈을 쓴 협박범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선뜻 말했다. 그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 두 사람을 죽여달라는 것.
그 대가로 전 재산을 지불이라도 하겠다는 말에 그가 큼지막한 손을 들어 가로막고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선생님, 왜 그런 부탁을 제게 하시는거죠?”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요? 당신은 사람을 죽이고, 저는 마음이 개운해지고. 당신이 더 이득이네요? 돈까지 받을테니.”
“마음이 개운해진다…라. 꼭 복수심으로 요청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럼요.”
그 뒤로 내담자는 자신의 지리멸렬한 개인사를 풀었고, 굳이 상담사에게 어땠냐고 그 감상을 물어봤다면, 그는 틀림없이 지루하다는 답변을 했을 터였다. 다행히도 그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말하면서 스스로 울분에 받치기라도 했는지 내담자는 연거푸 자신에게 계속 ‘아시겠냐’ 며 답변을 독촉하는 탓에 융터르는 반쯤 감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 거렸을 뿐이었다.
굳이 한 줄로 요약해주자면 내 인생을 망친 연놈들이 결혼을 했으니, 그 양가부모가 모월 모일 같이 만나는 날에 시체를 던져주고, 그 반응을 보았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제법 구체적이시군요.”
“그 썅년과 썅놈의 개새끼들이 내 삶을 짓밟았는데, 저도 그렇게는 해야하지 않겠어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제법 빠듯한 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리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 쪽 방면으로서의 전문가의 얼굴을 한 상담사가 달력을 바라보며 난처한 얼굴을 짓는가 하더니 한 쪽 입가가 살짝 올라가 섬짓한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제 입장에서, 제 취미생활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까발리려 하시는 분을 제가 멍청하게 지켜만 봐야겠습니까?”
“뭐, 날 죽이겠다 이런 말이신가요? 어차피 난 대장암 4기에요. 내일이든 모레든 금방 뒤질텐데요. 죽을 새끼 소원이나 들어준다는 쪽으로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담자가 성큼 일어나 상담실 문을 나섰다. 꼭 지금 작업실 문을 나서는 것과 똑같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내담자가 지정한 곳까지 차를 모는 수고를 더한 끝에 겨우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전시물 설치까지 끝낼 수 있었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모든 이들이 이 걸작을 지켜볼 것이다. 이 모든 수고로움이 끝나고 의뢰주를 겸한 상대방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킬킬거리며 어느 한 곳을 보았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그럼요. 더할 나위 없이. 이제 여한이 없네요.”
“아하.”
내담자는 그래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 등 뒤로 상담사의 두텁고 큰 손이 갑작스럽게 조여져 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웃는 표정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눈 만큼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크게 뜬 채로.
“어, 어째”
“외국에는 복수를 하려면 무덤을 두 개는 파두라는 말이 있더군요. 근데 당신은 당신 무덤도 파지 않고 복수를 하지 않습니까? 대신 해드리는 겁니다. 아, 이제 듣지는 못 하시겠군요.”
꺽꺽거리며 손아귀에서 발버둥을 치려고 했던 시도가 무력해지고 그 몸에서 힘이 빠지기까지는 고작 10여 초면 충분했다. 후련한 듯 미소를 짓는 그 얼굴에서는 모멸적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돈이라, 받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말했을텐데, 내가 왜 내 정체를 가지고 협박하는 머저리에게 순순히 협조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난 분명히 조언을 해주었는데 말이야… 멍청하게 지켜만 보겠냐고. 어리석긴.”
사후경직이 오기 시작한 그 몸을 조심스럽게 매만져 치아가 다 드러날 정도로 씩 웃는 얼굴로 만든 살인마는 새로운 오브제가 위치할 곳을 조심스레 살펴 자리를 잡았다.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한 끝에 구도를 잡은 그가 복잡한 일을 끝마쳤을 때의 뿌듯함을 느낀 것인지 충족감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어쨌든 의뢰주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그 양가부모의 앞에서 자식새끼들의 최후를 보여주고, 그 반응을 보고 싶다고. 그렇다면 본인이 죄를 부담하지도 않고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이 방법이 가장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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