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메인, 이상한 놈 메인 했으니 좋은 놈도 메인을 한번 해줘야 형평성에 맞지 싶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켜야하지...?
*일단은 곁가지로 기자 호드님 이야기를 먼저 풀어볼까 합니다.
"히어로 호드가, 살인을요?"
"어, 어어 그래. 솔직히 나도 좀 믿기가 힘든데, 지금 같은 제보가 여럿 들어와서 무시하기가 힘드네. 이거."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참, 여기 사진도 있어. 한 번 찐인지 짭인지 한번 찔러봐봐."
문제의 '괴인' 사건이 끝난 후로부터 몇 주가 지나 완전한 한겨울이 될 쯤이었다. 전국적으로 발행되는만큼 전국적으로 욕을 먹는 XX일보 중 사회부, 사람들이 그래도 참 기자라고 불러주곤 하는 노스페라투 호드는 부장과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바로 받아 든 사진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만 빼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얼마 없는 사진. 제보자라는 사람이 몰래 찍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대충 찍힌 탓에 흐릿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근육질의 거한이 누군가를 분명 강한 전류로 바싹 태워버린 끔찍함 만큼은 여실히 드러나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사진은 부장의 말처럼 히어로 호드가 사람을 전기로 지져 죽였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에 지적할 오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호드는 맹세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증거는 본인의 신념,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사진이 분명히 존재하는 이상, 이는 무시할 수 없는 노릇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 증거는 곧장 드러났다. 그의 등 뒤로 닫힌 문 사이에 부장이 히어로 호드를 대상으로 '어떻게 기사를 써야 잘 나올까' 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부터. 분명 악담으로 가득 찬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신나서 본인이 그 자랑하던 필력을 뽐낼지도. 노스페라투 호드는 걱정되었다.
그 걱정에 곤란함을 한껏 끼얹을 작정이었는지,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서 전화가 왔다. 능글맞음의 화신과도 같은 그가 당황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 생각도 못하던 차에.
-어이 이봐, 호두. 자네 뭔 나쁜 짓 저질렀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지금 회사에, 있습니다."
-지금 호드라는 히어로가 1시간 전에 사람을 반 죽여놨다는 신고가 들어왔네. 전기로 사람을 제 구실도 못할 정도...라던데.
"...네?"
앞뒤가 맞지 않았다. 1시간 전이면 근처 단골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나오던 참 아니던가. 놀라서 반사적으로 그는 주머니를 쑤셔서 손에 걸린 영수증을 확인해보았다. 확실히 1시간 전, 그는 분명 그 폭행사건의 장소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정적인 증거이되, 결정적이지 못한 증거였다. 자신이 히어로 호드임을 명백히 밝히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의 침묵이 조금 길었는지 핸드폰 너머로 캘리칼리가 연신 그를 부르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말했다.
"저는 그 시간에, 그 곳에, 없었습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후-우! 자네가 그 짓을 할 사람도 아니지. 정말 다행이야.
후련한 한숨과 함께 형사는 혹시나 정보가 또 들어오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빛이 사그라들고 남은 검은화면을 보는 호드의 표정은 씁쓸하기만 할 뿐이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순간적이지만 자신을 의심했다는 사실이.
그것 외에는 오늘 하루 별다른 소득도 없는 호드의 마음을 더 착잡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어떠한 사실관계도 없이 이미 히어로 호드가 '살인과 폭력'을 무자비하게 벌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저녁 사이에 벌써 나왔다는 점이었다.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무려 부장의 이름이 당당하게 보였다. 종종 히어로를 비롯한 자경단의 행태에 역겨움을 가감없이 품어왔던 그이기에,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1급수를 만난 물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필력을 왜 하필 이때 드러냈는지 조금 원망스러운 마음도 드는 그였다. 전에 없이 피곤한 마음에 컴퓨터를 끄고 자신의 침대 위로 누웠다.
그 댓글들도 떠올려 보면 하나같이 '그럴 줄 알았다'느니, '속내를 드러냈다'라느니 온통 동조하는 내용들 뿐이었다. 예상했던 바였기에 감정적으로 크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문득 호드는 자신이 이토록 외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힘을 얻은 후,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결심이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 수많은 선행들을 제치고 단 한번의, 그것도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악행에 모든 세상의 모든 욕이란 욕을 다 먹는.
예상하지 못했는가? 라고 자문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한다는 행위들은 항상 그러한 위험부담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고도 맞는 회초리가 안 아프다는 것은 아니기에, 호드의 마음 속은 어딘가 자신도 모르는 구멍이 난 것처럼 공허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심란한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인지 스마트폰이 전화가 왔다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카르나르 융터르였다. 누워있는 채로 그는 전화를 받았다.
"네. 말씀, 하십시오."
-소식... 들었습니다. 그 가짜가 저지른 사건.
"바로, 가짜라고, 말씀해 주시는군요?"
-제가 아는 노스페라투 호드 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요. 지난 괴인 사건 때도 결국 죽이지 않았는데, 뭘...
캘리칼리와는 다르게 확고하면서도 제법 퉁명스러운 어조에 호드는 저도 모르게 상반신을 벌떡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은 왜이렇게 또 띠꺼운 반응이란 말인가? 그가 당황해서 호흡마저 떨리는 것이 다 들렸는지, 상대방은 뭘 새삼스레 놀라십니까? 라며 틱틱 내뱉고 있었다. 여전히 호드는 이게 무슨 의미이며 또 무슨 의도에서 그런 것인지 답변을 신중하게 고르는 차에, 심리상담가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설마 본인이 아닌 짝퉁이 저지른 일 때문에 그리도 의기소침하신겁니까?
"..."
-명성이 사람 눈을 멀게 한다더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군요. 스스로 하지도 않은 일에 왜 기를, 그리 팍 죽어서...
투덜거린다라기보다는 낮게 중얼중얼거리는 그의 저음은, 심리상담가라는 직업치고는 심각할 정도로 그의 마음 속을 전혀 알아봐주려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하지만 그 태도가 오히려 호드에게는 어떤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다. 다정하게 말하는 법이라고는 도통 모르는 이 상담사가 역설한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왜 신경쓰냐고. 질척거리면서 들러붙어있던 기분에서 한껏 벗어난 호드가 평소의 얼굴로 돌아온 것도 모른채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글쎄요... 제가 그 감사를 받을 만큼 좋은 상담을 했던가요? ...그럼 문자로 계좌번호를 보낼테니 상담료, 입금 바랍니다.
"하하, 상담 요청한 적 없으니, 상담료는 무료, 입니다."
-흠... 간만에 좋은 용돈벌이나 될까 했는데, 뭐 아쉽군요.
전화가 끊어진 뒤로도 SNS에는 히어로 호드가 살인을 저질렀네 어쩌네 하는 글이 연거푸 올라오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아직까지 핫한 인기(?)라니. 하지만 이제는 그를 비난하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동당하는 사람들의 날선 비난은 어떤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는 자신이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살인에 기가 죽을 이유는 없다.
그저
그를 사칭하고, 그를 농락시킨... 말하자면 짝퉁에게는 업계 선배의 존경심을 제법 담아 사랑의 회초리를 날려줄 마음만이 들 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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