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함께 지옥편처럼 불교의 저승관을 참조했습니다.
Words : 20k
만약 영감이 좀 과하게 좋아서, 이런 광경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냅다 달려가 죄송하다며 사죄를 하고 그 광경을 목격하는데서 얻는 정신적인 충격에 대한 보상을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천만 다행으로 자신들이 보는 이 끔찍한 상황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대신 오늘따라 별다른 이유도 익숙한 길에서 한기를 느낀다던가 이상할 정도로 몸이 뻐근하고 자꾸 기지개 같은 것을 하고 싶어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것도 다 그 영향에 따른 것이다.
"잡았습니다!" 망자들을 엮을 때 쓰는 붉은색 오라가 보행자용 신호등을 만지작거리는 망자 하나를 낚아챘다.
일직차사 노스페라투 호드는 연신 그 포승을 던지고 그 끝에 걸린 망자들을 엮어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이에 대해서 어떤 불평이나 불만을 할 수 없었다. 이것도 자업자득이면 자업자득이니까. 그처럼, 다른 두 차사들도 지상에 미련이 남은 온갖 망령들을 어르고 달래거나 때때로 협박을 하고 윽박도 지르는 갖은 수를 써가며 쉴 사이도 없이 지옥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리고 방금의 망자를 엮은 것으로, 무려 100리 길이의 오라가 벌써 끝이 보였다.
"저, 다녀오겠습니다."
"아…, 빨리 다녀오게. 올 때 단 것도 좀 가지고 오고." 강림도령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진짜로 당 떨어졌다는 듯 멍한 눈으로 그를 배웅해주었다.
"그나저나, 카르나르 융터르,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할머니의 고민상담을 들어주고 있는 중이네! 으랏차!" 그리 말하는 강림도령은 다시 지박령이 된 망령 하나를 쑥 뽑았다.
저승의 초입부는 이승만큼이나 혼란하기 짝이 없었다. 각 지옥을 탈출해버린 망자들이 본래 어디까지 진행했었는지, 그리고 어디부터 다시 진행을 해야하는지 여부를 알아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분류가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예를 들어 화탕지옥에서 탈출했다면 그 특유의 분변냄새가 진동하고, 발설지옥은 혀가 한 마지기는 넘게 늘어나 있다던가, 각 지옥의 특징들이 워낙 개성(?)넘치는 탓에 보다 자세한 건 그 쪽 담당들에게 데려가 "이 놈 며칠 더 있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사고를 치시랍니까."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진땀을 빼던 담당자 중 하나가 겨우 시선을 돌리며 일직차사에게 된소리를 하였지만 아직도 도로 잡아야 할 망자들이 많기에 그 잔소리를 들을 여유도 없었다. 그 눈이 저 멀리서 비명이 들려오는 발설지옥에 닿으며, 그 염라대왕이 길길이 날뛰던 기억을 강제로 불러 일으켰다.
서류 뭉치가 책상 위에서 잠시 들썩거리다 가라앉았다. 이제 웬만해선 놀랄 일도 없는 세 차사지만, 이번에는 감히 입에 구멍이 열 몇 개가 뚫려있다 한들 할 말이 없었다. 온갖 문서들이 최소한의 여유공간을 남겨두고 한 자리씩 차지한, 육중하고 넓은 책상에 주먹모양의 크레이터를 남긴 당사자, 염라대왕은 뻗치는 열불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고 이제는 냅다 선글라스도 벗어 던진 채 목에서 핏줄이 불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느이들이 그르구두 차사여―!!"
"…."
"으뜨케 차사란 놈이 서로 힘자랑을 허다 악령을 놓치구, 그마저두 다른 망자들도 도망치게 맨들어―!!!"
그 말에 움찔한 강림도령 캘리칼리 데이비슨, 일직차사 노스페라투 호드는 억하심정에 서로를 힐끗 바라보았다. 조금 뒤에서 두 덩치의 유치한 떠넘기기에 질린 월직차사 카르나르 융터르는 어째서 도매금으로 엮여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품고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월직차사 니 놈두 매헌거지여! 어찌 안 말리구 뭐했어!?"
"아니, 그러니까 저는 말린다고 말렸는데―" 중저음의 월직차사가 변명을 하였지만
"시끄러! 지금 도망친 망자만 기백이 넘구, 그 악령노므 시끼한테 홀라당 넘어간 놈두 스물이 늠어가!"
사태가 심각했다. 강림도령과 일직차사가 겨우 잡아들인 악령이 아직도 깽판칠만큼의 힘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그렇다고 계속 곁에서 월직차사가 말리는 소리가 너무 낮아서 듣지 못한 채, 둘 중 누가 세냐는 그 꼬드김에 힘자랑하느라 정신 팔린 것도 전부 어처구니 없이 일어난 사건이었으니. 냉수로 속에 난 불을 달랜답시고 단숨에 들이킨 염라대왕이 바락바락 화를 내었다.
"이거 똑바루다가 츠신 몬하믄 느이들은 인자 국물, 아니 수백년을 똥통에다 처박아 둘거여, 알아 들어써―!?"
발설지옥의 그 혓바닥을 늘리는 형을 받고 있는 누구보다도 가장 목청이 쩌렁쩌렁한 염라대왕이 애용하는 효자손을 그 셋에게 던졌고, 꽁지빠져라 부리나케 이승으로 올라온 것이 불과 어제의 일이였다. 망자들의 신상정보가 적힌 명부앱에 도망쳤다는 놈들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다행이라 여긴 강림도령이 일직차사가 사온 프렌차이즈 카페의 음료수를 순식간에 반절은 빨아들였다.
그저 무턱대고 잡아들인다고 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망자들이 이승에 품고 있는 미련들 중에는 더러 쉽사리 포기하기 쉽지 않은 것도 있는 경우가 제법 되서, 무시하고 넘어갔다간 이미 형벌을 저마다 받고 있으니 잃을 것도 없는 자들이 악령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선을 넘지만 않을 정도라면 어르고 달래며 저승으로 보내는 것도 여간 진땀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아이고 차사님예, 지 자식새끼에게 한 번만 미안타 이야기만 전하게 해주이소. 예?>
"…어쩔 수 없군요. 꿈을 통해 전달해드리는 것은 허가할 수 없지만, 가까이서 이야기 할 수 있게끔은 하겠습니다."
<하이고매! 감사합니다…. 증말루다가 감사합니다….>
라며 도산지옥에서 거의 5일을 울며 칼날다리를 걷던 어머니가 읍소를 한 끝에 고시원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을 하다가 겨우 돌려보낸 경우는 양반이었다. 심하면 서로 다른 두 지옥에서 형벌을 받던, 사이가 서로 나쁜 영혼들이 이번 일로 이승에서 서로 마주치자마자 네가 옳네 네가 그르네 악악 다투는 것을 중재한답시고, 이승의 고작 10평 정도 되는 땅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말해줘야 하는 일도 있었다.
"아니, 지금, 당신들, 죽고, 자식들도, 상속권 포기, 했습니다. 여기, 남의 땅, 입니다."
급하게 토지대장을 구해와, 그들에 보여주고 나서야 인생사 허무하다는 교훈만 얻은 채로 얌전히 붉은색 포승에 손을 내미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승에서 사람들이 안 죽는가? 그건 또 아니었으므로 본업도 수행해야 하는 상태였다. 일이 불어나기를 무슨 이자에 이자가 붙어 복리로 셈해주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차사들마다 일하는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다. 어지간해서는 들어주는 편의 월직차사. 객관적으로 결론을 내려주는 일직차사. 주로 대책없이 떼쓰는 놈들을 강제로 집행(?)하는 강림도령. 그러면서도 차사들이 저마다 이 사태를 만들어버린,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인 그 악령을 보았느냐며 망자들에게 저마다 묻고 다닐 적.
<아 저 봤어요! 저기 저 산으로 우르르 몰려갔어요!>
한빙지옥으로 도로 들어가야하는 학생이 저승으로 향하기 직전에 산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예로부터 음기가 강하다고 소문난 그곳을 세 차사가 나란히 보았다. 악령을 당장 잡자니 망자들이 넘치는 상황. 그렇다고 망자들을 잡는데 집중하면 그 음기를 열심히 빨아들여 악령의 힘이 더 강해질지도 모르는 상황. 진퇴양난이었다.
세 차사 중 대표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벌써부터 퀭해진 눈을 불태우며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는 지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상황이구만. 빨리 망자들 처리하고, 그 놈 잡는걸로 하지."
"별 수 없군요. 아니 그러니까 두 분이 왜 그 꼬드김에 당해서…."
"그러니까, 좀, 말리더라도, 큰 목소리로, 해주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세 차사들이 기껏해야 겨우 음료수 한 잔 마실 여유만을 두고 종횡무진 이승과 저승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이렇게 나선지 꼬박 하루라는 시간을 두고(물론 저승-이승 간 이동과 음료 마신 시간은 제하더라도) 60%에 달하는 망자들의 탈출이 원상복구 되었다는 점이다.
앱으로 현황을 보던 강림도령이 뻐근해진 목을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한 바퀴 휘 돌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둘에게 정리를 해주었다.
"이제, 비중을 따지면 아직까지 못 돌려보낸 망자들이 20%고, 악령에게 뒤늦게 홀린 놈 15%, 처음부터 악령과 따라 나선 놈이 5%구만."
"그럼, 슬슬, 역할을, 나눠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디보자―. 융터르 자네는 망자들을 계속 돌려보내주게. 나는 악령 그 망할 놈을 추적하고, 호드 자네는 뒤늦게 깽판 치는 놈을 잡기로."
월직차사는 동의를 했지만, 일직차사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끙 소리를 내며 밍기적거리는 그 태도에 강림도령이 권위를 의심받았다 생각했는지 발끈하려 했지만, 둘 사이를 팔 하나가 가로 막았다. 자신이야 말로 이 사태의 큰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월직차사였다.
"지금 시간이 가뜩이나 없는데 여기서 또 힘싸움 할 시간 없습니다. 차라리 두 분이서 악령에게 홀려 추종하는 다른 망자 분들을 한꺼번에 상대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저는 맡겨주신대로 기존에 하던 일을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호두야, 누가 더 빨리 잡는지 그걸로 승부하는 건 어떠냐?"
"좋습니다, 이긴 사람이, 악령까지, 잡기, 콜."
"이거 순 애들도 아니고 그냥 협력하시라니깐…."
마지막 월직차사의 중얼거림은 다행히 너무 낮은 음이여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형적으로 이국적인 외모와 이름의, 이 세 사람이 어떻게 차사직을 맡았는가는 제법 이야기가 복잡했다. 아주 드문 경우, 저승에서 종종 이승으로 물건만 넘어오는 경우가 있곤 했는데 이를 저승에서 미처 회수하기 전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어이, 이거 좀 보게!"
여느 때처럼 상담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던 방 주인, 카르나르 융터르와 노스페라투 호드에게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평소처럼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제법 길쭉한 물건을 다른 두 중년에게 보여주었다. 누가보더라도 검이다. 어디서 또 모험을 하다가 이젠 하다하다 칼을 주워오느냐는 두 사람의 질문에, 캘리칼리는 그저 운동삼아 산을 탔다는 말로 발견한 이야기를 풀었다.
"평소에도 종종 오르던 곳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근처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동굴 하나가 눈에 띄더구만! 호기심에 들어갔더니 이게 있어서 들고와봤지!"
"…그거 장물이 아닙니까? 어서 경찰서에 신고해서 광명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그거, 아무리 봐도, 박물관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자신의 발견에 다소 떨떠름해하는 두 중년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붉은색 수실이 인상적인 집에서 내용물을 빼내었다. 아무리 봐도 오래된 칼집에서 나온 것치고는 너무나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예기를 내뿜었다. 게다가 칼등으로 난 무수한 조각들도 인상 깊은 상황. 뽑힐 때의 밝은 빛에 잠시 눈부셔한 것도 잠시, 그 독특한 무늬를 대번에 알아본 노스페라투 호드가 반가운 어조로 말했다.
"오, 저, 이거, 압니다, 사인검, 아닙니까?"
과연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히어로치고 수상할 정도로 한국문화를 잘 아는 그 답게 정체를 파악해냈다. 굳이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건만 부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덤이었다.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다는 전통적인 시간 방법에 따라, 가장 양기가 강력하다는 호랑이의 시간, 일, 월, 연도까지 맞춰 사악한 것을 벨 수 있다는 말까지. 그러나 그 지식의 자랑을 더 하기도 전에 그 말이 끊겼다.
"거기 잠깐―!!"
문을 분명 닫았는데도 얼굴이 과하게 창백하다못해 입술마저 새카만 남성 하나가 당황한 얼굴로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뛰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격렬한 유산소 운동 탓이 분명한 씨근덕거림과 함께 그가, 마찬가지로 자신을 당황스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손가락질을 하며 비명 혹은 괴성을 질러댔다.
"아니, 이거 남의 상담실에 다짜고짜 와서 대뜸 소리란 소리는 다 지르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이고 나 망했네, 망했어! 큰일 났다아―!"
"어이, 진정하고 말이나 해보게. 혼자서만 북치고 장구를 치니 뭐 알아들을 수가 있나?"
"혹시, 사인검, 때문입니까?"
이 독특한 외모의 남성이 내뻗은 손가락이 사인검에 닿은 것을 알아차린 호드가 그렇게 물어봤고, 남성은 계속 '망했다'를 중얼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주기는 하였다. 곧 심호흡을 하며 애써 진정을 한 그가 결심을 하고 세 사람을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 아니 하려고 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저승에 동행해―"
"뭐, 이건 뭐 죽어라는 의미냐!?"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칼 한 자루 가져온 것치고는 아무래도 과한 요청에 발끈했다.
"아…아이고 아닙니다! 그게, 그게 아니라요―!"
자신을 말단 저승사자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대뜸 오해를 살 발언을 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진행했다. 본래 캘리칼리가 주운 그 사인검은 강림도령의 역할을 맡은 사자가 써야 할 검인데 한동안 행방불명 되었던 것이라는 말. 그리고 그 셋에게 섬뜩하리만치 잔혹한 이야기가 저승사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자세한 건 이제 염라대왕 님께서 설명해주시겠지마는, 이게 진짜 원래는 안 뽑히는게 정상이거든요? 근데… 그, 뽑으셨잖습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저흰, 캘리칼리 님, 안 잊겠습니다."
저승행이 확정된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황급히 손절을 하는 두 중년들의 발언에 저승사자가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다시 말했다.
"그 사인검이 뽑힌 자리에 계셨잖습니까? 그러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일직차사와 월직차사로서 임해주셔야 합니다."
낙장불입이라면서 아무리 거절하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그렇게 어쩌다보니 맡게 된 저승에서의 역할은 저승사자들과 별개로 저승차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일종의 특별-임시직이 되었다. 물론 "저승사자, 저승차사, 다 같은 거, 아닙니까?"라고 호드가 딴죽을 걸었지만, 염라대왕이 넌더리를 내며 그 의문에 아주 간단한 답을 해주었다. 요새 헷갈려해서 그냥 나눴다. 라는 그 말. 새로운 강림도령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만 임시로 해달라는 그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이를 수락하였다. 사실 어쩔 수 없어서 수락한 것도 있지만, 염라대왕이 한 가지 제안을 한 탓도 제법 컸다.
"느이들이 어지간한 사고를 안 치믄, 내가 다른 시왕들헌테두 잘 말혀둘 터이니께 열심히 혀봐."
그렇게 말하는 염라대왕의 뒤로 혓바닥을 잘 못 놀린 망자가 그 처벌을 받기 위해 혀를 죽 늘리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으며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지옥도 있는 것을 알았는데 어떻게 못 하겠다는 말을 하겠는가. 더욱이 이 일을 영구히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부담감을 제법 덜어주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저승에서 차사들이 쓰는 도구들과 그 활동에 익숙해진 세 사람은 저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새로운 강림도령'이 올 날을 기다리며 수행하였고, 저승사자들 사이에서도 그 평이 나름대로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어지간한 사고를 쳐버렸다는 것이 문제지만.
결국 문제의 산으로 떠난 두 차사를 먼 눈으로 지켜보던 월직차사는 어쩐지 불길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망설일 시간이라고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리나케 몸을 움직였다. 사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다. 기존에 잡힌 자들이야 미련이 많지 않아 순순히 잡혀주거나, 손쉽게 남은 아쉬움들을 덜어내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부터는 악령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질 나쁜 놈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지금처럼.
<젠장! 여기서 다시 잡힐 것 같냐!>
예로부터 하얀 털을 지닌 개들은 유령을 쫓는 힘이 있다고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갑작스럽게 개가 짖는지 의아해하겠지만 숨이 턱까지 올라오는 월직차사는 그 짖는 소리가 정말로 고마웠다. 특히나 이렇게 복잡한 원룸촌들은 까딱하면 순시간에 놓쳐버릴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건물 모서리를 겅중겅중 밟아가며 그 3~4층 높이의 옥상을 훌쩍 넘어가는 월직차사의 눈에 허둥지둥 도망치는 망자 하나가 보였다. 어쩐지 눈에 익다 싶더니 생전에도 가정에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아 이미 이승에서도 죄질이 심했던 자였고, 자신이 한때 잡아들인 자였다.
"도망치시는 겁니까."
<너라면 다시 잡히고 싶겠냐고! 돌아가기 싫어!>
"생전 버릇을 놓지 못하고 다시 이곳에 돌아오다니, 역시 개도 못 줄 만큼 아깝군요."
얼핏 듣기로는 처절한 항변이지만 막상 듣는 차사는 동정하지도 않고 매정하게 말했다. 이 망자가 돌아온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죽기 직전의 공간이었고, 그는 폭력에 버티다 못해 몸부림 따위로 치던 그 저항에 떠밀려 서랍장 모서리에 뒤통수를 제대로 찔려 죽었던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씨근덕거리는 그 숨에 그 년이라느니, 용서하지 못한다라느니 그런 말들이 새어나오는 망자에게 월직차사는 자신의 부채를 4분의 1정도 펼쳤다.
"다시 돌아와봐야 할 생각은 뻔하지요. 당신이 죽은 것은, 당신에게 고통을 받아오신 분이 저항한 결과. 어디까지나 운명입니다. 그걸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뭐, 이해하지 못했으니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하시는 것이겠지만."
<시끄러워―!>
"이거 안되겠군요."
망자가 여전히 협조할 테도를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을 오히려, 차사는 다행으로 여겼다. 가뜩이나 쌓인 스트레스를 이렇게라도 해소 할 수 있다니. 차사를 향해 달려드는 그 유령은 그래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방심한 듯 가볍게 서 있던 월직차사가 손에 쥔 부채를 가볍게 휘두르기 전까지는.
산들바람이 가볍게 불었지만 정면에서 제대로 맞은 망자는 순식간에 온 몸이 걸레짝이 되어 쓰러졌다. 가뜩이나 이미 그 몸이 칼날로 이루어진 숲에서 뛰어다녀야 했던 탓에 생긴 조금 오래된 상처 위로 새 상처가 더해졌고, 아는 아픔만큼 또 고통스러운 것도 없었기에 섣불리 일어나서 저항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월직차사의 검은색 구두가 그 앞에서 멈추고, 망자의 몸에 붉은색 오랏줄이 칭칭 감겨졌다. 굴욕적인 표정으로 아직도 일어날 생각이 없는 그의 머리 위로 차사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일어나시면 이대로 저승까지 끌고 가겠습니다?"
<이, 일어나면 되잖아. 일어나면>
월직차사는 투덜거리는 망자를 정말 질질 끌고 갈 생각이었는지 아쉬운 마음에 작게 쳇 소리를 내며 혀를 찼고, 마침 그 근처를 얼쩡거리던 다른 망자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 줄을 던져 기차놀이라도 하는 듯 줄줄이 꿰서 이동하였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드디어 어느정도 손이 비어 도움을 주기 위해 파견된 자들이 그 포승을 넘겨 받았고, 앱으로 살펴보니 한번에 5구의 망자를 잡아들였는데도 고작 19%라는 말에 차사는 표정이 아득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반응을 본 상대방이 별 생각없이 툭 내뱉었다.
"그러니 두 친구 분들 관리를 잘하셨어야죠."
"같이 지내보십시오…. 이게 잘 되겠습니까?"
"…힘내십쇼."
"차라리 말을 하지 말아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 저는 꽤 비참합니다만."
5구에 1퍼센트. 역산하면 자신이 잡아야 할 망자들만 아직 95구라는 말에 카르나르 융터르는 정신이 조금 아득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멍청하게 서 있는다고 알아서 순순히 잡혀줄 이유도 없기에, 그는 조금은 억울해진 마음으로 다시 훌쩍 밤하늘을 향해 뛰어 연거푸 망자들을 잡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어플리케이션을 살펴본 끝에 이제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월직차사는 자신이 이승을 잘 알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두 차사가 자신이 하기로 한 일을 맡았다면?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기도 싫었던 그에게 곧 육교 위 사람들 사이에서 망자들이 눈에 띄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다른 사람의 몸에 벌써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빙의는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당사자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발걸음이 점차 육교 난간에 가까이 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을 만들어 즐기는 것에 몰두한 것처럼 보이는 그 망자들은 저승에서 좀 더 엄한 몽둥이 찜질을 받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명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황급히 살짝 편 부채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이거 정말 까다롭긴 한데 말이지요…!"
부채에서 일어난 바람이 육교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가볍게 살랑거리다 곧 위로 솟구쳤다. 육신이 있는 자에게는 한없이 가볍기에 단순히 '어디서 바람이 부나' 정도겠지만, 망자들은 저항 할 수 없었기에 그 기류를 따라 흐느적거리며 떠올라 곧 그 앞에 떨어졌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붉은색 끈을 던져 도망 못 치게 만들었다.
그 중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게 신난다는 듯, 마구잡이로 깽판을 치던 대표에게 월직차사가 말을 건넸다.
"대부분의 망자들이 이제 원한 관계를 해소하려고 행동하는데 비해 여러분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재미가 들리시기라도 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별 수 있나? 여기에 있는 놈들은 다 이승에 볼 일이 없으니까, 재미삼아서 노는거지.> 그 말이 맞다는 양 망자가 끊어버렸다. 그러나 융터르의 입은 곧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헌데 왜 육교 위로 사람들을 떨어트리시려는 행동을 하신겁니까? 다행히 미수로 끝났지만 실제로 일어나버리면 여러분들께 남은 재판은 앞으로 더 불리해졌을텐데요. 이걸 단지 재미로 하셨다기에는 너무 잃을 것이 많지 않습니까?"
<….>
지금은 차사 노릇을 한다지만 원래는 심리상담가인만큼, 그는 망자들이 어쩐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것을 보았다. 일부는 이를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여 곧장 저승으로 향하지 못하고, 이 이상한 반응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협박이라도 당하셨습니까?"
<아, 아냐! 우린 그냥 진짜로 재미삼―>
"단순히 육교 이쪽 저쪽을 휘청거리게 하는 장난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밌지는 않던데요. 그걸 신난다는 듯이 행동하고 계시는 태도는 뭐랄까…." 그는 말꼬리를 조금 늘려가며 상대방이 대답해주기를 기다렸다.
<….>
"어차피 여러분들은 잡히셨고, 지긋지긋한 악령과 그런 놈을 쫄래쫄래 쫓아간 다른 망자들은 이미 저보다도 더 강력하신 차사분들이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하실 선택은 크게 두 가지가 되겠군요. 이대로 별 볼일 없는 의리를 지키느라 향후 재판에서 원치 않은 불이익을 얻으실지, 혹은 자수해서 광명을 찾으실지."
대놓고 협박조로 마무리하며 이 마지막 탈출한 망자무리를 강제로 연행하려던 카르나르 융터르의 등 뒤로 망자 중 하나가 잠깐 기다려달라며 애원하듯 소리질렀다. 돌연 그녀가 죄송하다며 머리를 잠시동안 푹 숙이다 다시 들고는 하소연을 바로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운이 나빠서 그 악령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 이승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아직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겠다기에 겁에 질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한 하소연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비슷한 협박을 받아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 이런 장난을 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월직차사는 별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저승의 입구에서 사자들에게 그 포승을 건네주며 카르나르 융터르는 악령 무리에게 이승의 가족들에 관한 쪽으로 협박을 당해 약간의 악행을 행해야 했다며 약간 변론을 하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다른 두 차사들에게 합류를 하고자 하였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망자들이 하소연한 그 '협박'을 직접 보고 말았다.
<아, 아이고! 어머니!!>
"세상에 저게 뭐야?!"
"저걸 진짜로 저지르는 미친 놈은 또 처음 보네!"
두 저승사자는 아파트 한 곳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리는 것을 보고 경악하다 아직 명부앱에 올라와있으면 안 될 이름들이 우후죽순으로 업데이트 되려는 것을 보았고, 망자 중 하나가 저기에 어머니가 산다며 울부짖는 것을 달래며 바람결을 밟아 날아가듯 사라진 월직차사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오, 이런."
멀리서 소방차가 연신 사이렌을 울리며 서두르려 했지만, 그 앞에서는 이미 혼백이 점차 까맣게 물들어가는 망자들이 신호를 조작하는 등의 방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악령에게 이미 넘어간 것이 분명해지자, 이승으로 쫓겨나듯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받았던 호리병의 마개를 열고 그 방해를 일삼는 망자들에게 멀리서부터 겨눴다.
곧 어마어마한, 호리병 안으로 공기가 빨려들어가는 그 압력을 겨우 버틴 끝에, 신호등의 신호조절기를 연신 매만지며 킬킬대던 두 망자가 허공을 허우적대다 그 안으로 쑥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부리나케 월직차사는 그 마개를 도로 끼웠다. 워낙 파괴적일 정도의 성능이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지만, 이런 경우라면 정상참작 정도는 충분하리라는 믿음 아래에 소방차가 드디어 정체되었던 구간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 그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럴 때, 호드 님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니까 두 분이 사고뭉치라는 것 아닙니까…."
그 두 사람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자신의 죄가 양심에 찔렸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고 지금은 점차 아파트를 위 아래로 불살라먹는 불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결정해야 했다. 애석하게도 바람을 다루는 부채를 잘 이용한다면 이 화재 사고에서 끊임없이 연료가 되어주는 공기를 차단할 수 있겠지만, 그의 솜씨는 아직 그 정도까지 끌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저기 사람이 떨어지려고 한다!!"
"어디?!"
"15층!! 어―어!! 아줌마! 그거 아니야!! 아줌마―!!"
밑에서 아우성대는 소리. 그 말마따나 이미 화마가 번지는 그 15층 난간을 뛰어내리려는 사람이 보였다. 심지어 품에는 아이도 보이는 듯 했다. 구조가 늦어질 것 같으니 차라리 뛰어내려 생명이라도 건져보겠다는 그 막무가내의 도박수. 직접적으로 생명에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라지만 이 정도는 염라대왕도 좀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기어이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바람으로 슬며시 밀었다. 불이 그 때문에 잠시 일렁였지만 다행히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고, 그 아줌마는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 나뭇가지에 여러 번 걸려 그 높이에서 떨어진 사람 치고는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생명에도 위협이 없었다.
그 사이에 소방차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월직차사는 허공에서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또 다른 무리들을 보았다. 여기저기 불씨를 옮겨 혼란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가 너무 뒤늦게 차사가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옥상에 사뿐히 착지한 그가 싸늘하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 도망가시면 그만큼 저승에서 여러분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분들께 제가 잘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죽여―!!>
"가장 어렵게 돌아가시기는."
월직차사의 부채가 절반 정도 펴지고 덤벼오는 무리에게 아주 간단한 행동을 선보였다. 그저 모로 눕혀 쥔 부채를 위에서 아래로 슥 내리는, 마치 더울 때 누군가에게 가볍게 부채질을 해주는 그것처럼. 그러나 실제로 보이는 것은 전혀 달랐다. 살기 등등해서 달려오는 망자들이 순식간에 자빠지고서는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들의 등 위로는 불러낸 바람이 아주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에.
차사가 그들 중 가장 기세가 흉흉한 놈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지요. 늦으면 늦을 수록 손해 보는 건 우리 둘 다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당신이 더 곤란해질 것 같으니."
마음같아서는 그저 호리병으로 전부 빨아들이고 싶었지만 이 사태를 만들어 낸 만악의 근원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두 사람에게 서둘러 전달해야 했다. 등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압력에 몸부림을 치는 그들이 곧 참지 못하고 떠벌떠벌 말하는 그 내용은 차사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야 말았다. 제 발밑에서 여전히 꺼내달라 외치는 이 몹쓸 망령들에게 호리병을 내밀어 순식간에 빨아들인 그는 스마트폰의 빛에 그림자가 생긴 낯빛으로, 두 차사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하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두 분은 지금 잘 하고 계시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영 아닐 것 같았다.
불운하게도 그런 융터르의 걱정은 어느 정도 들어맞고야 말았다. 본래대로라면 두 사람은 한 자리에서 같이 망령들을 호리병이든 오라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시 저승으로 끌고가야 했지만, 이미 일이 터지고 난 직후에 서로 힘겨루기를 어설프게 끝낸 만큼 감정적으로 미묘한 앙금이 조금 쌓여있던 참이었다. 굳이 무리해서 힘을 더 써가며 화려하게 망령들을 잡는 행동들이나 내가 잡았네 못 잡았네 같은 사소한 말싸움은 기본이라 더는 얼마나 그것으로 말싸움을 했는가는 셀 수도 없었다.
그리고 둘이 지금처럼 아예 대판 갈라지게 만든 경위는 다름이 아니라 저승 입구 근처에 있는 낡은 아파트단지에 대형 화재가 일어났을 때였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악령에게 힘을 받아 급격히 강해진 망령들을 겨우 꺾은 차에, 급히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저 멀리서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둘 중 누가 그를 지원하느냐로 말다툼이 또 일어나고 말았다.
"이런, 융터르 이 친구가 우리 몫을 빼앗아버렸구만!"
"이게 다, 캘리칼리 님, 안 가서, 그런겁니다. 하하."
"방금 그거 비웃은 것… 맞지?"
이미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닥 감정이 후련해지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만큼, 아주 사소한 말도 두 사람에게는 이미 제법 날카롭게 서로를 찔러대는 수준이었다. 이 자리에 월직차사든, 하물며 염라대왕이 당장 싸우던 것을 관두라 한다고 해도 이미 상할 대로 상한 그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냉랭한 분위기에 덩달아 얼어있던 망령들을 호리병 안에 쑤셔담고는 보란듯이 서로 몸을 돌려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노스페라투 호드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나 다소 유치한 결론에 하나 이르렀다. 만약 들었다면 누구라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머리를 짚거나 한숨을 쉬게 만들 법한 그 목표. 악령을 자신이 얼른 잡아들이고 서로에게서 사과를 받자는 것. 그래도 나름대로 공정하게 '최종보스'를 먼저 도전하지 않고 그 놈을 뒤따르는 망령들을 먼저 잡아들이는 것으로 둘은 암묵적인 약속을 맺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우연히도 공평하게 각각 망령이 열 정도 남았다는 점. 두 사람의 승부욕에 과하게 불이 붙었다.
"이런, 맙소사."
악령이 갔다는, 숲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도시 서쪽으로 훌쩍 뛰어오른 일직차사는 주위를 살펴보고는 안색을 굳혔다.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령이 힘을 얼마나 많이 키웠으면 자길 따르겠다는 망자들에게 어지간히도 나눠줬나 싶을 정도였다. 우선순위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그는 자신의 봉을 벼락같이 휘둘러 도로를 무슨 밥상마냥 뒤집으려는 망령의 머리 위로 내리쳤지만 단번에 제압되지는 않았다.
"당신, 지금, 뭐합니까?"
<아…. 장난?>
이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호드는 짧게 심호흡을 했고, 망령은 그런 그 반응이 우습다는 듯 연거푸 키득거리면서 아스팔트에 균열이 일어나 휘청거리는 자동차들 위를 징검다리처럼 연거푸 밟아대었다. 미처 일직차사가 거기 서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 내리찍는 힘이 어마어마했던 것인지 짓밟힌 보닛들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며 자동차들이 순서대로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애물로 가득 차버린 도로 위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뒤이어 달려오던 자동차들. 아스팔트 위에 브레이크를 걸어댄 끝에 귀가 찢어져라 비명지르는 타이어들. 그 결과는 대로에서 벌어지는 연쇄 추돌사고였다. 아주 조금 늦게 대처한 것 치고 결과가 과하다는 표현을 심하게 넘었다. 아파트에 불을 지른 놈들도 분명 그 '장난'삼아서 저지른 짓일 것이란 생각에 봉을 움켜쥔 호드의 그 손에 힘이 더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어이쿠, 눈빛 봐라? 사람도 죽이겠어…? 아 참. 난 이미 죽었지―어억!!>
"곱게는, 못 보냅니다."
이미 영체의 절반이 넘도록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한 망령은 쉬지않고 제 주둥이를 털어대려 하였지만 곧 그럴 수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그 입을 향해서 날아오는 봉 때문에 말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어떻게 요령을 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의 잠금장치가 고장나 미처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릴 적마다 그의 봉이 은근슬쩍 문을 아예 박살내서 사람들이 슬쩍슬쩍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치 본인은 의도하지도 않았다는 듯.
그러니 점차 불리해지는 것은 망령 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폭발이 일어나기도 전에 빠져나와버리고, 곧 도착한 소방관들은 혹시나 모를 폭발을 대비하기 위해 살수차를 대비해뒀으며, 경찰들도 현장보다 훨씬 먼 곳까지 에워싸며 천천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고 있었기에. 만약 이 자리에서 부상을 입은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 분노한 일직차사가 신묘하게 휘두르는 봉에 이리저리 얻어맞기만 하는 망령, 단 하나였다.
더욱이 이들은 순전히 자신들에게 힘을 준 악령 하나에게만 빌붙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근처를 얼쩡거리는 다른 망령들이 있었지만 동료애라고는 전혀 없는 것인지 그 주위 이상으로 접근하지도 않았기에. 요컨대, 이 상황을 만들어 낸 망령은 자신 혼자만 독박쓰는 것이 억울한지, 자신의 머리 위로 내려치는 그 공포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외쳤다.
<호리병에 들어갈게!! 그만 때려!!>
"제가, 말했습니다. 곱게는, 못 보낸다, 라고."
<이런 제기랄!!>
마지막 항변을 할 기회도 없이 망령은 그 말을 끝으로 수십번은 얻어맞은 봉에 정신을 못 차리다 호리병 안으로 혼절한 채 빨려들어가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 주위를 다른 망령들이 에워싸는 것이 보였다. 보기만 하더라도 대략 그 혼백의 수는 다섯. 이들은 분명 일직차사가 힘을 잔뜩 뺀 이 타이밍을 노린 것이다. 그 놀랍도록 저열한 노림수에 노스페라투 호드는 번개가 파지직하고 튀는 눈으로 놈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런다고, 제가, 못 잡을 줄, 아는겁니까?"
<어차피 인간인 주제에 말 더럽게도 많네!!>
<우린 다섯인데 혼자서 뭘 어떻게 하려고?!>
그 말이 일종의 신호라도 되었던 것인지 일제히 덮쳐왔지만, 이들은 정말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연쇄 추돌 사고를 일으킨 놈은 어디까지나 노스페라투 호드, 그 자신의 말처럼 오로지 곱게는 안 보낸다는 생각 하나로 두들겨 팬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이 도로 저승에 되돌려야 할 망령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나와준 상황. 그들은 전혀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찌감치 캘리칼리 데이비슨보다 앞질러 악령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굳이 힘낭비하면서 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와주시면, 제가, 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일직차사가 봉을 허공에서,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휘둘렀다. 갑자기 헛손질을 하는 이유를 모르던 그들이 낄낄대며 넘쳐나는 힘을 주체 못하고 일제히 덤벼들었지만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사슬같은 벼락이 곧바로 그들 머리 위에 내리쳤다.
월직차사가 주로 사용하는 바람과 달리, 일직차사가 아무리 번개를 내려친다 한들 영향은 어디까지나 영혼에 한정되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이나 어떤 사양도 하지 않고 연거푸 벼락을 내리쳐 망령들의 정신을 빼놓게 만들었다. 그러니 차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놈들, 어딨는지, 순순히, 말하십시오."
<아, 아―알려줄 거 같냐?!>
<저기 병원에 간다고 그랬어! XX병원!! 거기서 깽판을 치겠다고>
<야 임마!!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나름대로 의리를 지키려고 하였는지 망령 하나가 기를 쓰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이미 진작에 겁에 질려버린 나머지 넷은 그러지 못했다. 병원에 있을 나머지 말썽꾼들을 잡기만 하면 이제 이 지긋지긋한 일도 끝나겠다는 생각에 일직차사가 호리병의 마개를 빼려고 했지만.
<어? 어어?? 이게 뭐야?! 안돼―!!>
<내가 그래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 머저리들이!!>
망령 넷의 몸이 갑자기 둥실 떠오르더니 산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호드가 급히 호리병의 마개를 빼 그 넷을 향해 겨눴지만, 그 반응이 조금 늦고 말아 여전히 분통을 터트리던 다른 망령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하였다.
"그러실 필요 없으니, 얼른 호리병에 담아버리시지요."
"융터르 님, 그게, 무슨 말씀, 이십니까?"
바람결에 몸을 싣고 온 것인지 가볍게 지상 위로 뛰어오른 월직차사는 호드에게 서둘러 호리병으로 그나마 남은 저 놈을 빨아들이라고 재촉하였기에 그대로 따른 호드가 다시 질문을 하였다. 화재현장에서 막 빠져나온 탓에 탄내가 은은히 배어있는 그가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 악령이 할 법한 생각이지요. 어차피 자신의 말을 듣고 따른 놈들조차도 소모품… 정도로 생각한 겁니다."
"그럼, 설마, 산으로, 가버린 건."
"놈이 하는 일에 어떤 이유에서든 방해를 받는다는 조건을 두고 힘을 줬지만, 그 실상은 망령들이 악행을 일삼으며 힘을 키우면 그걸 잡아먹어 제 덩치를 부풀린다―라는 계획이었던 것이지요."
아연한 표정의 일직차사에게, 카르나르 융터르가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다른 망령들을 잡아야 한다고 그를 재촉하며 그 육중한 몸무게를 겨우 붙들고 하늘 위로 훌쩍 날아올라, 호드가 얻은 정보대로 XX병원에 그를 내려다 주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월직차사의 말에 노스페라투 호드는 이성적으로는 한없이 동의를 했지만, 막상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제가, 얼른, 잡겠습니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허, 아직도 자존심 싸움이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캘리칼리 님, 이기면, 얼마나, 콧대가, 하늘을, 치솟겠습니까?"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말을 듣고 반박하려 애써 머리를 썼지만, 슬프게도 그 말을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라는 생각에 넌지시 제안을 했다. 끌어내주는 것만으로는 그저 놈들이 한데 뭉쳐있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놈들을 잡아넣는 것은 일직차사의 온전한 공이 아니겠느냐는 말. 그러면서 은근한 어조로 월직차사가 그의 마음에 혹할 제안 하나를 은근슬쩍 던져주었다.
"만약 호드 님께서 위기에 빠진 캘리칼리 님을 구하신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오케이, 서두릅시다."
그 말만을 기다렸던 융터르가 병원의 전력을 방해하고 중증의 환자들을 괴롭히는 망령들을 확인하고는 자기 부채를 절반 펴서 크게 휘젓자, 맹렬한 바람이 온 병원 안으로 들이닥치고 그 끝에 망령들이 엉망진창으로 끌려나왔다. 병원 앞 마당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놈들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지고,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일직차사의 호리병 안으로 망령 넷이 쑥 빨려들어갔다.
"흠. 이제 악령이 하나 남았군요."
"오 이런, 캘리칼리 님, 지게, 생겼습니다."
"아― 제발 좀."
"아니, 진짜로, 지게, 생겼습니다. 저기, 보십시오."
앱을 보던 노스페라투 호드가, 카르나르 융터르에게는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그의 손을 붙잡고 바람결에 대롱대롱 매달려 숲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들은 곧 강림도령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찾아내었는데,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 주변이 굉장히 시끄러웠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불길이 치솟는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오늘처럼 이토록 사인검이 이다지도 무거웠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체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냐고 묻는다면, 그는 결단코 아니라고 답할 자신이 있었다. 그저 상대가 무지막지한 괴물이어서 그랬을 뿐이다. 그는 슬슬 얼얼한 감이 올라오는 손을 의식하지 않으려 하며 또 다시 날아오는 공격을 애써 맞받아쳤다.
<지쳤지? 지쳤지?? 지쳤네?>
"어이, 체급을 두고 생각해보라고! 이게 공정해보이나?"
정체를 알아내려고 망령 여럿을 단숨에 호리병으로 빨아들이지 않고 일제히 심문하려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설마 망령 열이 단숨에 저 악령의 힘이 되어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참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망령 넷이 놈의 영체에 쑥 들어간 이후로 그 파괴력이 더더욱 강해졌다는 것이 문제다.
농담조로 말하기는 했지만 한 두번 제대로 얻어맞은 탓에, 뱃속에서 비릿한 뭔가가 울컥 치솟은 강림도령이 그 내용물은 생각도 않고 퉤 뱉어내며 다시 사인검을 꽉 쥐었다. 처음에는 알량한 이간질로 이 개판을 만들어두는 교활함에 이미 치를 한 번은 떨었지만, 자신을 뒤따른 멍청한 선택을 한 놈들에게 단순히 이승을 난잡하게 만들고, 새로운 망자들이 나오게 하려는 계획인가보다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은 그 이상이었으니 여기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나마 그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놈의 상태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면에서. 처음에는 그저 시꺼멓기만 할 뿐이었던 놈의 몸은 한때나마 부하 정도로 생각했던 망령들을 잡아먹은 뒤 크게 부풀면서 영 볼썽사납게 변해버렸다. 완전히 흡수된 것은 아닌지 그 몸이 징그럽게 울룩불룩해지며 내보내달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은 물론, 악령 그 자신의 정신머리도 어딘가 놨는지 그 혀놀림 자체가 지극히 단순해졌다. 대신 단순히 허우적거리는 그 힘이 가혹할 정도로 강해졌을 뿐.
"아―. 역시 융터르와 호드 그 친구들에게 미리 미안하다고 이야기 해둘걸… 그랬나?"
방법은 알지만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저 더럽게도 거대하고 시커멓게 생긴 놈의 반투명한 안쪽에 마치 여기가 핵이라는 듯, 유독 더 새카만 것이 보인다. 그러니 저걸 끄집어내든 칼로 휘두르든 한다면. 악령이 억지로 잡아먹고 힘을 키운 것이니, 소화(?)가 되기 전에 가급적이면 빠를 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멍청해진 놈이라지만 자기 약점이 뭔지 잘 알고 있기에, 그 점을 아무리 찌르고 베려 해도 막히고, 얻어맞고, 내던져진다. 벌써 입은 상처가 꽤 심해진 나머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흐릿해진 눈으로 놈을 보고, 두 친구들 생각도 잠시 하였다. 까짓거 이렇게 된 이상 정말로 죽고 염라대왕한테서 정식 강림도령으로 임명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그 우스꽝스럽지만 어처구니 없는 생각.
악령 놈이 주먹을 느릿느릿하게 내지르지만 그것을 피할 정신력은 물론, 체력도 없는 듯 느껴진 캘리칼리의 눈 앞에 돌연 벼락이 시끄럽게 내리쳤다.
"아니, 혼자서, 뭐하십니까?"
"이렇게까지 무모하신 분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분명 코 앞까지 날아온 주먹이라 생각했건만, 일직차사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내지른 봉이 그것을 거칠게 뜯어내듯 잘라냈다. 뒤이어 가벼운 바람결과 함께 월직차사도 강림도령의 곁에 슬쩍 다가왔기에, 두 친구에게 캘리칼리는 씩 웃으면서 거대해진 악령을 소개해주었다.
"내 새 친구일세. 이름은 악령이고 제 친구들을 처먹는 걸 좋아한다더군."
"…농담, 무지, 재미없습니다."
"혹시 저렇게 커지게 만든 원인 중에 캘리칼리 님도 한 몫하신 바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맞긴 해! 저 자식 똘마니 놈들 중에 남은 열 마리한테 뭔 꿍꿍이냐 물어보자마자 저기 끌려가버렸거든."
"저도, 남은 넷, 질문했다가, 저렇게 끌려갔습니다."
그리 말하던 노스페라투 호드가 그럼 피차일반이니 서로 탓하는 건 금지하자고 말하며 두 사람의 참전에 허우적대던 악령이 뜯겨진 팔을 도로 복구하고는 귀가 울리도록 괴성을 질러댔다. 누가보더라도 확실히 열이 받쳐오른 그 모습. 덕분에 잠깐이나마 쉴 수 있었던 캘리칼리는 칼을 땅에 쑥 밀어넣고는 잠시 양 볼을 손바닥으로 요란하게 짝짝 소리내며 내리쳤다.
"그쪽은 생각해보니까 수가 열다섯이잖나! 고작 여기 둘 추가 했다고 화내는게 어디있나!"
"아, 그런거, 였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해석이 맞는 듯 싶습니다만. 저 멀리서부터 보이긴 했는데 지금처럼 소리지르진 않았거든요."
세 차사가 농담하는 것도 이 단순한 놈에게는 싫은 모양인지, 그 무식한 힘을 앞세워 주먹을 도로 지면에 꽂아넣으려 하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저 놈 몸뚱이 한가운데에 유독 시커먼것이 약점이라며 캘리칼리가 말해주자 두 사람도 적극적으로 그 부분을 노려주면서 생긴 일이다.
악령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싸우겠다고 결심이라도 했는지 다시 귀가 찢어져라 괴성을 질러대고는 제 몸에서 새까만 줄기 같은 것을 뽑아내 날카로운 바늘처럼 밑으로 찌르려 하였지만, 월직차사가 부채를 완전히 펴서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럴 수 없었다. 거대한 풍압이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놈을 감싸 바늘과 함께 짜부트렸다.
그렇다고 쉽사리 놈이 물러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제법 힘을 들였는데도 곧 다시 일어선 그 모습에, 월직차사가 식은땀을 닦아낸 뒤, 진저리를 치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이 산 어딘가에 음기를 먹고 악신이라도 되려고 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군요."
"뭐? 난 그거 처음 듣는데, 어디서 들은겐가?"
"미처 저 놈에게 빨려들어가기 전에 망령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이 일대가 그러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라더군요."
"오, 공격, 또, 옵니다."
융터르의 공격을 흉내내기라도 하는 듯, 이제는 그 거대한 손바닥을 펼쳐 찍어내리려는 그 모습을 노스페라투 호드가 자신의 봉 끝에 다시 벼락을 담아 찔렀다. 단순해 보이던 그 동작에 담긴 기운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손바닥이 갈갈이 찢어지는 모양은 다시 복구하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각자 전력을 다해 놈의 공격을 한 번씩 막아준 두 사람이 다시 제 무기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곧 부채에서 날아간 바람이 거친 톱날마냥 남은 팔 한쪽도 엉망진창으로 갈아대고, 봉 끝에서 쏘아진 번개는 그렇게 막을 것이 없어진 악령의 가슴팍에 제대로 닿아 상처를 만들어냈다.
"가장 멋있을 역할을 주셨는데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다시,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 이거 잘 차려진 밥상에 수저도 안 들어주면… 정말로 큰 실례겠지!"
아직 눈빛이 죽지 않은 강림도령이 끝까지 따뜻하고 밝은 빛을 내뿜는 사인검을 있는 힘껏 꽉 쥔 채로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괴성을 내지르는 악령의 거대한 덩어리에게 뛰어가고, 그의 발치에 일직차사는 바람을 작게 내보내 점차 하늘을 걷는 것처럼 몸을 띄워주었다. 양 팔이라는 주무기를 잃어버린, 거대한 악령의 덩어리가 다시 몸에서 가시 비슷한 것을 마구잡이로 뽑아내 피할 곳 없는 그 몸을 덮치려 하였다.
어디까지나 하려고 했을 뿐이다. 강림도령은 그 공격이 닿지 않을 것임을 믿고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일직차사가 그 뒤에서 봉 끝에 벼락을 담아 내질렀다. 점차 갈라지기를 반복한 벼락들은 그 크기가 비록 첫 줄기보다 작아지고 얇아졌다 한들 위력은 전혀 변함없이 가시들과 맞닿는 순간, 강림도령에게 전혀 닿아도 영향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박살을 내버렸다.
곧 새까만,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두근거리는 그 약점 바로 위까지 뛰어오른 강림도령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내려찍었다. 사악한 것을 베어낸다는 칼의 이름대로, 그 모든 선한 것에게는 그저 무딘 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악령의 거대한 몸집을 깊이 파고들었다. 과연 그 약점까지 단숨에.
지금까지의 감촉과는 확실히 다른, 그 뭔가에 깊이 닿았다는 느낌이 들자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누가 설명도 해주지 않았건만 그것이 악령이 잡아먹은 다른 망령들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칼 끝을 붙잡고 마치 살려달라 구원을 비는 것 같은 그 느낌. 동시에 힘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듯 악령이 무작정 온 몸을 비틀며 울부짖기 시작해, 그가 칼을 빼기 직전, 두 친구들의 긴장된 표정을 볼 여유도 없이 외쳤다.
"어이―!! 호리병 준비해!!"
몸을 박차며 칼을 빼기 무섭게 형태도 잃어버린 망령들이 서로 먼저 나오겠다고 발버둥친다. 그 모습을 카르나르 융터르와 노스페라투 호드가 놓치지 않고 먼저 호리병 마개를 빼서 흡수하였고, 곧 악령의 거대한 덩치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었다. 이 땅의 음기도 잔뜩 집어먹었다고 하더니만, 확실히 망자들이 점차 호리병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산이 주는 음산한 기운도 사그라드는 것이 확연히 느껴질 무렵.
"하! 이게 Long time no see지. 그렇지 않나?"
"정말이지…, 당신 얼굴 하나 보는게 이렇게도 반가울 줄은 생각도 못했군요."
"한 대만, 때리면, 안됩니까?"
다른 망자들보다도 확연히 검으며 그 덩치도 자그마한 악령은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악을 써대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그마저도 시끄럽다며 일직차사가 봉을 그 정수리 위로 내려찍으며 조용히 하라고 할 정도였다. 이 일대를 혼란과 난장판으로 만들고자 했던 놈의 마지막치고는 제법 허무했지만, 이제는 지칠대로 지친 세 차사는 놈이 다시 그 입을 열어 이간질을 시키기도 전에 강림도령의 호리병 속으로 빨려들어가게끔 조치를 취했다.
어쩌면 놈의 음기가 하늘에 가득 찼던 탓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은 어느 덧 해가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새벽이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풀밭에 벌렁 누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으어―어. 드디어 다 끝났구만. 나 더는 못 움직이겠네. 이대로 누가 업어다주면 좋겠구만."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분 무슨 소리 하십니까?"
월직차사가 순 엉뚱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반문하자, 두 차사가 이미 몸을 일으키며 앱을 바라보던 그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찬가지로 상당히 피곤해하는 티가 역력한 그가 자신의 화면을 두 친구에게 보여주며 한심하다는 어조를 전혀 숨기지도 않고 이어서 말해주었다.
"오늘도 우리 할당량 있습니다만. 아니죠, 어제 온종일 망자들 뒷마무리를 하느라 어제는 전혀 못 했으니…."
"뭐?!"
"이런, 세상에, 이거, 감면, 안됩니까?"
"…되겠습니까?"
그들이 어떤 싸움을 했든 말든, 이승에 어떤 영향을 주든 말든, 어쨌든 사람이 태어나면 그만큼 죽기 마련이고 어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직 미처 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망자들을 저승까지 이끌어주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몸을 움직여야 했다.
물론 불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으응. 똥물에다가 아주 수백년을 튀길라구 혔는디…."
여전히 염라대왕의 뒤로 혀를 강제로 늘리느라 내지르는 고통, 그 혀 위에서 밭을 갈기 위해 소가 이끄는 쟁기질이 주는 고통 등으로 온갖 비명이 차라리 음악처럼 울려퍼지는 것을 세 차사는 긴장한 채로 듣고 있었다. 저승에 다시 도착하자마자 실제로 화탕지옥 쪽에서 연락이 왔었던 것이다. 세 분에게 저희 시왕께서 전용 솥을 준비했다 합니다. 라는 그 말이 어떤 말보다도 섬뜩하고 공포스럽게 들릴 수 없었던 것.
그렇찮아도 악령을 겨우 저승으로 보내고 밀린 일도 부랴부랴 마무리 지어야 했던 세 차사는 너나할 것 없이 참으로 엉망진창인 꼴을 정리도 못하고 온 상황이라 필사적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졌으니 관계없다며 항변을 해야 했고, 화탕지옥 측에서 보내온 전령은 못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며 도로 돌아갔다.
"그…, 그 망할 놈은 이제 어떻게 됩니까?"
"느이들 꼬드긴 놈? 갸는 인쟈 남은 재판이구 자시구간에 프리패스여."
강림도령이 대표로 질문을 하자 염라대왕이 리모컨을 들어 모니터 하나를 가리켰다. 전원이 들어오며 보여주는 그 광경은 처음에는 이 저승 어딘가인 줄 알았지만, 염라대왕이 이어서 설명하는 말에, 아직은 사망하지 않은 세 차사들은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화면을 멍하니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찮아도 이미 엉망진창인 죄수들이 서로를 가혹하게 공격하는데, 설령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한 죄수가 울부짖으면 간수들이 매섭게 몽둥이로 찜질을 하며 싸우기를 강요하며 그 결말은 죽음도 아니었다. 서로 살점이 뜯어지고 뼈가 부러져 결국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근처로 바람이 불면, 이미 차게 식은 몸을 되감아 다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세 차사들에게 매우 익숙한 그 악령이었던 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로만 듣던 지옥의 광경에 얼굴이 볼만하다고 말하는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세 차사의 귀에 맺혀왔다.
"하여튼 멍충한 놈이여 저건. 어차피 죄질이 악랄한 놈이 얌전히 재판이나 받다가 갈 것이지…. 느이들은 죄 험부로 짓지를 말어."
정말이지 피와 살이 되는 말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지옥도를 아주 약간이나마 견식 당해 여러모로 불편한 느낌에 사로잡힌 세 차사들이 그만 물러나보겠다고 말을 하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느이 세 놈들, 어딜 갈라구 그랴."
"그…, 저희가 알기로는 이제 남은 일이 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월직차사가 긴장한 얼굴을 풀지도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항변 비슷한 것을 했다. 강림도령도, 일직차사도 염라대왕에게서 어떤 말이 더 나올지 몰라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대왕이 그려라는 말로 운을 띄우고는 곧이어서 말했다.
"느이들, 이 일 계속 혀라. 영구직으루다가. 다른 시왕들헌티는 잘 말해둘테니께."
"저희, 이거, 계약직, 아니었습니까?"
일직차사가 저도 모르게 말대꾸라는 무례를 저질렀지만, 염라대왕은 그 정도는 눈감아주겠다는 듯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다른 두 차사도 어디까지나 강림도령이 현재 들고 있는 사인검을 저승사자들 중 적합한 자가 나타나, 그 자에게 넘겨줄 때까지만 차사로서 일하는 것이라 알고 있었기에 당황한 것을 전혀 숨기지도 못했다.
일반적인 대기업이 영구직으로 일하라고 하면 좋아해야겠지만 여기는 저승이고, 그 말은 죽어서도 차사 노릇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기에 당황한 얼굴들은 곧 사색이 되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염라대왕이 낄낄거리며 즐거워하다가도 곧 헛기침을 하고는 설명해주었다.
"저승사자 놈들이 기가 빠져갖구, 느이들처럼 싸우지를 못허겠단다."
"아니, 무슨 차사가 전투직입니까? 아니잖습니까?" 강림도령이 황당해서 반문했지만, 염라대왕의 짜증이 되돌아왔다.
"낸들 아냐? 고 사인검을 요 저승사자들 전부에게 들이댔는디두 적합한 놈이 한 놈두 안 나왔어 이것들아."
그러면서 하여간 죽은 것들이 산 것보다 파이팅 정신이 부족하다며 투덜대는 것은 덤이었다. 좋든 싫든, 까라는대로 까라는 그 말에 세 저승차사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자 염라대왕이 장난스레 짜증내는 척을 하며 말을 한 마디 더 붙였다. 말은 장난스럽지만 누가 들어도 협박에 가까운 그 말.
"그르믄, 차사 일은 차사 일대루 허고 이승에서 피똥싼 거를 저승서 치울텨?"
황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죽기살기로 열심히 하겠다는 강림도령의 말을 끝으로 세 중년의 차사들이 재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염라대왕은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으라는 듯 킬킬대는 웃음과 함께 한 마디를 또 덧붙였다.
"죽기살기가 아니구 죽어서두 열심히 허것다고 혀야지 욘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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