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차사 세 아저씨들의 이야기 후속편입니다.
*저번 편이 일종의 파티 사냥이었다면 이번 편은 레이드 입니다. 히히.
Words : 20k
저승에 산 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했지만, 그것이 세 차사들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게다가 아직 임시긴 하지만 먼 미래,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정식 차사가 된다면 아무 문제도 없기에 그들이 그 특유의 검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걷는 것을 막지 않는 것도 있었다.
셋 중 가장 키가 큰 강림도령이 쥔 그 붉은색 포승을 쭉 따라가다보면 새까만 덩어리가 그을음 따위를 일렁거리는 모양새다. 그것이 저승에 와서도 움찔거리면 뒤로 포진한 다른 두 차사에게 겁박을 당하는 듯, 억지로 끌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승의 모든 이들이 그 덩어리의 정체를 알고 있다. 모든 사실은 순식간에 네트워크로 전파되는 법이니까.
"저건 또 어디서 깽판치던 악령이래?"
"터널이라더라. 차에 들러붙어서―"
"어후, 안 봐도 그건 벌써 스트리밍 들어갔다."
배경이 저승이 아니고, 창백한 얼굴에 새까만 입술을 가진 사자들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회사원이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현대화 되었지만, 옛 전통을 하나 살려둔 것은 있었다. 최소 49일의 재판을 받기 위해 출발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압감을 선사해주는 그 문. 문 앞에서 사천왕상을 방불케 하는 문지기들에게 강림도령이 포승을 넘겨주었다. 단말기로 이 악령의 정체를 확인한 그들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덧붙여 말해주었다.
"열 분의 시왕들께서 일제히 요 놈한테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저지른 죄의 그 질이 악랄하기가 짝이 없어 재판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허, 그 말인 즉슨 지옥도…인가?" 포승을 넘겨준 강림도령이 이 신속한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답니다. 그럼, 잡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정말 많았지― 라며 너스레를 떨던 강림도령의 귓가에 사자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세 차사 중 누가 가장 세냐는 그 말. 일단 월직차사는 아무래도 덩치가 있다지만 나머지 둘에 비해 호리호리한 편이라 늘 걸러지고, 강림도령과 일직차사 중 양자택일의 선택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하지만 그런 대화에 은근히 낄 법도 했던 두 당사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로 슬픈 전설이 있으니까. 조금 뒤떨어져서 가던 월직차사가 식은땀을 흘리는 두 친구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 그 일로 인한 후유증이 제법 센 탓이다.
몇 주전, 저승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악령과 망자들의 대대적인 탈출 이후에 세 차사가 방문한 저승 분위기를 말하라고 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긴장감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종종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망자가 탈출하는 경우가 있다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악령 하나가 망자들을 대대적으로 끌고 가는 일은 저승 역사상 몇 안된다며 진저리를 치는 저승사자들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차사들의 직속 상관 격이 되는 염라대왕은 설마하는 그 일이 또 일어나는 순간 이유를 불문하고 다시 망자들을 선동하고 탈출하는 놈과, 그렇게 되도록 방치해 놓은 놈까지 전부 다른 시왕들과 이미 말을 맞춰두었으니 바로 지옥문행이라며 저승사자들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똑똑히 기억하라고 을러두었다.
그러한 연유에서, 심각할 정도의 열대야 아래, 본래는 일반적으로(?) 탈주한 망자들만을 잡는 것이 차사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으나 지금 이 셋은 카르나르 융터르의 상담실의 소파나 의자 따위에 몸을 한껏 늘어트리고 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는 아예 생업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차사에게 주어진 일이 늘어난 탓이다.
"진짜로 죽겠구만 이거." 그 괴물같은 체력을 자랑하던 강림도령,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진짜, 죽으면, 염라대왕, 좋아합니다." 일직차사 노스페라투 호드가 한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주의시켰다.
"사실 저희가 죽기를 바라니까 이렇게도 일을 무리하게 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월직차사, 카르나르 융터르가 진지하게 말하자 두 차사들도 그 무게감에 강렬한 설득력을 느껴버렸다. 그렇찮아도 죽어서도 하라는, 말하자면 영구직에 대한 떡밥을 들은 이상 이건 농담으로도 치부하기엔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마 진짜로 죽어서 저승 소속이 된다고 하면….
"우리가 만약에 죽으면 염라대왕이 아주 레드카펫까지 깔아줄 것 같은데― 이거,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
모두의 불안감을 대표해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툭 내뱉었고 두 사람은 고개를 저음으로써 이 불안감이 그만의 것이 아님을 조용히 동의해주었다. 비록 화가 많을지언정, 허튼말은 하지 않는 염라대왕의 성격상 이런 행동은 차라리 과로사를 불러일으키려는 수작이 아닐까하고 세 사람 모두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한편 그 문제의 악령 이전에 그 위를 거슬러 올라가, 그 악령을 풀어주게 되어버렸던 두 사람이 만악의 근원임을 아직도 잊지 못하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두 차사를 쏘아보며 말했다.
"역시 두 분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아… 제발. 언제까지, 그 이야기, 할겁니까?" 호드가 질린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힘자랑."
저지른 일은 알고 있던 두 사람이 그 낮은 중얼거림에 뜨끔한 어깨를 애써 낮추려 하였다. 그건 본인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던 두 말 할 것도 없는 명백한 실책이었다. 카우치 소파에 늘어져 있던 캘리칼리가 상반신만 슬쩍 들어올리면서 변명하듯 주절거렸다.
"그―러니까 자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려주지 그랬나?"
"했습니다만."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못 들었습니다."
"아."
등받이 없는 손님용 소파를 침대삼아 누웠던 호드의 입에서 부정할 수 없는 팩트가 들려오자 상담실 주인은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언젠가는 자그마한 확성기라도 하나 사야 하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카르나르 융터르의 고민과 동시에 상담실이 침묵에 빠졌다. 평소대로라면 노가리라도 까는 것이 이 세 남자의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피곤했기에.
그러나 그 약간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익숙한 얼굴의 사자가 들어오는 소리는 단 하나도 내지 않은 채 상담실에 왔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저마다 한 차사들의 눈이 갸름해지며 그 입술이 새까만 사자를 노려보았다. 캘리칼리가 사인검을 주워왔을 때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늘 이 얼굴이 민망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오면 늘 사건이 크게 터지곤 하였던 경험이 떠오른 탓이다.
"…뭡니까?" 상담실 주인이 세 차사를 대표해서 물었다.
"그, 그러니까요― 뒤늦게 악령 하나가 발견이 되었는데요…."
―라는 말로 시작한, 입술이 새까만 말단 저승사자는 주저하면서 설명하였다. 여기서 자동차로 대략 1시간 조금 걸리는 곳에 한 물이 맑기로 소문난 계곡이 있는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지독한 물귀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귀신이면 워낙 악명이 높아 진작에 저승으로 임의동행이 가능한 종류건만, 어째서 지금에서야 발견이 되었는지에 대해 세 차사가 의문을 표시하자 곧 답변이 돌아왔다.
"그, 그 놈이 말입니다만… 아시죠? 물귀신은 절대 혼자 죽지 않는다는거. 다른 망자 분들이 사자에게 정상적으로 인도가 되는 것을 막고 꿀꺽해버렸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요." 사자가 답지 않게 몸서리를 바르르 떨었다.
"헌데, 그 놈 소식이 이제서야 들려왔다라―. 가까스로 저승에 도착하신 분이 계신가보군."
"맞습니다. 놈이 하도 먹어치운 덕분에, 몸이 굼떠진 틈을 타 겨우 사자가 망자를 저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림도령이 일전의 그 악령을 떠올렸다. 망자 열 넷을 먹고도 그렇게 버거웠는데, 이번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먹어치웠다고 하니 이 놈은 얼마나 그 정도를 달리할 지 벌써부터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이미 세 차사들은 그렇찮아도 오늘 새벽까지 맡은 일을 해오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눈 밑이 저마다 시커멓게 물든지 오래된 상태였다. 강림도령과 마찬가지로 강인한 체력을 자랑하던 일직차사마저도 피로감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저희, 아까까지도, 일, 했습니다."
"그―, 그래서 말입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염라대왕 님의 전언입니다―" 저승사자가 목을 큼큼 소리를 내며 가다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썩을 놈의 힘을 먼저 조금 빼놓은 다음에 여러분들이 확실히 저승까지 끌고 오게끔 하시겠답니다."
"그럼 그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 저희는 쉬는 겁니까?" 월직차사의 질문에 말단 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썩을 놈을 잡아 오는데 성공을 하면 여러분들께 현재 부과된, 일반 망자분들을 모셔오는 일은 전적으로 면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카우치 소파 쪽에서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말단 사자의 도착에 좀처럼 상반신을 편히 눕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세우던 강림도령이 벌러덩 그 상반신을 다시 내던진 것이다. 영문을 몰라하는 말단 사자가 눈을 크게 뜨고 그저 끔뻑거리자 월직차사도 몰려오는 피로에 눈가를 연거푸 매만지며 설명해주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싸울테니 지금부터 좀 주무시겠답니다."
"아, 아니 말로 해줘도 되는 걸…."
말단 사자가 궁시렁거리면서도 장소와 시간에 관한 부분은 추후 어플리케이션에 반영해놓을테니 참조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올 적과 마찬가지로 스리슬쩍 사라졌다.
그러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악령을 상대하게 하려던 염라대왕의 계획에 지대한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예측 가능한 원인과 예측 불가능한 원인이 각각. 전자는 생각보다 차사들에게 악령 포획을 의존해오던 탓에 일반적인 저승사자들이 힘을 빼놓기는 커녕 힘이 되어줄 뻔한 것을 겨우 막았고, 후자는 그만큼 놈의 힘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강력하였다는 점이다. 육신도 아니건만 어째서인지 눈가가 시꺼먼 멍으로 가득 찬 말단 사자가 면목 없다는 듯 웅얼거렸다.
"다행히 저를 포함해 다른 사자 분들이 이 망할 놈의 먹이가 되는 일은 면했습니다만, 정말이지 최악이었습니다."
"얼마나, 최악이면, 그런 말, 다합니까?"
"아이고 말도 마십쇼…."
일직차사의 질문에 말단 사자가 그때만 떠올리면 아주 괴롭다는 듯 몸서리를 쳐대면서도 겨우 답을 해주었다. 어찌나 불쌍해보이던지, 월직차사가 본래 자신과 다른 두 친구들에게만 내놓는 원두커피를 그 손에 들려줄 정도였다. 향이 좋다면서 몇 번 음미하던 겨우 진정하고 그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놈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린 망자들은 차라리 분신이라 부르기에도 과언이 아니었고, 아직 소화(?) 중인 망자들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자들에게 자신을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려줘 한눈을 팔게 만드는 미끼 역할 등으로 아주 알차게 썼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귀신이 참 상대하기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이렇게나 진땀 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예 물 속 깊은 곳에 들어가있으니 암만 숨을 안 쉬어도 된다 한들 도통 여의치 않더군요."
"홈 그라운드 이점을 아주 잘 살렸구만. 도대체 얼마나 거기서 짱박힌 채로 오랫동안 처먹은게 많길래―."
허황될 정도의 그 경험담에 강림도령이 아연한 얼굴로 물었고, 마치 이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의 즉답이 되돌아왔다.
"…삼백은 되었습니다."
"오, 이런."
이 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일직차사가 그 큼직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나머지 차사들의 얼굴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을 본 말단 사자가 위치를 안내해주면 그때 출발하면 되며 더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사라지고, 비장한 표정이 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나머지 두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게 좋겠나?"
"융터르 님, 분신, 상대하고, 제가, 힘을, 빼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네 물 속에서 귀신 상대하기 싫으니까 그런거 아닌가?"
"이런, 들켰네."
쳇 하고 혀차는 소리를 노스페라투 호드가 제법 크게 내고, 그런 모습에 캘리칼리는 다― 들켰지―롱이라며 유치하게 놀려대는 사이 카르나르 융터르는 자신이 물 속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안심하는 티를 남몰래 냈다. 물론 그렇다고 그 티가 안 난 것은 아니여서 두 차사가 물귀신이라도 된 듯 입을 모아, 이렇게 된 이상 셋이서 동시에 놈을 잡자는 말로 귀결이 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검은 도포차림이 된 이들이 훌쩍, 월직차사가 불러낸 바람을 타고 밤하늘을 날아 문제의 계곡으로 향했다. 위치 정보가 조금 늦게 들어온 것은 그 동안 이 물귀신이 한참을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잔뜩 경계한 탓이었다. 그래서 그 경계가 겨우 가라앉았다는 보고가 들려온 것이 늦은 저녁이었다.
"이런 젠장! 추워서 진짜로 돌아가실 것 같은데 자넨 어떻게 버티는건가?"
"하다보면 다 익숙해집니다만…."
도포자락 사이로 밤바람이 차게 스며드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강림도령은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일직차사는 아예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뜨지도 못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나란히 선 세 사람이 이미 벌써부터 그득하게 쌓인 서늘한 음기에 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일작차사가 이 계곡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전달해주었다.
"여기, 옛날부터, 시원하기로, 유명했다, 합니다."
"시원하기는…. 오싹한 거였겠지."
열대야를 완벽히 무시한 채 소매자락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 소름을 연거푸 손으로 쓸어내린 강림도령은 투덜거리면서도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지금과 같이 가혹할 정도로 더운 날에 뺏속까지 시원한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가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 아니던가. 어쩌면 계곡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도 자신이 조심만 하면 될 것이라는 자만심도 한 몫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여러가지로 익숙하고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놈이 배를 열심히 채웠다라는 이야기.
어두컴컴한 계곡 입구에서 강림도령이 저승사자에게서 받아온 부적을 반으로 찢자 그 안에서 축축하고 소름끼치는 기운이 튀어나와 어디론가 이끄는 느낌을 세 사람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다소 불쾌하더라도 놈에게서 영향을 받아 악령이 되어버린 망자들의 방해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점에서, 특히 일직차사가 투덜거렸다. 이래서야 마치 놈에게 홀려 가는 느낌아니냐는 중얼거림에는 다른 이들도 조용히 공감할 뿐.
일직차사가 품에서 다른 부적을 꺼내 찢어 음습한 기운을 다소 몰아내주는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분명 걷고 있어도 턱 끝까지 물이 차오르는 기분이 불쾌했던 차사들의 얼굴이 그나마 편안해지고, 마찬가지로 빛무리가 일종의 손전등 역할도 하는 통에 밤길을 헤메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혹시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으셨습니까?" 미간이 구겨진 채 월직차사가 귀를 기울이고는 말했다.
"…잠깐만, 이거 내 귀가 지금 맛이 간 거 아니었나?"
"살려줘, 라고, 들렸는데…. 오, 이런!"
딱히 비도, 바람도 불지 않고 오히려 찌는 듯한 더위임에도 물살은 마치 태풍에 영향을 받았을 적 그 전형적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낚시꾼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물에 잠겼다 떠있기를 반복했다. 강림도령과 일직차사가 당혹스러운 마음에 이를 앙다물고 있을 때, 두 사람 근처에서 산들바람이 훅 불어오는가 싶더니 월직차사가 바람결을 밟고 수면에 가깝게 날아 그 사람 곁으로 다가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부채를 절반 정도 펴서 휘둘렀다.
수면에 거대한 공이라도 하나 떨어진 것처럼, 본래는 수심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 잠시 모습을 드러나자 처음에는 당황한 두 차사들도 곧 자신들의 무기를 빼들었다. 낚시꾼처럼 보였던 것이, 월직차사가 날려버린 물보다도 더 아래에 존재하는 새까만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른 그림자들이 마치 질긴 끈처럼 그런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예리한 칼날바람으로 잘라내고 돌아온 월직차사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깜빡했군요. 놈이 다른 망자분들을 미끼 삼아서 저승사자들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어야 했는데."
"그나저나, 어떻게, 함정인 걸, 아셨습니까?"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눈치 못 챘었습니다만, 이 주위로 어떤 낚싯대도 보이지 않은 것을 겨우 눈치챈겁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되었네, 됐어. 불길한 소리 미리 해서 좋을 바 하나도 없지. 그나저나 일단 융터르 자네가 좀 잘 한 거 같아."
"왜죠?" 월직차사가 정말 이해가 안 되어서 고개를 살짝 모로 기울자 강림도령이 씩 웃으면서 수면을 향해 사인검을 겨눴다.
"저 놈 지금 빡쳤다."
그 말이 맞다고 말해주는 듯, 저 멀리 떨어진 수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어두운 밤인 탓에 얕은 수심마저도 보이지 않는 계곡물에서 기분 나쁠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보라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곧, 잘박잘박거리며 새까만 뭔가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놈에게 완전히 잡아먹혀버려 어떠한 구제도 불가능한 망자들의 찌꺼기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양이 꼭 좀비영화에서 나오는 그것과 흡사해서 이미 가뜩이나 치솟은 불쾌감은 한껏 더 강해져있었다.
더더욱 기분이 나빴던 점은, 이런 상황에서도 막상 본체라 할 수 있는 놈의 기척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나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아무리봐도 우리 셋도 힘을 좀 빼놓으려는 모양이지?"
"이거, 체력싸움, 해봐야, 불리한 건, 우리, 입니다."
"그럼 속전속결로 해결을 해야겠군요."
명쾌하게 결론이 났다. 누가 무엇을 맡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물귀신도 그런 그들이 설령 도망이라도 가지 못하게 막을 기세였던 것인지 어기적거리던 찌꺼기들은 어느 새 차사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양이 되자, 오히려 차사들이 마음은 편해졌다. 그리고 일직차사가 휘두른 창 끝에서 강렬한 번개가 내리 꽂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기세좋게 찌꺼기들의 머리 위로 내려친 그 벼락에 닿자 곧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고, 남은 잔여물들끼리 다시 엉키려는 것을 월직차사가 바람을 날려 멀리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아직 한참 남았다는 듯 없애면 다시 시커먼 사람 모양의 찌꺼기들이 계속 나온 탓이다. 아직 한참은 남았다는 듯 꾸물거리며 나오는 저 것들이 저 물 속에 있을 귀신이 얼마나 많이 잡아먹었는지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사인검을 휘두른다면 확실하게 이들을 제압할 수 있지만,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하다간 막상 본체를 상대하는데 지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강림도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때 그가 나서려는 것을 월직차사가 막았다.
"아까 제 사무실에서 호드 님이 말씀하셨지요? 역시 여긴 아무래도 제가 상대하는 것이 옳을 성 싶습니다만."
"자네, 괜찮겠나?" 강림도령이 불안한 표정으로 월직차사를 바라보았다.
"캘리칼리 님은 확실히 악령을 처리하실 수 있고, 호드 님은 캘리칼리 님과 힘이 필적하니 이런데서 힘을 빼는 것 보다는 낫겠지요. 이건 여러분들이 설령 물에 들어가더라도 빠지지 않게 미리 만들어 둔 부적입니다."
서두르라는 그 말에 두 차사가 재빠르게 부적을 각기 찢어 계곡에 왔을 때처럼 발 밑에 바람결을 밟아 본체가 있을 곳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월직차사가 부채를 활짝 피며 두 친구가 휘말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 한 다음에야 자신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그림자들을 향해 휘두르고는 혼잣말을 하였다.
"이거 조금 슬프지만, 제가 잡졸들 상대하는데는 제법 유리한 편이라서…. 그러니 여긴 제가 상대하는게 맞지요."
부채가 불러낸 바람은 조금 전처럼 그 주위만을 날려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월직차사가 마치 태풍의 눈이라도 되는 듯 칼날처럼 예리한 바람이 그 주위를 돌며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전부 갈갈이 찢어버리고 있었다. 일직차사의 번개처럼 압도적인 파괴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림자들이 완전히 박살나지는 못하고 드문드문 행동불능이 된 놈들은 다른 놈들에게 들러붙기 시작했고 그 덩치가 아까보다 확실히 거대해지고 있었다.
월직차사는 여유로운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방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의 부채가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그 칼날과도 같은 바람을 뚫고 그에게 접근하려던 거대한 그림자들의 몸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려가기 위해 허우적거리거나, 자기네들끼리 붙들고 늘어지며 그에 저항하려 했지만 그런 시도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힘이 어처구니없이 강력했다.
"예로부터 큰 일은 작은 일로 나눠서 생각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혼잣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곧 차사가 증명해주었다. 강림도령 정도의 덩치가 되어버린 그림자들이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누군가에게 가벼이 부쳐주기라도 하듯 위에서 아래로 부채를 저었다. 그러나 그 행동이 가벼워도 결과는 절대 그렇지 않아, 그림자들이 대번에 바닥으로 짓눌리듯 추락하였다. 억지로 얼기설기 붙여 덩치를 키운 놈들이 추락한 충격으로 들러붙어있던 놈들이 유리조각마냥 분리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발견되어 이들이 완전히 찌꺼기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 모습을 본 월직차사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호리병으로 제압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맞상대하는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팠고, 더욱이 호리병으로 빨아들일 수 있는 대상도 망자에 한했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저들의 구원은 이제 아주 물건너갔다는 의미기도 하였다.
조금만 더 일찍 발견되었다면. 당장 저승에서 어떤 죄를 치룰지는 몰라도 악령에게 조종당한 부분은 참작이 될 것이 분명하건만. 월직차사의 눈은 그렇게 여러가지 이유로 가늘어진 채 아직 충격에서 못 벗어난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전부일 것이다, 그런 안일한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동정심은 동정심이다. 어디선가 이들을 조종하고 있을 물귀신이 새로운 그림자들을 다시 물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먼저 덤빈 탓에 쓰러진 놈들에게 접근하는 그 의도가 대놓고 보여, 차사가 휘두르는 부채의 끝에는 순식간에 칼바람이 맺히기 무섭게 날아갔다. 등골이 오싹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그것들이 그림자에 닿자, 아까처럼 숭덩숭덩 절단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밀하게 조각나서 저들끼리 다시 붙기도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다시 한데 뭉치지 못하는 파편들이 그제서야 사르르 흩어지고 더 이상 수면 위로 기어올라오는 그림자는 하나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에 월직차사는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소모전의 양상만 띈다면 곧바로 합류할 수 있겠다는, 차사의 그 생각을 악령은 동의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수면에서 다시 물보라가 치솟더니 그림자들이 쑥 올라오는 모습은 이제 그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덩치는 지난번, 저승을 멋대로 탈출했던 그 악령만큼이나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런!"
지금까지의 놈들을 가늠해보건데, 못해도 한 놈당 스물 이상이 들러붙어 거인의 모습을 띄기 시작했다. 총 다섯 거인이 물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그저 뭔가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급히 부채를 휘둘러 방어막을 만들어 내 확인한 것은, 물 속 깊은 곳에 있는 돌덩어리였다.
"나름대로 원거리 공격이다, 이건가?"
물귀신 입장에서도 작은 찌꺼기들을 동시에 조종하는 것 보다 차라리 거대하게 만드는 편이 낫기라도 하다는 듯, 거인들은 이제 합공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방어가 풀리기를 노리는 듯, 일제히 던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던져대는 통에 막아내는 차사의 손이 다 저려오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처럼 제자리에서 싸우다가는 일방적으로 불리해진다는 생각이 든 월직차사가 아직 방어막이 버텨주고 있는 사이에, 부채를 쥔 오른손을 등 뒤로 쭉 뻗었다가 순식간에 앞으로 휘저으며 어마어마한 돌풍을 만들어냈다.
차사 주위에 널부러져 있던 자잘한 돌멩이들까지도 그 돌풍에 휘말려 거인 무리에게 날아가고 흙먼지도 잠시나마 자욱하게 낄 정도였고, 거대한 그림자 허리까지 잠겨있던 수심도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그리고 그 가장 깊은 곳에 보이는 것은.
<이런 썅―!! 어딨어!!>
"역시 당사자는 아니여도 조종자는 따로 있을 줄 알았습니다."
보고받은 물귀신, 그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에게서 힘을 빌려다 쓰는 일종의 부하같은 악령이 가장 유리한 이점을 잃어버리고 당황하는 사이 하늘에서 월직차사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악령이 곧바로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돌풍으로 인해 물이 날아가버린 그 자리 위로 목소리만큼이나 묵직한 바람이 그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부하 격인 악령에게도 물귀신이 준 것이 분명했다. 어마어마한 풍압에 거인들이 순식간에 바스라졌는데도 악령은 아프다며 비명만 지를 뿐 그 기세가 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악령이라면 훨씬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월직차사가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내 그 마개를 뽑았다.
<자, 잠깐만! 안돼! 젠장!!>
"염라대왕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신은 프리패스일테지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게 뭔 개같은 소리야―아!>
악령은 호리병 안으로 빨려들어가버려 차사가 뭐라 대꾸하지도 못했다. 어쨌든 이 놈은 말하자면, 지옥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말 밖에는 굳이 할 생각도 없던 카르나르 융터르는 마개를 닫고 조심스럽게 지상 위로 다시 내려왔다. 그의 얼굴을 두 사람이 봤다면 분명 체력을 더 키우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연거푸 큰 바람을 만들고 내보내는 바람에 그는 당장이라도 상담실로 돌아가 커피를 마시며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월직차사는 아직도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계곡 상류 방향을 바라보았다. 달 그림자 아래로 시커먼 그림자 떼가 또 다시 보이고 있었다. 차라리 저 몰려오는 것을 맞상대하는 것이라면 월직차사도 마음이 편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주보며 오는 모양이 아니라 이미 상류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뒤를 쫓는 모양새는 확실히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달려가는 모양이다. 융터르는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의 수를 떠올렸다.
"오자마자 덤볐던 놈들이 백 조금 안 되고, 거인처럼 뭉쳐서 덤빈 것이 백이라고 하면…."
차사가 부채를 쥔 손에 다시금 힘을 주며 한껏 지면을 박차 발 밑에 바람을 깔고 수면과 거의 닿을락 말락한 높이로 날았다. 저들에게 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법이기에. 그의 마음처럼 몸은 이미 벌써 그림자들의 진행방향을 가로 막았다. 이 찌꺼기들을 조종하는 또 다른 부하가 있을지, 혹은 아예 물귀신 그 망할 놈이 아예 막무가내로 풀어놓았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 그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더는 못 갑니다."
월직차사가 그 찌꺼기들 너머에 있을 조종자에게 말했다. 듣든 말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은 채로, 그는 더 미적거릴 시간이 없었기에 마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처럼 활짝 편 부채를 내리 꽂듯 앞으로 뻗었다. 마치 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그 찌꺼기들의 머리 위로 바람이 떨어져 그에 닿은 놈들은 완전히 바스라진 채로 사라졌다. 이미 무리했다는 정도를 넘어선 차사는,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번에는 우에서 좌로 힘껏 부채를 부쳤다.
그 남은 힘을 억지로 짜내 무리하며 펼친 바람이 이번에는 그 결을 따라 자잘한 참격이 되어 그림자들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이 놈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과 두 친구들을 방해하지 말라는 생각이 합쳐져, 그는 평소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과격한 행동을 저르고 그 결과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더 이상 수면 위로 올라오는 그림자들은 없었다.
"이거…. 정말로, 할 짓이 못 되는군요. 두 번 다신, 먼저 가라고…, 안 할 겁니다."
이대로 주저앉아버리면 급류에 몸을 맡겨버리는 꼴이 되었기에 차마 그러지는 못한 월직차사는 겨우 숨을 몰아쉬고 서둘러 상류로 향하려 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아주 굼뜨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한계다.
한편 상류에 먼저 올라간 두 차사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일직차사가 연거푸 벼락을 내리고, 강림도령은 사인검에 힘을 불어넣느라 지친지 오래지만 그 공격을 무수히 받은 물귀신 쪽은 그럭저럭 버틸만 해보였던 탓이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자면 어지간해선 진즉에 제압되어야 할 수준을 크게 뛰어넘은 괴물같은 놈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검을 쥔 손이 저릿저릿한 것을 애써 무시하던 강림도령은 전방에서 자신에게 쏟아져오는 공격을 막아주던 일직차사에게 말을 건넸다.
"어이, 괜찮나?"
"아직, 안 죽었으니, 괜찮다고, 합시다."
"안 괜찮구만."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내심 진땀을 흘리며 다시 이 장소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도 장소가 너무 좋지 않았다. 물귀신은 절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그림자를 마치 머리카락이나 수초처럼 길고 가늘게 뻗어 속편히 공격해오는데 자신들은 그걸 쳐내는데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노스페라투 호드의 벼락이 가장 효과는 좋았지만, 역시 그 동안 지독하리만치 먹어댄 다른 망자들에게서 힘을 얻은 것인지 그걸 계속 버티고 있었다.
발 밑에 감도는 바람결을 놀려 두 차사가 훌쩍 하늘 위로 날아오르려고 하면, 이 머리카락이라고 해야 할지 수초라고 해야할 지 모를 놈의 공격이 대번에 끌어내리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유리하고 적에게는 불리하게 만드는 상황도 만드는 것이, 과연 여기서 삼백 이상의 망자는 먹어댄 놈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감탄마저도 나올 정도였다.
강림도령이 사인검을 쥔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이승의 그 어떤 물과도 관련이 없는 영험한 불이 검신에 새겨진 별자리를 따라 일렁이며, 자신보다도 지친 일직차사를 향해 다가오는 머리카락을 재빠르게 베어냈다.
"호두야, 네가 한 번 막타 쳐볼테냐?"
"치고 싶어도, 지금, 지쳐서, 못 칩니다."
"이거야 원 밥상을 차려줘도 말이지―!!"
둘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조차도 무슨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인지, 재차 머리카락들이 그들을 붙잡으려고 달려드는 것을 각자 겨우 베어내면서 일직차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가까이에서 그 혼잣말을 들은 강림도령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자, 그가 답했다.
"여기에, 잡졸들까지, 있었으면…."
"아, 말하지 말게. 말하지마."
캘리칼리가 고개를 홱홱 소리나게 저었다. 정말로 끔찍한 그 말이 자칫했으면 정말 현실이었을 수도 있었고, 자진해서 먼저 처리하겠다고 나섰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아니었으면 이 소모전이 가혹하리만치 길어졌을 가능성은 굉장히 높았으니까. 그런 와중에 일직차사가 그림자들을 갈래갈래 나뉘어지는 벼락으로 다시금 불태우며 나지막하게 다시 중얼거렸다.
"저 놈, 탈모, 안 온답니까?"
"허! 하기야, 우리가 좀 많이 이발을 해주긴 했지! 이 참에 한번 삭발식 거행해보실까!"
노골적일 정도로 저 머리카락들은 자신들을 물 속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이유는 딱히 확인하지 않아도 자명했다. 일단 살아있는 사람인데다가 차사의 힘도 가지고 있으니 악령인 저 놈의 입장에서 얼마나 맛있는 먹이가 아니겠는가. 그 머리카락 같은 그림자 공격이 점차 드물어지는 틈을 노리고 두 차사가 발 밑의 바람결을 놀려 수면 위를 밟고 그 깊은 물 속을 향해 날아가듯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접근을 거부하겠다는 듯, 물 속에서 물보라가 지긋지긋하게도 물보라가 일어났고, 곧 강림도령이 외쳤다.
"호두야, 내가 신호하면 가능한 벼락 세게 한 방 먹여줘라!"
그가 쥔 사인검에서 이보다 더 밝을 수 없다는 듯, 상류를 환히 밝히고도 충분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 수면에 사선으로 내리 그었다. 그가 "지금"이라고 외치는 동시에, 일직차사의 창이 그 검격으로 갈라진 물 사이를 찌르며 귀가 울릴 정도의 벼락이 떨어졌다. 사방이 물 천지인 이 계곡에서도 뭔가가 분명하게 타서 매캐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이 두 차사에게 동시에 들었다. 이만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놈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 탓이었다. 저 밑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점차 올라오는 것이 보임에 따라, 다시 물가의 자갈밭으로 돌아온 강림도령이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농담조로 말했다.
"이럴 때는 역시 그 말이지. 그러니까…. 해치웠나?"
<역시 곱게 잡아먹는 건 힘들구나아―>
"아, 그 말, 꼭, 했어야, 했습니까?"
지금까지 밀어붙인 공격들을 '곱게'라고 표현한 이유를 두 차사가 무의식적으로 동의해버리고 말았다. 일순간, 물살이 빠르기만 할 뿐이었던 이 계곡에 폭포라도 생긴 것처럼 급물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올리자 거의 3층짜리 빌라 정도 크기의, 어린이들이 흔히 사람을 그릴 적 졸라맨이라 부르는 그 시커먼 형상을 뼈대로 하는 물로 만들어진 거인이 일어났다.
일전에 한 번, 악신의 자리를 노리고 저승을 탈출했던 놈이 만약 성공했다면 저런 꼴이었지 않았을까. 강림도령과 일직차사는 원치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 놈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악령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과하게 강력하고, 신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격이 낮은 놈이 어떤 신호도 주지 않은 채로 곧장 그 팔을 들어 두 차사를 향해 거대한 손으로 후려패듯 뻗었다.
"차라리, 이게, 더, 낫습니다!"
"그래! 이제 너 하나만 패면 된다, 이거 아닌가!"
두 차사들은 오히려 후련하다는 얼굴로 바람결을 밟아 다시 수면 위로 뛰어들었다. 거대해진 덩치만큼이나 제법 둔중한 물귀신이 그들을 잡으려고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는 해본 적이 거의 없는지, 오히려 휘두른 팔에 몸이 이리저리 돌아가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강림도령과 일직차사가 차마 방심하지 못했던 것은,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전해져오는 힘이 예사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도 안일한 판단이었다는 듯, 물귀신이 킥킥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너희 아직 살아있었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영문을 모르던 두 차사에게, 닿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소름끼치는 물을 한껏 끌어올린 물귀신이 마치 물풍선같은 것을 잔뜩 만들어냈고, 도망칠 여유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와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맞받아내기를 포기한 두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그저 물을 가둬 만든 공이라고 하기에는 그 강도가 생각 이상이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배구공 사이즈던데…. 지금 저 나무가 다 꺾였단 말이지…!"
"저거, 맞으면, 골로, 갈겁니다."
"염라대왕이 이 자리에 계셨으면 얼른 맞고 죽으라고 하겠구만!"
강림도령의 말이 농담처럼 도통 들리지 않았기에, 일직차사는 정말 죽어선 안되겠다며 억지로 씩 웃고는 다시 날아오는 그 거대한 구슬을 오히려 창 끝으로 찍어 그 반탄력으로 하늘 위로 높이 떠올랐다. 그 동작이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고 큼직큼직해 자연히 물귀신이 공격을 보다 그 쪽으로 향했고, 어떤 것은 아슬아슬하고 또 어떤 것은 여유롭게 피하며 지금까지 쏘아보낸 모든 벼락보다도 가장 거대하고 위협적인 것을 순식간에 창 끝으로 쏘아냈다.
순식간에 갈래갈래 벼락이 세밀한 침보다도 더 가늘게 갈라져 그 거대한 물귀신의 몸에 비처럼 쏟아져내리고, 그 틈을 노린 강림도령의 사인검이 큰 덩어리로 조각나기 시작한 물귀신의 몸에 따스한 빛을 뿌리며 그 날을 들이 밀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날이 닿지 않았다.
"뭐 이런 물살이 다 있냐, 어!!"
놈은 공격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계곡의 급류를 그 몸뚱아리로 삼았기에. 그 몸을 이루는 흐름이, 뼈대와도 같은 그림자가 베이지 않도록 막아내다못해, 아예 빠지지도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이를 앙다물며 도로 무기를 빼려는 강림도령의 시야 바깥에서 물귀신의 거대한 손이 그를 마치 귀찮은 벌레라도 잡는 것처럼 내려쳐버렸다.
오히려 거대한 풀장 위로 무리한 다이빙을 해서 받은 충격처럼 강림도령이 나가 떨어져버렸다. 가까스로 기절하지도, 사인검도 놓치지는 않았지만 방금의 직격으로 인해 귓전을 울리는 이명과 더불어, 눈 앞의 초점마저 완전히 어긋나버려 서있기도 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일순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그가 뱃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올라와 비린내가 그득한 그것을 뱉어버리고나서야 겨우 시야는 돌아왔지만 이명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겨우 차리고나서 보인 것은, 일직차사는 다급히 창 끝에 벼락을 두른 채로 몰려오는 공격을 계속 맞받아치고 베어낸 끝에 도포자락 사이로 무시할 수 없는 상처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모습이었다. 차마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던 노스페라투 호드가 어깨 너머로 물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아―. 조금만 더 심했으면 염라대왕하고 미팅 잡을 뻔 했는데 말이지."
"아직, 입 놀리는거, 보니, 괜찮은거, 맞습니다."
"아하! 그렇구만!" 그리 말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다시 제법 큼지막한 핏덩어리를 일부러 소리내며 뱉었다.
어떤 행동을 하자고 사전에 맞춘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이 발 밑의 바람결을 밟아 훌쩍 뛰어 올랐다. 그러나 이 거대한 몸에 익숙해지기라도 했는지, 온 몸이 물로 만들어진 그 거인의 공격도 점차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방어에는 자신이 없던 두 사람은 가까스로 피하기를 거듭하며 저마다 공격을 하기 위해 강한 충격을 주며 연거푸 터지는 물풍선같은 것 사이로 파고들었다. 저 몸을 이루는 거무칙칙한 뼈대를 향해.
벼락을 감은 창 끝과 환한 빛을 내뿜는 검이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각자 한 팔을 향해 세차게 내리 그었다. 몸통과 달리 상대적으로 얄팍한 덕분에 몸에서 떨어진 그 두 팔을 이루는 덩어리진 물이 다시 계곡 아래로 떨어지고,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이 철썩 소리가 들리며 다시 자갈밭 위로 내려온 두 사람이 한 마디씩 하였다.
"이걸로 좀 효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기야 잡아 먹은 것이 얼마인데…."
지체없이 호리병을 빼들었던 호드가 도로 마개를 끼우며 혀차는 소리를 냈다. 아직 놈이 이 안으로 빨려들어올 만큼 약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캘리칼리도 그 말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방금 일격은 일직차사도 분명 그러하였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쥐어짜내 휘두른 것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무려 양 팔을 잃었으면 그만큼 힘도 약해지면 좋으련만.
놈의 발에서부터 마치 용오름처럼 물이 역류하더니 곧 떨어져나간 양 팔의 자리에 새 살이 돋는 것처럼 점차 그 큰 덩어리가 형성되는 것이 보였다. 아직도 몸을 복구할 여력이 남아있냐며 일직차사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는 와중에, 강림도령은 약간 이상한 것을 보았다.
"호두야, 저거 보이냐? 물 흐르는 게 조금 이상한데."
"음? 어딜, 보라는, 겁니까?"
"우리가 저 놈 팔을 잘라내서 떨궜던 그 자리 말이다. 저기만 물이 빨려들어가질 않는데."
"…오 이런. 조금만, 더, 빨리, 떠올랐으면, 좋았는데."
두 차사는 이 원인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형태를 불문하고 사악한 것을 베어낼 수 있는 무기들. 그로 인해 놈의 영향을 받고 있던 계곡물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 정도만큼 다시 몸을 구성하려고 물을 빨아들인다 한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다. 강림도령이 뒤늦게 공략법을 알아차리고 허탈한 듯 웃었다.
"저 놈 목을 단숨에 베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아예 사지절단 쪽으로도 생각해볼 걸 그랬구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해봅시다."
"하! 누가 할 소리를!"
물귀신이 부리는 물로 만들어진 거인이 완전히 두 팔을 재구성하면 이보다 더 위협적인 것도 없다. 두 차사가 다시 몸을 날려 밤하늘을 낮게 날아 자신들이 한번 베어냈던 그 자리에 다시 무기를 세차게 휘둘렀다. 조금 전보다는 덜한 물보라 사이로 강림도령이 "아직"이라며 외치는 소리와 함께, 두 차사의 신형이 허우적거리는 그 거인의 하반신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몸의 일부를 다시 잃어버린 탓으로 무게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그 물귀신의 다리를, 팔과 같은 방식으로 각자가 온 힘을 다시금 억지로 짜내가며 무기를 휘둘렀다.
제 몸을 이루는 물로는 공격을 할 수 없는 모양인지, 물귀신은 이리저리 뒤트는 외에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고 덕분에 두 사람은 마치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를 도끼로 찍는 착각도 일순간이나마 하면서 몸통보다는 덜 두터운 다리를 저마다 연거푸 베어냈다.
곧 다리마저 잃어버리고 남은 거대한 몸통이 계곡 이곳저곳에 휘청이며 쓰러지는 통에 흙먼지가 어마어마하게 일어났다. 이제는 호리병으로 확실히 빨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강림도령이 호리병의 마개를 빼 그 방향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좋았어! …젠장 아직도냐!"
"이런!"
일직차사가 재빠르게 강림도령의 몸을 밀쳐냈다. 영문도 모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자빠진 강림도령이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 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았다. 자신이 방금까지 서있던 자리의 자갈들이 순식간에 고운 모래로 변한 모습. 무릇 이렇게 완전히 가루가 되면 일어나야 할 먼지 따위는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자리가 이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몸을 다급히 일으킨 강림도령이 입술을 짓씹으며 다시 소름끼치는 감각을 떨어트리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집중해서 바라본 저 편에서 다시 자신을 향해 뭔가가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기껏해야 유리구슬보다는 더 큰 정도의 물방울이 세지도 못할 정도의 수를 자랑하는 채 쏟아져 오고 있었다. 강림도령은 뛰는 것만으로는 저것을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바람결을 밟아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한두방울은 부득이하게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꿰뚫린 살갗이 주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을 겨우 버텨낸 채 그가 일직차사 쪽을 바라보자 그도 비슷한 정도로 부상을 입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자신과 거의 비슷한 덩치로 줄어든 물귀신의 얼굴 부분이, 마치 잔뜩 독이 올라 화난 것처럼 마구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누가보더라도 잡히면 뒤진다는 협박같은 얼굴.
"이젠 가까이도 다가가질 못하겠구만!"
이를 바득바득 갈며 피하기만 할 수밖에 없어 분통을 터트리는 강림도령의 몸이 점차 둔해지기 시작했다. 유의미한 공격을 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이미 지쳐버린 몸 위로 장대비같은 물귀신의 공격이 쏟아지려 하였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하게 보이는 순간. 강림도령은 이제 정말로 죽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몰려오던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자갈 위로 쏟아져버렸다. 하늘 위로 짓눌러버리는 바람이. 안도한 강림도령과 일직차사가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융터르! 자네 지각이야!"
"맞습니다, 지각. 책임, 지십시오."
"허, 어떻게 지면 될까요…. 이러면 되겠습니까?"
월직차사가 부채를 활짝 펴서 허리춤부터 끌어올리듯 대각선을 그리며 휘둘렀다. 마치 기관총마냥 날아오던 물방울이 그 바람을 꿰뚫지 못하고 얼마 못 가 모양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놈에게도 보였는지 수면 위로 끼익거리며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발광하는, 그런 모습과 동시에 다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내던 월직차사의 표정도 좋지는 못했다.
"괜찮으십니까?"
"처음엔 좀 엄살 부려볼까 했는데, 두 분 보다는 제가 사정이 더 나으니 아무 말도 안하렵니다."
월직차사가 그리 너스레 떠는 말에 두 사람이 씩 웃었다. 방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바람을 날리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공격을 봉쇄해줌으로써 공격에도 숨이 틔이기 시작한 덕분에. 반대로 놈도 이 새로운 난입이 자신에게 극도로 상성상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칠판에 손톱 따위를 세워 긁었을 때 나는 그런 불쾌하고 소름끼치는 괴성을 내지르며 다시 멀리서 공격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유리구슬보다는 더 크고 묵직한 공격을.
"아하, 열 받았나보군요."
"저 꼬라지가 되고서는 뭐랄까…, 이성도 좀 잃은 것 같네만."
"그래도, 위협적, 입니다."
일직차사의 말대로 워낙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공격인 탓에 월직차사에게 쏟아지는가 싶다가도 순식간에 타겟을 다른 두 차사에게 바꾸기 일쑤였다. 비록 몸이 작아졌어도 자신의 유리한 포지션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물귀신의 모습에 융터르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기회를 봐서 놈을 공중에 띄워보겠습니다."
"알겠네. 이번에야말로 진짜 끝내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듯 기합을 쥐어짜낸 강림도령의 외침과 같이 일직차사가 바람결을 밟아 다시 수면 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두 차사의 접근, 그리고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한 차사의 바람이 물귀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를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허우적거리는 몸이 그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뒤늦게 다시 물방울을 바늘처럼 날카롭게 쏘아 강림도령과 일직차사에게 쏘아 보내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공중 위로 훌쩍 뛰어오른 월직차사가 다시 바람을 아래로 짓누르듯 휘둘러 막아버린 시점에서 물귀신의 몸에 두 차사의 무기가 찌르듯 들어오려 하였다.
"하! 이제 쫄리니까 도망치나!"
기세좋게 휘두른 사인검이 허공을 베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던 강림도령이 이를 득득 갈았다. 조금만 더 공격이 깊었으면 잘못해서 엉뚱하게도 호드를 베어버릴 뻔 했던 것이다. 물론 자신도 일직차사의 창에 까딱하면 공격을 받을 뻔했다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내빼는 모습에서 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놈이 만드는 탄막도 움직이면서 쏘아대는 탓에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월직차사가 물론 중간중간 막아내주는 것도 있지만 얻어 맞는 것도 그 강도가 약해져 확실히 아까보다 훨씬 덜 아프다는 것도 느껴질 정도였다. 두 사람은 집요할 정도로 놈의 하단을 노렸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십시오!"
물을 끌어올려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신체 어딘가는 꼭 붙어있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만드는 공격은 결국 물귀신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틈을 노리던 월직차사의 부채가 아래에서 위로 크게 휘둘러졌고 그 힘을 버텨낼 수 없었던 물귀신의 몸이 허공으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좀 그만 얼굴 보자고, 지겨우니까―!!"
일직차사가 이를 악물고 창 끝에 벼락을 잔뜩 담아 먼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 몸에 찔러넣었다가 곧바로 뺀 그 자리에는 지금까지 겨우 놈이 수복했던 상처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흉측하리만치 쩍쩍 갈라진 그 몸뚱이가, 그동안 얼마나 두 사람이 공격을 가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상처가 심하게 벌어진 곳은 단연코 물귀신의 가슴 부분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놓칠만큼, 강림도령은 절대로 어설픈 사람이 아니었다.
일직차사보다는 조금 늦게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른 그 등에 월직차사의 산들바람이 떠밀어주듯 밀어 올려 가속도를 한층 더해주며 사인검이 아직 해가 뜨지 못했기에 어두컴컴한 새벽녘의 계곡을 눈부시게 빛을 뿌려댔다. 그 움직임을 막을 수도 없던 물귀신의 가슴에 난 상처에 검이 섬광같은 흔적을 다시 남기기 무섭게 강림도령의 호리병 속으로 놈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곡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워온 놈이 사라짐으로써, 턱 끝까지 물에 잠기는 것 같았던 그 불쾌한 음기가 사라지는 것 까진 좋았지만. 부적의 힘이 떨어진 것인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밟고 돌아다니던 두 차사의 몸이 물 위로 떨어지려 하였다. 당황한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가 저마다 이상한 목소리를 내려 할 때, 부드러운 바람이 두 사람의 몸을 받치듯 휘감기다 자갈밭 위로 내려주었다. 주저앉은 모양새가 된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지친 얼굴이 뚜렷한 월직차사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장구 치시라고 내버려둘 걸 그랬나요?"
"…물은 이제 지겹네, 지겨워."
"수영장, 안 가도, 되겠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진작에 물에 잔뜩 젖어버린 탓에 찝찝하다는 듯, 두 사람이 투덜거리면서도 저마다 킥킥 거릴 때 쯤 하늘이 점차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진짜로 모든 것이 끝났다.
"으응, 안 죽구 왔구먼."
"뭐야, 진짜로 죽일 작정이었습니까?"
염라대왕의 집무실 안. 아직 단단히 봉인되어 있으면서도 계속 탈출하려는 것인지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그 호리병을 유심히 바라보던 발설지옥의 재판관이자 시왕은 퉁명스럽게 그들을 맞이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물비린내가 은은히 풍기는 세 차사들이 이 대놓고 죽길 바라는 상관에게 어이가 없어 바라보다, 대표로 강림도령이 황당하다는 듯 말을 하였고 두 차사도 표정은 엇비슷했다. 호리병을 곁에 서있던 보좌관들에게 넘긴 염라대왕이 선글라스 너머로 그들을 향해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 불만에 답을 기꺼이 해주었다.
"거러믄. 느이들이 요놈 잡느라 힘빼고 허덕이는 것두 다 이유가 있는 벱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영문을 모르던 일직차사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으응. 원래는 느이들이 쓰는 것들이 다 저승사자 사양이여. 산 놈이 쓸라구 허믄 으뜨케 되겄냐?"
"그래서 저희더러 얼른 죽어라 그렇게 고사를 지낸 겁니까?"
황당해하는 월직차사의 말에, 염라대왕이 이제는 킬킬대며 웃기 시작하다못해 아예 기침까지도 하고 있었다. 아직은 죽을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던 세 중년은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았고, 다시 대표로 강림도령이 말했다.
"그나저나, 말씀하신 건 지켜주셔야겠습니다."
"응? 무언 약속?"
이럴 줄 알았다며 저마다 한숨을 쉬던 세 차사들은 입을 모아, 처음 물귀신을 잡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더 이상 일반적인 망자 인도에도 동원하지 말아달라는 그 말. 아직은 살아있는 세 사람은 저마다 낮밤도 없이 그 일까지 하느라 힘든지 아느냐며 하소연을 하기에 이르었고, 염라대왕은 털 숭숭 난 사내놈들이 징징댄다며 얼굴을 마구 구긴 채 소리 질렀다.
"고건 느이들이 즈번에 악령노므 샤끼를 탈출 시켰응께 내린 벌 아니여―!!"
"그게…. 벌이었다고요?" 황당해하는 강림도령이 반문했다.
"거러믄! 느이들은 일종의 특공대같은 넘들인데 일반 업무에 왜 투입을 허겄어?"
그 동안 정말로 이승과 하직할 뻔했던 세 사람이 아직도 그 때의 일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힐 줄 몰랐기에 황당해하는 사이, 염라대왕이 끌끌거리며 혀차는 소리를 내고는 서류 하나를 꺼내 뭔가를 적고는 도장을 꿍 소리나게 찍고 보좌관 하나를 불러 종이를 넘겨주며 일렀다.
"다른 시왕들헌티두 전혀라. 인자는 저 노므 샤끼들이 다른 망자들 인도허는거는 관두라구."
"알겠습니다."
아직은 얼굴도 모르는 다른 시왕들도 이런 막무가내 노동에 찬성을 했다는 사실이 제법 아찔했던 세 차사들은 더 따질 마음도 곧 사그라든 채로 나가라는 그 손짓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저승까지 아예 나와버렸다. 염라대왕이 이렇게나 '쪼잔'해도 되느냐는 속마음을 차마 말하지도 못한 채로.
다시 카르나르 융터르의 상담실 안에 있는 세 사람은 물귀신을 잡으러 떠났었을 적의 모습과 완전히 닮아있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 늘어진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착각도 일어날 법 하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기운이 쭉 빠져있었기에 입술이 새카만 말단 저승사자가 여느 때처럼 소리라고는 하나 내지 않고 상담실에 슬그머니 들어온 것을 보고도 아는 척을 하지도 못했다.
"저기요! 저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이게 무시하는 걸로 보이나? 자네만 없었어도 솔직히 그냥 이대로 확 자버리는 거였는데."
"맞습니다. 우리, 지금, 졸립니다."
"오시려거든 조금 눈치를 챙기고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세 차사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타박을 늘어놓자 말단 사자가 억울하다는 듯, 외모와 맞지 않게 울상이 되어 너무하다고 중얼거렸다. 이미 입술부터가 산 사람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 얼굴이었기에 만약 그 장면을 직접 봤었다면 누구나라도 진저리를 칠 법 하였다. 길쭉한 몸으로 카우치 소파를 독차지한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조심스럽게 피해, 소파의 남는 자리에 앉은 말단 사자는 들고 온 물건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익숙한 종이상자는 누가 보아도 명백히 케이크였기에, 평소 즐겨 먹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그 특유의 달콤한 냄새에 먼저 반응하였다. 마침 당이 떨어졌다는 좋은 핑계는 덤이었다.
"이게, 왠, 간식, 입니까?"
"아니이…. 그 물귀신을 잡아주셨잖아요. 그래서 저희 사자 일동이 차사님들께 드리는, 그 뭐시냐. 대충 감사의 표시 같은 겁니다."
그러면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딸기가 이렇게나 올라가도 괜찮은 것일까 싶은 정도의 생크림 케이크다. 일반적으로 봐왔던 것보다도 어딘가 고급스럽게 생긴 외양이 조금 힘께나 써서 구했다는 느낌이 강해, 세 사람이 저마다 놀란 기색을 감추려 애썼지만 그건 조금 어려웠다.
융터르가 곧 커피를 내오고, 기꺼이 한 조각을 받은 말단 사자가 그 맛에 감탄하다가 새삼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물귀신 그 지긋지긋한 놈을 어떻게 잡으신겁니까? 저희 사자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솔직히 고작 세 분이시잖습니까?"
"내가 놈을 제대로 베었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으쓱거리고,
"제가, 놈에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노스페라투 호드가 은근 자랑을 하고,
"두 분께서 공격 당하지 않게 제가 막아드렸죠." 카르나르 융터르는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말했다.
그렇게 거의 동시에 세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 서로의 발언에 서로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가 곧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겨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 분위기에 말단 사자는 이미 이승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먼 상황이지만 속이 얹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커피만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를 구겨진 얼굴로 바라보는 세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다.
막타를 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라느니, 그 동안 주로 유효타를 먹인 건 자신이라느니, 결국 물귀신을 두 분이서 쓰러트리기는 커녕 막판에는 막고 피하느라 급급했으면서 제 공은 잊었다느니. 요컨대 누가 더 잘했냐 못했냐의 말다툼이 점차 심해지기 시작했다.
"저, 저기이― 세 분더러 싸우라고 제가 말씀 드린 건 아닌데요…."
어쩐지 울상이 된 말단 사자가 정말 소화라고는 전혀 되지 못해, 원래도 시허옇기 짝이 없던 얼굴이 더 핏기가 없어진 상태로 세 사람을 향해 진정해달라며 말했지만 이미 열이 오를대로 오른 그들은 그 만류를 들은 척 마는 척하며 이제는 지난 일들의 잘잘못까지 따지고 있었다. 그래서 열에 들뜬 그들은 이 장소에 다섯번째 손님이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저마다 공로를 따지기에 바빴다.
그 다섯번째 손님, 염라대왕이 멋대로 뜨거운 물을 받아 녹차 티백을 우려내며 말했다.
"으응. 아주 잘도 헌다 요 썩을 것들."
"아, 아이고 시왕님 오셨습니까?"
"욘석들 헌티 힘이 들믄 고만 허라고 말하려구 혔는디, 아주 기운 차구먼."
염라대왕의 그 말을 만약 세 차사가 들었다면 당장 말싸움을 멈췄겠지만, 그들이 그럴 수 있지 못할 정도로 신경을 말싸움에 쓴 덕분에 가장 바라마지않던 그 포상을 스스로 걷어차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후회한 것도 제법 먼 미래의 일인채, 염라대왕은 저승사자 일동들이 돈을 모아 사온 그 케이크 조각을 먹으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세 차사 간의 말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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